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5화 〉54-승강장
건남이 놀란 이유는 프로펠러의 용도 때문이었다.
" 이건 혹시! "
" 너도 이야기 들었구나... 이런 프로펠러의 규모라면 최대 함정의 크기는 돼야 하는데... 흠~ 이런 게 여기 왜 있지? "
" 그러게요. 땅속에 묻혀 있는 것도 수상한데 이걸 승강장으로 사용하는 것도 이상해요. "
" 잠깐, 설마! 땅속에 초특급 함정을 묻어둔 건 아니겠지? "
놀란 준이 건남을 쳐다본다.
" 이 정도 규모의 함정이 묻혀 있다... "
오~ 과연 재필이가 쉬운 놈은 아닌가 보다. 초특급 함정은 마들가리 행성에 몇 기만 존재한다. 지구의 항공모함처럼 '절대가격' 없이는 만들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어마어마하게 비싼 비행정이다. 저 큰 게 날아다닌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말이다아옹~
또한, 우주로 나갈 수 있는 함정이기도 했다. 물론 먼 우주를 탐험할 수는 없지만, 대기권 밖에서 움직인다는 것은 매우 유용하다. 특히 전투할 때. 아무튼 그런 게 지하에서 잠자고 있다니, 건남과 준이 놀라지 않고 배기겠냐 말이다아옹~
행성 예산으로도 만들기 힘든 물건을 재필이 소유했다는 것도 참 신기하다. 도대체 돈을 어떻게 벌었는지 그것도 궁금하다아옹~ 저러니 행성을 지배하겠다는 발칙한 상상을 행동으로 옮기겠지... 적이지만, 대. 단. 하. 다. 일개 조직에서 행성 수상이 되려는 야망의 재필. 그냥 저 녀석 밑으로 들어갈까 고민을... 할 수나 있냐옹~ 지금은 그냥 제스들로부터 째는 게 급선무라아옹~
그때, 건남이 설치한 장비에서 음성이 들린다.
- 회선차단이 되었습니다. 문을 개방할까요?
건남이 명치대인과 용선에게 교신한다.
" 형. 명치대인 둘 다 이쪽으로 이동해! "
" 건남형! 이놈들 어쩌구요? "
" 살라면 잔말 말고 이리로 뛰어! "
" 보낼 땐 언제고... 어휴~ 알았수다. "
용선과 명치대인은 입구로 몸을 튼다. 물론 나 또한... 아마도 이 속도면 우사인 볼트도 부러워할 만한 속도겠지. 그러나 제스의 속도도 만만치 않다.
사막에 흩날리는 모래, 폭풍처럼 우리가 뛰는 곳엔 모래가 사방으로 날린다.
어느덧 건남이 서 있는 곳으로 달려온 명치대인과 용선. 그 둘이다가오자 건남은 자신의 장비에 yes 버튼을 누른다. 순간 바닥에 깔려 있던 허상의 사막이 돔으로 된 승강장으로 변했다.
그곳으로 죽어라 달리는 명치대인과 용선의 표정은 단거리 육상 선수의 몰골이다. 승강장 도착 10초 전, 9초 전, 8, 7.....3초 전, 2초 전 내려가는 버튼에 손가락을 건남은 가져간다.
승강장 안으로 뛰어든 명치대인.
그 뒤에 용선과 나.
그리고 제스들...
용선이 승강장 안으로 들어오려는 찰라... 한 마리의 제스가 자신의 팔을 쭉 내민다.
' 솨악~ '
용선의 몸을 훑고 지나가는 제스의 팔에 피가 묻어났다. 닫힌 승강장에 피가 튀었다. 용선은 가까스로 승강장에 들어와 쓰러졌다. 붉은 선혈이 그의 등 쪽에서 흘러나온다.
치명상.
" 형! "
다들 놀란다. 그리고 승강장은 빠르게 내려간다. 돌출된 제스의 눈은 좀비처럼 내려가는 승강장만 멍하니 바라볼 뿐이다.
호들갑스럽게 쓰러진 용선에게로 다가가는 일행들, 그들에 섞여 나 또한 슬그머니 용선에게 다가선다. 그리고 용선과 내 눈이 마주친다. 등에서 뿜어져 나오는 용선의 피... 용선의 얼굴은 고통으로 일그러져 있다.
순간, 용선의 눈빛이 나처럼 변했다. 뭐지? 이 묘한 기분. 파랑과 녹색의 눈동자. 이런... 아무런 발동 없이 내 눈빛에서 광채가 일어난다. 평생 살면서 이런 기분 처음이라아옹~
내 눈빛에서 파란빛과 녹색의 빛이 실타래처럼 흐물거린다. 눈이 마주친 용선의 눈에서도... 그 흐물거리는 빛이 융합되자 승강장 안은 출렁거린다. 균형을 잡으려는 건남과 명치대인, 준.
순간 번개의 빛처럼 번쩍거림이 승강장을 채운다.
손등으로 빛을 가리는 그들.
동시에 용선의 상처가 아물기 시작한다. 붉은 피가 언제 튀긴 튀었던 것인가? 용선은 투덜거리며 몸을 추스른다.
" 아~ 호로새끼들 때문에 죽는 줄 알았네..."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아무렇지 않게 완치된 그가 내게로 다가온다. 그리고 나를 두 손으로 들어 올린다.
" 참... 우린 궁합이 잘 맞는구나! "
뭐? 궁합... 이 시끼가! 나 남자라아옹~ 징그럽다아옹~ 얼굴을 내 몸에 비비는 용선. 놔! 놓으라고... 털 빠져! 징그러운 녀석 같으니라고 이야옹~
빠르게 지하로 내려가는 승강장의 소음 속에서 그곳의 일행들은 입을 연다.
" 건남형. 여긴 뭐여? 우리 어디로 가는 거여? "
" 재필이 숨어 있는 곳. 싸울 준비해 얼떨결에 바로 들어와 버렸으니, 생각에도 없던 제스들 때문에... "
" 아~ 아까 만난 호로새끼들이 득실거리는 건 아닐지 모르겠어... 감당할 수 있겠어? "
" 형. 부딪혀 보죠! "
" 모르겠다. "
그런 건남과 명치대인, 용선을 쭉 둘러 본 준이 말한다.
" 준비하지. "
건남은 다트핀을 힙쌕에서 여러 개 끄집어 든다.
명치대인은 어깨를 으슥거리곤 일본도의 검병을 잡는다.
용선은 양손에 반월도를 움켜쥐고 준은 메고 있던 은색 야구 방망이를 두손으로 꽉 잡는다.
난? 용선이 비볐던 털을 그루밍 한다.
나.쁜.쌔.리. 나 깔끔한 고양이라고...
' 이야옹~ '
그 상황을 관찰하는 라구나 안의 상희와 다해.
" 뭐여? 어떻게 된 거야? 우리 놔두고 지들끼리 어디로 간 건가? "
" 저야 모르죠 언니... 힝... 건남옵에게 연락할까요? "
" 아놔~ 미쳐블! "
건남 일행을 관찰하는 또 하나.
" 우현이 형! 건남이 형 지하로 내려가는데요. "
" 이거 원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 거야... 답답하네... 우리 그냥 고스트로 계속 숨어 있어야 하나? "
" 건남형 한테 연락할까요? "
" 젠장! 모르겠다. "
그리고 또 하나의 관찰자.
" 오호. 제스들을 따돌리고 승강기 잠금 장치까지 풀어내다니. 상희는 보이지 않는군. 어디 처박혀 있는 거야... "
항상 무덤덤한 표정을 지키던 재필이 놀란 표정을 짓는다.
" 보스. 이대로 저들을 받아들일 건가요? "
" 오라는 상희는 안 들어오고 떨거지만 쳐들어오는 군. 어디 내가 있는 곳까지 찾아오는 지 지켜보자고... "
" 그래도 피하시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
" 훗. 제까짓 것들이 뭘 어쩌겠어... 다솜아. "
재필은 용이의 말에 응하며 다솜을 부른다.
" 아무래도 주변 어딘가에 상희가 숨어 있는 것 같은데 확인 좀 해 봐야 할 것 같은데. "
" 그러죠. 보스. "
" 그리고 만약을 대비해서 움직일 준비도 하고. "
" 여부가 있겠습니까. "
그렇게 말한 다솜은 홀로그램 화면을 띄우고 허공에 자판을 두드린다. 그와 동시에 용이는 연구소보안팀에 무전을 날린다.
" 침입자를 막기 바란다. 사살해도 상관없다. "
지시를 이어받은 보안팀장은 '네' 소리와 함께 경보기를 누른다. 연구소 안에 비상음이 들린다.
' 위이잉~ 위이잉~ '
- 침입자가 들어왔다. 모든 요원은 침입자 확인 요망. 4번 승강장으로 이동하기 바란다.
이 방송은 승강장에 타고 있는 건남 일행의 귀에도 들린다.
" 대놓고 잡겠다. 젠장... "
건남이 읊조렸다.
' 위이잉~ 위이잉~ '
보안요원들. 꼭 경찰특공대의 전투복을 입은 듯한 모양새다. 전투 헬멧과 방탄복을 입은 그들의 손엔 레이저 건이 들려 있다.
곳곳에 화면이 떠 있다. 천장이며, 벽이며 동시다발적으로 홀로그램 화면이 곳곳에서 생성된다. 그 화면 안, 전투 준비 자세를 취하며 승강장에 타고 있는 건남 일행이 비친다.
발빠르게 4번 승강장으로 모이는 요원들. 도대체 인원을 알 수가 없다. 그냥 많다. 저 많은 인원을 어떻게 감당한다냐옹~ 제스를 피해 지하로 오니 경찰 특공대 뺨치는 요원들이 대기중이다아옹~ 나 제명은 채우고 죽고 싶다아옹~ 아무튼 승강장 문이 열린다.
' 스르륵. '
" 발사! "
누군가의 지시. 조장급 요원이겠지? 문이 열림과 동시에 뿜어져 나오는 레이저 빔. 스타워즈의 광선 총처럼 '피융~' 소리는 승강장을 폭파할 것 같다.
' 파팍. 파팍. 파팍... '
빔이 실드에 닿는 소리가 끊임없이 들린다. 용선이 반월도를 쭉 뻗은 상태로 실드를 만들어 유유히 승강장 안을 걸어나온다. 뒤에 숨어 있던 건남은 양 손가락 사이에 끼워 둔 다트핀을, 총부리 겨눈 보안요원들에게 힘껏 던진다.
도합 8개의 다트핀이 건남의 손에서 떠났다. 순간 다트핀의 날개부분에서 폭발이 일어난다.
' 퍼퍼퍼퍼퍼퍼퍼벅. '
추진기.
다트핀의 순간 속도를 높이는 소형 추진제가 폭발했다. 작은 미사일이 날아가듯 타깃을 향해 날아간다. 총부리를 들어 올리며 보안요원 8명이 쓰러진다. 방탄복이 무용지물로 변하는 순간이다.
그와 동시에 준과 명치대인이 용선의 양옆에서 뛰어나간다. 일본도를 바닥에 끌며, 잰걸음으로 뛰는 명치대인이 1선에 쓰러진 보안요원들을 밟고 오른다.
2선에 있던 요원무리 중 한 명의 목을 노리며 칼을 휘두른다.
' 컥! '
목을 부여잡은 그는 치솟는 붉은 피를 이기지 못하고 맥없이 누웠다. 그 뒤를 준이 휘두르는 방망이가 마구잡이로 보안 요원들을 강타한다.
' 깡. 깡. 깡. 깡. '
야구방망이가 뭐 저리 쌘가? 알루미늄 빠따처럼 은색으로 광택을 내지만, 준의 방망이는 알리미늄이 아니다. 맞춤형 무기로 특수 합금으로 강도가 강한 물질이다. 그러니 저런 무식함을 자랑할 수 있는 것. 아무튼, 헬멧에 울리는 진동을 참지 못하고 무릎을 굽히며 한 명씩 자리에 눕는 요원들이다.
순식간에 일어난 상황에 3선의 요원 중 한 명이 다급하게 말한다.
" 지원! 지원 바람! 컥! "
지원을 요청하는 그의 이마로 날아든 용선의 반월도가 머리에 꽂혔다.
뒤를 동시에 돌아본 명치대인과 준.
용선이 실드를 풀고는 주먹을 쥐자머리에 꽂혀 있던 반월도가 '우웅'거리며 그의 손으로 돌아온다.
' 착. '
" 뭐해들. 재필이 잡아야지."
입꼬리를 올린 용선... 그러나 그들은 사방을 두리번거리며 발을 떼지 못한다.
" 형! 근데 이놈 어디에 있는지 알아? 이 넓은 곳에서... "
소처럼 천진난만한 눈으로 질문하는 명치대인의 시야에는 넓은 복도와 그 끝에 펼쳐진 여러 갈래의 계단들이 보인다. 아주 넓은 공간. 철제 빔으로 만들어진 계단의 수는...
안 새련다. 많다.
' 이야옹~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