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5화 〉 164기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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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화. 기절.
재필은 시계를 바라본 후, 투구의 위치를 알아내기 위해 말했다.
" 참! 그럼 그 투구는 어디에 있습니까? 연금술사님이 가지고 계신가요? "
" 왜? "
" 그... 그냥 궁금해서 말입니다. 그래도 행성 보물인데 구경하고 싶기도 하고 말이죠. "
" 그래. 연금술사님이 가지고 계시지. "
성우가 친절하게 가르쳐주신다. 안된다아옹~ 얘 시범이 아니라 재필이라옹~ 아무튼, 재필은 시간을 다시 한번 확인하며, 슬그머니 일어섰다.
" 그럼 형님들 말씀 나누고 계십시오. 전 화장실 좀 다녀오겠습니다. "
" 어... 어 그래. 그래. "
재필은 그렇게 일어나 화장실로 향했다. 보나 마나 화장실 핑계로 이곳에서 빠져나갈 심산이다. 이렇게 쉽게 미션 성공? 터벅터벅 걸어가는 재필의 뒤로 넋 나간 세 사람은, 공허하게 천장과 주변을 바라보고 있었다. 응접실을 나간 자르의 발이 분주하게 움직였다.
" 크크큭... 됐어. 연금술사만 족치면 되겠군. 이참에 상희도 얻을 수 있고. 일이 잘 풀리네. 크크큭. "
복도를 따라 뛰듯 걷는 재필. 어느덧 정박장까지 다가왔다. 살금살금 움직이는 부하들이 보인다. ' 타박. 타박타박 타박... ' 알약을 설치하고 있던 깔루아빔이 발소릴 듣곤 멈칫거린다. 다가오는 발소리가 재필이라는 것을 확인하자, 안심하는 깔루아빔.
" 어때? 일은 끝나가? "
" 네. 보스 마지막 한 알 남았습니다. "
" 다른 녀석들은? "
" 아마도 끝났을 겁니다. "
마지막 남은 알약을 휙 집어 던졌다.
" 끝났습니다. 보스. "
걸어온 길을 돌아보며 알약이 떨어진 걸 확인하는 재필이었다.
" 저렇게 마구 던져도 되는 거야? 터지면 어쩌려고. "
" 걱정하지 마십시오. 온도에만 반응합니다. 저 정도의 충격으론 깨지지 않으니 말이죠. "
못마땅한 표정을 지으지만, 별수 있나? 소란 피울 수도, 큰소리로 혼낼 수는 없는 일이었다. 들통나면 안돼니.
" 가지. 호송선으로... "
" 네. 보스. "
그렇게 정박장 입구에 둘은 들어섰다. 그가 도착하자, 마치 짠 것처럼 영달과 차골이 좌우로 다가왔다. 그리고 호송정으로 향한다. 바바리 코트만 입히면 딱 홍콩 영화의 사마패 같은 느낌이 들었을 텐데... 이건 그냥 오합지졸 같다.
서서히 호송정에 오르는 재필의 일당들. 재필이 손목에 찬 시계를 확인했다.
" 10분 남았군. 크크크큭.... "
소름돋게 웃어 보이는 재필이었다.
연금술사 아지트 앞
고스트.
팔콘의 비행정은 고스트로 비행하고 있었다. 투명한 그의 비행선, 연금술사 아지트 위를 매우 천천히 날고 있다.
" 걸리진 않았겠지? "
" 그럴 거야. 고스트 성능이 있으니. 팔콘. 이제 어떻게 할 건가? " " 왜? 무섭나? "
" 무섭기보다도 저들의 힘을 가늠할 수 없으니 말이야. 그때, 술사 사냥꾼이 한 명 있었잖아. 둘이서 감당할 수 있을까? "
" 크큭. 내 힘을 못 믿겠나... 그깟 떨거지들. 한 번 당해 봤으니, 길이 보이는 군. 큽. 크큭. "
" 그럼! "
" 저 철제문. 부숴버려. 그대로 돌진해. 날 잘못 건드리면 어떻게 되는지 뼈저리도록 느끼게 해 주지. "
너희 투구를 찾아야 하는 거 아니냐옹? 말하는 뉘앙스가 그냥 때려죽일 각이다.
" 투구는? "
" 고통에 입 무거운 사람 없지. 내가 죽인 자들에서 얻은 교훈이라고나 할까. "
챈코가 한탄을 하듯 한숨을 내뱉었다.
" 그냥. 들이밀겠다고? "
" 그럼. 두려울 게 없잖아. "
" 이봐. 팔콘! 이건 그래도 무리 아니겠어. NG에게 보고하고 나서 지원 병력을 기다리는 게 더 현명하다는 생각 안 들어? "
챈코가 이번에는 안 되겠나 보다. 저렇게 말하는 걸 보면. 평소 팔콘의 한마디면 깨갱댔는데.
" 이봐... 챈코... "
엄숙한 목소리로 변한 팔콘이었다.
" 지금. 내게 반항하는 건가... "
눈매가 무섭게 변했다.
" 반항! 이번엔 정말 아닌 것 같아! "
지지 않는 챈코였다. 저 눈빛을 보고도 대드는 걸 보면.
" 내가 조언 하나 할까. 넌 발쿰의 개일지 몰라도. 난 아니거든. 저 투구를 내가 NG에게 넘길 것 같았나. "
" 그... 그럼? "
" 저 투구만 있으면. 내가 얻고자 하는 것을 가질 수 있는데... 미쳤다고 순순히 넘길 것 같았나. 완벽한 인간을 만드는 이유가 무엇이었는지 알고는 있나? "
" 그건. 너의 조직을 다시 키우기 위해 그런 거 아니었어? 조직의 보스를 다시 소생시키기 위해? "
" 웃. 기. 지. 마. "
" 그럼? 왜? "
" 곧. 세상은 파멸하지. 발쿰의 지도층이 얻고자 하는 건, 그것에 대한 대비책을 위해서고. 그들은 알고 있어. 이 세상은 사라질 거라는 걸. 왜 그토록 전 수상의 아이를 찾아 헤멨겠나? 왜 그토록 상희의 아이를 찾아 공을 들였겠나? "
" 무슨 소릴... "
" 크하하하하.... 크하하하하... "
팔콘의 웃는 소리가 소형정 안에 차올랐다. 그대로 웃음을 멈춘 팔콘.
" 넌. 내가 시키는 데로 만 해! 살고 싶으면."
" 대체 뭐길래? 후~ "
눈길을 마주치지 못하는 챈코가 한숨을 쉬었다.
" 내가 이야기 하나 해 줄까? 발쿰의 존재가 무엇인지? 그냥 수상을 배척하는 집단이라 생각하면 큰 오산이야. "
" ...... "
" 저들은 알고 있었지. 마들가리 행성의 미래를. 0구역의 액체가 생겨난 비밀을 말이야. "
" 그게... 무엇이길래. "
" 액체는 점점 커지고 있어. 그것을 둘러싼 점막이 한계에 다가왔다는 거야... "
팔콘의 말을 믿어야 하는 건가? 이 미치광이 녀석의 말을 들어야 하는 건가? 챈코는 어지러웠다. 그냥 완벽한 인간의 재생을 위해 그 많은 사람을 죽인 거 아니었는가? 지금에 와서 이런 말을 하는 팔콘이 더욱 미친놈처럼 느껴졌다.
" 앞으로 딱 2년 남았지. 행성의 운명은. 그 사실을 아는 자가 의외로 많아. 발쿰의 권력세력. 그리고 수상, OEN과 페이킨. "
" 너의 말은 행성이 0구역의 액체로 인해 마들가리행성에서 살 수가 없다는 건가? "
" 그래. 그걸 휴거라 그러나. "
미.친.새.끼. 속으로 외쳐보는 챈코였다. 여태껏 팔콘을 도와 일했던 자신이 후회스러웠다. 이런 종말론을 믿고 있던 신자였던가?
" 알았네. 자네의 말을 따르지. "
속과는 다른 말을 내뱉은 챈코, 그는 단단히 마음을 굳혔다.
' 이 일이 끝나면 영원히 안녕이다. 이 미친 새끼야... '
" 훗. 그럼 시작해 볼까. "
챈코가 미사일 버튼에 손을 얹었다. 아지트로 들어가기 위해 철문을 부숴야 했으니. 느릿하게 버튼을 누르려는 순간,
' 펑. 콰광쾅쾅! '
철문이 무너져 내렸다. 자신들의 할 일을 누군가 선수쳤다.
" 뭐지? "
팔콘과 챈코는 눈이 커질 수밖에 없었다.
철문이 와르륵 부서졌다. 그 광경에 숨죽인 팔콘과 자르. 그들의 눈엔 재필이 타고 온 호송정이 비상하고 있었다. 재필은 캡슐이 터질 시간에 맞추어, 연금술사 아지트를 빠져나온다.
약 5분 뒤.
차골이 만든 약은 생화학 무기로 변환할 것이다. 대략 500개의 알약은, 웅장한 연금술사의 은거지를 뒤덮기에 충분했다.
철문이 부서지는 소리에, 아지트 안에 있던 일행은 모두 정박장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이동기를 살피던 3월의 토끼와 다해, 현석도.
응접실에 넋 놓고 시범을 기다리는 건남과 성우, 준도.
음악 없이 춤추던 명치대인도.
명치대인의 스텝을 보며 구시렁거리는 상희도.
라리와 농담 따먹기 하던 창기도.
모두 '무슨 일이야?' 하는 표정이었다. 가장 급하게 뛰어나간건 3월의 토끼였다.
" 뭐야 도대체. 누가? "
오랜 세월, 이곳에 정착했던 그녀는, 이 소리가 자연이 만들어낸 굉음이 아닌 걸 느낄 수 있었다. 이동기가 있던 작업장에서 빠져나온 그녀. 깡충거리는 것처럼 복도를 따라 정박장으로 뛰었다.
응접실의 문이 열리며 건남과 성우, 준도 그녀를 뒤따랐다.
식당에서 상희가 문을 열고 고개를 빼꼼 내민다. 그녀의 눈에 정박장으로 향하는 그들의 뒷모습이 비췄다.
" 무슨 일 있나 본데요. 창기옵. "
" 누님. 무슨 일이래? "
상희의 머리 위로 명치대인의 머리가 쑥 튀어나왔다. 그리곤 뛰고 있는 건남에게 소리쳤다.
" 아따! 건남 형! 무슨 일이에요? 네? "
건남이 뒤를 보며 대답했다.
" 몰라! 뭔가 터진 것 같은데 너흰 들어가 있... 엇? "
말을 마치기 무섭게 건남의 눈에 들어온 알약. 복도에 깔루아빔이 던진 그 알약이었다. 뛰는 걸 멈춘 그가 터벅터벅 걸어갔다. 알약 앞에서 멈췄다. 그리곤 그 알약을 집어 들어 눈높이에 맞추어 바라본다.
" 이건? "
알약 겉면이 눈 녹듯, 스르륵 녹아내리고 있었다. 건남이 그렇게 알약을 바라보고 있을 때, 3월의 토끼는 열린 복도문을 통해, 정박장 입구가 파괴된 것을 허무하게 바라봤다.
" 뭐지? 왜? "
붕괴한 커다란 철제문.
그 사이로 불어 닥치는 눈보라.
토끼 모자의 귀가 흔들거린다.
허겁지겁 뛰어온 성우와 준의 눈에, 점점 멀어지는 호송정이 들어왔다.
" 어떻게 된 거죠? "
성우의 궁금증을 3월의 토끼가 알 리가 있나. 그냥 멍때리는 세 사람. 그때, 건남의 외침이 들렸다.
" 모두 피하세요!! "
복도를 타고 울리는 건남의 목소리. 그러나. 늦었다. 캡슐의 막이 모두 녹아내렸다. 정박장에 설치된 알약도. 복도에 숨겨진 알약도. 벽과 벽 틈에 안착했던 알약도. 곤충의 외피가 벗겨지듯, 사라졌다. 무색의 생화학 무기로 변하는 순간이었다.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공기 중에 입자가 퍼지고 있었다. 철문으로 불어오는 바람을 타고 아지트 구석구석으로 흩어진다. 건남은 또다시 소리쳤다.
" 모두 밖으로 나가!! "
그래. 저 자식이 함부로 말할 위인은 아니다. 라구나 일행과 3월의 토끼는 부서진 철문으로 뛰쳐나갔다. 작업실에 다해와 현석이, 식당에 있던 상희와 창기가 헐레벌떡 뛰기 시작했다. 복도가 그들의 발소리로 가득 찬다.
건남은 서둘러 3월의 토끼가 있는 정박장으로 달렸다. 그러나, 몸이 풀린다. 다리가 풀린다. 움직이고 싶지만, 점점 마비가 오기 시작하는 걸 자신도 느꼈다.
" 윽. 이런 제길... 토끼님 어서 밖으로 나가세요... "
말의 속도도 몸처럼 느려지고 있는 그였다.
알약.
공기 중에 떠다니는 매우 가벼운 입자가 호흡기로 퍼지면, 신진대사가 느려지며 잠들었다. 하나의 마취제라 해야 하나. 모든 근육이 풀리며 무력화시키는 알약이었다. 건남은 그 약을 직접적으로 코앞에서 들이마셨다. 그래서 그런가, 제일 먼저 쓰러졌다. ' 풀썩. ' 바닥에 드러누운 건남. 모든 것이 흐릿하게 보였다.
" 건남옵! "
상희가 쓰러진 건남에게로 뛰어왔다. 다해 또한.
" 건남 삼춘! 무슨 일이에욧! 정신 차리세욧! "
그를 흔들지만,
" 빠. 빨리... 타... 탈출... "
말을 끝마치지 못하고 눈이 감겼다. 뒤에 따라오는 명치대인과 창기가 쓰러진 건남을 부축하며 밖으로 향한다.
" 뭐해! 어서 뛰어! "
창기가 건남을 부축하며 상희와 다해에게 고함쳤다. 그래. 뭔진 몰라도 건남이 쓰러진 이상 이곳이 위험하다는 것. 아무런 미동 없이, 아무런 미련 없이 아지트를 빠져나가기 위해 앞 다투어 달렸다.
상희의 눈엔 먼저 앞서간 3월의 토끼와 성우, 준의 뒷모습이 보인다. 조금만 더 전진하면 그들은 철문을 빠져나갈것 것 같았다. 그러나.
' 털썩. ' ' 풀썩. ' ' 철퍼덕. '
세 명의 사람이 땅바닥에 쓰러졌다.
" 뭐여? 왜 이런 거야? "
의식 없이 도미노 넘어가듯, 쓰러진 세 사람.
" 이게 어떻게 된 거냐고! "
상희가 소리쳤다. 순간, 그녀의 뒤에서도.
' 철퍼덕. 풀썩. 털썩. '
소리가 연이어 들렸다. 뒤돌아본 상희. 모두가 쓰러져 있다. 앞으로, 옆으로 가지각색으로 말이다. 상희를 제외한 모든 이가 정박장을 침실 삼아 잠이 들었다.
" 허... 이게. 무슨... "
철문으로 들어오는 눈보라. 그리고 칼날 같은 바람이 불어왔다. 짧은 커트 머리가 그 바람에 휘날렸다.
동공의 초점이 흔들린다.
자신을 제외한 모든이가 쓰러졌기에.
두리번거리는 그녀. 혼란스러웠다.
그런 그녀를 아랑곳하지 않고 아지트엔 음성이 흘렀다.
경고. 경고. 위험성 감지. 내부에서 아지트를 공격한 흔적을 발견. 자동 방어 체제에 돌입합니다.
그 소리를 멍하니 듣고 있는 상희였다. 순간, 아지트는 흔들렸다. ' 쿠구쿵. 쿵. 쿠구궁... ' 지진이 난 것 같았다.
" 으윽. "
상희가 흔들림에 주춤거렸다. 계속해서 바닥이 울렁거렸다.
' 위이잉. 위잉. 위이잉. '
경고 방송과 경보음이 연이어 흘러나왔다.
' 스스슥. 쾅! '
커다란 굉음과 함께, 무너졌던 철제문 위에서 또 다른 철제문이 떨어졌다. 자동 방어 체제에 들어간 아지트는 스스로 움직이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야말로 혼란의 도가니였다.
상희는 체념한다.
" 하아... "
그때였다.
상희가 몸의 변화를 느낀 건.
" 윽! "
이 변화는 쓰러진 일행과는 다른 느낌이다.
점차 죄어오는 고통.
작은 두통.
상희가 손바닥으로 자신의 머리를 감쌌다.
" 으윽!! "
큰 두통. 이젠 양손으로 머리를 감싼다.
" 으아악! "
쪼개질 것 같은 고통.
상희가 무릎을 꿇었다. 고통의 무게를 견디기 어려웠다. 생존의 갈망을 느끼는 그녀가 머리를 부여잡은 채, 고성을 터뜨렸다.
" 으아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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