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코인 후 인생 대박-7화 (7/120)

< 7 : 오랜만이네 >

상식적으로 말단 연구원이 직장 상사인 책임을 갈군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책임급이라면 일반 회사에서는 거의 차장급과 맞먹는 인사였으니까.

하지만 지서현은 가능했다.

지방대 출신이지만 대학시절 전국의 해킹대회란 해킹대회는 싹쓸이한 초천재.

심지어 국제대학생프로그래밍대회에 나가 육지거북이 완전 자동화 사육 스크립트로 그녀의 소속 대학교를 세계 3위로 이끈 이력이 있을 정도였다.

그녀가 지방대를 나온 것은 오로지 수능 공부가 하기 싫어서였다나.

어쨌든 이런 화려한 이력 탓에 대학원을 가지 않았음에도 졸업 전부터 대기업에서 모셔가려고 줄을 섰던 인재였다.

지금은 한솔이노베이션 소프트웨어개발팀에서 개발의 상당 부분을 담당하고 있으니 오죽하랴.

솔직히 정우가 지서현의 사수지만 회사생활 전반에 대한 것일 뿐, 개발에 있어서는 그녀에게 배우는 편이었다.

아니, 개발팀의 전부가 달려들어도 지서현의 프로그래밍 실력에는 못 따라올 정도.

'그때는 저런 천재가 왜 이런 구멍가게에 왔는지 이해를 못했지.'

어쨌든 지서현은 소프트웨어개발팀에 들어오게 되었고, 정우는 그녀의 사수를 맡게 되었다.

그리고 알게 되었다.

지서현의 치명적인 단점을.

'사교성, 사회성이라고는 1도 없어.'

그녀에게는 조직이라는 개념, 윗사람이라는 개념이 아예 없었다. 반말은 기본이요, 출퇴근 시간도 제멋대로였다.

오죽하면 일과 시간에 하는 단순한 일일업무를 자동으로 처리하는 매크로로 만들어놓고 자기 할 일은 다 했다면서 업무시간에 게임을 했겠는가.

'솔직히 그건 퇴사사유감이었지.'

그때 정우가 커버쳐주지 않았다면 잘리고도 남았으리라.

물론 지금의 지서현은 그때와 달리 많이 성장한 모습이다.

"왜 그렇게 쳐다보십니까."

"… 는 취소해야겠네."

"뭘 취소한다는 거죠?"

"아무것도 아니야."

"……?"

커다란 눈을 동그랗게 뜬 채 이상하다는 듯 물끄러미 자신을 바라보는 지서현을 외면한 채 사무실로 입성했다.

무려 3년만에 마주한 사무실은 예전 모습 그대로였다.

일반적인 연구원의 실험실 분위기가 아닌 평범한 사무실의 모습. 그도 그럴 게 소프트웨어개발팀은 연구소 산하이긴 하지만 흔히 생각하는 연구원이라기보다는 연구'개발자' 성향이 더 짙으니까.

주로 데이터를 관리하고 프로그래밍을 하기에 컴퓨터 앞에 주구장창 앉아 코딩을 짜는 게 일상이었으니 당연한 광경이었다.

사무실에 들어서니 따로 점심을 먹고 들어왔는지 손에 커피 한 잔씩 든 엔지니어들이 있었다.

개발팀장 박학기 수석이 그들을 반겼다.

"식사 잘들 하고 왔나."

"예. 요 앞에서 백반 먹었습니다."

"그래? 우린 돈가스 먹었는데."

"요 앞에 새로 생긴 일식돈가스집이요? 거기 가보고 싶었는데."

"거기 특등심 돈가스가 장난이 아니야. 어찌나 부드럽던지…."

"맞아요. 수석님이랑 먹는데 같이 올 걸 하고 책임님이랑 서현 씨도 같이 올 걸, 아쉽더라니까요."

박 팀장의 말을 받는 직원의 눈이 은근히 지서현을 향했다. 누가 봐도 지서현에게 호감을 가진 게 티가 나는 얼굴의 소유자는 정우와 입사 동기인 양규철 선임이다.

'그러고 보니 저 자식도 있구나.'

양규철. 정우보다 한 살 많았던 그는 동기임에도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반말을 하던 무례한 인물로 기억에 남아 있었다. 인성뿐만 아니라 개발실력이 그리 뛰어난 편도 아니라 동기들 사이에서는 평판이 그리 좋지 못했는데, 흔히 말하는 사내 정치질이라고 해야 될까. 항상 술자리에 빠지지 않으며 여러 인맥을 쌓아놓은 탓에 윗선에 상당히 이쁨을 받던 직원이었다.

'근데 은혜를 배신으로 갚았던 놈이지.'

지금은 아직 일어나지 않았지만 양규철은 추후 사내 기밀을 외부에 유출하고 외국으로 도주하여 잠수를 탄다. 그때의 충격으로 회사는 크게 휘청거렸고, 결국 부도를 맞이하며 대한화학에 매각되고 만다.

즉, 양규철은 희대의 쓰레기이자 범죄자였다.

그런데 지금 그 희대의 쓰레기가 사람 좋은 얼굴로 지서현에게 은근한 눈빛을 보내고 있었다.

다행히 그녀는 눈치도 없는 건지 단호박이다.

"전 돈가스가 싫습니다."

"서현 씨는 참 특이하네. 보통 젊은 세대면 돈가스 같은 거 좋아하지 않나."

"섣부른 일반화입니다. 점심시간 끝난 것 같은데 일이나 하시죠."

자연스럽게 점심시간 토킹 타임을 끝내버리는 지서현의 한 마디.

사무실엔 어색한 침묵이 흘렀지만 워낙 그녀의 캐릭터가 독특한 탓에 그러려니 하는 눈치다.

박 팀장이 짝 박수를 쳤다.

"맞네. 언제 점심시간 끝났지? 자자, 일들 합시다."

"팀장님, 안 그래도 CS팀에서 클레임 하나 들어왔다고 지라(JIRA: 프로젝트 트래킹 프로그램) 확인해달랍니다."

"무슨 이슌데?"

"대한에 납품한 전지 코터(Coater: 전극 코팅기계)가 에러가 났다는데, 저희 쪽 스크립트 이슈인 것 같다네요?"

"고장나기도 힘든 전지 코터가 에러가 나다니 희한하네. 뭐 알겠어. 이 선임 들었지? CS쪽 지라는 이 선임이 서현 씨랑 같이 한번 확인해줘."

"옙."

가만히 있던 정우에게 불똥이 튀었다.

회귀 후 첫 일 시작인가.

점심시간은 헐렁했지만 막상 일이 시작되자 사무실에는 분주한 키보드 소리와 업무 협조를 위한 전화 소리만이 오갔다.

정우도 어색하게 자신의 자리로 가서 컴퓨터를 부팅했다.

얼마 만에 마주하는 사내 컴퓨터인가. 가물거리는 기억으로 비번을 찾아서 로그인하여 지라를 열람했다. 그때 옆자리에 있던 부사수 지서현이 훅 고개를 들이밀었다.

"선배님, 제가 도와드릴까요?"

"음? 갑자기 뭘 도와준다는 거야."

"지라 사용하는 거 어려워하셨잖습니까. 제가 알려드리겠습니다."

"아아, 난 또 뭐라고."

지라JIRA와 컨플루언스Confluence. 일명 지라 컨플루언스라 불리는 이 프로그램은 사내에서 진행되는 각종 프로젝트와 업무의 흐름 파악 및 협업을 용이하게 해주는 기업용 프로그램이었다.

쉽게 말해 어떤 이슈가 발생하면 그 이슈를 누가, 언제, 어디서, 어떻게 받아들이고 해석하고 해결하는지 모조리 기록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데, 틀만 보자면 일종의 데이터베이스 구축 및 알고리즘화하는 형태였다.

하지만 기존 주먹구구식 일처리에 익숙해져 있던 정우는 이맘때 새롭게 도입된 지라를 사용하고 적응하는 데 꽤 애를 먹었었다.

지금은 아니지만.

"괜찮아. 나도 이제 쓸 줄 알아."

"예? 어떻게요?"

"그냥… 하다 보니 되더라."

성운이노베이션을 퇴사하고 나서도 데이터베이스 관리자이자 개발자로서 회귀하기 직전까지 계속 일해왔다. 그동안 먹은 짬밥이 얼만데 이까짓 프로그램 사용법 하나 못 익혔겠는가.

정우는 능숙하게 프로젝트를 열람하여 버그 이슈를 확인했다.

"코팅 두께를 0.1로 입력했는데 입력값이 1로 산출되었는지 결과물이 너무 두껍고 엉망이라고? 코딩 오륜가."

"… 벌써 능숙해지셨네요."

모니터를 보는 지서현이 중얼거렸다.

"음? 서현 씨 방금 뭐라고 했어."

"프로그램 습득이 빨라서요. 선배님은 천재인 것 같습니다."

헛소리를 한다. 눈이 몽롱한 걸 보니 식곤증인가.

"이상한 소리 할래? 업무 시작됐으니까 집중하자."

"… 예."

"일단 평소에 멀쩡하던 두께 데이터가 갑자기 오류가 날 일이 없다고 봐. 다른 데이터랑 충돌이 일어난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해?"

"저도 동의합니다. 두께 변수보다는 함수나 동작 스위치 쪽 문제인 것 같네요. 제가 그쪽 살펴보겠습니다."

"오케이."

"…… 찾았습니다."

"엥? 벌써?"

"여기 리턴값 부분이 주석처리가 되어서 코팅 펑션이 루프 적용된 것 같습니다."

"이야- 그걸 벌써 찾았네. 그래서 두께 데이터가 중복 적용되어서 두껍게 나왔나 본데?"

"그런 것 같습니다."

"잠깐만, 근데 동작 스위치 쪽 에러면 두께뿐만 아니라 코터의 모든 공정에서 에러가 났어야 하는 거 아니야? 드라이 챔버 쪽이나 온도 쪽은 이슈 없었잖아."

"그건 코팅 펑션에서 동작스위치로 반환하는 부분에서 에러가 난 거라 다른 기능 쪽은 상관없습니다."

"아, 오케이오케이. 내가 착각했다. 그럼 여기만 수정하면 되겠네."

지서현과 머리를 맞대며 열심히 분석한 끝에 스크립트 에러를 발견하여 클레임 이슈를 해결할 수 있었다. 거의 그녀가 코딩을 수정하고 정우는 거든 것에 불과했지만.

"역시 서현 씨가 짱이야. 순식간에 해결했네."

"다 선배님이 옆에서 도와주신 덕분입니다."

"아이고- 이제는 아부까지. 진짜 만렙 직장인 다 됐다 야."

"칭찬 감사합니다."

"… 너무 진지해서 장난도 못 치겠네. CS건도 끝났는데 커피나 한잔 할까?"

"좋습니다."

한숨 돌릴 여유가 생겨 그들은 커피나 한잔 하러 탕비실로 향했다. 탕비실에 비치된 캡슐커피를 집어들며 정우가 물었다.

"뭐 마실래."

"주스요. 오렌지 주스."

"그래? 나도 주스. 근데 웃기네."

"뭐가 말입니까."

"보통 커피 마시러 온다고 하면 커피를 마셔야 하는데 우리는 주스나 마시잖아. 서현 씨 원래 아메리카노 좋아하지 않았어?"

"그럼 저 커피 주십쇼."

"농담이야 농담. 이거 꼽주는 거 아니다?"

"그건 압니다."

"… 전혀 모르는 눈친데."

눈치 없는 지서현과 티격태격하며 주스 한잔 마시며 머리를 식히던 그때였다.

우르르 일련의 여직원들이 탕비실로 들어왔다.

CS팀 직원들이었다. 그녀들 사이에서 한 여자가 눈에 띄었다.

오늘 함께 이혼 신고를 하고 온 여자… 바로 정우의 아내, 안예슬이었다.

* * *

아무리 강철 같은 멘탈의 소유자인 안예슬이었지만 이혼은 타격이었다.

아무렇지 않은 척하려 했지만 전혀 그럴 수 없었고, 결국 싱숭생숭한 마음은 주변에 표가 났다.

CS팀 동료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쳐다봤다.

"예슬 씨, 오늘 안색이 안 좋네. 무슨 일 있어? 오늘 오전에 반차도 쓰고."

"그게 사실은……."

"우리 이럴 게 아니라 탕비실 가서 커피나 한잔 할까? 지금 들어오는 콜도 없고 한가한 시간대잖아."

"좋아요! 기분전환하러 가요!"

"예슬 씨, 가요가요!"

직장 동료들에게 떠밀리듯이 탕비실로 향했다.

커피 한잔 하면서 수다를 떨면 기분이 좀 풀리겠지.

그때까지만 해도 그렇게 믿었다. 탕비실에 먼저 와 있던 남편, 이정우의 얼굴을 보기 전까지는.

"어머, 정우 씨도 와있었네. 이런 우연이 다 있담."

"텔레파시가 통했나봐. 역시 천상 커플인가 호호호."

아줌마 직원들이 반가운지 꺄르르 떠들어댔지만 정작 당사자들은 웃을 수 없었다.

안예슬은 당장이라도 탕비실을 뛰쳐나가고 싶던 그때, 어색한 얼굴의 정우가 먼저 선수쳤다.

"일이 바빠서요. 수고하십쇼."

마치 도망치듯 떠나는 정우. 멀뚱히 서 있던 지서현은 안예슬에게 꾸벅 고개를 숙이고는 그 뒤를 그림자처럼 뒤따랐다.

그런 둘의 모습을 보던 동료들의 얼굴이 묘해졌다.

쌩하니 나가버리는 정우에게서 무언가 심상치 않은 낌새를 느낀 모양이다.

"뭐야뭐야, 정우 씨 왜 저래."

"엄청 차가워. 예슬 씨, 남편이랑 무슨 일 있었어?"

"그게… 아니에요."

"무슨 일인데 그래. 우리한테만 말해봐."

"… 그게 사실은… 저희 이혼하려구요."

"뭐?"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