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9화 〉 158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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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화. 창고.
용선은 난간에서 뛰어내렸다.
5m 아래로.
' 쿵. '
일행이 있는 곳으로 내려온 용선이 그들에게 다가갔다. 자르의 음흉한 웃음. 그리고 폭발음에 루돌 또한 허겁지겁 달려왔다.
" 보스. 무슨 일이? "
자르의 옆에 서는 루돌.
자르, 루돌과 용선, 혜란이 원형의 테이블을 경계로 대치했다. 용선은 자르에게 눈을 고정하며 혜란에게 말했다.
" 저 녀석이 뭐라 하는 거야? 너가 자르와 한패였다고? "
" 괜한 걸 말해가지고... 용선 오빠. 그냥 신경 쓰지 마시죠. 그냥. 넘어가 주시면 안 되겠어요? "
혜란 또한 자르와 루돌을 번갈아 가며 희끗희끗 희끗거렸다.
" 왜? 숨기고 있었지? "
" 여기 일 처리하고 말씀드릴게요. "
자르가 둘의 대화를 자른다.
" 너가 말을 하지 않아도 내가 알아서 일러주지. 용선이라고 했나? 지금 네 옆에 있는 아가씬 말이야, 우리의 동료였어. 최 선방에서 우릴 도왔지. 아주 적극적으로. 이유가 뭔지 아나? "
용선의 표정은 포커페이스라 해야 하나? 무표정의 그였다. 뭔가 이제와는 다른 진지한 모습이었다. 알고 싶었다. 왜? 혜란이 이 녀석들과 함께 다녔을까? 너란 녀석, 그래도 건남처럼 목적이 있었단 말인가? 그냥 끌려다녔었는데. 용선이 대답하지 않아도 자르의 뚫린 입.
" 우리의 주인인 수상을 매우 좋아했거든. 사랑이라 해야 하나? 크크크큭. "
" 그만! "
혜란의 눈에 지진이 일었다.
" 왜? 창피한가? 수상의 애첩이었던 것이? "
" 그만하라고 했다. "
" 수상의 야욕을 위해 도왔던 너의 행적을 말해 볼까? 232의 아이. 그 아이의 위치를 알아낸 것부터, 그리고 그 아이를 찾기 위해 나와 함께 팔콘을 꿴 것까지. 놀라웠지. 아주 훌륭한 성과였어. 염탐꾼의 호칭을 달만 해. "
뭐? 그럼 혜란은 다 알고 있었다는 것인가? 숨기고 있었다는 것인가? 분명 모른다고 성우와 준, 체리에게 말하지 않았나? 그리고. 자르 저 녀석도 대단한게, 그렇게 건남과 현석에게 조롱을 당하면서도 불지 않았다는 것인데, 이것들 봐라. 다 뻥쟁이들...
" 입을 찢어 버린다. "
매우 차분한 목소리로 혜란은, 자르의 뚫린 입을 막으려 했다.
" 오우. 어디 살 떨려서... 크크크큭. "
무표정의 용선이 자르에게 물었다.
" 그럼. 왜? 상희의 아이를 찾은 거지? 그 아이를 찾아서 무엇을 하려는 건가? "
" 별거 없어. 이 행성의 정화를 위해서. 수상은 그 아이가 필요하거든. "
" 정화? "
" 내가 학교 다닐 때, 참 공부를 안 해서 뭔지는 모르겠지만 말이야. 0구역의 그 밝혀지지 않은 액체를 세상에 퍼뜨리려면, 232의 아이가 필요하거든. 우리가 모르는 그 액체를 행성 중심서부터 폭파해야 한다고 했나? 아마 그랬을 거야. 그럼. 행성은 그 액체로 잠식하게 된다고. 크크큭... 나야 그 말을 믿진 않지만, 수상은 그 이야길 철썩 믿고 있지. "
" 그럼 그 아이가 어디에 있는지 아나? "
" 그럼. 알고 있지. 파출부 덕에 말이야. 크크큭. "
용선은 다시 혜란에게 물었다.
" 정말 알고 있어? "
" 칫... 이게 아닌데... "
" 정말 알고 있냐고? "
" 네... "
용선이 눈을 부릅떴다. 그런 그에게 조롱하듯 말하는 자르.
" 너희 뒤를 언제 칠지 모르는 년이라고... 알겠나? 크크크큭. "
혜란이 입술을 깨문다.
" 사랑하는 수상에게 이용당했다고 우리에게서 떠난 건가? 파출부? "
" 역겨운 새끼. 가만두지 않겠어! 이야얍. "
자르의 도발에 혜란이 달려간다.
찢어진 드레스를 펄럭거리며.
근데, 수상을 얼마나 사랑했기에 저리 어수선을 떠는 건지? 사랑이 그렇게 중요하냐옹~
이 순간을 기다렸다는 듯, 조준하고 있던 포문을 여는 자르.
" 잘 가라. 배신자! "
' 펑! 펑! 펑! '
세 개의 소형포탄이 자르의 손에서 뻗어 나갔다. 혜란의 분노를 노린 한 방이었다. 혜란에게 향하는 포탄. 무방비 상태의 혜란에게 빨려드는 포탄이 터진다.
' 콰광! 쾅! '
지진이 난 듯, 흔들리는 제노바였다. 뿌연 연기가 그곳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혜란 너 어떻게 된거냐아옹~ 저걸 그냥 맞았으면 내도 살리기 힘들다아옹~
뿌연 연기가 스르륵 사라진다. 사라진 연기 사이로 모습을 드러낸 용선. 온 피부에서 피가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가쁜 숨을 쉬는 용선. 입었던 옷이 피로 물들고 있었다.
자르가 인체 무기를 사용했을 때. 뛰어나간 혜란을 향해 돌진한 용선은, 빠르게 실드를 장착했다. 그리고 그녀의 앞을 가로막았다.
3발의 포탄을 그대로 맞은 건 용선.
실드가 깨졌다.
광음이 피부에 맞닿으며 살갗을 후벼 팠다. 서서히 피부를 뚫고 나오는 붉은 피. 자르가 그 모습을 보고 있다.
놀라웠다. 얼마나 강한 개인 실드이기에, 죽질 않다니. 일반 개인 실드가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이 포탄은 어지간한 실드도 무용지물로 만든다는 것을, 자르가 모를리 없었다.
" 허. 살다니... "
그래. 살았다. 그러나, 살면 뭐 하냐... 딱 봐도 조만간 쓰러질 각인데. 피칠갑을 하고 있는 용선. 점점 모든 몸뚱이가 붉게 물들어 가고 있었다. 그런 그가 입을 뗐다.
" 호로새끼. 흐흐흐. "
입꼬리가 말렸다.
섬뜩했다.
저 몸으로 쳐 웃다니. 자르와 루돌의 뺨에 느낌표 뜨는 건 나만 보이나? 매우 긴장한 표정이다. 양손에 들고 있는 반월도. 그것을 든 채, 흐르는 피를 닦는다. 용선에 의해 밀쳐진 혜란은 몇 미터 떨어진 곳에서 누워있었다.
" 용선 오빠... "
떨리는 그 목소리가 들리기나 한 걸까? 희번덕 미소 짓는 용선. 광기가 서려 있었다.
" 이런. 잘 못 만났군. 크크크큭. 무서운 녀석이네 이 녀석. "
긴장감을 숨기기 위해 그렇게 조잘거려도 내 눈엔 다 보인다. 많이 긴장했다는 걸.
" 저년의 꼬봉이라도 되는 건가? 용선? "
역시 도발질.
자르의 도발에도 꿈쩍하지 않는 용선.
" 호로새끼. 흐흐흐. "
" 미쳤군. 죽지 않은 게 어디야. 그럼 이젠 실드도 없으니 잘 피해 보라고. "
또다시 포격 준비 완료한 자르였다. 살려두면 자신의 목숨이 위태롭다는 걸, 직감하고 있었다.
" 죽음은 저년에게 보상 받으라고! 이얍! "
자르의 기합과 함께, ' 펑! 펑! 펑! ' 세 발의 포탄은 얕은 포물선을 그리며, 용선의 몸을 갈기갈기 분해하려 한다.
용선 피하라아옹~ 니 몸 산산이 조각나면 내 어찌할 도리가 없다아옹~
용선은 피하지 않았다. 자신에게 달려드는 세 발의 포탄을... 정신이 나간 걸까? 실드도 없는데. 있다 한들 그 실드도 부숴버리는 포탄을 그대로 받아들인다.
왜?
다. 나 때문이다. 포탄이 날아오는 동안. 위층에서 어슬렁거리는 나의 몸에 이상한 조짐이 보였다. 이 쌔리... 그거였어! 날 믿고 저 포탄을 정면으로 맞으려는 거였어.
옛기 이 사람아! 아무튼 나의 털들이 삐죽삐죽 솟고 있었다. 이건 파마머리가 스트레이트로 펴지는 느낌이랄까? 몸체는 점점 커지고 있었다.
또 라이온으로 변하는 건가? 고양이가 사자로 변하는 순간이었다. 다만, 하얀 내 털들이 검게 변하고 있었다. 이제껏 난, 내가 화이트 라이온으로만 변신하는 줄 알았었는데, 이건 블랙 라이온. 오드아이인 내 눈, 녹색과 파랑이 교차한다. 그리고 은빛으로 물들었다. 내가 괴성을 지른다.
맘 같아선 '어흥'하고 싶은데. 역시나...
" 이야옹 "
목소리가 큰 까칠한 고양이 소리였다. 온몸에서 빛을 발현했다. 은빛 섬광이 폭발한다.
용선에게 들이닥치는 포탄. 그 포탄보다도 빠르게, 폭발한 섬광이 용선에게로 뻗어 나갔다. 라이온이 고함치는 형상의 빛이었다. 그 빛이 발이 달린듯 용선의 등을 파고든다.
또한, 세 발의 포탄도 그의 몸뚱이에 부딪혔다.
' 윙~ '
' 콰광. 콰광. 쾅 '
폭발했다.
매우 큰 굉음이 삽시간에 모두의 귀를 후벼팠다. 그리고 온 세상이 은빛으로 환하게 덮였다. 눈이 부실 정도의 환함이었다. 자르가 찡그리며 손으로 눈을 가린다.
" 으윽! "
루돌도 마찬가지였다. 소나와 망돌 또한, 그들이 이 빛을 그냥 보게 된다면 실명 될 것 같았다. 누워 있는 혜란은 빛이 나오는 반대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 위이잉~ '
그들의 귀에 이명이 사라지자, 온통 은빛이었던 제노바가, 다시 원 상태로 돌아왔다. 자르가 부셨던 벽까지 원상복구되었다. 먼 산 보듯 눈을 가렸던 자르가 손을 떼었다. 그리고 용선을 바라본다.
용선의 모습이 말끔하다. 온통 피칠갑이었던 몸과 옷가지가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다. 이게 내 능력이었단 말이지. 근데 신기한 건. 이 정도의 능력을 쓰면 분명 난, 의식이 사라졌을 것이다. 졸도했겠지? 하지만, 쓰러지지 않았다. 그렇다고 몽롱하지도 않았다. 어떻게 보면 컨디션이 더 좋아진 것 같다. 라리와 싸워도 이기겠다는 자신감마저. 무슨 짓을 한거냐아옹~ 용선!
" 어떻게 된...거...지. "
말끔히 돌아온 용선은 웃고 있다.
" 흐흐흐흐... 호로새끼. "
자르. 당황하셨어요.
또다시 포탄을 장전 중이었다. 그런 자르에게 돌진하는 용선.
" 이 호로새끼! "
반월도를 꺾어 잡았다.
" 혜란이. "
주먹을 내지르듯 칼날이 없는 손잡이 부위로 스트레이트.
" 배신을 하든 말든. "
' 콰직! '
자르의 얼굴이 움푹 패인것 같았다.
" 내 알 바냐! "
' 퍽! ' 소리와 함께 밀려나는 자르. 밀려나는 자르 옆으로 루돌이 달려 나왔다. 용선에게 향하는 오른 주먹. 그 주먹을 반월도 손잡이로 받아치는 용선.
' 쾅 '
" 으윽! "
루돌이 자신의 주먹을 다른 손으로 부여잡았다. 뼈가 으스러졌나? 고통스러워 보였다.
" 지금은 니들 족치고 봐야겠는 걸! 이야압! "
기합과 함께 360도 회전하며 돌개차기.
돌개차기가 자르의 턱에 정확히 꽂혔다.
' 퍽! '
뒤로 주춤이던 자르는 이제 주춤거리지 않았다. 맞는 순간 철퍼덕했으니.
' 쾅 '
자르가 고목 쓰러지듯 넘어갔다. 이건 기절 각. 많이 아프겠는데. 신음도 없이 쓰러진 걸 보면. 쓰러진 자르에게로 용선은 서서히 다가갔다.
23구역. 어딘지 모를 창고?
어두웠다. 널브러진 모든 것. 낡은 냉장고 소리만 윙윙거렸다. 불을 켜고 들어온 콜라택. 이곳은 콜라택의 아지트이자 숙소였다. 창고 같아 보였다. 23구역 도시의 후미진 곳에 자릴 잡았다. 주변의 건물이 거의 폐허 수준이었다. 지나가는 사람도 거리의 부랑자가 전부였다. 도시계획에 의해 철거 날짜가 점점 다가오는 자르의 은거지. 메케한 곰팡내가 진동했다. 그래도 한쪽에 널브러지지 않은 것이 있으니. 옷장? 아니 행거였다. 의외로 많은 옷이 걸려 있었다. 무려 12개의 행거에 빼곡히 걸려있는 그의 옷. 멋쟁이 콜라택이라 해야 하나?
잠깐?
근데 옷들이 색만 다르고 다 똑같은 것 같다. 검은 기수복. 은색, 금색, 빨주노초파남보 등등, 각색의 기수복이 정렬해 있었다. 스타일 참 독특하다아옹~
" 으메. 그 새끼들은 뭔데... 이거 함길에게 보고해야 하나? "
넌 혼자 있는데 누구와 말하냐아옹~ 너도 건남처럼 프로그램이라도 박혀 있냐아옹~
자르는 헝클어진 침대에 드러누웠다. 가죽 신발이 침대에 걸쳐졌다.
" 휴~ 이거 원. 어디 조마조마해서 살 수가 있나. 어쩌자고 그 함길 검사도 비밀문서를 내 집에 숨겨두고 말이야. 썅. 그냥 다 태워버릴까? 저 고문서를 알아보는 사람도 없을 텐데 말이지. "
속으로 생각하라옹~
" 설마 그 녀석들 저걸 노리고 온 건 아니겠지? "
무언가 숨기는 게 있나 보다. 콜라택은 재빨리 일어나, 방 안에 있는 또 다른 문으로 향했다. ' 저벅저벅. ' 문은 은행의 금고문처럼 생겼다. 이런 후질구질한 곳에 저런 금고문이 있으면. '여기 중요한 거 있수다.' 하는 거 아닌감? 아무튼 그 문 앞에 서서 멀뚱멀뚱 쳐다본다. 말 안 하는 것을 보니 이번엔 생각하는 것 같았다. 콜라택 그가 문고리가 없는 문에 손을 내밀었다.
' 윙~ '
홀로그램 키패드가 생성되었다.
정확한 숫자를 누르세요. 기회는 한 번뿐입니다.
콜라택은 매우 신중하다. 비밀번호 틀린 적이 있었나? 키패드에 손가락을 내밀다가, 멈칫. 고개를 살짝 흔들곤 이내 손을 떼었다.
' 윙~ '
키패드가 사라진다.
" 아~ 정말 이젠 결단을 내려야 하는데. 이걸 그냥 정부에 넘겨 버릴까? 비싼 값에... 흠. "
대충 알것 같다. 콜라택은 무언가 중요한 문서를 함길에게 전달받았고, 그것을 여기에 숨긴 것 같다. 발쿰의 조직원인 함길이 간직하고 있는 것이라면, 정부에 큰 힘이 되겠지... 저게 도대체 뭐길래.
그때였다.
낡은 창문에 태양 빛이 투과하고 있을 때, 그 창문이 깨진 건.
' 와장창창창. '
창문이 깨지자 콜라택은 당황하며 그곳을 쳐다봤다. 저 놀란 표정을 보니 내가 더 놀랄 것 같다. 너도 소나에게 화장좀 해달라 해라옹~ 정말 못생겼다아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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