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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인 후 인생 대박-24화 (24/120)

< 24 : 잠깐 얘기 좀 해 >

그래핀이라니.

흑연가공공장을 운영했던 공춘수로서는 모를 수가 없다.

"그게 설비가 한두 푼이 드는 게 아니지 않습니까? 제가 알기로는 3천 도가 넘는 초고온으로 가열해서 흑연증기를 만들고 해야 돼서 용광로 같은 것도 만들어야 한다고 들었는데… 그러려면 설비비용이 장난 아니게 깨질 겁니다."

"그건 화학증기 증착식 그래핀 제조 방법이구요. 저희가 만드는 그래핀은 전혀 다른 원리와 방식이라 상관없습니다."

"… 예?"

"보시면 압니다. 일단 기존 설비는 다 폐기해주시고, 제가 필요한 설비들 대략적으로 말씀드릴 건데 조사해서 발주 좀 넣어주세요. 비용은 걱정하지 마시구요. 아, 제조설비 구하는 업체는 아시죠?"

"몇몇 군데 알긴 합니다만, 거기서 못 구하면 발로 뛰면서 알아봐야죠. 그러려고 있는 직원 아닙니까."

"하하, 공 사장님이 계시니 듬직하네요. 믿겠습니다. 그리고 혹시 못 구하시면 말씀하세요. 직접 설계해달라고 의뢰를 넣으면 되니까요."

성운이노베이션이 배터리 자동화설비 전문이긴 하지만 기업의 자동화설비 설계 및 제조 의뢰도 받고 있었다. 정 뭐하면 성운이노베이션 같은 설비 제조업체에 의뢰를 하면 될 터.

'뭔가 대운이 함께 하는 기분인데? 일이 잘 풀리네.'

확실히 직원을 뽑으니 확실히 일이 수월해졌다. 공장 등록이나 공장의 대표자와 업종 변경을 신청하는 등 굵직굵직한 업무는 자신이 확인해야겠지만, 자잘한 일들을 맡아주는 것만으로도 숨통이 트였다. 기존에 혼자서 모든 걸 해결하려고 했던 자신이 미련하다고 여겨질 정도로 일은 착착 진행되어갔다.

왠지 네뷸라 코퍼레이션을 세우고 모든 게 잘 풀리는 것 같아 만족스러웠다.

* * *

법인도 세웠고, 공장도 세웠으니 더 이상 회사를 다닐 이유가 없어졌다.

정우는 때가 왔음을 느꼈다.

"팀장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음? 무슨 얘기?"

"퇴사하겠습니다."

"… 뭐?"

그가 내민 사직서를 보며 개발팀장이 당황했다.

"… 잠깐 회의실로 가서 얘기하자고."

정우의 마음을 돌리려는 것이지 급히 면담을 진행했다.

"이 선임, 요새 사무실도 어수선한데 갑자기 이러는 이유가 뭐야? 왜 그만두려는 건데?"

"사업을 하려구요."

"… 사업?"

사업이란 말에 박학기 팀장이 헛웃음을 흘렸다.

"아니 갑자기 웬 사업이야. 농담하는 거지?"

"농담 아닙니다. 저 지금 아주 진지하고 오래전부터 고민해왔던 결정이에요. 그러니 사표 수리 부탁드립니다."

정우의 단호한 의지가 전해진 걸까.

박 팀장은 설득이 불가능하다고 깨달았는지 빠르게 포기하고 수긍했다.

"후… 알겠어. 무슨 사업인지는 모르겠지만 본인이 원한다는 데 내가 막을 수는 없지. 그런데 좀 아쉽다. 요새 전산팀이랑 보안팀도 해체되고, 우리도 양규철이 고놈 한 명 빠지는 바람에 개발자도 부족한 판국이잖아. 정우 씨도 잘 알면서 솔직히 좀 그렇네."

하지만 마음에 안 든다는 듯 불만을 토로하는 박 팀장.

그 심정을 모르는 바는 아니었다.

"이해합니다. 회사와 개발팀 입장에서는 지금 떠나는 제가 원수가 될 거라는 걸요. 하지만 저는 제 인생이 가장 중요합니다."

개발팀의 사정은 알지만, 그렇다고 자신의 인생을 허비하면서까지 개발팀에 남아서 돕고 싶지는 않았다.

예전처럼 마음 약한 호구는 이제 없었다.

똑 부러지게 자기 의사를 피력하는 정우를 보며 박학기 팀장이 한숨을 내쉬었다.

"이미 마음을 굳혔구만. 내가 설득한다고 해서 굳이 달라지지 않을 거고… 알겠어. 사표 수리해줄게. 대신 인수인계 필요한 거 알지?"

"예."

"인수인계 기간은 한 달로 잡자고."

"알겠습니다."

인수인계 기간은 보통 한 달 정도이기에 적당했다. 정우도 그 정도의 시간이 필요함을 인지하고 있었기에 박 팀장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렇게 회의실을 나서고.

퇴사 통보를 들은 개발팀의 이목이 정우에게 쏠렸다.

강성열 책임이 놀랐는지 메신저에 불이 났다.

──[설비시스템설계&개발팀 직원방]──

[강성열(책임)]: 이 선임 퇴사한다고?

[강성열(책임)]: 진짜야?

[이정우(선임)]: 네, 그렇게 되었습니다

[이정우(선임)]: 미리 말씀 못 드려 죄송하네요

[강성열(책임)]: 아이고…

[강성열(책임)]: 우리 탕비실 가서 커피나 한잔 할까?

[이정우(선임)]: 좋습니다

[지서현(연구원)]: 저도 가도 되겠습니까?

[강성열(책임)]: 오세요 지용 씨도 와요

[고지용(연구원)]: 넵넵!

─────────

강성열 책임을 따라 탕비실로 향했다. 정우 쪽에 있던 지서현과 고지용 연구원도 함께 뒤따랐다.

탕비실에 도착하자 강 책임이 씨익 웃었다.

"난 정우 씨가 왜 퇴사하는지 이해해."

"네?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그거잖아 그거."

강 책임이 지서현과 고지용의 눈치를 보더니 정우에게 다가와 귀에 대고 속닥거렸다.

"코인 대박 난 것 때문에 퇴사하는 거지?"

순간 정우는 당황했다.

"… 뭐 그것도 있죠. 어떻게 아셨어요?"

"에이. 얼마 전에 코인 올라서 실검에 뜨고 그랬는데, 정우 씨는 몇 달 전에 전재산을 코인에 박았다며. 얼마 전에도 수익 물어보니까 좀 벌었다면서 웃기만 하고. 척하면 척이지."

"음… 비슷합니다."

코인이 올라서도 맞지만, 사업을 본격적으로 하기 위해 퇴사하는 게 주된 이유였으니까.

강 책임이 그러면 그렇지라는 표정을 지었다.

"와… 대체 얼마를 벌었길래 퇴사하는 거야? 우리 개발자들 연봉 생각하면 고작 1~2억 수준은 아닐 거고. 최소 로또 정도는 되려나?"

"하하, 노코멘트하겠습니다."

"알았어, 알았어. 굳이 말해주지는 않아도 돼. 그냥 부러워서 그래. 하- 나도 마누라랑 자식 새끼들 없으면 코인 같은 거 몰빵해보고 할 텐데. 그런데 이제는 도박하기엔 너무 책임져야 할 게 많아서 원. 난 말야. 이혼도 그렇고 코인도 그렇고, 하고 싶은 걸 해버리는 정우 씨가 부럽다 부러워. 그 결단력이라든지, 실행력이라든지 젊음이라든지 그런 점들이 너무 부럽다."

"강 책임님도 충분히 젊으신데요 뭐. 누가 들으면 40대 넘은 줄 알겠어요."

"서른아홉이면 끝물이지. 아홉수라서 떨어지는 낙엽도 조심해야 할 판국인데 뭘. 아무튼 나는 죽어도 그런 거에 전재산 못 넣을 것 같은데, 정우 씨 진짜 야수의 심장 아니야?"

"하하하, 그러게요."

정우는 웃었다.

강성열 책임은 그를 비꼬는 게 아니었다. 그저 정말 순수하게 감탄하고 있었다. 그의 눈에서 부러움이 뚝뚝 묻어나왔다.

하지만 그는 알까. 지금이라도 코인에 몰빵을 한다면 인생 역전이 가능하다는 것을.

이제 겨우 3월 말일 뿐, 진짜 코인의 광기는 시작되지도 않았다는 것을.

그래서 정우는 그를 돕고 싶었다.

항상 자신의 편에서 응원해주던 마음씨 좋은 사수를 돕고 싶은 건 어찌 보면 당연했다.

"강 책임님. 사실 지금도 안 늦었습니다."

"안 늦었다고?"

"네. 지금이라도 코인에 돈 묻어두세요. 그리고 2018년 1월 초에 전부 다 파십쇼. 그때 코인시장은 최고점을 찍을 겁니다. 지금의 상승은 우습지도 않을 엄청난 버블이 낄 거예요."

"그래? 무슨 근거로 그렇게 얘기하는 거야?"

"아직 개미 투자자들의 유입은 시작되지도 않았거든요. 본격적으로 개미들이 관심을 가지는 그 순간, 기를 모으던 코인 시장은 폭발하듯이 성장할 겁니다. 그 열기의 끄트머리를 저는 2017년 말, 2018년 초로 보는 거구요."

투자의 신이라도 빙의한 듯 설명했다. 아니 설명이 아닌 그저 미래를 읊은 것에 불과하다.

하지만 강성열 책임은 믿지 못하는 눈치다.

"흠… 논거가 좀 빈약한 거 같은데."

"아무튼 제 생각일 뿐이니 참고만 하세요. 투자의 책임은 강 책임님께 있으니까요. 다만, 저는 2018년 1월 초까지 코인 계속 들고 갈 겁니다."

"음…."

계속 들고 간다는 정우의 말에 강성열 책임이 고민했다.

"… 뭐 알겠어. 코인으로 돈 번 이 선임 말이니 나중에 코인 투자하게 되면 참고는 할게."

"예. 그거면 충분합니다."

강 책임이 코인에 투자할지 안 할지는 모른다.

하지만 이렇게 언질이라도 해놔야 도움이 되겠지.

물론 옆에서 보면 그의 조언은 사짜 냄새가 강해서 믿을지는 미지수였다.

하지만 미래라는 것은 아무도 모르는 거니까.

그저 정우는 강성열 책임이 자신의 말을 듣고 코인으로 자신이 정말 꿈꾸던 은퇴를 이루기를 바랄 뿐이었다.

그렇게 정우가 강성열과 대화를 나누고 있던 그때였다.

묵묵히 듣고 있던 지서현이 입을 열었다.

"선배님 퇴사하신다니 정말 아쉽습니다."

"아쉬운 거 맞아? 영혼이 안 담겨 있는데."

"정말입니다. 그보다 퇴사하시기 전에 저희 둘 사이에 일은 마무리 지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응?"

지서현의 말에 모두가 그를 쳐다봤다.

당황스럽다.

우리 둘 사이의 일이라고?

* * *

정우의 퇴사 소식은 굉장히 빨리 소문이 퍼졌다.

보통 한달에도 몇 번씩 사람들이 나갔다가 들어오곤 하는 회사에서 정우의 퇴사 소식이 이슈가 된 이유는 하나였다.

바로 비트코인으로 큰돈을 벌었을지도 모른다는 추측 때문이었다.

"그 얘기 들었어요? 그 개발팀에 이혼남 있잖아? 코인인지 뭔지 대박나서 회사 그만둔다더라."

"코인이 뭐예요?"

"비트코인이라고 뭐 다단계 사기 같은 건가 봐. 아무튼 그걸로 돈 많이 벌었나 보더라고."

"정말요? 근데 그때 무슨 도박한다고 하지 않았어요?"

"그게 코인이었던 거지. 이번에 무슨 실검 나왔잖아. 코인으로 돈 엄청 번 사람."

"아… 진짜 대박이다. 사람 일이란 게 정말 어떻게 될지 모르는 거네요."

점심시간 CS팀원들과 라멘집을 들렀던 안예슬은 옆테이블에서 같은 회사를 다니는 직원들이 수군거리는 이야기를 듣고는 순간 자신이 잘못 들었나 싶었다.

개발팀에서 이혼한 남자. 그리고 도박을 했었던 사람.

자신의 남편이었던 이정우를 얘기하는 게 분명했으니까.

그런데 그놈이 돈을 벌었다고?

'말도 안 돼.'

헛소문이라 여겼다. 하지만 CS팀원들은 그 얘기를 듣고 오두방정을 떨어댔다.

"예슬 씨, 저 얘기 예슬 씨 전남편 얘기 아니야? 이정우 선임 말야."

"… 글쎄요."

"그때 코인에 전재산 털어 넣었다고 하지 않았어? 그게 이혼사유라며."

"대박대박! 진짜 이정우 씨 코인으로 대박난 거 아니야? 진짜면 완전 대박사건인데!"

호들갑을 떠는 CS팀원들.

헛소문으로 치부하려 했던 안예슬의 마음 속에도 무언가 불길함이 떠올랐다.

이제 자기와는 아무 상관도 없는 남이지만, 한때는 남편이었던 남자가 잘됐다는 얘기를 들으니 위장이 뒤틀리는 기분이다.

소문이 사실일까?

입맛이 뚝 떨어진 안예슬은 밥을 먹다 말고 일어났다.

"… 저 먼저 일어날게요."

"응? 예슬 씨 겨우 한 입만 먹고 어딜 가려고?"

"속이 안 좋아서요."

"아이고- 체했구나. 그럼 어쩔 수 없지. 근데 이거 아까워서 어째. 라멘 남은 거 이거 내가 먹어도 되지?"

"네, 팀장님 많이 드세요."

"알았어. 예슬 씨 무리하지 말고 쉬어~"

"네."

돼지 같은 CS팀장을 뒤로 하고 사무실로 향했다.

회사로 가는 안예슬의 손이 스마트폰 위를 바삐 움직였다.

정말 전남편이 돈을 번 게 사실이라면?

<질문: 이혼했는데 나중에 재산분할 청구할 수 있나요?>

<채택답변: 네 가능합니다. 재산분할은 이혼 후 2년 이내까지는 청구 가능합니다.>

……

인터넷에 검색해보니 재산분할 청구가 가능하단다.

이거다!

안예슬은 곧장 전남편에게 문자를 보냈다.

-나야.

-잠깐 얘기 좀 해.

-지금 옥상으로 와.

이 개 같은 새끼.

지 혼자 돈 벌고 잘 살 수 있을 줄 알았어?

"… 넌 이제 뒤졌어."

단물까지 쪽쪽 빨아먹어 줘야지.

안예슬이 표독스러운 얼굴로 옥상으로 향했다.

* * *

전와이프의 문자를 받고 옥상으로 향했다.

거기엔 안예슬이 기다리고 있었다.

이미 끝난 사인데 왜 이리 구질구질하게 구는 걸까.

정우는 황금 같은 점심시간을 방해받아 기분이 좋지 않았기에 말이 퉁명스럽게 나갔다.

"무슨 일인데 그래."

"얘기 좀 해. 코인으로 돈 번 게 사실이야?"

"코인?"

뭐지? 그 소식이 벌써 쟤한테 들어갔나?

"와… 소문 진짜 빠르네. 그걸 어떻게 알았냐."

"사실이냐고. 예 아니오로만 대답해."

"뭐 맞아. 돈 벌었어. 좀 많이 벌었지."

"얼마나 벌었는데? 1억? 2억?"

"그걸 니가 알아서 뭐하게?"

"당연히 알아야지! 내 돈인데!"

"네 돈? 풉!"

안예슬에 말에 코웃음이 나왔다.

"뭔 개뼉다구 같은 소리야. 내 돈이 왜 네 돈이 되는데?"

"이미 다 알아보고 왔어. 이혼 후 2년 이내에 재산분할 청구 가능하대. 그러니 빨리 돈 내놔. 소송까지 가기 싫으면."

아주 당당히 소리치는 걸 보니 안예슬은 단단히 착각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정우는 어이가 없기도 하고 저런 꼴통 같은 여자의 무식함을 보고 있자니 자신이 다 부끄럽게 여겨졌다.

"예슬아, 너 내 말 들으면 창피해서 얼굴도 못 들고 다닐 텐데 괜찮겠냐?"

"무슨 소리야 그게? 내가 왜 창피해? 이상한 소리 말고 좋은 말 할 때 돈 내놔."

"내놓기는. 너 잊었어? 우리 이혼할 때 재산분할청구권 포기각서 쓴 거?"

"… 그게 뭐."

"그거 쓴 이상 끝이야. 너 재판 가도 나 못 이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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