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3 : 절대 지지 않는 매매법 >
리더보드에 WooJung3이라는 새로운 아이디가 올라와서 코인업계가 술렁이고 있는 가운데, 당사자인 정우는 사무실 구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MOU체결을 약속한 이후 본격적으로 일을 진행하기 앞서 사무실을 먼저 구한 것이다.
지금까지는 그의 자취방이나 유현석의 연구실 겸 사무실 등에서 업무를 처리했지만, 탁세훈 팀장도 합류했으니 제대로 된 사무실의 필요성을 느꼈기 때문이다.
곧장 법인 명의로 서울 테헤란로에 사무실 하나를 빌리고는 간단한 인테리어를 마치고 바로 입주했다. 새로 개업한 사무실을 보고 탁세훈이 입을 떡 벌렸다.
"대표님, 저희 두 사람이 쓰기엔 너무 넓은 것 같은데요? 이거 방이 대체 몇 개야?"
"회의실이랑 탕비실은 필수잖아요. 그리고 나중에 사람 더 들어오겠죠 뭐. 그전까지는 넓고 쾌적하게 씁시다."
"알겠습니다. 저쪽 방 제가 써도 될까요?"
"그러세요."
사무실 집기는 당일 퀵배송으로 주문을 마쳤는데, 역시 돈이 있으니 사무실 차리는 건 숨 쉬는 것만큼 간단했다.
사무실 이곳저곳을 구경하던 탁세훈이 갖춰진 탕비실을 보고 입을 떡 벌렸다.
그도 그럴 게 네뷸라 코퍼레이션의 사무실은 거의 카페 수준이었던 것.
"… 대표님. 탕비실을 만드신 게 아니라 카페를 차려놨는데요?"
"하하하, 좀 과한가요? 사실 예전부터 내 회사 차리면 멋진 탕비실 갖춰야지라는 생각이 있었거든요. 직원들 복지 좀 챙겨주고 싶었달까요."
"… 그냥 아래 스벅 가서 커피 마시게끔 복리후생비 지원하는 게 싸게 먹힐 것 같은데요?"
"음… 듣고 보니 불필요한 지출 같기도 하네요."
너무 과했나 싶어서 정우가 머리를 긁적일 때, 탁세훈이 웃었다.
"하하하, 아닙니다. 과하면 뭐 어떻습니까. 좋으면 그만이지. 그리고 바쁘면 왔다갔다 하는 시간도 아까울 때가 있으니 사내 카페도 나쁘지 않네요. 그런데 이거 저 혼자 쓰기 미안한데요? 빨리 직원을 더 뽑아야 될 것 같습니다."
"조만간 올 거예요."
정우는 곧장 유현석 모자도 사무실 근처로 불러들였다. 기존 오피스텔은 해지하고 테헤란로 근처에 오피스텔 하나를 잡아줬다.
"어우, 대표님. 이건 너무 과해요."
"괜찮습니다. 현석이가 저한테 해주는 거에 비하면 사소해요."
유현석은 플래시그래핀 공정과 SCR그래핀 공정의 구현을 완료하여 특허출원을 도와주었다. 하지만 그걸로 그의 쓸모가 끝난 게 아니라 이 그래핀 기술의 개선점과 공정의 개선 여부에 대해서 계속 연구 중이었고, 무엇보다 이전에 유현석이 개발한 일명 '헐크가죽'이라는 신소재 연구도 계속 진행하고 있었다. 만약 해당 신소재 기술이 개발되면 정우의 직원인 유현석의 연구는 네뷸라 코퍼레이션에 귀속되게끔 계약이 되어 있었으니 결과적으로 회사에 이득인 셈.
미래에 엄청난 가치를 생산하게 될지도 모르는 유현석에게 투자하는 건 하나도 아깝지 않았다.
물론 차은숙 교수와 다른 점은 정우는 그의 기술을 완전히 빼앗는 게 아니라 유현석에게 엄청난 복지와 인센티브를 약속한 상태였으니 유현석의 어머니 고숙자는 안심하고 아들의 미래를 정우에게 맡기고 있는 중이었다.
유현석이 연구에 힘써주는 사이 정우도 놀고 있지만은 않았다.
탁세훈 팀장과 함께 회사 내부 점검과 성운이노베이션 MOU를 준비하기 시작했으니까.
"대표님이 큰 줄기만 잡아주시면 세부적인 건 제가 처리하겠습니다. 그러니 너무 신경 안 쓰셔도 됩니다."
다만 세세한 업무 대부분은 능력자인 탁세훈 팀장이 도맡아 해서 정우가 할 일은 크게 없었다. 때문에 사무실에 대표실을 만들어놓고 출근은 하지만 주로 하는 거는 코인 단타가 전부였다.
단타를 시작한 이유는 할 일이 너무 적어서 뭐라도 해야만 할 것만 같은 압박감(?)을 느꼈기 때문이다. 옆에서 열심히 일하는 탁세훈과 유현석을 보고 있자니 자극이 된달까. 물론 유현석이 열심히 하지만 그 친구는 일한다기보다는 스스로 연구를 즐기고 노는 느낌이 강했다.
'일당이라도 조금씩 벌어보자고.'
가볍게 단타나 쳐볼 생각으로 보유자금 중 딱 천만 달러만 빼서 매매를 시작했다.
우선 자주 사용하는 비트매스 선물거래소에 새롭게 단타용 계정 하나를 만들었는데, 계정 이름은 WooJung3. 원래 계정인 WooJung2를 대충 변형하여 만든 아이디였다. 사실 대충 WooJung22로 만들려고 했는데 누가 이미 만들어놔서 WooJung3으로 만들었던 것.
정우는 이 단타용 계정으로 주로 이더리움 선물거래에서 단타를 쳤는데 그 이유는 하나였다.
'이더리움은 무조건 1,400달러 가니까.'
만약 단타를 치다가 물려도 롱(Long: 공매수)포지션만 유지하면 무조건 탈출이 될 거라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이더리움으로만 단타를 쳤던 것.
그런데 가볍게 시작했던 이 단타가 생각보다 스케일이 커지기 시작했다.
왜냐.
단타를 치는 족족 수익이 났기 때문이다.
[Buy Order submitted]
[will Long 5208.3ETHUSDT contracts at the price of 192]
192달러에 이더리움을 사서,
[Sell Order submitted]
[will Short 5208.3ETHUSDT contracts at the price of 198]
198달러에 매도하고,
[Buy Order submitted]
[will Long 5347.59ETHUSDT contracts at the price of 187]
가격이 빠졌을 때 또다시 들어가서,
[Sell Order submitted]
[will Short 5347.59ETHUSDT contracts at the price of 190]
약반등이 나왔을 때 매도하고, 무한 반복이었다.
설사 물리더라도 시드가 워낙 커서 물타기로 평단가를 낮추면 금방 탈출이 가능했고, 무엇보다 이더리움이 1,400달러를 간다는 걸 알고 있기에 물렸음에도 하나도 불안하지도 않았다. 그냥 기다리면 결국 탈출이 되었으니까.
이 방법을 이용해서 정우는 아주 적극적으로 단타 시작했다.
단타계정으로 운용하는 자산은 고작 백만 달러. 그가 가진 전체 재산에 비해 매우 적은 금액이었다.
하지만 백만 달러는 한화로 따지면 무려 11억원이다. 11억원으로 단타를 치니 그 수익률이 오죽하랴.
무엇보다 중요한 사실은 가격은 오르고 내리고를 반복하면서 올라간다는 점이다.
어제 100원이었던 것이 내일 150원이라고 해서 단숨에 50원이 오른 게 아니다. 24시간, 86,400초라는 무수한 1초 단위의 시간 동안에도 무수히 오르고 내리고를 반복하면서 올라가는 것이다.
정우는 그 무수히 오르고 내리고 반복하는 코인 가격의 갭 차이를 이용하여 수익을 냈다.
1분 사이에 몇천 불, 몇만 불씩 수익이 나면 바로 매도를 해버리는 초단위 단타, 일명 스켈핑을 하는 것이다.
[+15,624.9USDT]
[+16,042.77USDT]
[+64,171.08USDT]
……
홀딩해서 크게 먹을 때에 비하면 작은 금액으로 보였지만, 단타 한번에 거의 만 달러, 일반 직장인의 반 년치 연봉이 벌렸으니 절대 적지 않았고, 무엇보다 매매횟수가 반복될수록 수익은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났다.
그야말로 돈이 복사가 되는 것이다.
이를 반복하자 돈이 미친 듯이 불어났다.
[Derivative Account]
[USDT: 19,810,331.7]
그리고 마침내 온종일 매매를 친 결과 정우의 단타계좌의 잔액은 무려 2천만 달러에 육박해 있었다.
하루만에 1천만 달러, 한화로 110억원을 벌어들인 것이다.
"… 이게 복리의 마법…!"
하루 1%의 수익을 70일 유지하면 수익률이 100%가 되고, 1년 유지하면 수익률이 3,700%에 달한다고 하던가. 이를 바꿔 말하면 매매 한번에 1%의 수익을 낼 수 있는 가정하에 단타를 365번 연속 성공하면 시드가 37배가 된다는 의미다. 그야말로 복리의 마법.
이 복리의 마법을 정우는 단타를 하면서 체득했다.
그는 보통 단타 한번에 적을 때는 0.1~0.2%, 많을 때는 3~4%씩 수익을 냈는데 그 단타 횟수가 몇십 번이 되자 수익이 미친 듯이 커진 것이다.
심지어 지서현의 LJ API를 이용하여 '지정가 인터셉트 트레이딩'으로 거래를 하자 단타 수익이 더 커졌다. 왜냐하면 정우가 이용하는 선물거래소에서는 지정가로 매매를 하면 수수료를 내는 게 아니라 오히려 돌려받기 때문이다. 물론 돌려받는 수수료 수치가 0.0025%로 매우 적긴 하지만, 금액이 크고 단타 횟수가 커지니 매매 한번 할 때마다 수수료로 최소 100~200불씩은 우습게 들어왔다.
덕분에 정신을 차렸을 때 이미 하루만에 1천만 달러를 벌어들인 후였다.
그것도 이더리움이 고점을 찍고 내려가는 하락추세에서, 시드였던 천만 달러 중에서 거래소에서 단타로 소화 가능한 최대 금액인 불과 백만 달러로만 단타를 시작했는데도 말이다.
"… 이거다."
드디어 돈을 복사하는 방법 하나를 또 깨우친 것 같다.
* * *
무적의 단타방법을 깨달은 이후 정우는 단타 삼매경에 빠졌다.
돈이 복사가 되니 단타가 너무나도 재밌어서 시간이 가는 줄 모르고 정신없이 매매에 집중한 것이다.
덕분에 정우의 단타 계정의 잔고는 차곡차곡 늘어났는데 하루에 최소 십억 단위로 돈을 복사 중이었다.
그런 그를 보고 탁세훈 팀장은 질렸다는 얼굴이다.
"대표님, 요새 퇴근 안 하세요? 옷이 어제랑 똑같은데요?"
"옷이요? 아, 그냥 여기서 잤어요."
"여기서요? 아니, 침구가 없는데 어떻게 자요?"
"의자가 워낙 좋아서 등받이 젖히니까 누울만하던데요?"
"와- 대표님 그러다 단명해요. 잘 때는 집에 가셔서 편안하게 푹 쉬세요. 그리고 근처에 호텔 장기숙박 끊으셨잖아요. 숙박비 안 아까우세요?"
"하하, 호텔 왔다갔다 하는 시간이 더 아까워서요."
정우가 멋쩍게 머리를 긁적였다.
사실 성운이노베이션 앞에 마련했던 원룸을 정리하고 네뷸라 코퍼레이션 사무실 근처에 호텔 장기숙박을 구했다. 조식도 나오고 알아서 청소까지 해주니 잠깐 거주하기 최고의 환경이었는데, 최근에 호텔에 들르지 못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클릭질 몇 번에 돈이 복사가 되니 도저히 모니터 앞을 떠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거의 중독 수준이랄까.
씻을 시간에 단타치면 몇백만원인데.
밥 먹는 시간에 단타치면 몇천만원인데.
잠 잘 시간에 단타 치면 몇억인데.
이런 생각 때문에 쉽사리 자리를 뜨지 못했던 것이다.
"괜찮아요. 피시방에서 밤을 얼마나 많이 새워봤는데요. 겨우 이런 걸로 안 죽어요."
"그러다 훅 가던데. 아무튼 건강이랑 식사는 꼭 챙겨 드셔야 합니다. 말 나온 김에 점심이나 드시러 가시죠?"
"전 배달이나 하나 시켜주세요."
"아니, 대표님! 배달음식 같은 거 먹으면 안 된다니까 그러네."
"요새 균형 잡힌 도시락 많이 팔잖아요. 그런 거 하나 시켜주세요."
"나 원참… 알겠습니다."
졌다는 듯 탁 팀장이 배달 어플로 주문을 하려던 그때였다.
"… 계십니까."
갑자기 사무실 입구에서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음? 누구죠?"
"글쎄요. 제가 나가볼게요. 어? 서현 씨?"
탁 팀장이 반갑게 소리쳤다. 그도 그럴 게 대표실 앞에 지서현이 와 있었던 것.
니가 거기서 왜 나와?
정우는 살짝 당황했다.
"엥? 서현 씨. 지금 일할 시간 아니야? 어떻게 왔어?"
"오늘부로 퇴사했습니다."
"퇴사했다고? 벌써?"
"예. 홧김에 그냥…."
"홧김에? 설마 사무실에서 싸웠어?"
"… 예."
"아니 왜 싸우고 나왔어. 우리 MOU 진행되면 앞으로 개발팀이랑도 얼굴 보게 될지도 모르는데."
"… 박 팀장님이 선배님한테 이상한 소리 하니까… 그래서…."
"뭐?"
"… 아무것도 아닙니다. 아무튼 알겠습니다. 너무 일찍 퇴사해서 죄송하네요. 전 다시 가보겠습니다."
갑자기 몸을 돌리는 지서현의 얼굴이 왠지 꽁해 보이는 건 기분 탓일까.
그런데 여기까지 와서 그냥 떠나려는 후배를 바라만 보고 있을 수는 없었다.
정우가 다급히 붙잡았다.
"어어- 서현 씨 그래도 여기까지 왔는데 밥이나 먹고 가. 그리고 퇴사했는데 다시 가서 무르는 것도 웃기잖아. 잘 왔어 잘 왔어."
"그래요, 서현 씨. 마침 점심시간인데 밥이나 먹으러 가시죠? 여기 근처에 맛집 엄청 많더라구요."
"… 예, 알겠습니다."
어쩔 수 없다는 듯 나가려던 몸을 세운 지서현을 보며 정우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얼마나 앉아 있었던 건지 허벅지가 땀으로 축축하다.
"자, 그럼 가시죠. 오늘 점심 메뉴는 한우나…."
점심 메뉴를 얘기하며 그들을 향해 걸어갔다.
그런데 그때 뭔가 기묘한 위화감을 느꼈다.
왜 세상이 흔들리지?
'… 어라? 세상이 뒤집히… 네…?'
기이한 감각에 정신을 팔렸을 때, 순간 위와 아래가 반전되듯이 세상이 마구 소용돌이쳤다.
몸을 가눌 수 없을 정도로 급격한 어지러움이 찾아오며 정우는 풀썩 자리에 주저앉았다.
뒤집힌 세상 속에서 천장에 매달린 두 사람이 놀란 얼굴로 뛰어왔다.
"헉! 대표님!"
"선배님! 괜찮으세요? 선…!"
… 배… 님…!
서현 씨 목소리가 점점 멀어진다.
그 현상이 신기하고 이상하다고 여길 때, 시야가 암전되었다.
* * *
"헉!"
문득 눈을 떴을 때 갈색 천장이 나를 반기고 있었다.
여긴 어디지? 호텔?
몸에서 느껴지는 고급스러운 질감의 이불과 주변에 보이는 고풍스러운 인테리어.
순간 호텔인가 싶어서 몸을 일으켰다. 그 순간 팔에서 땡기는 통증이 느껴졌다.
"아야-!"
깜짝 놀라 팔을 내려다보니 의료용 수액줄이 꽂혀 있었다.
'… 병원?'
설마 나 쓰러졌던 건가?
영문도 모른 채 가만히 멍하니 있을 때였다.
부스럭 소리와 함께 아래쪽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그제야 침대 한쪽에 누군가 엎드려 자고 있는 게 보였다.
"… 서현 씨?"
아마도 병간호라도 해주고 있었던 건지 지서현은 침대에 머리를 대고 엎드려 자고 있었다.
잠결에 눈물이라도 난 건지 검은 마스카라가 번져서 볼에 흐른 게 마치 공포영화에 나오는 삐에로 같다.
… 나중에 화장 좀 고치라고 해줘야겠네.
"… 아무튼 고마워 서현 씨."
병간호도 해주고, 역시 부사수 하나 잘 키웠다니까.
흡족해할 무렵이었다.
똑똑 문 두드리는 소리와 함께 간호사가 들어왔다.
"잠시 바이탈 체크하겠습니다… 어머! 환자분 깨어나셨네요?"
"안녕하세요. 네, 방금 일어났습니다."
"오오, 정말 다행이세요. 그런데 환자분 잠깐 보고 좀 해도 될까요?"
"예. 괜찮습니다."
간호사가 벽에 붙은 긴급호출 버튼 같은 걸 누르더니 거기 달린 스피커 부분에다가 'VIP실 이정우 환자분 깨어나셨습니다'라고 보고했다.
'… VIP실?'
순간 자기가 잘못 들었나 싶을 때였다.
"… 으응…."
간호사의 목소리에 깬 걸까. 잠들어 있던 지서현이 부스스 눈을 떴다.
그녀와 눈이 마주쳤다.
졸린 듯 풀려있던 그녀의 눈이 꿈뻑거리더니 이내 그 점점 커졌다.
그러더니 벌떡 몸을 일으켰다.
"선배님!"
지서현이 놀란 얼굴로 바라본다.
"괜찮으십니까? 몸 아프신 데 어디 없습니까?"
속사포처럼 쏘아대는 그녀를 보며 웃었다.
"하하, 서현 씨 안녕. 어, 걱정해준 덕분에 몸은 괜찮아."
"다행입니다… 정말 다행입니다…."
"걱정 많이 했나 보네. 그런데 서현 씨."
"예?"
"화장 좀 고쳐야 할 것 같은데."
그 말에 갑자기 지서현의 얼굴이 화악 빨개졌다.
"… 헉! 죄송합니다!"
부랴부랴 자리에서 일어난 지서현이 가방을 챙겨들더니 병실 한쪽에 있는 화장실로 들어갔다.
잠시 후 나온 지서현의 얼굴은 멀끔해져 있었다.
"이야- 변신했네. 깔끔한데?"
"… 죄송합니다. 저도 모르게 주책을 부렸습니다."
"주책은 무슨. 피곤하면 화장 못 지우고 자기도 하고 그러는 거지. 병간호해준 것만으로도 진짜 고마울 따름이야."
"아닙니다. 마땅히 해야 할 도리를 다했을 뿐입니다."
"무슨 영웅의 대사 같은데? 하하하. 그나저나 나 입원한지 얼마나 된 거야? 사유는 뭐고? 의사 선생님이 뭐라고 안 하셨어?"
"입원한 지는 하루 되었습니다만 사유는 잘…."
그때 옆에서 바이탈 체크를 하던 간호사가 호호 웃으며 입을 열었다.
"과로 때문이라고 하시더라구요. 일 너무 열심히 하시는 것 같은데 푹 쉬어주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선생님."
"아, 과로요? 감사합니다."
아무래도 단타 삼매경에 빠져서 몰아붙인 나머지 몸에 무리가 갔던 모양이었다.
'… 앞으로 조심해야겠는데.'
돈을 많이 벌면 뭐하나. 건강 잃으면 끝이거늘.
그렇게 돈을 많이 벌어놓고 쓰러져서 골골댈 생각을 하니 아찔해졌다.
'… 헬스라도 끊어야겠다.'
앞으로 건강 관리 철저히 해야지.
그렇게 다짐하던 그때였다.
과로 얘기가 나온 이후로 한껏 밝아졌던 지서현의 얼굴이 매우 심각해져 있었다.
"과로… 하셨던 겁니까?"
"어? 어. 그게 왜?"
"무슨 일을 하시길래 과로를 하신 겁니까. 그것도 퇴사하신 분이 말이죠."
왠지 그녀의 목소리에서 한기가 폴폴 날린다.
정우는 자기도 모르게 쫄아서 낱낱이 고백했다.
"아니 그게 요새 단타를 친다고 무리 좀 했거든. 서현 씨도 코인 매매 알지? 그거 스켈핑 치다 보니까 모니터를 떠날 수가 없더라고."
"단타요?"
"어. 그 사자마자 오르면 바로 팔고 그런 건데 그렇게 힘들진 않았거든? 그냥 눈이랑 손이 좀 피곤하고 신경을 계속 써야 된다는 정도? 그것뿐이었는데 이렇게 쓰러질 줄은 몰랐네."
"… 으음."
정우는 별일 없었다는 식으로 변명했다. 그러나 그의 말을 들은 지서현의 표정은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었다.
"아무래도 안 되겠습니다. 그 단타라는 것, 매매 알고리즘을 알 수 있을까요?"
"알고리즘? 설마 자동매매 만들게? 그거 이미 API에 있잖아."
지서현의 질문에 정우는 그 의도를 눈치챘다.
"맞습니다. 하지만 기존 자동매매 기능은 이동평균선을 기준으로 매매하는 거라 용도가 제한적이죠. 단타용으로는 적합하지 않습니다."
"그렇긴 하지."
"선배님이 단타 치는 기준이나 조건들을 말씀해주시면 제가 자동매매 기능을 강화하여 매매봇Bot을 만들어보겠습니다."
"매매봇을?"
생각해보니 거부할 이유가 없다. 만약 단타용 매매봇 개발이 성공한다면 지금처럼 정우가 체력을 소모해가면서 직접적으로 매매를 하지 않아도 수익이 발생할 테니까.
"나야 좋지. 알겠어. 퇴원하고 서현 씨 사무실 정식으로 출근하면 그때 머리 맞대고 만들어보자고."
"알겠습니다. 최선을 다해보겠습니다."
왠지 지서현의 눈빛이 열의로 불타오르던 그때였다.
"실례하겠습니다."
다시 똑똑 문 두드리는 소리와 함께 일련의 무리들이 우르르 들어왔다.
하얀 가운을 입은 무리들.
… 이 사람들 혹시 모두 의사야?
정우의 얼굴에 당황한 기색이 어렸다.
* * *
무려 의사 4명이 달라붙는 극진한 케어 끝에 이틀 만에 퇴원할 수 있었다.
무슨 과로 환자한테 이렇게 많은 의사가 붙나 싶었지만 좋은 게 좋은 거라고 덕분에 마음 놓고 푹 쉬고 재충전할 수 있었다.
퇴원하고 사무실로 돌아가는 길. 탁세훈이 운전하는 차 안에서 정우는 이틀 내내 함께 있어준 지서현에게 감사를 표했다.
"굳이 병간호 안 해줘도 되는데 아무튼 고마워 서현 씨."
"뭘요. 아무것도 아닙니다."
무뚝뚝하게 답하는 지서현의 입가엔 묘하게 흐뭇한 듯한 미소가 떠올라 있었다.
그런 그녀를 보고 궁금했던 걸 물었다.
"그런데 여기 어떻게 예약한 거야?""예? 여기라뇨?"
"대한병원 말이야. 여기 예약하기 빡세잖아."
정우의 물음에 지서현은 당황한 듯 보였다.
"그, 글쎄요? 여기가 예약하기 어렵습니까?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그래? 이상하네. 나 예전에 여기 예약한 적 있는데 대기만 2달은 걸렸거든."
예전이라곤 했지만 미래에 벌어졌던 일로 어머니 몸이 편찮아지셔서 대한병원에서 수술을 받기 위해 입원을 한 적이 있었다.
그때 예약만 2달이 넘게 걸렸는데, 이상하게도 이번에 정우는 과로로 쓰러지자마자 바로 입원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 그렇군요. 마침 병실이 비어 있었나 봅니다."
"그러게. 운이 좋았네."
"에이, 아까부터 자꾸 무슨 소리예요. 그때 보니까 서현 씨가 어디에 전화하더니 바로 뚝딱 예약 잡던데?"
그때 운전하던 탁세훈이 끼어들었다.
"서현 씨가요?"
"예. 대표님 쓰러지고 서현 씨 울고불고 장난 아니었어요. 그러다가 갑자기 어디 전화했는데 바로 구급차 와서 여기 대한병원으로 연결해주던데요?"
"그게 정말이야?"
정우가 묻자 지서현이 얼굴이 빨개져서 당황한 듯 횡설수설했다.
"그, 그게… 그 대한병원에 아는 분이 계시는데… 아! 맞다, 마침 VIP실이 비어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 예약이 밀린 일반 병실이랑 다르게 VIP실은 비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아니, 비어 있었습니다. 예, 비어 있었어요."
"아, 그럴 수도 있겠네. 이해했어. 아무튼 그 지인 분한테 감사드려야겠네. 나중에 밥 한번 사겠다고 전해드려."
"… 예."
대답하는 지서현의 반응이 별로 뜨뜻미지근하다.
밥 약속은 별로 안 내키나.
"그런데 병원비 얼마 나왔어? 생각해보니 수납을 안 했네."
"제가 했습니다."
"뭐? 그걸 왜 서현 씨가 해."
"그게… 그냥 했습니다."
얼버무리는 후배의 말에 정우는 어이가 없었다.
화가 난다기보다는 지서현이 돈을 쓰게 만들었다는 미안함 때문이었다.
"아니 이 사람아. 내가 아파서 입원한 건데 서현 씨가 왜 내. 얼마 나왔어? 내가 지금 바로 보내줄게."
"아닙니다. 사실 공짜입니다."
"공짜라고? 그건 더 이상한데? VIP실이라면 한두 푼이 아닐 텐데?"
"그… 무슨 이벤트라고… 아무튼 병원비 안 나왔으니까 걱정은 안 하셔도 됩니다."
지서현이 우물쭈물 얼버무렸다.
뭔가 수상한데.
그런데 나쁜 일도 아니고 입원을 공짜로 했으니 개이득인가?
만약 지서현이 병원비를 내고도 티를 안 내는 걸 수도 있으니 다른 걸로 보답이라도 해야겠다.
곧 우리 회사 입사할 테니 인센티브를 두둑하게 주면 되려나.
"뭐, 좋게좋게 가면 좋지 뭐. 대신, 밥은 내가 살게. 어우- 병원밥 이틀 내내 먹었더니 자극적인 게 엄청 땡긴다. 탁 팀장님, 서현 씨 치맥 어때요?"
"어우- 저는 무조건 좋죠. 제 별명이 치킨 킬러 아닙니까."
"저도 좋습니다. 근데 맥주는 건강 때문에 자제하셔야 하지 말입니다."
순간 잘못 들었나 싶었다. 치맥인데 맥주를 못 먹게 한다고?
"아니 치킨에 맥주가 빠질 수야 있나."
"절대 안 됩니다. 알코올은 당분간은 금지입니다. 그리고 탁 팀장님도 운전하시려면 어차피 맥주 못 드실 테니 맥주 없이 가는 게 맞습니다."
"아니 서현 씨, 맥주 한잔 하는 것도 내 맘대로 못 하게 하냐고. 이거 섭섭하네."
"난 대리 부르면 되는데…."
정우와 탁 팀장이 앓는 소리를 냈지만 지서현은 단호했다.
"안 되면 안 되는 겁니다."
"끄응…."
시원한 맥주 한 모금이 간절해지는 여름날이었다.
* * *
정우가 퇴원한 이후 MOU는 착착 진행되어갔다. 성운이노베이션 실무진이 테헤란로 사무실을 방문하여 회의하기도 했었는데, 네뷸라 코퍼레이션의 직원 수가 너무 적어서 황당해했다.
하지만 포항에 위치한 그래핀 공장을 방문하자 그런 비웃음 어린 시선은 쏙 들어갔다.
"… 굉장하군요. 저기 쌓인 게 다 그래핀인가요?"
"예. 맞습니다. 납품 계약이 될 것을 대비하여 생산하여 비축해놓고 있습니다. 언제든지 출고가 가능하게끔요."
보안 때문에 내부까지 보여주지는 않았지만 공장 외부를 실사한 실무진들은 창고에 어마어마하게 쌓여있는 그래핀을 보고 깜짝 놀란 눈치다.
하긴 그래핀 보관을 위해 부지도 확장하여 창고도 하나 더 지었으니 오죽하랴.
특히 실무진을 따라온 성태규 대표가 크게 감탄했다.
"허… 이거 일말의 의심도 단번에 불식시킬 어마어마한 양이군요. 대단합니다."
"별말씀을요."
"이 대표, 이거 더 실사해볼 것도 없겠습니다. 아니, MOU도 필요 없겠네요. 당장 정식계약 체결합시다!"
성 대표는 안달이 난 모습이다.
하긴 시장가격의 절반 가격에 고품질 그래핀을 납품받을 수 있는데, 심지어 공정까지 완벽하게 체계화되어 있으니 오죽할까.
정우는 그 마음을 이해한다는 듯이 웃었다.
"감사합니다. 차질 없이 납품 가능하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저희야말로 고품질 그래핀을 공급해주신다니 감사할 뿐이지요. 고맙습니다, 이 대표."
정우는 성태규 대표와 굳게 악수를 나눴다.
드디어 큰 고비 하나를 넘긴 기분이었다.
하지만 하나 걸리는 점이 있었다.
'… 표정이 왜 저래?'
바로 실무진을 따라온 성재민 본부장 때문이었다. 성태규 대표를 수행하듯 따라온 그는 말없이 있었는데 표정이 굳어 있는 게 뭔가 불길한 기분을 들게 했다.
양규철 산업스파이 건도 성재민이 배후일 거라 짐작 중이었기에 더더욱 불길하다.
설마 아직도 뭔가 꿍꿍이가 남아있는 거 아니야?
정우가 의심의 눈초리를 보낼 때였다.
"자, 그럼 정식으로 계약을 어떻게 진행할지 납품 일정이나 세부적인 사항을 논의를 좀…."
"대표님!"
성 대표가 계약 논의를 꺼낼 때 한쪽에서 전화를 받던 성태규 대표의 비서가 다급히 그를 찾았다.
"김 비서 왜?"
"그, 그게…."
정우의 눈치를 보던 비서가 성태규 대표에게 귓속말로 뭐라 했다.
그리고 그 순간, 비서에게 얘기를 들은 성 대표가 경악해서 소리쳤다.
"… 계약을 파기하자고?! 그게 무슨 소리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