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7화 〉37-긴급함
- buzz 함정 안. -
2구역에서 벗어난 buzz 호는 0구역 근처에서 서성이고 있었다.
투명화.
고스트라 불리는 투명막을 가진 buzz 호는 숨을 수밖에 없었다. 원인은 마들가리 행성 수비대를 초토화했으니 말이다.
상황이 그렇다. 아침 헤드라인 뉴스에 '초토화된 수비군' 하며, 모든 지역으로 buzz 호에 관한 이야기가 퍼져 나갔다.
부서진 관사와 널브러진 시체들.
사냥꾼인 명치대인과 우현, 성진은 조용히 숨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자칫 잘못하면 수배자 명단에 그들이 오를 수도 있었으니, 알다시피 정부는 수습하기 바쁘고.
아무튼 건남은 아침이 되어서야 눈을 떴다. 그가 눈을 뜨자 밤새 전투에 지친 우현과 성진이 보인다. 그리고 이어폰을 끼고 발재간을 부리며 춤을 추는 명치대인도, 어지간히 춤에 미쳤다. 이 상황에서 저러기도 힘들 텐데... 에효~ 내가 다 한숨이 나온다.
" 성! 괜찮아? "
뒤통수가 뻐근한지 목 근육을 움직이며 건남은 일어난다.
" 으윽. 어떻게 된 거야? "
춤을 추던 명치대인은 건남이 깨어나자 이어폰을 빼내며 웃는다.
" 깨어나셨어! 우리 싸울 동안 푹 쉬시던데... 히히히... "
" 그러니까 어떻게 된거냐고? "
" 별거 없수다 형님! 그냥 수비대 한곳 폭파하고 언론에 노출된 정도. "
그래 그래야 명치대인이지.
상황의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한 저 순백한 웃음. 건남은 기가 찬 지 연신 한숨을 쉬었다. 그런 그에게 물 한 잔을 건네는 성진이 말한다.
" 건남 형 아무래도 상황이 심각한 것 같아요? "
건남은 조용하다. 깊이 생각하는지 표정의 변화도 없다. 우현은 그런 그에게 멀티비전을 작동시킨다. 공중에 떠 있는 화면에 뉴스가 흘러나왔다.
- 오늘 새벽 2구역 수비대의 참혹한 테러현장입니다. 아직 누가 이런 만행을 저질렀는지는 밝혀지지 않았는데요. 마들가리 정부는 조용하게 행동을 취하고 있습니다...... -
건남과 우현, 성진은 화면에 집중한다. 기사의 내용은 뚜렷한 것 없이 추측 기사가 난무하고 있었다. 이거원! 고양이의 짧은 생각이긴 하지만, 성우나 근식이는 당장 제복 벗고 나가지 않을까? 건남과 명치대인, 우현, 성진은 다른 사냥꾼의 타깃이 되지 않을까? 하는 의구심이 내 뇌리를 스친다. 저 기사만 보더라도.
건남도 그렇게 느끼는 것 같다. 인상을 찌푸린 것이 똥에다 겨자 왕창 뿌려 먹은 인상이다. 그 표정으로 명치대인을 바라본다.
" 명치대인아! 무슨 짓을 한거야? "
" 그러게 형! 누가 째라니까 잡히래! "
" 내가 잡히고 싶어서 잡혔냐? 어휴~ 적당히 하고 빠졌어야지! "
" 흠... 형이 알아서 뒷 수습하겠지 뭐... "
상희의 '야! 이년아!'를 따라 하고 싶은 건남은 입을 꽉 막는다. 어쩌다 테러범이 됐는지... 수배전단에 2000크랑 이상의 값어치 나가는 현상범으로 발돋움 할 필이다. 쓸데없는 화면을 꺼 버리는 우현.
" 성! 어떻게 할 거예요? "
" 상희하고 연락해 봐야지... 성우형하고... "
명치대인이 부연 설명하듯 이야기를 꺼낸다.
" 지금 누나 이쪽으로 오고 있어. 우리가 했던 장면을 다 전송시켰거든…. 빡쳤나 봐. "
" 그럼 지켜주었던 수비대하고 경찰들은? "
" 형이 그거 몰러서 나에게 묻는겨? 빡쳐서 그냥 뛰쳐나왔겠지? "
" 이런! "
건남이 기절해 있던 사람이 맞던가? 쌩쌩하게 일어나 긴급하게 성우에게 연락을 취하려 한다. 그 긴박함은 그 누구도 모를 것이다.
" 우현아! 23구역 상황실 연결해 두었니? "
" 성. 미쳤어요... 그냥 연락했다가 저희 위치 노출되면 어떡하려고요. "
" 상희는? "
" 지금 방금 켜 놓았어요... "
그 말과 함께 상희의 음성이 buzz호에 울려 퍼진다. 알다시피 사자후 필이다.
- 야! 이년아! 어떻게 된 거야!! 우리 목숨 너한테 달린 거 몰라서 그래!
" 상희야! 진정해! "
- 내가 진정하게 생겼어 미쳐블!
" 아무래도 우리의 위치나 정보가 샌 것 같아... 그렇지 않고서야 쉽게 노출 될 리 없었거든. "
- 그건 뭔 개풀 뜯어먹는 소리야?
그러고 보니 명치대인이 제럴드의 관사에서 수화기를 발견한 순간 기다렸다는 듯 거실에 불이 들어왔다. 사냥감이 덫에 걸리듯 아주 깔끔하게, 침투 또한 너무 순조로웠다. 마치 이곳으로 들어오라는 듯.
" 만약을 대비해서 우현이랑 성진이 데리고 왔었는데... 이렇게 될 줄이야... "
- 그러니까 건남옵. 우리의 정보를 넘기는 놈이 있다는 거 아냐?
" 모르겠어! 나 또한. 우리 중 첩자가 있는 건지? 아니면 뒤를 캐는 녀석들이 있는 건지? 그 외 다른 방법으로 우릴 염탐하고 있는 거 아니겠어. "
- 아놔! 미쳐블.
" 그건 그렇고 넌 지금 어디까지 온 거야? "
- 몰러. 앞으로 22시간 더 날아가야 한데. 당최 얼마나 멀리 간겨!
" 내가 더 미쳐 버리겠다. "
- 야! 이년아!!
" 왜! 이년아!! "
건남과 상희는 씩씩거린다.
" 상희야! 왜 이쪽으로 날아온 거야? 성우형이 기다리라고 그러지 않았어? "
- 아놔! 다 니들 죽을까봐 그런 거지! 괜스레 나 때문에 끌려와서 다 뒤지면! 니들 다 뒤지면!! 니미럴...
상희의 이마에 주름이 잡힌다. 성질이 난 표정. 눈동자에 맺히는 투명 물. 떨구지 못한 눈물.
" 니들 죽으면... 재필이든 뭐든 뉴스에 나온 수비대의 초토화보다 더 한 것도 보여 줄겨! 니미럴... 씨부럴! "
건남은 말이 없다. 침착한 다해가 두 사람의 교신에 끼어들었다.
" 삼춘. 성우옵이 삼춘 깨어나면 전해 달라고 한 게 있어요. "
- 뭐?
" 3구역으로 피신하라고요. 그쪽으로 가면 우리를 보호해 줄 사람이 있다고 하더라고요. 당분간 연락도 하지 말라고 하셨구요. "
- 다른 이야기는?
" 뭔가 내부에 적이 있는 것 같다는 이야기도 했어요. "
내부의 적? 뭐지 스파이가 있단 건가?
- 성우형은 괜찮데?
" 글쎄요? 성우옵하고 연락할 수 없어서... "
" 이런! "
성우랑 연락이 안 된다는 건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건남의 눈과 귀를 차단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떻게 이 난관을 극복할지 의구심이 든다.
"다해야! "
- 넵 삼춘?
" 조심히 움직여. 상희 욱하는 성질 좀 잡아주고. "
- 야! 이년아! 내가 욱 안 하게 생겼어? 아주 매를 벌어요 벌어.
" 됐구요. 3구역 위치나 보내 주시어요. 왈가닥 아줌마. 미행하는 소형정이나 확인 계속 하시고! "
- 잔소리 그만하시고 빨리 피신이나 하시지요. 술고래 아저씨!
다해는 3구역 피신 위치를 전송시키고 상희는 계속 투덜거린다. 건남은 귀가 얼얼한건지 귀지가 저절로 빠질 지경이다.
명치대인은? 교신엔 관심이 없다. 이어폰을 끼고 열심히 춤을 춘다. 이런 상황에서도 춤 연습하는 명치대인. 그의 발재간을 성진은 바라보고 건남과 우현은 전송된 위치를 확인하며 2구역 언저리에서 3구역으로 서서히 이동한다.
투명화가 서서히 풀리는 buzz호.
사막의 따가운 햇빛.
모래에 기어가는 이름 모를 생명체.
buzz 함정은 신속하게 전진한다.
어쩜 엔진도 큰데 이렇게 조용하냐아옹~
- 어딘지 모를 연구소 -
긴급한 건 건남뿐만 아닌 거 같다. 관사에서 도망친 제럴드도 진땀을 빼며 이곳까지 오고 말았다. 광활한 사막. 어떠한 표식도 없는 한적한 곳. 부대에 있던 비행정을 타고 도망친 그는 아무것도 없는 사막에 착륙한다.
" 제기랄 놈들... "
그렇게 혼잣말을 한 제럴드가 비행정에서 내려 몇걸음 걸었다.
순간, 피뢰침처럼 생긴 기다란 쇠막대가 그를 기다린다는 듯 바람에 휘청거린다. 사막 한가운데 꽂혀있는 사람 키 정도의 길쭉한 쇠막대. 제럴드는 찢어진 제복 주머니에서 전자열쇠를 꺼낸다. 쇠막대 끝에 카드를 살며시 가져가자 주변으로 둥그런 투명의 막이 돔을 만들며 비행정과 제럴드를 감싸 안았다. 그리곤 쇠막대의 옆에 홀로그램의 인식기가 생성된다.
- 이곳은 사유지입니다. 관계자 외 외부인은 이곳에 무단으로 출입할 수 없으며 법적 피해를 받을 수 있으니 그 점 인지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
" 이런 썅! 인공지능까지 날 얕보는군! "
제럴드는 인식기에 얼굴을 들이밀며 구시렁거린다. 명치대인에게 한 방 먹은 것에 분이 풀리지 않는 모양이다.
- 인식확인 중입니다. 잠시 기다려 주십시오. -
이 인공지능도 꽤 로딩이 길다. 제럴드의 짜증은 고스란히 인공지능 센서에 어필된다.
" 뭔 확인절차가 이렇게 길어! 이러다 조금이라도 늦으면 어떡하려고. 젠장. "
순간, 대지는 미세하게 흔들렸다. 지진? 아니다. 지하에서 올라오는 엘리베이터 소리다.
- 안녕하세요. 제럴드 중령님. 얼굴 인식 잠금 장치가 해지되었습니다. -
인공센서의 이야기가 끝나자 둥그런 돔 안의 바닥이 갈라진다. 지름 25m의 둥그런 땅 지표면의 모래가 순식간에 스르륵 사라지고, 투명한 돔은은색의 철로 변한다.
천장이 둥그런, 커다란 엘리베이터로 변했다고 생각하면 될 것이다.
지하로 내려가는 둥그런 엘리베이터. 그 엘리베이터가 사라지자 25m 싱크홀은 홀로그램의 영사기로 가짜 사막을 만든다. 가짜 사막이지만 감쪽같다. 아무튼 지하로 내려가는 제럴드.
이런 곳에, 사막 한가운데에 이런 시설이 있다니... 참 신기할 뿐이다. 첨단 지하 벙커인가? 엘리베이터 안에 누군가의 음성이 들린다.
" 제럴드. 어서 오게. "
매우 침착한 목소리. 어디선가 많이 들어본 목소리다. 누구겠는가?
" 보스! 지금... "
말을 툭 자르는 보스.
" 말하지 말고 들어. 안 그래도 연락하려고 했으니... 뉴스거리 만들어 놓았군... 전 세계가 주목하는... "
" 보스... 죄송합니다. 이렇게까지는 될지 몰랐습니다. "
" 뭐 그 정도로... 내 방으로 들어오게. 이미 뉴스로 대충 내용은 알고 있으니... 정확한 이야길 들어야겠어. "
어딘지 모르게 당황한 기색이 없는 보스 녀석의 목소리가 너무나 침착하고 부드럽다. 눈치 챈 사람들은 알 것이다. 이 목소리의 주인공은 재필이다. 상희와 건남이 목숨 걸고 잡으려 하는 녀석이 근사한 지하에 둥지를 틀고 지내고 있었다니.
이 둥지는 재필의 연구소다. 규모가 매우 커 보이는 지하시설. 제럴드가 지하 몇 층인지 모를 곳에 도착해서 재필의 사무실까지 가는 동안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간간히 보였던 흰색 가운과 방독면의 연구원들.
차트를 들고 움직이는 연구원.
회색의 철문 앞을 지키고 서 있는 무장한 경비원.
곳곳에 날아다니는 이동식 방범카메라.
재필이란 존재가 왜 이런 곳에 있는지 참 궁금해진다. 고양이인 이 히리도...
' 냐아옹~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