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2화 〉 81누나
* * *
8화.누나.
101구역의전원주택
상희와 명치대인, 준이 탑승한 소행정은 경작지 한복판에 정박한다. 경량 목조 구조로모던틱한주택은 도시의 빌딩보다 세련되어 보였다. 외장에 칠한 페인트 상태로 보아 지어진 지 그렇게 오래된 건물은 아닌 듯했다. 이런 시골 구역에서 보기 힘든 주택이었다. 금고 털어 집을 지었나? 그건 아닐 것이다. 은행을 턴 시점은 근래의 일이니... 아. 페인트 새로 칠할 수는 있겠구나. 아무튼 이건 내 추측이고...
정박한 소형비행정의 문이 위로 열리며 상희와 명치대인이 앞 좌석에서, 준이 뒷좌석에서 내린다. 셋 다 비행정에서 내리며 선글라스를 쓴다. 뜨거운 태양에 눈을 보호하기 위해? 뭐 그럴 수도 있지만, 이곳마들가리행성의휴대폰은 선글라스이기 때문이다.
서로 무전 모드로 설정하여 교신 코드를 맞춘다. 손가락이 필요 없다. 동공 인식으로 눈알의 움직임에 반응하기에. 그런 그들은 자신들의 목적지인 '차차'의전원주택으로 움직였다.
횅한 바람 소리만 들리는 앞마당. 누굴 쫓기 위해 만들어 놓은 걸까? 참새 한 마리도 보이지 않는 적막한 땅에 허수아비가 마당을 장식하고 있다. 한 개가 아닌 수십 개의 허수아비. 사람 크기의 두 배 이상 큰 커다란 허수아비가 왠지 으스스하게 느껴진다.
"워메. 집은 으리으리한데. 이것들은 다모더냐? "
구수한 사투리로 말하던 명치대인은, 그 큰 허수아비를 손으로 툭 쳤다.
" 그래도 작물을 헤치는 것들이 있나 보지 뭐. "
" 누님. 근데 이 허수아비들 누구 닮은 것 같지 않아? 어디서 많이 본 얼굴들 같은데... 통 모르겠네. "
" 너 아냐? 삐뚤삐뚤한 눈, 코, 입이 꼭 너 닮았다. "
" 누님. 제가 저 정도로 막 생겼다고요? "
" 적어도 내 눈엔. "
" 아~ 울 누님. 저 인기 연예인 뺨치는 인기남이에요. 왜 이러세요. "
" 저것들처럼 생겨서 신기하니까 인기 있는거란다. 이 녀석아. "
명치대인은 허수아비의 옆에 바짝 붙었다.
"어딜봐서 제가 이렇게 생겼다는 겁니까? "
유심히 살펴보는 상희가 조용히 입을 뗀다.
" 아. 미안 착각했네.흐흐흐. 허수아비가 더 잘 생겼네. 내가 널 너무 과대평가했나보다. 미안. "
" 으~증말누님하고는대화가 안 돼. "
인상을 쓰니 상희 말이 어느 정도 맞는 것 같다.
"무튼어여 와. 집에나 들어가 보자고. "
상희는 뒤돌아 먼저 앞서간 준의 뒤를 따라간다. 명치대인도 애꿎은 허수아비의 장대를 발로 차고는 그녀의 뒤를 따랐다.
전원주택 현관문 앞.
이미 사람이 살고 있지 않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준은 예의상 초인종을 눌러본다.
'빠리빠리빠리리리.빠리링'
뭔 벨 소리가이따위냐.아무튼 기척이 없다. 잠겨 있는 현관문의 키 패드를 준이 누른다.
' 띠. 띠. 띠. 띠.틱.띠리릭~스르륵. '
자기 집 들어가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집안에 발을 디딘다.
전원주택의 안은라구나의퀴퀴한 모습과는 매우 대조적이었다. 높은층고와2층으로향하는계단은고풍스러웠다.커다란장식용괘종시계의시침은1시로향하고있었다.
근데. 어떻게 이들이 남의 집의 비밀번호를 알고 있는 걸까? 어렵지 않다. 정부에서 의뢰했기에 필요한 정보를 지원해 주었다. 집 내부를 쭉 둘러본 준이 입을 열었다.
" 농작물 키우며 살았다는데 집은 굉장히 럭셔리 하네. "
" 맞아. 저 영사기 비싼 거 아녀. "
옛 영화관의 영사기처럼 생긴홈시어터플레이어가 상희의 눈에 비친다. 옛 골동품처럼 생겼지만, 그 기능은 비싼 값을 하는 제품이었다.
벽면 스크린 모드, 공중 브라운관 모드, 야외극장 모드를 갖추고 있는홈시어터. 거기다 무선이라 휴대하기가 편했다.
" 저거 꼭 가지고 싶은 물건인데. "
느닷없이 눈망울에서 빛이 나는 상희. 훔칠 필이다.
이것아. 조사하러 나왔지 물건 훔치러왔냐옹~
" 너희는 거실하고 방을 살펴봐. 난 위에 올라갈 볼 테니. "
일하려 하는 건 준 뿐이었다. 그래 제정신인 사람 한명쯤은있어야지. 계단을 오르며 준이 말했다.
" 물건들은 되도록 건들지 말아라. 정부에서 원하는것이니.특별한 정보 있으면 교신으로 알려주고. "
" 네. 네.그럽죠. "
상희는 준에게 답하고 조용히 구시렁거렸다.
"아놔! 준옵은왜 이리 사람이딱딱하냐.마음도 몸도. "
꼭 몸을 본 사람처럼 말하네! 이것이.
준이야 10년 동안숨어지내며운동만 했으니 몸이 딱딱하겠지.
아무튼 그렇게 세 명의라구나대원은차차의집을 수색하기 시작했다.
한 걸음 한 걸음.
집 안 구석구석을 박물관 구경하듯 발을 디딘다.
먼지가수북히쌓인 장식장, 오랫동안 집을 비웠지만, 정리정돈이 깔끔하게 되어있었다. 몇 분의 시간이 지났을까? 아무런 소득이 없었다. 부동산에서집구경온 듯한 느낌이다.
"아놔~이런데서뭘찾겠다는겨.으구으구. "
지구력이 약한 상희인가보다. 그녀는 수색하다 말고 거실로 나왔다. 그리곤 푹신한 소파에 자기 집 마냥 편하게 몸을 던진다.
" 그래 좀 쉬자. "
뭘 했다고? 기웃기웃, 대충대충, 하는 듯 마는 듯, 집중력이란 걸 머릿속에서비워둔체 수색했던 상희다.
눕듯이 앉은 소파에서 어깨의 힘을 풀며, 고개를 등받이에 올린다. 그리고 무언가 찾는다. 수색하던 눈빛과는 사뭇 다르게 진지하다.
꽃병 옆에 있는 리모컨을 발견하자 3살 어린아이가 된 듯, 유아기로 돌아간 듯한 미소를 간직한다. 리모컨찾듯정보를 찾았으면차차를잡았을 필이다.
" 오~ 요새삥으로...TV나봐야겠군. 쉴 겸. "
이건 일하러 온 거냐, 휴가를 온거냐.라구나에서도안 하던 TV 시청 아닌가!너답다. 전원 버튼을 누르자 벽에 걸린 브라운관의 화면이 켜졌다. 준이 함부로 건들지 말라고 했던 이야기는 하늘나라로올려보낸지 오래된 것 같았다.
TV를켜자 불빛이 사라진다. 모든 조명이 꺼지고 창가로 들어오는 빛도 사라진다. 자동으로 설정한 기능일 것이다. 모든 창가에 검은 차단막이스르륵생겨났다.
" 오! 이거이거살까? 간지지대론데. "
이네 컴컴한 암흑으로 거실은 변했다. 브라운관의 화면이 더욱 돋보였다. 여러 개의 폴더가 상희의 눈에 비친다.
'TV시청'폴더. 'K방송사', 'M방송사', 'S방송사' 등등... 펼쳐진 폴더들. 순간, 명치대인이 안방 문을 열며 밖으로 나왔다.
" 누나! 뭐해? "
인공지능지니가명치대인의 말에 응답한다.
'누나뭐해'로검색한 최근 시청 화면을 자동 재생합니다.
" 참나~울누님일 안 하고 무슨 짓을 하는 겨? "
"이것아쉬엄쉬엄... 응? "
"컥! "
말을 끊은 상희와 명치대인은 화면을 주시했다. 빨려 들어가듯 말이다. 인공지능지니가선사한 화면에선 '누나뭐해'라는삼류 에로틱 영화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말이 좋아 삼류 에로틱 영화, 그래 그거였다. 남동생과 누나가 나체로 진득하게 사랑을 나누는 고귀하고 성스러운 장면이...
최신식 음향 장비의 서라운드가 음~자아알들렸다.
" 이것이뭐다냐? "
허둥거리는 상희가 리모컨의 전원 버튼을 찾아 누른다. 그러나 스피커를 키우고 마는 데. 어둑한 거실엔 절정을 다해 신음하는 두 남녀의목소가쩌렁쩌렁하게퍼져나갔다.
그 소리에 2층을 탐색하던 준이 헐레벌떡 내려왔다. 세 사람의 눈빛이 교차하는 거실. 명치대인은 코피를 쏟으며TV를잠시나마 감상했고, 상희는 리모컨 전원을 이번엔 제대로 눌렀다.
준은 한심하다는 듯 둘을 번갈아 가며 쳐다본다.
" 이 사람들이 지금 여기가어딘데이런 영화나 시청하고... "
"옵!옵! 그게그게아니구요. 수색하다 잠깐 쉬면서 하려고 그랬던거에요. "
오해는 설명할수록 오해가 커지는 법. 준은 명치대인과 상희를 다른 눈빛으로 바라본다.
" 너희 그런사이였어! 쉬면서 하다니? "
"아니.그게아니구요.옵! "
" 내가 자리를 피해줘야 하는 분위기? "
둘의 대화가 명치대인은 들리지 않는 모양이다.
" 누나야 그거 왜 꺼? 한참 재미있었는데... "
그래 너도 남자다이거지. 급하게 내려오던 계단을 천천히 내려오는 준.
" 아무튼, 뭐 알아낸 거라도 있어? "
폴더 화면만 보이는 브라운관의 빛 사이로 어두운 상희와 넋 나간 명치대인은 도리도리를 한다. 그것도 잘한다.
" 에고~ 헛다리 짚었나 보네. 기대도 안 했지만. "
"암튼요.준옵오해하지 마세요. "
점잖은 준은 알았다고 말하며 무심코 폴더 화면을 쳐다봤다.
" 어? 잠깐 상희야! "
" 왜요?준옵뭐 보고 싶은 거 있으세요? "
" 어. 폴더 중 '팔콘' 폴더. 열어볼래. "
'팔콘'? 팔콘이라 하면 설마 그팔콘!
잠깐.
준이 저러는 이유를 내가 설명하자면... 아마도 '팔콘'이라는단어 때문일 것이다.팔콘은마들가리행성의3대현상범이다. '재필'과'OEN'그리고'팔콘'.
사냥꾼 세계에서는 꿈의 사냥감이라는 말이 돌 정도로 금액이 컸다. 그 중 재필은 상희의 일행들이 잡았다. 이제 2대 현상범이라 해야 하나? 아무튼 사냥꾼이라면 저 '팔콘'이라는단어를 무시하고 지나갈 수 없었을 것이다. 지금 준처럼.
"준옵. 그러고 보니 왼쪽 하단에 '팔콘'이라고나와 있네요. "
상희는 사냥꾼이 아닌가 보다. 다른 건 몰라도 그것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와야 하는 거 아닌가? 준처럼.
" 지금 그게 문제야보던거봐야지.흐흐흐. "
명치대인도 아닌가 보다. 사. 냥. 꾼. 이. 그냥 본능에 충실한 짐승일 뿐. 리모컨을 뺏기 위해 명치대인이 상희에게 달려든다.발정난숫캐의손동작은 매우 빨랐다.
" 그만해! "
'퍽.'
달려드는 명치대인을 살짝 피하며 그의 뒤통수를 날리는 상희. 재빨리 리모컨을 준에게 던진다. 명치대인의뿔테안경은 무색하게 삐뚤어졌다.
준이 받아 든 리모컨으로팔콘폴더를 열었다.
브라운관은 모드가 변화하기 시작한다. 방안 전체가 스크린으로 변하고 있었다. 영사기에서 뿜어져 나가는 빛이 여러 갈래로 퍼져 나간다.
짧은 시간, 거실은 숲으로 변해 있었다.
울창한 침엽수립, 곧게 뻗은 5m가 넘는 나무들이 거실을 잠식했다.
" 와~ 이거 정말 가지고 싶다. 진짜 숲에 와 있는 것같어. "
오두방정에깨방정을 플러스한 상희다.
" 쉿! 조용히 보자고. "
호들갑 여인 상희에게 핀잔을 주는 준은 화면에 집중했다. 숲에는 남자가 서 있다. 그 남자를 클로즈업. 꼭라구나식구들이 다가가는 것 같았다.
가죽자켓을입은 남자가 커다란 담배를 입에 물고 있다. 분위기가 무언가를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았다.
가만! 팔콘이다. 이놈 영화도 찍었나? 내가 궁금해하듯, 한마디씩 하는 상희 일행들.
"팔콘이군. "
" 누님. 쟤팔콘아니에요? "
" 어쩜 수배 전단지 하고 똑같이생겼냐."
그래. 스크린의 남자는팔콘이었다. 눈 밑으로 꿰맨 자국이 10cm 이상 그어져 있다. 짧은 머리카락은 삐죽삐죽 솟았다. 머리에 왁스라도 잔뜩 바른 건가? 아무튼 누르면 찔릴 것 같다. 인상은 험악하진 않았다. 훈남 냄새가 묻어났다. 하지만 덩치가 험악해 보였다. 2m 정도의 거구였다. 한 손에 든, 가지 치는 칼이 단도처럼 느껴졌다.
그가 서 있는 곳은 울창한 침엽수림에 그나마 공간이 트인 곳이었다. 원형으로 만들어진 공간, 그 공간에서 하늘을 쳐다보는팔콘. 하늘의 별이 쏟아질 듯 꽉 차 있었다.
스피커에서 들려오는 야생의밤소리, 야행성 조류의 '뻐꾹' 소리와 '찌르륵' 거리는 이름 모를 벌레 소리가 이중창 한다.
" 준형? 이거 영화 아니죠? "
" 누군가 동영상 촬영한 것 같은데. "
"직캠으로? "
" 그야 모르지. "
팔콘의담뱃불이 꺼질 무렵. 비행정의 엔진음이 스피커에서 흘러나온다.
'우우우웅...'
곧이어 4륜 비행정이 라이트를 뿜으며 그곳으로 정박을 시도한다.
" 늦은 밤. 숲에 정박하는 비행정이라... 누굴 만나나? 저런 곳에서...아놔~급나게궁금하네.미쳐블! "
" 상희야! 쉿! "
캡틴 상희도 꼬리 내리게 하는 준의 묵직한 음성이었다.
정박을 마친 비행정에서 사람이 내린다. 검은 인영이 팔콘에게 점점 다가온다.
'저벅저벅.'
점점 커지는 그 검은 인영의 실체가 드러난다.
눈 커진 상희.
입 벌어진 명치대인.
생각하듯 팔짱 낀 준.
팔콘을보고 놀란 가슴, 추스를 겨를도 없이 그들은 또 놀란다.
'OEN'이었다.
백옥같은흰 얼굴이 어두워서 가려졌지만, 분명OEN이었다.
저길덮치면 당최얼마란말인가? 평생 놀고먹어도 될 연금이 따박따박 나온다. 노후를 편안히 살고 싶다면 'OEN'을잡으라는 속담이 있을 정도였다.
역대급만남이었다. 둘이 아는 사이란 말인가? 이런 영상이 이곳에 있다는 것도 신기했다. 나만? 아니다.차차의거실에 있는 사람들 모두 마찬가지일 것이다. 아무튼 화면 속 두사람은 친근하게 대화를 나누었다.
" 자네가팔콘인가? "
" 그렇습니다. OEN. "
둘 다 중후한 음성이 악당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 그럼 거두절미하고 왜 날 찾아 돌아다니는가? "
그럼 이 장면은 두 사람이 처음으로 대면하는영상이렷다.팔콘이OEN을무슨 이유로 만나려 했는지 나도 궁금하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