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0화 〉59-인질극
상희는 교신을 끊고 재필의 지하 벙커로 날아간다.
" 오~ 역시 최신식이라 좋아. "
야! 야 이년아! 지금 최신식 스포츠 비행정에 감탄할 때가 아니라아옹~
빠르긴 빨랐다. 다른 소형 비해정에 비하면 이건 거의 대형 비행정의 속도다. 그 속도로 질주하는, 비행하는 상희. 지하 입구를 향해 겨냥한 미사일이 비행정 앞 범퍼가 열리며 쑥 튀어나온다.
앞 유리 캐노피에서는 형형색색의 가늠자 표시가 그곳을 표적으로 삼는다. 조종기의 점멸 버튼을 누르는 상희. 미사일은 연기를 내뿜었다. 벙커 입구가 표적이 되어...
' 슈~우~웅 '
정확히 타격한 공지대 미사일, 사막의 광활한 대지가 한 번 출렁인다. 파괴된 입구는 싱크홀처럼, 깊게 파인 구덩이의 모습으로 상희를 맞이한다.
그 안으로 쏜살같이 질주하는 승규의 비행정, 물론 운전은 상희가 하고 있다. 코를 후비던 손가락은 이제 보이지 않는다.그동안 볼 수 없었던 무표정의 상희는 운전 실력을 뽐내며, 깊은 웅덩이 안으로 질주한다.
어둠속에 비상램프만 존재하는 깊은 싱크홀, 비상 램프의 깜빡임이 무표정한 상희의 얼굴에 점멸하며 그녀를 비춘다.
어둠.
상희의 얼굴.
어둠과 상희의 얼굴이 몇 번 교차한다.
순간.
대지가 요동치기 시작한다.
' 쿠오오오오... '
그리고 들려오는 바람 소리, 그것은 바로 프로펠러가 작동하는 소리였다. 커다란 싱크홀에 큼지막한 프로펠러가 움직이는 소리가 그녀의 귀를 때린다.
" 뭐지? "
상희는 모른다. 이 공간이, 이 웅덩이가, 이 커다란 싱크홀이 어떤 용도인지. 그녀의 빠른 비행정에 울리는 경보음. 이내 음성이 나온다.
" 속도를 줄이세요. 전방에 충돌 위험이 있습니다. 충돌 10초전.. 9초전.. 8초전... "
상희는 소리 지른다.
" 썅! 여기도 아리가 있네. 조용히 해! "
상희의 눈앞에, 비행정의 헤드라이트에 비친 거대한 프로펠러가 돌아가려는 것이 보였다. 땅속에 지진이 일어난것처럼 흔들리는 구덩이, 그 안에는 라구나 만한 프로펠러가 서서히 돌아가려 한다. 경고음은 계속 흘러나온다.
" 충돌 4초전... 충돌 3초전... 비행을 멈추세요. "
멈추라는 경고 방송도 참 다정하게 말하는 스포츠 비행정의 또 다른 아리.
상희는 속도를 줄이지도, 멈추지도 않았다. 점점 빨리 돌아가는 프로펠러를 향해 돌진한다.
미. 친. 뇬. 죽고 싶어 환장했나 보다아옹~ 눈 뜨고 못보겠다아옹~ 아... 나 기절했지.
아무튼 서서히 돌아가는 프로펠러의 틈을 파고드는 상희. 비행정의 공간 정도의 틈을아찔하게, 스포츠 비행정이 통과한다. 그러나... 모두 통과하지는 못했다. 뒷부분, 꼬리 부분이 프로펠러 날개에 부딪혀 떨어져 나간다.
' 파삭 '
균형을 잡지 못하고 곤두박질하는 승규의 비행정.
" 이런! "
" 비행정이 추락합니다. 탈출하세요. "
" 알았다. 이년아. "
재필을 잡기 전에 아리를 잡을 것 같다. 상희는 점멸하는 단추를 누른다. 탈출 버튼이 위급함을 알고 깜빡이는 것, 과연 신식 비행정의 위상이다.
상희가 버튼을 누른다.
비행정의 천장이 떨어져 나간다.
조종석의 의자가 비행정과 분리된다.
공중으로 붕 떠오르는 낙하산.
승규의 비행정은 바닥으로 날개 잃은 최후를 맞이한다.
' 콰광쾅쾅쾅! '
유유히 낙하산에 의지한 상희가 하늘나라로 운명한, 기체를 알아볼 수 없는 스포츠 비행정 옆에 살포시 두 발을 디딘다.
승규가 이 사실을 알면... 어쩌겠냐아옹~ 저 뇬이 그런 걸... 비 오듯 눈물 흘리는 승규의 얼굴이 눈 앞에 아른거린다아옹~
상희가 불시착한 곳은 엘리베이터 앞이다. 승강장의 역할을 잃어버린 곳에서 상희는 단발머리를 찰랑거린다.
" 근데. 이젠 어디로 가야 하지? "
그래. 너답다. 아무 생각 없이 들이닥치더니만, 어디로 가야 할지도 모르는 상희는 커다란 웅덩이만 흘깃거린다.
재필은 이 상황을 모니터로 지켜보았다.
" 용케 들어왔군. 알아서 위험을 무릅쓰고 이곳까지 오다니. "
재필은 용선과 준을 쫓던 제스 중 4마리를 상희가 착륙한 곳으로 보낸다. 재필의 생각대로 움직이는 4마리는 이동을 멈추고 돌아선다. 상희가 있는 곳으로 크르륵거리며 발길을 돌렸다.
재필은 곧이어 다솜과 교신한다.
" 얼마나 걸릴 것 같아? "
" 5분 남았습니다. 이륙 준비는... 모든 위장막을 걷어내는 게 쉽지는 않습니다. 보스. "
" 5분... 정든 곳을 떠나려니 마음이 무겁군... 무거워. 다음 지점까지는 얼마나 걸리지? "
" 꼬박 일주일 걸립니다. "
뭐시라? 일주일! 얼마나 멀길래 일주일이나 걸린다는 거지? 참고로 마들가리 행성은 지구보다 크다. 몇 배나 큰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크다.
기본적으로 상희의 라구나가 일주일 동안 비행을 하면 행성의 1/3은 날아간다. 재필은 꽤 먼거리로 이동하려는 것 같다.
" 아무튼 이놈들이랑 함께 움직여야 하는 게 껄끄럽긴 하군. "
순간 용이가 재필의 방으로 기절한, 졸도한 건남과 명치대인을 양 어깨에 메고 들어온다. 바닥에 팽개치는 용.
' 철퍼덕 '
저 두 남자를 들고 오다니 힘이 좋은가 보다.
" 이놈들 어떻게 할까요? "
" 묶어 놔. 조만간 깨어 날테니. "
" 네. 보스. "
순순히 재필의 말을 이행하는 용은 출렁이는 쇠사슬을 꺼내 든다. 뭔가 세련되어 보이는 쇠사슬 끝에는, 손목을 채울수 있는 수갑이 대롱거린다. 용은 그 수갑으로 건남과 명치대인의 팔목을 채운다.
그리고 온 몸을 묶어 둔다. 그리곤 천장을 타고 내려온 고리에 그들을 메단다. 열중 셧 자세로 공중에 묶여 있는 건남과 명치대인은 아직도 졸도 상태다.
그럼 잠깐! 재필의 아지트 상황을 요약해 보면, 재필과 용은 건남과 명치대인을 생포했다.
용선과 준은 제스들에게서 도망치기 위해 어딘지도 모르는 곳을 뛰고 있다.
상희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어디로 가야 할지 고민하고 있고... 대충 이렇다아옹~
상희는 잠겨 있는 문 앞에 선다. 엘리베이터 문이다. 그것을 열기 위해 애쓰는 그녀. 생각보다 쉽게 문이 열린다. 좌우로 밀어낸 문을 열고 상희는 얼굴을 내민다.
" 당최 뭐하는 곳이래? "
그녀가 고개를 내밀어 좌우를 살피고 온몸이 빠져나올 찰나였다. 그녀의 눈에 제스가 다가온다. 재필이 보낸 제스가. 상희는 커다란 제스를 맞이한다.
" 워메! 저것들은 뭐여? 제스가 저렇게 클 수도 있는 거야? "
이걸 다행이라 해야 하나? 상희는 신형 제스를 두려워하기 보다 신기해한다. 그리고 제스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음성.
" 환영한다. 232. "
상희는 놀라워한다.
" 이야! 제스가 언제부터 말을 했지? "
" 아무튼 순순히 내 말을 따르는 게 좋을 거야. 그래야 목숨 부지할 수 있을 테니까. "
상희의 놀라웠던 표정이 사라진다. 팔짱을 끼는 그녀가 비웃음과 동시에 말한다.
" 이봐. 제스. 아니 재필. 너 그 안에 있는 거냐? 여튼, 내가 너 말을 들어야 할 이유가 있나? "
" 난 줄 어떻게 알았지? 내 목소리를 아직도 기억하나? "
" 인마. 내가 널 모르겠어... 그 목소리 잊고 싶어도 잘 사라지지 않더군. "
" 훗. 이렇게 만날 줄은 몰랐는데... 어때, 아직도 날 사랑하나? 훗. "
" 미친놈. 네가 한 짓을 생각하면 갈기갈기 찢어 죽이고 싶다고... 아무튼 내 위치나 말해. 이런 제스들은 치우고 말이야. "
" 예전과는 아주 다르군. 당돌해졌어. 그때도 지금 같았다면 정말 사랑했을지도 몰랐겠군. "
상희의 얼굴이 너무나 진지하게 변한다. 이 어디 코 후볐던 상희인가?
" 내가 지금의 나라면 너를 거들떠나 보았을까? "
그렇게 말하고 고함친다.
" 어딨어!! 쳐 죽일 새끼야!! "
쩌렁쩌렁한 그녀의 음성이 복도에 울린다.
" 워워. 진정하라고... 건남과 명치대인을 살리고 싶으면 말이야... 흐흐흐... 하하하... 네 식솔 내가 생포해 두었으니 제스만 따라 오기를... 음화하하하... "
재필의 비웃음 또한 제스를 통해 울려 퍼진다.
" 뭐? 건남옵하고 명치대인이 잡혔다고... "
" 그래... 그러니 허튼 생각은 안하는 게 좋을 거야. 조용히 제스를 따라와... 그럼 이들의 목숨을 연장시킬테니. "
" 아놔! 미쳐블! 이 새끼 너! 두 사람에게 허튼 짓 하면 그땐 사지를 뽑아 버릴거니까 알아서 해! 알았어!! "
" 네년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후훗. "
상희는 순순히 제스를 따른다. 인질이 되어버린 건남과 명치대인을 위해서라도...
그동안, 나를 안은 용과 준은 어떤 모습일까? 더 있냐옹~ 목숨 부지하려면 뛰어야 한다아옹~
" 젠장! 저 녀석들은 지치지도 않나? "
" 호로새끼들에게 이번에 잡히면 영원히 살아남지 못해. 히리가 깨어나지 않으면. "
졸도 패밀리의 일원인 나는 아직도 잠들어 있다. 쌔근쌔근. 알다시피 용선에 의해 치유술이 발동하면 극히 강한 힘을 보인다. 죽은 자를 살리고 떨어져 나간 사지를 붙인다. 말 그대로 궁극기다. 다만, 내가 기절해 있으면 사용할 수 없다. 지금 상황에서 용선이 죽으면 그 궁극기를 사용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 용선과 준은 죽어라 뛸 수밖에... 차라리 '졸도 패밀리'가 '짼다 패밀리' 보다 속 편하다아옹~ 아무튼 그러는 사이 5분이 지났다.
'쿠우우웅... 휘우우웅'
커다란 프로펠러가 상당히 빠르게 돌아간다. 상희가 불시착한 그 싱크홀이 이 근처에 12개가 있었다. 동시에 돌아가는 12개의 프로펠러.
바닥에 균열이 가듯 흔들린다.
뛰고 있는 용선과 준이 잠깐 멈칫거린다.
" 뭐지? "
" 신경 쓰지 말고 뛰어! "
4마리의 제스를 뒤따르던 상희도 흔들림에 서성인다.
" 이건 또 뭐여? "
아무튼 커다란 비행정이 이제 막 솟아오르려한다.
사막이, 드넓은 대지가 크게 흔들린다.
지각이 대지를 뚫고 나오듯 비행정이 사막 한복판을 뚫으며 튀어나온다. 사막 한가운데에, 꼭 큰 산이 만들어지는 느낌이랄까? 경사면을 따라 흘러내리는 모래가 파도처럼 밀려든다. 윈드서핑을 즐겨도 될 것 같다.
" 보스 이륙합니다. 자동 비행을 설정할까요? "
" 그래. "
웅장함.
초 상급 비행정의 모습이 3구역 사막을 뚫고 나왔다. 공중에 떠 있는 비행정은 그 규모가 어마어마하다. 지구 항공모함의 열 배 이상 크기라 생각하면 될 것이다. 저 덩치가 하늘에 뜰 수 있는 건가? 프로펠라 12개로...
이 모습을 라구나와 buzz에서 바라보고 있다.
라구나호에선.
" 다... 다해야 저기! "
" 저... 저게 뭐야? 자기야... 저런 거 나 처음 봐! "
buzz호에선.
" 우현 형! 저기! "
놀라며 성진이 초 상급 비행정을 가리킨다.
" 어허~ 말로만 들었던 그 비행정인가 보군... "
" 형 저희 어떻게 할까요? "
성진의 질문에 손톱을 질겅질겅 거리며 생각에 잠기는 우현. 곧이어 응답한다.
" 성진아! 고스트로 저 비행정에 숨어 있을 수 있을까? "
" 모... 모르죠. 안 걸린 보장은 없어요... "
" 음~ 모르겠다. 성진아! 지금 상태로 저 거대한 비행정에 숨어보자. "
" 형 말에 따르겠사옵니다. "
buzz가 고스트화 된 채로 유유히 그곳으로 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