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9화 〉48-수감자
- 23구역 교도소 -
누명을 쓴 성우는 교도소로 이송되었다. 물론 그의 부하인 근식도 함께. 취조실에서 맞은 몸. 군데군데 퍼런 멍 자국이 남아 있었다. 점심 식사 시간을 알리는 경보음과 함께 독실을 사용하는 성우의 감방에 자동으로 문이 열린다.
스르륵...
그리고 목에 묶어 놓은 족쇄에 점멸등이 파랗게 들어오며 센서가 말을 한다.
" 수감자 번호 1252. 활동 반경 카메라가 발동합니다. "
이곳의 생활을 감시하는 카메라가 작동하기 시작했다. 자살 방지 목적으로 수감자의 목에 걸린 카메라. 그 외에도 교도소 내에서는 여러 가지 용도로 활용되고 있었다. 폭행 및 탈출을 방지하는 유용한 족쇄였다. 그로 인해 수감자의 사생활은 그대로 노출되었다. 자신의 감방과 화장실을 제외한 모든 구역에서 카메라는 자동으로 그들을 감시하고 있었다.
흰색 수감복을 입은 성우는 급식소로 향한다.
터벅터벅.
어느 순간 그의 옆에서 걷고 있는 근식.
근식 또한 흰색 수감복을 입고 목에는 족쇄가 걸려있다.
" 수사관님. 아침에는 보이지 않던데 또 끌려가셨던 겁니까? "
성우는 고개를 끄덕인다. 아무런 말없이 걷고 있는 그.
" 이건 뭐 억울해서... "
묵묵하게 성우는 계속 걷는다.
" 이번엔 뭐라 하면서 다그쳤습니까? "
여전히 성우는 식당으로 향할 뿐이었다. 근식도 지쳤는지 그냥 그의 뒤를 밟는다.
성우와 근식은 식판에 담은 음식을 들고 수감자들이 득실거리는 식탁에 앉았다. 넓은 식탁에는 조용히 음식을 먹는 죄인들이 먼저 앉아 있었다.
테이블에 쓰인 숫자 12. 테이블 번호. 12번 테이블은 6명이 앉아 먹을 수있었다. 이미 두 명이 목을 수그리며 식사를 했다. 그들의 정면에 성우와 근식이 자리 잡는다.
인원수에 비해 교도소 식당은 매우 조용하다. 이것도 아마 목에 걸린 족쇄의 영향이 클 것이다. 목소리가 크면 자동으로 교도관들에게 자신의 위치가 노출되었다. 조용한 식당은 말하는 사람의 소음보다도 밥을 목에 넘기는 소리가 더 크게 들린다.
성우는 숟가락을 들어 음식을 먹기 시작한다. 근식도 성우의 눈치를 보며 깨작인다. 그때, 앞에서 음식을 먹던 수감자 뒤로 덩치 세 명이 식판을 공손히 든 채 성우의 앞에 선다. 고개를 천천히 드는 성우와 근식. 얼굴은 미묘하게 구겨졌다.
" 아따 이게 누구신겨? 우리 성우 나으리 아닌겨? 워메 무쟈게 반가븐거. "
가운데 있던 제소자가 그렇게 말하며, 식사를 하는 두 수감자에게 일어나라고 압박하는 제스처를 취하자, 둘은 먹고 있던 식판을 들고 허둥지둥 자릴 이동한다. 그 둘이 사라지자 세 명의 덩치가 12번 테이블에 합석한다.
" 어쩌다 귀하신 몸이 이런 곳까지 오게 된겨? 우리처럼 억울하게 누명이라도 쓴겨? "
그의 농담 같지 않은 농락에 양옆의 덩치가 실소를 남긴다. 성우는 무시한 채 식사를 한다. 옆에 있는 근식의 눈은 성우와 덩치를 번갈아 가며 왔다 갔다 한다.
" 이봐. 성우. "
성우가 먹던 숟가락을 탁자에 놓는다.
" 신고식 해야 하지 않겠어? 너 때문에 여기서 생활한지도 어언 3년이 넘어가는데... "
장난기 가득했던 덩치의 음성은 진지하게 변했다.
" 이봐. 조용히 식사나 하시지. "
성우의 중저음이 묵직하게 들린다.
" 훗... 아직도 여기가 밖인 줄 착각하는 것 같은데. 니 새끼만 아니였으면 이곳에 난 있지도 않았어. "
소곤거리며 말하는 덩치가 의자에서 엉덩이를 떼며, 면상을 성우의 얼굴로 천천히 가져간다. 침도 튀기지 않는 속삭임.
" 아무리 이곳의 생활이 안전지대라 하지만 내 니새끼의 머리부터 발끝까지 하나하나 못을 박을 거야. 지긋함을 그렇게 하면서 무료함을 달래야 하지 않겠어. 흐흐흐... 여기 있을 동안 널 괴롭히는 재미로 여가를 보낼 테니까. "
떡대는 오른손에 쥐고 있던 모래를 어느샌가 성우의 식판에 담고 있었다. 그의 손에서 흘러내리는 모래가 식판의 밥알과 섞인다. 양옆에 있는 덩치는 뭐가 좋은지 서로 마주 보며 낄낄거린다.
" 이 자식들이 보자 보자 하니까! "
목소리를 키운 건 근식이었다.
" 너희! 형 더 늘리고 싶어! 어디서 협박질이야! 우리가 누군지나 알고 까부는 거야! "
" 아이고 무서비라. 그럼요 잘 알지요. 땅꼬마 경찰 양반! 아니지 이제는 후배님이라 불러야 하나! 우리랑 똑같은 범죄자니. 어디서 후배 녀석이 선배한테 대들어. "
" 이 새끼가 너희 수사관님한테 사과 못 해! 잠깐 누명을 써서 이곳에 있을 뿐이야 조만간 나갈거라고. 나가면 그땐 국물도 없을 줄 알아! "
" 어이쿠야! 그러셔요? 여기 누명으로 들어오지 않은 범죄자도 있답니까? 저도 니들이 오명 씌워서 보낸 거 아냐! 이 머저리 새꺄. "
" 뭐! 이 자식이 어디서... "
주먹을 꽉 쥐고 덤비려는 근식의 가슴에 손바닥을 가져가는 성우.
" 그만. 그만해. 자네는 그만 앉아 있어. "
근식은 덩치를 흘기며 분이 풀리지 않은 상태로 의자에 털썩 주저앉는다.
" 테이그. 이제 조용히 사라지지. "
덩치 이름이 테이그인가 보다. 3년 전 성우가 잡아들인 범죄자.
" 그래... 이것도 인연인데 잘 지내보자고 내 엉덩이 핥을 준비 잘하고. 크크크큭. "
테이그와 그의 졸개 두 명은 그렇게 비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난다. 껄껄거리는 그들의 웃음이 식당 안에 퍼진다.
그들을 주목하는수감자들.
뿌려진 모래를 바라보는 성우.
탄식하며 분을 삼키는 근식.
" 아! 짜증 나는 군요. "
" 그보다 근식. "
" 네? 말씀 하십시오. "
" 뭐가 잘못된 걸까? "
"......? "
" 어쩌다 이 지경이 됐지? "
" 수사관님. 너무 힘들어하지 마십시오. 곧 풀려날 겁니다. "
" 과연 그럴까? 재필이란 암흑의 지배자를 내가 너무 얕본 건 아닌지 모르겠군? "
" 수사관님은 옳은 선택을 하신 겁니다. "
" 모르겠어? 어떻게 풀어내야 할지. 이미 날 쥐고 흔드는 건 윗대가리들에 의해 정해진 것 같은데... 그렇다고 라구나 사냥꾼들에게 연락할 방법도 없고. "
성우의 자조적인 말에 근식도 할 말이 없는지 입을 다문다. 조용히 식사 시간이 끝나기를 기다리는 듯 둘은 공허하게 식당 중앙에 비치된 디지털 시계를 멍하니 지켜본다.
음식물을 삼키는 소리가 들릴 정도의 고요함.
그 고요함을 뚫고 성우의 뒤에 나타난 그림자. 성우의 어깨에 손을 얹진 사람은 창기였다.
" 이봐. 성우! "
" 참! 당신도 이곳에 있었지? "
" 그래 자네 덕에 조만간 풀려날 것 같은데. 어떻게 이런 곳까지 오게 되었지? "
" 설명하면 길다네... 그 보다 이곳을 나가면 내 이야기를 건남이나 상희에게 전해 줄 수 있겠나? "
" 그야 당연히! 그리고 사실 들어오기 전 비밀리에 교신할 수 있는... "
급작스럽게 말을 줄이는 창기다.
" 따라오게! "
식판을 챙기며 성우와 근식은 12번 테이블에서 일어선다. 그리고 어디론가 향하는 창기를 따라간다.
창기를 따라간 곳은 식당 귀퉁이에 있는 화장실이었다. 세 명의 족쇄에서 순차적으로 음성이 나온다.
" 화장실 입장을 허용합니다. 잠시 모든 시스템을 정지합니다. "
빠르게 화장실에 들어간 창기는 급한 생리적 현상보다 더 급하게 이야기한다.
" 이봐. 성우! 내 이야기 잘 듣게 시간이 없으니 중요한 이야기만 전하겠네! "
갑자기 입을 크게 벌리며 창기가 손가락을 자신의 입안으로 집어넣는다. 무언가 찾는 느낌이다. 잠시 후 조그만 알약처럼 생긴 물건을 엄지의 손톱과 검지의 손톱으로 잡으며 성우에게 보여준다. 흥건하게 침이 묻어있다.
" 이 물건 소형 교신기인데 라구나 호에 연락할 수 있네. "
오~ 창기가 희망을 주는 건가? 누가 전직 사냥꾼 아니랄까 봐 이런 걸 교도소 안에 몰래 숨기고 들어오다니... 검열이 심한 곳이긴 하지만, 인공 이에 숨겨 들어왔기에 걸리지 않은 것 같다. 크기도 이보다 작으니.
대단한 녀석!
신기하듯 바라보는 성우와 근식.
" 이걸로 연락을 취해 보게! 아직 특별한 일이 없어서 사용하진 않았지만... "
창기는 축축해진 교신기를 세면대에 씻어 성우의 손에 쥐여준다.
" 아무래도 자신의 방에서 연락해야 할 거야. 이 족쇄에 걸리지 않으려면. "
자신의 목에 걸린 족쇄를 손가락으로 매만지며 창기는 계속 말한다.
" 이 장비를 일정한 힘으로 누르면 작동되니 사용법 숙지하고. "
성우는 고개를 끄덕인다. 그사이 족쇄에서 음성이 흘러나온다.
" 사용시간 5분이 지났습니다. 5분 후 자동으로 프로그램 작동합니다. "
족쇄는 화장실이라 해서 무작정 꺼지는 게 아니다. 10분 안에 볼 일을 못 보면 카메라는 자동으로 켜졌다. '변비가 심하면 교도소에 가라'라는 속담이 생겨 날 정도로 시간은 엄격했다. 그들은 시간을 의식한 듯 화장실을 빠져나왔다.
" 그럼 다음에... "
창기가 윙크를 날리며 자신의 감방으로 향하고, 성우는 그런 창기를 바라보며 조그만 수신기를 손안에 살포시 쥔다. 그리고 성우 또한 자신의 감방으로 향한다. 졸졸 따라가는 근식.
스르륵~
1252 수감실의 문이 자동으로 열린다. 성우가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자 음성이 들린다.
" 모든 프로그램을 해제 합니다. 제한 시간은 6시간입니다. "
그리곤 수감실 문이 닫히고 자동으로 닫히는 문 사이로 근식이 서 있다.
" 수사관님 그럼 쉬십시..."
문이 닫히자 방음벽으로 인해 입만 뻐끔거리는 근식의 모습이 성우의 눈에 들어온다. 성우는 그런 근식에게 쉬라는 듯 검지와 중지를 모아 거수경례 하며 미소를 날린다. 무언이지만 알아들은 근식은 조용히 사라진다. 그가 사라지고 성우는 작은 교신기를 유심히 살핀다. 그리고 혼잣말.
" 이 조그만 게 유일한 희망이라니... "
그렇게 매만진 교신기를 성우는 꾹 누른다.
근식은 성우가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자 몸을 추스르곤 방으로 걸어간다.
뚜벅 뚜벅 뚜벅...
성우의 방과 10m도 안 되는 거리에 근식이의 방이 있었다.
1255호실로 들어가는 근식은 돋보기 같은 안경을 벗으며 조그만 탁자에 놓인 선글라스로 손을 가져간다. 스위치를 누르는 근식은 무언가 다른 사람 같아 보인다.
" 오우! 근식아닌가! "
" 네. 보스. "
근데 어떻게 통신기를 이곳에서 쓰지? 개인용 선글라스를 수감자가 자신의 방에서 사용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 어때 그곳 생활은?
" 보스 덕에 잘 지내고 있지요. 예치금도 넉넉하게 넣어 주시고. 차라리 경찰 생활보다 이 생활이 더 편합니다. 밖을 나갈 수만 없을 뿐이죠. "
- 그래. 이참에 거기서오래 살게 해 줄까?
" 보스도 참... 언제 빼 주실 건가요? "
- 음~ 조만간...
" 여기서 나가면 그땐 경찰 제복도 벗고 보스 옆에서 지내겠습니다. 지긋지긋한 생활에서 자유 좀 느껴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
- 흐흐흐... 그래야지 고생했네. 근식.
" 조만간 성우와 라구나가 교신할 겁니다. 그래봤자 뾰족한 수가 생기는 것도 아닐 테니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겁니다. "
- 뭐... 그거야. 상희가 지 발로 우릴 찾아와 준다면 더 바랄 게 없지! 흠. 자낸 조금 기다리면 그곳에서 나 올 테니 그 성우라는 작자나 잘 감시해!
" 알겠습니다. 보스. 그리고 성우는 생각보다 보스에 대한 정보를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빨리 손보지 않으시면 화근으로 돌아올 수도 있다는 것. 꼭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
- 그래. 기어이 죽겠다고 덤비는 녀석이라면 그렇게 해 줘야지. 그럼 쉬게나.
" 네. 보스. "
통화가 끝난 근식은 선글라스를 탁자에 놓으며 침대에 드러눕는다.
근데... 이건 또 무슨 상황인가? 왜 근식이 재필과 통화를 하고 그에게 보스라 말하는 거냐옹~ 이 사실을 성우는 알고 있는 거냐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