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76화 〉75-춤꾼 (76/179)



〈 76화 〉75-춤꾼

아무튼 디제이가 볼륨을 서서히 올렸다.
' 쿵짝. 쿵짝. 쿵짝. 쿵. 쿵. 쿵. '
스피커의 앰프가 들썩거린다. 파도라도   같다. 그 음악에 맞추어 괴상한 춤을 추는 명치대인. 근데 묘하게 음악과 잘 떨어진다.
턴과 손동작의 어우러짐 뒤 텝댄스를 추는 듯한 동작이 몇 번 교차한다. 음악의 템포가 급히 변한다. 그러자 명치대인이 공중으로 점프했다. 공중에서 '구르기'를 펼치며 착지한다.
자신의 필살기 '구르기'를 춤에 대입한 그였다. 듣도 보도 못한 춤에 관객들은 탄식과 환호성을 지른다.
" 우~ 와! "
" 쩌내! "
" 캬악~ 우유빛깔 명.치.대.인. "
승마복의 남자도 의외라는 반응이 눈 밑에 깔렸다.
마지막 피날래.
명치대인은 승마복 남자의 사타구니로 주먹을 뻗다가, 그대로 프리즈 한다.
5cm 앞에서 멈춰선 명치대인의 주먹.
승마복의 남자가 놀라며 중요한 부위를 두 손으로 가린다.
살짝 정지 모션에서 마지막 음악이 '팍'하며 사라지자, 승마복 남자의 거시기를 재는 흉내로 명치대인은 춤을 마친다.
엄지와 검지의 간격이 1cm였나? 아무튼 농락당한 기분. 왠지, 명치대인이 댄스 배틀은 이긴 것 같았다.
명치대인은 조용히 자신의 자리로 뒤돌아 간다. 그런 그를 어이없게 쳐다만 보는 승마복의 남자.
명치대인에게 몰려드는 군중들.
고개숙인 명치대인은 이 상황이 너무나 싫었다.
" 나 참. 조용히 있다가 가려 했건만, 이놈의 인기는 언제나 꺼지려나... "
기고만장한 눈빛엔 나르시즘이 녹아있었다.

- 마들가리력 233년 -

라구나 bar는 변화가 있었다.
상희를 필두로 명치대인과 다해, 건남이 움직였던 작년. 건남은 사라졌다. 사라졌다기 보다는 상희와의 관계에서 스륵 빠져나갔다는 것이 옳을 것이다. 상희는 건남을 용서하지 않았다.
" 건남옵. 이제 당신을 믿을  없어. 어떻게 그 모든 것을 숨길 수가 있냐고. 그것도 3년 동안! "
그녀의 말에 스스럼없이 건남은 떠났다.
변명하기 싫었다. 언젠가 이런 날이 올 거란 걸 그는 예상했지만, 정이란 걸 가졌었나 보다. 마음이 아픈 건 사실이었다.
허나, 어쩌겠는 가.
믿음.
그것이 사라진 사냥꾼에게는 치명적인 약점이었다. 팀의 균열을 막기 위해서라도 상희는 그를 내려쳐야 했다.
건남도 그 사실을 인정하기에 라구나의 문을 서슴없이 열고 나가야 했다.
이별.
그렇게 라구나는 '재필' 사건 이후 건남이 탈퇴한 상황이었다.
건남의 부재는 생각보다 컸다. 정보의 능력이 빠진 라구나. 일을 처리하기 위해 범인들의 정보를 알아내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하루면 끝날 일을 며칠씩 걸려 찾아야만 했다. 그래서 상희는 두 사람을 영입한다.
" 옵들요. 그간 건강하셨지요? "
" 뭐. 재미있는 1년이었지. "
어디서 많이 듣던 목소리였다.
" 성우옵. 경찰직을 내려놓은 건 후회  해? "
" 그럼. 억울하게 끌려간 걸 생각하면 치가 떨린다고. "
성우는 자신이 좋아하는 병맥주를 쭈욱 들이켰다. 그런 그를 바라보는 이가 있었으니...  달라붙은 상의에서 대흉근이 꿈틀거린다.
  차림.
이두박근은 힘을 주지 않아도 볼록 튀어나와 있다. 어디서 운동 좀 했나 보다. 그런 그가 성우의 등을 토닥인다.
" 뭐.  정도 가지고... 난 말이야 10년 동안을 숨어지냈다고... 그 일로 인해서. "
그래. 10년 동안 숨어 지내며 운동만 했나 보다. 준의 토닥임에 상희가 제안을 했다.
" 옵들 이제 라구나에서 새로 시작하시지요? "
성우와 준이 마시던 맥주를 내려놓았다.
" 뭐? "
" 사냥꾼 하라고? "
상희가 미소 지었다.
" 네. 건남  자식 떠나고 정보 활동할 사람이 필요해서요. 두 옵이 제격인 것 같아요. 재필을 잡으면서 팀 워크도 생긴 것 같고. "
" 하기야 준 선배의 능력이라면 건남 못지않은 현상범 정보의 수집력이 있으니. "
" 허허... 그럼 여기 라구나 방 넓혀야 하는 거 아닌가?  남자 녀석과 한방에서 지내기 싫은데. "
" 당분간 명치대인 방에서 셋이 지내세요. 아니지 넷이 지내세요. "
" 넷? 이놈이랑 둘이 지내는 것도 아니고 또 있단 말야? "
" 그럼요. 우리 일이 많아져서 인원을 늘렸다구요. "
그랬다. 재필을 잡고 그 이후로 사건 의뢰가 끊이질 않았다. 가게 문을 열어 술을 판지가 기억에 가물가물했으니.
" 누군데? "
성우가 궁금하듯 말하려는 찰나. 명치대인 방에서 누군가 나왔다.
부스스한 엉겨 붙은 머리를 다듬지도 않고 웃통을 벗은  남자.
근육들이 단단한 철갑처럼 몸을 둘러싸고 있었다. 준처럼 운동 좀 했나 보다.
" 뭐야? 왜 이리 시끄러워? "
그는 창기였다. 게슴츠레한눈은 '나아직  들깼다.' 하는 것 같았다. 그런 그가 성우와 준을 보자 눈빛이 돌변했다. 창기의 들깬 눈빛이 초롱초롱하게 빛났다.
" 어이. 이 사람들이 왔으면 인사라도 해야지! "
반가움이 그의 음성에 묻어 나왔다. 그가 냉장쇼케이스 안의 맥주를 손에 들었다. 녹색 빛이 감도는 병을 서슴없이 꺼냈다.
" 아놔! 이놈의 양반은 일어나자마자 그게 들어가? "
" 아침 식사해야 하지 않겠니? "
알코올 중독인가? 아침을 맥주 한 병으로 가볍게 시작하려나 보다. 아니다.  병, 세 병, 네 병... 깍지. 마디마디마다 술병을 끼고 있다.
" 조촐하게 마시면서. "
조촐. 그에겐 그게 조촐인가 보다.
" 이 양반아. 그냥 짝으로 가져오시죠! 으이구. "
상희의 얼굴은 구겨진다.
" 오랜만에 남자들과 어울리려면 이게 최고지. "
창기옵. 지금은 낮이라고! "
" 술은 말이야. 아침 햇살과 눈을 뜨며 마셔야 그 달달함이 더 한단다. "
라구나의 음성지원 아리가 토를 단다.
-창기님. 지금은 12시가 넘은 낮입니다.
그래! 애미 애비도 몰라본다는 낮술을 그것도 한 병도 아닌... 아리야. 간만에 너 말 잘했다. "
- 12시 이후로는 하이네킵 판매량이 급증하니. 다른 술을 권장합니다.
" 아놔~ 뒷말은 뭐니! 지니로 바꾸든가 해야지... "
말뿐인 상희였다. 언제부터 바꾼다 했던가? 아무튼, 이제 재고 파악까지 관할하는 인공지능 아리의말에 힘을 얻어, 창기는 손가락 깍지에  술병을 다른 술과 바꾼다. 골고루.
그렇게 상희의 투덜거림을 뒤로하고 오랜만에 만난 그들은 회포를 풀기 시작했다. 지들 돈  나간다 이거지.
재필을 잡던 이야기는 빠질 수가 없었고, 건남이 사라진 이야기도 빠질 수가 없었다.
그럼 옵들 이제 라구나 팀원으로 일하실 거죠? "
" 그래야지... 놀고먹을 순 없으니. "
" 참. 그냥 성우하고 나는 따로 나와서 살게. 일 있을 때만 콜하라고. "
" 그럼 그렇게 할게요. 다만, 근처에서 생활하는 거로. "
" 그러지. 그나저나 명치대인은 안 보이네? "
" 며칠 휴가 보냈어요. 다해랑... 둘 다 요새 지처 보이길래. "
성우가 창기를 보고는.
" 창기형은? "
상희가 창기를 곁눈질하며.
" 이 양반은 갈 때 없어요. 어제도 술 먹고 뻗었다고요. 그리고 일어나자마자 또 술. "
창기가 웃는다.
" 뭐 더 있냐? 술이 들어가야 세상이 환하게 보이더라~ 큭큭큭. "
상희가 bar를  했으면 어쩔. 웃돈 안 들이고 열심히 술을 연신 퍼마시는 창기였다.
" 그럼 우린 그만 가 볼게. 필요한  있으면 연락하고. "
" 그렇게 할게요. 옵들. "
" 그러고 보니 히리도  보이네! "
그래 내가 안 보일만 하지. 난 다해 방에서 열심히 낮잠에 취해 있었다. 그들이 부산하게 라구나를 빠져나가는 소리가  귀에 파고든다.
조용히 좀 꺼지지... 이야옹~
알다시피 나는 고양이다.
이곳에서 치유 담당인 나.
나는 고품격, 프리미엄, 흰색 페르시안 고양이... 눈은 파랑과 녹색인 오드아이이다.
 능력은 마들가리행성에서 뛰어나게 발휘하였다.
음하하하... 내 덕에 악의 축이 사라졌다. 그 놈, 재필을 잡는 데 꼭 필요했었으니, 3대 흉악범을 잡아낸 1호 고양이로 마들가리 역사에 길이 남을 것이다.
아무튼 라구나는 1년 동안 여러 범인을 잡아들였다. 비록 건남이 빠졌지만, 들어오는 의뢰가 아직도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현상범들에게는 '떴다 232' 소리가 들리면 그들의 오금을 저리게 하는 사냥꾼으로 발돋움했다.
그러니 저들이 지칠 수밖에. 휴식이 필요한 명치대인과 다해는 어디서 무엇을 할까? 분명, 명치대인은 클럽을 배회하며 춤을  것이고, 다해는? 집나간 암고양이처럼 승규랑 있을 것 같다. 이놈들 내 집사 일은 때려치우고 알콩달콩 어디선가  볶고 있겠지. 그 냄새가 여기까지 나는 것 같다.
아니나 다를까 그  볶는 향이 내 콧구멍을 들쑤신다.
다해 이뇬. 뭐 하고 있는 거니?
그 냄새의 근원지로 날아가 봐야 할 것 같다. 냐아옹~

- 마들가리행성 60구역. 바닷가 -

깨 볶는 냄새는 해안가였다. 초가을 바닷가는 비릿한 향기보다도 깨 볶는 냄새가 철철 흐르고 있었다. 두 손을 꼭 잡은 다해와 승규가 해안가에 발자국을 남기며 걷고 있다.
바다 먼 곳, 집채만 한 고래가 펄쩍 뛰어올랐다.
" 와~ 신기해. "
" 그래. 자기는 태어나서 바다는 처음이랬지? "
"웅. 너무 아름답다. "
" 우리 자기만 하려고... "
우웩~ 저 승규의 말에 토가 절로 나온다. 내 집사가 뭐가 그리 아름답다는 말인가? 콩깍지  개가 연신 하트를 뿜어내는 승규였다.
" 내가 그렇게 좋아? "
그럼~ 내 눈에는  다해가 세상에서 제일 이뻐. "
미친, 지롤을 해요. 지롤을...아~ 괜히 냄새의 진원지를 둘러본 나.  둘러봐서 눈 버리고 있냐 말이다아옹~
우웩~ 아무튼 내가 토를 하든 말든, 눈이 버리던 말든 둘은 바닷바람을 맞으며, 그렇게 비위 상하는 말을 해가며 모래사장을 걸었다.
재필을 잡은 이후, 다해와 승규의 애정행각에 적신호가 들어온 적도 있었다. 너무나 바쁜 다해의 일정에 둘은, 만나는 횟수가 줄어들었기 때문이었다. 오죽하면. 다해가 범인을 잡는 순간 그곳에 승규가 나타나 다해를 보고 갔을까.
3일 밤낮을 조사해 그곳을 찾아낸 승규였다.  끈기로 범인을 추적하면 참 잘했을 것 같다.
오해도 있었다. 인기 연예인 뺨치는 인기 덕에 다해에게 집적거리는 늑대들이 늘어났다. 다해의 선글라스 스팸 차단 발신 번호는 1000건에 달해 있었다.
그간 맘고생 한 승규. 애인이 너무  나가도 그에겐 상처로 돌아왔다.
쌤통이다.
내 집사를 훔쳐 간 얄미운 넘.
아무튼 둘은 그렇게 여유로운 바닷가에서 고래의 점프를 배경으로 열심히 깨를 볶아내고 있었다. 그동안 쌓여 있던 그리움과 애정을 다시 확인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 라구나 bar -

아함~ 이제 시끄러운 녀석들도 나갔으니 살짝 나가볼까나.
다해의 방문에 뚫려있는 구멍으로 요염하게 걸어나갔다. 물론 내가. 그리고 bar 의자에 앉아 있는 창기를 쳐다봤다. 한 병, 두 병…. 여덟 병. 대낮부터 먹어댄 맥주에 창기가 취해 있는  느껴진다.
뭐냐 저놈은... 상희는 그런 창기의 옆에서 무언가 골똘히 생각하는 것 같다. 난 그녀의 발밑에 웅크리고 앉았다.
" 이야옹~ "
이 소린 밥달란 소리다. 지들만 점심으로 맥주 쳐먹고 난? 밥 안주나? 내가 울어도 상희는 말이 없다. 분위기 잡지 말고 밥 달라고!  대신 술 취한 창기가 날 반긴다.
" 우쭈쭈. 히리 나왔어. "
잠깐!  술 취한 손으로 날 안으려고? 미친나! 어딜! 그러나 내가 도망치기 전 창기가 날 번쩍 들어 올렸다. 젠장.
" 잘 잤어? 어휴 귀여운 녀석. "
내게 입술을 가져다 댄다. 술 냄새 풀풀 풍기면서 말이다.놔! 놓으라고.  숫컷이라고. 어디서 조동아리를...
이야옹~ "
 소리는 내 신체에 다가오면 할퀴겠다는 경고다. 그러나. ' 쪽. ' 엉엉엉. 어디서 남자 새끼가 그것도 술 먹고. 나. 쁜. 쌔. 리.
 몸을 비틀어 그에게서 빠져나오려 하지만 저놈의 아귀 힘은 급나 쌔다.
" 창기옵. "
" 왜? "
"  생활 언제까지 해야 할까? "
아니... 우리 씩씩한 여장부가 갑자기 그런 소릴 다 한대? "
그러게 말이다옹~ 재가 뭘 잘 못 먹었나?
" 그냥... 이러다 잃어버린  딸도 찾지 못하고 죽을 것 같아서. "
" 상희야. 어차피 이 생활 오래 하고 싶어도 기력 달리면 접어야 하는  알잖아. 젊을 때 바짝 벌어서 나중을 기약하자고. "
" 그런가? 모르겠다. 나도 요샌 지치나 보네. "
상희는 얇은 담배를 꺼내어 입에 물었다.
저뇬 왜 저러지? 분위기 잡고 있으면 기분 묘한데...
" 그럼 난 잠깐  테니 옵은 적당히 먹어. "
적당히는 아까 지나간것 같은데.
" 알았다. 좀 쉬어.  요것만 먹고 디비 잘 테니. "
술병을 흔드는 창기가 보조개를 만든다. 저 덩치에 뭔가 안 어울린다.
잠깐? 이상희! 내 밥은 어쩌고.
이야옹~ "
이 소린 밥 달란 소리다. 벌써 두 번째.
" 그래 그래. 히리도 나 힘든  알고 들어가 쉬라고 그러는구나기특한 녀석. "
너 힘든 건 난 모르겠고! 밥 달라고. 야 이년아!
그럼 히리도 쉬어. "
아~ 내 말을 말지. 날 굶겨 죽일 생각인 거다. 저 뇬은.
그렇게 상희가 자신의 방으로 사라졌다. 술을 퍼마시던 창기도 흐느적 명치대인의 방으로 들어갔다.
기껏 일어나 나왔더니 횅한 라구나...
나 왜 나왔니.
난. 창기가 앉았던 의자로 점프했다. 다시 그 의자에서 bar 위로 뛰어올랐다. 살금살금  위를 걸어 다녔다. 심심하다. 창기가 먹다 남은 술이 앞에 보인다. 저거나 먹어 볼까? 인간들이 왜 저런 걸 마시는지, 난 궁금할 때가 많았다. 그래도 고품격 프리미엄 고양이가 남 먹던 술을 먹을  없는 노릇. 제안장. 날 버리고 승규랑 있는 다해가 이럴 땐 필요하구나. 밥 줘! 배고프다공.
" 이야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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