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9화 〉 178화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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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5화. 화마.
건남에게 주었던 비행정, 토끼고 있던 3월 토끼와 다해가 얼른 올라탔다. 발이 보이지도 않았다.
" 다해야 빨리! "
긴박하다는 걸 얼굴로 승화시키고 있는 3월의 토끼. 짜브되었다.
" 알쪄염! "
다해도 비행정에 몸을 실었다. 그녀가 아둥바둥 몸을 실자, 최대 시속으로 조종대를 잡는 3월의 토끼였다. 후면 카메라로 뒤를 확인하는 그녀였다. 후방 카메라가 캐노피 우측에 화면을 만들었다.
비행정 뒤를 바짝 쫓아온 라구나가 보였고 그것의 뒤에, 사막 한가운데 덩그러니 자리 잡은 아지트가 연이어 보였다. 이미 이곳저곳이 부서진 아지트, 커다란 토끼 모양의 빌딩이 좌우로 심하게 요동치고 있었다.
" 토끼님. 재필이 어떻게 된 거에요? 도대체? "
" 나도 잘 몰라. 우선 이곳을 빠져나가야겠어. 저 능력은 사람이 감당할 힘이 아니야. "
" 어디까지 도망쳐야 해욧? "
" 그것도 몰라! 어쩜 우린 여기서 사라질 수도 있으니... 최대한 멀리 떨어져 보자고. "
" 그 위험함은 어떻게 아시는 거예욧? "
" 그건 촉이야! 대충 F6 관련 사항인 것 같은데... 분명 윤의 형태와 비슷한 능력일 거야... 그 재필의 방어막에서 느낀 건, 영생력과 관련이 있는 것 같았다고. 아작! "
" 영생력이라니욧? "
" 그 있잖아! 윤이 불멸의 삶을 살았던 것. 그것의 변형이라고나 할까? 자세한 건. 페이킨이 알고 있을 거야. 분명. "
" 페이킨이라는 분은 저기 근처에서 만날 수 있다고 하지 않으셨어욧? "
후방 화면을 다해가 가리켰다. 흔들리는 아지트를 바라보며 조종하는 3월의 토끼.
" 그게 여기 근처라고. 정확히 여긴 아니야. 이 접속 장치가 움직임이 없었던 걸 보아. 더 찾아봐야 해. 아무튼 그것도 여길 벗어나야 가능하겠지만... "
그때, 아지트가 깡그리 무너지는 장면이 토끼의 눈에 비쳤다. 커다란 회오리가 하늘로 쭉 뻗어나가고 있었다. 엄청난 회전력으로 돌고 있는 소용돌이, 그것이 점점 두꺼워졌다. 아지트는 회오리에 빨려 공중으로 솟았다. 그렇게 잘근잘근 쪼개지고 있는 아지트.
" 이런. 아까부라. 어떻게 만든 아지트인데. "
눈물이라도 펑펑 흘릴 각이다.
" 어후~ 토끼님! 저 토네이도가 점점 커져욧. "
" 나도 봤어. 젠장! "
그럼 그 안에 있었던, 팔콘과 챈코, 마텔, 토미스, 팽은 완전히 죽은 것인가? 저 회오리에 살아남을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빌딩도 먼지로 만들어 버리는 저 강풍을... 그리고 더욱 큰 문제는 바람뿐만이 아니었다.
순식간에 커진 회오리가 어느 순간부터 붉게 변하고 있었다. 반경이 점점 넓어지며 뿜어져 나온 화마! 마그마가 뿜어지듯, 끈적해 보이는 불길이 회오리 기둥을 타고 솟아오르고 있다.
반경 50m, 60m, 70m, 80, 90, 100, 200m. 더욱 번져가는 불 회오리. 어느덧 지름 500m는 되어 보이는 회오리가 용솟음쳤다. 주변의 선인장과 이름 모를 벌레가 불길이 닿기도 전에 녹아내렸다.
" 오우 쉣! 어떠케! 어떠케! 너무 빨리 커지고 있어욧! 아악! 몰라 몰라 몰라... "
회오리의 늘어나는 부피가 비행정이 날아가는 속도보다도 빠른 것 같았다. 오두방정과 깨방정을 시전하는 다해였다. 다해의 앞 좌석의 토끼는 그냥 내달린다.
' 피융! '
최대 출력으로... 어쩌겠어. 생화장 당하게 생겼는데... 뒤를 따르던 라구나 또한 입장은 마찬가지였다. 무조건 째라옹~ 빨리 빨리.
핵폭탄이 터지는 버섯구름보다도 위력적으로 보였다. 저 두꺼워진 돌개바람을 빠져나갈 수 있을까. 사막의 모래도 타들어 가는 것 같았다. 점점 라구나와 비행정으로 다가오는 붉은 화염. 이런 것이 도시에서 펼쳐졌으면...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고통도 느낄세 없이 모든 사람이 사라졌겠지, 모든 물건이 한 줌의 흙이 되었을 것이다. 다행인 건가? 자신들만이 재필의 제물이 된 것이...
" 토끼님! 어떠케 좀 해 봐욧! "
" 다해야! 조용히 좀 해! 죽는 날까지 네 코맹맹이 소릴 들어야 하나... 허... 아작. "
죽기 전까지 당근은 씹었다. 점점 근처까지 접근한 붉은 회오리. 이젠 힘이 빠지는 토끼였다. 그러나, 희망이 보이기 시작한 건.
' 위잉. '
주머니 속에서 울리는 물건. 마패처럼 생긴 그 조각이 움직였다. 진동벨이 울리듯 떨리는 페이킨의 이동기.
" 잠깐! "
조종을 하던 토끼가 마패를 꺼내 들었다. 청동인가? 아무튼 푸른 빛이 감돌고 있었다. 진동과 함께. 3월의 토끼가 마패를 손에서 놓았다. 유유히 공중에 떠 있는 마패 조각. 푸른 빛이 비행정 안을 메우고 있었다.
" 신호가 온 건가? "
" 여기서요. 그럼 살 수 있는 거에욧? "
" 우선 라구나로 들어가야겠는 걸. "
" 제가 연락할게욧. "
다해는 교신한다.
" 정박장 열라고 해. "
" 알쪄욤. "
그래 다해야. 건남의 음성이었다.
" 삼춘! 저희 킵해가요. 정박장 개방하고 앞질러 주세욧. 빨리욧!! "
지금 이 상황에서? 앞만 보고 달려도 늦을 판이라고.
" 토끼님의 이동기가 움직였다고 저희. 그 뭐냐... 합체해야 한대요. "
이동기?
벌써 까먹은 거냐아옹~ 페이킨이 3월의 토끼에게 전해준, 쪼매만한 마패 말이다아옹~
" 아무튼, 정박장 개방하세욧! "
아... 알았어.
그러는 사이 마패의 푸른 빛은 점점 진해졌다. 진한 코발트블루가 비행정 안의 다해와 토끼를 파랗게 물들였다. 라구나가 비행정을 앞지른다.
소용돌이는 이제 그들의 바로 뒤. 정박장이 열렸다. 그 안으로 비행정이 신속하게 들어간다. 점점 다가오는 붉은 화마. 곧 라구나를 집어삼킬 위치까지 다가왔다. 곧. 라구나를 뒤덮었다.
커다란 불구덩이 속으로 빨려들어간 라구나. 그와 동시에 마패의 푸른 섬광이 폭발했다.
' 찌이잉~ 위잉. 팍! '
모두의 눈에 들어오는 푸른 빛. 모두가 시간의 결계에 묶인듯 움직이질 않았다. 상희도. 건남도. 명치대인도. 다해도. 창기와 라리도. 성우와 준도. 3월의 토끼도.
시간이 멈춘듯 했다. 모두가 마네킹이 되어 정지했다.
그리고. 토미스와 팽도. 근데, 너희 둘은 여기에 왜 있는 거냐아옹~
아무튼, 화염이 모든 것을 녹이려 하는 그 순간. 라구나는 작은 빛이 되어 증발했다. 마패의 힘에 이끌린 이동이었다. 도대체 어디로 사라진거냐아옹~
그렇게 웅장한 토네이도가 더욱 커지고 있을 때, 이것을 아주 멀리서 확인하는 무리가 있었다.
잊고 있던, buzz.
너무나 큰 회오리였기에, 0구역 주변에 있으면 그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buzz의 캐노피로 용솟음치는 화염의 불길을 우현과 성진은 감상하고 있다. 초자연 현상을 구경하듯, 아주 멀리서...
" 와우! 사장님. 저기 있으면 뼈도 못추스리겠는데요! "
그래, 지금 그곳에 뼈도 없이 사라진 라구나 일행이 있다아옹~
" 저렇게 큰 토네이도는 처음 보는군. "
" 여기서 저게 보일 정도면... 주변에 도시라도 있었으면 계엄령 선포 수준이네요. "
" 오. 오! "
고개를 끄덕이는 우현이었다.
" 그나저나 건남 형님은 어떻게 된 거야? 이리로 오라 하고선, 연락도 안 받고... "
너 같음 받겠냐아옹~ 미친 재필이 저리 날뛰고 있는데.
" 그 자식 신경 꺼. 급하면 연락 오겠지. "
이 목소린!
" 알겠어요. 용선 성님. "
용선은 여기 어떻게 온거냐아옹~ 분명 95구역으로 출발하지 않았나?
" 헤이~ 잘생긴 오빠들. 그것만 구경하지 마시고 저희 먹을 것 좀 챙겨주시죠? 히리것도. "
혜란도 buzz에... 물론, 나도 여기에 있었다. 라구나랑 사뭇 다른 중형 비행정 안. 나도 그들과 함께 있으면서 모른 척 하려니, 얼굴 근육이... 내 거짓말하면 들통나는 고양이다.
아무튼, 우린 95구역으로 향하다가 우현에게 연락을 받았다. 라구나의 안위도 모른 채, 먹을 것을 재촉하는 혜란과 용선의 저 여유로운 티타임. 프로그램 명택이 어서 튀어오라는 지시를 어디다 팔아먹었는지. 매우 여유로워 보였다. 나 또한 하품만 찍 하고 있었지만...
" 이야옹~ "
사실, 용선은 95구역으로 향하다가 buzz와 교신을 하였다. 우현이가 건남과 연락이 안 되어 용선에게 했던 것.
" 뭐! 0구역으로 오라고 그랬다고? "
그렇다니까요. 성님.
" 95구역이 위험하다고 그랬는데... "
성님. 약속 시각이 거의 다가오고 있어요. 지금 95구역으로 향하다가는 고생 좀 하실 것 같은데...
" 뭐야? 도대체... 이 건남이라는 녀석이 이런 거로 빈말 할 녀석은 아닌데 말이지. "
그렇긴 하죠. 아무튼 제 위치 보내겠습니다. 혹여나 무슨 일 있으시면 이리로 오세요.
" 음... "
곰곰이 생각하는 용선. 그리곤 결정하듯 내뱉었다.
" 알았어. 일단 0구역으로 가는 게 맞는 것 같아. "
무슨 근거로?
" 용선 오빠! 그냥 그렇게 얼렁뚱땅 결정해도 되는 거예요? "
" 얼렁뚱땅 이라니! 내가 아는 이 자식은 생각했던 방법이 틀려도 요상스럽게 약속을 지키는 녀석이거든. 운빨인지, 계획한 건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확률상 라구나는 0구역으로 향했을 것 같아. "
이상한 논리였다. 그냥 가기 싫어서 둘러대는 건 아니고?
" 그런 위험한 발상은 어떻게 하시는 건가요. 그러다 아니면 어쩌시려고요. "
" 풋. 지 팔자지 뭐. "
피식 웃은 용선은 우현에게 말했다.
" 기다려. 95구역보다는 거기가 가까우니. 금방 도착할 거야. "
넵. 성님. 살펴 오십시요.
분명 가까워서 일것이다. 95구역을 포기한 건, 그렇게 buzz에 합류한 용선과 혜란이었다. 이 마구잡이식 추측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 신기한 건, 그 결정이 옳다는 것이었다. 지금 라구나는 0구역에 있으니 말이다. 물론, 불꽃에 휩싸였지만.
" 용선 성님. 언제까지 기다려야하나요. 너무 오래 기다리는 것 같아서. "
" 기다려봐. 차 한 잔 들면서. 후릅. "
팔자 폈네. 폈어. 화염과 춤추는 라구나가 어째 측은해 보인다. 그렇게 그들은 재필의 회오리를 멀리서 관망하며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폭죽놀이 구경보다 더 심취한 채로.
0구역 안, 페이킨의 집.
페이킨은 녹색의 액체로 뒤덮인 공간에서 흔들의자에 앉아 책을 읽고 있었다.
'릴리의 슬림 슬립'이라는 제목이 앞표지에 새겨져 있었다.
" 아~ 내 50년만 젊었어도 저런 앙큼한 여자와 데이트를 할 텐데. "
그의 저택 위로는 하늘이 보이지 않았다.
녹색의 빛만 가득한 하늘. 마치 공중에 부양한 대지 위, 집을 지은 것 같았다. 둥근 방어막이 액체의 위협으로 보호하고 있었다. 마당의 끝, 울타리 너머엔 절벽이었다. 아니 절벽이라 하기엔 매우 낮았다. 나무의 뿌리가 뽑힌 형상 같았다. 그 뿌리에 붙어 있는 흙이 이 공간의 대지였다. 그 아래로도 녹색의 액체만 보일 뿐이었다.
흔들의자에서 여유롭게 책을 읽던 그가, 책을 덮었다. 그리고 마당에서 뛰놀고 있는 아이들을 바라보았다. 이제 슬슬 청소년기에 들어갈 아이들. 어린아이라 부르기엔 훌쩍 커버린 그들을 보며 한숨을 쉬었다.
" 내가 죽어도 저 아이들만 무사하다면... "
할아버지의 고뇌를 아이들은 알기나 할까? 평화로이 뛰논다. 라시노랭의 손자 둘과 아이리스의 자식과 상희의 딸이. 건남이 찾고자 하는 비밀의 열쇠가 이곳에 모두 응집해 있었다. 이 아이들은 알까? 자신들이 현재 처해 있는 사실을... 마냥 히죽이며 놀고 있는 천진난만한 이 아이들은? 페이킨이 그렇게 사색에 잠기는 것도 잠시였다. 그의 몸이, 그의 심장이 심하게 뛰었기 때문이었다.
" 이건! "
심박수가 요동치는 페이킨.
얼굴이 붉어졌다.
" 헉. 헉. "
뜀박질을 한 것도 아닌데 숨이 차올랐다. 식은땀이 등줄기를 타고 흐른다. 그는 아이들을 보며 고함쳤다.
" 얘들아!! 모두 집으로 들어와! 어서! "
아이들은 행동을 멈췄다. 그리고 고함 친 페이킨을 주목했다.
" 뭣들 하니. 빨리 움직여! "
그제야. 아이들은 뛰기 시작했다.
" 할아버지 왜 그러세요? "
다혜가 헐레벌떡 뛰어와 흥분해 있는 페이킨에게 속삭였다.
" 다혜야. 얘들 데리고 방으로 들어가렴. 그리고 절대 할아버지의 지시가 있을 때까지 나오지 마렴. 알겠니? "
뾰로통한 다혜였다. 급작스럽게 말하는 페이킨에게 의문이 들 수밖에 없었다.
" 자 이거 받으렴. "
페이킨은 자신이 읽고 있던 책과 함께, 바지 주머니에서 무언가 꺼내어 다혜의 손에 꼭 쥐여주었다. 목걸이였다. 어디서 많이 본 물건인데...
그래. 3월의 토끼가 건남에게 건냈던 그 엑타륵 광물. 다혜는 그것을 손에 쥔채, 페이킨의 말을 들었다. 터벅터벅 저택의 현관문을 연 다혜가 잠깐 뒤돌아 페이킨을 바라본다.
" 할아버지. 괜찮으신 거죠? "
그의 안위를 걱정하는 다혜의 표정.
" 그래. 다혜야. 금방 끝날 거야. 알았지. "
페이킨이 다혜를 안심시키기 위해 미소 지었다. 그 미소는 다혜가 저택으로 들어가자 천천히 식어 갔다.
" 손님이 찾아왔군... 부디 악한 사람이 아니길... "
그는 정원에 놓여있는 워프 홀에 눈을 돌리며 읊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