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3화 〉33-하극상
- 2구역 수비군 관사 -
도시의 밤과는 다르게 이곳은 쏟아지는 듯한 별들이 하늘을 수놓았다. 야생 동물의 울음소리가 어쩜 이리 크게 들리는지, 고요한 적막은 드넓은 사막처럼 길게 느껴진다.
건남과 명치대인은 이때를 기다린 듯 오아시스 앞에 위치했다. 어둠으로 인한 자연스런 위장이 그들의 발걸음을 재빠르게 만들었다.
" 이곳에서 내가 엄호할 테니 들어가 봐! 알아낼 수 있는 건 모조리 알아내고! "
" 형! 정말 무서운 사람이야. 여길 암습하라고 하다니! 일반 범죄자도 아니고. 여기 행성 수비군이라고! "
" 그러니 네가 딱 안성 맞춤 아니겠니 그쪽 출신이기도 하고. "
" 어휴 모르겠습니다. 걸리면 튈 준비나 잘하세요! "
명치대인은 투덜거리며 관사로 향한다.
건남은 정문과 울타리 사이로 보이는 초소 하나를 염탐한다.
컴컴한 밤. 달빛과 별빛. 초소 근처에 있는 외로운 등 하나만이 이곳을 밝히고 있었다.
초소와 정문은 대략 100m 정도 떨어져 있다. 그 중간으로 명치대인이 이곳을 걸리지 않고 들어갈 수 있을까? 천만의 말씀. 초소와 정문 어느 쪽에서도 시야가 확보되어 있는 곳이다. 그냥 가면 걸릴 각이다.
건남은 명치대인이 어느 정도 침투하자 다트핀을 세 개 꺼내어 던진다.
초소로 하나.
정문으로 하나.
그리고 명치대인에게로 하나.
초소와 정문으로 날아간 네 개의 다트 핀은 네 명의 보초병을 잠재웠다. 스르륵 쓰러지는 보초병들을 살피기 위해 건남이 움직이며 말한다.
" 명치대인아 빨리 움직여! "
" 알았다구요! "
명치대인은 잰 걸음으로 뛰기 시작하고 울타리를 넘어 관사로 직행한다. 건남은 그동안 쓰러진 보초병들에게서 다트핀을 회수한다. 보초병들 다리에 아주 정확히 꽂혀 있는 다트핀.
한 시간이다. 보초 교대시간은 살펴본 결과 한 시간에 한 번씩 이루어졌다. 관사가 아닌 주둔지에서 병사들이 오고 갔다.
건남은 명치대인을 따르는 다트핀의 화면을 선글라스로 확인하며 그를 엄호한다.
현관문.
잠겨 있는 걸 확인한 명치 대인은 건물을 돌아 창문들을 살핀다. 잠겨진 창문. 명치대인은 위를 바라본다. 반쯤 열려 있는 창문이 눈에 보인다. 이런 군사시설에서 저런 실수를... 운이 좋다고 생각한 명치대인은 도움닫기를 통해 점프를 하고 처마의 끝을 잡는다. 마치 스트리트 워크아웃을 하듯 팔 근육으로만 명치대인은 이층 지붕에 올라온다.
자식 의외로 멋진 걸 해낸다. 살금살금 15° 경사면의 지붕을 밟고 올라가 2층 창문으로 향한다. 안을 살피는 그가 아무것도 없는 것을 살피고 창문 안으로 들어간다. 명치대인은 손전등으로 주변을 살핀다.
책장과 책상, 컴퓨터와 의자 그리고 벽에 붙어 있는 사진.
" 엥? 이 사람 어디서 많이 본 사람인데! "
생각하는 그. 그리고 속삭인다.
" 제럴드! "
건남의다트 핀은 계속해서 명치대인을 주시하고 있다.
" 형! 이 사진에 있는 놈 보이세요? "
" 어! "
" 이 자식 옛날 제 상관인데... 안 죽었나? "
" 왜? "
" 그때 기억나시죠 3년 전 제스 섬멸 작전! "
" 그럼! 그럼! "
" 그때 죽었다고 들었었는데... "
명치대인은 책상의 명패를 확인한다. 대대장 소령 제럴드 암.
" 이 자식 살아 있네요! "
" 명치대인 아 그보다 거기 디지털 전화기 없어? "
" 찾아 볼게요! "
그는 이곳저곳을 살핀다.
" 형 여기는 없는 것 같은데요! 1층으로 가 볼게요! "
" 그래 조심히 움직여! 그리고 거기서부터는 내가 다트핀을 움직이지 못하는 거리야! 다트핀에 보면 코드가 하나 있을 거야. 그걸 디지털 전화기 본체에 꽂아! 알았지! "
" 원래 이렇게 복잡해요? 추적이란 것이... "
투덜거리며명치대인은 문을 열고 밖을 살핀다. 살금살금 목조건물의 계단을 내려가는 그의 모습이 흡사 내가 쥐를 사냥할 때의 모습과 비슷하다. 조용조용한 그의 발걸음. 손전등을 끄고 가시거리를 확인하며 한 발 두 발 움직인다.
1층 거실과 로비는 아담하다. 소파가 놓여 있고... 탁자에... 탁자에 디지털 전화기가 놓여 있다. 명치대인이 흐뭇하게 웃는다. 그리고 건남이 시키는데로 코드를 찾아 꽂는다.
" 형 찾았어요! "
" 그래! "
" 코드 꼽았습니다. "
건남은 그의 이야기가 끝나기가 무섭게 추적장비를 확인한다. 그리 짧던 로딩 시간이 왜 이리 길게 느껴지는 걸까. 신호음과 함께 그가 찾던 곳이 지금의 관사라는 것이 확인된다.
" 빙고! 철수! 코드 뽑고 탈출해! "
" 알았어요. 형! "
잽싸게 움직이는 명치대인이 코드를 뽑는 순간이었다.
거실의 조명이 환하게 켜진다.
총을 든 수비군이 여럿 보인다.
이층에 두 놈.
주방에서 나오는 두 놈.
제럴드와 그 옆에서 두 놈이 서재에서 나온다. 그리곤 사이렌이 울리기 시작한다. 관사 내의 비상 사이렌과 주둔지의 사이렌. 명치대인의 얼굴이 일그러진다. 조용한 그의 목소리.
" 형 째세요. "
그렇게 말하고 명치대인은 선글라스를 벗는다. 일본도를 꺼내드는 그.
" 오랜만이군. 명치대인. "
제럴드가 비릿한 미소로 명치대인을 맞이한다.
일본도를 움켜잡은 명치대인이 칼을 뽑아들며 여유로이 몸에 붙어 있는 삼지도를 손목에 장착한다.
" 허. 죽은 줄 알았는데 살아 있었다니..."
제럴드는 터벅터벅 명치대인에게 다가온다.
" 이봐! 오래간만에 만났는데 반갑지 않나? 크큭 "
" 반갑긴... 네 무능함에 늘 떠나고 싶었다고... "
오호~ 명치대인의 진지한 모습이 왠지 낯설다. 누구냐 넌?
" 도발인가? 아무튼 네놈이 우리 식구를 죽인 232일당과 한패라는 게 놀랍군... 이런 어리바리한 녀석들에게 당할 줄이야! 흐흐흐흐. "
" 어떻게 수비군이 재필과 한통속일 수가 있지? "
" 순진하군! 뭐 어차피 죽을 목숨인데 굳이 숨기지 않겠어. 재필 두목의 힘이 이 수비대에게만 있겠나? 어떠한 모습으로도 우리는 존재하지! "
" 별 그지 같군! 이런 범죄 조직에 힘을 실어 주는 것들이 정부에 박혀 있다는 게! "
" 왜! 멋지지 않아? "
" 개뿔은..."
" 힘쓰지 말고 순순히 따르시지..."
" 니 말따라 이왕 죽을 거. 니 목은 따고 가야겠어! "
" 예나 지금이나 어리석은 건 마찬가지군! "
제럴드는 자신의 군사들에게 지시를 내린다.
" 공격해! "
병사들은 그의 지시를 따른다.
붉은 광선들이 선을 그으며 명치대인에게 집중된다.
' 피융 피융... '
그러나 그가 누구인가 구르기의 대가인 명치대인.
그는 앞, 옆, 뒤 구르기를 펼치며 모든 빔을 요리조리 피한다. 제럴드로 향하는 앞구르기. 그리고 점프. 그를 향한 내려 베기. 정수리로 향하는 명치대인의 일본도.
" 이얍!! "
그러나, 제럴드는 알고 보니 공중제비의 달인이었다. 뒤로 공중제비를 선사하며 2바퀴 돌더니 정확한 착지를 한다. 체조 선수인가? 제럴드의 부하들은 레이저 건을 난사한다.
' 피융. 피융. 퓨뷰븅. 피융. '
이마와 볼에서 떨어지는 명치대인의 땀방울이 땅으로 흩어진다. 땀의 노력 덕일까 그들의 공격을 명치대인은 모조리 피한다. 그리고 제럴드의 오른쪽에 있던 병사의 복부를 삼지도로 찌른다.
깊숙이 뚫고 지나간 삼지도를 뽑아내자 짧은 단말마를 내뱉으며 그가 쓰러졌다.
연이은 명치대인의 한 손 하단 베기.
일본도가 옆에 있던 병사의 왼쪽 종아리를 삭둑 잘라낸다.
회전하듯 왼손을 쭉 내미는 명치대인은 제럴드의 가슴을 노리며, 삼지도의 날을 세운다.
공중으로 뛰어오른 제럴드. 명치대인의 공격을 피하며, 그의 머리위로 배면뛰기를 하듯 폴짝 넘고는 공격을 피한다. 뒤돌아 이 층 난간을 밟고 위로 오르는 제럴드를 명치대인은 쫓아 오른다.
" 쥐새끼 같은 놈 잘도 달아나는구먼! "
2층에 자리 잡고 있던 병사와 합류하는 제럴드는 외친다.
" 이새끼 상사에게 말하는 꼬락서니 하고는! "
그렇게 말하곤 자신의 병사들에게 큰 소리로 지시한다.
" 뭐해! 멍하게 있지 말고 사살해!! "
부하들은 제럴드에게 향하는 명치대인을 계속해서 사격한다. 사이렌과 레이저 건의 소리가 관사 안에 울린다. 쑥대밭이 되어가는 관사.
찢어진 소파.
나무로 된 현관문에 뚫리는 구멍.
깨지는 꽃병.
퍼붓는 빔을 피하는 명치대인.
그 사이 제럴드는 가슴에 품고 있던 손도끼를 한 손에 잡아 쥐었다.
그럼 밖의 상황은... 난리도 아니다. 비상 사이렌과 함께 어디서 날아왔는지 조명탄이 여러 개 펼쳐진다. 한낮 보다도 밝아 보인다. 또한, 매복하고 있던 병사들이 건남을 둘러싸고 있었다. 원형의 결계가 펼쳐진 것처럼 건남을 둘러쌓는 병사들. 건남은 선글라스의 버튼을 누르며 자연스럽게 두 손을 머리 뒤로 올리고 깍지를 낀다.
그런 건남에게로 다가오는 한 병사가 건남을 무릎 꿇게 한다. 군말 없이 무릎을 땅에 가져가는 건남.
' 퍽 '
개머리판이 사정없이 그의 두개골을 강타한다. 맥없이 쓰러지는 건남의 눈은 이미 감겼다.
쓰러진 건남과는 다르게 후면에서 공격하던 병사 두 명을 제압한 명치대인은 이제 제럴드와 그의 부하 두 명과 대치하고 있다.
" 역시 자랑스러운 수비대의 아들이군! 이걸 다 피하다니... 대단해! "
제럴드의 비꼬는 말투가 명치대인을 자극한다.
" 쥐새끼! 너 같은 새끼를 상관으로 두었던 것이 내 인생 중 가장 큰 오점이다. "
" 지랄하지마!! 이 개새끼야!! "
제럴드는 자신이 들고 있던 손도끼를 있는 힘껏 명치대인에게 던진다. 매우 빠르게 그의 이마로 날아오는 손도끼. 날카로운 왼손의 삼지도를 명치대인은 휘두른다.
' 챙. '
불빛이 순간 번쩍하고 일어났다. 삼지도의 날카로운 칼날이 세 개 모두 부러진다. 굴절된 손도끼는 그의 왼쪽 눈 밑을 긁고 지나 뒤에 있는 벽에 박힌다.
' 퍽 '
" 이런 남아나는 몸뚱이가 없군. 젠장! "
흐르는 피를 닦을 겨를도 없이 명치대인에게 병사들은 사격을 시작한다. 그러나 명치대인은 구르기의 장인. 이리저리 구르며 그들의 공격을 피한다. 그렇게 피하는 명치대인에게 사격을 중단하는 병사들은 눈살을 찌푸린다.
" 소령님! 총의 배터리가 0%입니다. "
이제 명치대인에게 탄알을 잡아먹는 귀신이라고 말해야 하나? 상황을 눈치챈 명치대인이 '씩' 하고 웃는다. 부러진 삼지도를 왼손에서 떨구며...
"이제 좀 해 볼만 하겠는걸! 이야압!! "
두 손으로 잡아들은 일본도를 역으로 잡아쥔 그.
나무 바닥에 선을 그으며 달려간다.
매우 빠른 잰걸음.
권총을 꺼내 드는 두 병사.
뒤로 빠지는 제럴드.
명치대인의 회전 베기.
두 병사의 머리가 하나 둘 땅으로 떨어진다.
' 퍽. 퍽 '
이마에 맺힌 땀을 닦아내는 명치대인이 제럴드를 노려본다. 얘. 명치대인 맞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