〈 30화 〉30-6구역
모두가 잠든 막사 안은 더운 공기가 가득했지만, 내일 있을 공격에 모두가 숙면을 취하고 있었다. 불침번이 왔다 갔다 하면서 12인실 천막을 살피고 있었다.
석준은 옆에서 코를 골며 자는 명치대인이 거슬리는지 머리를 흔들었다.
" 흠냐. 흠냐... "
석준은 생각했다.
내일, 과연 자신이 제스들과의 싸움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그 고민이 머릿속을 파고들었다.
그 사이 명치대인의 코 고는 소리가 석준의 귀에 들렸다.
' 드르렁! 드르렁! '
' 퍽! '
석준이 명치대인의 안면을 손바닥으로 내려치자 명치대인은 벌떡 일어났다.
" 네! 특수 소대 병장 명치대인입니다. 마들! "
비몽사몽한 눈으로 거수경례까지 하는 명치대인을, 소대원들이 눈 비비며 일어나 쳐다봤다. 수군수군 거리며...
" 에잇 뭐야! "
" 자식아 너 코 고는 소리에 다들 못 자잖아! "
" 민감들 하기는... "
투덜거리며 담요를 덮는 명치대인이었다.
" 넌 걱정도 안 되냐? "
" 석준아. 그래 봤자 그놈들은 이성이 없는 놈들이야. 그냥 큰 짐승 사냥하러 나왔다고 생각하면 안 되냐! "
" 그래도... 얼마나 잔인무도하면 이 행성에서 멸종을 시키려 하겠냐고... "
" 별로 관심 없다."
" 맘 편한 새끼 니가 부럽다. "
석준 또한 등을 돌리며 담요를 끌어올렸다.
" 잘 자라! "
" 너도! "
둘은 어렸을 때부터 친구였다. 피보다 진한 우정이라 해야 하나? 석준은 부모가 없었고 그런그를 친 형이나 동생처럼 받아준 이가 명치대인이었다.
학교 생활을 마치고 성인이 되어서도 둘은 떨어지지 않았다. 체격도 비슷해서 인지 운동을 특별나게 잘했다. 어쩜 둘은 서로의 스승인지도 몰랐다.
경쟁관계.
뭐 하나 누군가 잘하면 그 보다는 앞서야 한다는 둘만의 경쟁 때문에 둘은 더욱 발전한 것일 수도 있었다.
둘은 여자를 만나는 취향도 비슷했다. 결국 그로 인해 의절도 하려 했지만, 둘의 끈끈한 우정이 사랑이란 단어보다 더 중요해서인지 서로 다시 만나게 되었다. 피 터지는 주먹싸움은 뒤따랐지만...
결국 두사람은 직업도 군인을 택했다. 훈련소서부터 지금까지 같은 내무반을 쓰는 소중한 전우가 되었다. 정말 가족이란 단어가 어울리는 두 사이.
아무튼 둘의 절망은 지금 부터였다. 잠든 주둔지에 비상 사이렌이 울렸다. 고요히 벌레소리만 들리던 막사에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소총 소리는 덤이었다. 불침번이 자고 있는 대원들을 깨웠다. 민감한 친구들은 전투장비를 이미 차고 있었다.
" 비상!! "
놀란 명치대인과 석준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재빠르게 무장했다.
" 이게 무슨 일이야? "
" 몰라! "
막사 밖에서 고함이 들렸다.
" 제스! 제스의 습격이다. 으아악!! "
순간 제럴드가 장교 막사에서 대원들의 막사로 들어왔다.
" 모두 침착하고 대형을 갖추어 뒤로 후퇴한다. 알았나! "
" 옙썰! "
" 행동개시! "
대원들은 막사 밖으로 하나 둘 빠르게 빠져나왔다. 이미 밖은 제스의 습격으로 반이상의 군인들이 시체로 변해 있었다. 멀리서 커다란 제스 한 마리가 병사를 죽이고 갈기갈기 찢는 모습이 석준의 눈에 들어왔다.
대원들은 뛰었다. 이 지옥으로부터 벗어나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인간의 세 배만 한 삐쩍 마른, 또 다른 이 행성의 생명체가 군데군데 보이기 시작한다. 커다란 제스 한 마리가 제럴드의 진형으로 뛰어왔다. 인간의 속도보다 세 배는 빨라 보였다. 순식간에 다가온 제스.
" 후방 1조 둘은 엄호. 나머진 후퇴하라! "
그의 지시에 두 명의 대원이 제스를 향해 레이저 건을 난사했다.
' 츄추즁... '
제스의 팔과 다리가 휘청거린다.
머리에도 상처가 생긴다.
가슴을 뚫고 지나가는 빔에도 제스는 굴복하지 않은 채, 붉은 눈을 부릅뜨며 달려들었다.
제럴드는 다시 지시했다.
" 2조! 2조는 조준 사격으로 엄호! "
2조에 속한 명치대인과 석준은 자리에 털썩 엎드려 제스를 조준한다. 명치대인 눈에 보이는 커다란 제스가 곧 1조 대원을 덮칠 기세다. 그런 제스의 오른쪽 눈을 조준하는 명치대인.
" 잘 가라! 개새끼야! "
' 츄쥬중! '
동시에 석준도 방아쇠를 눌렀다.
' 츄쥬중! '
제스의 오른쪽 눈과 왼쪽 눈에 적중한 둘의 사격. 괴물은 괴로워하며 눈을 손으로 감싸았다.
" 우어어억. "
어두운 새벽의 불빛은 조그만 손전등이 전부였다. 야간 투시경을 쓸 시간도 없는 대원들은 또다시 뛰기 시작했다. 그러나 어둠 속을 뚫고 튀어나오는 제스의 숫자는 더욱 늘어갔다. 1마리. 2마리. 3마리... 점점 늘어가는 제스의 숫자가 어느덧 10마리가 되었다. 그 괴물들은 어둠 속에서 뛰쳐나오자마자 어느덧 대원들과 함께 달리고 있었다.
" 으아악! "
마지막으로 달리던 대원이 아무런 반항도 못한 채, 날카로운 제스의 팔에 손목과 다리가 잘리고 찢겨 나갔다. 그 앞의 대원은 전우의 죽음에 분노하며 레이저 건을 난사했다.
" 죽어! 죽으라고! "
동료를 죽인 제스의 온몸이 뚫리지만, 스르륵거리며 괴물은 서서히 다가왔다. 그 괴물보다 더 빠른 다른 제스가 대원을 덮쳤다.
모래바닥에 흩뿌려지는 붉은 피.
명치대인은 느꼈다. 도망가도 죽는다는 것을... 제스의 속도를 인간은 낼 수 없다. 뒤를 보여 주느니 앞에서 죽더라도 싸워야 한다는 걸 느꼈다.
" 소대장님!! 소대장님!! "
소대장은 도망치다가 명치대인을 바라봤다.
" 도망치면 이대로 모두 전멸합니다! 이왕 죽는 거 싸워 봤으면 합니다! "
" 미친놈아! 지금 그럴 시간이면 한 발자국이라도 더 도망쳐 알았어! 전 소대 빨리 뛰어! "
" 에이~ 퉷! 야! 석준아! 가볼까? "
그렇게 걱정했던 석준이도 명치대인의 의견을 따랐다.
살며시 웃어주는 석준.
명치대인이 오른손에 일본도를 꺼내 들었다. 왼손으로 레이저건을 쏘며 자신에게 달려오는 제스를 향해 달려갔다. 석진은 그런 명치대인 위로 조명탄을 쏘아 올렸다. 검은 사막이 붉게 변했다. 그 빛에 명치대인도, 정면에 있는 제스의 흉직한 모습도 붉게 물들어졌다.
난사하며 전진하는 명치대인.
부들부들 떠는 제스.
제스의 날카로운 팔과 일본도가 부딪쳤다.
' 챙. '
곧바로 명치대인의 삼단 베기.
제스의 머리와 몸통과 다리가 분리됐다.
석준은 그 사이로 조준 사격을 하며 명치대인을 엄호했다. 한 마리의 제스가 명치대인에게 달려왔다. 두 팔을 마구 휘두르는 제스의 두서없는 공격에 명치대인은 이곳저곳을 막아낸다.
제스가 그 틈을 노리기라도 한 걸까? 석준이의 엄호에도 3마리의 제스가 소대장이 속한 대원들 쪽으로 미친듯 달려갔다.
" 이런! "
석준은 자신의 옆으로 빠져나간 제스를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눈앞에 5마리 제스가 보였기 때문이었다. 제스의 눈을 겨냥한 석준은 숨을 죽이며 한발 쏘아 올렸다.
명중.
한 마리의 제스가 괴성을 질렀다. 순간 명치대인은 무림의 초식을 하듯, 그 움직임으로 싸우고 있던 제스의 목을 땄다.
솟아오르는 붉은 피.
그는 여지없이 몸통과 다리를 연속으로 잘랐다. 왜냐? 제스는 머리가 없이 몸만으로도 움직일 수 있는 괴물이었기 때문이었다. 명치대인은 곧바로석준이 명중시킨, 괴성을 지르는 제스에게로 달려들었다.
' 챙 ~ 쉬이익 '
사선 베기.
커다란 제스의 몸뚱이가 대각선으로 쪼개졌다.
연이은 이단 베기.
한쪽 팔과 한쪽 다리가 잘려 나갔다.
두 전우의 호흡은 척척 들어맞았다. 석준이 제스의 눈을 맞추면 명치대인은 괴물들의 몸 구석구석을 난도질했다. 얼굴에 피범벅이 되도록 그의 현란한 칼질에 제스들은 나가떨어졌다.
마지막 한 마리의 제스가 석준의 눈에 보였다.
심호흡을 하는 석준.
숨을 멈춘다.
방아쇠를 당긴다.
연속으로 두 번.
마지막 남은 제스의 양쪽 눈으로 파고드는 레이저빔. 석준과 명치대인의 눈이 마주친다.
싱긋 웃어 보인 석준.
웃음을 보이려 하다 인상을 찡그리는 명치대인. 명치대인은 석준에게 손을 내밀며 고함친다.
" 아... 안돼!!! "
석준은 명치대인을 보며 느꼈다. 자신의 뒤에 무언가가 있다는 것을...
석준을 가리는 커다란 그림자.
뒤를 돌아보는 그의 눈동자에 자신을 베려는 제스가 그려진다.
" 윽! "
쓰러진 석준. 그곳으로 레이저건을 난사하며 달려오는 명치대인.
" 안돼! 으아악!!! "
아랑곳하지 않고 제스는 석준을 갈기갈기 찢어낸다.
" 이야압! "
명치대인이 제스의 목을 잘랐다. 숨을 헐떡거리는 석준을 바라보며...
" 석준아! 석준아! "
땅바닥에 내동강이 친 일본도가 모래에 휩쓸렸다.
무릎을 꿇은 명치대인의 눈가에 어느덧 굵은 눈물 방울이 떨어졌다.
" 으아아악!! "
하늘을 보며 고함치는 명치대인. 그러나 그런 슬픔도 잠시, 마지막으로 처리하지 못했던 제스가 눈에서 피를 뿜으며, 어느새 명치대인 뒤에 서 있었다.
명치대인의 등을 날카로운 팔로 찌르려는 제스.
뒤돌아 그런 제스의 목을 날리는 명치대인.
둘 다 성공했다. 복부를 찔린 명치대인이 앞으로 쓰러지고, 목이 날아간 제스는 뚜벅뚜벅 방향을 잃은 채 걸어갔다.
그렇게 제스 소탕작전은 끝이 났다. 실패로...
한참을 기절해 있던 명치대인이 눈을 뜬 곳이 라구나 함정이었다.
제스 소탕에 실패하자 모을 수 있는 사냥꾼들을 최대한 모아 다시 소탕하려 했고, 그때 라구나 대원이었던 건남이 정찰을 왔다가, 쓰러져 있던 명치대인을 구했다. 어떻게 보면 살린 건 나였다. 조금만 늦었어도 명치대인을 소생시킬 수 없었다. 질긴 생명이긴 질긴 생명이었다. 3일 가까이 시체였던 사람을 살린 적은 한 번도 없었으니까. 그러고 나서 나 또한 3일을 움직이지 못했었다.
그 후로 몸상태가 좋아진 명치대인은 소속부대로 돌아갔다. 아직도 돌아오지 않았다는 소대원들의 소식을 들었고, 작전에 실패한 대원들은 죽었을 확률이 높다고 전해 들었다.
그는 그곳에 있을 이유가 없었다. 명치대인은 빠르게 제대를 했다. 친구를 잃은 슬픔과 고통에서 빠져나가고 싶었다. 그렇게 오고 갈 때 없는 그를 맞이한 곳이 지금의 라구나였다.
- 이름 모를 사무실 -
" 이놈이 아직도 살아 있단 말이지! 후후훗. 재밌어. 재미있어졌어! 부하 녀석이 이렇게 속을 썩이는 군. "
창가의 빛이 그의 얼굴을 비춘다.
제럴드가 책상에 턱을 괴고 앉아 깊은 생각에 잠긴다. 어깨에 박혀있는 중령 계급장과 팔 옆에 새겨진 수비군 마크가 그의 얼굴과 함께 빛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