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08화 〉 107­키스 (108/179)

〈 108화 〉 107­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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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화. 키스.

­ 어딘지 모를 지하 벙커 ­

벙커 안은 어둡다. 보랏빛으로 물든 공간은 좁다고 해야 하나? 낡은 소파의 팔걸이는 조만간 찢어질 것 같았다. 본연의 색이 검정이라면 자연스레 회색으로 변한 소파, 그리고 테이블 위에 놓인 기괴한 얼굴 모형의 두상이 석고로 만들어져 있다.

어두운 방을 비추는갓등. 그 빛이 소파에 앉은 남자를 비춘다. 빛에 닿은 부분과 빛에 닿지 않은 부분이 마치 야누스의 얼굴을 연상케 했다.

테이블에 턱을 괴고 소파에 앉은 그는팔콘이었다. 현상금이 작년에 비해 올랐다. 1억에서 1억 5000크랑으로, 물론연금성크랑도올랐다. 50에서 70크랑으로. 그런팔콘이입을 열었다.

" 휴~ 곧 이루게 될 나의 과업에 찬물을 뿌리다니.페이킨. 이 할아범이 아주 속을 썩이는 군... "

중저음으로느리게 말하는 그의 입에 맞추어 앞에 있는 또 다른 한 남자. 그가챈코다. 그러면 여기는 그들의은거지. 아무튼 맞은편에 앉은 그 또한 팔콘에게 느릿느릿 말했다.

"팔콘. 그 보다 그 떨거지들 말이야...자르를잡은 녀석들 말이지. 약간 모자라 보여도 대단한놈들이더만, 한 명은 '건남'. 행성에서 정보, 추적 분야에서 일각이 있는 녀석이더군. "

"훗. 한 명은? "

" 한 명은 '현석'. 명택에게 무기 만드는 법을 배운 녀석이고. "

" 명택이라면, 그 무기장인? "

" 그래, 대부분 잘 나간다는 현상범이나 사냥꾼들, 정부 기관에서는 그의 특수무기를 사용하지. 죽긴 했지만 말이야. "

"훗. 그래. 그래서. "

" 두 녀석이 사실자르를잡는 이유를네게말하지 않아서 말이지. "

" 중요한 건가? "

" 그럼. 중요하지.네게말하지 않고 나 혼자움직였건만, 이젠 말해야 할 것 같아서. "

"챈코. 그냥 떨거지들니가알아서 처리해. 난 저것을 만드는 일에 집중할 테니. "

팔콘이뒤를 돌아본 곳에는 어둑하지만 희미하게 인영이 비추었다. 낡은 기계들과 그 기계들을 감싸고 있는 쇠사슬, 쇠사슬 사이로 보이는 형상. 인간의 형상이기는 하나 목이 없는 것.

그래, 그가 말하는 '완벽한 인간' 이었다. 저 인체에 머리만 붙이면 된다.

" 그게 말이지.팔콘. 건남이라는 이 작자가 그 일을 방해하기 위해자르를잡고 있었다는 거야. "

괴고 있던 손을 풀며 허리를 세우는팔콘의눈이 커진다.

" 뭐! 그런 거라면. 그냥. 죽여버리면 될 것을... "

" 자르에게 시켰지 이미. 근데 오히려잡혔어. 지금은 도망쳤지만. "

"허접한놈.자르그 녀석은. 흠. "

탁자에 놓인 커다란 시가를팔콘이집어 들었다.

" 한 대. 피울텐가? "

챈코는고개를 저었다.

"아니.그 보다. 이 녀석들이 조만간 우리를 찾아올 거야. "

" 무슨 수로? 후~ "

담배 연기가갓등위로 올라간다.

" 사냥꾼들이거든. 232라고... 재필을 잡았던 그라구나애들이지. "

"풋. 싱겁기는... 겁날 거 있나? 날 잡기 위해 왔던 놈들이 몇이나 될 것 같아.크크크크큭. "

잠깐의 웃음이 멈췄다. 얼굴의 흉터가 잠깐 떨리며팔콘은굳은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 날 찾으면 생매장하면 그만이야... 몇 놈이든. "

"팔콘. 이찌끄레기들그리 만만한 상대가 아니라는 거야. 내가 OEN 밑에서 일할 때 상희라는 여자를 알게 되었지. "

" 그래서. 중요한 게뭔데. "

" 그 여자. 자신의 능력을 몰라. 아는 사람은 OEN 혼자 정도일까? 그리고 네가 찾으려는 아이의 숙주이기도 하고 말이지. "

" 인제 와서 그런 게 왜 필요하지? "

" 내가 알기론 그녀가 아이를 찾으면 세상은 변해. "

" 변한다... "

" 누구도 막을 수 없는 그런 힘. 옛 '윤'의그런 막강한 힘이라 하면될까."

" 그렇게 특별한 년인가? "

" 그래. 두 모녀의 상봉이 커다란 일을 일으키지. 그래서페이킨과OEN이0구역에 아이를 숨긴 거고. "

" 특별한 인물이군? 이 행성에서! "

" 그보다. 자네의 과업을 포기하지 그래? "

모든 것이 굳은팔콘이었다. 포기하라고. 몇 년 동안 고생고생해서 만든 자신의 업적을 그깟 사냥꾼 때문에포기하라니.팔콘의미간이 흔들렸다.

" 왜? "

" 이유는 매우 간단해. 네가 만드는 완벽한 인간으로 '포르쉐'를부활시키려 하는 거. 난 알고 있어. 그 포르쉐의 힘으로 할 수 있는 것이 많다는 것도. 넌 그것으로 세상의 질서를 바꾸려 하는거잖아. 그럴 필요 없다는 거야. 내 말은. 어차피 그 아이와 상희가 만나면 세상의 질서는 저절로 파괴될 테니까. "

당최 뭔소리냐아옹~?

대충 내용은 알겠는데... 상희와 그녀의 딸, 다혜가 만나면 왜 이곳이 망가진다는거냐옹~

"그거랑그게 무슨 상관인지 모르겠군. 이봐챈코. 언제부터 네가 의견을 제시하는 사람으로 변했는지 모르겠지만 말이야. 어차피 가만히 있어도 내가 원하는 데로 될 거라면 그냥 구경하고있으란소린데... 싫은데.크크크큭... 그럼 목적을 빨리 이루기 위해서 그. 상희라는 사람의 목을 먼저 내가따야겠다는걸. 저 완벽한 인간의 목으로써 제법 잘 어울리는 사람이지 않는가! "

챈코의표정은 내가 '괜한소릴했군.'이다. 그런 그에게팔콘이읊조렸다.

" 이제바뀌었어. 내 마지막 목표. 저 완벽한 인간의 얼굴은 그녀로 하지...으하하하... "

이게 무슨 말인가? 상희를 잡겠다고? 그녀의 머리를 뜯어저기에다붙이겠다고? 사냥꾼이 현상범을잡아야지, 현상범이 사냥꾼을 잡겠다고?뭐야이 얼토당토않은 이야기는...

챈코가팔콘의웃음소릴들으며 담배를 물었다.

' 뭔가... 내가 잘못 한 것 같군. 이 자식 위험해... 단단히 착각하고 있군. '

그렇게 생각한챈코가연기를 내뿜는다. 연기가 흩어진다. 자기 생각이 흩어지듯. 웃음을 멈춘팔콘이일어섰다. 그리고 터벅터벅 걸어갔다. 자신이 만든 완벽한 인간으로 다가갔다.

완벽한 인간이 희뿌연 인영에서 또렷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22개의 인체 조각을 붙여 만든 인간. 그 조각에 꾀어 있는 22개의 쇠줄이 천장에 묶여 있다. 얼굴 없는 꼭두각시 인형처럼 공중에 매달려 있는 죽은 사람.

얼굴이 없는 것이 섬뜩했다. 팔목과 발목에 심은 눈. 살아 있는 어느 사람의 눈을 거기에 심었겠지. 천장에 매단 완전한 인간 앞에 선팔콘이흐뭇하게 웃는다.

"흐흐흐. 곧 널 움직일 수 있겠군.흐흐흑. 살아 움직이는 널 꼭 보고 싶구나. "

그 인체를 껴안은팔콘이목에 키스한다.

" 곧. 입맞춤하겠지.으하하하. "

­ 0구역 안 ­

이 행성의 0구역은 미지의 세상이었다. 아직 그 누구도 이곳의 생태를 알 수 없었다. 그냥 다가갈 수 없는 먼 우주의 공간. 행성 안의 우주라 해야 할까? 생물이 존재할 수 없는 이름 모를 액체가 모든 것을 덮고 있다.

혼탁한 바다색.

앞을 볼 수 없는 진한 파란색.

그곳을 헤엄쳐가듯 물길을 헤치고무언가가보인다. 둥근 투명의 장막.

둥근 구체.

지름이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없지만 넓었다.

그 안에 지어진 정원, 그리고 저택. 그리고 숲. 빨려들 듯 그 안으로 들어간다.

아이들이 뛰놀고 있다. 놀이 시설이갖추어진정원에서... 웃음소리가 그곳을 감싼다. 시소와 그네 소리가 들린다. 순간, 장막에 금이 간다. 서서히. 서서히. 깨지는 장막. 아이들은 하늘을 본다. 정확히는 그들을 지키고 있는 투명한 장막이었다. 그리고 비명을 지른다. 도망갈 곳 없는 아이들은 저택으로 뛰어가며 고함쳤다.

저것이 무너지면 이곳은 모든 것이녹아내린다. 저 액체의 성분은 강한 염산과도 같았다. 저 장막이 찢어져, 무너져 버리면 하늘에선 염산 비가 퍼 붙겠지. 순간, '아작'거리던장막은 이내 무너졌다. 폭포처럼 아이들의 세상으로 내려치는염산비...

" 으악!! "

고함을 치며 흔들의자의페이킨이눈을 떴다.

" 휴~ 꿈이군. 헉헉. "

저택 발코니, 그 발코니 안의 흔들의자에서 낮잠을 자고 있던페이킨이놀라며 소리치자, 뛰놀던 아이들은 그를 멀뚱멀뚱 바라봤다.

여섯 명의 아이들.

그들 중 한 소녀가페이킨에게로달려왔다.

" 할아버지. 괜찮아? "

" 응. 그래.괜찮단다. 할아버지가 악몽을 꾸었나보구나. "

놀랐던 소녀의 눈이 그제야 환하게 바뀌었다.

" 헤헤. 할아버지 이제 슬슬 집으로 들어가요. "

페이킨은함박웃음을 지으며 이마에 흐르는 식은땀을닦아내었다. 그리곤 자신을 지켜보던 아이들에게 조용히 말했다.

"얘들아. 이제 저녁 먹을 시간이니 집으로 들어가자. "

팔콘과싸울 때의 그 늠름하고 박력 있는 모습이 아니었다. 그냥 인자한 할아버지였다. 손주를 달래는모습이랄까? 그렇게 그들은 저택으로 들어갔다.

커다란 식탁에서 밥을 먹었다.페이킨이아이들을 위해 만든 식사였다. 어느덧 아이들의 취침 시간.하나둘자신의 방으로 사라지는 아이들이었다.

1층에 자리한 거실은 붉은 양탄자가 깔려 있었다. 벽에 걸린시오와메르의사진이페이킨을응시하는 것처럼 보였다.

아이들이 사라지고페이킨은양탄자에 누웠다. 푹신한 소파가 있었지만, 편안하게 눕고 싶었나 보다. 천장에 매달린 샹들리에에 시선을 고정했다. 그리고 멀뚱멀뚱 쳐다본다. 무언가를 생각하듯 말이다.

페이킨은국가 영웅이었다. 사진 속시오와메르, 그리고차린과함께 윤을 토벌한 인물이었다. 벌써 몇 년 전 일인가? 윤을 죽인 사냥꾼... 윤을 죽이고 난 뒤, 그들은 모두 묘연이 사라졌다.페이킨또한 마찬가지였다. 0구역에서 살고 있을 줄이야... 천장의 샹들리에가페이킨의눈에서 희뿌옇게 변해갔다.

­ 23구역 빌딩 숲의 공원 ­

중장년의페이킨은공원 벤치에 앉아 있었다. 아이들의 뛰는 모습, 전동 보드를 타고 달리는 젊은 남자, 매 만한 비둘기가 과자 부스러기를 물고 뒤뚱거렸다.

' 모두가떠났어... 물론 나도 사냥꾼을 떠났고.메르... 그냥 그를 따를 걸 그랬나? '

그렇게 생각하며 벗겨진 자신의 머리를 두 손으로쓸어내렸다. 그리고 얼굴도. 고개가 밑으로 떨어졌다. 시선이 땅바닥으로 향한 그, 그 앞에 보이는 검은 구두. 그래 누군가페이킨앞에 섰다.

시선을 천천히 위로 올리며 훑는다. 검은 선글라스와 검은 정장, 검은 넥타이가 꼭 장례식장이라도 다녀온 낯선 이가페이킨앞에 서 있었다.

" 누군가? "

해를 등지고 있는 그의 얼굴에 입꼬리가 올라갔다.

" 자네가페이킨인가? "

" ...... "

" 나와 함께 하지? "

페이킨은덤덤하게 그를 올려봤다.

" 이봐.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냥 가시게. "

검은 정장의 그가 주머니에 손이 들어갔다.

" 허튼수작 하지 마시게. "

경계의 눈빛으로 변한페이킨이벤치에서 일어서려 하자, 그가 웃으며 주머니에서 손을 뺐다. 그리고 동그란 명함을 내밀었다.

" 난 이런 사람인데... 자네의 능력이 필요해서 말이지... "

말끝을 흐린 그의 명함을페이킨이쳐다보고는 읊조렸다.

" O.E.N..."

비스듬히 옮겨간 태양. 그 빛에OEN의모습이 선명히 드러났다.

­ 0구역.페이킨의집. ­

샹들리에가 선명하게페이킨의눈에 들어온다.

" 그때, 그를 따르지 말아야했어. 안 그래.메르! "

사진 속 메르에게 말하지만, 어디서도 답을 들을 수 없었다.

" 어쩌다. 나 스스로 덫을 만들었는지... 휴~ 난 이 아이들이 미래를 바꾸는 수단이었는지 그땐 몰랐다고...메르. 넌 알고 있었지?시오. 너도! "

사진 속,시오와메르는환하게 웃고 있을 뿐.

" 답을 찾아야 해. 더 늦기 전에... 이미 이 아이들과 난 너무 정이들었어... "

그렇게 혼잣말로 중얼거릴 때 2층 계단을스르륵내려오는 아이가 있었다.

" 할아버지 안 주무세요. "

약간 놀라며 그 소녀를 쳐다본페이킨은곧미소지었다.

" 그... 그래. 다혜야. 안 자고? 여긴 왜 내려왔니? "

" 응. 그냥 잠이 안와서요. "

다혜는 그렇게 말하고 계단을 뛰듯 내려왔다. 그리고 일어선페이킨에게달려가 안겼다.

" 할아버지 안 주무시면 나랑 놀아요. "

당황한페이킨이었지만, 다혜를 안아 올리며 소파에 앉았다.

" 그래.그러자꾸나. 뭐하며 놀까? "

" 옛날이야기 해 주세요! "

" 옛날이야기라... "

" 할아버지 옛날에 있었던 추억 같은 거여. "

" 추억? 글쎄다. 울 다혜에게 무슨 이야기를 해 줘야 하나? 허허허. "

" 그럼 엄마 이야기... "

잠시페이킨은물끄러미 다혜를 쳐다본다. 큰 눈망울. 아직젖살이빠지지 않은 소녀였지만, 살포시 들어가는 보조개가페이킨의마음을 녹였다.

이제 12살의 어린 소녀의 엄마. 그래 상희였다. 찰나의 고민이었다.페이킨그가 느낀 감정은... 아직 말하기가 곤란했다. 어린 다혜가 제 말을 이해할 수나 있을까?

" 음. 다혜야. 그것 보다. 이제 슬슬 자야 하지않겠니? "

애써 외면하고 싶은페이킨이었다. 귀엽게미소짓던다혜가 뾰로통한 입을 내밀었다. 곧 눈물이라도 흘릴 표정이었다.

" 왜? 우리에게는 아빠와 엄마가 없는 거예요? "

페이킨은조용히 다혜의 머리를 쓸어 넘겼다. 말하고 싶었다. 너희는마들가리행성에서 꼭 필요한 존재라고, 너희는마들가리행성에서 특수한 힘을 얻은능력있는사람이라고...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한 아이는 0구역의 장막을 깰 수 있는 아이였다. 한 아이는제스그 자체였다. 돌연변이기는 하지만, 사람을 잘 따르는 짐승이었다. 한 아이는 폭탄이었다. 핵의 만 배, 아니 숫자로 환산하기 어려운 폭발력을 가진 아이였다. 우주에 있는 별이 사라지듯마들가리행성도 한 줌의 재로 만들 수 있는 그런 힘이었다. 한 아이는 전 수상의 아들, 또 한 아이는 전 수상의 딸이었다. 그리고 다혜...

다혜와 상희가 만나면제스의부활이 이루어졌다. 이곳의 아이들은 이곳, 0구역을 나가는 순간, 세상의 암적인 존재로 전락해 버린다.

페이킨은인정하기 싫었다. 아빠와 엄마가 없다. 그는 그조차도 인정하기 싫었다. 내가 키워 온 아이들, 그 아이들의 부모는 항상 자신이라 믿었기에...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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