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9화 〉39-절벽안
- 3구역 사막 준의 아지트 -
나선형 계단을 내려가자, 컴컴한 공간은 건남과 명치대인의 발자국을 따라 전등이 켜지며 밝아진다. 건남은 묵묵히 걸어 내려간다. 그 뒤를 따르는 명치대인은 신기한 듯 주변을 두리번거린다.
" 이야~ 형님! 이런 곳에 이런 공간이 있다니... "
" 성우형이 가보라고 했으면 무언가 생각이 있어서겠지. "
" 그나저나 우리 어쩐대요? "
" 어쩌38화. 연구소.
- 재필의 사무실 -
제럴드가 자동문을 열고 들어온다. 지나왔던 연구실 분위기와는 확연히 다른 공간. 연구실이 전체적으로 백색이라면 사무실은 보랏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연한 보라색.
상당히 큰 사무실 책상은 엔틱하다. 그 엔틱함과 어울리지 않는 재필은 정갈한 옷을 입고 안마 의자처럼 생긴 커다란 의자에 다리를 꼬고 앉아 있었다.
의자 팔걸이에 팔을 걸친 재필.
늘어진 손목.
힘 빠진 손가락.
정숙한 미소.
" 엉망이군. "
제럴드의 모습은 정갈한 재필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그런 그가 재필에게 무릎을 꿇으며 예의를 표한다. 중세시대의 기사들이나 하는 그런 모습이었다.
" 보스! 인사 드리옵니다. "
고개는 바닥으로 향한다. 재필은 그런 그를 바라보며 책상 서랍에서 커다란 시가를 꺼내어 입에 문다. 오른쪽 옆에 있는 하얀 연구복을 입은 여성이 그에게 불을 붙여 준다. 담배에서 뿜어지는 연기가 사무실에 흩뿌려 졌다.
" 그래. 어떤 녀석들이 우리의 전초기지를 그렇게 만들었지? "
투덜거리기만 하던 제럴드가 재필의 질문에 긴장이라도 했는지, 목소리에 힘없이 대답한다.
" 현상범 사냥꾼들입니다. "
역시나 표정 변화 없는 재필.
" 사냥꾼? 사냥꾼이라... 우리에게 대적하겠다는 사냥꾼이 있다니 놀라운걸. "
저 안면이 놀란 표정이면 마들가리 행성의 인간들은 모두 놀란 표정으로 살아가는 것인가? 하나도 안 놀라 보인다. 재필은 제럴드를 바라보다 옆에 있는 여성에게 시선을 옮긴다.
" 다솜아. 근래에 우리에게 덤빈 사냥꾼 하나 있지 않았어? "
이 여성이 다솜인가 보다. 참! 그러고 보니 다솜이란 이 여자어디서 봤는데... 생각해 보니 영사기 필름 속에 동광제약의 노트를 사용했던 그 여성이었다. 그때처럼 하얀 가운을 입고 있다.
긴 곱슬머리.
날카로운 검은색 뿔테 안경.
갸름한 턱선.
입술 옆에 붙은 애교점. 사감 선생님 같은 그녀가 입을 연다.
" 창기라는 사냥꾼이었습니다. "
" 그래 그 녀석처럼 정신 나간 행동을 하는 사냥꾼이 또 있다는 건가? "
고개를 들어 제럴드가 재필을 살핀다.
" 네! 보스. 일명 232라고 하는 현재 주가 높은 사냥꾼입니다. "
" 232? "
" 네! 현상범들은 그를 그렇게 부릅니다. 보기 힘든 여성 헌터이기도 합니다. "
" 여자? "
" 네! 그렇습니다. 보스! "
" 크흐흐흐... 여자라... "
재필의 웃음은 어이없다는 듯한 비웃음으로 꽉 차 있다. 그렇게 실소를 터트린 그의 표정이 다시 굳어진다.
" 언제부터 날 잡으려 한 거지? "
" 그... 그건 자세하지는 않지만 근래인 것 같습니다. 한 15일쯤... "
" 그럼 그걸 왜 이제야 말하는 건가? "
" 죄... 죄송합니다. 보스... 제 선에서 해결하려 했으나 모두 실패로 돌아가고 역으로 공격을 당했습니다. "
" 우리의 존재에 그런 당돌함을 보인 녀석들이 궁금하군! 정보라도 있나? "
담배 연기를 길게 내뿜는 재필의 눈동자가 아직 여유롭다.
" 네! 있습니다. 자료 코드 델타 20번으로 자료실에 공유해 놓았습니다. 확인해 보셨으면 합니다. "
" 다솜아 코드 연결해. "
" 알겠습니다. 보스. "
다솜은 허공에 손가락을 가져간다. 허공에 생기는 자판. 유리처럼 투명한 컴퓨터 자판에, 다솜은 제럴드가 말해준 코드를 입력시킨다.
순간, 컴컴해지는재필의 사무실.
재필의 뒤쪽에서 녹색의 빔이 보라색 벽면을 비춘다. 커다란 화면. 낡은 필름이 돌아가는 영화관을 연상케 하는 흑백화면. 흑백화면은 노이즈를 일으키다 컬러화면으로 바뀐다.
그 화면을 주시하던 재필은 눈동자가 흔들렸다. 표정 변화 하나 없던 그가 드디어 긴장하는 듯하다. 왜? 상희의 프로필이 등장했기 때문이다.
그 뒤에 건남의 프로필도. 두 명의 프로필이 재필을 움찔하게 만든다. 아무래도 10년 전의 기억이 뇌 속에 스멀스멀 피어나겠지.
명치대인과 다해의 프로필이 끝나자 화면이 꺼지고 사무실은 원래대로 돌아왔다. 아직 남은 시가를 재떨이에 비벼끄는 재필. 그가 의자에서 일어난다.
" 뭐지? 이년하고 이놈은 어떻게 사냥꾼이... "
제 아무리 감정 없는 재필이라 하더라도 인간 이긴 인간이나 보다. 움찔하는 것을 보면. 상기된 재필은 좀 전의 여유로움과는 전혀 다른 표정으로 제럴드를 내려보았다. 언성도 높아진다.
" 이런! 이 녀석들이라니... 이런 정보 말고 세부적인 내용은 없나? "
" 보스... 세부정보는 저희가 심어 놓은 요원들을 통해 알아볼 수 있습니다. 그 보다 제게 기회를 한 번 더 주십시오! 이놈들 제가 꼭 처리하겠습니다. "
" 할 수 있겠어! 네 힘으로... "
" 네! 부탁드립니다. "
목숨을 조아리듯 당찬 목소리다.
" 좋아. 단 성공하지 못하면 네 수명은 거기서 끝인 줄 알아. "
재필은 또 하나의 시가를 꺼내어 입에 문다. 자동으로 불을 붙이는 다솜이 조용히 말한다.
" 보스. 용이가 도착했나 봅니다. "
" 중요한시기에 이런 일이 생기다니... 조금만 있으면 우리의 연구가 완성되는 데 말이야... 아무튼 용이가 도착했으니 샘플실로 오라고 전해. "
" 네. 알겠습니다. "
다솜은 사무실을 조용히 나간다. 그녀의 뒤를 바라보던 재필은 턱을 괴며 무언가 생각하는 듯하다.
제럴드야 명치대인에게 당한 복수를 꿈꾸겠지...
아무튼 칙칙한 재필의 사무실은 너무나 고요하다. 꼭 폭풍전야의 무풍처럼.
긴! 괜스레 일 크게 만든게 누군데. "
" 얼레~ 형님! 나한테 다 떠넘기려 하시네. 형님이 기절만 안 했어도 그냥 쨌다구요! "
" 됐다. 이눔아! "
둘은그렇게투덕거리며 움직인다.
잠깐 상황을 정리하면 대충 그렇다. 성우와 건남은 언론의 와전된 보도를 피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명치대인이 그런 걸 생각했을까? 제럴드가 눈앞에 나타나자 과거의 생각이 먼저 떠올랐겠지. 아무튼명치대인에 의해 쑥대밭으로 변한 제럴드의 군대는 마들가리 행성의 정부 소속이니, 언론에 오르내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초토화된 수비군 하면서.
뉴스에 나오는 수비대를 반기지 않는 사람은 건남과 성우 말고도 재필과 제럴드 또한 똑같을 것이다. 수비군 장관급 인사가 재필의 조직과 연관이 있다는 것이 알려진다면, 좋을 건 하나도 없는 게 그들의 입장일 것이다. 이렇게 똑똑한 고양이 봤냐옹...
아무튼 이래저래 현재의 라구나 대원들은 숨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고, 준이를 소개해 준 성우는 무언가 이유가 있어서 건남과 명치대인을 이리로 보냈을 것이다.
나선형 계단이 끝나는 지점에 건남과 명치대인이 서자, 환한 백색의 조명이 켜진다. 눈앞에 보이는 덥수룩한 수염의 사내가 그들을 바라보며 서 있다.
까만 선글라스.
두꺼운 가죽점퍼.
다부진 어깨선.
밀짚모자.
선글라스를 벗으며 건남과 명치대인을 맞이하는 그가 준이었다.
" 안녕 하신가! 안녕 못하시겠지? "
" 당신이 준인가요? "
" 그렇지! 성우가 급하게 연락이 와서 자네들 이야기를 하더군. 재필을 잡는다고? "
" 네! 그렇습니다. "
긴장감이라고는 하나 없이 낡은 소파에 앉는 준이가 자신을 소개한다.
" 이리로 앉게나. 난 성우의 오랜 친구인 준이라 하네. 자네들 근황이야 텔레비전을 통해 알게 되었고. "
건남과 명치대인은 살짝 찢어진 준의 반대편 소파에 앉았다.
" 저희의 기사도 나왔습니까? "
" 아니 아직은... 조만간 나오겠지? 성우가 말하기론 이상하게 꼬였다고 하더만. "
" 꼬였다니요? "
준은 자신의 앞에 놓여있는 테이블 위의 담배를 주워들며 입에 문다.
" 한 대 필 텐가? "
건남은 준이 건네준 담배를 건네받으며 불을 붙이고, 명치대인은 거절한다는 듯 손을 절레절레 흔든다.
" 보기와 다르게 담배를 안 피우는 군. "
탁자에 담뱃갑을 내려 놓는 준은 느긋해 보인다.
" 아무래도 거짓 보도가 올라올 것 같다고 하는군. "
" 거짓 보도라뇨? "
" 성우의 말로는 그동안 있었던 작전에 23구역의 경찰이 엮여 있다는 이야기가 빠질 거라고 하는 모양이야. "
" 네? 그럼 저희는...? "
" 단독으로 죄 없는 수비군을 건드렸다고나 할까? "
건남은 멍하다. 이 얼토당토않은 이야기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준의 이야기는 한마디로 라구나 '엿.됐.다'하는 말이다. 명치대인이 그런 건남을 대신해 언성을높인다.
" 잠깐! 그럼 우리가 재필이 잡는 것을 정부에서 지원하지 않았다는 소리 아닙니까? "
담배 연기를 뿜으며 준이 말한다.
" 그렇게 되는 거겠지. 성우의 말로는... "
긴장한 건남이 질문한다.
" 어떤 이야기를 했습니까? "
" 경찰서 윗선에서 그렇게 결정했다고. 미안하다고 전해 달라는군. 자신의 힘으론 결정에 따를 수밖에 없다고 하면서 말이야. "
" 이런! 그래서 모든 통신을 다 차단했군요! "
명치대인이 분을 삼키며 말한다.
" 이런 말도 안 되는! 이해할 수가 없네. 그럼 뭣 하러 우릴 도운 거야! 이렇게 허망하게 배신할 거면. 정부가 미친것 아녀. 쳇! "
그렇게 명치대인이 말하며 발을 구르자 낡은 철 캐비닛이 삐거덕거린다. 그리고 무심한 정적이 흘렀다.
고민에 빠진 건남.
그런 그를 바라보는 준.
팔짱을 끼고 인상 쓰는 명치대인.
고민하던 건남이 준에게 입을 열었다.
" 성우형에게서 더 전달한 이야기는 없는 겁니까? "
" 참중요한 걸 깜빡할 뻔했어! "
건남은 준의 이야기에 집중한다.
" 선글라스 쓰게나! "
준은 그렇게 말하며 벗었던 선글라스를 쓴다. 건남도 자신의 힙쌕 안에서 교신용 선글라스를 꺼내어 귀에 걸친다.
" 지금 전송할 데이터를 확인해 보게. 자네가 성우에게 물어보았던 동광제약 회사에 대한 정보니. "
" 알겠습니다. "
준은 데이터를 건남에게 전송하고 건남은 전송한 데이터를 꼼꼼히 살펴본다.
내용은 이러했다. 제약회사인 동광제약은 주로 마취약이나 사람들의 희소병을 위주로 그에 맞는 약품을 개발하는 회사였다. 근래에 들어서 신설 부서가 만들어졌다는 이야기가 있었고, 그 부서의 공장은 철저한 보안상태를 유지하는 곳이라 데이터에 적혀 있었다.
성우의 추측으로는 이곳의 연구시설은 규모가 작고, 연구원 서너 명이 드나들었던 것으로 보아 그 사람 중 재필과 연관이 있을 것 같다는 추론이었다. 그 중, 용 최라는 연구원이 가장 의심스러웠다고 생각하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그럴 수밖에 제스를 연구하던 영사기 화면속의 이름이었는데, 건남은 이름이 용, 성은 최 씨인 연구원의 파일을 열어본다.
이름: 용 최
나이: 28세
직업: 연구원
특징: 연구원이라는 직업에 어울리지 않은 특수부대 장교 출신으로 약품이나 의학에 대한 교육 기관을 이수하지 않았음.
건남은 회사의 경영자들 또한 유심히 살펴본다. 그러나 의심스러운 인물은 보이지 않았다.
" 어때? 도움 되는 거라도 있나? "
" 글쎄요? 용이라는 사람이 재필과 연관이 있을 것 같아요. 영사기로 보았던 이름입니다. "
준은 소파에서 일어나며 자연스레 웃는다.
" 혹시 맥주라도 마실 텐가? "
" 아니요! 지금은... "
조그만 냉장고에서 병맥주를 꺼내는 준은 명치대인을 힐끗 바라본다.
"자네는? "
" 저도 마시지 않으렵니다. "
" 보기보다 여유가 없군. "
여유가 있을 리가 있나. 지금 수배 명단에올라갈 수도 있는 상황인데. 이 양반이 건남의 속을 알면 저런 소릴 하지 못할 텐데. 맥주를 돌려 따고 한 모금 마시며 준은 진지한 투로 말했다.
" 이봐... 당분간 이곳에서 숨어지내라고 성우가 단단히 부탁하더군. 어쩔 건가? "
건남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동굴을 연상케 하는 아치형 천장.
낡은 캐비닛.
준의 뒤로 보이는 그의 작업장.
도깨비 방망이 같이 생긴 철로 된 둔기.
" 이곳은 안전합니까? "
" 그럼 안전하지! 누군가 미행하지만 않았다면 자네들은 평생 여기서 살 수 있을 거야. "
" 어떻게 그렇게 자부하시죠? "
" 크큭... 내가 여기서 10년을 숨어 지냈거든. 허허허... "
명치대인이준의 말에 놀란다.
"10년이라고요? 1년도 아니고 2년도 아니고 10년! "
" 그래. 그만큼은 되었지. 정확한 건 아니지만. "
준은 맥주를 쭉 들이킨다. 그런 준에게 의아한 듯 질문하는 건남.
" 무슨 이유로 그리 오랜 세월을 이곳에서 보냈습니까? "
" 뭐... 더 있겠나? 현상범이니까 그러지. 허허허... "
건남과 명치대인은 흠칫 놀란다. 이게 무슨 소린가? 현상범 사냥꾼을 현상범에게 부탁한 성우? 그럼 성우는 경찰이면서 준이란 사람을 잡지 않았다는 건데. 뭐지? 둘의 관계는? 그 의문점을 건남이 물어보았다.
" 성우형과 관계가 어떻게 되기에 현상범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당신을 숨겨 주는 것입니까? "
" 별거 없어... 성우는 내 후배이자 파트너였으니. "
건남이 급작스레 준을 뚫어져라 쳐다본다. 그리곤...
" 그럼... 혹시? "
" 이제야 생각이 나는가 보군! "
흐뭇한 미소를 지으는 준이다.
" 다래의 사건을 맡았던! 그... "
" 맞아! "
다래의 사건! 건남의 10년 전 애인이 죽었던 그 사건의 담당 경찰관이 준이란 이야기다.
" 자네도 내가 한 번 만났던 거로 기억하는데. 그때 당시 다래의 애인이었지아마도... 전 애인이라 말해야 하나? 아무튼 수사할 때 자네를만났었지. "
" 이제야 기억이 납니다. "
" 너무 오래된 일이라... 허허허... "
준은 또다시 냉장고의 문을 연다. 손에든 병 맥주. 돌려 따는 병 뚜껑. 천장으로 올린 고개. 벌컥벌컥 맥주를 들이켜는 준. 꿈틀거리는 목울대.
" 난 그 사건으로 인해 인생이 완전히 바뀌었지. 도망자로 전락해 버렸으니. 크크크큭. "
"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그 사건 이후로? "
" 결론만 말하지... 재필이 나에게 죄를 만들어 주더군. "
명치대인이 궁금해한다.
" 죄를 만들어 주다니요? 누명이라도 씌운 겁니까? "
" 훗... 그럼... 그 자식은 없는 사건도 만들어 버리는 녀석이니. 자신에게 걸림돌이 된다면 이 행성의 수상도 죽일 녀석이야. 흐흐흐... "
헛 웃음을 지으며 준은 맥주를 조용히 마신다.
" 다래의 사건하고도연관이 있는 겁니까? 제 정보로는 당신에 대한 이야기는 하나도 없었습니다. "
" 흠~ 직접적인 연관은 아니지. 다만, 그로 인해 내가 재필을 쫓기 시작했으니 재필의 입장에선 나라는 존재가 눈엣가시 같았을 거야. 아무튼 지난 과거는 과거고 어쩔 건가? 이곳에 머물 건가? "
" 네...? 그래야 할 겁니다. 저희 일행이 합류하면 그때 다시 이야기해 드리겠습니다. " " 그러게나! 바쁠 거 없으니. 누추해 보여도 보안장비들은 최상급으로 갖추어 놓았기 때문에 조용히만 있으면 안전할 걸세. "
뭐? 준의 말로는 그렇다 하지만 내가 보는 절벽 안 그의 아지트는 그냥 지하 벙커 수준으로밖에 보이질 않는다. 눈에 띄는 장비들도 안 보일뿐더러... 허술해 보이는 이곳이 과연 안전할까?
순간, 상희의 교신이 선글라스를 통해 흘러나온다.
" 건남옵 어디야? "
" 어디쯤 왔는데? "
" 지점 도착 시각 2분 전이야. "
둘의 교신이 시작되자 절벽안은 정전이 된 듯 모든 불빛이 꺼진다. 당황해하는 건남과 명치대인.
" 뭐... 뭐지? "
잠깐의 정전이 끝나자 암흑에 청록색 야광이 켜지며 조금은 환해지고, 모든 벽면은 아주 큰 화면으로 변한다. 건남과 명치대인은 입이 떡하고 벌어진다.
" 이...이게 뭐죠? "
" 우와! 이럴 수가! "
안 놀라면 사람이 아니지! 나도 놀라겠다.
청록색으로 변한 절벽 안.
모든 벽면은 투명한 유리관으로 프레임이 나누어지고 그 프레임 안으로 밖의 절경이 한눈에 펼쳐진다. 영화관도 이런 영화관이 없을 것이다. 화면 속에는 밖의 상황이 고스란히 보인다.
드넓은 사막.
멀리 보이는 라구나 함정.
점점 다가오는 라구나.
이러니 투명화로 다가왔었던 buzz 함정을 쉽게 발견했던 거군. 준을 의심했던 난 왜이리 민망하냐옹~ 아무튼 건남과 명치대인, 준의 눈에 점점 다가오는 라구나 호가 비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