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4화 〉53-구르기
" 명치대인! 밟아! "
큰소리로 지시를 내린 건남. 준이 덧붙인다.
" 입구까지만 이라도 어떻게든 도착시켜. "
발끝에 명치대인은 힘을 준다. 차량의 뒷바퀴는 출력에 의해 모래를 파헤친다. 뒷자석의 용선을 바라본 건남의 시선은 무언가 부탁할 필이다. 저 똘망똘망한 눈빛.
" 형님! 시간 좀 끌어 주실 수 있죠? "
" 그래... 지 목숨 아니라고 저기에 날 내려놓는다. 말하는 게 쉽다? "
" 조금만 시간 끌어주세요. "
그렇게 말한 건남의 손이 내게로 다가온다.
설마... 나도 여기서 하차하라는 건가?
잠깐, 야 이 미친쌔리야. 놔 놔 놓으라고. 내 목숨은 소중하다규! 다해야 어딨노? 건남이 날 생지옥으로 보내려 한단다. 어여 날 데려가라옹~ 날 용선에게 떠넘기듯 그에게 던진다. 가슴으로 여유롭게 받아내는 용선.
날 받아낸 그가 내게 속삭이듯 말한다.
" 니가 히리구나 가까이서 보니 좀 징그러운데... 아무튼 부탁한다. 나 좀 도와야 될 거야. "
뭐? 뭐라카노? 저시키가 뭐라 한거고? 건남에게 안된다고 떼써야지... 거기서 용감하게 막아 보겠다고 뛰쳐나가려 하냐. 혼자 가라아옹~ 난 살고 싶다옹~ 용선의 품에서 난 발버둥 치며 계속 운다.
'이야옹~ 이야옹~'
그러나 나의 울부짖음은 씨알도 먹히지 않는다. 뚜껑 없는 SUV 차량에서 날 부둥켜안고 용선은 달리는 차에서 뛰어내린다.
젠장! 그의 눈앞에는 커다란 제스가.
날카로운 팔을 가진 제스가.
이 행성의 최대 포식자였던 제스가.
그걸 또 업그레이드시킨 제스가.
돌출된 눈으로 용선을 째려보며, 모래바람을 크게 일으키며, 36마리의 제스가 용선을 향해 달려오고 있다.
그 모습이 내 눈에도 보인다. 꼭 큰 해일이 내륙을 덮치려 하는 기세로 다가오는 제스.
용선이 땅에 나를 내려놓고 반월도를 양손에 들었다.
" 히리야 준비됐냐? "
뭔 준비? 그냥 얼떨결에 죽음 앞에 놓였는데. 이 자식이 뭘 원하는지 내가 어떻게 아느냐 말이다.
나. 쁜. 쎄. 리.
반월도를 든 그가 고개 들어 하늘을 쳐다보고 팔을 높이 뻗은 후 둥글게 선을 그었다. 무언가 웅얼거린 용선.
' 파팍 파팍 팍팍팍... '
선의 주변으로 강한 스파크가 일어났다. 넓은 모랫바닥에서 모래가 하나둘 튀어 오른다. 전기의 파장이 급하게 요동친다.
' 빠지직~ 빠지지직. '
" 건남아 빨리 움직여 오래 버티진 못할 거야! "
교신을 받은 건남 일행은 어느덧 입구 앞에 도착했다. 푸른 막대기만 덩그러니 꽂힌 횅한 사막. 그러나 풍경의 여유로움은 그들의 마음을 대변하지 못한다.
바쁘게 움직이는 건남, 준도 손과 발을 빠르게 움직인다. 차량에서 이상한 장비들을 나르는 명치대인, 그 물건들을 막대기에 연결하는 건남, 옆에서 다른 장비를 땅에다 꽂는 준.
그들은 무진장 바빠 보인다.
아무튼 그 시각, 내 앞에는 제스 폭풍이 눈앞에 다가오고 있었다. 어쩔겨 용선.
전기의 파장이 요동치는 사막에서 반월도를 힘있게 잡은 용선의 눈은 결의에 차 있었다. 두려움이란 걸 모르는 눈빛에 힘이 들어간 용선은 반월도를 힘차게 바닥으로 내리꽂았다.
' 퍽. '
사막이 물결치듯 출렁거린다.
용선을 쫓아오던 제스들이 몸을 비틀거린다.
또 한 번 바닥을 향해 주먹질하는 용선.
' 퍽. '
사막은 다시 출렁인다. 그러나. 제스들은 흔들리지 않는다. 몸에 균형을 잡은 제스들은 또 다시 진격한다. 나와 용선에게로...
용선 장난하냐...
순간, 용선의 둘레에 커다란 방어막이 만들어진다. 나와 그를 에워싼 실드는 이전의 것들과는 달라 보였다. 반월도의 전기가 스파크를 튀며 실드에 전달된다. 여러 개의 스파크가 말이다아옹~ 처음으로 용선의 목숨을 위협하는 제스가 방어막 근처에서 날카로운 팔을 휘두른다.
' 빠지지직. '
감전인가? 제스는 놀라는 듯 움찔한다. 그 뒤에 달려온 제스도... 그 뒤의 제스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 찌직... 찌직... '
난 용선에게로 눈길을 돌린다. 매우 흡족해하는 그.
" 그래 여기다 얼마나 처발랐는데 이 정도는 해야지... "
그가 팔을 앞으로 뻗는다. 반월도에서 여러갈래의 자기장이 산발적으로 뿜어진다.
그래! 믿는 구석이 있었군. 참 다행이다아옹~
그러나 나의 행복한 생각은 몇 분을 넘기지 못했다. 반월도에서 나오는 음성.
- 출력 가동 시간이 잠시 후 정지됩니다. 5분 후 자동으로 재충전합니다.
아리따운 목소리가 참으로 침착하다. 상황은 미치겠는데 말이다아옹~ 용선은 보고하듯 건남에게 교신한다.
" 건남아! 5분이다. 5분! "
건남은 분주하게 움직이며 대답한다.
" 알았어요... 버텨 봐요. "
5분 동안 저들은 과연 무엇을 하는 것인지? 아무튼 건남은 할 일 없어 보이는 명치대인에게 말한다.
" 명치대인아! 할 일 없으면 용선형 도와줘! "
" 갑자기? "
" 그래! "
" 저 많은 놈들을 내가 뭘 어쩌라구? "
" 어떻게든 해봐! "
땀을 뻘뻘 흘리며 건남은 막대기에 무언가를 붙인다. 준은 모래바닥에...
생긴 건 반창고 같은데 전선들이 달려있다.
" 형? 정말 나 저리 가야 해? "
" 뭐해 안가고? "
" 아 네네... 그러죠 이 한 목숨 파리 목숨 보다 아깝지 않다 이거죠? "
" 난사만 당하지 마 살려 줄테니... "
눈도 마주치지 못하고 이야기하는 건남에게 명치대인이 투덜거린다.
" 죽을 걸 알면서도 저 전장으로 절 보내시다니... 아~ 이 형을 뭘 믿고 따라 왔는 지... "
" 잔말 말고 어여 가봐! "
" 에효~ "
명치대인은 힘겹게 발길을 돌린다. 36 마리가 있는 곳으로 그가 뛴다. 일본도를 꺼내 들며, 무쇠 주먹을 손에 장착하며 말이다.
커다란 원형의 실드에선 아직 스파크가 쉴 새 없이 튀고 있다. 반월도에서 뿜어져 나오는 강한 자기장은 환한 사막인데도 빛이 강렬하다.
제스들은 그런 실드에 계속해서 팔을 휘두르지만 그럴 때 마다 움찔거린다. 역시 생각이 없는 녀석들이다. 그래서 더 무섭다. 보통 인간이었으면 포기하고 돌아갔을 텐데. 이놈의 제스들은 포기를 모른다.
' 찌직~ 지지직~ '
그리고 운명의 시간.
- 실드가 해제됩니다. 자동 충전이 활성화됩니다. 충전 완료 시간은 24시간 후입니다.
무적 같았던 방어막이 스르륵 사라진다. 마지막 전기 음을 남기며...
" 지직~ 팍. "
0.1초로 날 바라본 용선의 눈빛이 몇 분처럼 느껴졌다. 이 눈빛은 빨리 째라는 것 같다. 누가 짼다 패밀리 아니랄까 봐. 용선은 36마리의 제스, 72개의 눈빛을 외면한 채 등을 돌려 건남이 있는 곳으로 내달리기 시작한다. 나 왜 데리고 온거냐아옹~
나 또한 용선을 따라 뛴다. 이젠 나도 짼다 패밀리의 일원인가 보다아옹~ 그때, 짼다 패밀리의 일원이 아닌 명치대인이 우리에게 달려온다. 뭘 어쩌려고 이리로 뛰어 오냐옹~
어느 순간 명치대인이 휙 하고 우릴 지나치며 말한다. 용선과 교차하며 말이다.
" 형! 저놈들 유인해서 시간 좀 벌죠? "
고개를 끄덕인 용선이 우측으로 몸을 돌린다. 명치대인은 그대로 제스를 향해 돌진한다.
우왕좌왕하는 제스들.
그 안을 파고드는 명치대인.
오~ 역시 명치대인.
그가 누구인가 구르기의 달인으로서 구르카의 대원들에게 구르기 권법을 전수하던 명치대인 아닌가. 수많은 쿠르카 대원들에게 환호성을 받으며 강의를 마쳤던 명치대인, 그의 명성답게 제스의 사이를 파고들며 이리저리 구르기 시작한다.
양팔을 휘젓는 제스.
그 사이를 요리조리 피하며 구르는 명치대인.
여러 제스의 낫 같은 팔이 사막에 푹푹 박힌다.
소닉도 울고 갈, 블랑카도 혀를 내두르는 명치대인은 사막을 구르며 제스의 늪을 빠져나온다. 어찌 되었건 명치대인의 유인 작전은 먹힌 것 같았다.
뚫고 나온 제스를 바라보는 그.
그를 바라보는 여러제스의 눈빛은 빨리 도망치지 않으면, 사지를 산산이 찢어 버리겠다는 무언의 압박을 하는 것 같다.
그래... 내 말이 맞았다. 제스들은 명치대인을 향해 움직였다. 저승사자가 떼거리로 낫을 들고 달려오는 것 같다. 별수 있나? 명치대인도 짼다 패밀리에 합류한다.
건남이 있는 곳에서 반대로 뛰는 명치대인이다. 죽기 살기로 숨도 참으며 그가 뛴다. 그 뒤를 따르는 제스들은 매우 빠르다. 그럼 용선은 안전할까?
아니다. 명치대인을 모두 따르는 것이 아니라 두 부류로 나누어진 제스였다. 한 무리는 용선의 뒤를 따라간다. 용선의 다리가 쉴 새 없이 움직인다. 물론 나도 털을 휘날리며 다리가 안 보이게 뛰고 있다아옹~ 젭알! 따라오지 말아라옹~
우리가 제스로 부터 도망치고 있을 때, 건남과 준은 동시에 일을 마친 듯 이마의 땀을 닦으며 허리를 편다.
" 휴~ 끝났어요. "
" 나도 끝났다. 오랜만에 운동 좀 하는군. "
" 그럼 시작할게요. "
건남은 네모난 장비에 전원을 올린다. 사막 한복판에 서 있는 막대기. 그것에 무언가 설치한 이 장비는 무엇일까?
암호 해독기.
이 장비를 그렇게 불렀다. 정확히 쓰이는 용도는 비밀번호를 알아내는 장비이다. 특히 안면 인식이나, 지문 인식으로 잠금장치를 설정한 문이나 창문, 함정의 입구등의 프로그램을 파괴하는 장비라 보면 된다.
자세히는 모르지만, 바이러스를 침투시켜 회로와 메모리를 파괴한다고 이야기를 들은 것 같다.
" 그럼 나도... "
준 역시 자신이 설치한 장비에 스위치 ON 한다.
내부 투시경.
준이 설치한 장비를 그렇게 불렀다. 벽, 물체를 통과하여 그 안을 들여다 보는 장비이다. 반대편에 뭐가 있는지, 공간인지 비 공간인지를 파악하는 장비로서 화면을 통해 전송된다.
준이 앞 홀로그램 화면이 공중에 떠 있다.
건남과 준은 땅속 상황을 홀로그램 화면을 통해 바라본다.
땅속은 넓었다. 원형으로 뚫려 있는 곳의 지름이 대략 25m다. 문제는 깊이다. 긴 터널의 끝이 안 보이는 것처럼, 이 구덩이도 끝으로 가면 갈수록 검은색은 진해졌다.
" 이거 원! 얼마나 깊은 거야? "
준은 화면을 더블 클릭하며 줌인한다. 하지만 화면을 확대할수록 암흑은 깊어 갔다.
" 이거 지하로 1km 이상 판 것 같은데요? "
건남이 준의 어깨너머로 화면을 보며 말하자 준이 답한다.
" 무슨 기름 파는 것도 아니고 이렇게 깊은 곳에 숨어 있는 건지... 뛰어내리면 사지가 남아나지 않겠는걸. "
" 중형 함정은 들어가기 애매모호한 넓이에요. "
그렇다. 라구나나 buzz가 이곳으로 들어가기에는 사이즈가 나오질 않는다. 혹여 직진만 하면 모를까.
" 그리고 건남! 이것 보게! "
준이 화면 어딘가를 손가락으로 가리킨다. 그곳을 건남은 주시한다.
" 이건!! 프로펠러? "
잠깐, 내 눈엔 그냥 뻥 뚫린 원형 공간 같은데 프로펠러라니? 근데 왜 프로펠러가 뭘 어쨌길래 그리 놀라냐아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