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1화 〉60-포식자
'삐빅... 삐빅... 삐비빅.'
명치대인이 스르륵 눈을 뜬다. 눈앞에 보이는 것은 레이저를 눈에서 쏘며, 투명의 화면을 64개나 살피고 있는 재필이었다. 그런 재필은 제스를 조종하며 조용히 명치대인을 향해 말한다.
" 어서오게. "
매우 침착한 그의 음성에 명치대인은 뻐근한 몸을 움직여 주변을 살펴보려 하지만, 두 손은 묶였고, 발은 허공에 떠 있다.
" 으... 윽... 재필! "
명치대인은 말로만 듣던, 수배 전단으로만 보았던 재필의 면상을 게슴츠레한 눈으로 훑는다. 곧이어 기절, 아니 졸도해 있는 건남을 흘깃 쳐다본다.
" 에효~ 아직도 자나? "
그리고는
" 이봐! 재필! 우리 순순히 놓아주지. 살고 싶으면! "
재필은 화면만 주시하며 실소를 터뜨린다. 하기야. 지금 누가 누굴 살린다는 건지? 내라도 비웃었을 것이다. 재필이 비웃자 명치대인은 육두문자를 칠두문자, 팔두문자로 변형시켜 오만가지 욕사발을 시전한다. 욕 할머니 랩핑보다 더한 랩이 재필과 용 그리고 언제 돌아왔는지, 다솜의 귀에 쏙쏙 들어온다.
" 보스. 저 녀석 입 좀 틀어막을까요? "
듣다 못 한 다솜이 건의한다.
" 넵둬. 저러다지치겠지. "
아무튼 명치대인은 지치지 않고 끝까지 랩을 한다. 마들가리행성 '고등어 랩퍼' 프로그램에 출전하면 1등 감이다. 그때, 연구소의 문이 열린다. 커다란 제스에 이끌려 이곳까지 오게 된 상희. 재필과 눈이 마주쳤다.
62개의 화면이 공중에서 사라진다. 4 마리의 제스가 로봇처럼 굳어진다. 재필과 상희의 머릿속에선 서로의 기억이 재빠르게 재생된다.
" 오랜만이군. "
살짝 미소를 띄운 재필.
" 오랜만이지... "
재필과는 다르게 무표정한 상희가 그에게 묻는다.
" 잘 지냈어? "
곧이어.
" 난... 미친듯이 지냈어! 너란 새끼 때문에!!! "
상희가 주먹을 불끈 쥐며 재필에게 뛰어든다. 면상을 찌그러뜨릴 기세다. 순간, 다솜이 조막만 한 리모컨 스위치를 누른다.
상희가 온지도 모르고 육두문자 랩을 BGM으로, 둘의 만남을 BGM으로 삽입하고 있던 명치대인이 비명과 함께 랩을 끝낸다.
" 으아악! "
리모컨은 명치대인 팔목에 차고 있는, 그리고 목을 매고 있는 수갑과 경갑을 조종하는 기구다. 팔목을 조이고 목을 조르는 수, 경갑이 고통의 구덩이로 명치대인을 안내한다.
" 으악... 뭐... 뭐야... 아악! "
다솜의 경고로 인해 상희의 주먹이 멈춘다.
" 언니... 그만두시죠. 제가 가지고 있는 리모컨으로 저 녀석의 두개골을 부수기 전에. "
매우 침착한 다솜의 목소리, 그녀가 자신의 눈앞으로 소형 리모컨을 치켜세운다.
" 칫. "
" 오랜만에 만났는데 폭력을 쓰면 되나? "
재필의 여유로운 목소리가 그녀의 인내심을 시험하려 하는 것 같다.
" 됐구요. 그냥 이들을 놓아주시죠. "
" 훗. 그야 너가 순순히 우릴 따라주면. "
" 지금도 얌전히 따르고 있는 거야. 마음 같아선 지금이라도 네놈의 멱을 따 버리고 싶다고... 구역질 나는 새끼. "
쟤 콧구멍 후비던 상희 맞냐옹~ 눈에서 느껴지는 살기가 농담이 아닌거같다옹~
다솜이 버튼에서 엄지손가락을 뗀다.
" 흐흐흑... "
명치대인의 거친 숨소리만 방안에 흐른다.
" 니가 원하는 데로 이곳에 왔으니 저들을 풀어줘... 날 묶으려면 묶고... "
" 그럴까? 난 니들 모두가 필요한데... "
" 왜! 이 자식아! "
" 내 맘이지. 날 죽이려 했다고 들었는데... 그런 녀석들을 그냥 보내라고? 아무튼, 상희... 이제와 이야기하는데, 넌 너의 존재가치를 알고 있나? "
" 무슨미친 소리야... "
" 훗... 하기야. 내가 말해 주었던 기억이 있지만 니 기억속에는 없을 테니... "
상희는 재필이 하는 말에 의미조차 알 수 없었다.
" 아놔! 뭐라니? 미쳐블. "
「 희미한 실루엣이 건남의 눈에 들어왔다. 인영이 어느새 뚜렷해졌다.
" 할아범. "
" 그래... 이제 눈을 뜰 시간이구나. "
" 무슨 소리야? 눈은 뜨라니? "
" 상황이 여의치 않으니 본론만 이야기하마. "
어리둥절하게 명택을 건남은 바라본다.
" 지금 난 너의 머릿속에 들어와 있어. 이 모습은 내가 아니라 나의 형상일 뿐이고. 그냥 인공지능 메모리라 생각하게. "
"...... 어? 무슨 소리야. 할아범? "
" 아무튼, 깨어나게... 널 깨우러 왔으니... 그리고 다트 핀을 움직여... "
광명의 빛이라 해야하나 번쩍임과 함께 명택이 사라졌다. 해맑은 미소와 함께.」
" 흐흑... "
옅은 신음과 함께 건남이 서서히 눈을 뜬다. 상희의 '미쳐블!' 소리가 귓가에 들린다.
" 일어나셨군. "
재필의 목소리도 들린다. 건남 또한 명치대인처럼 천장에 매달려 있다. 발은 허공에, 목과 팔목엔 경갑과 수갑이 그를 옴짝달싹하지 못하게 한다.
그런 상태로 눈을 치켜 뜬 건남이 읊조리듯 속삭인다.
" 재필... "
드디어 세 명이 한자리에 모인 건가? 건남과 상희와 재필은 서로를 살핀다.
긴장감.
상희와 건남을 잡고 있지만, 은근히 긴장한 재필.
" 훗... 오랜만이군. "
" 흐흐흐... "
건남은 깨어나자마자 정신이 나간 듯 웃었다. 무언가 한 맺힌 그런 웃음이었다. 그리고 멈춘다. 웃음을...
" 너... 재필... 대체 무슨 짓을 하려는 거지? 왜 제스를 양성하는 거야? 무엇을 위해서... "
재필은 턱을 괸다.
" 훗... 왜? 그것이 궁금해... "
" 아니! 그냥 너라는 존재가 왜 그따위 짓을 하는지 모르겠어... 돈과 권력을 잡은 네가... "
" 제스의 존재가 이 행성에서 어떤 존재인지는 아나? "
"......"
" 그 제스가 마냥 괴물일 거라 생각했나? 이봐. 건남... 이 행성은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행성이 아니야... 인간의 역사가 아닌 제스의 역사로 쓰인 곳이라고. 그런 제스 때문에 우리가 있다는 건 모르겠지? "
" 말 어렵게 하지 말고 그냥 말해. "
" 훗... 이런, 이런... 쉽게 말하지... 난 영생을 원하는 것뿐이야...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없지. 후후훗. "
" 영생? 윤이란 전설 속 인물이 되고 싶다는 건가? "
" 그건 전설이 아니지... 역사라고... "
" 그렇다 치자... 그거랑 제스와 무슨 관계야? 저 많은 제스가무엇 때문에 필요한 거냐고? "
" 모르는 게 많군... 그래도 추적이 전문이면 나에 대한 정보는 어느 정도 가지고 있을 텐데. 그러다 보면 자동적으로 제스의 정보도 나올테고... "
" 그렇지만... 그건 다 추측일 뿐이잖아. "
" 그럼 왜? 윤이라는 그 인물이 사람들을 살육했는지 알고 있나? 그것도 제스를 사용해서? "
" 그 말을 믿는 거야. 재필... 말도 안 되는 전설 속 이야기를... "
" 안타깝지만, 그 이야기는 사실이라고 영생을 위해서 필요한 도구가 제스와 인간이라는 것. "
" 미친! "
" 넌 믿지 않아도 좋아... 난 그것을 입증했으니 행동하는 거라고... 왜 마들가리 행성의 수상과 권력자들이 제스를말살하려는지 아나? 행성인들의 안전을 위해서? 행성의 평화를 위해서... 웃기지 말라고 해... 그들은 알고 있거든... 일반 사람들이 모르는 일을."
재필이 무슨 소리를 하는 걸까? 미안하지만, 이 히리도 자세히 모르겠다옹~ 둘의 대화는 내가 시간 날 때 건남에게 물어 보겠다아옹~
재필은 뚫어지라 바라보는 건남에게 계속 이야기한다.
" 이 지하에만 제스가 있을까? 여기에서만 제스를 만들까? 나 말고도 만드는 사람은 없을 것 같아? 아쉽지만, 이 행성의 수상도 나와 똑같은 걸 원한다고는 생각하지는 않겠지? 너의 머리론... "
" 그럼 상희를 이용하려는 목적은 뭐야? 아무런 상관없는 상희에게 다가 갔던 이유는? "
건남의 목소리가 크다.
" 지금... 그것을 가르쳐 주려고 한다고... 상희의 존재 가치를... 후후훗. "
" 아놔... 야! 야 이년아! "
상희는 그제야 입을 뗀다.
" 내가 무슨 존재의 가치를 논하고자 하는 그런 인물이라고 지롤은... 여튼 풀어줘! 날 붙잡고 나머지 사람은 풀어주라고! 아놔... 완존 미쳐블! "
그때 건남의 머릿속으로 명택의 음성이 들려왔다. 그의 귀에만 들리는 프로그램 명택. 명택의 프로그램이 작동한 건, 라구나에서 경찰아저씨가 발견한 조그만 장치 때문이다.
명택이 홀로그램으로 나타나 주저리주저리 떠들어 댔던 그 기계가 바로 건남을 자극한 것이다. 일명 '프로그램 명택'. 명택이 죽기 전 만들었던 물건. 상희의 힘쌕에 잠들어 있던 프로그램 명택의 파일이 건남의 머릿속으로 잠입한 것, 블루투스 모드라 해야 하나? 아무튼 별걸 다 만들어 놓은 명택영감이다아옹~
' 건남아. 내 말 잘 듣게. '
건남의 머리속으로 흐르는 전자파가 뇌속의 신경을 자극한다.
' 그냥 재필의 이야기를 듣는 척하면서 내 말에 집중하게 '
" 상희는 윤이 남겨놓은 마지막 혈통이지. 제스를 움직이는 그 유전자가 우리에게는 필요하고... 그렇지 않나 다솜. "
끄덕이는 다솜.
' 아직 재필은 다트 핀에 대한 행방을 모르고 있다네. '
건남은 재필의 말을 듣는 척하며 명택의 음성에 집중한다.
' 하나는 잘도 써먹었더군. 이제 남은 건 두 개야. 이곳으로 너희를 안내한 다트핀과 내 가방에 있는 다트핀. '
" 그래서 다가갔었지... 상희에게서 얻을 게 많거든... "
" 미친쎄리... 내가 뭐? 윤? 그 준이 옵이 말한 역사녀의 혈통? 개. 수. 작 부리지 마. 별 미친 소리로 밖에 안 들리니까? "
상희의 말에 피식거린다. 재필은.
" 뭐... 너희는 믿거나 말거나... 지금 내겐 니가 필요하니까... "
' 두 발의 다트 핀으로 재필을 막아야하네. 기회는 두 번뿐이야. 재필의 뇌속에 있는, 내가 만든 제스의 조종기를 폭파해야 하네. '
건남은 의문이다. 그냥 죽여도 제스를 조종하지 못하는 것 아닌가? 운전자가 사라지면 제스는 가만히 있지 않겠는 가? 그런 의문을 프로그램 명택은 풀어준다.
' 저놈이 그냥 죽으면 제스의 활동 모드가 자동으로 풀리네. 기존의 제스들처럼 이곳저곳을 누비며 살아가겠지... 살육과 번식을 하며 또다시 행성 안의 포식자가 될 거라네. 그가 죽으면... 그가 만들어 놓은 수만의 제스들이 자유로이 세상으로 뛰쳐나와 이 행성을 공포로 몰아넣을 것이네. '
' 뭐? 수 만? '
잠깐? 이런 놈들이 수만 마리가 있다고... 재필이란 너란 녀석 언제 그렇게 많이 만들어 놓았냐아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