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38화 〉38-연구소 (38/179)



〈 38화 〉38-연구소

- 재필의 사무실 -



제럴드가 자동문을 열고 들어온다. 지나왔던 연구실 분위기와는 확연히 다른 공간. 연구실이 전체적으로 백색이라면 사무실은 보랏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연한 보라색.

상당히 큰 사무실 책상은 엔틱하다. 그 엔틱함과 어울리지 않는 재필은 정갈한 옷을 입고 안마 의자처럼 생긴 커다란 의자에 다리를 꼬고 앉아 있었다.

의자 팔걸이에 팔을 걸친 재필.

늘어진 손목.

힘 빠진 손가락.

정숙한 미소.

" 엉망이군. "

제럴드의 모습은 정갈한 재필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그런 그가 재필에게 무릎을 꿇으며 예의를 표한다. 중세시대의 기사들이나 하는 그런 모습이었다.

" 보스! 인사 드리옵니다. "

고개는 바닥으로 향한다. 재필은 그런 그를 바라보며 책상 서랍에서 커다란 시가를 꺼내어 입에 문다. 오른쪽 옆에 있는 하얀 연구복을 입은 여성이 그에게 불을 붙여 준다. 담배에서 뿜어지는 연기가 사무실에 흩뿌려 졌다.

그래. 어떤 녀석들이 우리의 전초기지를 그렇게 만들었지? "

투덜거리기만 하던 제럴드가 재필의 질문에 긴장이라도 했는지, 목소리에 힘없이 대답한다.

" 현상범 사냥꾼들입니다. "

역시나 표정 변화 없는 재필.

" 사냥꾼? 사냥꾼이라... 우리에게 대적하겠다는 사냥꾼이 있다니 놀라운걸. "

 안면이 놀란 표정이면 마들가리 행성의 인간들은 모두 놀란 표정으로 살아가는 것인가? 하나도  놀라 보인다. 재필은 제럴드를 바라보다 옆에 있는 여성에게 시선을 옮긴다.

" 다솜아. 근래에 우리에게 덤빈 사냥꾼 하나 있지 않았어? "

 여성이 다솜인가 보다. 참! 그러고 보니 다솜이란 이 여자 어디서 봤는데... 생각해 보니 영사기 필름 속에 동광제약의 노트를 사용했던 그 여성이었다. 그때처럼 하얀 가운을 입고 있다.

긴 곱슬머리.

날카로운 검은색 뿔테 안경.

갸름한 턱선.

입술 옆에 붙은 애교점. 사감 선생님 같은 그녀가 입을 연다.

창기라는 사냥꾼이었습니다. "

" 그래 그 녀석처럼 정신 나간 행동을 하는 사냥꾼이 또 있다는 건가? "

고개를 들어 제럴드가 재필을 살핀다.

" 네! 보스. 일명 232라고 하는 현재 주가 높은 사냥꾼입니다. "

" 232? "

" 네! 현상범들은 그를 그렇게 부릅니다. 보기 힘든 여성 헌터이기도 합니다."

" 여자? "

" 네! 그렇습니다. 보스! "

" 크흐흐흐... 여자라... "

재필의 웃음은 어이없다는 듯한 비웃음으로 꽉 차 있다. 그렇게 실소를 터트린 그의 표정이 다시 굳어진다.

" 언제부터 날 잡으려  거지? "

" 그... 그건 자세하지는 않지만 근래인 것 같습니다.  15일쯤... "

" 그럼 그걸  이제야 말하는 건가? "

" 죄... 죄송합니다. 보스...  선에서 해결하려 했으나 모두 실패로 돌아가고 역으로 공격을 당했습니다. "

우리의 존재에 그런 당돌함을 보인 녀석들이 궁금하군! 정보라도 있나? "

담배 연기를 길게 내뿜는 재필의 눈동자가 아직 여유롭다.

" 네! 있습니다. 자료 코드 델타 20번으로 자료실에 공유해 놓았습니다. 확인해 보셨으면 합니다. "

" 다솜아 코드 연결해. "

" 알겠습니다. 보스. "

다솜은 허공에 손가락을 가져간다. 허공에 생기는 자판. 유리처럼 투명한 컴퓨터 자판에, 다솜은 제럴드가 말해준 코드를 입력시킨다.

순간, 컴컴해지는 재필의 사무실.

재필의 뒤쪽에서 녹색의 빔이 보라색 벽면을 비춘다. 커다란 화면. 낡은 필름이 돌아가는 영화관을 연상케 하는 흑백화면. 흑백화면은 노이즈를 일으키다 컬러화면으로 바뀐다.

 화면을 주시하던 재필은 눈동자가 흔들렸다. 표정 변화 하나 없던 그가 드디어 긴장하는 듯하다. 왜? 상희의 프로필이 등장했기 때문이다.

그 뒤에 건남의 프로필도. 두 명의 프로필이 재필을 움찔하게 만든다. 아무래도 10년 전의 기억이 뇌 속에 스멀스멀 피어나겠지.

명치대인과 다해의 프로필이 끝나자 화면이 꺼지고 사무실은 원래대로 돌아왔다. 아직 남은 시가를 재떨이에 비벼끄는 재필. 그가 의자에서 일어난다.

뭐지? 이년하고 이놈은 어떻게 사냥꾼이... "

제 아무리 감정 없는 재필이라 하더라도 인간 이긴 인간이나 보다. 움찔하는 것을 보면. 상기된 재필은 좀 전의 여유로움과는 전혀 다른 표정으로 제럴드를 내려보았다. 언성도 높아진다.

" 이런! 이 녀석들이라니... 이런 정보 말고 세부적인 내용은 없나? "

" 보스... 세부정보는 저희가 심어 놓은 요원들을 통해 알아볼 수 있습니다. 그 보다 제게 기회를 한 번 더 주십시오! 이놈들 제가 꼭 처리하겠습니다. "

" 할 수 있겠어! 네 힘으로... "

" 네! 부탁드립니다. "

목숨을 조아리듯 당찬 목소리다.

좋아. 단 성공하지 못하면 네 수명은 거기서 끝인  알아. "

재필은 또 하나의 시가를 꺼내어 입에 문다. 자동으로 불을 붙이는 다솜이 조용히 말한다.

보스. 용이가 도착했나 봅니다. "

" 중요한 시기에 이런 일이 생기다니... 조금만 있으면 우리의 연구가 완성되는 데 말이야... 아무튼 용이가 도착했으니 샘플실로 오라고 전해. "

" 네. 알겠습니다. "

다솜은 사무실을 조용히 나간다. 그녀의 뒤를 바라보던 재필은 턱을 괴며 무언가 생각하는 듯하다.

제럴드야 명치대인에게 당한 복수를 꿈꾸겠지...

아무튼 칙칙한 재필의 사무실은 너무나 고요하다. 폭풍전야의 무풍처럼.


- 3구역과 5구역의 경계면. -

사막과 절벽이 공존하는 모래의 공간. 바양작의 풍경과도 비슷하다. 절벽 위에서 바라본 대지는 끝도 보이지 않는다. 3구역과 5구역의 경계지역은 그렇다. 식물도 주택도 없는 모래의 땅이다.

이런 곳에 건남과 명치대인을 도울  있는 사람이 있긴 있는 걸까? 고스트로 저공 비행하던 buzz 호가 투명화를 풀며 절벽 위에 정박한다.

수직 착륙하는 함정.

바람에 흩날리는 모래 먼지.

고요한 대지에 나타난 문명화 된 buzz 함정.

웅장한 엔진음이 멈추자 사방이 고요하다. 인적은커녕 개미 새끼도 찾아보기 힘들 정도의 외진 사막이었다.

" 휴~ 건남성! 목적지 도착했습니다. "

우현이 고민에 빠진 건남에게 도착을 알리자 두리번거리던 건남은 곧바로 라구나 호에 교신한다.

" 다해야! 어디쯤 오고 있니? "

- 삼춘. 저희 곧 도착해요!

" 우리 숨어서 오느라 상당히 오래 걸렸는데. 얼추 비슷한 시간에 도착한  같구나. "

- 그런 거 같아요.

그러고 보니 상희가 조용하다. 어디 갔나? 무슨 일인지 조용히 조종석에 앉아 뉴스를 보고 있다. 엥! 아니다. 뉴스를켜 두고 졸고 있다. 긴박하고 성난 모습은 어디론가 도망쳤나 보다. 그럼 그렇치... 진지함은 그새 바닥난 상희였다.

" 다해야! 우리 누구한테연락해야 하니? "

다해는 뜸 들이며 말한다.

- 성우삼춘 이야기론 준이라는 사람인데 그냥 연결 코드랑 이름만 이야기해 주었어요...

" 준? "

- 넵! 삼춘. 코드 넘겨드릴까요?

" 그래. 먼저 숨어 있어야 할 것 같아. 괜스레 추적당하면 모든 게 허사가  수 있으니. "

명치대인이 건남의 옆으로 껄렁거리며 다가온다.

" 형님도 참! 조심성은 알아줘야 한다니까... 이런 곳에서 뭔일 있겠어요? "

그냥 건남은 쌩이다. 찬바람이 부는 같지 안냐옹~

건남성! 저희는 어떻게 할까요? "

" 너희 위험하지 않겠어? 이대로 헤어지면? "

우현과 성진은 덤덤하다.

" 괜스레 이상한 일에 휘말리게 한  같아 미안한데... "

" 성! 괜찮아요. 이 정도쯤이야. "

오~ 대. 인. 배. 그 비싼 전략미사일을 물 쓰듯 쓰고서도 저런 말을 하다니.

" 우선은 함께 이동하자. 이왕이면 협력해야지. "

" 그러죠. "

다해가 보내 준 코드 연결해 줄래? "

그런  저에게... "

성진은 다해가 전송해준 코드 번호를 교신 장비에 입력한다. 잠시후 상대방 쪽에서 먼저 말을 걸며 교신해 온다.

- 안녕들하신가? 성우가 보낸 사냥꾼들인가 보군.

" 네. 지금 성우형이 보내 준 좌표에 와 있습니다. "

허허허... 초면에 말 놓아서 미안하네. 성우에게 듣기로 나보다 어리다 들어서... 허허허...

뭔가 여유로워 보이는 상대방이었다.

" 네! 반갑습니다. 도착해서 보니 아무것도 없는 황무지라, 어디로 가야 합니까? "

허허허. 자네 밑에 있네.

" 네? 밑이라니요? "

- 너무 서두르지 말게나. 잠시 후면 저절로 알게 될 테니! 그 중급 함정도 이곳에 숨길 건가?

" 네? "

뭐지? 건남 일행의 동태를 어디선가 확인하고 있다는 건데... 주변엔 정말 아무것도 없다.

- 이곳이 좀 비좁아서 말이지... 중급 함정을 정박시키기엔...

준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절벽 위가 흔들린다.

고요했던 절벽.

갈라지는 땅.

그리고 굉음.

땅이 갈라지는 소리라 해야 하나? 아무튼 커다란 소음과 함께 더욱 심하게 흔들리는 대지는 buzz호 사냥꾼들의 중심을 잃게 만든다.

" 뭐... 뭐야! "

중심을 잡으며 조종석의 성진이 buzz 호를 이륙시키려 하자 준에게 교신이 왔다.

- 놀라지들 말게나! 절벽이 갈라지고 있는 것이니.

절벽이 갈라지는 데 놀라지 말란다.

갈라진틈으로 계단이 보일 거야. 그 틈으로 슬슬 들어오면  걸세.

준의  따라 갈라진 땅에서 절벽으로 들어가는 나선형 계단이 생겼다. '알겠습니다.' 하며 응답한 건남이 우현과 성진을 번갈아 바라본다.

" 우현아... 어떻게 할래? "

" 연락 주세요. 고스트로 숨어 있을게요. 3구역 주변에서 맴돌고 있을 겁니다. "

건남은 우현에게 고마움을표한다. 사실 아는 사람만 아는 이야기지만, 예전에도 말했지만, 지금 우현은 어마어마한 금액을 지출하는 거다. 재필을 잡아서 받는 금액보다 쓰는 금액이 더 커질 수도 있다. 고스트라는 투명화를 가동하려면 어마어마한 양의 기름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면 이해하기 쉬울 듯싶다.

에효~ 원가 뽑을 수나 있을런지? 전략 미사일만 해도... 저런 지원군을 얻었다는 건, 건남이 인복이 있다 해야 하나? 아무튼 건남과 명치대인은 나선형 계단을 내려가고 buzz 함정은 스르륵 투명화되며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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