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1화 〉50-실험체
잠시의 고요함이 라구나 bar를 휩쓸었다.
교신은 성우와 건남, 상희가 했지만 건남의 얼굴에 나타난 고심이 라구나 안의 모든 사람에게 전해졌다. 그의 심각한 표정을 읽은 준이 맥주를 bar에 올려 두고는 상희의 선글라스로 손을 가져간다.
" 상희씨. 잠깐 선글라스 좀... "
스스럼없이 선글라스를 건네는 상희.
" 여기요. 대체 성우옵이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알 수가 없군요. "
건네받은 선글라스를 쓴 준. 얼굴엔 표정 변화가 없다.
" 성우인가? 나 준 일세. "
- 선배님 이신가요?
" 그래. 그 보다 재필의 제스 양성 시도가 마들가리 행성을 차지하려는 음모인거 같다는 거야? "
- 선배님. 정황이긴 합니다. 생각보다 많은 존재가 그를 추종한다는 겁니다. 동광제약의 실소유자가 누군지 아십니까?
" 수상의 먼 친척이지. "
- 아시는군요!
" 그럼 나 또한 이곳에서 놀고만 있던 건 아니니... "
- 그럼 그것도 알고 있습니까? 동광제약에서 매수하고 있는 구역장들에 대해?
" 23구역장이 특히 동광제약과의 교류를 많이 했었던 것으로 알고 있었지... 다른 구역장들도 있나? "
- 아시다시피 번화한 구역의 구역장들에게는 필요 이상의 교류가 있었던 거로 조사됩니다.
" 허허허... 성우. 그럼 뭐하나? 이렇게 우린 쥐 죽은 듯 묻히는데 "
- 그러게 말입니다.
" 아무튼 자네의 목숨이 위태롭겠군! 이런 걸 알고 있다는 걸 그들이 인지하면 그냥 이대로 있을 위인들이 아니니... "
- 그런 놈들이 미생물 같은 저희의 자료에 넘어가기나 하겠습니까?
" 썩을 때로 썩었어... 이 사회는... 아무튼,기회 봐서 자네를 탈출시킬 생각인데... "
- 선배님. 아닙니다. 우선은 상희와 동행하십시오. 그들을 도와주세요.
" 알았네... "
역시 쿨한 준. 밑도 끝도 없이, 아무런 의구심도 없이 yes다.
통화를 마친 준이 선글라스를 상희에게 돌려주며 혼잣말을 한다.
" 큰일을 애써 벌이려 하는 군...역시 성우야. "
건남의 얼굴이 진지하다. 그리고 말한다.
" 성우형. 교신기 잘 간직하고 계세요. 오명 꼭 씻겨 드릴게요. 필요할 때 연락 주시고요."
- 훗. 어디서 그런 자신감은 나오는지 모르겠구나. 아무튼 다들 조심하고.
" 형님도 조금만 참으세요. 그리고 그 교신기 폭파 기능도 있으니 참조하시고요. "
- 그래? 알았어!
교신이 끝나자 건남은 선글라스를 벗는다.
" 준이형? 그럼 재필이 지금 만들어 내는 제스는 과거의 제스와는 다른 건가요? "
" 싸우는 거 지금 봤잖아. 저건 괴물이기보다 병기에 가깝다고 하는 게 옳을 것 같군. "
" 형님은 어디까지 알고 있는 거예요? "
" 허허허... 10년 전 우연히 자네의 사건을 계기로 난 그놈에 관한 정보 수집에 들어갔었지. 날 이렇게 만들어 버린 녀석에게 복수의 칼날을 갈며 말이야. 허나... 내겐 힘이 없었네. 무력과 같은 것이 아닌 권력의 힘이... "
준은 맥주를 벌컥벌컥 들이켠다. 너무 빨리 마셨는지 거품이 맥주병 입구에서 새어 나온다.
" 이 거품처럼 세상의 거품 덩어리는 줄줄이 흘러나오더군. "
다해가 이야기를 듣다 갸우뚱거린다.
" 거품? "
" 권력을 손에 쥐고 있는 사람들의 욕심. 그 욕심을 채워주기 위해 거품으로 다가가는 사람들... 재필은 그것을 너무 잘 알고 있어. 우리 일반인들은 그저 평화롭고 안정된 세상에서 살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 모습도 그들이 만들어낸 허물에 불과해. 없어도 되는 규칙을 만들어 옭아매고 그 올가미에 걸린 사람들은 뇌물이나 세금으로 권력자에게 듬뿍 전해주지. "
상희가 지루하다는 듯 코를 후비적거린다.
" 아! 준이옵 말이 너무 어렵다. 그냥 나쁜 쌔리들이라는 거잖아! "
" 그... 그런가? 그렇기도 하지... 허허허... "
" 아무튼 준옵. 윤이라는 년은 뭐예요? 영생이 어쩌고저쩌고? "
" 그건 나도 모르겠어! 일반적인 상식 밖에는. "
이야옹~ 상희는 그 상식을 묻는 거다옹~
" 아무튼, 건남이 조치를 했다니 기다려 보자! "
상희는 고개를 끄덕이고 건남은 말한다.
" 넵. 제가 사막에서 도망치는 제럴드의 부하를 우현이에게 미행해 달라고 부탁했으니 조만간 교신이 올 겁니다. "
" 건남. 이것만 알고 있어. 재필은 쉽게 포기하지 않을 거라는 걸... 성우가 말했듯이 아마도 최고의 독재자가 되는 게 그의 꿈일 거야. 내가 3구역에 자리 잡은 것도 이 구역 가까운 곳에 제스를 생성하는 공장이 있을 거란 추측이 있어서이고. 내가 생각했던 그런 제스와는 너무나 다른 존재이긴 하지만, 오늘은 분명 실험적인 제스를 보냈다는 것도... 잊지 말게. "
뭐시라고라... 지금 이 제스보다 더 강하다는 소리여 시방! 워메 고양이 입에서 사투리 나오게 하는구먼. 그럼 더욱 강한 제스와 싸워야 한다는 거냐옹~ 난 왠지 빠지고 싶다옹~ 언제 째지?
- 0구역 근처 -
도망친 제럴드의 부하 6명은 재필이 보내준 함정을 타고 연구소로 돌아왔다. 땅이 꺼지고 커다란 원반형 엘리베이터가 지하에서 올라오는 걸 지켜보는 buzz 함정의 우현과 성진. 고스트로 유유히 미행했던 결과에 만족해한다. 역시 최첨단 함정의 결정판이다.
우현과 성진은 6명의 행동과 그 주변을 조용히 관찰한다.
안면인식 기계에 얼굴을 들이민 제럴드의 부하, 그리고 엘리베이터에 오르자 내려가는 장면, 그들이 사라지자 다시 사막으로 변해 버린 0구역의 언저리까지, 성진은 놀라움으로 일축한다.
" 와우! 이런 곳에 지하 시설을 갖추었다니 굉장하네요. "
" 그러게 말이다. 수도와 전기는 들어 오것어? "
" 밑에 시설 규모가 어느 정도일까요? "
" 글쎄다. 살면서 0구역 근처에 사람이 산다는 이야기는 들은 적도 본적도 없으니. "
우현의 말처럼 이곳은 전기나 수도 시설이 전혀 갖추어지지 않은 곳이다. 거기다 비까지 내리지 않아 물의 공급은 전혀 없는 곳이다. 또한 buzz 함정이 있는 곳에서 1km 전방에는 투명의 장벽이 0구역을 가로막고 있다.
오로라가 길게 뻗어 있는 것처럼 그들이 있는 곳에서도 장벽이 보인다. 길게 뻗어 있는 투명의 장막이. 마들가리 행성의 0구역은 알 수 없는 미지의 세계이다. 앞서 말했던 것이 있지만 상기시키고 싶다.
산소가 없는 곳, 마들가리인들은 감히 들어갈 수 없는 성지와도 같았다. 위험지역이기에 저렇게 투명의 장막으로 막아 두었다. 정부의 허가 없이는 절대로 들어갈 수 없는 곳이었다. 물론 그 허가를 받으려 하는 사람도 없을뿐더러...
옛 시절엔 사형이 확정된 죄인을 그곳으로 추방했다는 기록도 있다. 아무튼 그 근처에 이런 벙커가 있다는 것이 우현과 성진은 마냥 신기할 따름이었다.
" 우현이형 건남형님에게 보고할까요? "
" 그래야지. 교신해. "
" 알겠습니다. "
성진은 조종석에 앉아 교신 버튼을 누른다.
" 건남성. "
다급한 상대방의 음성.
" 우현아 어떻게 됐니? "
그래 건남이 급하긴 급하지... 드디어 위치를 알아냈는데 안 급하면 사람도 아닐 거다.
" 놈들의 은신처를 알아냈어요. 0구역에서 상당히 가까운 거리에요. "
" 0구역? "
" 네. 0구역이요. "
" 음... 예상했던 결과이긴 하지만 놀랍군. 위치 전송해. "
" 그럼요. 보내 드리지요. "
현재 위치를 전송하는 우현.
" 또 특별한 건 없어? 주변 상황이라든가..."
" 특별한 거야 이런 곳에 둥지를 틀고 산다는 거겠지요. 아~ 건남성. 그러고 보니 이곳 지하에 위치한 것 같은데 내부로 들어가는 입구가 여기 하나라면 문제가 있을 것 같아요? "
" 뭐? "
" 이 안으로 들어가는 쫄다구가 안면 인식기에 자신의 얼굴을 입력하자 지하에서 엘리베이터가 올라왔거든요. 보안 절차가 까다로운 것 같아요. "
" 음... 아무튼 위치 알아낸 것만으로도 큰 성과야. 우현이 너는 위치 절대 노출하지 말고 주변에서 기다려. 여기서 멀지 않으니 금방 도착할 거야 레이더에 걸리지 않는 지점에서 만나자. "
" 알았어요. 성. "
" 그럼 조심히 기다리고 있어. "
교신이 끝나자 성진이 우현에게 말한다.
" 오! 드뎌 재필을 만나는 건가요? "
" 여기를 어떻게 뚫고 들어가냐가 문젠데... "
" 건남형님 오시면 알아서 하겠지요 뭐~ 헤헷 "
참 성의 없고 무심하고 생각이 없는 건지, 아니면 초긍정의 사람인지 참 속 편한 놈이다. 성진은... 아무튼 인제야 재필을 찾아내다니 울 라구나 대원들 잘 해낼 수 있으려나아옹... 그보다 더 걱정인 건 내가 치료를 얼마나 많이 하려나 일까이다아옹~
그렇게 애타게 찾아다닌 재필을 만나다니 괜스레 긴장된다.
- 2구역 조그만 구멍가게 -
넓은 평야, 넓은 사막을 가로지르는 아스팔트 도로의 뜨거운 열기가 피어오른다. 무더위에 익숙한 매 한 마리는 태양의 빛을 피하며 공중을 맴돈다.
그 아래의 구멍가게.
커다란 수송용 함정이 정박해 있다. 무장한 군인들과 제약회사 마크가 찍힌 정장 차림의 사람들이 오간다. 휠체어를 탄 효정이 아버지의 팔을 붙잡으며 구멍가게에서 나오지 않으려 하고 있었다다.
" 아버지 싫어 싫다고! 나 이대로 살게. 제발 저곳으로 날 보내지 마! 제발! "
" 아따 이년이 왜 이런디야! 저곳에 가면 니 다리 낳게 해준다녀... 걷고 싶지 않은 겨? 죽기전에 걸어 다니는 것이 니 소원 아닌겨? "
" 아냐! 이런식으로는 아니라고 "
효정의 눈가에 눈물이 맺혀있다. 그런 그녀를 수송선 안의 장애인들이 창문을 통해 바라본다. 효정의 앞으로 다가오는 동광제약의 직원. 깔끔한 외모에 은색 안경을 썼다.
" 효정씨.다른 사람들이 기다리잖아요. 어서 갑시다. 이미 아버지께서 동의서에 싸인 다 하셨으니... 저희가 곧 새로운 다리를 만들어줄 거에요. "
환하게 웃는 미소가 너무나 정갈해 보인다. 그러나 효정의 눈은 경계의 눈빛과 증오의 대상을 보는 경멸함이 함께 서려 있다.
" 아따 울 딸래미가 말을 안 들어 쳐묵네... 이를 어쩐디아... "
창백한 효정의 얼굴색은 더욱 혈기가 없어 보인다. 그대로 째려보는 효정. 광기의 눈빛이다.
" 내가 모를 줄 알아! 너희의 존재를! "
그녀의 말에 그냥 웃고만 있는 동광제약의 직원은 여유로워 보인다. "
너희 우리 같은 사람을 실험용으로 쓰고 있다는 거 내가 모를 줄 아냐고! "
" 뭔가 오해가 있는 것 같은데 우린 사회 환원 정책으로 신의료 사업을 통해 완치할 수 없는 병들을 고쳐 드리고 있습니다. 운 좋게도 아가씨가 명단에 올라왔고 도움을 주려 하는 것인데 이렇게 나오시면 참 곤란스럽네요. "
" 그래 도움 안 받겠다고 그러는데 왜 억지로 끌고 가려는 거야! 난 못가 못 간다고! "
효정은 부르르 떨며 아버지에게 시선을 돌린다. 눈빛이 애처롭게 변한다.
" 아버지. 이 사람들 날 고쳐 주는 게 아니야! 날 괴물로 만들려고 그러는 거라고! 내가 들었어 그 재필인가 뭔가 하는 작자가 하는 이야기 똑똑히 들었단 말이야 우리 같은 사람을 데려다가 제스로 만들어 버린다고. 아버지 제발! 제발 날 믿어 줘! "
효정의 아버진 흐느끼며 우는 딸을 두고 깊은 한숨을 쉬고는 멀리 하늘을 본다. 아직도 하늘의 매는 공중을 맴돌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