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2 : 우정3????? >
"안녕하세요, 본부장님."
탁세훈이 먼저 인사를 건넸지만, 성재민 본부장은 답하지 않았다.
대신 그의 눈이 가늘어졌다.
"… 두 분 다 퇴사한 걸로 아는데 대표실엔 어쩐 일이신지?"
"성 대표님과 미팅이 있어서 일 보고 가는 길입니다만."
"미팅이요? 무슨 미팅 때문이죠?"
"그건 굳이 말씀드려야 할 이유는 없다고 봅니다."
"뭐, 직접 여쭤보면 알겠죠. 알겠습니다. 바쁜 사람 붙들고 제가 실례했네요. 보고드릴 게 있어서 그럼 이만."
성재민은 자기가 물어볼 것만 딱 물어보고 난 후 쌩하니 두 사람을 지나쳐 대표실로 들어가 버렸다.
언제봐도 재수 없다고 여길 때였다.
"성 본부장 볼 때마다 느끼는 건데 진짜 재수 없지 않습니까?"
역시 탁세훈 팀장은 나랑 뭔가 통하는 것 같다니까.
* * *
성재민 본부장은 대표실에 들어가기 전 이정우와 탁세훈이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는 것을 지켜보다가 대기 중이던 비서에게 물었다.
"저 두 사람 무슨 일로 온 거죠? 미팅 때문에 왔다던데."
"아, 네뷸라 코퍼레이션 관계자 분들이요? 네, 대표님이랑 그래핀 납품 계약 관련해서 미팅하고 가셨어요."
"네뷸라 코퍼레이션?"
처음 들어보는 회사명에 성재민은 이상함을 느꼈다.
확인하기 위해 곧장 대표실로 들어갔다.
왠지 기분 좋아 보이는 성태규 대표가 아들을 맞았다.
"어 본부장. 무슨 일이야?"
"보고드릴 게 있어서요. 그런데 방금 이정우 선임이랑 탁세훈 팀장 봤는데 무슨 일 있었어요? 미팅 때문이라던데. 그리고 비서는 네뷸라 코퍼레이션에서 사람들이 왔다 갔다 그러고."
"아, 방금 올라오면서 이정우 대표 만났나 보구나. 맞아, 네뷸라 쪽이랑 얘기 잘 나눴어."
"이정우 대표… 요? 네뷸라 대표가 이정우예요?"
성재민 본부장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듯 되물었다.
성태규 대표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러고 보니 재민이 너는 모르겠네. 이정우 선임, 이번에 퇴사하더니 회사를 차렸다더구나."
회사를 차렸다니.
성재민은 황당하다는 표정이었다.
"… 말도 안 돼. 아니 무슨 회사가 장난도 아니고, 차리고 싶다고 차릴 수 있답니까. 대체 뭐하는 회사길래 여기까지 왔대요?"
"나도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했는데, 놀라지나 마라. 이정우 대표, 그 사람 그래핀 양산 기술을 갖고 있더구나."
"그래핀 양산 기술이요?"
더 황당한 이야기의 연속이었다.
"아니, 그게 말이 됩니까? 한낱 개발팀 직원이었던 남자가 퇴사하더니 회사를 차리고, 거기에 이제는 그래핀 양산기술까지 가졌다는 얘기가요. 그 사람들 순 사기꾼 아닙니까?"
"사기꾼이라니. 이미 그쪽에서 보내준 그래핀 샘플도 확인했다. 기존 그래핀들에 비해 순도가 엄청나게 높고 품질도 좋아. 전도성 효율이 무려 200배가 넘어."
"200배요? 농담이시죠?"
"농담 아니다. 이미 다 확인이 끝난 거야. 너도 궁금하면 소재연구팀에 가서 확인해보던가."
"음…."
"아무튼 그런 고품질 그래핀을 반값에 제공해준단다."
"반값… 너무 비현실적인 이야기입니다. 그래핀 생상공정이 얼마나 복잡하고 비용이 많이 드는데요. 단가가 안 맞습니다."
"물론 나도 100% 신뢰하지는 않아. 하지만 정말 네뷸라측 주장대로 그런 우수한 그래핀을 반값에 제공받을 수만 있다면 우리가 꿈만 꾸던 MG음극재의 상용화는 더 이상 꿈이 아니게 될 거다. 진짜로 본격적인 전고체 배터리 생산에 돌입할 수 있게 되는 거지."
그 말에 성재민 본부장의 얼굴이 굳었다.
"그래핀 양산 기술은 분명히 가짜일 겁니다. 말이 되는 이야기입니까? 이건 분명 대표님, 아니 아버지가 속고 계시는 거라구요."
"못 믿으면 MOU 진행할 때 실사단에 본부장도 따라가 보든가. 나야 뭐 확신이 생겼다만, 경영을 잘 아는 네 눈에는 또 다르겠지."
"MOU요?"
"어. 이제 앞으로 네뷸라 쪽과 MOU 진행해서 그래핀 납품을 받기로 했거든. MOU 협상만 잘 끝나면 전고체배터리 생산은 시간문제야. 그러니 재민이 너도 너무 색안경 끼지 말고 네뷸라 코퍼레이션의 기술력과 가치에 대해 객관적으로 파악해주길 바란다."
"… 예."
성재민은 마지못해 수긍했다.
하지만 내심 승복하지 못하고 있었다.
'… 이젠 하다하다 사기꾼까지 꼬이네.'
영업이익 적자인 비전 없는 설비회사에 뭐 이리 잡음이 많이 끼는지.
대한화학에 회사를 넘기기도 전에 대표인 아버지가 회사를 말아먹는 게 더 빠를 것만 같았다.
심지어 사기꾼으로 의심되는 작자가 이정우 그놈이다. 내연녀였던 안예슬의 남편인 그 작자가 이러는 게 왠지 자신을 향한 복수인 것만 같아서 짜증이 났다.
그런 심정을 모르는 건지 성 대표가 물었다.
"아무튼 그 얘긴 그만하고. 보고 할 거 있다며?"
"… 대한화학 납품 계약 관련하여 은행 대출 심사 승인되었습니다. 총 650억원이 분할 입금될 예정입니다."
"잘됐구만. 공장부지 확보는 끝났지?"
"예. 회사 유보금으로 기흥공장 근처에 부지 확보 완료했습니다. 이제 남은 건 공장 설비 자재 주문과 공장 건설뿐입니다."
"원자재 확보도 차질 없이 잘 진행시켜. 그리고 대출금은 일부 빼서 네뷸라와 MOU 진행할 때 대금으로 좀 남겨놓고. 뭐 어련히 알아서 잘 하겠다만."
"이미 원자재는 주문 넣어놨습니다. 은행에서 입금되면 바로 대금 납부할 예정입니다. MOU 건은… 일단 자금 일부는 보류해놓겠습니다."
"알겠어. 잘하고 있구만."
든든하다는 듯 성태규 대표가 성재민 본부장의 어깨를 토닥였다.
하지만 성재민 본부장의 얼굴은 밝지 않았다.
* * *
성 대표를 만나고 나온 성재민은 곧장 한민준에게 전화했다.
"… 부사장님, 일정을 앞당겨야 할 것 같습니다."
-왜?
"성 대표가 다른 곳에 관심을 돌리고 있습니다."
성재민은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갑자기 그래핀 납품을 하겠다는 업체가 나타나서 성 대표가 대한화학과의 계약 건에 집중하지 않고 MG음극재 건에 자금을 분산하려는 조짐이 보였으니까.
-아이씨! 네뷸라? 뭔 듣보잡 회사가 훼방이야. 아무튼 이렇게 되면 자금 유동성을 떨어트리려고 한 게 완전 나가리 되잖아?
"예. 그래서 네뷸라쪽과 뭔가 진행이 되기 전에 빨리 계획을 앞당기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일정만 알려주시면 거기에 맞춰서 사내 보유자금을 최대한 털어보겠습니다."
-음… 일단 오케이. 준비되면 얘기해. 바로 계약 취소하고 은행 통해서 압박 넣을 테니.
"알겠습니다."
한민준에게 보고를 마친 성재민은 스마트폰을 꽉 움켜쥐었다.
복잡하고 착잡한 마음이다.
한민준 부사장에게 쪼르르 달려가 보고해야 하는 것도, 천천히 실행하려 했던 계획을 앞당겨야 하는 것도, 회사를 자신의 손으로 무너트려야 하는 것도.
모두 마음에 들지 않았다.
* * *
정우가 대표실로 올라가는 걸 본 이후로 최근 개발팀의 대화 주제는 그에 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루었다.
"정우 씨 돈 진짜 많이 벌었나 봐. 난 그냥 1,2억 수준인 줄 알았는데 말야."
"그러게 말이에요. 법인 세울 정도면 도대체 얼마나 번 거야?"
"법인은 돈이 중요한 게 아니지. 사업 비전이 중요한 거지. 안 그래?"
박학기 팀장이 부정적인 의견을 내놓았다.
사실 그는 티는 낸 적이 없었지만 정우가 돈을 번 것에 대해 솔직히 조금 배가 아팠다. 개발자로서 십년 넘게 종사해왔는데 아직도 아파트 대출금을 갚고 있으니 오죽하랴.
그런데 부하직원이 큰돈을 벌어서 자기보다 먼저 퇴사하는 걸 보니 질투의 감정이 모락모락 피어올랐던 것. 심지어 자기도 꿈에서나 상상해봤던, 부하직원들을 위해 크게 한턱 쏘는 걸 먼저 했다. 티는 안 냈지만 송별회 때 부하직원인 정우가 쏘는 한우를 먹으면서 살짝 자괴감이 들 정도였다. 팀장이나 되어서 부하직원이 사는 고기나 넙죽넙죽 먹고 있다고 말이다.
물론 겉으로는 크게 티를 내지 않았다.
박 팀장의 부정적인 말에 강성열 책임이 반박했다.
"에이, 팀장님도 참. 세금 때문에 1년에 3억인가? 그 이상 벌면 법인 세우는 게 이득이잖아요."
"그래? 3억을 벌어봤어야 알지."
"가만, 그러면 정우 씨 코인으로 최소 3억 번 거예요?"
"그렇지 않을까요?"
"와… 오마카세 쏠 만했네."
다들 감탄했다.
3억이라니. 월급쟁이들한테는 충분히 큰돈이었다.
"그런데 솔직히 그 돈이면 서울에 아파트 하나 제대로 못 사는데, 오마카세 쏜 거는 사치 같기도?"
박 팀장이 슬쩍 디스하자 정우의 든든한 사수였던 강 책임이 또 다시 나섰다.
"더 벌었겠죠 뭐. 다들 정우 씨 성격 알잖아요? 쓸데없는 데 사치 안 하는 거. 부담이 안 되는 돈이니까 쐈을 겁니다. 똑 부러진 사람인데 어련히 잘 하지 않았겠어요?"
"그렇긴 하지."
"하… 나도 코인이나 해볼까."
직원 누군가가 중얼거리자 박학기 팀장이 뭐라 한마디 했다.
"코인은 무슨. 그거 다 사기야. 절대 손도 대지 마."
"네? 근데 팀장님 전에 송별회에서 정우 씨가 코인 얘기하니까 별 말씀 안 하셨잖아요."
"그거는 이 선임 퇴사하니까 앞에서 그런 거지. 송별회에서 신나서 얘기하는데 누가 태클하면 좋겠어? 그래서 얘기 못했던 거지, 솔직히 나는 비트코인이라는 거에 대해 좀 부정적이야. 이 선임도 따지고 보면 운이 좋아서 번 거지."
"흠… 그렇군요."
"와- 다들 이것 좀 보세요!"
박 팀장의 부정적인 의견에 어색함이 감돌 때.
대화에 끼지 않고 옆에 앉아서 무언가 보고 있던 고지용이 개발팀원들을 불렀다.
"뭐 보는데?"
개발팀원들이 고지용의 뒤에 모여 그가 보고 있는 모니터를 확인했다.
거기엔 유튜브 방송이 흘러나오고 있었는데, 한 남자가 라이브로 주식 같은 걸 매매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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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비트코인 점심생방> ★이더 200불 시대 개막!★ 우정2가 보우하신다! (시드 1,000만원 시작 / 수익률 1,000% 달성!)]
시청자수: 227명
유튜버: 코인No.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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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뭐야? 주식이야?"
"비트코인 매매 방송이에요. 지금 시청자 숫자 200명이네요."
"점심시간인데?"
"네. 소리 좀 켜도 될까요?"
"점심시간인데 뭐. 한번 켜봐."
박 팀장의 수락 하에 고지용이 사운드를 키웠다.
그러자 열성적으로 떠드는 유튜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형님더어어어어얼!!!! 제가 뭐라고 했습니까아아아!!! 이더리움 1만불 간다고 하지 않았습니까아아!!!!
-이제 고작 200불일 뿐입니다!!! 앞으로 1만불 가면 지금 타도 50배 먹습니돠!!!!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거 하나!!!!
-비트매스 리더보드 보시면 우정2가 아직도 이더 롱포지션 보유 중입니다!!!!
-하루 수익률 25,000%에 빛나는 대한민국 최고 코인선물 트레이더가 이더를 아직 안팔았습니다!!!!!!
-그말인즉슨 앞으로도 계속 떡상할 일만 남았다는 겁니다!!!!
-이 말 듣고도 이더 200불 찍었다고 파는 흑우 없재?
-이더 안 산 흑우 없재? 안 샀으면 지금이라도 타십쇼 형님들!!!
-자 가즈아!!!!!!!!!!!
-도움 되신 분들 좋댓구요 한번씩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설명창 보시면 비트매스 수수료 할인 링크 있으니 많이 눌러주십쇼!!!!
목이 터져라 외쳐대는 유튜버.
채팅창도 폭발적으로 올라가는 중이었다.
-바완이 돈 벌구 신났누 ㅋㅋㅋㅋㅋ
-이더 미쳤다 시총 이러다 비트 따라잡겠네 ㄷㄷㄷ
-이더 판 흑우 없재?
-[팬티남바완] 님이 50,000원을 후원하셨습니다.
└아 짹스하고 싶다!
-대상승장 초입인데 숏 친 흑우 없재?
-링크 누르지 마라 레퍼럴이라 저걸로 가입하면 수수료 다 남바완한테 간다
-롱
-차
-롱
-코린이들 이더로 돈 먹구 신났구만
-차
-매니저 형님 채팅방 물 흐리는 애들 강퇴좀요
-우정2 믿고 이더 사면 되는 부분인가요?
-이미 너무 오른 듯;; 나라면 안 삼;;
……
빠르게 채팅들이 위로 올라간다.
그걸 지켜보던 개발팀원들이 혀를 내둘렀다.
"와, 이딴 방송에 후원 5만원씩 터지네."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여기 좀 보세요."
"밸류value… 이게 뭔데?"
"이 사람 수익금인가봐요."
"수익금이… 1억?!"
놀랍게도 코인No.1이라는 유튜버의 코인 수익률은 무려 1억원을 넘은 상태였다.
방송 제목에 시드머니가 천만원이라고 적혀 있으니, 무려 1,000%의 수익률을 달성한 셈.
"코인으로 1억을 번 거야?"
"그런가봐요."
"와… 미쳤네. 진짜 코인 해야 되나."
"지용 씨, 저 유튜버 이름이 뭐라고요?"
"남바완이라고요, 유튜브에 코인 치니까 제일 위에 나오더라구요."
"남바완… 알겠어요, 땡큐. 나도 있다가 코인 한번 해봐야겠다."
"그러고 보니 저기 언급된 우정2가 그 사람 아니야? 실검에 올라왔던?"
"맞네? 수익률 20,000% 넘었다고 하던 그 트레이더 맞지? 그 사람이 이더리움이란 걸 사놓았나 본데?"
"오? 그럼 이더리움 사서 들고 있으면 되는 건가?"
"그런가 봅니다. 나도 이더리움 사야겠다."
개발팀원들이 너도나도 코인을 해봐야겠다고 떠들 때.
박학기 팀장이 굳은 얼굴로 입을 열었다.
"아니, 다들 뭔가 좀 홀린 것 같은데 진정해. 비트코인 저거 엄청 위험하다니까?"
"에이, 팀장님. 저희도 나름 개발잔데 그래도 대충은 알죠. 블록체인은 나름 유망한 기술 아닙니까?"
"그건 블록체인만 놓고 봤을 때 그렇고. 코인 자체는 그냥 사기야 사기! 정신 차려!"
"……."
정색하는 박 팀장의 말에 개발팀에 어색한 공기가 흘렀다.
내친김에 그는 하고 싶었던 말을 쏟아냈다.
"막말로 생각 좀 해봐. 비트코인은 가상화폐야. 말 그대로 실체가 없는 가상의 것이라고. 그걸 돈 주고 사는 게 말이 돼? 심지어 공식적으로 인정되는 화폐도 아니고 말야. 내 생각엔 그냥 사기치는 거야. 왜 그 있잖아? 튤립 버블이었나. 그때도 튤립이 금값보다 귀했는데 지금은 어떠냐고. 그냥 꽃값이잖아."
"그런가요. 그래도 이 선임이 앞으로 계속 오른다던데…."
"그건 이 선임이 돈 벌었으니까 하는 얘기고. 코인은 진짜 사기야. 다들 이 선임 말 듣고 코인 투자했다가 손해 보면 어쩌려고 그래? 이 선임이 책임져주지도 않을 거잖아."
박 팀장의 말에 강성열이 나섰다.
아끼던 부사수가 퇴사하자마자 그가 했던 말을 가지고 이렇게 얘기하니 기분이 별로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당연히 어른인데 투자한 본인이 책임져야죠. 그런 걸로 남탓 할 정도로 어리석지 않습니다."
"어리석다고 하는 건 아니고, 그냥 답답해서 그래. 그리고 뭐 우정2? 나도 실검에 떠서 봤는데 한국 최고의 트레이더다 뭐다 하지만 결국 세력일걸? 혼자서 20,000% 수익률이 가당키나 하냐고. 내가 주식 좀 해봐서 아는데 작전세력이 분명해."
박 팀장의 말에 개발팀원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듣고 보니 팀장님 말도 맞는 것 같고. 에이, 난 그냥 안 해야겠다."
"저는 딱 10만원만 해보려구요. 재밌어 보이는데요?"
박 팀장의 선동이 먹힌 건지 너도나도 코인을 하겠다던 팀원들이 절반은 안 하겠다는 쪽으로 마음을 바꾸었다.
하지만 강성열 책임과 고지용 연구원 두 사람만은 눈빛이 달랐다.
'올해 들어서 왠지 이 선임 운이 트이는 것 같단 말이지. 그리고 예전부터 이 선임이 워낙 똘똘하기도 했고.'
'이 선임님이 코인이 앞으로 2018년 1월까지는 계속 상승할 거라고 하셨지. 진짜 지금이라도 코인에 좀 투자해놔야 할 것 같은데.'
두 사람이 코인 투자 쪽으로 마음이 기울고 있을 때였다.
"팀장님, 우정2가 세력인지 어떻게 확신하세요?"
여태껏 아무 말 없이 묵묵히 자리에 앉아 있던 지서현이 갑자기 입을 열었다.
평소처럼 무표정했지만 방금 말투는 왠지 스산했다.
개발팀 사무실에 갑자기 한기가 내리는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다.
박 팀장도 지서현의 말에 살짝 당황했다.
"아니 그걸 꼭 말해줘야지만 알아? 척하면 척이지."
"전 잘 모르겠습니다만."
"서현 씨 생각해봐. 개인이 그 정도 수익률을 내는 건 불가능해. 워렌버핏이 와도 하루만에 20,000% 수익률을 내는 건 불가능하다고."
"그렇습니까."
"뭐 극악의 확률을 뚫고 가능하다고 쳐. 우정2란 트레이더가 개인이라고 쳐. 그럼 엄청 잘한 거고. 하지만 난 무조건 세력이라고 봐. 아니면 무조건 매매 매크로를 썼던가. 무슨 속임수를 썼겠지. 그 리더보드 데이터를 조작했을 수도 있고."
"20,000%의 수익률을 낼 수 있는 매크로라… 저도 갖고 싶네요."
"서현 씨 지금 나 비꼬는 거야?"
"아닙니다. 그저 각자의 입장 차이가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을 뿐입니다."
아무렇지 않다는 듯 대답하는 지서현. 하지만 그녀의 얼굴은 아직도 굳어 있다.
박 팀장은 자신이 무슨 실수라도 했나 싶었다.
"이상하다. 근데 서현 씨 왜 이렇게 화난 것 같지? 내가 무슨 말실수라도 했나?"
"아니요."
"아니면 왜 그러는 거야. 좀 당황스럽네."
"정말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보다 팀장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뭔데?"
"저 퇴사하겠습니다."
"… 엥? 갑자기?"
갑자기 퇴사하겠다는 그녀의 폭탄발언이 개발팀에 떨어졌다.
박학기 팀장의 얼굴이 당혹으로 물들어갔다.
* * *
블로거이자 남캠BJ이자 유튜버인 남보원 씨.
그는 최근 전성기를 맞이하고 있었다.
바로 우정2 때문이었다.
대한민국에 혜성 같이 나타나 신들린 수익률을 자랑하고 있는 전설적인 트레이더 우정2.
그는 비트매스라는 세계1위 코인선물거래소의 리더보드 순위에 한번 오르더니 이제는 아예 터줏대감이 되어 내려가질 않고 있었다.
이 우정2의 존재를 가장 처음 보도한 게 바로 남보원이었던 것.
그 덕분에 남보원의 블로그는 이제 하루 평균 방문자수 1,000명을 찍게 되었고, 이 유입을 바탕으로 시작한 방송도 곧잘 되기 시작해 코인 매매방송만으로도 먹고 사는 데 지장이 없게 되었다.
비록 코인 매매 실패로 돈을 잃더라도, 시청자들이 쏴주는 후원금과, 특히 방송 홍보효과로 유입된 시청자들이 자신의 레퍼럴 링크를 통해 선물거래소에 가입하여 수수료를 벌어다 주었기 때문이다. 현재 레퍼럴로 가입한 회원수는 무려 3,000명이 넘었는데, 이 덕분에 가만히 앉아 있어도 수수료로 들어오는 최근 한달 수익이 무려 3천만원을 넘을 지경이었다.
"이게 다 우정2님 때문이야."
점심 방송도 성공적으로 마친 그는 비싼 참치초밥정식을 배달로 시켜 늦은 점심을 준비했다.
주방 테이블에 앉자 보이는 넓은 거실. 방송을 위해 최근 옮긴 깔끔한 오피스텔은 방송뿐만 아니라 고급스러운 외관에서 오는 심적인 만족감이 그야말로 최상이다.
"저에게 너른 양식을 하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우정2님."
누가 보면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마냥 우정2에게 경건한 기도를 올린 남보원은 그제야 식사를 시작했다. 그가 잘되어야 자신도 잘 풀리기 때문에 하는 기도다.
물론 밥을 먹으면서도 스마트폰은 손에서 놓지 않았다. 방송 채팅을 확인하는 용도와 코인 시세 확인 등등을 위함이었다.
그렇게 스마트폰에 코를 박고 밥이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 모를 지경으로 점심을 먹던 와중이었다.
"… 어?"
항상 봤던 거지만 습관처럼 코인선물거래 리더보드 순위를 확인하던 남보원이 입을 떡 벌렸다.
왜냐, 미국 날짜로 자정이 되어 막 갱신된 리더보드 순위에 새로운 이름이 떠올라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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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nk / Name / Profit
1. WooJung2 (+185,871.69XBT)
2. WooJung3 (+3,703.7XBT)
3. Black-Canada-Nox (+1144.33XBT)
4. Year-Kakao-Duke (+799.9XB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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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동안 벌어들인 수익금으로 순위를 매긴 리더보드였는데, 1위는 당연하게도 자랑스러운 한국 최고의 코인 트레이더 WooJung2였다.
그런데 2위에 비슷한 이름이 보였다.
"… 우정3?????"
왜 우정WooJung이라는 아이디가 여러 개로 보이지?
이거 혹시 버그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