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5화 〉 174먹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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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화. 먹이.
건남이 지휘석 모니터로 확인한 사람은 시범이었다. 교도관 정복이 반팔로 변해 있었다. 단정했던 정복이었는데... 윗단추 두 개가 풀려있다. 와이셔츠의 옷깃이 목을 감싸고 있었다. 목에 힘을 주는 시범. 그의 눈이 붉게 충혈되었다.
분명 시범의 모습은 변해 있었다. 팔뚝이 2배 이상 부풀어 올랐다. 장딴지도 마찬가지였다. 정복 바지가 찢겨 펄럭거렸다.
두툽한 오른팔. 쭉 뻗어 주먹을 쥐었다. 왼팔은 그 오른 팔목을 잡고 있었다. 기마자세를 한 채. 오른쪽 손등 위에 열려 있는 포구. 이건 자르가 사용하는 그 무기와 비슷한, 인체 인식 소형 포였다.
그랬지, 재필도 그 무기를 사용하고 있었다. 다만, 예전과는 좀 다르게 느껴졌다. 몸이 저렇게 부풀진 않았었는데... 예전, 상희에게 처맞고 뭔가 업그레이드한 것인가? 아무튼 시범으로 페이스 체인지한 재필은 희번덕 웃고 있었다. 그 모습에 성우가 당장이라도 뛰쳐나갈 태세였다.
" 시범이가 왜? "
그의 어깨를 잡는 준.
" 성우야. 아무래도 저 친구는 이미 우리 편이 아닌 것 같다. 진정하고 대기해. "
" 아~ 이럴 수가! 도대체 왜? "
포격을 당하자, 빠르게 움직이는 현석. 그는 무기 조종석에 앉은 채, 수많은 버튼을 컨트롤한다.
" 이. 후배라는 분. 인체 인식 무기를 가지고 있다고요? 오~ 공무원 월급으로 사기에는 좀 비쌀 텐데... "
현석은 그렇게 말하면서, 좌측 하부에 있는 벌컨포를 시범에게 겨냥했다.
" 아리야 스피커로 밖과 연락할 수 있게 해줘. "
네. 알겠습니다.
' 지잉. '
시범 씨? 무슨 짓인가요?
지금. 건남의 목소리가 아지트에 흘러나왔다.
" 크크큭 안에 있었군. 혹시나 해서 맞춰 봤더만. "
시범아 도대체 왜 그러는 거야?
성우의 걱정스러운 말투도 스피커에서 흘러나왔다. 정자세로 돌아온 재필은 라구나로 발을 떼려 했다. 순간,
움직이지 마시죠. 여기 있는 분들과는 아는 사이일지 모르겠지만, 전 아니니 말이죠. 더이상 움직이면 벌집을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현석의 음성에 잠시 멈칫한 재필이었다. 재필은 그 상태로 자신을 겨냥한 벌컨포의 포문을 살폈다. 그리곤 웃었다.
" 크크크큭. 으하하하! 날 너무 만만하게 보는군. 그깟 걸로 날 죽일 수 있다고 보는 건가? "
충혈된 눈에 흐르는 기가 주변에 흘러나오는 것 같았다. 뭔가 섬뜩한 느낌의 그의 눈. 얼굴이 붉게 타들어 가는 것 같았다. 순간, 그의 얼굴이 노이즈 되며 흔들거렸다. 얼굴 모습을 되돌린 재필.
너... 너는?
재필?
이 자식은 여기 왜 있는 거여.
재필이라고욧. 어떠케!
아놔. 미쳐블. 저 자식이 또 쳐맞고 싶어서 안달이 났나.
라구나 식솔들의 목소리가 하나하나 재필의 귀에 쏙쏙 들어왔다.
" 오랜만이군. 그동안 잘 지냈나? 크크크큭. "
뭐야. 너! 니가 여기 왜 나타난 거지?
건남이 흥분 조로 말했다.
" 별거 없어. 그 안에 있는 동안, 이 순간만 기다려 왔거든. 갚아야 할 게 많지 않겠나? 슬슬 기어 나오시지 그래. "
나오란다. 너 같음 나가겠냐아옹~ 여기에 깔린 무기가 몇 갠데... 재필이 아무리 1 클래스 현상범이라지만, 현석의 말대로 벌집 낼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흐흐. 재필이라 그랬나. 차라리 잘 된 것 같은데... 여기 계신 분들과 친분이 있어 좀 껄끄러웠는데. 범죄자라 하니, 부담 없이 날릴 수 있겠어. 그냥 조용히 항복해. 목숨 부지하려면.
현석의 침착한 목소리였다.
" 항복? 항복이라 했나? 크크크큭. 그럼 안에 있어. 함정과 함께 저세상으로 보내 줄 테니. 이얍! "
재필이 기마자세를 잡았다.
손등의 포구에서 빛이 자리 잡았다. 광자 포나 양자 포의 에너지가 모이는 것과 비슷한 모양새였다.
현석은 고민하지 않았다. 정지해 있는 라구나에서 포신이 돌아갔다.
' 드르르륵. 드르륵. 드르륵. '
기를 모으고 있는 재필에게 벌떼처럼 달려드는 총알들.
재필은 피하지 않았다. 기마자세로 손등의 포에 에너지를 충전시켰다. 아무래도 일반 인간이면 사지에 총탄이 지나가며 찢어지겠지, 파열되겠지,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피하지 않은 재필의 온몸에 투명막이 자리 잡았다.
실드.
아니었다. 기존의 실드와는 매우 다르다. 그 투명막은 액체였다. 뭐지? 날아든 총알이 재필에게 당도하지 못했다. 액체에 부딪히면, 그냥 먼지가 되어 사라졌다.
' 피식. 푸식. 퓨식. 피식. 푸식. '
모래알 날리는 소리가 사방으로 튀었다.
" 엇! 뭐야. 이 새끼. "
현석은 의아해하며 소형저격 포의 포문을 열었다. 벌컨포 버튼을 계속 누르며.
' 드르륵, 드르륵. 피식. 퓨식. '
' 펑. 펑. '
포탄이 날아간다. 재필의 몸을 난도질하기 위해 직격으로 뻗었다.
' 푸식. 퓨식. '
" 앗! 저런 방어막이 있었나? "
황당한 그였다. 순간, 들리는 아리의 음성.
라구나 천장에 누군가 올라탔어요. 화면 전송합니다.
건남은 모니터를 훑었다.
" 이런. 이 자식은? "
화면 속에 보이는 것은 팔콘이었다. 커다란 양날 도끼로, 라구나를 크게 내리찍으려 하는 몸짓이 뚜렷하게 잡혔다.
" 아놔! 이것들이 단체로 미쳤네! 라구나에 흠집만 내봐, 아주 대갈통을 씹어 먹을 테니! "
걸쭉한 상희의 분노.
그 목소릴 듣기나 한 걸까? 팔콘은 장작 패듯 라구나의 윗중앙에 서서, 양날 도끼로 내려찍었다. 설마 저걸로 중형 함정인 라구나를 쪼개려고? 아무튼, 그와 동시에 현석은 큼지막한 미사일을 재필에게 발사했다.
현석도 미쳤군. 이 좁은 공간에서 미사일을 날리면. 너 죽고 나 죽고 아니냐아옹~
내 걱정은 듣지도 않고 발사된 미사일.
추진 음에 아지트가 떨었다. 재필이 몸만 한 미사일이, 기마자세의 그에게 돌진한다.
' 피융~ 쉬이잉! ' ' 쾅! '
천장에선 도끼 내려찍는 소리가 들리고,
' 펑! '
아지트 안에서 미사일의 폭음이 잔상을 이루며 흩어졌다.
재필 죽었나?
근데. 폭발음이 영 석연치 않았다. 보통 폭발음에 10분의 1수준. 액체로 뒤덮인 방어막이, 폭발의 파편과 화염 폭풍을 잠식하고 있었다. 마치 먹이를 먹듯 집어삼키는 것 같았다. 엷은 연기 사이로 재필의 비웃음이 화면에 비췄다.
' 쾅! '
팔콘의 도끼질 소리도 들려온다.
" 헛. 형님들. 이거이거... 제가 모르는 방어막이 있네요. "
현석의 말이 끝날 무렵, 재필의 무기는 모든 에너지를 집중한 것 같았다. 은색과 푸른빛이 포신 앞에서 둥글게 자리 잡았다.
' 쾅! '
천장에 흠이 생겼다. 팔콘의 마당쇠 파워인가? 라구나가 둘로 쪼개질 각이다.
라구나 옆면, 재필이 피식 쪼갠다. 화면으로 두 범죄자의 모습을 지켜보는 건남이 조용히 말했다. 모두가 들을 수 있을 정도의 조용함이었다.
" 이런. 모두 전투 준비해. 개인 실드 착용하고... "
무언가 건남은 느끼고 있는 것 같았다. 곧 무슨 일이 벌어질지.
한편, 유치장에 갇혀 있는 토미스와 그의 일행. 라구나에서 들리는 포격 소리에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 이거 현재 비행 중이야? "
" 이야. 비행하는데, 이렇게 울림 없다니. 비싼건가 보군. "
뭐.라.카.노.
지금 밖의 상황을 알 수 없는 그들이었으니, 아마도 이들은 공중전을 그리고 있는 것 같았다. 재필과 팔콘의 공격이.
" 젠장! 이런 곳에서 폭격당해 죽을 줄이야. "
팽의 투덜이였다.
" 죽긴. 아직 일러. "
토미스가 무언가 작전이 있나?
" 토미스님 좋은 꾀라도 있나요? "
마텔의 미모에 평정심을 찾으려는 토미스였다.
" 이게 통할지 모르겠네요. 허허허. "
" 무언가 있군요. "
" 이걸 쓸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제가 가지고 다니는지도 까맣게 잊고 있었어요. "
" ? "
말없이 토미스를 쳐다보는 판타스틱 넷과 팽이였다.
" 제 가슴. 윗주머니에 재료가 있을 겁니다. 꺼내 주시겠어요? "
그것을 꺼낼 수 있는 사람은 마텔뿐이었다. 옆에 있었기에... 다른 인원들은 족쇄의 범위에서 벗어나 있었다. 마텔이 묶여 있는 두 손을 토미스의 가슴으로 가져간다.
조그만 주머니. 손가락 두 개가 간신히 들어가는 크기였다.
" 음. "
느끼지 말라옹~
그의 가슴으로 닿는 마텔의 손가락. 수갑이 채워져 있기에 꺼내기가 쉽지 않았다. 가슴을 벽 삼아 손가락에 힘을 주어 끌어 올려야 했다. 가슴을 훑고 지나는 그녀의 중지와 검지.
" 으으음... "
토미스가 간지러운 건가? 아따, 뭔가 느끼는 것 같은데...
마! 정신차려라아옹~
꾸물꾸물. 토미스의 젖꼭지를 건드리며, 엄지손가락 만한 비닐봉지가 주머니 위로 딸려 올라왔다.
" 이건가요? "
수갑에 묶인 상태로 작은 비닐봉지를 엄지와 검지로 잡으며 흔들었다.
" 워~ 워~ 그렇게 흔들지 마세요. "
땡그란 눈으로 질색하며, 흔드는 걸 말리는 토미스. 터지기라도 하는 것인가?
" 음~ 근데 이거 무슨 냄새죠. "
" 그래서 흔들지 말라고 한 겁니다. "
폭약은 아닌가 보다. 흔들면 냄새가 날 뿐.
" 그건, 제가 새똥으로 만든 가루입니다. 여기에 질산 7, 유황 2, 숯 1의 비율로 배합한 가루를 섞어야 해요. 옛 동료인 질러에게 배운 소형 폭탄 제조법이죠. 허허허. "
아~ 폭약이네. 냄새나는...
" 네. 변이라고요. 이것이. 새똥? "
" 아무튼, 그 물건은 흔들면 냄새가 나니, 그냥 놓아두시고. 제 바지 뒷주머니에서 다른 재료도 꺼내 주세요. 마텔님. "
" 아 네. "
마텔은 고개를 숙여 토미스의 엉덩이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 잘 안 들어가요. "
간질거리는 토미스. 뭐냐! 저 표정은... 앞주머니에 넣어 둘 걸 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아무튼, 어렵게 꺼내든 또 다른 봉투. 그것도 새똥이 담긴 작은 봉투와 크기가 비슷했다. 새똥 봉투를 조심히 여는 토미스.
" 읍... "
그가 봉투를 열자, 흐멀흐멀 올라오는 변 냄새가 유치장에 퍼져갔다.
" 어후. 냄새가... "
" 이렇게 지독해요? "
" 이걸 어떻게 들고 다녔답니까? 윽. "
모두 한마디씩 하며 코를 막고 있었다.
" 마텔님이 흔들지만 않았어도... 어쨌든, 마텔님 이것 좀 들고 계세요. "
막았던 코를 놓으며,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그의 말에 응했다. 토미스는 또 다른 봉투도 열었다. 그리고 좀 전에 마텔에게 주었던 봉투를 건네받았다.
두 봉투를 합치는 토미스. 언제, 어디서 껌을 씹었던가? 입속에서 질겅거리던 풍선껌을 합쳐진 가루에 감쌌다. 매우 작은 만두 같았다. 콩알 탄이라 해야 하나.
" 이것을 탱크의 수갑에 붙여 주세요. 시간이 없습니다. "
찐득한 콩알탄을 마텔에게 넘긴다. 마텔은 다시 화이어에게, 화이어는 탱크의 수갑에 조그만 폭탄을 붙였다. 쩍 달라붙는, 새똥으로 만든 소형폭탄. 냄새가 장난이 아니다. 껌 속의 딸기향이 무색했다. 이렇게 해서라도 탈출해야 니들이 참...
" 탱크님! 폭탄이 터질 타이밍에 몸을 변형시키십시오! 안 그러면 두 손목이 날아갈 겁니다. "
주의사항을 알리는 토미스. 타이밍에 변신 못 하면 짜이찌엔인가? 언제 터질지 알고?
나름 시간을 계산하고 있던 토미스가 크게 말했다.
" 지금입니다. "
' 펑! '
최루탄이 터지듯 무성한 연기가 피어올랐다.
" 콜록. 콜록. 성공했나요!! "
마텔의 반신반의한 표정. 손목이 날아간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머리를 훑고 지나간 것 같았다. 연기가 사그라진다.
" 보다시피... "
탱크의 상체가 돌덩이로 변해 있었다.
" 오! 성공이군요. "
희망에 부푼 마텔의 눈빛. 그것에 부응이라도 하려는 듯, 탱크는 자신의 족쇄를 움켜잡았다. 두툼한 돌덩어리 손에, ' 우직. 빠각. 촤르르륵. ' 족쇄가 끊겼다. 불은 라면 끊기듯, 아주 쉽게 뜯어버렸다.
그와 동시에 탱크의 하체가 돌덩이로 변했다. 일사불란한 그는 화이어에서부터 팽까지, 손목을 죄고 있는 수갑을 뜯어버린다. 막강한 힘이었다.
' 콰직. 콰직. 콰직... '
연이어 그들의 족쇄도 박살이 났다.
" 잘했어요. 탱크. "
마텔이 윙크했다. 유치장의 모든 이가 손목과 발목을 풀고 있었다. 오랫동안 묶여 있던지라, 뻐근했던 모양.
" 우선 여기부터 나가죠! "
토미스가 마텔에게 말하자, 마텔은 화이어에게 지시했다.
" 화이어. 부탁해요. "
끄덕인 화이어.
" 자 뒤로 물러나 있으세요. 이얍!! "
' 휘리릭. 후욱. ' 화이어의 상체가 불타올랐다. 약간의 인영만 남아있었다. 그런 그가 오른팔을 쭉 뻗었다.
' 후우훅. '
커다란 화염이 솟구쳤다. 철문을 향해 솟구친 화염이 길게 뻗어 나갔다. 화이어를 제외한 모든 이가 철창의 반대쪽으로 이동하며, 손으로 뜨거운 열기를 가리기 위해 얼굴을 막았다. 점점 온도를 올리는 화이어.
철장이 녹고 있었다. 이런 라구나를 아주 박살 내려는 수작인가? 재필은 인체 인식 무기로, 팔콘은 천장에서 양날 도끼로, 화이어는 내부에서 불길로 라구나를 욕보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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