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 : 진짜 천재 >
사이좋게 책을 읽은 이후부터 유현석은 중력에 이끌리는 위성처럼 지서현의 주변을 맴돌았다.
그녀를 따르는 천재를 보며 정우는 궁금해졌다.
"도대체 어떻게 저 녀석의 마음을 연 거야?"
"현석이 말씀이십니까? 특별한 건 없었습니다. 그냥 프로그래밍 서적 하나가 보이길래 같이 읽어줬을 뿐입니다."
"…… 그게 별일 아니긴. 역시 천재는 통한다는 건가."
"예?"
"아니야 아무것도. 그보다 서현 씨, 나 좀 도와줄래?"
"물론입니다. 말씀하십시오."
"얘한테 나이 좀 물어봐 줘."
유현석이 자신이 찾던 인재인지 확인하기 위해서는 검증이 필요했는데 녀석은 아직도 정우와 눈을 마주치려 들지 않았다.
그래서 정우 대신 지서현이 나섰다.
그녀는 허리를 숙여 키 150cm 남짓한 소년 같은, 하지만 얼핏 보면 다 큰 어른 같기도 한 유현석과 눈을 마주쳤다.
"현석아 몇 살이야?"
"현석이 한국 나이로 22세, 만 나이 21세, 태어난 지 7,712일째."
나이를 들은 정우는 놀랐다. 유현석의 외모는 결코 22살 청년으로 보이진 않았으니까.
"생각보다 나이가 있네? 겉보기에는 중학생 정도로 보였는데."
"현석이 어른이다! 현석이는 성인! 주민등록번호 960202……."
"쓰읍! 그런 거 말하고 다니는 거 아니야!"
정우의 중얼거림에 유현석이 처음으로 격렬하게 반응하자 급히 제지했다.
중학생이란 말에 반발하듯이 대답하는 걸 보니 완전히 사회성이 없는 것 같지는 않다.
뭐 개인정보를 술술 부는 걸 보면 도긴개긴이긴 하지만.
어쨌든 지서현을 통해 대화가 가능하니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기로 했다.
다만 그 전에 지서현에게 비밀유지를 부탁했다.
"혹시 여기서 듣게 되는 정보가 있으면 발설하지 말아줄래? 부탁할게."
"중요한 안건인가 보군요. 사실 여기 올 때부터 눈치채긴 했습니다. 알겠습니다. 필요하시다면 비밀유지각서라도 써드리겠습니다."
"… 그 정도는 아니고. 아무튼 최대한 못 본 척해줘."
신신당부한 정우는 가지고 온 A4뭉치를 꺼내 들었다. 자신의 미래 기억을 되살려 제작한 논문 중 극히 일부의 정보를 담고 있는 정보지로써, 누가 보더라도 전혀 내용을 유추할 수 없어서 보안상 문제가 생길 수 없는 단편적인 정보의 나열이었다.
그래도 혹시 지서현이 관심 두려나 싶어 흘끗 봤지만 그녀는 전혀 흥미가 없는 듯 연구실 주변을 둘러보고 있었다.
… 그냥 마이페이스라 걱정 없겠다.
그래도 보안에 신중을 기하며 지서현에게 부탁했다.
"서현 씨, 현석이한테 이것 좀 봐달라 해줘."
"예. 현석아, 이것 좀 볼래?"
평소 로봇 같았던 지서현이 아닌 부드러운 목소리로 그녀가 주문하자, 유현석의 멍한 초점이 A4뭉치로 향했다.
첫 장에 적혀 있는 것은 논문이라기보다는 그래핀에 대한 정의와 제조공정 및 단점에 대한 간략한 정보였다. 다행히 꽤 흥미가 있는 주제인지 유현석은 소리내어 읽기 시작했다.
"그래핀! 그래핀! 그래핀!"
"아는 내용이니? 그럼 한 번 얘기해…."
"그래핀은 탄소 원자들이 육각형 벌집구조로 서로 결합된 2차원 평판형 물질이며 구리보다 전도도가 100배 더 높아 큰 전류를 흐르게 할 수 있으며 실리콘보다 매우 빠르게 전자를 이동시킬 수 있고 강철에 비해 무려 200배에 달하는 강도를 지녔지만 매우 안정된 구조기에 흑연으로부터 분리하는 것에 어려움이 있어 대량생산이 어렵다는 단점이 있기에 현재는 합성하기 쉬운 산화그래핀이 선호되고 있지만 산화그래핀을 만들기 위한 산화환원과정에서 이산화탄소가 생성되면서 탄소가 뜯겨나가게 되고 이때 생긴 빈 공간으로 인해 전자 이동에 저항이 생겨 전기전도도와 품질이 떨어지는 문제점과……."
유현석의 말투가 갑자기 빨라지며 유창해지더니 마치 래퍼가 빙의한 것처럼 숨도 쉬지 않고 그래핀에 대해 속사포처럼 쏟아내기 시작했다. 기껏 준 정보지를 보지도 않고 줄줄 외워대는 걸 보니 어디선가 본 책의 내용을 떠드는 걸로 보였다.
머릿속에 컴퓨터라도 있는 건지 순간 의심스러울 정도로 엄청난 암기력이었다.
그럴듯한 설명에 정우는 감탄하며 A4용지의 다음 장을 펼쳤다. 거기엔 그가 미래의 기억에서 꺼낸 가져온 논문 '플래시 그래핀Flash Graphene'의 핵심 골자인 '플래시 증발'의 이론이 적혀 있었다.
플래시 그래핀이란 '플래시 증발'이라는 전도성 물질에 전류가 흐를 때 열이 발생하는 원리를 이용하여 탄소함유물질을 3,000도 이상으로 가열하여 극히 짧은 시간에 탄소함유물질을 그래핀으로 바꾸고 나머지 비탄소요소는 기체로 증발시켜 분리하는 기술이었다.
이 기술의 장점은 탄소가 함유된 어떤 물질이든 그래핀으로 바꿀 수 있다는 점이다. 사용되는 원료가 거의 무궁무진했는데 심지어 쓰레기도 탄소만 들어 있으면 원료로 사용 가능했다.
게다가 기존 그래핀제조공정에 비해 극히 적은 비용이 필요하다는 점, 무엇보다 공정이 매우 간단하여 집과 같은 소규모 환경에서도 개인이 그래핀 제조가 가능하다는 점 등이 있었다.
다만 플래시 증발 과정에서 만들어진 그래핀은 순수한 그래핀이 아닌 석탄과 탄화물 같은 여러 불순물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에 정제 과정이 필요한데, 이 과정에서 그래핀이 산화되어 품질이 떨어지는 문제가 있었다.
이를 해결하여 선택적촉매환원기술(Selective Catalytic Reduction, SCR)을 이용해 그래핀에 포함된 산소 같은 불순물자를 제거하여 고품질 그래핀으로 탈바꿈하는 것이 차은숙 교수의 SCR그래핀기술.
정우는 이런 일련의 그래핀제조과정 중에서 그 첫 번째 단초라 할 수 있는 플래시 그래핀의 핵심인 '플래시 증발' 이론을 유현석에게 보여준 것이다.
'근데 이걸 본다고 그래핀 제조로 연관지어 생각할 수 있으려나?'
플래시 증발을 통해 그래핀을 제조한다는 영감을 떠올릴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솔직히 그저 한번 던져본 것에 불과했다. 그는 유현석의 '연구 구현 능력'이 궁금했을 뿐이니까. 자신이 가진 논문을 현실로 구현만 해줄 수 있다면 충분했기에.
그래서 별로 기대하지 않았고, 유현석이 진의를 파악하지 못한다면 플래시 그래핀 공정만 보여줄 생각이었다. 어차피 그 정도는 보여줘도 플래시그래핀 기술의 약점을 개량하여 고품질그래핀으로 탈바꿈하는 SCR그래핀기술이라는 핵심 중의 핵심은 떠올릴 수 없으니까.
하지만 우려와 달리 유현석은 달랐다.
정우가 보여준 키워드를 읽은 그의 눈이 일순간 반짝였다.
"… 플래시 증발은 전도성 물질에 전류를 흘렸을 때 저항에 의해 고온의 열기가 발생하고 이로 인해 물질이 기화하는 것인데 두 전극 사이에 전류가 흐르면 전기분해가 일어나며 분자가 분해되니 탄소화합물에 플래시 가열을 적용한다면 탄소만 분리할 수 있는데 원자상태의 탄소는 사슬을 이루어 잘 결합하는 성질이 있으니 탄소끼리 결합하여 그래핀이 만들어지도…."
무언가 영감을 받은 걸까.
미친놈처럼 중얼거리던 유현석은 누가 말릴 새도 없이 갑자기 연구실을 헤집기 시작했다.
"… 탄소화합물탄소화합물탄소화합물탄소화합물…."
끊임없이 중얼거리며 유현석은 쓰레기더미에 가까웠던 연구실을 헤집었다.
그러다 소년의 시선이 한곳에 쏠렸다.
바로 정우가 가져온 아이언맨 가면이었다.
"플라스틱!"
소리친 유현석은 가면을 집어들더니 냅다 어디론가 뛰기 시작했다.
"어어! 같이 가!"
또 뭔가 떠오른 건지 후다닥 연구실을 나선 유현석은 다른 연구실로 가서 다짜고짜 변압기 같이 생긴 것을 찾더니 그 자리에서 뚝딱뚝딱 무언가를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투명한 강화유리 보호케이스 안에 자기가 만든 것들을 차곡차곡 연결하는 유현석.
허겁지겁 그를 따라온 정우가 연구원에게 물었다.
"현석이가 지금 뭘 하는 겁니까?"
"글쎄요? 전극을 연결하고 있는데… 저 가면에 전류를 흘려보내려는 건가?"
연구원도 모르겠다는 눈치였다.
어쨌든 무언가 하고 있다는 것.
정우는 지서현과 함께 유현석이 하는 걸 지켜보았다.
지루한 기다림의 시간.
연구실 창밖의 노을이 저물고 어둑어둑해지던 무렵 마침내 모든 공정이 끝났다.
압력솥 같은 것도 연결하고 플라스크 같은 것도 연결하자 모든 장치의 배치가 끝났다. 그러자 유현석은 전극 사이에 유리상자에 든 아이언맨가면을 고정시키더니 안전을 확보하려는 듯 보호케이스를 닫아 실험장치를 밀폐시키고는 변압기의 전원을 가동했다.
치지직-
1초도 안 되는 순간 스파크가 일더니 자욱한 연기가 가면에서 피어올랐다. 하지만 한눈에 봐도 유독성으로 보이는 연기는 유현석이 설치한 실린더를 통해 모여들어 깔끔하게 정리되었다.
"… 끝난 거야?"
"그런 것 같습니다."
두 사람이 뭐가 이루어졌는지 알 수 없을 때, 보호케이스를 오픈한 유현석은 가면이 들어있었던 유리상자를 꺼냈다.
가면은 증발해 사라지고 까맣게 그을음과 재만 남아버린 유리상자.
그 안에 담긴 그을음인지 재인지 모를 것들을 긁어낸 소년은 그걸 구리기판 위에 배치하더니 무언가 처리를 하고는 시편을 만들어 광학현미경으로 확인하기 시작했다.
마이크로미터단위의 작은 그래핀을 광학현미경으로 볼 수 있나 싶을 때 유현석이 소리쳤다.
"완성!"
혼자 신나서 제자리에서 방방 뛰는 유현석을 보며 정우도 재빨리 현미경을 보았다.
거기에는 환공포증이 생길 것 같은 빽빽한 벌집모양의 구조물이 가득 담겨 있었다.
"… 이걸 진짜 만들었다고?"
솔직히 기대하긴 했지만 그리 큰 기대는 아니었다. 일개 대학생이, 아니 대학생도 아닌 자폐증 환자가 혼자서 만들 수 있을 가능성은 적었으니까.
하지만 유현석은 혼자서, 그것도 연구실의 조잡한 실험도구만으로 완성한 것이다.
"… 진짜 천재구나."
그때 옆에서 함께 지켜보던 지서현이 나섰다. 지루할 텐데도 묵묵히 자리를 지켰던 그녀는 할 말이 많아 보였다.
"선배님, 지금 현석이가 뭘 만든 건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한번 볼래?"
"예…… 저한테는 육각형 구조물이 보이는데, 이거 혹시 그래핀인가요?"
"맞아."
"그럼 방금 그래핀을 대량합성한 겁니까?"
"… 그런 것 같아."
"… 세상에."
지서현도 그래핀의 가치를 아는지 상당히 놀란 눈치였다.
"어떻게 이게 가능하죠? 예전에 인터넷 기사로 보니까 그 스카치테이프로 일일이 떼어내서 만들어야 한다고 들었습니다만?"
"그건 엄청 옛날이고, 지금은 이런저런 대량생산기술이 개발된 상태긴 한데… 아무튼 자세한 건 나도 몰라. 그냥… 만들어냈어. 쟤는 진짜 천재야."
"솔직히 저는 선배님이 더 천재인 것 같습니다."
"뭐? 무슨 소리야."
갑자기 뜬금없는 칭찬에 정우가 의아해했다.
지서현의 초롱초롱한 눈이 그를 바라보았다.
"아까 보니까 현석이한테 뭘 보여주시던데요? 선배님이 현석이한테 아이디어를 주신 것 같던데…."
"아 그거…… 별 거 아니었어."
"별일 아닌 게 아닌 것 같습니다만. 저한테 비밀 지켜달라고 그렇게 신신당부하시지 않았습니까."
"……."
평소에 맹하더니 이럴 때는 꼭 쓸데없이 예리하다.
정우가 대답하기 곤란하다는 걸 눈치챘는지 지서현이 재빨리 말을 이었다.
"무슨 상황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일단 모른 척해드리겠습니다."
"… 고맙다."
"고마워하시지 않아도 됩니다."
그녀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떠올랐다.
"저희 둘만의 비밀이 생겼네요."
* * *
실험이 끝나고 뒤늦게 차은숙 교수와 미팅 중이었다는 걸 깨달았다.
부랴부랴 교수실로 가보니 문이 굳게 잠겨 있었다. 과사무실로 가니 막 퇴근하려던 조교와 맞닥뜨렸다.
"차 교수님 가셨나요?"
"교수님이요? 네. 진즉에 퇴근하셨어요. 갑자기 일이 생기셨다고."
"아…."
하지만 이미 그녀는 퇴근한 뒤였다. 보통 미팅 중에 상대방에게 언질도 없이 그냥 가버리나?
"저한테 따로 남기신 말씀 없으셨나요?"
"네 없으셨어요."
"이상하네… 혹시 제가 무슨 실수라도 했습니까?"
"음… 그건 잘 모르겠고 저한테 외부인 주차증 끊어준 거 확인해달라고 하셔서 그쪽 주차증 알려드리긴 했어요. 그거 외엔 별일 없었는데…."
"제 주차증을요?"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어차피 목적은 달성했고 더 이상 볼일은 없었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뭐 알겠습니다. 아참, 현석이는 집에 안 가나요?"
"현석이요? 혼자서는 당연히 못 가죠. 이따 보호자 분이 오실 거예요."
"보호자요?"
생각지 못했던 문제였다.
그러고 보니 사회생활이 어려워 보이는 유현석에게 보호자가 없는 게 더 이상하다.
"혹시 그분 언제 오시나요?"
"저녁때쯤 오시곤 하니까… 아, 마침 오시네요."
조교가 뒤를 보며 답한다. 정우도 고개를 돌려 보호자가 누군지 확인했다.
피곤에 찌든 후줄근한 옷차림의 그, 아니 그녀는 유현석의 어머니로 보였다.
힘없는 미소로 다가온 그녀가 조교에게 다가와 허리를 푹 숙였다.
"안녕하세요 조교님. 오늘도 우리 현석이 잘 봐주셔서 감사해요."
"아니에요 어머님. 타이밍이 딱 좋게 잘 오셨어요. 여기 이분이 어머님 뵙고 싶어 했거든요."
"이분이요?"
의아해하는 유현석의 어머니 앞에 정우가 나섰다.
"안녕하세요, 이정우라고 합니다. 현석 군 어머님 되시나요?"
"예… 그런데 무슨 일로…? 혹시 우리 현석이가 사고라도 친 건가요?"
겁을 먹은 그녀를 보며 급히 손사래를 쳤다.
"아뇨아뇨 그런 건 아니구요. 일단 카페라도 가서 얘기하시죠."
"카페요? 카페는 커피가 비싸서 좀…."
"커피는 제가 살 테니 부담가지지 마세요. 그럼 제 차로 가실까요?"
연구실에서 놀고 있던 유현석을 데리고 그들은 건물을 나섰다. 외부주차장에 주차해놓은 차를 타고 빠져나가는 길, 주차정산을 하는 곳에서 과사무실에서 받은 외부인용 주차증을 내밀던 정우는 멈칫했다.
"… 설마?"
외부인용 주차증에 남겨진 차량 번호. 만약 차은숙 교수가 이걸 통해서 정우의 차를 확인해봤다면? 정우의 애마인 구형 그랜저를 보고 실망했다면?
"너무 억측인가."
"뭐가 말씀이십니까?"
"아무것도 아니야."
대충 얼버무리며 정우는 카페로 향했다.
* * *
저녁을 먹기엔 너무 늦은 시간대였지만 다들 하루종일 쫄딱 굶었기에 커피 외에도 잔뜩 시켰다.
조각 케익이 맛있는지 정신없이 먹는 유현석을 두고 보호자에게 본론을 꺼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유현석을 고용하고 싶습니다."
정우가 원하는 것은 유현석이었다.
키워드만 보고도 핵심 연구를 단번에 파악할 수 있는 능력자.
혼자서 정우가 모르는 연구를 구현할 수 있는 능력자.
유현석만 있으면 정우가 떠올린 미래의 논문들을 현실로 구현할 수 있다는 의미였고, 굳이 차은숙 교수의 도움 없이 정우 혼자서도 특허를 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의 요청에 유현석의 어머니 고숙자는 의아한 얼굴이었다.
"… 고용한다고요? 갑자기 무슨…."
"예. 현석이와 함께 기술을 개발하려고 합니다. 현석 군이 천재이신 거 아시죠?"
"우리 현석이가 천재라구요? 에이, 무슨 소리예요."
금시초문인 듯 의아해하는 고숙자를 보며 정우는 이상함을 느꼈다.
"현석이가 천재가 아니란 말입니까?"
"말씀은 감사합니다만 저도 저희 아이가 천재면 좋겠어요. 하지만 현석이는 코텍 학생도 아닌걸요. 그저 고마우신 우리 차 교수님께서 도움을 주셔서 낮에 제가 일하는 동안 거기서 지낼 수 있는 거지, 천재라니… 가당치도 않아요."
"… 가당치 않다니요. 겨우 21살인데 한국공과대학교에서 연구하는 현석이가 천재가 아니면 뭐겠습니까."
"연구요? 저희 아이가 연구를 하나요?"
"모르셨어요?"
"네 전혀요."
평행선을 달리는 대화에서 그는 정말로 유현석의 어머니가 아무것도 모르고 있음을 깨달았다.
옆에 있던 지서현이 정우를 쳐다봤다.
"… 차은숙 교수가 좀 이상한 것 같습니다."
"내 생각에도 일부러 숨긴 것 같아."
그 이유가 뭘까.
짚이는 바가 있긴 했다.
"서현 씨 한번 내 얘기 들어볼래?"
"말씀하십쇼."
"램프의 요정 지니가 있어. 이 지니는 특이하게도 소원을 빌지 않아도 알아서 성과, 아니 보물들을 쏟아내. 그런데 그 소유권을 주장하지도 않아. 땅에 떨어진 눈먼 보물이랄까. 서현 씨라면 그 보물을 어떡할 것 같아?"
"… 가져가지 않을까요?"
"맞아. 지금 현석이의 경우지."
대학생도 아니고 그 어느 곳에도 적을 두지 않은 일반인 유현석. 그런데 그 연구실력과 지식만큼은 진짜였고 손만 대면 논문으로 내도 될 성과가 튀어나온다.
그런데 이 아이는 자폐아다. 소유권이라는 것에 대한 개념이 모호한 자폐아. 당장 사회생활도 힘든 그의 연구결과를 과연 두고만 봤을까?
"… 이제야 좀 이해가 되네."
주말 출근이 당연한 건 아니지만 그리 열성적인 연구자 같지 않던 차은숙 교수가 어떻게 그토록 화려한 수상이력을 보유하고 있는지 설명이 되었다.
그녀는 아마도 유현석의 연구성과를 가로채고 있었던 것이다.
"혹시 차은숙 교수가 현석이를 맡아주신 게 얼마나 된 거죠?"
"저희 아이가 중학생 때부터였으니까… 한 7~8년 된 것 같아요."
"시기적으로도 딱 맞고… 이제 보니 나쁜 사람이었네."
"나쁜 사람이요? 누가요?"
"차은숙 교수 말하는 겁니다."
"차 교수님이 나쁜 사람이라뇨. 함부로 말씀하시지 마세요!"
유현석 어머니의 표정이 싸늘해졌다. 아마도 오랜 시간 도움을 받아왔다 여겼을 테니 당연한 반응이다.
정우는 그녀를 설득하기 시작했다.
"어머님, 차은숙 교수는 아마도 현석이의 연구성과를 강탈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무슨 말도 안 되는 얘기를 하시는 거예요! 저희 교수님에 대해 함부로 말하지 마세요! 그리고 우리 아이가 연구는 무슨…!"
"충분히 이해합니다. 배신감도 들 거고, 믿고 싶지도 않으시겠죠. 하지만 차은숙 교수가 왜 유현석 군을 돌봐줬는지 궁금하지 않으세요? 솔직히 차 교수 입장에서는 아무런 이득도 없이 손해 보는 일이잖아요. 현석이를 통제하는 게 보통 일도 아니구요."
"그건…… 증거 있어요?"
"물증을 말씀하시는 거라면 아직 없습니다. 그러나 답이 나와 있잖아요."
정우가 조각케익을 먹고 배불렀는지 꾸벅꾸벅 졸고 있는 유현석을 가리켰다.
"현석이는 천재입니다. 숨기려 해도 숨길 수 없는 천재요."
"……."
"그런 천재가 새장에 갇혀 그 재능을 펼쳐보지도 못하고 있습니다. 어머님께서는 아드님의 재능을 세상에 보여주고 싶지 않으세요?"
"… 우리 아이에게 정말 그런 재능이 있을까요?"
"설사 없더라도 어머님께서는 믿어주셔야죠. 현석이의 어머니잖아요. 어머님이 아니면 누가 믿어주겠습니까. 아, 물론 저는 믿습니다만."
"아……."
"제 마음이 급하긴 하지만 지금 당장 결정해달라는 건 아닙니다. 충분히 심사숙고해보시고 연락주세요. 그리고 일하느라 힘드시겠지만 아이에게 관심을 가져보시면 좋겠습니다."
"……."
"그럼. 연락 기다리겠습니다."
대답은 기다리지 않고 일어났다. 그렇게 떠나려던 그때, 뒤에서 유현석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그 개발한다는 기술이라는 게 뭔가요?"
설득에 조금은 흔들린 건지 그녀가 물어왔다.
대답 대신 정우가 미소와 함께 품에서 무언가를 꺼내들어 내밀었다.
유현석이 오늘 만들어낸 그래핀이 담긴 시편이었다.
"이게 뭔가요?"
"그래핀. 세상을 뒤흔들 혁신입니다."
* * *
고민해보고 나중에 연락주겠다고 하며 유현석의 어머니는 아들을 데리고 집으로 돌아갔다.
겨우 볼일을 마친 정우와 지서현은 그제야 한숨 돌릴 수 있었다.
늦은 밤 서울로 향하는 고속도로.
차창 밖으로 비치는 어둑한 밤길을 보던 지서현이 문득 입을 열었다.
"정말 차은숙 교수가 나쁜 사람이었을까요?"
"모르지. 모든 건 정황상 추측일 뿐 우리가 오해한 걸 수도 있고. 그런데 그건 왜? 아직도 신경 쓰여?"
"네. 아주머니한테 잘한 건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 말에 운전하던 정우가 피식 웃었다.
"사실 차은숙 교수가 나쁜 사람인지는 조금도 중요치 않아."
"네?"
"본질은 유현석의 입장에서 생각해야 한다는 거야. 나와 차은숙 교수. 둘 중에 누가 더 현석이 입장에서 이득이 될까. 단순히 돌봐주며 성과만 쪽쪽 빼먹는 사람. 고용하고 월급을 주며 성과에 따라 인센티브를 주는 사람. 왠지 나는 내가 차은숙 교수보다 현석이를 훨씬 더 잘 이끌어줄 수 있을 것 같다는 자신감이 들거든."
"아…!"
"만약 현석이가 나와 함께 한다면 날개를 달게 될 거야. 물론 가장 중요한 건 현석이의 결정이겠지만."
차은숙 교수와 자신의 공통점은 유현석이라는 인재의 가치를 알아보았다는 거다.
다만 차 교수는 유현석을 자신의 새장에 가둔 채 방치 중이고, 정우는 그를 세상 밖으로 꺼내려 하는 게 다른 점이랄까.
'시너지는 충분해.'
유현석의 천재성과 자신이 가진 미래 지식, 그리고 일 년 뒤 얼마가 될지 예상이 되지 않는 자금력까지.
정우는 천재에게 날개를 달아줄 자신이 있었고, 반대로 유현석 역시 자신에게 큰 도움이 되리라.
"… 연락이 반드시 오면 좋겠습니다."
고개를 끄덕이는 지서현. 그녀는 자신이 유현석을 고용한다는 데에는 궁금한 점이 없어 보였다.
일개 직원이 자기 직원을 고용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인데 궁금하지도 않나?
의문이 들었지만 굳이 물어보지는 않았다.
"나도 연락 오면 좋겠다. 그나저나 강행군에 끼어들게 해서 미안하네. 피곤하지?"
"아닙니다. 선배님 피곤하십니까?"
"조금?"
"그럼 근처에서 쉬었다 가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이 여자가 지금 뭐라는 거야.
"뭐? 서현 씨, 그거 되게 위험한 발언인 거 알지?"
"예? 위험하다니요. 제 신변을 지키기 위해서입니다. 졸음운전은 위험합니다."
"… 아. 졸릴 정도는 아니니까 안심해. 혹시 내 운전스타일이 불안해?"
"아니요."
"졸리면 자도 돼. 어차피 운전은 내가 하는데 서현 씨까지 고생시킬 수야 없지."
"아닙니다. 선배님이 운전하시는데 후배가 되어서 잘 수는 없습니다."
"키야- 내가 진짜 후배 하나는 잘 뒀다."
"과찬이십니다."
호기롭게 답한 것과 달리 서울에 도착했을 때 지서현은 깊은 잠에 빠진 뒤였다.
침까지 흘리며 곤히 잠든 그녀를 깨웠다.
"서현 씨 다 왔어."
"… 츄릅… 저 안 졸았습니다!"
"그래그래, 서현 씨 안 졸았어. 그니까 집에 들어가서 자."
"… 죄송합니다."
"죄송할 게 뭐 있어. 서현 씨 때문에 큰 도움이 되면 되었지 방해 안 되었으니까 걱정 마."
"알겠습니다. 선배님, 조심히 들어가십쇼."
"그래. API는 부탁할게."
"맡겨만 주세요."
지서현을 들여보내고 정우도 드디어 집으로 돌아왔다.
"… 주말 진짜 알차게 보냈다."
대전까지 내려가서 한국공과대학교 교수와 미팅하고 천재를 만나 그래핀 샘플도 만들고 거기에 특허 제안까지.
누가 들으면 거짓말이라고 할 정도로 꽉꽉 압축된 하루를 보낸 정우는 피곤함에 침대에 몸을 던졌다.
그래서 그는 미처 확인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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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석 어머니 010-XXXX-XXXX]
명함 보고 문자드려요
한번 믿어보고 싶은대
제가 어떳게 하면 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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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이 품 안으로 날아들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