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코인 후 인생 대박-8화 (8/120)

< 8 : 그 소문 사실이야? >

"그게 무슨 소리야! 갑자기 이혼은 왜? 지금 농담하는 거지?"

"… 농담 아니에요. 저도 거짓말이었으면 좋겠어요… 흑흑."

안예슬의 눈에서 또르르 한 방울의 눈물이 흘렀다. 항상 언니처럼 푸근히 챙겨주던 김경희 과장이 그런 그녀를 품에 안으며 위로했다.

"예슬 씨, 울지마 울지마."

"흑흑… 죄송해요. 제가 주책을…."

"아니야 아니야. 주책은 무슨. 근데 도대체 무슨 일이야. 왜 갑자기 이혼한다는 건데. 정우 씨랑 크게 싸운 거야?"

드디어 원하던 질문이 나왔다.

안예슬은 슬픈 얼굴로 볼에 흐른 눈물을 닦아냈다.

"사실… 정우 씨가 요새 이상해요."

"어떻게 이상한데? 설마 바람이라도 피운 거야?"

"그건 아닌데… 그냥 이상한 도박 같은 걸 해야 된다고 하나… 아무튼 사람이 너무 변해버렸어요."

"어머머, 도박? 정우 씨가?"

"네… 무슨 코인이랬나… 이상한 거에 빠져가지고 갑자기 집에 있는 물건들을 팔아버린 거 있죠? 티비며 소파며 에어컨이며… 집에 살림살이가 남아나는 게 없어요…."

그 말과 함께 안예슬은 스마트폰을 열어 집을 나오기 전 찍어두었던 휑한 거실 사진을 보여주었다.

사진을 본 동료들의 얼굴엔 경악이 스쳐 갔다.

"여기가 예슬 씨 신혼집이라고? 정우 씨 진짜 미친 거 아니야?"

"근데 코인? 내가 살다살다 고스톱이나 섯다는 들어봤어도 코인이란 건 처음 듣네."

"그 남자들이 한다는 사다리인지 뭔지 그런 불법도박 아니에요?"

"어머! 진짜 그런 건가 봐! 어떡해!"

동료들이 자기 일이라도 되는 것처럼 호들갑을 떨어댔다.

그나마 김경희 과장이 침착하게 물었다. 안예슬은 슬픈 눈으로 한숨을 푹 내쉬었다.

"예슬 씨, 거기에 돈이 얼마나 들어간 거야?"

"잘 모르겠는데 전재산을 꼴아박지 않았을까요. 돈 될만한 건 싹 다 끌어갔으니…."

"세상에, 자기랑 상의도 없이?"

"… 네. 마지막에 투자내역 같은 걸 보여줬는데 거기에 마이너스 98퍼센트라고 적혀있었는데 그걸 보니까 하늘이 노래지고… 손도 막 떨리고… 숨을 제대로 못 쉬겠더라구요 흑흑…."

"헐… 마이너스 98퍼센트? 그건 그냥 돈 날린 거잖아."

"미쳤네… 이정우 씨 그렇게 안 봤는데."

"이정우 씨가 뭐예요. 미친놈이지."

"맞아. 생긴 건 멀쩡해 가지고… 진짜 멀쩡하게 생긴 사람이 더 하다니까."

"그쵸그쵸? 저도 그래서 얼굴값 하는 사람들을 안 만나요."

호빵맨 같이 생긴 여직원 오진희가 신나게 맞장구쳤다. 그녀의 얼굴을 본 동료들이 떨떠름하게 대답했다.

"… 어 그래."

"그래서 예슬 씨, 진짜 이혼하려고?"

"… 사실 오늘 오전에 반차 썼던 게 법원에 이혼 신고하려고 한 거예요."

"어머머, 그럼 벌써 이혼 도장을 찍었단 거야?"

"… 아직은요. 숙려기간인지가 있어서 한 달 뒤에나 마무리 돼요."

"그렇구나…."

CS팀원들 모두가 안예슬의 눈치를 살폈다.

뭐라고 위로를 던져야 할지 모르겠다는 얼굴들이다.

이만하면 됐으려나.

"… 제가 입이 주책이네요. 여러분, 이 얘기 꼭 비밀로 해주세요. 제가 이렇게 부탁드릴게요."

"당연히 비밀로 해야지. 너무 걱정하지 마. 예슬 씨에게 피해 가는 일 없게끔 내가 입단속 잘할게. 자기들 모두 들었지? 이건 우리끼리만 아는 비밀이다?"

"진짜 무덤까지 갖고 갈게요. 걱정 마세요."

"고마워요 모두… 제 얘기 들어주셔서… 덕분에 좀 위로가 되네요."

"뭘요. 같은 직장 동룐데 이럴 때 서로 의지하는 거죠."

"맞아요 예슬 씨. 어려운 일 있으면 저희한테 털어놔요."

"고맙습니다… 근데 저 잠시 화장실 좀 다녀와도 될까요? 눈물 때문에 화장이 너무 번졌을 것 같아서…."

"어어 그래그래. 우린 신경 쓰지 말고 편하게 다녀와."

"그럼…."

안예슬은 처량한 얼굴로 탕비실을 나서며 문을 닫았다. 그리곤 화장실로 향하는 대신 탕비실 문에 귀를 갖다 댔다.

"… 와 그렇게 안 봤는데 이정우 씨 대단하네. 도박해서 전재산을 탕진하기 쉽지가 않은데."

"예슬 씨가 너무 불쌍해요."

"이정우 같은 놈팡이한테 너무 아깝지."

"전 두 사람 진짜 오래갈 줄 알았다니까요."

"다들 그렇게 생각했을걸? 회사에 알려지면 난리나겠다."

"아까 예슬 씨가 말했듯이 이건 우리끼리만 아는 거야. 절대 남들한테 얘기하기 없기다?"

"저어어얼대 얘기 안 해요. 과장님 저희 못 믿으세요? 좀 서운한데."

"에이~ 우리 자기들 믿지. 그냥 사람 일은 모르는 거니까 신신당부하는 거야."

"절대 저희 입에서 새어 나가는 일은 없을 거예요. 뭐… 예슬 씨가 따로 떠벌리지 않는 이상."

"… 그렇지. 예슬 씨 불안해 보이던데 어디 술 마시다가 또 얘기할 수도 있는 거니까."

"그런 경우엔 만약 소문이 퍼져도 저희 책임은 아니죠. 그렇지 않아요?"

"맞아. 사실 예슬 씨 보니까 좀 심신미약이라고 해야 되나… 어디에다가 또 얘기할 것 같은데…."

마치 스스로에게 면죄부를 부여하는 듯한 발언을 들으며 안예슬은 엿듣던 몸을 바로 하고 화장실로 향했다.

'… 여우 같은 년들.'

자기도 여자지만 여자들의 속성을 잘 알았다.

성운이노베이션의 전체 여직원들 중에서 외모만 봤을 때 빠지지 않는 안예슬. 이제 막 신혼살림을 차려 알콩달콩한 신혼을 이어가야 할 인기쟁이 그녀가 남편의 도박 때문에 이혼을 한다?

'무조건 새어나가지.'

평소 시샘하던 그녀의 몰락을 엿보게 된 동료들은 아주 떠벌리지 못해 입이 근질근질할 터.

그러다 한 명이 자기만 알고 있으라면서 얘기를 한다면?

소문이 퍼지는 건 한순간일 테고, 자연스럽게 이정우의 평판도 내려갈 터.

'나는 불쌍한 이혼녀가 되는 거고.'

어차피 이혼녀 낙인이 찍힐 거라면 이런 명분이라도 쥐고 있는 게 나았다.

바람피우다 걸린 이혼녀보다는 백배 천배 나으니까.

동시에 단 1초도 같이 있기 싫은 이정우를 회사에서 내보낼 수 있다는 장점까지 있었다.

일석이조의 상황. 모두 그녀가 의도한 바였다.

탁-

쿠션 화장품의 뚜껑을 닫으며 안예슬은 거울을 바라보았다. 거짓눈물로 번졌던 화장은 어느새 깔끔하게 정돈된 채 아름다움을 자랑했다.

"… 너 나 잘못 건드렸어."

이정우, 반드시 후회하게 해줄게.

* * *

"김 대리, 그 얘기 들었어?"

"무슨 얘기?"

"소프트웨어팀에 이정우 씨 알지? 그 유부남 선임 있잖아."

"아아 그 예쁜 여직원이랑 결혼한 사람? 알지. 근데 왜?"

"글쎄 그 사람 완전 미친놈인가봐. 도박에 중독되어서 전재산 전부 탕진했대."

"진짜로?"

"집도 넘어가고 난리도 아니라는데? 지금 이혼 소송 중이래."

"헐 대박."

발 없는 말이 천 리 간다는 옛말처럼 소문은 순식간에 사내로 퍼졌다.

며칠이 지나기도 전에 성운이노베이션에서 이정우와 안예슬이 이혼 진행 중이라는 걸 모르는 직원이 없을 정도였다.

당사자인 정우 역시 자신을 둘러싼 직원들의 시선이 예전 같지 않음을 느꼈다. 점심을 먹고 사무실로 돌아오는 그 잠깐 사이에도 곳곳에서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려왔으니 오죽하랴.

'예상은 했다만 이 정도로 빠를 줄은 몰랐네.'

필시 안예슬이 자신에 대한 험담을 하고 다니며 소문을 퍼트렸을 터.

이렇게 될 줄은 알았지만 막상 겪으니 기분이 썩 좋지만은 않다.

"이걸 확 들이받아…?"

"뭘 받는다는 거야."

정우가 앉아있는 책상 모니터 쪽으로 불쑥 고개가 들어왔다. 입사동기 양규철 선임이었다.

"아, 양 선임님 언제 왔어요?"

"방금 전에. 근데 그 소문 사실이야?"

"무슨 소문요?"

"이혼한다는 소문 말이야. 진짜야?"

"… 그 얘기 누구한테 들었어요?"

"그냥 지나가다가 들었지. 근데 진짜야? 그럼 도박한다는 소문도… 아니다. 아무튼 괜찮은 거 맞지?"

"그걸 갑자기 와서 물어보는 이유가 뭐죠? 위로라기에는 좀 듣기 그렇습니다만?"

"걱정되어서 물어보는 거야, 걱정돼서. 너무 예민하게 받아들이지 마."

싸우자는 건가.

면전에다가 이혼 얘기를 물어보는 무례함도 그렇고 어이가 없었다.

하지만 그런 정우의 불편함을 아는지 아니면 일부러 모른 척 하는 건지 양규철은 씨익 웃으며 그의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기분도 안 좋을 것 같은데 나중에 따로 술이나 한잔 하자고. 이럴 때 동기들끼리 똘똘 뭉쳐야지."

"… 생각은 해보겠습니다."

"지금은 별로 안 내키나보네. 알겠어. 생각나면 얘기해. 그리고 어깨 좀 펴. 사내가 한 번 갔다 오는 게 뭐 흠이겠어? 전혀 문제 없으니까 너무 의기소침해하지 말라고."

위해주는 척 은근히 꼽을 주는 시답잖은 개소리들을 던지고는 양규철은 자리를 떠나려 했다.

이 자식이 가만히 있으니까 누가 가마니로 보이나.

순간 욱해서 한마디 하려던 그때였다.

"양 선임님. 너무 무례하신 거 아닙니까."

누군가 대신 나서며 한마디 했다. 그는 바로 옆자리에 있던 후배 지서현이었다.

양규철 선임을 바라보는 눈이 매섭다.

평소 조용하던 그녀가 갑자기 쏘아붙이자 그는 당황한 눈치다.

"음? 서현 씨 그게 무슨 말이야. 무례하다니."

"정말 몰라서 하시는 말씀이십니까. 안 그래도 상처 입은 사람한테 와서 들쑤시고 다니는 건 어느나라 예의입니까?"

"아니 난 그게 아니라… 그냥 궁금해서…."

"당장 사과하십쇼."

오! 박력 있어. 잘한다 서현 씨!

아직 선임을 못 달은 말단 연구원에게 한소리 들은 양규철의 얼굴이 굳어졌다.

어린 여자 연구원한테 한소리 들었다는 민망함과 황당함, 내심 마음에 두고 있던 여자가 자신에게 화를 내고 있는 이 상황에 대한 당황스러움 등등 굉장히 복잡 미묘한 얼굴이었다.

"… 뭐?"

"말귀도 막히셨습니까. 이혼하는 불쌍한 사람한테 이혼 얘기 물어본 거 사과하십쇼!"

으, 응? 아니 그걸 대놓고 말하면 어떡해!

이건 '나 이혼했소!' 광고하는 꼴이잖아!

갑작스러운 공개처형에 정우는 식겁했다.

"서현 씨 진정해. 릴렉스! 캄다운!"

"선배님은 빠져 계십쇼! 양 선임님, 왜 말씀이 없으십니까. 아직 이혼 얘기로 무례하게 군 것에 대해 사과 못 들었습니다만? 아, 그리고 도박 얘기 꺼내려던 것도 사과해주시죠!"

이젠 도박 소문까지 까발리냐.

그리고 도박이 아니라 코인이라고…!

'제발 날 주, 죽여줘….'

공개처형에 정우가 속으로 울던 그때.

굳어 있던 양규철의 얼굴이 화난 듯 일그러졌다.

"서현 씨 이제 보니 사람이 좀 웃기네. 사람이 궁금하면 물어볼 수도 있지, 내가 뭘 잘못했다고 사과해야 하는데."

"… 그건 양 선임님이…!"

"아직 내 말 안 끝났어! 내가 자꾸 서현 씨한테 편하게 대해주니까 뭔가 착각하고 있는 것 같은데 여기 직장이다? 조직과 위계질서가 있는 직장이라고. 근데 감히 직장 상사인 선임한테 지적질이야? 지서현 씨 당신 미쳤어? 어! 어딜 말대꾸를 하려고…!"

그 말과 함께 양규철이 검지로 지서현의 머리를 밀어내려 했다. 완전히 아랫사람으로 무시할 때 할법한 모욕적인 행위다.

이건 아니지. 어디 여자한테 손찌검을 하려고.

지서현을 향해 뻗는 팔목을 정우가 붙잡아 막아섰다.

"뭐야!"

"그만합시다, 양 선임님."

"그만하긴. 방금 못 봤어? 말단 연구원 주제에 기어오르는 거."

"봤습니다."

"그치? 솔직히 개발팀 홍일점이라고 오냐오냐하며 봐줬더니 너무 기어오르는데, 이 기회에 버릇 좀 고쳐놔야…."

"근데요 양 선임님. 그거 오지랖입니다."

"… 뭐?"

"버릇을 고쳐놔도 사수인 제가 합니다. 기분 상한 건 알겠는데 양 선임님은 빠져 계세요."

"뭐? 빠져 계세요? 이 선임, 지금 나한테 명령하는 거야?"

양규철의 지서현을 향하던 분노가 이제는 정우에게로 향했다.

"명령은 아닙니다만, 그렇게 들렸다면 제가 사과하겠습니다. 그러니 이쯤 하시죠."

"그렇게 못하겠다면? 그만 안 두면 어쩔 건데. 어쩔 거냐고!"

"반말은 하지 마시고요. 예전부터 말하려다 말았는데 여기 학교가 아니라 직장입니다. 같은 동기면서 나이 한 살 많다고 자꾸 반말하시는데, 예의 좀 갖춰주시죠?"

"뭐야! 이게 말 다 했어!"

금방이라도 달려들 듯 얼굴이 벌게진 양규철. 이러다 주먹다짐까지 이어질 기세였다.

결국 이 수를 써야 하나.

하는 수 없다는 듯 정우는 조용히 양규철에게 다가가 나직이 속삭였다.

"저기요, 양 선임님. 제가 얼마전에 재밌는 소문 하나를 들었는데 궁금하지 않으세요?"

"소문? 갑자기 웬 뚱딴지 같은 소린지 모르겠는데, 이제 와서 어영부영 말돌릴 생각이면 꿈 깨는 게 좋을…."

"그래요? 이상하다, 양 선임님이 요새 저녁마다 엄청 비싸고 맛난 거 얻어먹고 다니신다는 얘기를 들었거든요."

"무슨 개소리야. 내가 뭘 얻어먹고 다닌다고…."

"정말 기억 안 나세요? 그 누구더라, 대한화학 쪽이랑 그렇게 친하시다던데?"

"… 뭐?"

"진짜 부럽습니다. 그런 대기업이랑 인맥도 트시고."

"그, 그게 무슨 소리야! 내, 내가 어어어, 언제!"

대한화학이라는 말에 양규철의 얼굴엔 눈에 띄게 당황한 기색이 스쳐 갔다. 오죽하면 목소리도 떨려 나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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