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48화 〉47-회상중 (48/179)



〈 48화 〉47-회상중


- 10년 전 미용실 앞 -

" 용아! 시작하자! "

" 네 형님! "

어린 용이는 나이에 맞지 않게 노안이었다. 그가 학교도 다니지 않고 떠돌이 가출 생활을 하며 지낸지 2년째 되는 날, 용이는 재필을 만났다.

지구의 나이로 보면 용이는 미성년자였지만 마들가리 행성에서는 성인이었던 그는 또래의 아이들보다 많이 늙어 보였다. 재필과 동년배라 보아도 될 정도였다. 아무튼 용이는 상희의 미용실로 늠름하게 향했다.

그가 들어가자 재필은 어린 다솜에게 말했다.

" 네가 해야  일이 무언지 알겠지? "

재필의 비행정에 앉아 있는 소녀 다솜은 미용실로 들어간 용이만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용이 보다 한  어린 그녀는 수줍어했다. 아니 모든 것이 낯설었다. 유치원에 다니는 아이처럼 순진무구해 보였다.

고개를 끄덕인 다솜에게 머리를 쓰다듬고 재필은 비행정에서 내렸다.

그럼 다녀올 테니 쉬고 있어! "

문을 닫고 내린 재필을 멍하니 주시하는 다솜이었다.

회색 슈트를 입고 미용실 의자에 앉은 용이는 미용사에게 무례하게 행동했다. 철저한 계산이었다.

 여자한테 머리 맡길 건데  안 된다는 거야? "

까칠하게 말하는 그에게 미용사가 우물쭈물 대답했다.

아... 그게... 저 아이는 아직 수습 기간이라 손님의 머리를 만질 수... "

말을 막는 용이었다.

왜? 안 된다는 거야 저 여자는 미용사 아니야... 잘 못 깎아도 좋으니까 저 여자가 깎게 하래도. 말귀를 처먹었나! "

 사이 재필이 미용실 문을 열고 들어왔다. 그리고는 자신의 지정 미용사를 찾았다. 조용히 용의 행동을 관찰하며 미용 의자에 앉았다.

용이가 미용실 스텝이었던 상희에게 머리를 자르겠다고 진상을 부리자, 원장이 조용히 상희를 불러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결국, 상희는 용이가 있는 곳으로 다가왔다. 상희는 용의 머리카락을 자르기시작했다. 용이는 최선을 다해 연기했다.

고무적이고 느끼한 눈빛.

입가에 축축히 흐르는 미소.

천으로 가려진 사타구니를 긁어 내리는 손.

상희는 화들짝 놀랬다.

순간 용이는 자신의 손으로 상희의 손을 잡았다. 그리고 그가 속삭인다.

" 오늘 나와 함께... 어때? "

상희는 구역질을 하고 싶었다.

" 소... 손님. 더 당신의 머리카락을 자르기 싫습니다. "

용의 야릇했던 눈빛이 180°바뀌었다. 목소리 또한...

" 뭐! 이런 썅년을 봤나! 어디 손님을 무시해! "

미용실 의자에서 용이가 일어서며 상희의 얼굴에 싸대기를 날렸다. 주저앉은 상희는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순간 놀래는 직원들 사이로 누군가 뛰어왔고, 용의 면상을 주먹으로 후려쳤다. 강한 펀치에 그대로 용이는 고꾸라졌다.

용이는 한방에 기절한척했다. 그를 때린건, 용이 뒤에 들어왔던 재필이었다.

은색 머리의 귀걸이 손님이었던, 밀리터리 바지에 카키색 티를 입었던 재필.

재필이 상희를 부축하며 상냥한 저음으로 말했다.

" 괜찮으시죠? "



- 다시 현재 -



그때를 기억하던 재필의 회상이 사라질 무렵 자욱했던 담배 연기도 모두 흩어졌다.

" 용아! "

" 네! 보스. "

우리가 그땐 왜 그렇게 상희에게 다가갔는지 기억하니? "

" 별거 있었습니까? 그냥 상희에게 보스를 믿게 하려는 의도였으니까요. "

" 그냥 힘으로 눌러 버려도 되는 걸 그런 유치한 짓으로 저년의 믿음을 사려 했는지... "

무표정한 다솜이 조용히 입을 뗀다.

" 보스. 제가 알기로는 그때 힘만으로는 해결할  있는 문제가 아니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

" 그랬었나? "

상희의 난소에서 나오는 분비물이 저희는 필요했고 그렇기에 시간을 두고 접근했던 걸로 기억합니다. "

" 맞아! 제스 양성에 필요했던 중요한 물건이었지 그땐 몰랐지만 말이야. "

" 상희가 마들가리 행성에서  안 되는 존재라는 것을 그녀 자신조차도 모르는  다행이란 생각이 듭니다. 보스. "

" 하기야 그때 당시엔  또한 왜 그게 필요한지 모르는 상태로 일을 했으니. 참 미련 했었지... "

" OEN과의 접촉이 있었던 이후였었죠. "

" 훗. 그래 이렇게  만들어 놓은 그 젠장할 녀석... 하기야 그놈의 도움이 없었으면 내가  자리에  수도 없었을 거야. 그 일이 아니었음 아직도 중간 보스로 누군가의 수족 노릇이나 하고 있었겠지. "

" 보스. 아무튼 지금 이렇게 된 거 상희를 거두어 들이죠. 더욱 더 많은 제스 생산과 좀  강한 제스를 만들기 위해선... "

다솜을 바라보던 재필의 고개가 서서히 용이에게 돌아간다.

" 용이  어떻게 생각하냐? "

" 글쎄요. 보스가 행하는 일이라면 전 무조건 따를 뿐입니다. 이쪽 분야는 아는 것도 없을뿐더러 알고 싶지도 않고요. "

" 그래... 음... 우선은 제럴드부터 사살해. "

" 알겠습니다. 보스. "

용이는 재필의 말을 실행한다. 보라색 막대기를 가슴팍까지 올려 빨간 버튼을 엄지로 누른다.

" 완료했습니다. 보스. "

용이가 무덤덤하게,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막대기를 자신의 주머니에 집어넣는다.



- 라구나 함정 안 -



라구나호는 준의 아지트 절벽 위에 정박한 상태다. 라구나 식솔들과 명치대인이 제스에게서 구출해온 용선이 한자리에 모여 앉았다.

제럴드를 사정없이 두들겨 팼던 상희는 언제 그랬냐는  조용히 자신의 자리에 앉아 있다.

" 아놔~ 너무 힘줘서 때렸더니 손이 얼얼하네. "

" 상희  땜에 제럴드에게 알아낸 게 없잖아. 에효~"

" 건남아! 넌 말할 자격 없다. 날 이런데 끌어 들이고 도우러도 안 오다니. "

" 에이~ 형님이 어떤 분인데... 그런거에 돌아가실 분이면 부르지도 않았을 거예요. "

말하는 거 하고는 그러다 나 죽었으면? "

" 어쩔 수 없죠. 남긴 유산으로 장례식은 화려하게 해 드릴 거예요. "

" 나 왜 이런 놈을 도와주러 온 거냐! 젠장! "

스텝을 밟고 있는 명치대인이 건남과 용선의 대화에 끼어든다.

" 용선형. 그러고 보니까 형  알씨카 비싸 보이던데 아깝지 않으세요? "

" 이제 너까지 속을 긁는 구나! "

" 긁다니요. 걱정해 드리는 겁니다요. "

대화를 하면서도 춤을 추는 명치대인의 말에는 진정성이라고는 하나도 없었다.

" 그래요. 용선삼춘. 그 알씨카 첨단 장비로 도배한 것으로 보였는데... 무기들도 장난 아니고요. 내 2륜 비행정보다 비싸 보이더라고요? 아닌가? "

다해가 갸우뚱거린다.

그래 너도 내 속을... "

용선이 배를 쓸어내리며 말을 이었다.

" 아무튼 이번 일 끝나면 다 청구할 거니까 변상할 준비하고 있어! "

" 형! 농담 한 번 진하게 하십니다. "

" 농담 아니거든! 내 초특급 울트라  왕  고퀄리티 프리미엄 알씨카를  지경으로 만든 것에 보답은 받아야 할 거 아냐! "

" 형님도 참 그건 재필 잡으면 그놈한테 청구하세요. 그놈이 원흉이니! "

" 건남이 이 자식! 점점 잘 빠져나간다. "

" 재필이 잡고 나면 다 해결될 거예요. "

히죽거리는 건남을 용선은 어처구니없다는 듯 바라보며 고개를 흔든다.

그나저나 제럴드가 죽었는지도 모른 채, 라구나 식솔들과 용선은 떠들고 있다. 나라도 알려 줘야 하는 데 인간의 말을 할  알아야 눈치라도 주지. 이야옹~

그렇게 그들이 떠드는 동안 기절했던 제럴드는 영원히 잠들었다.

무음 폭파.

라구나 엔진실에 만들어진 철장.

 안에 포박당해 기절한 제럴드.

' 푹. '

폭발음은 크게 울리지 않았다. 그릭고 그의 몸속에 있는 폭탄이 터졌다. 제럴드가 이곳으로 상희를 잡으러 오기 전, 재필이 심어 놓았던 인체용 자살 폭탄.

자살 폭탄이기는 했으나 리모컨이 따로 있었다. 누군가 컨트롤 하여 죽일 수도 있는 다용도 소형 폭탄이었다.

주먹만 한 크기로 제럴드의 배가 뚫렸다.

흥건하게 라구나의 엔진실 바닥을 그의 피가 물들여 간다. 이렇게 죽다니... 건남은 무슨 수로 재필을 찾냐옹~

그들, 라구나 식솔들이 떠들고 있을 때, 제럴드가 죽었는지도 모르고 응석 부리듯 용선이 푸념하고 있을 때, 아리의 음성이 들렸다.

" 라구나호에 누군가 다가옵니다. 경계 모드를 작동시킬까요? "

건남과 상희가 모니터를 바라본다.

준이 자신의 아지트에서 절벽 위로 올라오는 모습이 화면에 보인다.

" 아니! 출입문 개방해. 그리고 이름은 준. 얼굴 인식시키고 다음부터는 접근하면 경계 풀고 알림으로만 알려 줘. "

" 알겠습니다. 주인님. "

상희의 지시에 따르는 아리는 준이 라구나 호에 다가오자, 엔진실 밑에 있는 문을 연다.

준은 피우던 담배를 손가락으로 튕겨내며 라구나에 오른다. 그가 탑승하고 철창에 갇힌 제럴드를 확인하고는 의아하게 고개를 숙인다.

" 뭐지 죽은 건가? "

철장 밑으로 흐르는 검붉은 피를 손가락으로 매만진다.

풀린 제럴드의 동공.

그를 바라보는 준.

폭탄? 자살한 건가? "

엔진실 스피커에서 건남의 목소리가 들린다.

" 형 들어오세요. "

스피커를 바라보는 준.

" 이봐! 철창에 갇힌 이 녀석 죽었는데. 왜 데리고 온 거야? 현상범이야? "

" 네? 죽... 죽었다고요? "

" 잠깐 살펴봤는데  안에서 폭탄이 터진 것 같아. "

아... 알았어요. 형 기다리세요. 제가 내려갈게요! "

아이고 이제야 확인하다니 참으로 둔한 건남과 그의 식솔들이다아옹~

이 히리가 또 살려야 하나? 적도 살려내야 하는 내 처지가 참 싫다아옹~ 또 며칠 식음을 전폐해야 하는 날이 오겠지. 니미럴. 명치대인 흉내 내 보았다아옹~

건남은 무기 조종석에서 스프링이 튕겨 나가  헐레벌떡 엔진실로 이동하고 상희와 용선, 다해, 승규가 순차적으로 그의 뒤를 따라간다.

명치대인은? 그냥 이어폰 귀에 꽂고 흥얼거리며 춤추고 있다. 심각함을 전혀 못 느끼는지, 울 순박한 명치대인. 그래 어차피 저녀석 춤추는  구경하는 것보다는 죽은 제럴드나 보러가야겠다아옹~ 나 또한 다해의 뒤를 따라 향했다.

엔진실에도착한 건남이 나선형 계단을 내려가며 쓰러져 있는 제럴드를 쳐다본다. 이윽고 철창문의 자물쇠를 재빠르게 푼다. 죽은 제럴드를 살핀 건남이 다해를 부른다.

다해야! 소생 준비해! "

" 뭐에요? 왜 죽은 거예요? "

" 자살 폭탄이야. 내부 장기가 모두 파열됐어! "

아차차! 내가  이렇게 놀라냐 하면... 다해가 말 할 것이다.

" 삼춘... 내부파열로 사망했다면 힘들 것 같아요. "

아~ "

건남이 탄식하며 머리카락을 쥐어짠다. 내 아무리 일급 치유술을 행하지만, 이건 어렵다아옹~

날아간 장기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는데 어떻게 이어 붙이냐아옹~

정말 재필 잡기 힘들다아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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