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9화 〉68-난투극
10년 전 다래의 사건 이후, 충격으로 지내 온 덥수룩했던 건남이 움직이기 시작한 건, 아마도 그때였을 것이다.
" 당신이 나를 찾아 돌아다닌다는 그 사내인가? "
OEN이 문을 열고 들어오는 건남을 맞이했다.
" 그렇습니다. "
실험실 같았던 재필의 아지트로 건남은 발을 들여놓았다.
" 이렇게 쉽게 저를 허락해 주신 것을 감사히 여깁니다. "
건남은 큰절이라도 할 기세였다.
" 뭔가. 두드리면 열린다고 하지 않았나? 행성 수비군도 찾아내지 못한 내 연락망을 뚫었다는 것에 놀랐었지. 어떤 인물이길래... "
" 쉽지만은 않았습니다. "
" 그렇겠지... 그 실력으로 재필을 찾을 수도 있지 않았나? 왜 날 찾았는지 의문이군. "
" 아직 그를 찾는다고 해도 힘으로 그 녀석을 처치하기에는 무리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
" 영특하군. 그래서 나에게 도와 달라는 건가? 자네를...? "
" 네. 그렇습니다. "
" 푸하하하... 이봐. 건남. 자네는 나에 대해서 아는 것이 없는 것 같군. "
" 네? 그 말은? "
" 난 누구를 도와 누군가를 죽이는 그런 사람이 아니야... 내 목표를 위해 그냥 거슬리는 사람을 죽이는 것뿐이지. 내가 자네를 위해 도와줄 이유라도 있나? "
" 그... 그렇지만... "
" 아무튼, 난. 재필에게 부탁한 것이 있었지? "
그가 상희를 바라봤다.
" 이 여자의 유전자를... 허나 지금은 내가 직접 움직였다네. 자네가 재필을 잡는 이유가 있듯 나도 재필에게 등을 돌려야 할 시기 인 것 같군. "
" 무슨 말씀이신지? "
" 그런게 있지. 너무 많이 알 필요 없어... 내가 지금 자네를 도울 수 있는 건 이뿐이야. "
그렇게 말한 OEN이 건남에게 명함 한 장을 건네주었다. 명함을 받은 건남은 유심히 살폈다.
' 공작새. 명택 서. '
" 그자를 돕게나. 그러다 보면 자네의 길이 열릴 거야. 그 시간이 빠를 수도, 늦을 수도 있지만, 기회는 올 걸세... 그리고 이 여자... "
건남은 OEN의 시선을 따라 침대에 누워 있는 상희를 바라봤다. 건남이 처음으로 상희를 만난 것이 그때였다. 옴짝달싹 움직이지 못했던, 그런 그녀를 말이다.
" 어떠한 식으로든 또다시 만날 사람이니 잘 기억해 두고. 그녀의 주변에 언젠가 재필이 나타날 테니. "
" 그럼 저를 거두어 주시는 겁니까? "
" 거둘 거라도 있나? 그냥 내가 자네에게 지금 해 줄 수 있는 건 다 해 주었어. 이 여자를 이용하면 자네의 뜻을 이룰 수 있겠군. "
건남은 상희에게 급히 관심을 가졌다.
" 이 여자가... "
" 그래. 자네가 재필을 죽이기 위해 날 찾았다면... 내가 자네에게 줄 수 있는 것은 이뿐이라네. 그 여자에게서 벗어나지 않으면 꼭 기회가 주어 질 거야. 그 시간이 언제인지는 모르겠지만. "
무언지 모를 오묘한 기운이 OEN의 아지트에 감돌았다.
- 재필의 함선 안 -
" 그래서 옵이 내 옆에 3년 동안이나 붙어 지낸 거야? 날 이용해서 재필을 잡으려고... "
상희의 진지한 모습이 건남의 눈에 비친다.
" 상희야. 그건 사실이지만, 악의로 다가온 건 아니야... "
" 악의든 기던 그때 그럼 내게 실험했던 저년이랑, OEN을 도와준 건? 내 몸에 몹쓸 짓을 한 그 자식을 도와준 건? "
" 상희야! "
상희가 점점 건남에게로 다가온다. 한 걸음, 두 걸음... 서서히 다가오며 그녀는 분이 안 풀린 듯 계속 말한다.
" 그렇게 날 조롱하는 게 기뻤어? 즐거웠냐고? "
" ...... "
어느덧 그녀가 그의 코앞에 와 있다.
" 내 눈 똑바로 봐! "
건남과 상희가 서로 마주 본다.
" 왜 내게 그런 짓을 한 녀석들과 너가 한패였냐고? 이 모든 게... "
건남의 멱살을 잡는 상희.
" 이 모든 게 다 거짓이었냐고? "
건남이 상희의 눈을 피했다.
' 짝! '
상희의 손바닥이 건남의 뺨을 사정없이 후려쳤다.
명치대인은 이 상황이 이해 가지 않았지만, 그녀를 말리기 위해 성큼성큼 걸어온다. 그리고 상희의 손목을 잡는다.
" 누님! 갑자기 왜 이래? "
" 놔! 놓으라고... 이 새끼 우리를 가지고 놀았어. 여태껏 우릴 이용했다고! "
명치대인은 발버둥 치는 상희를 붙잡으며 건남을 쳐다본다.
" 형? 이게 뭔 소리래요? "
건남은 말이 없다.
" 답답하게 굴지 말고 말해 보세요. 누나 왜 저런 건지... "
이내 한 숨을 쉬는 건남.
뒤에서 상황을 지켜보던 용선이 건남을 대신하려는 걸까? 목소리를 깐다.
" 여기까지 했으면 됐고, 상희씨 하고 건남의 문제는 나중에 재필이 처리하고 나서 둘이 풀어. 지금은 목표가 코앞에 있는 시점이니. 서로 그놈 잡을 생각만 하라고. "
용선은 분개한 상희와 의욕 잃은 건남을 번갈아 쳐다본다.
" 알았어요. 형. 상희야 진정하고 나중에 다 설명할게... 지금은 이놈에게만 신경 쓰자. "
" 웃기셔. 재필이 잡고 나면 영원히 남남인 줄 알라고! 알았어? "
명치대인이 붙들고 있던 손을 풀어내며 그의 뒤통수를... 상희가...
' 퍽! '
명치대인의 안경이 돌아간다.
" 아얏! 왜 나한테 신경질이야? "
" 야! 이년아! 됐고 앞장서. "
" 넵. 누님. "
명치대인은 다솜이 걸어왔던 길을 따라 앞으로 향한다. 그 뒤를 상희와 준이 따라간다.
건남의 어깨를 어루만지는 용선.
" 너. 이 일이 끝나면 라구나하고 영원히 이별할 필인데? "
" 모르겠습니다. 다솜이가 재필의 오른팔일 줄이야... "
" 저 기억 술사를 알고 있었어? "
" 네. 아주 오래전에... 그땐 어린아이였는데. OEN의 딸이었죠. "
" 뭐? OEN? "
" 네. 그자의 딸입니다. "
" 헛. 이건 또 뭔 시츄레이션이야. OEN과 재필이 연관되어 있는 거야? "
" 그랬었죠. 예전에... 아무튼 형님 가시죠. 형 말 따라 재필이 코앞에 있는데. "
용선도 조금 놀란 것 같다.
" 그래. 그럼 가볼까. 재필을 잡는 그 역사적 순간에 불을 지펴 보자고! "
건남과 용선은 상희의 뒤를 밟는다.
결의에 찬 네명의 인원.
그들은 뛰고 있다. 여기까지 뚫고 들어온 상황이 빠르게 스쳐 지나간다.
' 타닥. 타닥. 타닥. 타닥. '
함선 바닥에 들리는 쇠 밟는 소리가 한동안 들리고 순간 멈췄다.
" 보스. 놈들이 문 앞까지 다가왔습니다. "
" 훗. 다솜도, 용이도 당한 건가? "
그렇게 혼잣말한 재필은 손가락을 까닥거린다. 그러자 재필의 전투대원들은 레이저건 가늠자에 눈을 가져가며 문을 겨냥한다. 무수히 많은 빨간점이 문에 그어진다.
정적... 그리고 안내방송.
" 10분후 모든 시스템이 정상화됩니다. 출발에 대비하시기 바랍니다. "
" 너무 많은 시간을 허비했군. 너무 많이 허비했다고... "
재필이 고개 들어 함선의 천장을 바라보고 눈을 질끈 감는다.
' 콰광쾅 '
순간, 조종실의 문이 상황실로 날아간다. 통째로 뜯긴 채.
동시에 방아쇠를 당기는 전투 대원들.
레이저 빔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뚫린 문으로 연사 되었다.
' 츄주중. 츄중. 츄주중. '
복도를 뚫고 지나는 광선, 그 집중력에 함선이 추락할 기세다. 레이저건에서 빛이 번쩍거릴 때마다 눈을 감고 있는 재필의 얼굴이 점멸하듯 환하게 빛났다, 어둡기를 반복한다. 격발 시간이 끝나자 함선은 고요의 시간이 찾아왔다. 경계하며 가늠자에 눈을 떼지 못한 대원들.
' 솨사삭~ 솨사삭~ '
문 밖에서 다트핀이 여러 개 날아든다. 놀란 대원들이 난사하기 시작한다.
' 추즁. 추쥬중~ '
' 위잉~ '
이것은 바리깡이 방패로 변하는 소리다.
빔을 막아내며 뛰어드는 상희. 바리깡에 부딪혀 레이저 빔이 여러 각도로 굴절된다.
" 나와! 재필!! "
상희의 사자후필 음성이 조종실을 압도한다.
이미 조종실은 난장판이었다. 문이 날아가고 나서부터 조종석의 대원들은 비명을 치며 어디론가 도망치기 시작했다. 재필은 눈을 떠 그 광경을 지켜만 보았다.
과연? 무사히 재필은 이들을 떼어내고 이곳을, 이 광활한 사막 벌판을 떠날 수 있을까? 상황으로 봐서는 쉬운 문제가 아닌 것 같다. 조종수들이 모두 자리를 비운 상태였기에...
" 훗... 모두 도망가기 바쁘군... "
침착하게 혼잣말을 한 그가 한심하다는 투로 우왕좌왕하는 인원들을 살핀다. 그리고 조종실로 뛰어든 상희에게 시선을 돌린다.
" 허허허... 굉장해. 여기까지 잘도 쳐들어왔군. "
상희와 재필의 눈이 마주친다. 둘의 시선이 마주치자 보이지 않는 스파크가 서로의 마음속에 튄다.
그녀의 뒤로는 전투 대원들과 육박전을 하는 라구나 일행들이 보인다.
구르기를 선보이며 일본도의 상, 하단 베기를 마구 날리는 명치대인, 그가 일본도를 휘두를 때마다 목과 팔과 다리가 조종실에 쌓여간다.
용선의 반월도가 그어진다. 완전무장한 전투 대원의 방어구가 무색하다. 방탄 헬멧, 방탄복이 무슨 소용인가? 라구나 식구들의 무기는 총이 아니기에...
준은 특유의 힘으로 그들의 손목과 목을 꺾으며 근접기술을 선보인다.
' 우두둑. 빠각. 드득 '
육중한 그의 몸을 대원들은 상대하기 버거워 보인다.
순간, 상희의 관자놀이에 붉은 점이 그어진다. 눈치채지 못한 상희는 재필을 째려보며 공격 타이밍을 재는 듯하다. 관자놀이의 붉은 점이 빠르게 점멸한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재필.
" 용케 여기까지 왔는데 좀 쉬어야겠어. "
" 뭔 개소리야! "
재필은 입꼬리를 올리며 말한다.
" 쏴!!! "
' 핑융. '
붉은 광선이 그녀의 눈앞으로 비켜 나간다. 광선이 날아온 곳으로 고개를 돌린 상희, 그녀의 눈에 총구를 자신에게 겨냥하며 쓰러지는 전투 대원이 보인다.
문 앞에 다트 핀을 들고 있는 건남. 그가 상희를 바라보고 소리친다.
" 상희야! 피해!! "
그 소리를 들은 그녀가 재필에게 고개를 돌린다.
플라잉 펀치.
재필이 점프하며 주먹을 쭉 뻗어 상희의 안면을 노리고 있다.
잠깐 한눈팔았던 상희가 두 팔을 크로스 하며 얼굴을 가드 한다.
' 퍽! '
재필의 발이 바닥에 떨어지기 무섭게 후속타를 날린다.
브라질리언 킥.
그녀의 얼굴로 향하는 재필의 두꺼운 다리, 상희는 몸을 사선으로 틀며 공격을 피하려 하지만 그대로 내려찍는 재필.
' 파박! '
어깨를 짓눌린 상희가 무릎을 꿇는다.
" 읔! "
재필은 연이어 무릎 꿇은 그녀의 정수리를 향해 주먹으로 내려찍는다. 무릎 꿇은 상희가 옆으로 구르며 간신히 공격을 피한다. 오뚝이처럼 일어서는 그녀가 가격당했던 어깨를 매만진다.
" 흥! 어딜... 여잘 때리기나 하고... "
니가 여자냐아옹~
" 퇫! "
어디서 여자가 침을 뱉냐아옹~
아무튼 상희의 눈매가 매섭다. 내 눈엔 그녀가 아니다. 그놈이다. 그런 매서운 상희가 단도를 움켜잡았다.
" 이젠 네 녀석의 숨통을 끊어 주지. "
" 훗. 니년 한테 내가? 후후후... "
재필의 양팔에서 전류가 흐른다.
' 지이잉. 지이잉. '
" 그래 이 자식아! "
상희가 재필을 향해 달린다. 단도를 손에 쥐고.
" 여태껏. "
단도의 뾰족한 앞날을 손으로 잡은 상태. 힘껏 던진다.
' 쉬이익 '
" 날 능멸한. "
재필이 자신에게 날아오는 단도를 향해 팔을 뻗는다. 손바닥을 펼친 체.
' 파지직 '
재필의 손끝에서 투명한 것이 날아간다. 꼭 닌자들이 쓰는 표창 같다. 그에게로 날아오는 단검과 투명한 표창이 부딪친다.
' 챙. 팍. '
붉꽃을 튀기며 땅으로 떨어진다. 그 사이를 상희가 뛰어나가며 바리깡의 손잡이를 누른다.
" 너! "
방패로 변한 바리깡으로 재필을 후려친다.
" 살려두지않겠다!! "
' 퍽! '
재필이가 과연 살아나갈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이 뇬은 재필을 붙잡아 현상금 받을 생각 보다. 옛일에 집착하여 그냥 죽여 버릴 것 같다는 생각이 내 머릿속을 후벼판다아옹~ 정신 차려! 상희야아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