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1화 〉41-억울함
- 3구역 절벽 안. 준의 아지트 -
' 이곳은 사냥꾼들이 테러를 저지른 현장입니다. 부대장은 무사히 탈출한 것으로 보입니다만, 폐허가 된 이곳에는 며칠 전까지만 하더라도 부상자와 죽음을 맞이한 수비대 병사들의 시체가 부대에 널브러져있었습니다. 왜 그들은 이런 만행을 저질렀을까요? 관계자의 말을 들어 보겠습니다. '
각자 편한 자세로 디지털 화면을 바라보는 라구나 대원들과 준 그리고 사복 경찰들은 무덤덤하다. 사건 발생 3일째. 언론에서 떠드는 것은 이랬다. 라구나 사냥꾼들이 23구역 비리 경찰관의 도움으로 정부에 도전장을 내밀었다나. 여기서 비리 경찰관이 성우와 근식, 그리고 뉴스를 바라보는 사복경찰들이다. 또 한 가지는 라구나 대원들이 왜 그러는지, 무엇을 정부에 요구하려 하는 지 모르겠다고 말이다. 사라진 사냥꾼들 그러면서...
텔레비젼에서 아나운서가 이런 이야기를 주저리 떠들고 있다. 화면에 라구나 식솔들의 사진이 공개되면서 말이다. 얼레! 현상금도 큼지막 하게 나온다. 무려 만 크랑이 넘는다. 한 사람 앞에 대충 3000 크랑씩이니, 영상에 buzz 함정의 모습도 보인다. 부대 내에 있는 보안 카메라에 찍혔나 보다. 화질이 구리다. 아무튼 buzz 식솔까지 하면 현상금 금액이 더욱 커진다.
' 화면에 잡힌 영상은 초특급 중형함정이 부대를 초토화하는 장면입니다. 이런 무기를 들고 수비대를 테러했다는 것은 정부에 대한 반역을 꾀하겠다는 의도일까요? 아니면 정부에 돈을 원하는 걸까요? 정부는 상희 사냥꾼과 건남,그리고 다해, 명치대인의 다음 행동을 어떻게 할지에 대한 고민으로 ... '
준이 오래된 디지털 TV를 꺼버린다. 그와 동시에 한숨을 쉬는 절벽 안의 사람들.
이런 이런 이게 무슨 일이람. 재필과 제럴드가 연관되었다는 이야기는 하나도 나오지 않았다. 건남의 고뇌하는 표정이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을 연상케 한다. 쫄지에 현상범이 되어버린 상희가 건남과는 다르게 얼굴 표정이 붉으락푸르락한다.
" 아놔! 미쳐블! 이게 어떻게 된 거야 말 좀 해봐! "
건남은 그냥 생각하는 동상이다.
" 삼춘. 이제 어떠케! "
" 오예! 우리 TV에도 나고 유명해졌는데 히히히히... "
' 퍽! '
상희가 웃고 있는 명치대인의 뒤통수를 때린다.
삐뚤어진 뿔테 안경.
" 야 이년아! 지금 웃을 때야! "
바로 꼬리 내리는 명치대인이다.
" 넵. 누님! "
그들의 행동에 준이 조용히 입을 뗀다.
" 건남군. 이제 어쩔 건가? 재필의 조직에서 이미 손을 쓴 것 같은데... "
" 아~ 모르겠습니다. "
한숨 소리가 준의 아지트에 울려 퍼지는 건 기분 탓일 것이다. 아무튼 건남은 계속 생각하는 동상이었다. 로댕이 건남이를 보고 동상을 만든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잠시 내 머리에 스쳤다아옹~
" 그렇다고 무작정 이러고 있을 수는 없지 않겠는가? "
건남에게 물었던 준의 질문에 상희가 대답하듯 말한다.
" 건남옵. 혹시 재필 관련알아낸 거라도 있어? 그렇게 웅크려 있지 말고 뭐라도 말해봐! 이렇게 당하고 있을 거야! "
" 상희야... 조금만 기다려 보자! 아직 하나 남은 희망이 있긴 있거든... "
" 뭐? "
" 너희가 타고 온 라구나 함정에... "
" 뭔데! 결론만 말해 꾸물거리지 말고! 아~ 미쳐블! "
건남은 무언가 말하려다 다시 생각하는 동상으로 변한다.
이봐 건남! 내가 더 미쳐블! 아무튼 재필은 확실히 언론을 장악한 것 같았다. 그가 직접 손을 썼든, 그의 수하가 손을 썼든 거짓 기사가 난무하고 있는 걸 보면.
" 이런 정부 쓰레기 같은 새끼들 내 진작 공짜로 밥주고, 기름 넣어주고 할 때부터 알아봤어야 했어! 나쁜 쌔리들... "
상희가 열불이 나는지 혼자서 종알종알거린다. 성격상 저러지 않으면 아마 라구나 식솔들 여러 번 잡았을 거다. 파리 잡듯이... 이럴 때 성우라도 있으면 정보라도 빼 올 텐데.
웃긴 건, 명치대인은 스텝을 밟고 있다. 역시 천진난만, 숭고한 영혼이다.
다해는? 승규 사진을 보며 눈물이 그렁그렁거린다.
" 엉엉엉 승규얌! 보고 시퍼! 너없는 공간에 이렇게 산다는 것이 얼마나 부질없는 짓이니... 엉엉엉 "
아! 내 집사 또 미친뇬으로 둔갑한다. 그렇게 흥분했던 상희는... 게임 고글을 눈에 쓴다. 야! 이년아! 너 아까 왜 화냈던 거니! 건남은 그냥 생각하는 동상이다아옹.
' 이야옹~ '
동상이었던 건남이 준에게 말한다. 자슥 입이 근질거렸을 거다. 몇 시간째 저러고 있었으니.
" 준이형. "
얼레. 언제 형으로 호칭이 변했지? 굉장히 친숙한 목소리었다.
" 왜 그러나? "
" 이 아지트 정말 들키지 않았습니까? "
" 그럼! 보안 철저하지. 그렇다고 내가 먼저 설레발 치며 돌아다닌 적도 없고, 이곳을 지나다니는 사람들도 적으니. "
" 혹시 형님... "
오~ 이제 님까지 붙인다. 무언가 냄새가 나지 않는가? 준에게 부탁할 필이다.
" 왜? "
" 이곳을 미끼로 삼으면 안 되겠습니까? "
" 미끼라니? 설마... "
그래 '미끼' 이곳으로 재필을 불러오자는 것 같다.
" 재필이든 그의 부하든, 정부든 뭔가 아는 녀석을 잡아야 일이 풀리지 않겠습니까? "
" 그래서? 이곳을 정부나 재필에게 알려 주자는 건가? "
고요한 준의 아지트. 건남은 조용히, 아무런 말없이 고개를 끄덕인다.
" 울 형님. 미치긴 단단히 미쳤어! 이젠 정부하고도 싸우려 하다니. "
" 명치대인옵. 이번엔 난 건남 삼춘 의견에 따를래! 울 승규를 다시 만날 수만 있다면. "
게임 고글을 눈에서 벗는 상희는... 그냥 진중한 표정이다.
" 에이씨! 또 죽었네! "
그리곤 다시 고글을 쓴다. 게임하다 죽었나 보다. 아놔~ 열성 게임유저 상희씨 정신차려라아옹.
" 준이 형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
" 허허허... 그 부탁 들어줘야 하지 않을까? 내 인생의 절반을 이따위로 만들어 버린 놈을 잡으려면! "
오~급나게 쿨한 준이다.
" 다해야! "
" 네. 삼춘. "
" 준비하자! "
뭘 준비한다는 건지 궁금하다아옹. 생각해 보니 건남의 작전은 늘 이렇다. 쳐들어가기 보다는 자신이 있는 곳으로 적을 유인한다는 것, 그래서 다해가 옥상녀로 낙인찍히지 않았었나. 아무튼, 이번에는 적을 어떻게 끌어들일지 매우 궁금하다. 안 궁금하면 말고.
- 15구역. 공작새 -
명택의 공작새 안은 어둡다. 그 어둠을 조금이나마 밝게 만드는 건 낡은 형광등이다. 그 형광등의 빛이 명택의 주름을 환하게 비추고 있다.
" 이봐 영감! 건남이 있는 곳을 진짜 모른다는 거야? "
" 그렇다고 몇 번 말해야 알아듣겠나! "
뒷짐을 지고 있는 명택은 노인의 눈이라고 보기엔 너무 맑다.
" 훗! 자네가 우리 조직의 일원이 아니었으면 이미 고문당해서 불었을 텐데 말이지! "
잠깐? 이 젊은 녀석의 말버릇이 참 싹수도 없다. 검은 공간에서 싹수없는 젊은 녀석이 뚜벅거리며 명택에게 다가가자 얼굴이 형광등에 비친다.
재필의 옆에 있던 그 친구다. 용이라는... 나 히리는 놀랐다. 용이 '우리 조직의 일원.' 하고 말했다는 것은 명택 또한 재필의 조직원이란 말인가? 뭐지? 건남의 스승이자 함께 일했던 특수무기 장인이 재필 조직원이라니. 이런 황당한 일이 있나.
" 내가 당신들과 거래하면서 속인 적 있나? "
" 노친네! 그거와는 다른 것 같은데... 뒷조사 해보니 며칠 전 건남이 이곳을 찾아왔었고... 우리를 잡으려 하는 녀석과 친분이 있는 당신을 그냥 놔둘 수 있겠나? "
" 허허허... 내가 그 녀석이 재필을 잡는다는 것을 어떻게 알겠는가? 건남은 내게 그냥 손님일 뿐이네. "
" 내가 그 말을 순순히 믿겠나? "
20대 싸가지가 80대처럼 보이는 할아버지에게 말 하는 꼬락서니 하고는... 쯧쯧쯧... 이놈의 세상이 어떻게 되려고 에효~
' 이야옹~ '
상황은 이런 것 같다. 재필은 건남이 자신을 붙잡기 위해 무엇을 하고 다녔는지 뒷조사를 했을 테고, 그 와중에 건남과 명택이 만났다는 것을 알고는 용이를 공작새로 보냈을 것이다. 건남을 찾기 위해서...
하지만 명택은 숨기고 있다. 물론 건남이 지금 어디 있는지 모르겠지만, 건남과의 과거사를 전혀 말하지 않는 것을 보면.
" 이봐 명택! "
어린것이 자꾸 반말하니까 내가 더 성질이 돈다.
" 왜 그러나? "
" 우리 조직을 배반하지 말게! 자네 말을 우선은 믿어 보지. 거짓이면 목숨은 보장 못 하니! "
" 허허허... 내 살날이 몇 년이나 남았다고... "
" 그럼 난 이만 가 볼 테니 그놈에게 연락 오면 바로 우리에게 넘기게? 알았나? "
" 그러지. 참! 제스 실험은 끝났나? "
용이는 명택을 무시한 채 아무 말없이 어둠 속으로 사라진다.
암흑.
껌벅거리는 형광등.
그 사이로 주름진 명택이 허탈하게 웃으며 혼잣말을 한다.
" 올 게 왔군... 올 게 온 거야. "
그런 명택을 뒤로하고 용은 15구역 하늘을 자신의 비행정과 함께 날고 있다. 그리고 재필과 연락한다.
" 보스. 들리십니까? "
" 그래. 잘들리지. 명택은 만나봤나? "
" 지금 만나고 돌아가는 길입니다. "
" 어때 그 능구렁이 노인네에게 얻은 거라도 있나? "
" 아니요. 아시겠지만, 뒤가 구립니다. 이미 조사한 결과로는 둘은 예전에 함께 일한 거로 알고 있는데 그냥 손님이라는 말로 넘어가려 합니다. 손 볼까요? "
" 크크큭... 이 노인네가 줄을 잘못 서도 단단히 잘못 섰군! 처리해. 그래도 제스 양성에 한 몫한 사람이라 목숨은 살려주려 했건만. 아까운 노인네. "
뭐지? 제스 양성에 도움을 주었다고! 명택 서라는 이름으로 이 행성의 수상에게 공훈상까지 받았던 명예로운 사람이? 아직 이 히리가 모르는 것이 너무나 많다아옹.
용이가 사라지고 명택은 껌벅거리는 형광등을 무심코 바라본다. 그리고 혼잣말.
" 음~ 내 목숨도 저 형광등처럼 위태롭구나... 허허허 오래 살긴 살았지... "
그렇게 말한 명택은 해야 할 일이 있다는 듯 작업장 선반 위에 있는 통신 장비에 손을 가져 간다.
낡은 컴퓨터.
디지털 화면에 자판이 달린 데스크탑이라 해야하나?
아무튼 몇 년 전 물품인지 모르겠다. 너무 오래된 골동품이다. 명택은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보내고 엔터를 친다.
순간, 공작새의 간판을 부수고 들어오는 커다란 미사일.
그리고 굉음.
' 콰광. 쾅! 쾅... 펑... 펑...펑! '
공작새가 화염으로 휩싸인다.
두 눈을 스르륵 감는 명택과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