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90화 〉 89­일기 (90/179)

〈 90화 〉 89­일기

* * *

16화. 일기.

'나한테이상한 능력이생겼단다. 네 아버지가 늘이야기하던그 능력. 그것이 이 엄마에게생겼어. 이제는 어렵게 살지말자꾸나... 조금이라도 편하게... '

몇 달 전차차가뱅에게한 말이었다.

사실뱅은자신의 아버지가 누구인지 몰랐다. 생각과 사고를 할 무렵차차와이별을 했다는 정도밖에.

아무튼 혼자서뱅과벙을키우던차차는남편과 헤어지고 나서 생활고에 시달렸다. 그렇게 구르고 구르다 정착한 곳이 101구역이었다.

농사를 해 본 적도, 텃밭을 가꾸어 본 적도 없던차차는하루를 살기 위해 이곳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농업기술이 발달하여 기계와 로봇으로 경작과 수확을 했지만, 사람의 손이 필요로 하는 건 있기 마련이었다. 그때의차차는성실했다.

게임이 웬 말인가? 고구마 캐기와 감자 줍기, 썩은 딸기 골라 내기는 농사고랩의수준까지 오르고 있었다. 보았는가? 눈 감고도 썩은 딸기를 감별하는 그녀의 손놀림을... 레벨 999의 수준이었다. 아무튼 그 착했던 차차.

아이들을 키우는 것이 유일한 목적이었다. 평생을 노동에 전념한차차는뱅이 군인이 된다는 것에자랑스러워했고,벙이도시로 나가 생활하는 것에 만족했다. 자식들이 성인이 되었다는 것이 마냥 행복했다. 홀로서기를 하는 두 아들을 바라보며 눈시울을 붉혔다. 품 안에 자식이라 했던가? 그렇게 떠나보낸 두 아들. 그리고 오랜 세월이 지나차차는뱅을찾아왔다. 무려 20여 년이 지난후에야말이다. 물론 중간중간 안부를 확인하기 위해 만났지만,뱅을찾아온 그날은 가족이 다시 뭉치는 계기가 되는 날이었다.

" 어쩌다 엄니가 저렇게 변해서 돌아왔는지... 분명 면상도 모르는 애비 때문이겠지... 포르쉐... "

차차는남편의 이야기를 함부로 아이들에게 말하지 않았었다. 숨겨야 했기에 말이다. 뱅이 포르쉐가 자신의 아버지인 것을 알게 된 건,TV에나오는 포르쉐를 보며 눈물 흘리던 차차 때문이었다. 행성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떼까마귀파 두목이 자신의 아버지란 걸 그때 알게 되었다.차차가오열했던 그 날.

" 날 버린 이 사람아! 우리의 애들은 이렇게 잘 크고 있는데... 당신이 애들의 아빠라고 말 못 하는 이 서러움 당신이알고나있수...엉엉엉"

차차의그때 모습이뱅의기억에 맴돌았다.

" 포르쉐... 포르쉐... "

뱅은수염을 만지작거렸다. 든 건 없어 보이지만 생각은 하나 보다.

" 아~ 이 일 그만두고 싶은데... "

뱅은그대로 침대에 누워 천장을 주시한다. 의외로 생각이 많은 그였다.

" 연구 목록 스크린 화면 띄워. "

뱅이 그렇게 말하자 천장 위가 스크린으로 변하며 인공지능지니의안내 음성이 흘러나왔다.

­ 보시던 연구 목록은 21페이지입니다. 연결해서 틀어 드릴까요? ­ " 어. "

­ 본 방송은 암호가 필요합니다.

­ "으휴~ 귀찮네. 그냥 틀면 어디가 덧나.칫. "

­ 암호가 틀렸습니다. 귀찮음을 이겨내고 또박또박 말하는 뱅.

"치키치키챠카챠카쵸코쵸코쵸. "

­ 암호가 일치합니다. 영상을 재생합니다.

" 별 거지 같아서. "

투덜거리며뱅은침대에 누워 스크린으로 변한 천장에 집중했다. 천천히 스크롤 되며 올라가는 텍스트. 그 안에는 설명으로 가득하다. 대학 교재의 그 깨알 같은 글씨처럼 느껴진다.

'제스의피로 만들어 낸 술사...', '임상시험에 실패...', '이것을 필요로 하는 재필과 OEN...' 대충 저런 문구들이뱅의눈에 들어왔다. 이 영상은 포르쉐의 일기였다.

그가 떼까마귀파의 두목이었을 때 알아낸제스관련 목록을 따로 만들어 보관했던 것이었다. 이순신 장군님의 피를 빨았나? 난중일기가 모티브인 것 같다. 뱅이 보고 있는 21페이지를 요약하자면. 자신은 술사를 만들기 위해OEN과손을 잡겠다는 이야기와 그 첫 번째 대상을 자신의 아내로 선택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임상시험을 통해 죽어 나간 사람의 명단이었다.

" 내 애비라는 사람의 업적이라니... 당최 이런 건 어디서 얻어 낸 거야. 엄니도 대단해. "

그럼.차차는만들어진 술사라는 건가? 이런 고양이숨넘어가겠네... 창기가 뒷걸음치다 쥐 잡은 꼴이군. 성우의 말처럼 이 사건은마들가리행성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대부분의 술사는 한 핏줄에서 태어난다. 물론, 술사의 자식이 모두 술사가 되는 건 아니지만, 술사의 유전자를 가진 집안에서만, 간간히 능력자 태어났다. 그렇기에 이 행성의 술사 관리 시스템이 정교하게 구축되었다. 그런데, 이처럼 술사를 만들어 버린다면. 그 시스템은 의미가 없어지게 되는 것이었다.

예를 들어, 지금의차차가은행을 턴 것처럼 말이다. 만들어진 그가 보안 시스템에 걸리지 않으니, 이렇게 쉽게 강도짓을 할 수 있는 것이었다. 술사로 만들어진 차차.

와~ 이 사실을라구나식솔들에게 전해주고 싶지만, 난 그런 능력은 없다. 언젠가 지들이 알아내겠지. 뭐. 아무튼 포르쉐라는 인물이 이런 일을 꾸몄다는 것을 정부가 몰랐다는 게 더신기하다옹~ 그런차차는그저 게임에 몰두하고 있다.

'철갑'.

고전 전투 액션 게임. 공간 투입기에 들어간차차가점프를 하고 앞으로 발을 찬다. 상대편인 유저가 막았다. 그리고차차를어퍼컷으로 공중에 띄운다. 연속기가 발동한다.

일명 '띄우고욜라폐' 스킬이다.

'이불킥', '쌍싸다구펀치', '똥풍'이콤보로 들어간다. 반쯤 있던 체력 게이지가 쑥 줄어든다. 주사기 액체 빠지듯 쭉 빨린피통.

화면에 'KO' 표시가대문작만하게차차의눈에 들어온다.

" 아~썅! 이쌕도그냥현피뜰까? "

­할머니가조진다님다음엔 살살해드릴게요.ㅋㅋㅋ

상대편 유저가 오늘도 명을 재촉하는 멘트를 날린다.

" 뭐? 이쌔리가! "

­ 건방지다 너. 어디서 어른한테 까불어.

­ 어른. 진짜 할머니는 아니지...

­ 아주 그냥 요새 어린것들 말 하는 꼬락서니 하곤.

­ 지금 졌다고 시비 트는 것임.

­ 그래 이새꺄! 어른한테 말버릇이 그게뭐야!

­ 어른?니도대체 몇 살 이길래 지랄이야!

­ 나. 69살이다. 존댓말 안 쓰냐!

­니가69살이면 난 3살이다.씨뱅아!!!

그렇게 말한 상대편 유저는 접속을 끊었다.

" 아... 이런 모욕을 받고도 게임을 해야 하나. 아~ "

울화가 치미는차차의입술이 부르르 떨린다. 아마도 주소를 알았다면, 오늘도 행성인 한 명은 별이 되어 하늘에 처박혔을 것이다.

­ 24구역 관청 ­

20층의 건물이 유리관으로 둘러싸여 있다. 이곳은 24구역에 위치한 행성 정보부 건물이었다. 유리관에 반사되어 튕겨 나오는 빛에 성우와 준은 눈을 가리며 소형비행정에서 내렸다. 뒷좌석의 명치대인이소형정문을 열었다.

"워메~ 무슨 건물이 높지 않고 옆으로 퍼져있데. 그리고 이 빛은뭔데이렇게 밝아. "

혼잣말을 하는 명치대인에게 준이 말했다.

" 여기서부터는깝죽대지 말고 잘 따라와. 무서운 곳이니... "

"얼레? 여기 뭐 하는 곳인데그런답니까? "

" 중앙정보부. "

" 행성 밥 먹고 사는 녀석들이 뭐가 무섭다는것에요? "

" 너가 가지고 있는 무기를 휘두르거나 그와 비슷한 몸짓만 해도 몸이 벌집이 나니까 조심하라고. "

그렇다. 이곳은 전 건물에 감시카메라 및 테러방지 무기가 설치되어 있었다.이곳을 노리는 범죄조직이 상당히 있었기에 외부실드또한 24시간 작동했다. 그 빛에 호들갑인 명치대인.

" 그래요. "

호기심 가득한 명치대인은 일본도검병에손을 얹는다. 그리고 힘차게 내밀었다. 호기심을 풀고 싶었나?

순간, 정보부 보초병이 총구를 겨누었다.

" 손들어!! 움직이면 쏜다. "

성우는 명치대인에게 담담하게 손짓을 했다. 검병에서 손때라는 의미였다. 호기심이 풀린 명치대인은 일본도를 허리춤에 찬다.

" 오~ 반응 한번 빠르네... "

그런 명치대인을 남겨 두고 먼저 움직이는 성우와 준.

신분증을 성우가 꺼내어 공중으로 들이밀었다.

어딘가 스캔하는 장치가 있을 텐데.

보이질 않는다.

그래도 성우와 준을 찍었다는 건, 어디선가 관찰하고 있다는 뜻이겠지...아무튼 성우와 준이 건물로 향했다. 명치대인이 건물을 지켜보다가 헐레벌떡 그들의 뒤를 따른다. 순간, 보초병이 조용히 명치대인에게 경고했다.

" 이곳에서 무기는조심히다루십시오. 아까는 저희가 문 앞에 있어 식별이 가능하기에 아무 일 없이 넘어갔지만, 자칫 잘못된 움직임을 보였다가 자신도 모르게 죽을 수 있으니 말입니다. "

" 그려.알았당께... "

건물 안으로 뛰어 들어가는 명치대인.

" 형님들 같이 가요. 쫌~ "

건물 안은 의외로 조용했다. 업무시간이라그런가복도에 보이는사람이라곤행성 수비군 정복을 입은 안내 데스크의병사뿐이었다. 성우는 조용히 데스크로 향하고 신분증을 제시했다.

"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

주머니에서 명함을 한 장 꺼내어 건넨다.

" 이분을 만나러 왔는데... "

병사는 명함을 훑어보았다.

­ 정보부. 술사 관리팀장. 체리. ­

" 체리 팀장님을 뵈러 오셨습니까? "

뭔가 의아한 듯 성우를 쳐다보는 병사였다.

"그렇소. "

" 예약되었습니까? "

" 예약? 그냥. 23구역 보안관이라전해주시게. "

" 잠깐 저쪽 휴게실에서기다리시겠습니까? 시간이 다소 걸릴 수 있어서 말입니다. "

성우는 못마땅한 마음을 애써 감추었다.

"알았소. "

뒤 돌아 성우는 휴게실로 향하고 준과 명치대인이 그의 뒤를 따랐다. 성우의 뒤편, 병사는 자리에 앉으며어디론가연락을 한다.

' 터벅터벅 '

걸어가는 일행들.

한쪽 구석에 마련된 휴게실, 그 안에 플라스틱 의자가 놓여 있었고 그들은 털썩 앉았다.

" 휴~이런곳에아시는 분도 있으시고. 형님 인맥쩌네요. "

명치대인의 말을 무시하고 성우와 준은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 오랜만에 체리 선배만나는군. "

" 그렇겠군요. 저야 간간이 연락하며 지냈었는데... "

" 체리 선배가 순순히 우리말을 귀담아 줄까? "

" 글쎄요? 그래도 이 분야의 최고 권력자이니...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

명치대인이 심심한가 보다. 어물쩍한 표정으로 둘의 대화에 살포시 끼어들었다.

" 성우 형님. 체리라는 분이 누구이시길래? 이런 곳 팀장이면 꽤 힘 있는 분이시겠죠? "

" 그럼. 한 때, 아주 젊었을 때 우리의 여신이었지. "

" 여신? "

" 학교선배님이셨거든. "

" 오~여자분이세요? "

" 그럼. 이젠 나이가 50이 넘으셨으니... 그때의 모습은 볼 수 없을 거야. 학교의 모든 남학생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던 분이셨거든. "

" 와~ 형님 다녔던 학교라면. 경찰대학? 그럼 공부도급나잘해야하잖아요? "

" 다 옛 일. 아무튼 체리 팀장님에게는 공손히 대해라. 춤추지 말고. "

그래 명치대인은 사실 지금도 스텝을 밟으며, 성우에게 질문하고 있었다. 어지간히 밟아라. 이러다서울·부산찍고 만리장성 찍을 판이다.

" 네. 네.그럽죠. "

성우는고갤준에게 향하며.

" 형도 그때, 체리 선배 아주좋아했었던거로 알고 있었는데... 어때요? 기분이... "

준의 얼굴이 붉어졌다.

오~ 첫사랑? 아니면. 첫 짝사랑,외사랑,등사랑아니면스토커였나? 어째 준의 분위기와는 안 어울리는 그런 냄새가 났다.

"흠흡. 언제 마지막으로 봤는지 기억도 없네. "

그래도 쑥스러운 기색은 역력했다.

" 아마도. 술사 관련범죄니이곳에서도조사 중일 겁니다. 저희보다 더 집요하겠지요. "

" 그러고 보니 체리 선배도 술사 아니었나? 학교 다닐 땐 몰랐는데... 졸업할 때쯤너한테들은 것 같아. "

준이스토커는아니었나 보다. 그녀에 대해 아는 게 별로 없던 걸 보면.

" 체리 선배는 고유 능력이 '기억' 이었죠. "

" 그래. 그렇게 들었던 거 같아. "

'기억'이라면, 급다솜이가생각났다.OEN의딸이자, 재필의 오른팔이었던다솜. 그녀도 술사 능력이 '기억'이었는데... 똑같은 능력일까?

" 체리 선배는 기억을 심어주는 능력이 있었답니다. 거짓 기억을 심어 혼란과 고통을 주는 정신적인 능력이었죠. "

오~다솜과는좀 다른 것 같다.다솜이기억을 지우는 능력이라면 체리는 기억을 넣어주는 능력이었다.

" 졸업하고 바로 이곳에 입관했던 거로 기억하는데. 술사였으니 정보과에서 눈독을 들였나보군. 그것도 기억이면... "

" 그럴 겁니다. 벌써 20년이 넘은 것 같군요. "

" 세월 참. "

두 놈팡이가 세월 타령을 하던 그때 휴게실 문이 열리며 데스크에 있었던 병사가 얼굴을 내밀었다.

*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