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70화 〉 169­협력 (170/179)

〈 170화 〉 169­협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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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화. 협력.

체리와 구역장은 심오한 이야기를 진행했다.

" 수상에게서 들은 이야기입니다. 곧 마들가리 행성은 사라질 거라 했습니다. 발쿰도 그 사실을 알고 있겠죠? "

" 그렇다네. "

뭐? 그럼 팔콘이 말한 것이 사실? 그 종말론이 사실인 것인가?

" 그래서 찾기 시작한 것이 그 투구라 들었습니다. "

" 맞아. 그 투구가 필요하지. "

" 행성을 버리겠다는 것도 알고 있겠군요. 수상과 같은 수법이라 했으니 말이죠. "

" 잘 아는군. "

" 행성인들을 모두 살릴 방법은 없다는 겁니까? "

" 그래. 없어. 이 모든 것을 지키기에는 그 역량이 매우 작지. "

" 허... "

그럼, 정말로 2년밖에 남지 않은 마들가리 행성이란 말인가?

" 이 모든 걸, 행성인들과 공유하지 않는 것은 질서지. 죽는 날까지 얌전히 있어야 일이 수월하거든. "

미친나? 그깟 것 때문에 인류에게 진실을 말하지 않겠다.

" 어떻게 그런 일이... "

" 인류의 마지막을 굳이 그들이 알아야 하나? 알아도 대처하지 못 하는 일을 말이야. "

" 어떤 방법으로 수상이 이곳에서 생명을 유지하려는 겁니까? 다 사라지는 이 행성에서. 혼자 남을 방법. "

" 글쎄? 과연 혼자 일지가 의문이군. 그 철두철미한 인간이 말이야. "

" 행성이 어떻게 사라지는지 그것은 알 수 있습니까? "

" 알려주지. " 체리는 구역장의 말을 듣기 시작했다.

" 행성의 0구역. 그 안의 액체가 대략 2년 후, 이 행성에 흘러나오게 되네. 아마도 그 액체의 부피는 이 행성의 모든 것을 녹이겠지. 그 양이 어마어마하거든. 지하에서부터 매장된 그 액체. 그리고 피막이 터지며 바깥으로 유출되면, 그 질량은 제곱으로 늘어난다는 실험 결과가 있었네. 매우 위험했지. "

" 그런데도 살 수가 있습니까? 그 액체에 견디는 물체는 이 행성에 존재하지 않잖습니까? "

" 그랬지 불과 몇 년 전에는... "

" 그럼 있다는 겁니까? "

" 물론, 있어. 다만, 그 물체를 만들기 위해선 많은 제스가 필요하지. 흐흐흐흐... 아쉽지만, 수상의 제스 말살 정책으로 제스의 수가 매우 작다는 것이야. 왜 투구가 필요한지 알 것 같나? "

그래, 건남과 성우로부터 투구의 내용을 들었다. 정확히는 라리의 보고에 의해서.

" 압축... "

" 잘 알고 있군. 하지만, 말살 정책으로 압축할 제스 또한 행성에서 보기가 어렵지. 그렇지 않나? "

"...... "

" 허. 어쩌다 내가 수상의 개에게 다 떠벌이는군. "

" 이 내용을 수상도 알고 있다는 것입니까? "

" 모를 리가. 우리가 찾고 있는 투구를 수상이 노리고 있었거든. 분명 살려고 발악하겠지. "

" 그럼 제 딸 다솜이 필요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

" 자네처럼 기억을 다룬다고 그랬나? "

" 네. 그렇습니다. "

" 그걸 말해야 하나? "

" 부탁드립니다. 구역장님. "

" 그럼. 우릴 도울 텐가? 우리도 자네의 능력이 필요하거든. "

잠깐 망설이는 체리였다. 다솜의 능력으로 무엇을 하는 것인지 알아야 할 것 같았다. 그래야 수상에게서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 것 같았다.

" 도...돕겠습니다. "

" 하하하하... "

한바탕 웃음 진, 구역장이 딱 멈췄다.

" 좋아. 이제서야 우리와 손을 잡는군. "

체리는 아쉬울 것이다. 이런 집단과 협력해야 하다니, 그러나 그녀에겐 선택지가 많지 않았다.

' 터벅터벅. '

구역장은 의자에 앉은 체리에게 걸어왔다.

천천히.

그녀의 어깨에 손을 얹고 차분히 말한다.

" 자네가 할 일만 성공한다면. 무너지는 행성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 거야. "

고개를 숙이며 체리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는 구역장.

" 그러나, 수상에게 우리의 존재를 알리면... 그땐, 2년의 세월을 앞당겨 주지. 어차피 죽는 거... "

" 제가 할 일이 무엇입니까? "

" 바로 자네가 궁금해하던 질문의 답이지. "

체리가 마른침을 삼켰다.

" 그건... 제스의 기억을 꺼내는 일이라네. "

" 제스의 기억을 꺼낸다고요? "

처음 듣는 일이었다. 사람도 아닌 제스가 기억이 있다는 것은. 그리고 그 기억을 꺼낸다는 이야기는.

" 그래. 이 행성에 살아 있는 제스 왕의 기억이 필요하거든. "

아라이스를 말하는 건가? 제스의 왕이라 하면? 구역장은 행성의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신처럼 느껴졌다.

" 제스의 왕? "

" 그래.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제스의 우두머리라고나 할까? "

" 그 제스는 살아 있습니까? "

" 아니. 아라이스의 자식이 살아있지. "

" 그럼... 어디에? "

" 진정하라고. 우리와 함께라면 차츰 알아 갈 테니... 조만간 '성전의 부활'이란 프로젝트도 알게 될 거야. "

" 성전의 부활? "

" 뭐 특별한 건 없네. 그냥 이 행성의 마지막 세대가 살기 위한 안식처를 만드는 일이라 생각하면 될 거야. "

체리가 멍하니 구역장을 바라볼 뿐이다. 다솜의 안위를 위해 수상을 배신하려는 체리. 그래서 찾은 것이 발쿰이었다. 발쿰의 힘을 빌려, 자신과 다솜에 박혀 있는, 인체 연결 폭탄을 제거하기 위해서였다. 수

상의 측근들은 체리를 도울 수 없다는 것이 그녀의 생각이었고, 그렇다면 발쿰에 정보를 넘기며, 그들에게서 이 문제를 풀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다만, 그녀가 생각했던 그 문제보다도 더한 문제가 행성에 자리 잡고 있었다니... 그녀가 살짝 눈을 돌려. 책상 위 명패를 쳐다본다.

23구역장.

장도곽.

23구역장이 그럼 발쿰의 앞잡이라는 것인가? 지리적으로나, 행정적으로나 23구역은 매우 중요한 곳이었다. 그만큼 행성의 구역에서 가장 많은 인구가 사는 곳. 상희와 같은 구역에 존재하는 구역장.

그 앞에 있는 체리.

체리는 무언가 큰 늪에 발을 들여놓는 기분이었다.

" 체리 자네가 배신만 하지 않으면, 모든 것이 순조로워지겠지. "

체리가 그만큼의 능력이 있는 존재였던가? 하기야, 종말에 가까워진 행성에서 그녀의 술사 능력은 꼭 있어야 하는 것처럼 느껴졌으니, 중요하겠지.

" 제가 이곳에서 해야 할 일이 무엇입니까? "

" 정보에 의하면. 철도 사건의 뒤를 봐준 사람이 자네라는 것을 확인했네. 232 일행이 투구를 가지고 있다는 정보도 입수했고. "

" 저... 정말입니까? 제겐 그들이 말하지 않았습니다. "

체리가 당황했다. 구역장의 이야기가 사실이면, 라리가 분명 자신에게 보고했을 것이다.

" 그럼. 거짓말이겠나? 흐흐흐... 그들과 자네가 연이 있으니 투구를 쉽게 얻을 수 있을 것 같은데... 할 수 있겠나? "

잠깐의 뜸을 들이는 체리였다. 그러나, 금세 다짐한다.

" 네. 알겠습니다. NG. "

" 으하하하. 좋아. 이제부터 자넬 "메모리'라 부르겠네. 접속 네임과 소속 네임으로써 말이야. "

" 이 일을 성사시키면. 이곳에 오기 전, 말씀드린 제 몸의 폭약을 제거해 주시는 거 잊지 말았으면 합니다. "

" 우리에겐, 많은 기술자가 포진하고 있으니 걱정하지 말게나. "

헉! 구역장이 NG라니. 나 놀랬다아옹~ 그럼 체리가 이젠 발쿰과 손을 잡은 것인가? 자신과 다솜을 위해서. 안된다아옹~

­ 100구역. 기념탑 ­

맑은 날씨의 100구역은 눈이 부셨다. 햇빛이 빙하에 비추며 그 빛은 넓게 퍼졌다. 추운 100구역이 따뜻해 보일 정도로 강렬했다. 수상과 라젠 비서관이 기념탑을 올려보고 있다.

그들의 뒤로는 기념식에 참석한 많은 인파가, 단상 위의 폴턴 수상을 바라보고 있었다. 행성의 몇몇 구역장들도 있었고, 유명인들도 포진해 있었다.

잘나가는 기업가도... 저명인사라 해야 하나? 그 인파에 속해 있는 사람은 행성에서 영향력이 있는 행성인이었다. 100m가 넘어 보이는 웅장한 기념탑.

제스의 말살 성공을 기념하기 위해 세워진 탑이라 하기엔 너무나 컸다. 비약적으로 커다란 기념탑에 등을 돌리며 군중을 바라보는 폴턴. 그가 연설한다.

" 보이십니까! 이 높은 위상이! "

웅성거리던 군중이 그를 주목했다.

" 제스의 멸망, 우리의 생명을 갉아먹었던 괴물을 이 자리에 모인 분들과 함께 모두 해치웠습니다. 여러분은 행성의 영웅이자, 행성의 발전에 크게 영향을 미치신 겁니다. 이 길고 길었던 싸움의 영광은 모두 당신들의 몫입니다! 여러분!! "

" 와아아!! "

폴턴의 연설에 호응하는 군중이었다.

" 이날을 기념하기 위해 모이신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의 말을 전하는 바입니다. "

단상 앞으로 걸어 나오는 폴턴은 군중을 향해 큰절을 올렸다. 그 모습에 더욱더 함성을 지르는 사람들.

" 폴턴! 폴턴! 폴턴... "

곳곳에서 수상의 이름을 불렀다.

­ 100구역 수비군 회의실. ­

연설을 마친 폴턴은 군중 속에 있던 몇몇 사람들과 만찬을 즐기고 있었다. 100구역은 드넓은 빙하 지역이었기에, 인구가 많지 않았다.

도시도 하나뿐인 100구역. 예부터 제스의 출몰이 자자했던 곳이기도 했다. 그렇기에 수비군의 숫자가 비약적으로 많았던 지역이었다. 어쩜 도시보다도 더 발달한 군사지역. 아무튼 그곳에서 만찬을 즐기는 수상. 붉은 와인을 들며 축배를 들었다.

식사를 마친 수상이 옆에 서 있는 라젠에게 무언가 속닥거렸다. 그러자. 라젠은 음식을 아직 먹고 있는 주변 사람들에게 말했다.

" 여러분 식사 도중 죄송합니다만, 이곳을 주목해 주십시요. "

깨작이던 사람들이 시선을 라젠과 폴턴에게 돌렸다. U자 형태의 테이블. 말굽자석 모양의 테이블에서 식사하던 그들이 주목한다. 꼭짓점에 앉아 있는 수상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 제 왼쪽으로 10분. 오른쪽에 10분. 식사 도중 말을 꺼내어 죄송합니다. "

얼굴은 전혀 죄송한 표정이 아니었다. 연설할 때의 그 진정성 있는 눈빛은 사라졌다.

" 제가 여러분을 모신 건. 대략 알고 계시지요? "

고개를 끄덕이는 좌우의 사람들. 그러고 보니. 좌우에 있는 분들이라 해야 할 것 같다.

화르마 4세.

마들가리 행성의 자라메시드종교의 우두머리. 그래, 그는 마들가리 행성, 제 1종교 자라메시드의 교황이었다. 그를 신봉하는 종교인이 행성의 3분의 1을 차지했다.

마그자르크.

1대 대기업. 그가 가지고 있는 크랑은... 천문학적 수치. 계열사만 해도... 여기 모인 20명의 입지는. 어후~ 감당할 수 없는 현 시대의 위인이라 해야 하나? 마들가리 행성의 경제, 종교, 문화, 정치, 행정 등 모든 요소의 일인자들이었다.

마르자르크가 한마디 한다.

" 수상. 당신에게 우리가 위임한 일. 그것의 중간보고를 듣기 위해 이곳에 모인 거 아닌가? "

워~ 수상에게 반말을... 뭔가 수상 위의 조직 같아 보였다.

" 그렇습니다. 마르자르크. "

화르마 4세도 한마디한다. 묵직한 왕관을 쓴 체.

" 우리가 만들어낸 기지가 곧 완성된다고. "

" 네. 그렇습니다. 여러분의 힘이 점점 완성해 간다고 해야 할까요? "

" 식사가 끝난 뒤에 말해도 되지 않나? "

지금 말을 꺼낸 사람은 마들가리 행성의 톱스타였다. 일개 연예인이 수상에게 말하는 꼬락서니가... 하지만 그에겐 수상을 쥐락펴락할 막강한 자금력이 존재했으니, 수상이 굽신거리는 처지였다. 대충 저 연예인도 천문학적인 자금력을 갖추었다. 여기 있는 모든 사람이 그러했다.

" 존경하는 투자자 여러분. 제가 기획한 프로젝트를 편안히 드시면서 듣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은데... 싫어하시는 분이 있으니, 제가 좀 껄끄럽군요. "

존경과 껄끄러움이 전혀 보이지 않는 말투였다.

" 그렇담. 진행해 보게. 내가 눈치를 준 것 같군. 껄껄껄껄..."

싱거운 놈. 그럴 걸 트집은... 아무튼 수상을 주시한 20인의 사람들, 폴턴 수상은 우측 끝자리에 앉은 사람에게 지시하듯 고개를 끄덕인다.

검은 신사 모자.

검은 정장과 콧수염이 위로 솟은 남자였다.

" 그럼 제가 수상님이 계획한 프로젝트의 중간보고를 올려보겠습니다. "

자신 앞에 놓인 컨트롤 버튼. 그 버튼에 손가락을 가져간다. 회의실 겸 식당으로 쓰인 이곳이 절전이 된 듯 컴컴해졌다. 곧바로 은은한 조명이 켜졌다.

" 시작하겠습니다. 이 자리에 모인 저명하신 분들을 뵈니, 좀 떨리는군요. 전 마들가리 행성. 제 1 연금술사 빼아르입니다. "

오~ 이자가 3월의 토끼의 뒤를 이은 연금술사인가 보다. 꽤 젊었다. 100세 가까운 3월의 토끼보다, 한 70년은 젊은 느낌. 설마 너도 화장술? 빼아르는 두 번째 버튼을 눌렀다.

수상의 반대편, 입구가 있는 벽면이 스크린으로 변했다. 그 스크린의 범위가 양쪽 벽으로 흐른다. 천장으로도... 어느 순간, 모든 공간이 스크린으로 변했다. 둥근 모양의 행성이 우주에서 내려보는 형태로 그 스크린에 자리 잡았다.

" 지금 보시는 것은 현재의 마들가리 행성입니다. 아름답죠? "

그리곤 화면 속, 0구역의 자리에 긴 지휘봉으로 둥그렇게 모양을 만들었다.

" 이곳이 0구역입니다. 모두 아시죠? 지금 마들가리 행성은 위험에 처해 있습니다. 0구역의 액체가 대략 2년 후 피막을 뚫고, 마들가리 전 지역에 흘러나올 겁니다. "

그의 말에, 화면 속 0구역에서 녹색의 빛이 퍼지며 행성을 천천히 집어삼켰다. 매우 정교해 보이는 그래픽.

" 점점 그 피막이 깨지는 시기를 정확히 예측해 갈 것입니다. 지금은 대략 2년, 끔찍한 행성의 종말이 눈앞에 다가온 것이죠. "

이 이야기를 듣는 사람들. 뭔가 두려운 표정이어야 하지 않는가? 당장 종말이 찾아온다는데. 하지만, 모두 덤덤했다. 이미 알고 있다는 표정의 사람들.

빼아르는 의식하지 않은 채, 계속 설명을 이어나갔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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