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2화 〉61-복화술
재필의 함선이 공중에 떠 올랐다.
기계음과 엔진음 소리가 적막한 사막을 가득 메운다. 서서히 떠오르던 함선이 어느 정점에 이르자 멈춘다. 태양 빛에 반사되는 거대한 함선.
정말 크다. 이런 걸 만들 수 있는 것인가? 저렇게 큰 비행정이 하늘을 날 수 있는 건가? 원형에 가까운 비행접시가 내 머릿속에 떠오른다. 우주인들이나, 외계인들이 타고 다니는 그런 종류의 미확인 물체가 공중에 떠 있다. 웅장함을 뽐내며...
그러는 사이 재필의 방안은 씩씩거리는 상희와 천장에 매달려 재필과 이야기하는 건남, 그리고 명치대인의 끝없는 욕지거리가 난무하고 있었다.
명치대인의 고성이 들릴 때마다 다솜은 리모컨을 누른다. 근성 있게 욕지거리를 하는 명치대인은 그때마다, 신음성을 토해냈다.
" 이제 곧 우리의 시대가 초래할 거야! 나만의 세상. 모든 이가 내 발 밑에서 허우적거리는 그런 세상 말이야. 어때, 너희도 내 사람으로 이제 나와 함께 하지 않겠나? 이건 절호의 기회라고. "
" 미. 친. 놈. "
' 이제 시작하지. 상희가 재필의 시선을 끌고 있을 때. '
프로그램 명택의 음성에 건남은 생각한다. 다트 핀을 움직이기 위해 머리를 꿈틀거린다.
" 후훗... 이거야 원... 상희 너에게 있는 힘을 끌어내면. 사실 이런 제스 연구에 힘을 쓸 필요가 없거든. "
" 시답지 않은 헛소리 듣기도 싫다. "
" 왜? 너가 협조하면 이들을 풀어주마. 어때... 내 옆에서 함께 하지 않... "
듣고 있던 명치대인이 소리친다.
" 누나! 누님! 저 새끼 말 믿지 마! 차라리 우리 생각하지 말고 조져 버려!! "
" 니들 마음대로 생각해. 이런 흥정 두 번 다시는 없을 테니. 흐흣. 후후후훗. "
그들의 대화를 듣고 있던 건남이 흘끗 명치대인을 바라본다. 그리고 복화술로 말한다.
" 명치대인 준비해. "
명치대인은 그의 말에,
'뭘 어쩌라고' 하는 표정을 지으며 복화술로 답한다.
" 준비라니? 뭘? "
순간 건남이 소리친다.
" 지금이야!!! "
고함과 함께 재필의 방안에 흘러 들었던 다트핀이 움직인다. 빛이 지나가는 것처럼 빠르게 명치대인을 묶었던, 쇠사슬을 향해 거침없이.
' 촤악 '
연이어 다트핀은 수갑으로 방향을 튼다.
' 채 쟁. '
명치대인이 바닥으로 떨어지는 순간에 맞추어 수갑이 나뒹군다. 목에서 경갑을 풀어 헤치는 명치대인.
" 어서 움직여!! "
건남의 지시에 명치대인은 허리춤에 있는 일본도의 검병을 움켜 잡았다. 모든 것이 순식간이었다.
재필과 용, 다솜의 얼굴에도 드디어 움찔이 찾아왔다.
일본도를 뽑아 든 명치대인.
위협을 느낀 재필이 의자를 뒤로 밀쳐내며 일어났다.
" 용아. 시간 좀 끌어. "
" 네. 보스. "
재필은 뇌를 움직인다. 잠들었던 제스를 움직이려는 모양이다.
다솜은 리모컨을 누르려 한다.
건남은 아직 경갑과 수갑에서 자유롭지 않기에, 그러나 그것을 의식한 명치대인은 360°회전하며 일본도로 쇠사슬을, 건남을 묶어둔 경갑, 수갑을 순차적으로 내리친다.
가속으로 인해 쉽사리 잘리는 쇠사슬 그리고 경, 수갑.
건남은 땅으로 떨어지며 낙법 하듯 구른다. 명치대인도 아닌 녀석이... 무릎을 꿇고 고개를 든 건남은 힙쌕에 손을 담근다. 여러 개의 다트 핀을 꺼내기 위해서 말이다.
용이 명치대인에게 달려든다. 명치대인 또한 용에게 달려든다.
건남과 명치대인이 풀려나자 상희 또한, 서슴없이 재필에게로 달려든다. 젠장! 동시 다발적으로 달려드는 상황이다. 뭐부터 말해야 되냐아옹~ 짜증 난다아옹~
1. 명치대인과 용.
일본도의 칼끝은 용의 울대를 찌르려 한다. 한치의 오차도 없이 목을 향한 찌름.
" 니들. 다 뒤졌어! 어디서 그 따위 것으로 내 머리에 고통을... 죽어랏 "
일본도의 파공음.
' 사삭. '
" 놀아주지! "
곤봉으로 명치대인의 일격을 막아선 용.
' 챙. '
명치대인이 뒤로 일 보 후퇴한다. 용은 그런 그에게 곤봉을 하나 던진다.
' 후후훅. '
곤봉이 회전하며 명치대인의 머리로 향하고 그런 곤봉을 무쇠 주먹으로 쳐내는 명치대인.
하단 베기.
곤봉을 쳐낸 명치대인이 일본도를 크게 휘둘렀다. 용의 무릎을 노리며.
용은 폴짝 뛰어 간단히 공격을 피하고 몸을 회전시킨다. 허리케인 처럼 돌아가는 용의 전신. 꼭 팽이 같다. 곤봉에 몸을 실어 옆구리를 노리는 용.
일본도를 세로로 잡으며 명치대인은 방어한다.
' 챙 ' ' 퍽 ' ' 솨 악 '
무기에서 들리는 별의별 소리가 난무한다. 치열한 접전. 몇 번의 합이 왔다 갔다 하지만 누구 하나 지치는 기색이 없다.
2. 상희와 재필.
무작정 뛰어드는 상희는 재필의 안면을 노린다.
" 이 날을 얼마나 기다린 줄 알아! "
스트레이트.
쭉 뻗은 그녀의 주먹이 날카롭게 재필의 면상으로 날아간다.
" 내가! "
뒷걸음치며 고개를 살짝 튼 재필이 그 펀치를 피한다.
" 너란 녀석을! "
재필이 살짝 피하자 자세를 고쳐 잡은 상희는 반대쪽 손을 치켜든다. 그리고 그 손으로 재필의 목덜미를 움켜 잡으려 한다.
" 살려두면! "
그녀의 손이 거세게 다가오자 재필은 고개 숙여 피한다. 그런 그에게 연이어 공격하는 상희.
앞 발 밀어치기.
스프링처럼 무릎을 튕기며 쭉 뻗은 상희의 오른발.
" 232가 아니다! "
재필이 뒤로 삼보 후퇴하며 회피한다. 그것을 노렸던 것일까? 상희가 오른발로 도움닫기를 하며 붕 떠올랐다.
플라잉 니킥.
2m정도 떨어진 재필의 턱이 순식간에 가까워진다.
" 나! 난! 232다!! "
' 퍽! '
재필의 턱주가리가 일격을 당한다.
고개가 열린 채 떠오른 재필.
상희가 땅바닥에 발이 닿자 재필은 허공에 2초쯤 뜬 상태로 날아간다. 그리고 등이 바닥을 마주하며 떨어진다.
' 쿵. '
깨끗한 한 방이었다.
씩씩거리며 어깨가 위아래로 들썩이는 상희. 재필은 조용하다. 기절한 걸까? 아니면 죽었나? 고요하게 재필은 누워있다. 누워있던 재필이 잠깐 동안 진정이 되었나? 씩씩거리는 상희를 약간의 고개만 들어 바라보며 정신 나간 사람처럼 비실비실 웃는다.
" 흐흐흐... 흐흐흣... "
그리고는 엉덩이를 바닥에 붙인 채 웅크리며 앉는다.
" 흐흐흣... 흐흐흐... "
그렇게 천천히 일어서며.
" 재. 밋. 어... 내 깟년에게 맞을 줄이야... 흐흐흣. "
그러고 보니 상희가날린 킥을 얻어맞고 아무런 데미지가 없는 재필이다. 분명 2m는 날았는데, 분명 턱 깨지는 소리가 뚝배기 깨지듯 들렸는데... 저렇게 일어설 수가 있는 걸까?
일반인이 상희의 저 킥에 맞으면 백 퍼센트 죽었다. 기절하던지... 근데 저 여유는 뭐지? 재필이 두목이라 '두목 패시브'가 적용되었나? 아무튼 일어선 그가 웃음을 멈춘다.
순식간에 표정이 굳어진다.
" 그냥. 내 말을 들었으면... 고통이란 걸 느끼진 않았을 텐데. "
그렇게 말하고 눈을 부릅뜬다.
눈동자가 갈색에서 은색 광으로 변한다.
그와 동시에 커다란 재필의 방에 번쩍임이 일어나고 그 섬광에 눈을 가리는 상희. 옆에서 싸우던 명치대인과 용의 결투를 잠재우기에 충분한 섬광이었다.
빛이 사라진다.
상희가 가렸던 손을 치운다.
어느새 주먹이 그녀의 눈앞에 있다.
' 팍! '
가냘픈 그녀의 목이 뒤로 꺾인다.
재필처럼 그녀 또한 공중으로 붕 떠오른다.
그와 동시에 로봇처럼 굳어 있던 제스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 크하하하... "
재필이 미친듯이 웃는다.
쓰러진 상희는 끙끙거리며 얼굴을 손으로 문지르고 있다.
웃음을 멈춘 재필이 말한다.
" 니들과 더 놀아 주고 싶은데 아쉽군. 이제 떠날 시간이야... 내가 만들어 낸 제스들이 너희와 놀아 줄 동안 우린 이곳을 떠날 거 같군. "
싸움을 멈춘 명치대인이 재필을 노려본다.
" 뭔! 개수작이야! "
" 아무튼 즐거웠어. 이제 니들은 잠들 시간이군... 죽이진 않을 테니 제스들과 함께 하라고. "
그렇게 말한 그가 다솜과 용에게 눈을 흘긴다.
" 가 볼까. "
함선의 조종실로 몸을 돌리는 재필. 공격자세를 취했던 용이 자세를 풀며 그 뒤를 따른다. 물론 다솜도. 셋은 그렇게 라구나 대원들을 등지고 사라진다. 거구의 제스를 남긴채 말다아옹~
상희는 쓰러진 채 절규한다.
" 거기서! 거기 서라고! "
재필과 그의 일행은 쳐다보지도 않는다.
' 지금이야 건남! 다트 핀을 던져! 재필의 목 뒤로... '
건남은 프로그램 명택의 지시를 이행한다.
그의 이마에 주름이잡히자, 명치대인의 쇠사슬을 풀어주었던 다트핀이 미사일처럼 날아간다. 재필의 경추를 향해.
' 솨아악 '
' 팅. '
그러나 다트 핀은 제 역할을 수행하지 못한다. 재필이 사라지는 뒤로 겹겹의 투명 문이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고 있었기에...
' 턱. 턱. 턱. 턱... '
재필이 이동할 때마다 생겨나는, 떨어지는 투명의 장막. 그것에 막혀 다트핀은 비행을 멈추고 바닥으로 떨어진다.
' 탁. '
건남은 아쉬움에 안타까운 표정을 지은다. 그러나 지금 그렇게 한가하게 탄식이나 할 때가 아니다. 재필이 사무실을 빠져나가고 움직이기 시작한 4마리의 제스가 위에서 아래로 상희와 건남, 명치대인을 쳐다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쓰러진 상희에게 낫이 하나 떨어진다.
탄식하고 있던 건남은 몸을 날려 상희를 덮치고 옆으로 뒹구른다.
' 솨악 ' ' 파지직 '
제스의 팔이 바닥에 박혔다. 그 팔을 다시 뽑아내는 제스.
아찔하게 피한 건남과 상희 얼굴을 마주보고 둘은 서로를 부둥켜 안고 있다.
" 괜찮아? "
" 어. "
빠르게 일어서며 공격해 올 제스를 향해 몸을 추스린다.
" 이 망할 재필녀석 어디로 간 거야? "
" 누님... 그 보다... 저 녀석들 감당할 수 있겠어? "
" 몰러! "
4마리의 제스, 그리고 상희와 건남, 명치대인의 거리에선 오묘한 긴장감이 흐른다.
짐승과도 교감을 나누는 라구나 ... 이젠 정말 어떻게 할거냐아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