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62화 〉 161­좌표 (162/179)

〈 162화 〉 161­좌표

* * *

88화. 좌표.

­ 90구역의 창공 ­

날개가 넓었다. 스텔스기를 연상케 하는 비행정. 멀리, 하얗게 물든 산맥이 보였다. 극으로 갈수록 도시는 보이지 않았다. 낡은 전봇대, 지금은 쓰지 않는 유물이 자동차가 다니는 도로의 옆으로 길게 자리 잡고 있었다. 고속으로 비행하는 소형정에는 토미스와 팽이 타고 있었다. 최첨단 장비가 가득한 소형정. 오랜 비행에 지쳤는지 둘 다 졸고 있다. 꾸벅거리던 토미스가 떨어진 고개에 놀라며 눈을 떴다.

" 하~ 암! "

하품을 하곤 팽을 쳐다본다. 꾸벅꾸벅. 흐르는 침이 입가에서 흘러내린다. 더러운 놈.

" 이봐. 팽. 이제 눈뜨지. 거의 다 와 가는데. "

토미스의 목소리에 게슴츠레 눈을 뜨는 팽이였다.

" 다 와 간다고? "

음성이 축 처졌다.

" 그래. 슬슬 232 일행들을 찾아봐야 하지 않겠나? "

" 으~윽. "

팽이 기지개를 크게 켰다. 뼈마디가 우두둑.

" 그래. 찾아야지. 근데 무슨 수로 찾겠다는 건지? 도통 모르겠다니까. "

" 그건 어렵지 않아. 아직 너의 정수리에 상희의 손결이 남아 있으니... 사라지기 전, 다시 시도해야겠어. "

오. 사이코메트리를 또 시도하려나 보다. 자동항법을 유지한 채, 토미스는 팽의 정수리에 손을 얹힌다. 그리고 비행정 안에 있는 헬멧을 썼다.

헬멧의 전선은 팽과 토미스 사이, 소형정과 연결되어 있었다. 마치 시가잭과 비슷하게 생긴 구멍에 끼워져 있다. 신통방통한 물건에 희한함을 감추지 못하는 팽.

" 이건 뭐에 쓰는 물건이람? "

" 이거? 이건 내 머릿속에 입력된 타인의 현재 상황을 영상화시키는 장비지. "

" 뭐? 그런 것도 돼? "

" 귀한 거야. 맞춤으로 제작한 거라. 이 행성엔 나밖에 사용 못하겠지. 아마도. "

" 신기하군. "

" 가만히 캐노피 화면에 집중하게. 232의 현재 상황이 화면에 뜰 거거든. 그 위치의 이미지를 잘 기억해 둬. 도움이 될 테니. "

촌뜨기 팽이였다. 이럴걸 어디서 구해 볼 수 있는 건 아니니, 궁금증과 신기함이 표정에 교차했다.

" 자! 그럼. "

정수리에 손바닥을 들이민 토미스가 눈을 감았다. 앗. 비듬 떨어진다. 씻고 다녀라. 팽! 지그시 눈을 감은 토미스의 얼굴은 고통으로 가득했다. 마치 변비에 걸려 변기에 앉아 끙 거리는 모습이랄까. 붉게 타오르는 얼굴 피부. 모공에서 피라도 뿜을 각이었다. 토미스가 고통에 몸을 부르르 떨다가. 고함친다.

" 으악! "

' 윙. '

고함과 함께 정면 캐노피가 브라운관으로 변했다. 화면은 낡은 필름이 돌아가는 것 같았다. 선명하지 않은 화면이었다. 그 안으로 라구나 식구들이 떠들고 있다. 마치 0.5배 느리게, 화면을 돌리고 있는 것 같았다. 느리게 움직이는 화면 속, 라구나 대원들.

이 장면은 시범으로 변한 재필과의 만남, 그때의 상황이 고스란히 화면 안으로 지나갔다. 문제는... 재필의 모습이 그대로 잡혔다. 시범이 아닌 재필의 모습으로. 사이코메트리로 본 시야가 페이스 체인지의 이면을 볼 수 있었던 것이었다.

아무튼, 토미스의 눈에는 재필은 재필로 보인다. 그리고. 더욱 중요한 건. 정박장 안에 아지트의 위치를 나타내는 좌표가 멀찌감치 보였다. 3, 4분의 시간이 지나자 화면이 픽하고 사라지며, 그 안은 공활한 하늘과 먼 백산으로 채워졌다.

" 윽. 헉헉. "

토미스의 코에서 피가 주르륵 흘러내렸다. 이 능력만 사용하면 코피 빵이었다. 야한 영상을 본 것도 아닌데 말이다아옹~

" 이봐! 괜찮나? "

나지막한 목소리로 신음을 내뱉는 토미스에게 팽이 걱정스레 말했다. 토미스는 괜찮다는 듯 손을 흐느적거리며, 남아 있는 손으로 티슈를 꺼내어 코피를 닦았다. 그리고 숨을 고른다.

" 휴. 이미지 다시 돌려 봐야겠어. 좌표가 어렴풋이 지나간 것 같거든. "

" 그래? 여기서 지켜볼 때는 아무것도 모르겠던데. 근데? 저 악수 하는 남자... 어디서 본 사람인데... 기억이... "

" 재필. "

" 맞아! 재필! 헉!! 근데 왜 저기에 있는 거야? 그 자식 사형선고 받았잖아? "

사냥꾼이라면 재필의 얼굴을 모를 수 없었다. 꿈의 사냥감 재필이었으니 말이다. 다만, 그는 232로 인해 잡히지 않았는가. 그런데 지금 그들과 재필이 악수를 하고 있다. 팽이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다.

" 탈출이라도 한 건가? 뭐지? "

의외로 토미스는 담담했다.

" 음. 내 의뢰자가 말한 게 사실인 건가? 재필과 어떻게 저럴 수가 있지? 의아하군... 뭔가 이상해. "

" 이 사람아. 당연히 이상한 거 아니야! 교도소에 있어야 할 현상범이 버젓이 활보하고 다니는데. 거기다. 자신을 잡아넣은 232일행과 허물없이 만나고 있다는 거잖아. 이게 무슨 일인가? 저 재필이 탈옥했다면... 행성이 발칵 뒤집혀 졌을 텐데, 언론도 조용하고. "

" 그러고 보니. 재필이 입고 있었던 옷은 교도관 정복이었어. 정말 탈출했단 말인가? 그리고 투구를 가지고 있다는 232일행과의 만남? 내 정보로는 투구가 제스와 관련이 있다고 했었는데... 설마. 그래서 투구를 훔친 건가? 재필에게 넘기려고? "

토미스의 생각은 바다로 흐르고 있었다. 아니다아옹~ 엄한 논리로 라구나 일행을 악당으로 만들고 있는 토미스였다. 뭐. 그 영상을 본다면 누구든 토미스처럼 생각하겠지만, 그래도 아닌 건 아니다아옹~

" 아~ 정말로 232 일행이 발쿰과 내통한다는 것인가? "

" 뭐? 발쿰? "

팽이 묻자, 당황하는 토미스였다. 무언가 자신만이 알아야 하는 비밀을 들킨 것처럼.

" 아... 아니... 그런 게 있어. "

" 발쿰이 뭔가? "

" 아니야. 그냥 나도 모르게 혼잣말 한 거니 신경 쓰지 말게. "

" 싱겁기는. 아무튼, 저기 있는 인원들 다 잡아들이면 완전 대박이군. 대체 몇 크랑이야. "

너희가 잡을 수 있을까? 저기 있는 인원의 능력은, 거짓말 조금 보태서 사단급 규모의 전투력이다. 둘이서 뭘 어쩌겠다고. 이야옹~

" 그런데 말이야. 토미스? 우리 둘이서 저놈들 처리할 수 있을까? "

내 이야기 들었나 보다. 이제 감 잡은 팽이였다.

" 글쎄. 무리겠지? 너와 나 둘이서는... "

" 이거 그냥 수비대에 신고해야 하는 거 아닌가? 제보비만 받고 끝내는 것도. "

" 너무 걱정하지 말게. 내 의뢰인이 해결해 줄 거야. "

" 의뢰인? 단독으로 잡으려는 거 아니었어? "

" 허허허. 내가 자네에게 크랑을 넉넉하게 준다는 것도 다 그들의 의뢰금으로 주는 거니. 내가 당당했던 거네. 허허허. "

" 믿는 구석이 있었군. 의뢰자가 누구길래? "

" 밝힐 순 없고. 극비 사항이니. "

" 뭐야... 잠시나마 팀원이라지만, 그 정도는 공유해야 하는 거 아닌가? "

" 그냥. 자네의 정수리만 신경 쓰게. 최대한 씻지 말고. 머리 감을 생각은 당분간 넣어두고. "

아하! 왜 비듬이 뚝뚝 떨어졌는지 이제야 이해가 간다. 토미스의 의뢰인이 당최 누구길래. 재필이 섞여 있는 232 일행이 두렵지 않다는 것인가? 가르쳐 주라아옹~ 고양이 숨넘어가겠네.

­ 21구역. 토미스의 사무실. ­

300층 높이의 빌딩. 아랏산 빌딩 150층에 자리 잡은 토미스의 집이자, 사무실, 아지트인 그곳에서 그는 TV를 주시하고 있었다. 아주 오래되어 보이는 텔레비전. 볼록한 화면으로 되어 있었다. 크기도 21인치. 이시대의 TV 치고는 매우 작았다.

한정판 텔레비전이었다. 옛 TV를 모델로 만들어진 최신식 모델. 외형은 저래 보여도, 기능은 상희가 차차의 집에서 훔쳐 온 홈시어터와 삐까삐까했다.

가격도 매우 비쌌다.

그 텔레비전 안에서는 자르가 퍼트린, 조작용 보도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상희와 팔콘의 모습, 건남과 챈코의 행동, 차차와 그의 패밀리까지.

투구의 내용과 함께, 232대원들이 투구를 훔쳤다는 보도들.

" 투구를 훔쳤다고? "

의아한 토미스의 외마디였다. 토미스가 의아해하는 건, 그도 투구의 용도를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토미스. 그는, 사냥꾼이자 역사학자였다. 시대의 역사학자 설민섞과 동고동락했다던 썰도 나돌아다닐 정도였다. 어디까지나 썰이긴 하지만...

" 그들이 저 투구를 훔칠 이유가 있나? 쓸 때도 없고... "

투구 관련 관계자가 '투구를 훔쳐 팔려고 한다.'라는 말을 꺼내자, 토미스는 헛웃음이 나왔다.

" 판다고? 투구를? 헛... 쯧쯧쯧... 저건 팔 수 있는 물건이 아닐 텐데. 모르는 사람들은 속겠군. "

행성의 일반인들은, 그의 말처럼 가짜뉴스를 철썩 믿고 있었다.

" 저 보물이 필요한 사람이 누구일까? "

토미스가 알고 있는 정보로는 팔콘, 재필, OEN의 존재가 투구를 필요로했다. 팔콘은 완벽한 인간을 만들기 위해. 재필은 제스를 병기화 하기 위해. OEN은 베일에 싸여 있긴 했지만, 필요로 한다는 것은 어렴풋이 알 수 있었다.

" 이거 큰 건인데... "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 전화벨이 울렸다. 정확히는 개인 교신기였다. 다섯, 여섯, 일곱 번쯤 울렸을 까. 엔틱한 전화기의 수화기를 들었다.

" 네. 212 사무소입니다. "

­ 오랜만이군. 날 새.

목소리만 듣고도 알 수 있나? 발신자 표시기능이 없는 교신기였다. 내 걱정은 필요 없는 것 같다. 단번에 상대방의 음성을 파악한 토미스.

" 어쩐 일이십니까. 국장님. "

국장. 어디 국장?

­ 뭐. 더 있겠나 일거리 만들어 주려고 그러지.

" 투구 관련입니까? "

­ 역시, 눈치 하나 빠르군.

" 보안국에서도 움직이는 겁니까? "

­ 생각보다 사안이 큰 문제야. 우리 말고도. 경검찰, 수비군, 정보국 그 외 다른 국가 조직들이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고.

" 투구의 존재 가치를 국장님도 알고 계십니까? "

­ 조사하다 보니 알게 되었지. 제스의 피를 압축시킨다고. 그런데, 왜 232대원들이 그 투구를 훔쳐 갔을까?

" 텔레비젼에서 말하는 것이 사실이 아닌 것 같은데요. 투구의 가치를 알 만한 인물이 아니에요. 그들은. "

예리한 토미스였다.

­ 그래? 그럼 자네는 왜 그런 일이 생긴 것 같나?

" 단순합니다. 화면 속에 보이는 차차와 팔콘만 보더라도. 232 사냥꾼은 현상범을 잡으려 했던 것 같습니다. 그 와중에 투구가 끼어 있는 것 같은데요. 팔콘이 그 투구를 노리고 있었으니 말이죠. "

오호, 추리력 보소. 명탐정 퓨즈도 울고 갈 필이다.

­ 그래서 말인데...

" 네. 말씀하십시오. "

­ 그자들. 232 사냥꾼을 추적할 수 있겠나? 자네의 능력으로.

" 당연히 맡아야죠. 간만에 들어온 일감인데. 국장님도 아시다시피 제 의뢰비는 따따불입니다. "

4배! 날강도 토미스였다.

­ 그건 염려 말게나. 일만 잘 처리하면 바로 쏴주지.

쏜다! 어느 소설 속에 마들갈이란 인물이 있는데, 그로 빙의한 국장이었다. '쏜다'를 남발하고 다닌다 했던가?

" 알겠습니다. 선수금 10%로 먼저 입금해 주시면 바로 움직이겠습니다. "

­ 허.허... 역시 금액적으로는 철두철미하군. 수학과 나왔나?

" 국장님도 참. 먹고 살라면 이 정도는 기본입니다. 아무튼, 간단한 브리핑 없습니까? 도움이 될 만한 거로 말입니다. "

­ 음. 이것이 도움이 될지 모르겠네만, 오늘 그들이 수비대와 공중전을 한바탕 한 것 같더군. 26구역에서, 조사 결과론 수비대가 완패했어. 전투정 24기가 중형 함정 하나를 못 이겼다는군.

" 네? 사실입니까? 24기의 전투정이면. 대형 함선이 움직일 확률이 높은데 말입니다. "

박식하다. 박식해. 토미스가 제대로 유추해 냈다.

­ 맞네. 자네 말이. 대형 함선이 움직였지. 블랙박스 화면으로 보면 가관도 아니야. 지휘관이 얼마나 못났으면.

자르가 의문의 1패를 당했다.

­ 그 화면 속에 있는 소형정이 특이해. 아직 출시도 안 한 소형정이거든, 얼핏 봐서는 고무 같다고 해야 하나?

" 연금술? "

­ 뭐. 아무튼 그렇다는 거고. 공중전 이후에 그들은 뿔뿔이 흩어진 것 같군.

" 그렇군요. "

­ 그럼 입금했으니 움직여 주게.

오~ 빠르다. 빨라. 총알 입금. 토미스와 교신을 하며 계좌로 쏜 국장이었다. 얘 마들갈 아닌가? 쏜다를 밥 먹듯이 하는 걸 보면. 수상하다 수상해.

" 네. 알겠습니다. 국장님. "

교신을 끊으려 하는 순간, 토미스가 국장에게 질문했다.

" 아. 아. 국장님! 혹시 투구에 대해서 아는 것이 있습니까? 설령, 그 투구를 필요로 하는 인물이 누구누구인지? "

­ 왜?

" 혹시나. 제가 알고 있는 정보와 맞춰보려고 하거든요. "

­ 음. 자세히 모르겠지만, 이거 하나는 확실하네. 그 투구를 찾아오지 못하면 보안국은 피바람이 일 거야. 수상이 직접 큰소리치는 걸 봐서는. 내 모가지도 안전치 않군.

" 수상이 애타게 찾는 이유라도. "

­ 행성의 보물 아닌가? 그것도 일반인들에게 공개할 수 없는 보물. 당연히 찾는 것이 수상에게는 의무고, 그 밑에서 일하는 우린 따를 수밖에 없지 않은가.

" 그... 그렇군요. 잘 알겠습니다. 위치를 찾는 즉시 연락드리겠습니다. "

­ 알았네. 수고하게.

' 딸칵. '

토미스는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 휴~ 뭔가 이상해. 그들이 도대체. 투구를 훔칠 이유가 뭐란 말인가... "

그렇게 혼잣말하며 텔레비젼을 응시하는 토미스 였다.

토미스야. 그리 어렵게 생각할 것 없다아옹~ 건남이 미쳐서 그런 거니 말이다아옹~

아무튼, 이것이 토미스가 232를 추적하게 되는 이유였다.

­ 90구역 어느 창공. ­

토미스가 며칠 전 있었던 국장의 의뢰를 생각하며 멍하게 있자, 팽이 말을 걸었다.

" 뭘 그렇게 생각해? "

" 어? 어... "

" 넋이 나갔군. "

" 아니야. 아니야. "

토미스가 고개를 저으곤 콧구멍에 막았던 휴지를 갈아 끼운다. 코피가 잘 멈추질 않나 보다. 그리고는 영상으로 보았던 좌표를 어딘가에 입력한다. 그 어딘가가, 보안국 국장실이라는 건 안 봐도 비디오다.

" 내가 잘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군... "

중얼중얼. 토미스의 읊조림이 팽에게는 들리지 않았다.

*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