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4화 〉 163첩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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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화. 첩자.
재필과 그의 일행이 연금술사의 아지트에 도착하기 1시간 전.
재필은 깔루아빔과 차골, 영달에게 작전을 설명하고 있었다. 호송정 지휘석에 앉은 재필,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서 있는 죄수복의 일행들, 매우 공손한 자세였다.
" 그러고 보면 NG도 대단하군. 교도소에서 그런 걸 만들려고 했던 걸 보면. "
뭘 만들려고 했길래? 말하라옹~
" 보스. 그럼 보스는 그 사실을 이제 알았다는 것입니까? "
깔루아빔이 회전의자의 재필에게 물었다.
" 그럼. 난 발쿰의 소속이 된 지 얼마되지 않았거든. 근 한 달 되었나? 하여간, 너희가 교도소에 들어온 것도 다 계획이 있었던 것 같더군. "
영달이 긴장이 풀렸는지 해죽 웃었다.
" 큽... 그럼요. 보스. 제가 생산한 마약이 그들에게 쓸모가 있었나 봅니다. "
" 이거 말인가? "
재필이 주머니에서 알약을 꺼내었다.
" 가지고 있었군요? "
" 그럼. 이걸 만들기 위해 너희 셋을 잡아들인 걸로 아는데. "
차골이 느릿느릿한 발음으로 입을 열었다.
" 네. 그렇습니다. 깔루아빔은 하급 공무원이었었는데, 약품 담당자로서 허가 관련 업무를 맡고 있었지요. 그로 하여금 쉽게 유통 할수 있게 되었지요. "
" 너가 유통책을 맡았겠군. 이 알약의... "
" 네 그렇습니다. 개나브로 두목과 손을 잡았죠. "
" 그렇게 허술한가? 인허가를 내주는 것이. "
" 별거 없습니다. 알약은 정말로 마약이 아닌 일반 약품으로 허가를 받고, 마약이 필요한 사람들에게만 한정적으로 만들어 그 일반 약과 섞어 팔았으니 말이죠. "
" 오래 해 먹었겠어. "
" 그러다 적발이 되었습니다. "
" 오호~ 그래! "
" 네. 그 타이밍에 발쿰이 제게 거래를 제안했거든요. "
차골이 헛기침을 하자 영달이 그의 말을 이어갔다.
" 그때, 이 차골과 함께 생산 책인 제게도 다가왔습니다. 물론, 깔루아빔도. 맞지? "
깔루아빔은 고개를 끄덕였다.
" 무슨 제안이었나? "
" 콩밥 먹을 준비 하라고 하면서... 이런 제안을 하더군요. 저희의 죄는 조금씩 다르지만, 3~5년은 썩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다만, 그 안에서 편안하게 지내게 해 줄 테니 약을 만들라고 했죠. 크랑도 교도소에서 나올 때쯤이면 10년쯤은 먹고 살 수 있게 해줄 거라 했습니다."
달콤한 유혹이었다. 딱 눈감고 재필이 지냈던 원룸 같은 곳에서 생활하며, 공장에 나가 일을 하듯 약을 생산하면 10년 치 크랑을 주겠다. 어차피 교도소에서 복역하는 거, 크랑을 벌 수 있다면...그것도 10년치.
" 모두에게 그렇게 말했나? 그 환각제가 무엇이길래? "
질문에 끄덕이는 부하들. 환각제를 만들었던 영달이 전문 지식을 자랑하듯 떠벌였다.
" 이건 연금술로 만든 마약입니다. 보통의 마약. 그런 환각과는 전혀 다른 세상을 만끽하게 하죠. 조제 과정이 좀 복잡하지만, 중독되면 굉장히 치명적입니다. 힘과 민첩을 끌어 올리는 효과도 있고요. 다만, 심장의 무리가 올 수 있습니다. 심장마비로, 간혹 약품 사용자가 죽기도 합니다. "
" 자네가 만들었나? 무슨 환각이 일어나길래? "
" 네. 제가 만들었죠. 상상하는 것이 실현됩니다. 물론 허상이긴 하지만, 당사자는 그것이 너무나 생생해 진짜로 착각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설령, 제가 나무 인형을 잘나가는 연예인이라 생각하면. 그 인형이 자신의 눈에는 그 연예인이 되어 버린다고나 할까요? "
" 별. 그지같은 약품이군. "
" 그래도 약쟁이들은 매우 선호하는 약이라 짭짤했죠. 흐흐. "
" 아무튼, 그 약을 왜 만들라고 한 건가? 약을 생산해서 그 수입을 발쿰이 챙기려고? 양아치 집단인가? "
영달이 고개를 저은다.
" 그게. 여기서... 몇 가지 재료만 간단하게 투입하면. 생화학 무기로 변하기 때문입니다. "
재필이 조그만 알약을 살핀다.
" 이게? "
" 위력이 어마어마하죠. "
" 설마? 내가 만들었던 그 원리. "
" 보스께서도 그럼, 사람을 무력화시키는 무기를 만들었다는 겁니까? "
" 크크크크... 내가 직접 만든 건 아니지만, 내가 주관해서 만든 것이 있었지. 인간의 제스화. 그건가? "
" 아... 아직, 제가 그 단계까지의 연금술 능력은 부족합니다. 다만, 제스화에 필요한 작업 토대로 만들어진 건 맞습니다. 제스가 되기 전, 인간이 휴면 상태에 들어가는 정도일 겁니다. "
" 크크크크... 충분해 그 정도면. 반응 시간은? "
" 알약은 먹지 않아도 캡슐이 0°C 이상에서 녹게 되어있습니다. 대략 1시간 후 공기에 퍼지게 됩니다. 무색무취라 쉽게 알아차리기 어렵습니다. "
" 좋아. 챙겨오길 잘했군. "
" 이걸 사용하시려는 겁니까? "
" 당연하지. 모두 생체로 잡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인데. 그 알약을, 내가 사냥꾼들을 유인하면 곳곳에 설치해. "
" 네. 알겠습니다. "
이구동성으로 대답했다. 각진 목소리가 군인 같았다. 군기가 바짝 들어간 훈련병이랄까.
그랬다. 깔루아빔과 차골, 영달은 그 알약을 곳곳에 설치하고 다니는 것이었다. 연금술사 아지트 이곳저곳에. 일수 가방은 그럼, 휴대용 아이스박스였단 말인가? 어쩐지 재필이 성우와 건남에게 다솜의 이야기를 술술 풀어내더니만, 다 주의를 끌기 위해 행동했던 것이었다.
교도소가 무기 공장일 줄이야. 호송정 안에는 알약이, 라구나 식구들을 잠재 울 무기가 냉동보관 되고 있었던 것이었다. 조용히 일을 처리하고 있는 재필의 부하들.
깔루아빔이 정박장 벽과 벽 사이에 벌어진 틈으로 알약을 쑤셔 넣는다. 차골이 바닥에 알약을 툭툭 떨어뜨린다. 영달이 정박장과 숙소를 연결하는 복도에 알약을 장착한다.
이런! 재필에게 손가락 하나 건들지 못하고 픽픽 쓰러질 라구나 일행들이 내 눈에 그려진다.
얘들아! 도망쳐! 그러나 내 전할 길이 있나... 어쩌지?
아무튼, 그러한 사실을 모르고 시범으로 변신한 재필과 쑥덕이고 있는 건남과 성우, 준이었다.
" 다솜을 그럼 체리가 데리고 있다는 겁니까? "
멍해 있던 건남이 재필에게 다짜고짜 질문했다.
" 체리라뇨? 과일? "
넋이 빠져있던 성우가 힐끔 재필을 쳐다보았다. 준도 똑같은 반응이었다. 그래. 뭔가 눈치챈 건가? 앞에 있는 시범이가 시범이 아니라는 것을...
" 시범아. 너 체리 선배 몰라? "
재필은 갸우뚱. 알 턱이 있나. 얼굴 한 번 본적 없는 사람인걸. 그래도 눈치는 있는 것 같았다. 체리를 모르면 안 될 것 같은 느낌.
" 아~ 알죠. 그분. 제가 요새 기억력이 나빠져서. "
점점 처세술이 일취월장하는 재필이었다.
" 그럼. 체리 선배가 왜 다솜을? "
" 제가 여태껏 뭐라 했습니까? 수상이 손을 썼으니. 꼼짝하지 못하는 거겠죠. "
재필의 이 말에 준은 깍지를 끼우며 턱을 괴었다. 뭔가 알았다는 눈치였다.
" 음~ 내 생각은 좀 달라. 이건... "
준은 옛 기억을 더듬고 있었다. 그것은 재필과의 전투에서 다솜을 만났을 때였다. 다솜의 기억술로 죽을 뻔한 기억. 다솜의 능력은 기억을 지우는 것이었다. 그 과정에서 일어나는 과도한 지움은, 대상을 하늘나라로 보낼 힘도 가지고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변형된 여러 가지의 공격법이 가능했다.
뇌의 백지화라든가, 신경전달 자극으로 인한 고통 등등. 아무튼, 준은 그때를 생각한다. 다솜으로 인해 고통받았던 재필의 커다란 비행선에서 있었던 일을...
" 그때... 재필과 한바탕했을 때. 다솜을 보면서 체리 선배를 만났다는 기분이 들었었거든. 너무나 닮았었어. 무척 놀랐었지만, 내색은 하지 않았었지. 그럴 겨를도 없었고. "
재필은 자신의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뜨끔뜨끔. 바늘로 심장을 콕콕 찌르는 느낌이었다.
" 그래서요? "
성우가 준의 이야기에 흥미를 느낀 것 같다.
" 다솜이 체리 선배와 깊은 연이 있는 건 아닐까? 설령 딸이라든가... 아니면 동생이라던가... 둘 다 '기억'이 능력이니 말이야. "
건남은 놀랄 노 자를 머리속으로 그렸다. 있지도 않은 한자를 그리니 얼마나 놀랐겠는가?
" 에이~ 준 선배 설마... "
성우는 설마라 이야기했지만, 그럴 수도 있다는 가정을 열어두었다.
" 준. 형! 그렇다면 이거 너무 복잡합니다. "
" 뭐가? "
" 제가 아는 다솜은 OEN의 딸이에요! "
준과 성우의 반응. 입을 떡 벌리고 있다. 오늘 이들 많이 놀라네. 우황청심환이라도 먹여야 할판이다.
" 준 형의 말이 사실이라면. 체리 팀장님과 OEN이 부부라는 말인데... "
빙고다. 너희가 추리하는 게 답이었다. 쉽게 납득이 가지 않겠지, 둘이 연애를 했다는 쪽으로만 생각하면 더욱 헷갈릴 것이다. 최고의 악당과 사랑에 빠진 아름다운 정보부 요원.
" 체... 체리 선배가 그럼... "
만약 체리가 OEN과 그런 사이라면, OEN과의 밀거래가 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성우는 하고 있었다.
" 내가 너무 이상한 생각을 한 건가? "
준이 더욱 생각에 잠겼다. 그런 틈으로 입을 떼는 재필.
" 그렇지는 않을 겁니다. 그냥 비슷하게 생긴 사람이겠죠. 제 말 따라 정보부도 수상의 압력을 버티지 못했을 겁니다. "
거짓말도 쉽게 하는 재필. 재필의 수하에 있던 다솜이었는데, 그가 그 사실을 모를 리가. 재필은 다솜이 체리의 딸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체리와 라구나 대원들에게 혼란을 주기 위한 하나의 트릭이라고나 할까? 물론, 체리라는 인물이 정보부 팀장이란 건 모르고 있었지만, 정보부 팀장에게서 얻은 유전자로 태어난 다솜이었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재필은 속으로 생각했다. ' 체리라는 인물이 정보부 팀장이었군. 이들이 그와 깊은 관계고. 잘 됐어. 아주 잘 됐어. ' 재필의 생각은 체리와 라구나 식구들의 이간질.
" 아, 그러고 보니 선배님들... 체리 선배가 예전에 사라진 적이 있지 않습니까? "
" 그런 일이 있었어? "
" 아직 모르고 계셨군요. 예전 한동안 실종됐었죠. "
" 그래? "
" 네. 그때 아마도 OEN과의 접촉이 있었을 겁니다. 그래서 다솜이 필요하지 않았을까 생각이 듭니다. 물론, 수상도 다솜을 필요로 하겠지만, 분명 둘 사이에서 저울질하고 있을 거예요. "
준이 어이가 없는 눈빛으로 재필을 쳐다만 보았다. 성우는 크게 한숨을 쉬었다.
" 하아~ 그럼. 체리 선배가 이중스파이 노릇을 한다는 거야. 지금? "
" 제가 조사한 바로는 그렇습니다. 괜히 선물이라고 말하겠습니까. "
솔직히 준과 성우는 믿을 수 없었다. 믿고 싶어 하지 않는 것일 수도 있었다. 그렇게 협조하며 함께 달려오지 않았는가? 친누나 같은 애정이 담긴 인물이었지 않은가?
" 이럴 수가!! 내 당장 체리 선배에게 확인해 봐야겠어! "
성우가 자신의 선글라슬 집어 들었다. 선글라스를 잡은 성우의 손을, 준은 말리듯 유유히 잡았다가 놓았다.
" 성우야. 그걸 어떻게 설명하려고. 시범의 조사가 거짓이라 하더라도 지금 연락하는 건 좋지 않아. "
" 그래도 형님. 이건... "
건남도 한마디 한다.
" 후배님 말이 거짓이라는 보장도 없잖아요. 그건 제가 알아보겠습니다. 형님은 그전과 똑같이 행동하세요. "
" 이런... 체리 선배가... 그럴 분이 아닌데... "
재필이 속으로 흐뭇해하지만, 겉모습은 전혀 다른 얼굴을 했다. 무척 안타까운 듯 말이다.
" 저도 처음엔 믿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기록 영상 장치를 확인해 보니. 아쉽지만, 점점 더 확신이 들었답니다. 하~ "
고개를 약간 비틀어 침통하게 한숨을 내 쉬었다. 이자식. 연기 감이 물올랐다.
' 크크크큭. 믿는 눈치군. 크크크큭. 어느 정도 성공한 것 같아. '
능구렁이 재필. 이런 모략도 펼치다니...
" 그럼 체리 선배의 도움은 잠시 접어야 하는 건가? "
재필은 끄덕였다.
" 네! 지금 그녀가 노리는 것도 분명. 사라진 투구일 겁니다. "
그건 너겠지. 부하들 시켜서 얘들 무력화시킨 뒤, 투구의 위치를 알아보려는 것. 기절시킨 뒤 생체로 잡아 입을 열게 할 것이 분명했다. 그때 준이 입을 열었다.
" 근데 투구는 어디로 간 거야? "
이번엔 건남과 성우도 놀란다. 재필도 그건 마찬가지. 서로 놀라는 의미가 달랐지만, 놀란다는 건 똑같았다. 아직 투구를 자신들이 숨겨 놓았다고 말 못 한 것에 놀라는 건남과 성우였고, 이들이 투구를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에 의아한 재필이 놀랐다는 것이다. 셋 다. 준의 질문에 말이 없었다.
" 투구를 팔콘이 가지고 간 게 아니었어? "
" 준 형님. 그 행방이 묘연한데. 라구나 식구들이 가지고 있던 거 아닌가요? "
은근슬쩍 떠보기까지 하는 재필.
" 우리가? 시범아. 우린 그 투구 구경도 못 했는데. "
준 너는 못 했겠지. 네 옆에 있는 두 녀석이 숨겨놓았다. 순간 대화가 두절된 응접실 분위기는 스산했다.
건남과 준은 눈빛을 교환한다. 무언가 밝히려는 눈빛이었다.
" 후~ 숨기려 했는데 말해야겠군요. 성우형 괜찮겠죠? "
고개를 끄덕이는 성우.
" 준형. 그리고 시범씨. 그 투구 저희가 빼돌린 거 맞습니다. "
준은 기겁하듯 건남을 쳐다봤다.
" 훔치려 했던 건 아닙니다. 연금술사님께 물어보니. 상희의 아이를 찾으려면 필요하다고 했어요. "
재필은 그들이 가지고 있다는 걸, 이젠 정확히 파악했다. 무표정이지만, 속마음은 꽤 즐거울 것이다. 준은 우황청심환 빨리 먹여야 할 필이고.
" 뭐!! 그걸 우리가 가지고 있다고! 그럼 그 거짓 보도가 사실이라는 거야? 미쳤네! 우리에겐 말도 안 하고! 다른 사람들도 알고 있는 거야? 나만 빼고? "
그 칩착하고 묵직했던 준은 어디 가고, 고성방가로 잡혀갈 것 같은 목소리로 인상 쓰며 성우와 건남을 두리번거린다.
" 어쩌다 보니 훔친 게 되었는데... 일이 이렇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아이를 찾으면 다시 되돌리려 했었죠. "
" 아~ 이 순진한 사람아! 그걸 누가 믿어. 괜스레 다른 사람들까지 이게 무슨 피해야! "
성우가 나긋나긋하게 준에게 말했다.
" 형. 어쩔 수 없잖습니까. 지금 투구를 수상이든, 발쿰이 가져간다면 이 행성이 위험해질 수도 있는데 말이죠. 이렇게 된 거, 우리가 보관하는 게, 전 현명하다고 생각했습니다. "
" 나 참! 그럼 저 뉴스를 제보한 사람은 이 사실을 알고 있었다는 거잖아? 아니야? "
" 글쎄요. 어쩌다 모함하려고 했던 게 용케 알아낸 것처럼 둔갑한 건지도 모르죠. "
그래, 자르가 소 뒷걸음질 치다가 쥐 잡은 꼴이었다.
" 하여간. 이 지지리 화상들... 이젠 어쩔 거야? 다른 얘들에게도 말해야 하지 않겠어? "
" 네! 그럴게요. 용선형과 혜란이 도착하면 그때 다시 설명하겠습니다. "
" 기가 찬다. 기가 차! 이젠 절도범까지 되는구나. "
지켜보고 있는 재필은 벽에 걸린 시계를 짧게 보았다. 부하들과 약속한 시각을 확인하기 위해서.
' 15분 남았군. 크크크... 이제 슬슬 피해 볼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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