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7화 〉 166재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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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8화. 재생.
' 웅.웅.웅웅. '
워프홀에서 라구나가 서서히 빠져나오고 있었다.
' 쿠르르륵. 끼이익. '
마치 불시착하는 비행기 같았다. 땅을 쓸어내리며, 이곳저곳 파손된 라구나가 페이킨의 정원에 안착했다. 캐노피에 금이 쩍 갈라져 있다. 날개 부분의 프로펠라가 부서져 있다. 천장은 뚫려있고... 정비하려면 크랑좀 쏟아부어야 할 필. 아무튼 기절해 있던 페이킨이 정신을 가다듬기 위해 몸부림쳤다. 그러나, 이미 모든 육체는 만신창이. 쉽게 움직일 수 없었다. 풀린 눈만 껌뻑이며 워프 홀을 통과한 라구나만 바라볼 뿐. 몇 분의 시간이 흘렀을까. 라구나의 엔진실이 개방되었다. 얼빠진 대원들이 하나둘 내리기 시작했다. 건남과 상희가 내리고, 그 뒤를 3월의 토끼와 다해, 상희가 대지에 발을 디뎠다.
" 여긴? "
건남이 주변을 살폈다.
녹색 액체가 둥그렇게 감싸고 있는 공간을... 그런 그에게 뒤에 있는 3월의 토끼가 대답했다.
" 여기가 페이킨의 은거지 같군. 0구역 안이야. "
옆에 있는 다해의 눈이 똥그랗게 변했다.
" 네에~ 0구역 안이라고요? 우와! "
동물원이라도 구경나온 소녀 같았다.
" 아놔! 내 라구나 완전 걸레 됐잖아. 미쳐블. "
그래, 상희는 이곳의 신기함보다는 중급 함정이 더 걱정이었다. 그들의 뒤를 이어나온 성우도 주변을 관찰하며 입을 뗀다.
" 근데. 왜 이렇게 난장판인 건가요? "
성우는 부러진 버드나무와 무언가에 쓸린 대지, 움푹 패인 저택의 천장을 살폈다.
" 누군가 이곳에 왔었나? "
그렇게 말하며 저택으로 향하는 3월의 토끼였다. 그때, 춤을 추는 듯한. 아니지. 춤을 추는 명치대인이 마지막으로 라구나를 빠져나왔다.
" 형님. 근데... 조기, 조기. 누군가 쓰러져 있는데요. "
그의 말에 일행은 페이킨이 쓰러져 있는 곳을 바라봤다.
" 페이킨? "
3월의 토끼가 껑충껑충 뛰어간다. 그리고 페이킨의 옆에 섰다. 허겁지겁 페이킨을 살피며 입을 똭 벌리는 그녀였다.
" 이게 어떻게 된 일인가? "
눈만 껌뻑이는 페이킨. 피칠갑과 함께 손목이 하나 날아가 있었다. 그 단단했던 몸은 어느새, 다시 노인으로 돌아와 있었다.
" 이봐! 괜찮... "
3월의 토끼는 말을 잇지 못했다. 그냥 보아도 생명이 위독해 보였으니, 괜찮냐고 물을 수가 없었다. 그 뒤를 헐레벌떡 뛰어온 건남이 상황의 심각성을 인지하며 고갤 돌렸다.
" 다해야! 라구나에서 응급처치 가방 좀 가져와! 어서! "
다급한 그의 목소리였다. 그렇겠지. 상희의 딸을 찾아 이곳까지 찾아왔는데, 그 비밀을 알고 있는 사람이 곧 죽어가고 있었다. 수상의 계략과 다혜의 존재, 그리고 필무형의 베일을 알고 있는 유일한 사람이 페이킨이었다. 그를 살려야 한다. 지금껏 투구를 빌미로 산전수전 겪으며 찾아왔다.
" 젠장! 이럴 땐 히리도 없고... "
건남은 웃옷을 찢어 내어 페이킨의 팔을 감쌌다. 조금이나마 지혈에 도움이 될까? 다해는 어리둥절 건남의 지시를 따랐다. 응급 가방을 가지러 라구나로 민첩하게 뛰었다. 건남과 3월의 토끼에게로 모이는 대원들, 그러나 그들은 무엇도 할 수 없었다. 말없이 죽어가는 페이킨을 바라볼 뿐.
" 이. 이분이 페이킨? "
상희가 페이킨을 살핀다. 페이킨은 풀린 눈으로 상희를 쳐다봤다.
" 으... 다... 당신...은... "
무언가 말하려 하지만 내뱉질 못했다. 응급 가방을 가지러 라구나에 도착한 다해가 엔진실 사다리를 밟을 때였다. 두 남자의 그림자가 그녀의 뒤에서 뻗어 나왔다.
" 뭐지? "
인기척을 느낀 그녀가 고개를 홱하고 돌렸다. 다해의 뒤에 서 있는 두 남자. 팽과 토미스였다.
" 누구세요! 여기엔 어떻게! "
팽이 다해에게 총구를 겨누었다.
" 어쩌다 이상한 일에 빠져서... 아무튼 이 함정 우리가 접수해야겠는 걸. "
" 접수? 아저씨! "
둥그런 얼굴의 팽이 노발대발한다.
" 아저씨! 아저씨라니! 아직 한 번도 안 해 본. 숫총각한테! "
다해는 팽을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곱슬한 턱수염과 콧수염. 얼굴 전체를 뒤덮은 털들의 향연. 넓적한 어깨와 올챙이 배. 누가 봐도 아저씨였다.
" 아저씨 맞구만, 아무튼. 지금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라고요. 이 비행정 훔쳐 가더라도 여기 나갈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리고 밖에 중요한 인물이 죽어간다고요. 쏠 테면 쏘세욧! 난 내가 할 일, 할 테니. 흥! "
콧방귀를 뀌며 계단을 오르는 다해였다.
" 허... 나 참. 우릴 취급도 안 하네... "
그렇게 말한 팽에게 토미스는 총을 거두라는 제스처를 취했다.
" 아무래도 이상한 곳으로 온 것 같군. 그 재필의 능력 때문인가? "
아니다아옹~ 어째 생각하는 게 모조리 빗나가는 토미스였다. 하기야, 그가 알 턱이 있나. 토미스가 뒤돌아선 다해에게 물었다.
" 아가씨! 여긴 어디고, 누가 죽어가고 있다는 건가? "
라구나 유리문을 연 다해가 투덜거렸다.
" 지금 바빠죽겠는데... 아무튼요. 여긴 0구역 안이고요. 밖에는 페이킨 할아버지가 죽어가고 있어욧! 이제 일 봐도 되죠! "
꼭 하지 말라면 안 할 것처럼 말한 다해였다.
' 땡그랑 '
어느새 유리문 안으로 들어간 다해, 토미스와 팽은 둥절할뿐.
" 페이킨? "
동시에 둘이 말하곤 서로를 마주 보며 놀란다.
" 그! 그 사람! "
" 그. 윤을 죽인 그. 페이킨? "
둘 다 사냥꾼이기에 전설의 사냥꾼 페이킨을 모를 리가 없었다. 둘은 페이킨을 알현하기 위해 밖으로 뛰쳐나갔다. 토미스의 눈엔 라구나 대원들이 보였다. 그곳으로 달려가는 토미스. 페이킨을 빙 둘러싸고 있는 사람들에게 파고들었다.
" 자. 잠시만... 비켜 보세요! "
대원들이 느닷없이 나타난 토미스를 집중했다.
" 뉘... 신지? "
" 당신은...! "
" 어디서 튀어 나온겨? "
각자의 무기를 꺼내든 라구나 대원들, 여차하면 일본도와 무쇠 주먹, 바리깡, 야구 빠따, 권총, 다트 핀과 단도에 온 몸이 찢어질 판국이었다. 여럿의 토끼 눈이 토미스를 따갑게 쳐다본다.
" 진... 진정하시고. 전 토미스라고 합니다. 자세한 건, 이분을 살리고 이야기 할 테니... 모두 무기는 내려놓으십시오. 부탁합니다. "
그의 진정성 있는 음성.
" 그를 살릴 수 있겠습니까? "
건남이 경계를 풀며 말했다.
" 최선을 다해 보겠습니다. "
이 공간에 적막이 잠시 흘렀다. 모두 잡아든 무기를 거두었다. 토미스는 잽싸게 피를 토하는 페이킨의 옆으로 다가가, 무릎을 꿇어 그를 살폈다. 그리곤, 자신의 손바닥을 페이킨의 가슴에 대었다. 토미스가 눈을 감는다. 웅얼웅얼. 주문인가? 혼잣말을 심하게 빨리하는 것 같았다. 그의 손바닥에서 미세한 빛이 새어 나온다. 토미스가 치유능력도 갖추고 있었나? 아무튼 몇 분의 시간을 그러고 있었다. 적막한 시선으로 침을 삼키며 토미스의 행동만 지켜보는 사람들, 토미스의 이마와 관자놀이에 땀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그사이 응급 가방을 가지고 나타난 다해.
" 잉? 이 아저씨들 뭐여? "
가방을 내려놓으며 토미스의 의식을 바라본다. 조금의 시간이 흐르고... 토미스가 눈을 떴다.
" 헉... 헉... "
거친 숨을 몰아쉬는 그였다.
" 이봐! 아무런 변화가 없잖아? "
준이 소리쳤다.
" 잠... 잠시만요... 전 치유 전문이 아니기에... 술사 능력을 변환하려면 좀 힘들 겁니다. "
능력변환? 이건 또 무슨 소리?
" 제겐. 사이코메트리의 능력으로 재생하는, 그러니까... 시간을 거꾸로 돌리는 능력이 있습니다. 미세하지만요. 주 능력이 아니기에 좀 시간이 걸리지만, 이분의 피를 멈추게 할 수는 있을 겁니다. 기다려 보세요. 헉헉. "
삐질삐질 흐르는 땀을 닦으며, 또다시 의식을 행하는 토미스였다.
시간은 야속하게 흐르고 있었다. 토미스는 중얼거림과 함께, 이젠 온몸이 땀으로 범벅이었다. 그런 그를 지켜만 봐야 하는 라구나 대원들. 모두 침묵한 이들, 오랜만에 본다. 그때, 페이킨의 피가 멈췄다. 토미스의 의식도.
" 끝난 겁니까? "
" 페이킨은 살아 있나요? "
" 어떻게 한 거지? "
여러 사람이 웅성거리는 가운데, 토미스가 눈을 떴다. 가슴에 손을 떼면서 가쁜 숨을 내뱉었다.
" 후~ 헉. 헉. "
그렇게 조용히 일어나 땀을 훔친다. 그리고 건남에게로 느그적 걸어간다. 그에게 다가오자 토미스는 조용히 건남에게만 들릴 정도로 소곤거렸다.
" 헉. 헉. 안타깝지만, 살리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피는 멈췄지만, 이미 너무 많은 양의 출혈이... 하~ "
" 이런! "
건남은 토미스의 이야기를 들으며 페이킨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 다해야! 용선 형에게 교신해봐? "
건남의 뒤에 있는 다해가 애석한 표정을 지었다.
" 삼춘. 사실 아까, 라구나 갔다 올 때 연락해 봤어요. 외부와 모든 교신, 통신이 차단된 것 같아요. 힝. "
" 이런. 아~ "
한숨을 쉰 그가 3월의 토끼를 보며 말을 이었다.
" 토끼님. 여기서 어떻게 나가야 하죠? "
" 나도. 잘... 이제 알아봐야 한다고. "
고개를 갸우뚱거린 3월의 토끼였다.
" 얼레. 형님. 그럼 우리 여기서 언제 나갈지도 확실치 않다는 거네요. "
끄덕이는 건남. 근심, 걱정에 휩싸인 표정이 싸늘했다. 어째 죽어가는 사람보다 더 창백해 보이는 걸까. 생각에 잠기는 건남이었다. 용선과 연락이 닿으면, 나를 이용해 페이킨을 살릴 수 있을 텐데... 대략 짧게는 하루, 길게는 3일이라는 시간이 있었다. 페이킨을 살릴 수 있는 시간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그때, 3월의 토끼가 페이킨의 양쪽 겨드랑이를 끌며 말했다. 마치 혼자서 그를 일으켜 세우려는 것 같았다.
" 뭐해? 우선 안으로 옮기자고. 아직 죽진 않았으니 할 수 있는 건 다 해봐야지. "
그제야 정신 차린 대원들. 페이킨을 여럿이 부축하며 저택으로 향했다. 그러면서 토미스와 눈이 마주친 건남은 따라오라는 말을 했다. 토미스와 팽이 일행의 뒤를 따랐다.
0구역 저택 안.
1층은 아담했다. 구션 가득한 소파에 페이킨을 눕히고, 사람들은 저택 안을 살폈다. 고풍스러운 나무 바닥. 그 위에 깔린 카페트, 2층으로 오르는 나선형 계단과 장식물들. 이곳에도 추위가 있을까? 벽난로가 보였다. 아무래도 장식용인 것 같았다. 두리번거리는 그들에게 3월의 토끼가 말했다.
" 분명 어딘가에 연금술 연구실이 있을 거야. 내가 찾아볼 테니 다들 여기서 페이킨을 돌봐 줘. "
" 함께 움직이시죠? 그게 수월하지 않겠습니까? "
" 그런가? 그럼 그렇게 하지. "
건남이 지시하듯 대원들에게 말했다.
" 명치대인은 밖을 살피고, 다해하고 상희가 집 안을 살펴줘. 그리고 현석이가 데이터 장비 있나 확인하고. "
창기, 성우, 준에게는 형에 대한 예우인가? 일을 시키지 않네. 옛기 이 사람아. 아무튼 그의 지시에 각각 움직이는 상희, 명치대인, 다해. 3월의 토끼도 어디론가 사라졌다. 그들이 사라지자, 건남은 토미스를 쳐다본다.
" 그나저나. 당신은 누구십니까? 어떻게 이곳에? "
머리를 긁적이며 토미스가 응답했다.
" 아. 저는 토미스라 합니다. 코드명 212죠. "
" 212라. 그 술사인데 사냥꾼을 하신다는? "
" 아시는군요. 어쩌다 그렇게 됐습니다. 술사능력이 전투와는 별로 상관이 없어 고급 현상범 잡기는 어렵죠. 아무튼, 전 당신들의 위치를 찾아내라는 의뢰가 있어서 이렇게 오게 되었습니다. "
" 누가 의뢰했는지 물어도 되겠습니까? "
" 말해드리죠. 보안국이었습니다. 아시겠지만, 투구와 관련이 되어있어서. "
" 그래서 보안국 요원이 연금술사 아지트에. "
" 네. 맞습니다. "
" 그럼. 수상이 직접적으로 관여한 것입니까? "
" 글쎄요. 정확하게는 보안국장님이 제게 찾아보라 했습니다. "
" 저희를 찾아낸 시간이 그리 길지 않았는데... "
" 제 능력이 그런 것에 특화되어 있어서 쉬웠습니다. 근데, 도대체 여긴 어딥니까? "
" 여긴 0구역 안에 있는 은신처입니다. 페이킨이 숨어 지내던 곳이죠. "
다해의 말을 반신반의했던 토미스였다.
" 사실이었군요. 어떻게 이런 곳에 숨어 있을 수가! "
" 아무튼, 여길 나가면 저희에 관한 이야기를 하실 겁니까? "
참 어려운 질문이었다. 단도직입적인 질문. 토미스가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 제 일이라... "
어찌 보면. 대판 싸워야 할 상황이다. 라구나 사냥꾼의 일거수일투족을 다 보고하겠다는 것인데, 건남은 토미스와 팽을 살려 두면 위험에 빠질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 혹시 당신도 발쿰과 행성의 비밀을 알고 있습니까? "
" 당신들을 조사하다 보니, 조금은... 발쿰이란 반체제 집단이 활동한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수상이 투구를 노리고 있다는 것도. "
" 그렇군요. 뭐. 이곳에서 살아 돌아간다면, 저희의 이야기를 정부에 털어놓겠지만, 순순히 돌려보내 주겠습니다. 어차피 당신과 싸울 의지가 없으니 말이죠. "
그때, 팽이 건남에게 튀어나오며 소리쳤다.
" 뭐? 살려 보내? 우리가 그렇게 만... "
'만만해 보여.'라고 말하려던 것을 토미스가 말렸다.
" 이봐. 팽. 멈추게. "
팽은 못마땅 하지만, 어깨에 힘을 빼며 건남을 노려만 보았다.
" 용서하시게. 워낙 짧은 시간 동안 경황없는 일들이 일어나다 보니, 이 사람이 좀 민감해졌나 봅니다. "
" 아닙니다. 지금은 싸울 때가 아니니 말이죠. 아무튼, 당신의 능력으로 저희를 도와주시겠습니까? 어차피 이곳을 빠져나가는 것은 당신도 마찬가지 일테이니. "
" 무슨? "
" 페이킨의 머릿속을 들여다볼 수 있지 않습니까? "
" 네. 그렇죠. 아직 살아 있으니. 무엇을 얻어야 합니까? "
" 외부로 나가는 방법과 그리고 이곳에 있었던 아이들. 그 외 여러 가지 생각을 알 수 있을 만큼이죠. "
" 꽤나 광범위합니다. 허허. "
" 최대한 페이킨이 알고 있는 것을 알아내야 합니다. "
" 알겠습니다. 해보죠. "
" 부탁드리겠습니다. "
어쩌면 라구나를 쫓던 토미스는 귀중한 사람인지도 몰랐다. 지금 상황에선 더욱더 그러할 것이다. 비록 자신을 잡기 위해 출동한 인물일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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