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45화 〉 144­바위 (145/179)

〈 145화 〉 144­바위

* * *

71화. 바위.

탈출과 동시에 먼지처럼 사라지는 재규엉. 그 멋있던, 늠름하던 기체가 순식간에 잿더미로 사라졌다. 크랑 날아가는 소리가 내 귀엔 들린다.

좌석에서 낙하산이 펼쳐지며 지상으로 떨어지는 용선과 혜란이었다. 그들이 낙하산에서 발을 동동 구르고 있을 때, 라구나는 실드가 조금씩 사라지고 있었다.

건남과 교신 후, 정확한 실드탄의 요격으로 실드 가동률은 2%로 밖에 안 남았다.

" 악! 어떠케! "

다해가 용선과 혜란처럼 발을 동동 구른다.

" 시간 좀 벌어 볼까! "

혼잣말이라 하기엔 현석의 말이 크게 들렸다.

" 좋은 수라도 있어? "

성우가 궁금한 듯 물었다.

" 넵. 흐흐흐... 라리랑 고생고생해서 만든 보람이 있군요. "

지금 라구나는 폭발 위기다. 그렇게 여유 부릴 때가 아닐 텐데...

" 자! 구경들 하시라! 제 애완 바퀴들의 능력을... "

그렇게 말하며 현석은 자판을 두드렸다. 맑은 하늘에 날갯짓 하며, 남아 있던 64마리의 바퀴벌레가 라구나로 모이고 있었다. 빠르다. 전투정과 흡사한 속도. 날개에 전동이라도 달았냐아옹. 이건 사기다 사기. 아무튼 라구나 주위에 산발적으로 모인 바퀴벌레들, 현석의 컨트롤에 모두 라구나로 변신했다.

' 펑펑펑펑...... '

적들의 눈이 놀라움으로 가득하다. 홀로그램 라구나가 겹쳐 보였다. 실체와 겹쳐 있는 바퀴벌레, 홀로그램 라구나로 인해 덩치가 더욱 커 보였다. 당최 무슨 짓을 하려는 것일까? 모여있던 라구나들이 유유히 흩어지기 시작한다. 위로 아래로, 옆으로, 대각선으로... 마치 분신들이 적의 눈을 혼란시키겠다는 듯이.

" 엇? "

" 앗! "

" 시방 뭐여? "

성우, 다해, 명치대인 순으로 감탄사를 날렸다.

" 흐흐흐. 쟤네 헛갈리겠죠. "

" 현석 오빠? 그러니까... 지금 가짜와 저희를 섞은 거예요? 찍찍."

" 고롬. 고롬. 어느 것이 진짜 일지 찾기 힘들 거야. 원리를 모르면. "

그랬다. 공중에서 라구나를 가지고 야바위 놀이를 진행 중인 현석이었다. 왠지 '애들은 가~' 소리가 들리는 건, 나만의 느낌인가. 현석의 잔꾀는 그래도 먹힌 것 같다. 전투정의 공격이 잠시 멈춘 걸 보면. 이마에 땀방울이 떨어지고 있겠지? 눈앞에 있는 65기의 중형 함정. 찾을 수 있겠냐아옹~

진짜 라구나 포함 65기의 중형 함정이 하늘을 수놓았다. 주변을 날고 있던 이름 모를 새의 눈이 반짝거린다.

­ 윽! 진짜와 구별이 안 된다. 이상.

­ 편대는 무차별 사격. 이상!

­ 라저.

그놈의 '라저' 소리가 11번 들렸다. 편대장의 지시에, 제각각 여러 가지의 무기로 라구나를 공격한다.

' 드르륵. 펑. 드르륵. 슈웅. '

온갖 기괴한 소리가 하늘과 공기를 뚫고 지나간다. 그 무기에 맞은 홀로그램 라구나가 하나둘 사라지고 있었다.

" 아~ 건남형... 오긴 오는 겨? "

" 근데. 건남 삼춘 온다고 뭐 변하는 거 있어욧? "

명치대인과 다해는 각자의 좌석에서, 각자의 임무를 수행하며 거들먹거렸다. 지휘석의 성우가 그런 그들에게 말했다.

" 아까 확인한 건남의 화면으로 짐작하는 건데. 무언가 변했어. 비행정의 공격과 형태가. "

현석이 덧붙이듯 말했다.

" 저 비행정. 제 스승님의 작품입니다. 어깨 너머 보았던 기억이 나네요. 소형 전투정 15기를 순삭 시킬 수도 있을 겁니다. 근데. 건남형이 조종이나 할 수 있을지... "

" 기다려 보자고. "

그렇게 대화가 오가는 중, 사라졌던 바퀴벌레들이 또다시 라구나로 변신하고 있었다. 현석의 손가락은 마법 손가락? 키보드를 누를 때마다. 적의 공격에 살아졌던 바퀴벌래가 다시 생성되었다. 전투정의 공격에 사라지고, 현석의 손가락에 생겨나는 바퀴벌레 야바위 놀이가 끝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코카콜라 맛있다'라도 해야 하지 않겠냐아옹~

많은 가짜 라구나에 흐트러진 편대. 아마도 현석은 이걸 노렸을 것이다.

" 명치대인. 그대로 달려. 직진! "

" 알았어! "

그러고 보니 현석과 명치대인이 말을 텃네? 둘은 동갑이다. 내가 모르는 사이, 친구 먹은 것 같다. 현석은 후방 공대공미사일을 준비한다.

" 하나씩 조지자고! "

' 쉬이익. '

현석이 버튼을 누르자, 적기로 향하는 미사일.

' 콰광! 펑! '

1기의 기체가 공중분해 되었다.

" 오~ 현석오빠! 실드 한방에 뽀갯어욧? "

큰 눈망울로 현석을 바라보는 다해다.

" 흐흐흐. 미사일에 손 좀 봤지... "

기고만장한 웃음과 함께 어깨에 힘을 주었다.

" 좋았어! "

성우의 얼굴엔 함박웃음이.

" 내 친구 좀 하는데. 짱입니다요! "

명치대인은 조종대를 잠깐 놓으며, 쌍 엄지 척으로 현석의 기를 살려준다.

" 건남이형 필요 없겠는데... 흐흐흐. "

기고만장 세레머니를 하는 현석은, 라구나 후면의 미사일을 모두 개방한다. 6개의 문이 열렸다.

' 쉬익. 쉬익. 슝. 피슝 '

다련장이 발포하듯 날아가는 미사일. 산발적으로 흩어진 전투정을 향해 뿔뿔이 나뉘어 진다.

' 콰광. 콰광... '

부서지는 소리가 순차적으로 들렸다. 6번의 파괴 소리가 끝나자 현석의 어깨는 6배 커진 것 같았다. 저 기고만장은 언제까지 이어질지...

" 와우~ 현석 오빠 쵝오! "

라리가 손뼉을 친다. 적기의 수가 5기뿐이다. 불쌍한 자르. 그 공격력으로 이렇게 싸우다니... 돌아갈 수 있겠냐아옹~ 그렇게 동료들이 격추당하는 것을 알고나 있을까? 남아 있던 5기의 전투정은 홀로그램 라구나를 많이 지웠다. 이제 3기 남았다.

" 흠~ 뒤쪽엔 미사일이 다 떨어졌는데. 어쩌죠 성우형? 선회해서 싸울까요? "

" 아니! 건남의 말대로 도망치자. 선회하면 대형 함선에 잡힐 수 있으니. "

" 알겠습니다. "

' 챙챙챙챙챙챙... '

그렇게 도망치려 할 때, 벌컨포와 실드가 부딪치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렸다. 그리고,

­ 실드가 사라집니다. 충전해 주세요.

친절한 아리의 음성이 라구나에 들렸다. 매우 친절하게 말하는 인공지능 아리.

" 명치대인아! 너만 믿는다. "

" 걱정 마시어라! "

이젠 후면 영상을 확인하며 조종해야 하는 명치대인이었다.

' 피유웅. 쉬이익. '

실드가 풀리자마자, 명치대인 후면 영상으로 미사일이 날아들었다. 점점 커지고 있는 미사일. 잘 피하라아옹~

화면을 꽉 채운 미사일. 곧 격추될 필이다. 현석이 무기버튼을 누르자. 유도형 열 센서가 달린, 별 모양의 박스가 무수히 쏟아진다. 아니 성게 같다고 해야 하나? 거무튀튀한 것이.

그와 동시에 라구나가 옆으로 기울어지며 하강한다. 낙엽처럼 떨어지는 방어 센서들과 함께 하강하는 것이었다. 미사일은 방어구의 결계에 걸려들었다. 그 결계 안으로 빨려 들어가는 미사일, 성게 같은 기뢰가 미사일에 달라붙었다.

' 퍼벙! 쾅 '

허공에 폭파해 버린 미사일이었다. 미사일의 후 폭풍이 라구나로 향한다. 상당히 큰 폭발력의 미사일이었다. 그 폭풍에 흔들리는 라구나. 다해가 소리를 지르고,

" 끼약! "

성우가 신음한다.

" 으으으으... "

명치대인이 재빨리 라구나를 안착시키며 질주한다. 동시에 또 하나의 미사일이 발사되었다. 진작 이렇게 공격했으면 쉽게 끝냈을 텐데... 도움 안 되는 팔콘의 말 한마디에 사서 고생하는 자르의 부하들, 라구나 대원들은 팔콘을 고마워해야 되는 건가? 아무튼 미사일이 날아오는 동시에, 한 기의 전투정이 폭발했다.

' 콰광! '

검은 연기를 뿜으며, 전투정의 기체가 팽이처럼 지상으로 곤두박질쳤다. 빙글뱅글 잘도 돈다. 떨어지는 전투정의 후면에, 건남의 비행정이 다가오는 것을 명치대인은 확인한다.

" 형님. 오셨네. 빨리도 오는구먼. "

왜? 흥.칫.뿡이라도 하시지. 편대가 건남의 공격에 흩어진다. 새의 깃털이 떨어져 나가듯 중구난방으로... 건남은 아랑곳하지 않고 질주한다.

대형이 흐트러진 곳을 뚫고 라구나로 향했다. 라구나 뒤에 바짝 다가선 건남의 비행정. 건남은 무언가 눌렀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뭘 한 거냐아옹~

" 명치대인! 최고 속력으로 어서 이곳을 벗어나자! 밟어! "

건남의 목소리가 쩌렁쩌렁했다.

­ 알겠습니다요. 형님! 모두 꽉 잡으시라요!

라구나의 엔진 소리가 요란하다. 건남의 전투정도 마찬가지다. 두 비행정이 하늘에 흰 선을 그으며 지나갔다.

그들이 그러는 사이 적기들은 다시 대형을 잡았다. 곧바로 추격하는 4기의 전투정. 4개의 흰색 연기가 길게 뻗어 나갈 찰나! 공중에서 큰 폭발이 연속으로 일어났다.

' 쾅. 쾅. 쾅. 쾅. '

순차적으로 터져버린 적기. 4기의 기체가 산산이 조각나며 지상으로 라면 수프 뿌려지듯 흩날리고 있다. 공중분해 된 적기를 후면을 통해 명치대인이 확인한다. 다해의 레이더 화면 속에는 점이 사라졌다.

­ 행님아! 뭐여? 뭔짓을 한겨?

" 가서 설명하마! 대형 함선 움직이기 전 이곳을 빠져나가야 해! "

­ 알았으요!

진짜 건남이 무슨 짓을 한 것일까? 미사일도 고스트 성능이 있는 것일까?

그건 이랬다. 건남이 쏜 무기는 일명, '투명의 장막'. 건남의 전투정이 편대를 치고 나오면서 눌렀던 버튼, 그 버튼을 누르자 공중에 벽이 만들어졌다.

크기가 상당했다. 지름이 500m는 되어 보였다. 다만, 그 누구의 눈에도, 레이더에도 잡히지 않는 투명색. 정말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으면, 그 형체를 알아볼 수 없었다. 그러니 공중에서 객사할 수 밖에... 2분 동안 투명의 장막은 공중에 떠 있다가 사라진다. 그것이 사라진 걸 알 수 없지만, 지속시간이 2분이기에 추측해 본다.

이로써. 모든 전투정을 섬멸한 라구나 대원들. 장하다. 장 혀! 이제 남은 건, 째는 일뿐. 대형 함선과 워낙 멀리 떨어진 곳에서 혈전을 치르다 보니, 자르는 쫓아올 수 없는 거리에 머물러 있었다. 불쌍한 것. 쯧쯧쯧. 자르는 아마도 지휘석의 탁자를 하나 부셨겠지?

" 다해야? 한 기 더 있다고 하지 않았어? "

­ 네? 넵! 한 기 더 있을 거... 어랏? 어디로 사라졌지?

" 사라졌다니? "

­ 몰라욧! 건남 삼춘이 다 격추시킨 거 아니에요?

" 음... 무튼 최대한 멀리 도망쳐! 추격해 오기 전에! "

­ 옙썰!

명치대인의 음성과 함께, 대형 함선에서 점점 멀어지고 있는 라구나였다. 그러고 보니 한 기는 어디로 사라진 걸까? 그 전투정은 팔콘이 타고 있는 소형정이었다.

" 이놈들 제법 하는 군. "

팔콘과 챈코는 자르의 부대와 공중전을 펼치는 라구나를 살피고 있었다. 라구나가 65기로 늘어나는 순간과 건남의 전투기가 쏘아 올린, '투명의 장막'까지 지켜본 그들이었다.

" 팔콘! 아무래도 지금 상황에서 나서는 건 무리겠지? "

" 젠장! 자르자식. 일을 이따위로 처리하다니. 음~ "

" 우선 고스트로 숨어 있자고. "

" 저 녀석들 어떻게 찾으려고? "

" 조치를 취해 놓았어. 그들이 도망쳐도 위치는 찾을 수 있을 거야. "

" 아~ 아쉽군. 그럼 어쩔 수 없지... "

팔콘이 고개를 끄덕이자 챈코는 자신의 전투정을 고스트 시킨다. 속도가 줄어들며 서서히 투명하게 사라지는 전투정이었다.

팔콘의 전투정이 사라질 때쯤, 자르는 화면 속 장면을 믿지 못할 표정으로 뚫어지라 쳐다보고 있었다. 그 뿐만 아니라 대형 함선의 모든이가 자르처럼 쳐다보고 있었을 것이다.

' 쾅! 콰직! '

역시나, 자르는 탁자를 부쉈다. 다 잡은 생선을 손이 미끄러워 놓쳤을 때의 기분이었을 것이다. 그뿐이겠는가. 이 화력을 가지고 중형 함정과 전투하여 패한 최초의 지휘관이 되었다. 군인이 아니기에 비공식이라 해야 하나? 아무튼 분개하다 못해, 화병으로 돌아가지 않은 것이 다행일 것이다.

" 부함장! 이게 뭔가? "

" 그... 그게... 하... "

부함장은 자르를 쳐다 볼 수 없었다. 눈에서 레이저 나갈 필이었던 자르였기에 더더욱 그랬다.

" 당장! 저놈들 쫓아가!! "

부함장이 고개를 푹 숙인다. 말하고 싶겠지. 늦었다고. 이미 추격 범위를 넘어선 라구나. 추격해 봤자 기름만 아깝다는 결론. 부함장은 입을 뗄 수가 없었다.

" 뭐해! 당장 추격하라고!! "

도망치는 라구나 대원들이 들릴 정도의 성량을 자랑했다. 그제야 입을 여는 부함장.

" 하... 함장님. 이... 이미 늦었습니다. "

자르의 목소리의 백 분의 일도 안되는 음성이었다.

" 이런 쓰벌... "

혈압이 상승했는지 목덜미를 부여잡았다. 그런 자르에게 담배를 건내는 건, 루돌이었다.

" 보스. 참으십시오! "

" 아! 이 새끼들 어떻게 찾았는데... "

넘겨받은 담배를 입에 문 자르의 손이 떨고 있었다. 쟤 떨고 있니. 연기를 뿜으며 자르가 호흡을 고르는 찰나! 인공지능 안내양의 목소리가 울렸다.

­ 이곳은 금연 구역입니다. 담배는 지정된 곳에서...

' 지정된 곳에서 '부터 금연 상담 전화번호까지. 매우 친절하게 설명하는 인공지능 안내양. 눈치도 없는 목소리를 자르는 멍하게 바라볼 뿐이었다.

*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