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4화 〉34-지원군
둘만의 눈빛. 날카로운 칼날처럼 눈꼬리가 빛나는 두 사람.
" 제법이군... "
" 왜? 상황이 역전된 것 같아? "
" 아니! 이제 시작인걸! 으하하하. "
순간, 현관문을 부수고 들어오는 수비군. 많다. 이건 뭐... 줄줄이 들어온다.
" 어디 계속 상대해 보시지! "
명치대인은 제럴드의 말을 의식한 듯 뒤를 살짝 돌아본다. 많다. 아주 많다. 밖에는 이미 연락을 받고 나온 무장한 병사들로 가득하다.
섬광탄이 밝히는 하늘은 낮보다 훨씬 환하게 이곳을 비춘다. 비릿한 미소의 제럴드가 명치대인에게 조용히 말한다.
" 네가 뛰어난 전투병이라는 건 내 인정하지…. 근데 말이야…. 이 인원을 상대할 수 있을 것 같아! 포기하라고... 음화하하하... "
미친 듯 웃는 제럴드다.
" 웃.기.지.마!!! "
엄청난 속도로 제럴드를 파고들어 그의 목에 일본도의 칼날을 들이댄다. 제럴드는 피할 틈도 없이 명치대인에게 뒤를 내어준다. 모든 병사가 그런 명치대인을 주시하며 조준한다. 어마어마한 빨간 점이 명치대인의 머리와 얼굴에 찍힌다. 바짝 제럴드에게 붙어 있는 명치대인이 그의 귀에 속삭인다.
" 쫄다구들 치우지? 지금 멱 따이기 싫으면. "
" 죽여! 나 죽이면 네 목숨은 그냥 벌집이 될 테니! "
명치대인은 칼날을 더욱 깊게 제럴드의 목에 가져간다. 살짝 베이는 그의 목에서 약간의 피가 흐른다.
" 그럼 너 죽고 나 죽고 해볼까? "
" 흐흐흐흐... "
그의 웃음소리와 함께 수비군의 전투 비행정과 전투용 헬리콥터의 프로펠라 소리가 점점 크게 들려온다.
" 이봐! 명치대인. 자낸 이제 독 안에 든 쥐야... 날 놓아주면 목숨만은 살려줄 테니여기서 포기해! "
명치대인은 그의 말을 무시한 채, 무수히 많은 병사 앞으로 제럴드를 끌고 조금씩 전진한다.
천천히. 매우 천천히 계단을 내려온다.
적막. 명치대인은 물론 병사들의 목울대가 꿀렁거린다.
숨을 죽이며 어느새 현관문 가까이 다가온 명치대인은 군이들에게 떨어지라는 무언의 몸동작을 해 보인다. 두 손을 든 제럴드는 '네가 어디까지 하나 보자.'라는 눈치다. 목에서 주르륵 피가 흘러도 여유만만한 그의 표정.
현관문 앞. 넓게 트인 정원에 보이는 수많은 병사.
섬광탄의 빛. 관사를 비추고 있는 전투정과 헬리콥터. 그리고 기절한 채 엎드려 있는 건남. 명치대인의 눈에는 건남이 선명하게 들어왔다. 커지는 눈과 함께 읊조린다.
" 니미럴 째라니까..."
" 동료가 잡히니까 기분이 어때? 흐흐흐. "
" 입 닥치시지! "
" 뚫린 입으로 말도 못 하나. 크하하하. "
순간적으로 이놈을 죽일까 하는 생각이 명치대인의 뇌리를 스친다. 그 생각의 빈틈을 역 이용하는 제럴드가 명치대인의 풀린 손목을 이용하여 그를 허리 반동으로 내리꽂는다.
업어치기.
제럴드에게 꼼짝없이 당한 그가 일어나려는 순간 이미 수비대의 병사는 명치대인의 관자놀이에 총구를 들이밀었다. 제럴드의 비웃음과 동시에 주먹이 날아오고 명치대인의 얼굴은 일그러진다.
맥없이 쓰러진 명치대인의 머리에 제럴드의 군화가 지그시 올려진다.
" 어때... 이제 순순히 항복하시지... "
웃고 있던 제럴드의 표정이 굳어지며 살의가 낀 눈빛으로 명치대인을 내려본다.
" 그러니까 깝죽거리지 말란 말이야!!! "
구둣발로 힘껏 내리 차는 제럴드. 그의 눈에는 광기가 서려 있었다.
" 컥! "
명치대인의 신음.
그때였다. 어디선가 들려오는 미사일 소리. 굉음은 순식간 전투정과 헬리콥터에 다가와 폭발음을 만들었다.
' 콰과광 쾅! 펑! 펑! 펑! '
두 기의 비행물체가 산산이 조각났다. 그 모습을 제럴드와 그의 부하들은 넋놓고 바라본다. 마른하늘에 날벼락이 이런 상황을 보고 말하는 거겠지... 아님 말구.
- 한 시간 전. -
사실 건남이 쓰러지기 전 그는 buzz 함정에 연락했었다. 건남이 쓰러지기 전 선글라스의 스위치를 누른 곳이 buzz였다.
" 우현이 형! 건남형 한테 통신 왔어! "
" 뭐라니? "
" 걸렸나 봐! 통신 3으로 연락 후 아무 말이 없어! 엿 된 거 아녀? "
" 이래서 날 데려온 건가? 아무튼 성진아 준비해! "
그랬다. buzz 함정은 2구역 안을 떠돌고 있었다. 건남이 이곳에 오기 전 미리 그들을 데리고 왔었다.
buzz 함정은 마들가리 행성의 함정 중 아주 희소가치가 큰 함정이었다. 스텔스 기능은 기본, 그리고 투명화. 적 레이더에 걸리지 않고 고스트처럼 항해하는 함정이었다. 우현이 마음만 먹는다면 정부의 수뇌부도 조용히 다가가 폭파할 수 있는 무서운 존재. buzz가 그런 함정이었다.
건남은 쓰러지면서 자신이 정찰에 실패할 경우를 대비했다. 그 상책이 우현이었다. 건남과 우현은 미리 약속했었다. 위험에 처하면 건남 자신이 있는 곳으로 숨어 있다가 도와 달라는...
통신3의 교신. 그리고 무언. 이것이 그들의 암호였다.
" 우현형! 이러다 재필의 얼굴도 못 보고 실패로 끝나는 거 아닌지 몰라? "
" 별수 있냐? 건남성 한번 믿어 보자! 투명화 시간 확인해 보고. 자동항법 취소하고. 조종대 맞아! "
" 알겠습니다. 선장님!"
그렇게 우현이와 성진은 수비대 관사로 날아갔다.
- 2구역 수비대 제럴드의 관사 -
투명화가 풀리는 buzz 함정의 포문과 공대지 무기들은 모두 열려있다. 제럴드가 buzz 함정에 한 눈을 판 사이에 명치대인은 그에게서 빠져나온다. 그리고 재빠르게 선글라스를 낀다.
" 우현? "
- 네! 명치대인 성님!
" 어떻게 할 거야? "
- 허허허... 어떻게 해드릴 까요?
" 몰라! 그냥 다 부셔버려... 건남형 구해야 하니 엄호해 주던가! "
- 알았어요! 그리고 건남성이 위험하면 바로 라구나랑 수사관님에게 연락하라고 그랬거든요. 지금 프리통신으로 전환 할거에요. 형 코드 맞추세요!
우현의 이야기를 듣기나 한 걸까? 명치대인은 뛰고 있다. 쓰러져 있는 건남에게로... 빗발치는 레이저 빔. 그 사이를 피하는 명치대인. buzz 함정에서 공지대 미사일을 한 발 쏘아 올린다.
' 쉬이잉... 펑! '
관사가 풍비박산난다. 제럴드와 그의 주변 수비대 군인들은 본의 아니게 날아간다.
" 성진아! 아무래도 안 되겠다. 너 내려가서 명치대인형 좀 도와주라! 저 많은 인원을 어떻게 감당하려고... 에혀~ "
우현은 조종실로 다가간다.
" 조종은요? "
" 실드 켜두고 정차비행모드에 맞춰나! 간만에 buzz 화력좀 보여주자고. "
우와~ 앞에서도 말했지만, buzz 함정은 무시무시한 함정이다. 투명화만이 전부가 아니다. 공격형 함정으로 다른 중급 함정보다 몇 배의 화력을자랑한다. 저급 대형함정과 맞먹는 화력이라 보면 된다. 간만에 시원하게 터질게 확실하다.
성진은 우현이의 지시를 그대로 실행하며 함정을 빠져나온다.
어느덧 건남에게로 다가온 명치대인. 건남을 지키던 두 명의 병사가 명치대인에게 총구를 겨누려 한다. 하지만 그의 일본도는 두 병사의 옆구리를 가른다. 짚단이 넘어가듯 반 토막 난 병사. 그 사이로 명치대인의 얼굴이 피범벅이 되어 있다. 쟤 진짜 명치대인 맞냐옹.
그는 건남을 둘러업고 뛴다.
관사가 쑥대밭이 되었을 때 날아간 제럴드가 몸을 추스린 후 도망치는 명치대인을 바라보며 병사들에게 지시한다.
" 뭐해!! 갈겨!! "
갈지자로 뛰는 명치대인. 저게 사람이냐? 빔 사이로 막 가를 펼친다. 그 많은 병사가 레이저 건을 쏘는데 맞추질 못한다. 반대로 우현의 무기조종은 명치대인을 사격하는 병사들에게 정확하게 꽂힌다. 픽픽 쓰러지는 제럴드의 병사들.
크게 들리는 사이렌 소리에 병사들이 부대 안에서 이젠 쏟아져 나온다. 또한 수비대 안의 전투정도 모두 출격을 완료한다. 제럴드가 급하게 구형 무전기를 손에 들었다.
" 야이 씹세리들아! 특전 대원들은 뭐 하는 거야! "
통신절차를 무시한 그의 행동에 수신자는 어리둥절하다. 통신 절차를 이행해야 하는 걸까?
- 수신 양호. 53 단무지 현장 소환 이상 무. 오버.
" 오버는 얼어죽을 당장 뛰쳐나와! "
단무지? 대충 암호다. 특전대 애들 출발했다는 이야기다. 아무튼 제럴드는 아주 흥분해 있다. 흥분한 그의 머리 위로 지나가는 전투정. 수비대 전투정이 1기. 2기. 3기. 4기가 편대를 맞춰 지나간다. 또한 군부대에서 뛰쳐나온 수많은 병사가 반원을 그리며 관사 지역으로 들어왔다. 대충 중대 인원 정도로 보인다.
" 명치대인형! 후방에 대략 100여 명 있습니다. 최대한 엄호할 테니 뛰세요! "
" 니미럴! 이 형. 왜 이렇게 무거워! "
너보단 가볍다아옹.
숨을 헐떡거릴 힘조차 아까운지 명치대인은 입을 꽉 문 채 달린다. 이건 뭐 단거리 육상선수보다 더 빠르다. 육상 선수나 하지 여기서 왜 뛰어다니는지...
2륜 소형정 보다 더 작은 비행정을 몰고 온 성진이 명치대인에게로 다가왔다.
핸들을 잡지 않은 채로 날아오는 성진. 기마병이 화살을 쏘는 자세라 해야 하나? 말을 탄 서부의 총잡이가 쌍권총을 잡은 모습이라 해야 하나? 아무튼 그는 양손, 양팔을 교차하며 달려오는 수비군을 향해 무언가 던진다.
그것은 스페이드 에이스 카드.
카드 한 장이 바람을 가르며 명치대인을 쫓는 병사에게로 날아갔다.
그 카드가 여러 장으로 흩어진다.
철모를 깨뜨리는 스페이드 에이스.
깨뜨린 철모를 뚫고 병사의 이마를 후벼 파는 카드 한 장.
달리는 방향으로 고꾸라지는 병사.
순간, 53명의 병사가 스페이드 에이스에 쓰러진 병사처럼 앞으로 고꾸라진다.
성진의 광역공격.
날아 갔던 54장의 카드가 임무를 마치며 성진의 손으로 빠르게 돌아왔다. 회전의 속도 때문인지 피 한 방울 묻어나지 않은 54장의 카드. 조커가 마지막으로 성진의 손에 감기듯 들어오며 카드는 정리되었다.
아직 남은 병사 절반가량이 성진의 눈에 보인다. 자신에게로 날아오는 여러 발의 빔과 함께... 핸들을 잡은 성진이 버튼을 누른다.
실드.
그 사이를 통과하는 명치대인. 빔과 실드가 부딪히며 조명탄의 밝음을 무색하게 만든다. 너무 밝다아옹...
아무튼 살아남은 명치대인과 건남을 비행정에 성진은 태운다.
" 형님들 살아계시네요. 헤헤헷! "
뭘까? 빔들이 실드를 계속 두드리며, 용접봉의 불빛처럼 환한 빛을 만들고 있는데, 성진의 저 여유로움은... 그만큼 자신이 있는 건가? 실드가 무적의 방어무기인가? 뭐지 이 녀석! 지금 이렇게 여유 부릴 때가 아니란다아옹.
" 명치대인형 꽉 잡으세요! Buzz 호로안전하게 모셔다드립죠! 헤헤헷. "
" 휴~ 이제야 살 것 같네... "
명치대인은 고개를 좌우로 한 번씩 움직이며 긴장을 풀었다.
' 드득. '
성진은 클러치를 당긴다.
' 부아아앙 '
공회전. 그리고 나오는 소형 비행정의 음성.
" 실드 방어 5% 남았습니다. 잠시 후 실드가 해체됩니다. "
성진과 명치대인은 얼굴이 굳어진다. 그와 동시에 비행정에서 음성이 또 나온다.
" 죄송합니다. 인원이 초과되었습니다. 한 분은 내리셔야 합니다. "
빗발치는 빔.
번쩍번쩍하는 실드.
이마에서 볼을 타고 땀이 주르륵 흘러내리는 명치대인과 성진.
이런 이런 성진은 뭘 믿고 그렇게 여유로웠던 걸까아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