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8화 〉 167폭격
* * *
94화. 폭격.
챈코가 자신의 비행정으로 뛸 무렵.
점점 수그러든 눈보라.
이곳저곳 파편이 남겨 있는 눈밭에 스르륵 일어나는 사람이 있었다.
시범.
아니, 시범의 얼굴을 한 재필이었다. 호송정이 폭파하고 그와 동시에 긴급 탈출한 그는 눈 속에 파묻혀 있었다. 낙하의 충격으로 잠시 기절했던 재필이었다.
그가 눈밭에서 일어나 눈을 턴다. 이곳저곳이 찢어진 교도소 정복. 기지개하듯 몸을 푸는 재필은 뚫려 있는 철문을 바라봤다.
" 윽. 당했군. 저런 괴물을 숨겨 놓았을 줄이야. "
그리곤 주변을 살핀다. 그의 동료였던 깔루아빔과 영달, 차골의 행방을 살피는 것 같았다. 그러나 시체조차도 보이지 않았다. 재필이 긴급 탈출에 성공했지만, 일행은 호송정과 함께 먼지가 되어 버렸다.
" 크큭. 조무래기들은 사라졌나 보군. "
정 없는 자식, 잠깐이었지만 그래도 동료였는데...
" 지금쯤이면 약의 효과가 사라졌겠지. 으윽. "
찢어진 어깨에서 피가 흘렀다.
" 개늠들 내 몸에 생채기를 내다니. "
재필이 한발 한발 아지트로 다가갔다. 순간, 그의 뒤에서 미사일의 파공음이 들렸다.
' 쉬이잉~ 슝 '
고개를 돌리는 재필.
" 뭐지? "
재필뿐만이 아니었다. 반대편에서 걷고 있던 팔콘도 고개를 돌렸다. 챈코가 눈치를 챘지만 팔콘은 그렇지 못했다.
" 이건. 또. 뭐야. "
호송정의 격추.
보안국의 등장.
철갑의 토끼로 인해 깜놀한 팔콘은 또 한 번 놀란다. 그리고 소형정으로 뛰던 챈코도 파공음의 진원지로 시선을 돌렸다.
" 윽. 이런. 10분이 벌써 지났나!! "
아니었다. 10분은커녕 1분 남짓 지났다. 그럼 NG가 뻥을!
수비대의 함선에서 쏘아 올린 미사일 하나가 철갑의 토끼에게로 쏜살같이 날아왔다. 뭔가 이 지역이 벌집이 될 것 같은 기분.
미사일이 발사되기 1분 전.
보안국 요원들과 토미스가 철문 안으로 발을 들였다. 탱크가 보인다. 탱크는 쓰러져있는 3월의 토끼와 232대원들을 훑고 있었다.
아지트로 들어온 마텔이 의아해하며,
" 어떻게 된 일이지? "
누군가에게 물었다. 그러나 알 길이 있나? 토미스와 팽, 그리고 판타스틱 넷은 그냥, 황당할 뿐이었다. 고요한 아지트. 산발적으로 쓰러진 그 안의 사람들. 정적의 시간이 흐른다. 잠시 후, 안내 음성.
대규모 전력의 수비군 함선이 다가옵니다. 자체 실드를 생성합니다.
연이어 들리는 안내음
상대방이 공격합니다. 적으로 간주합니다. 긴급상황 α. 긴급상황 α.
" 뭐? 수비군이! "
마텔의 휘둥그레한 눈. 순간, 비상음이 들리고.
' 윙~ 위잉. 윙~ 위잉. ' ' 콰광쾅 '
미사일이 실드에 부딪치는 소리가 아지트 안으로 빨려들었다. 아지트가 흔들거린다. 천장에서 흙먼지가 떨어진다. 정박장 내의 기물이 흔들린다.
" 이게 어떻게... "
토미스가 말이 끝나기도 전. 또 한 번의 폭격음이 들렸다.
' 콰광쾅. '
밖을 내다보는 팽. 그의 눈엔 철갑의 토끼에 씌워진 실드가 자리 잡았다. 그 투명한 실드 밖으로 함선이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 이런 대규모 비행정이! 토미스! 도망쳐야 해! "
긴급한 그의 목소리였다. 팽의 긴급한 목소리가 끝나자 전투정의 빠른 비행 음이 진동하였다. 아무래도 폭격기의 용도로 쓰이는 전투정.
24기의 전투정이 순서를 기다리듯 일렬로 다가오고 있었다. 또한, 대형 함선의 몸체에 포신이 튀어나왔다. 집중 화력을 퍼부을 생각인 것 같다. 전투정이 하나하나 철갑의 토끼 위를 지나간다. 폭탄을 투하하며.
' 슈웅. 슈웅. 슈웅.... '
' 콰광. 펑. 콰광. 펑. 콰광. 펑... '
쉴 새 없이 떨어지는 포탄. 불바다로 만들 생각인가? 아무튼, 팔콘과 재필은 각자의 위치에서 실드안으로 들어가고자, 죽을힘을 다해 달렸다.
챈코 또한 자신의 근처로 떨어지는 포탄을 슬로우로 저지시키며 실드를 향해 달렸다. 소형정으로 달리고 싶었지만, 눈앞에서 포탄에 의해 사라졌으니...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슬로우의 한계에 가까운 포격이었다. 한두 개야 슬로우로 포탄을 저지할 수 있었지만, 이건 그럴 만한 숫자가 아녔다. 비가 쏟아지듯 하늘에서 폭탄 비가 내리고 있었다.
" 썅! NG. 이 개새끼!! "
챈코는 그제야 자신의 상관인 NG가 자신을 살려 두지 않겠다는 걸 깨달았다. 욕지거릴 내뱉으며 챈코는 단거리 선수가 되어, 있는 힘껏 달렸다. 수비군의 대형 함선에선 또 다시 24기의 전투정이 출격했다.
그들의 파상공세.
철갑토끼의 모든 무기가 발사되었다.
눈에서, 귀에서, 코에서, 입에서... 어깨에서, 겨드랑이에서, 팔과 손에서... 몸통과 허리, 무릎과 장딴지, 발등에서 다채로운 지대공 화기가 등장했다.
95구역 연금술사 아지트의 창공은 아수라장이었다.
함선과 거대 토끼에서 나오는 무기들의 향연이었다.
포격음과 폭격음, 미사일의 파공음이 모든 것을 잡식하고 있었다. 삽시간에 지옥으로 변하는 순간이었다.
무차별적인 공격과 무차별적인 수비가 오간다.
' 콰광. 퍼벙. 쾅. 펑. 슈우웅. 쉬이잉... '
수비대 전투정이 격파되고 토끼의 실드가 점차 균열이 되어가고 있었다. 천만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그 포성과 포격, 폭격을 뚫고 재필이 실드 안으로 몸을 날린다. 팔콘도. 잠시 뒤, 챈코도.
얼마나 숨 막히게 뛰었으면 헐떡거린다. 연이은 포격과 폭격. 그럴 때 마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전투정. 불꽃이 난무하고 폭음이 공간을 씹어 먹는다.
무사하려나?
흔들리는 정박장. 마텔은 뚫린 철문을 통해 이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긴급하게 국장에게 연락하는 마텔.
" 국장님! "
긴급한 목소리.
무슨 일이야?
" 지금 수비군이 저희가 있는 곳을 공격하고 있습니다. 이런 작전 보고 받으신 거 있습니까? "
뭐? 공격! 수비군이?
국장 둥절이었다.
몇 구역 수비대인데?
" 잘 안 보입니다. 대형 함선까지 움직인 걸 봐서는 보고가 있었을 텐데... 그들의 위치를 아는 자가 정부에 또 있다는 겁니까? "
' 콰광. 펑. '
교신 중에도 들리는 폭격 소리.
이런. 뭔가 꼬였군!
" 아는 게 없으시군요. "
그래. 이제 알아봐야 할 형편이라고.
" 아~ 아무튼 조사해 주십시오. 팔콘이나 발쿰이 배후에 있을 겁니다. 이참에 싹 쓸어 담자고요. "
알았네. 어째 견딜 수는 있겠나?
" 이걸 견디려면 수비군을 격파해야 하는데 아군인지 정말 적군인지 파악이 안 됩니다. 만에 하나 이들이 발쿰과 연관이 안 되었다면... 서로 작전이 어긋났다면... "
이런! 최대한 버텨보게!
버티란다. 이 상황을 그냥 놔두면 여긴 지도에서 사라질 것 같은데 말이다.
" 일단 저쪽 수비대와 접속을 시도해 주십시오. "
알았네. 이상!
' 픽. '
교신을 끊자 올 것이 왔다.
실드 가동율 5%입니다. 모두 이곳을 탈출하세요. 신의 가호가 있길.
인공지능도 포기상태였다.
지진보다 더한 진동이 아지트에 스며들었다. 몸을 가누지 못하는 토미스와 팽.
토미스는 기었다. 길 수밖에 없었다. 요동치는 바닥에 두 손과 두 발을 지탱하기 위해선. 그렇게 슬금슬금, 쓰러져 있는 3월의 토끼에게로 다가갔다. 그녀를 흔든다. 폭격의 흔들림에 꿈쩍하지 않았던 그녀다. 그 정도로 흔들어선 일어날 기미가 1도 없어 보였다.
" 시간이 없어... "
3월의 토끼 이마에 손을 얹힌 토미스. 그녀의 과거를 탐틱하기 위해 자신의 기술을 펼친다.
" 으윽. "
뭔가 얻어낼 기억과 장면이 있을지? 아무튼 토미스가 그러는 동안, 마텔과 그의 요원은 밖의 상황을 주시하고 있었다.
" 반장님 어떻게 할까요? "
탱크의 컬컬한 목소리에 마텔이 반응했다.
" 휴~ 우선은 내가 막아 보겠어요. 국장님께서 연락이 올 동안. "
마텔은 보안국 반장인가 보다. 판타스틱 넷의 캡틴인 마텔. 그녀가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기 위해, 뚫린 철문 위에 서서 박살 난 철문을 팔 벌려 움켜잡았다.
" 탱크와 파이어는 만약을 대비해, 전투 준비해 주세요. 그리고 러빗은 이곳을 수색해 주세요. "
" 네. 알겠습니다. "
그녀의 지시에 대답하는 요원들. 러빗은 흔들림에 꿈쩍하지 않았다. 아니, 흔들림과 함께 몸을 늘였다, 줄였다 하며 균형을 잡고 있었다. 그런 그가 팔을 쭉 내밀었다. 팔이 늘어났다. 긴 팔이 점점 늘어나며, 복도 입구의 한 기둥을 부여잡았다.
' 피융. '
늘어난 팔이 수축하며 러빗의 몸이 복도로 딸려갔다. 순식간에 사라진 그였다. 그가 사라져도 마텔은 줄기차게 쏟아지는 무기들을 바라보며 하늘를 응시했다.
어느새 눈보라는 사라졌다.
하얀 그녀의 얼굴.
찡그리며 눈을 질끈 감았다. 그리고 기합. 커다란 울림으로 포격 소리가 들리지 않는 것 같았다.
" 이야압!! "
눈을 번쩍 뜬다. 부서진 철문을 더욱더 세게 움켜잡는다.
가늘게 퍼지는 안내방송.
실드가 파괴됩니다. 모두 탈출하세요.
' 와장창창창. '
실드가 깨졌다. 포격과 폭격과 고성과 실드 깨지는 소리가 아지트에 크게 들린다. 귀가 얼얼했다. 그리고 마텔의 기합과 함께, 부서진 실드에 생겨나는 방어막.
' 지잉. '
투명한 보랏빛 물결이 철갑 토끼를 감싸 안는다. 커다란 돔으로 둥글게 자리 잡았다.
' 콰광. 쾅쾅쾅. '
마텔은 더욱 크게 기합을 넣었다. 그래. 이 정도의 화력이면 기력이 모자라겠지. 마텔은 온몸의 기력을 끌어 올리는 중. 기합과 함께 말이다.
" 끄아아악!! "
그녀의 눈에 보랏빛 물결이 파도쳤다.
마치 희뿌연 연기가 실타래처럼 흐느적거리는 것 같았다. 커다란 토끼를 거대한 방어막으로 둘러쌓기 위한 애절함. 그것을 알기나 할까? 수비군의 대형 함선은 포격을 연사로 퍼부은다.
' 퍼벙. 펑. 펑. 펑... '
' 콰광. 콰광. 쾅. 쾅... '
아무튼, 급한 위기는 마텔로 인해 막을 수 있었다. 몇 분이나 견딜지?
그동안 토미스는 3월의 토끼의 머릿속을 들여다보았다.
온갖 화학기호들. 수학 공식들이 텍스트화되어 줄기차게 지나갔다.
죽은 제스.
수상.
건남.
상희의 이미지가 연결되어 필름 돌아가듯, 토미스의 머릿속을 훑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동기. 3월의 토끼가 이동기를 만지작거리는 모습이 마지막으로 잡혔다.
토미스가 이마에서 손을 뗐다. 더이상 능력을 사용하면 기절할 것 같았다. 그러나 코피는 흘렀다. 주르륵.
" 으윽. "
주머니에 있는 손수건으로 코를 틀어막았다.
" 젠장. 뭐가 이리 복잡해... "
복잡한 그녀의 이름은 3월의 토끼였다.
" 쓸만한 기억이 없어. 비상 탈출구가 분명 있을 텐데... "
그랬다. 토미스는 비상구가 필요했다. 이 아수라장을 빠져나갈 그 무언가가 필요했다. 하지만, 3월의 토끼의 머릿속 정보로는 알아내기 어려웠다.
' 터벅. 터벅. 터벅. '
그때, 누군가가 정박장 끝에서 걸어왔다. 흔들리는 아지트에 굴하지 않고 걸어오는 인영.
" 누. 누구지? "
실루엣은 점점 모습을 드러냈다. 그 사람의 주변으로 금빛 오로라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흑색의 머리카락이 꿈틀꿈틀 움직이는 것 같았다.
눈에 동공이 보이지 않는 그 사람.
그렇다고 흰자로 덮여 있는 것은 아녔다.
금빛으로 덮여 있었다.
얼굴 피부에서, 손 가죽에서 피어나는 금빛 연기.
웃음기 없는 그 사람.
찢어진 옷자락이 살랑거리고 있다.
" 저... 저 사람은!! "
도대체 누군데 그러냐아옹~
천장에서 부스스 떨어지는 흙먼지가 그 사람의 머리 위로 흩날린다. 잠깐? 쟤는? 저 금빛으로 도배한 저 사람은?
상희였다.
고통으로 인해 비명 지르던 그 상희였다. 무언가 시체가 걸어오는 것 같다고 해야 하나? 아니다. 그런 느낌이. 무표정의 그녀는 천천히, 주변을 신경 쓰지 않으며, 정박장 중앙까지 다가왔다.
' 터벅. 터벅. 터벅. 탁! '
그녀가 멈춰 섰다. 그 행동에 마텔의 양옆에 있던 탱크와 파이어가 뒤돌아 상희를 쳐다본다. 그 앞에 있는 팽도. 얼떨떨한 사람들.
마! 상희! 왜 그러는거냐옹? 무언가 다른 사람, 다른 느낌의 그녀였다.
처음 만난 다른 사람들은 그것을 못 느낄 수 있겠지만, 난 안다. 이 금빛의 여자는 상희가 아니라는 것을... 누군가에게 조종당하는 것 같았다. 그것도 아니면 귀신이 쓰였다 해야 하나? 암튼 다르다.
그녀가, 그녀가 아닌 것 같았다.
" 당신이 상희인가? "
토미스의 물음에 아무런 반응이 없다.
" 대체 여기서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
역시나 무표정한 상희는 금빛으로 물든 눈으로, 멍하니 어딘가를 바라만 보았다. 다급해 보이는 토미스. 답답함도 밀려왔다. 어쩜 이곳에서 빠져나갈 수 있는 마지막 희망이 그녀였으니.
" 이봐 토미스 무언가 위험해 보이는데... "
조곤거리며 토미스에게로 다가오는 팽.
" 그... 그런가... 사실 나도 느끼고 있어. "
순간, 무표정이었던 상희가 씨익 미소지었다. 양쪽의 입꼬리가 동시에 서서히 올라갔다. 무언가 섬뜩함이 느껴졌다. 담배를 꼬다 물고 코를 후비던, 그 상희가 아닌 건 분명했다.
" ㄹㅣㅈㄴㅡㅇㄱ ㅌ "
상희가 말했다.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였다.
" 뭐라고? "
토미스는 그녀가 잘 못 말한 것으로 착각했다.
" ㄷ느.ㅅ긎ㄱㄷㆍㄴ그. "
팽과 토미스가 서로 쳐다본다. 둘 다 똑같은 생각이었다.
' 뭐라는 건가? '
상희의 올라갔던 입꼬리가 제자리로 돌아왔다. 그녀가 천장을 바라본다. 두 팔 벌려 손을 뻗는다.
잠시 후.
' 쿠오오오... 우우우...웅... 훅... '
폭격으로 흔들리던 아지트가 더욱더 거세게 흔들렸다.
" 윽! 도대체 무슨 일입니까? "
모두가 당황했다. 멀리서 들리는 러빗의 음성이 희미했다.
아무튼, 상희를 중심으로 그 지진과 같은 흔들림은 점차 퍼져 나갔다.
' 우우우웅... ' 모
두가 흔들거린다. 방어막을 생성하고 있는 마텔 또한.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