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72화 〉 171­외면 (172/179)

〈 172화 〉 171­외면

* * *

98화. 외면.

그랬다. 그들은 만 하루의 시간을 기절해 있었다. 재필이 터뜨린 알약에 의해서, 그리고 이동기의 움직임에 의해서.

" 모르는 사람들도 보이고 말이지. 도대체 어떻게 된 건지... "

3월의 토끼는 로딩 되는 화면을 주시했다. 긴 로딩이 끝나고 블랙박스의 화면이 재생되었다.

" 이런! "

놀라는 그녀.

재필의 호송정에서 나오는 수감복의 사내들. 차골과 영달, 깔루아빔이었다. 알약을 장착하는 모습이, 고스란히 화면을 통해 흘러나왔다.

" 저... 저놈들이! "

뒤를 이어 화면 속으로 재필과 세 명의 사내가 호송정에 오르는 화면,

" 그 성우의 후배가 한 패인가? "

철문을 폭파하는 장면.

" 이것들이 내 아지트를... 휴~ "

곧이어 풀썩 쓰러지는 자신의 모습과 상희의 일행이 철퍼덕하는 모습도...

" 알약에 뭐가 있었군. 흐미. "

그러나 지금의 놀라움은 그리 놀라운 것도 아니었다.

" 헉! 이게 뭐야! "

판타스틱 넷과 상희가 폭주하는 장면이 화면에 자리 잡았다.

" 허... "

그 화면으로 인해, 3월의 토끼는 원기가 회복된 것 같았다. 정신이 번쩍 들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상희가 제스의 피를 물려받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애써 상희를 대면하고도 내색하지 않았던 그녀였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무엇으로부터 그녀가 폭주한 것인가? 무엇이 그녀의 잠재의식을 깨어나게 한 것인가? 그녀는 약품을 유추하고 있었다. 재필의 일당이 뿌려놓은 그 알약과 관련이 있을 것 같았다.

3월의 토끼는 이동기가 작동하는 것을 끝으로 화면에서 눈을 뗐다.

" 이렇게 된 거로군... 그럼 여기는 0구역... 어째 후덥지근 하더니만. "

블랙박스 영상을 모두 확인한 그녀가 화면을 끄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앉았을 때와는 다르게 컨디션이 좋아 보였다. 하기야, 지금 보았던 화면을 본다면 정신 차려야 했으니...

" 흐... 그나저나. 저 보안국 녀석들이 눈치챘나 보군. "

판타스틱 넷이 보안국 요원이라는 건, 화면에 나타난 보안국 마크로 알 수 있었다. 토미스와 팽이 그들을 도왔으니, 한패 일 거라 생각하는 그녀였다.

" 저들은 일어나기 전 가두어야겠어. 일에 방해되니. "

3월의 토끼가 상희를 불렀다. 쓰러져 있는 건남의 따귀와 성우의 따귀를 번갈아 가며 때리는 상희.

' 짝. 짝. '

기절한 사람에겐 귀싸대기가 최고의 약이라 생각하는 그녀였다. 상희가 때리는 걸 멈추고 3월의 토끼의 부름에 고개를 돌렸다.

" 네. 부르셨어요. "

" 그래. 이리 와보게. "

그렇게 3월의 토끼는 상희와 함께, 널브러진 인원을 하나하나 감옥으로 옮기기 시작했다.

­ 한 시간 후. ­

아지트의 인원들이 하나하나 깨어나고 있었다. 얼얼한 뺨을 비비며 일어서는 건남. 그 옆의 성우도 볼 짝을 쓰다듬었다. 복도에 쓰러진 명치대인과 준, 다해도 스르륵 눈을 떴다.

라구나의 옆에 서 있는 3월의 토끼와 상희. 일어선 사람들은 풀린 몸을 이끌며 둘에게로 다가간다.

" 으윽. 토끼님 도대체 무슨 일이... "

" 아윽. 머리가 핑핑 돌아염. "

" 아따, 어질어질하네. 어라! "

건남, 다해, 명치대인이 순서대로 말했다. 명치대인은 부서진 건물을 보며 눈이 휘둥그레.

" 아따, 무슨 일이 있었던거임... "

그런 그들의 모습을 지켜보며 3월의 토끼가 크게 말했다.

" 이제야 정신이 드는가. 다들, 이 비행정 안으로 들어가지그려... 할 이야기도 있고. "

아직 약 기운에 비몽사몽한 그들은 토끼의 말을 따랐다. 하나둘 라구나에 탑승하는 232 대원들이었다. 그들이 눈을 뜰 때, 또 다른 한 그룹도 깊은 잠에서 깨어나기 시작했다. 판타스틱 넷과 토미스, 그리고 팽.

" 여... 여긴? "

토미스의 눈에 보이는 것은 철장.

그들은 갇혔다. 그리고 족쇄에 묶여 있었다. 매우 낡은 수갑과 족쇄가 토미스의 움직임을 제약시켰다. 마텔이 족쇄와 수갑을 훑으며 가소롭게 미소지었다.

" 이런 것으로 우릴 가두려 하다니. 파이어! 이거 녹일 수 있지. "

" 그럼요. 이까짓 것. 애들 장난감도 아니고. "

아~ 3월의 토끼가 이리 허술했던가? 이들이 술사라는 것을 잊고 있었나 보다. 탱크는 몸을 부풀리면 수갑이 풀릴 것이다. 파이어는 높은 온도로 녹이면 그만, 러빗이야 몸이 고무. 몸을 늘려 얇게 만들면 쏙 빠져나오겠지...

여긴 딱 봐도 라구나 엔진실. 엔진실 구석에 있는 임시 유치장이란 걸 고려하면, 그들은 수갑과 족쇄를 쉽게 풀고 빠져나갈 것이다.

이동기로 그 험한 꼴을 피했는데... 좀 괜찮은 곳에 감금하지 그랬냐아옹~

판타스틱 넷은 각자의 고유능력을 발현하기 위해, 몸에 힘을 주었다. 이러다가 라구나 풍비박산 나는 건 아닌지? 근데, 그들이 변하지 않았다. 족쇄와 수갑을 풀지 못했다. 보이는가? 커다란 퀘스천 마크가 뒤통수에 생기는 게.

"엇." "뭐지?" "이거 왜 이래?"

' 철컹. 철컹. '

당황해하는 판타스틱 넷.

토미스 또한 마찬가지였다. 족쇄를 쉽게 풀고 이곳을 빠져나갈 것 같은 기대감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마텔의 한숨이 길게 뻗어 나갔다.

" 휴~ "

" 이거 풀 수 없는 겁니까? "

한숨 쉬는 마텔에게 토미스가 물었다.

" 여기 있는 그 연금술사가 술사능력 제어 장치를 여기에 뿌려 놓은 것 같은데요. "

역시. 3월의 토끼. 그리 만만하게 이들을 묶어 놓지 않았다. 내 잘못 생각했다옹~

3월의 토끼는 수갑과 족쇄에 술사의 힘을 차단하는 물약을 발라놓았다. 시중에서 구할 수 없는 희귀품. 또한 철장을 막고 있는 쇠기둥에도, 술사 능력 억제제를 듬뿍 뿌렸다. 이들의 자기장 속성을 꽤 뚫었단 말인가? 녹슬지 않은 그녀의 솜씨였다. 연금술 대가이긴 대가인가 보다. 꿈쩍할 수 없는 그들은 체념했다.

" 나참! 232 잡으러 온거지. 잡히려 온 건 아니잖수. "

팽이 꼬온가 보다. 듣기 싫은 걸까? 토미스는 쌩까며 마텔을 보며 말했다.

" 마텔 반장님. 그 이야기는 들었습니까? "

" 무슨 말이요? "

" 여기에 재필이 등장했다는 이야기요. 제가 이곳에 재필이 나타났다고 전했습니다. "

" 재필? "

" 네. 예전 232가 잡았던 현상범 말입니다. "

" 국장님 또 깜박하셨나 본데요. 보고 받은 적 없습니다. "

" 아무튼, 뭔가 이상해서 말입니다. 처음 투구와 관련해서 둘이 공생관계라 생각했는데. 섞연치 않아서 말이죠. "

" 흠. 흥미 가는 이야기지만, 저희의 임무는 발쿰과 연관된 팔콘. 그리고 투구의 행방입니다. "

" 그... 그게... 재필 또한 그 투구와 관련이 있는 것 같아서 말입니다. "

허허. 토미스 자꾸 길을 잘못 드는 기분이다. 이야옹~

그래. 솔직히 재필이 투구와 관련이 없는 건 아니었다. 발쿰의 조직에 들어서면서부터 투구의 행방을 찾으라는 지시도 있었으니 말이다. 그러나 재필은 투구보다도 복수에 목이 말랐다. 232만 없었어도 자신이 이 행성을 통으로 삼켰을 터, 물론, 발쿰과의 거래도 필요 없었을 것이다.

아무튼, 이동기가 발동하며 상희의 일행과 토미스의 일행 말고도, 또 다른 일행이 눈을 뜨기 시작했다.

철문으로 향하다 이동기로 빨려 들어간 재필. 그가 눈을 떴다. 또한, 커다란 홍당무 조각상에서도 팔콘과 챈코가 기절에서 깨어났다.

이런, 아지트 내부에 있는 사람만 이곳으로 이동된 것이 아니었나 보다. 주변에 있는 사물도 함께 딸려왔다. 재필이 엎드린 채로 주변을 살펴보았다.

무거운 눈꺼풀. 모래가 모든 것을 잠식한 사막이었다. 얼굴에 묻은 모래가 입에 들어갈 것 같았다.

웅장한 거대 토끼의 모습. 귀가 떨어져 나갔다. 앞발이 보이지 않았다. 무차별 폭격으로 흉터 가득한 철갑의 토끼. 폭삭 주저앉아 버릴 것 같은 위태로운 모습을 간직하고 있었다.

" 씨부럴. 여긴 어디야... "

의아할 것이다. 폭우처럼 빗발치던 포격이 있던 곳이었는데, 기절했다 눈을 뜨니 사막. 암벽과 절벽조차 없는 드넓은 사막이었다. 재필은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지 일어서질 못했다. 그냥 뒤척일 뿐. 그리고 멀리있는 방벽을 확인했다.

0구역에 자리 잡은 커다란 울타리. 그제야. 이곳이 어딘지 눈치깠다.

" 이런. 0구역이라니... "

의아함이 발전해 궁금증으로 다가왔다.

" 어... 어떻게 된 거지... "

그 궁금증을 반대편에 있는 팔콘도 느끼고 있었다. 재필이 거대 토끼의 오른발에 있었다면, 팔콘은 왼발에 있었다.

" 이... 이런... "

팔콘 또한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억지로 거대 당근에 등을 기댄다. 챈코도 당근으로 기어와 등을 기댔다.

" 젠장. 으윽...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

그 모습을 바라본 팔콘이 하늘을 보며 실소를 터뜨렸다.

" 크흐흐흐흐... 챈코. 왜 도망가지 않고. 크흐흐흐... "

" 팔콘. NG가 우릴 의심하고 있었더군. "

" 의심? 훗. 그건 의심이 아니라 사실이겠지. 내가 투구를 넘기지 않을 거란 거. 너까지 의심받게 해서 미안해지는군. 크흐흑..."

전혀 미안한 표정이 아니다. 쌤통이라는 무언의 표정이랄까.

" 젠장... 이젠 돌아갈 곳도 없군. "

둘 다. 목소리에 힘이 없었다. 이동기의 후유증이 꽤 컸던 것 같았다. 팔콘의 정신력과 체력도, 이동기는 무시할 힘을 가졌나 보다. 그나저나 이들이 원기를 회복하면, 투구와 복수를 위해 들이닥칠 텐데... 3월의 토끼가 상희의 폭주를 감상하고, 미쳐 밖의 상황을 모티터링 하지 못했다.

야! 상희! 뭐하냐아옹~ 네 목을 노리는 남정네 두 놈이 기운을 차리고 있다옹~!

상희는 그런 것을 알지도 못한 채, 라구나에 있었다. 3월의 토끼도, 건남도... 모든이가 그 사실을 몰랐다. 전투정으로 변해 있는 라구나. 각자의 위치에 앉아, 232대원들은 3월의 토끼를 주목하고 있었다.

" 그러니까 제 후배가 저희를 배신했다는 건가요? "

" 그런 것 같아요. 성우씨. "

3월의 토끼는 다른 대원들에게 말을 쉽게 놓았으나, 이상스레 창기와 준, 성우에게는 존대했다. 액면으로 더 늙어 보인다는 게 그 이유였다.

너흰 소나의 화장술이 필요하다아옹~

" 그럴리가요? 무슨 문제가 있었든 게 틀림없습니다. "

성우는 시범을 의심하기 싫었다. 자신을 얼마나 따르던 의리심의 시범이었나. 그 시범이 재필이란 걸 얼른 알아채야 하는데...

" 그 시범이라는 후배가, 죄수들과 한패인 것 같더군요. 그 죄수들을 이용해 제 아지트에 이상한 알약을 설치했어요. 그 알약으로 인해 저희가 기절 한 거고요. "

" 아~ "

성우가 도리도리. 연신 믿기지 않는 모양이다.

" 그리고 저희가 기절하고 나서. 폭격이 시작됐어요. 이건 그 누구도 기억에 없겠죠? "

건남이 턱을 만지작거린다.

" 수비대에서 폭격한 건가요? 예상대로? "

예상? 뭘? 그럼 이곳이 폭격당할 걸 알고 있었다는 것인가? 3월의 토끼는 토끼 모자의 귀를 까닥거렸다.

" 건남 삼춘. 그게 무슨 말이에요? 이곳이 폭격당할 걸 예상했다고요? "

" 어...? 어... "

" 삼춘!! "

다해가 소리를 꽥 질렀다. 그리곤 속사포 랩을 구사한다.

" 아니 미쳤어욧. 왜 말을 안 하셨데요. 그렇게 위험한 일이 있었으면, 진작에 알려줘야 할 거 아니에욧. 알면서도 말하지 않으면 어뜩케욧!! "

인상을 찡그리며 다해를 바라보는 건남. 미안한 표정이었다.

" 그리고 연금술사님이 그러셨는데. 저희에게 숨기고 있는 거 또 있죠? "

건남이 살며시 연금술사를 쳐다보았다. '내가 뭘!' 하는 반응.

3월의 토끼가 두 손바닥을 펴며 어깨를 으쓱거렸다.

" 아~ 말하려 했다고... 기회가 없었을 뿐이야. "

팔짱 낀 현석이 무기 조종석에서 가소롭게 웃었다.

" 어느 생전에? 우리 죽고? 풉. "

" 여하튼, 그 시범이라는 사람 알아보세요. 매우 구리니... 그리고, 지금 보안국에서 저희를 잡으러 왔습니다. 보셨죠? 유치장에 있는 사람들? "

모두 끄덕거렸다. 그 모습을 보고 3월의 토끼가 말을 이었다.

" 저들은 술사에요. 제가 묶어 놓았으니 시간을 벌 수 있을 거예요. 죽일 순 없으니... "

" 보안국에선 왜...? "

상희가 물었다.

" 이것도 사실 예측은 했었어. 건남이가 얘길 안 했더군? "

" 네! 이것도 예측했다고요? "

이번엔 상희가 건남을 째려봤다.

" 아놔! 야! 야 이년아! 제대로 전달해야 할 거 아니야! 도대체 말 안 한 게 이리 많아! "

건남은 애써 외면한다.

" 으! 저 화상! "

" 여하튼, 그 상황에서 모두 워프시킨 것 같아요. 이동기가 발동했거든요. "

3월의 토끼가 주위를 빙 둘러보며 계속 말했다.

" 이동기는 건남이가 차차의 집에서 발견한 걸, 제게 보냈죠. 이 장비를 움직여 그 예측을 피해 보려 했어요. 성우씨의 후배가 없었다면. 폭격이 있기 전, 보안국에서 사람이 도착하기 전, 저희는 이곳으로 이동되었을 거예요. "

" 그래. 내가 이래서 말 안 했던 거라고. 우리가 기절하지 않았다면, 쥐도 새도 모르게 도망쳤을 거야. "

" 건남 옵! 쉿! "

상희가 앙칼지게 바라보며 입에 검지를 붙인다. 어깨에 힘이 빠진 건남이었다. 어쩌겠어? 꼬랑지 내려야지.

" 중요한 건. 0구역에 도착한 이유에요. 저와 건남이 의논해서 이리로 이동했죠. 우선 95구역에서 가장 먼 곳이기도 하고, 여기서 만날 사람도 있어서 말이죠. "

" 만나야 할 사람? "

갸우뚱거리는 라구나 대원들이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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