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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인 후 인생 대박-48화 (48/120)

< 48 : 혹시 대표님 좋아하냐? >

다행히 정우의 착각이었던 듯 이내 힘이 풀렸다.

그가 싱긋 웃었다.

"자, 피곤하실 텐데 바로 이동하시죠. 제가 모시겠습니다."

일행들은 진호경의 차를 타고 숙소로 향했다.

* * *

차로 이동하며 지서현의 코텍 동기라는 진호경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그는 그야말로 엄친아의 표본이었다. 운동으로 다져진 훤칠한 키에 잘생긴 얼굴, 그런데 공부까지 잘한다니.

심지어 실리콘밸리에서도 이미 자리 잡은 상태로 보였다.

"코인거래소 개발 때문에 실력 있는 개발자 소개를 원한다고 하셨죠? 그러면 잘 찾아오셨습니다. 제 주변 친구들이 전부 코딩에 미친놈들이거든요."

"감사합니다. 조만간 자리 한번 마련해주세요. 면접도 좋고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파티 자리도 좋습니다."

"마련해보겠습니다."

흔쾌히 승낙하는 진호경.

다만 조수석에 앉아 그런 그를 지켜보는 지서현은 말이 없었다. 미국까지 와서 보고 직접 마중까지 나와 픽업까지 해줄 정도면 꽤나 친한 사이인 줄 알았는데 그렇지도 않아 보였다. 진호경은 굉장히 반가워하는 눈치인데 지서현은 뭔가 불편해하는 기색이었던 것.

뭔가 묘해 보이는 두 사람의 관계. 정우는 슬쩍 떠보았다.

"그런데 두 분 친구 맞아요? 좀 분위기가 어색한데."

"저희가요? 하하, 뭐… 어색할 만도 하죠. '그일' 이후로 소원해졌다가 거의 5년만에 보는 거니까요."

"그 일이요?"

"엄청난 건 아니라서… 이거 얘기해도 되나?"

"……."

진호경이 그 말을 하며 슬쩍 지서현을 쳐다봤지만 그녀는 대답이 없이 생수 한 모금을 홀짝였다.

"아무래도 얘기하긴 좀 그런 것 같네요."

"아쉽네요. 그런데 삘이 딱 옵니다. 어떤 일이 있었는지요."

"정말요?"

"예. 제가 맞춰볼까요?"

"네, 맞추시면 제가 오늘 저녁에 제가 제일 좋아하는 단골 레스토랑으로 모시겠습니다. 대신 못 맞추시면 대표님이 저 저녁 사주셔야 합니다?"

"하하하, 좋습니다. 그럼 얘기할까요?"

"예. 말씀해보세요."

"두 사람, 서로 사귀던 사이 맞죠?"

풉-!

그 말에 지서현이 물을 뿜었다.

당황한 얼굴로 그녀가 뒤를 쳐다보며 소리쳤다.

"아, 아닙니다! 사귀다니요! 절대 아니에요!"

"아니야? 그럼 미안한데. 난 또 둘이 전에 사귀었다가 깨진 줄 알았지. 딱 느낌이 전 애인 만난 것 같은 불편한 기류… 탁 본부장님도 무슨 느낌인지 아시죠?"

"예. 저도 두 분이 전 연인 사이인 줄 알았습니다."

"절대 아닙니다!"

빽 소리를 지르는 지서현의 반응에 놀리던 정우가 사과했다.

"미안미안. 불쾌했다면 사과할게. 그러니 릴렉스 해."

"… 흠흠, 소리친 점 죄송합니다. 제가 좀 당황해서요. 아무튼 호경이랑 저는 아무 사이 아니니 오해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 야, 너무 그렇게 단호박으로 얘기하니까 섭섭한데?"

운전하던 진호경이 섭섭하다는 목소리로 끼어들자 지서현이 그를 흘겨보았다.

"뭐가 섭섭해! 우리 아무 사이도 아니잖아!"

"그건 맞는데… 그럼 친구도 아니야?"

"친구는… 맞아. 진짜 오랜만에 불쑥 연락했는데 나와줘서 너무 고맙게 생각해."

"이야- 그 친구라는 말을 다시 듣기가 이렇게 어려울 줄이야. 아무튼 이제라도 다시 친구라고 해주니 고맙다. 하하하."

고맙다고 얘기하는 지서현의 말에 진호경이 호탕하게 웃었다.

도대체 진호경과 그녀 사이엔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정우가 궁금해할 때 탁세훈도 마찬가지였나보다.

"진짜 두 사람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궁금하네. 어차피 가는 길에 할 것도 없는데 두 사람 썰 좀 풀어봐요. 얘기 좀 들어봅시다."

"나도 궁금하네."

"그건…."

"그냥 내가 얘기할까?"

진호경이 나서자 지서현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 내가 얘기할게. 이게 어떻게 된 일이냐면요. 음… 어디서부터 풀어야 하지. 아! 대표님, 전에 제가 했던 코인 프로젝트 기억하십니까? 코텍 시절에 코인 개발을 직접 해봤었다고요."

"코인? 아, 들었지."

회귀하고 얼마 안 되어서 지서현에게 비트코인 100개를 빌린 적이 있다. 그때 그녀가 선뜻 비트코인을 100개나 빌려줄 수 있었던 이유가 대학교 시절부터 코인 투자 및 개발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했던가.

"기억 나. 근데 그건 왜?"

"… Z코인. 저희가 개발했던 제트코인이 모든 일의 발단이었습니다."

"제트코인?"

"예. 제트코인Zcoin은 제트기처럼 빠른 코인을 개발하자는 취지 하에 붙인 이름이에요. 말 그대로 빠른 전송속도를 추구하던 블록체인 암호화폐 프로젝트였죠."

"그렇구나. 그거 잘 안 되지 않았어?"

"처음에는요. 하지만 나중에는 꽤 성과가 있었습니다."

지서현이 담담하게 제트코인에 대해 설명했다.

코텍 시절 지서현이 있던 프로그래밍 동아리에서는 암호화폐 개발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직접 코인을 만드는 프로젝트였는데, 여타 대학 동아리 프로젝트가 그러하듯이 솔직히 젊은 청춘들의 패기였을 뿐 이 코인을 통해 막대한 부를 축적하겠다는 목표나 큰 열정 따위는 없었다.

"처음 우리는 굉장히 순수했습니다."

"기억난다. 우리 막 우스갯소리로 코인으로 억만장자 될 거라고 떠들고 다녔었잖아. 그때 진짜 순수하긴 했는데."

진호경이 아는 척을 하자 지서현이 끄덕였다.

"그랬지. 그런데 라이트닝 네트워크 이후로 모든 게 바뀌었잖아."

"라이트닝 네트워크?"

정우는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었다.

"서현 씨, 라이트닝 네트워크가 뭐야?"

"라이트닝 네트워크란 기존 비트코인의 느린 처리속도를 해결하여 번개처럼 빠른 속도를 구현하기 위해 만든 프로토콜입니다. 개별 거래를 별도의 채널에서 처리한 후 그 결과만 블록체인에 기록하는 방식으로 작동하는 거죠."

"결과만 기록하니 확실히 빨라지긴 하겠네. 이해했어. 근데 그건 왜?"

"제가 그 당시 막 태동하기 시작했던 이 개념을 가져와 리플 프로토콜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Z코인에 적용시켰는데, 결과는 놀라웠습니다. 전송과 처리 속도가 월등히 빨라졌으니까요. 그 당시도 그렇고 지금도 전송속도가 빠르기로 유명한 리플과 비교해도 2배 이상 빠를 정도로 압도적인 속도였습니다."

"2배?"

2배의 차이란 그야말로 혁신이나 다름없다.

"그거 그럼 초대박 아니야?"

"맞습니다. 그래서 사단이 벌어지기 시작했어요. 기존 코인에 비해 월등히 빨랐던 Z코인의 빠른 전송속도로 인해 해외 커뮤니티인 레딧에서 소소하게 화제가 되었거든요."

"화제가 되면 좋은 거잖아."

"보통은 그렇죠. Z코인이 돈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동아리 선배들과 동기들이 깨닫기 전까지는요."

"그러니까 유의미한 성과를 거두자 욕심 때문에 사단이 일어났다는 거구만."

정우의 추측에 대답은 진호경이 대신했다.

"맞습니다. 그때 동아리 분위기는 그야말로 축제였어요. 잘만 하면 큰돈을 만질 수도 있겠다고 여겼고. 서현아 기억나? 동아리 내에서 서로 이사다 뭐다 직급 정하면서 놀았던 거."

"… 기억나. ICO도 진행하고 거래소 상장시킬 거라고도 했지. 네 입으로 말이야."

"… 그치. 그때는 눈이 돌아가 있었어. 돈을 많이 벌고 싶었거든."

"… 넌 집도 잘 살면서 돈이 그렇게 필요했어?"

"돈은 무슨. 알잖아? 나도 너랑 같은 처지라는 걸. 반쪽짜리가 뭘 할 수 있겠어."

진호경이 자조하듯이 중얼거렸다.

'두 사람이 같은 처지라고? 그리고 반쪽짜리?'

개인적인 부분을 언급한 것 같은데 정우는 이해할 수 없었지만, 대화는 계속되었다.

진호경의 얘기를 들은 지서현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 그렇긴 하지."

"우리 집에선 나를 인정해주지 않아. 살려면 어떻게 해서든 활로를 뚫어야 했어. 그때 마침 Z코인이 눈에 들어온 것뿐이지, 솔직히 지금도 그때 당시로서는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해. 다시 돌아가도, 난 돈을 벌기 위해서 Z코인 상장을 위해 달렸을 거야. 물론 그것 때문에 가장 친한 소중한 친구를 잃게 되었지만."

그 말과 함께 진호경은 지서현을 지긋이 바라보았다.

그가 말한 가장 친했던 소중한 친구는 지서현인 걸까.

하지만 그녀는 무표정한 채 그저 자신의 이야기를 꺼낼 뿐이다. 이제 그녀는 정우와 탁세훈에게 그간의 사정을 설명하기보다는 진호경에게 말하고 있었다.

"… 나도 처음부터 프로젝트를 엎을 생각은 없었어."

"그래? 처음 듣는 얘긴데? 그럼 왜 엎은 거야?"

"… 영철이. 권영철 때문에 엎은 거야."

"권영철 선배? 권 선배 이름이 갑자기 왜 나와?"

"호경 씨, 갑자기 끼어들어서 미안한데 권영철이라는 사람이 누구죠?"

정우의 물음에 진호경이 답했다.

"아, 권영철 선배님은 코텍 코딩 동아리의 멤버 중 하나이자 Z코인 프로젝트의 주축이었어요. 그런데 서현아, 권 선배는 왜 얘기한 거야?"

"영철 선배가 Z코인을 뒤에서 몰래 대량으로 발행했어. 자기 지갑으로 숨겨두었지."

"뭐라고?!"

권영철이 코인을 몰래 빼돌렸다니.

진호경은 생전 처음 듣는 이야기인 듯 크게 놀란 눈치였다.

"아니, 블록체인에 기록이 다 남는데 빼돌렸단 말이야?"

"어. 그래서 내가 동아리 회장 오빠한테도 얘기했어. 그런데 뭐라고 했는 줄 알아?"

"… 뭐라고 했는데?"

"그게 뭐 어떠냐고 하더라고. 어차피 개발자들이 그 정도 챙기는 게 맞다고 하면서."

"백서는? 백서에 기록해두지 않았어?"

"너도 그때 봐서 알잖아. 백서에도 권영철이 빼돌린 1억 개의 Z코인에 대한 언급은 어디에도 없었어."

정우도 백서는 알았다.

백서WhiteList는 일종의 코인 가이드라인이자 설명서로써, 앞으로 코인을 어떻게 개발해나갈지 방향성과 정보들을 기록해놓은 배포자료다.

코인 투자자들은 이 백서를 확인하여 코인의 장래와 유망 정도를 판단하여 투자하게 되는 것.

그런데 거기에 개발자들이 보유한, 미리 발행해둔 코인을 적지 않는다?

이는 투자자들을 기만하는 사기 행위나 마찬가지였다.

지서현이 그때를 떠올리는 듯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인간의 욕망이랄까… 가장 친했던 사람들이 감추고 있던 그 추악한 속내를 알게 되니까 더 이상 함께 하고 싶지 않았어. 내가 독단적으로 발행된 Z코인 전부를 소각시키고 프로젝트를 완전히 엎어버린 건 그것 때문이야. 결국 그 일로 인해 학교 내에서 투명인간 취급을 받게 되었지만, 난 후회하지 않아."

"아… 난 그것도 모르고 너한테 화냈었잖아! 그걸 왜 이제 얘기하는 거야!"

"너도 똑같다고 생각했거든. Z코인 ICO와 상장을 주도한 건 너였으니까."

"… 나도 몰랐어. 그런 일이 있었다는 걸 알았으면 진즉에 네 편을 들었을 거야."

"… 그렇구나. 미안해. 내가 오해했어."

"바보야, 내가 혼자 끙끙 앓지 말고 얘기하랬지? 쯧쯧. 너 때문에 이게 뭐야. 서로 5년 넘게 얼굴도 못 보고. 알았으면 유학도 안 떠났을 건데."

"… 미안해."

아마도 진호경은 그때 사건으로 인해 지서현에게 크게 실망하게 되었고, 결국 코텍을 떠나 미국 유학길에 오르게 된 것으로 보였다.

거듭 사과하는 지서현을 보며 진호경이 슬쩍 던졌다.

"미안하면 다음에 술이나 한잔 사."

"술?"

그가 넌지시 던진 술 약속 제안에 지서현이 눈을 동그랗게 뜬 채 깜빡였다.

하지만 이내 고개를 돌려 정우의 눈치를 보더니 고개를 저었다.

"안돼."

"와- 난 기껏 용기 내서 말했는데 그렇게 단호박으로 거절할 거야? 실망인데."

진호경이 울상을 지으며 엄살을 부려보지만 지서현은 철벽이었다.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야. 대표님 일 도와드려야 해."

그녀가 뒷좌석에 앉은 정우의 눈치를 보며 거절했다.

그 낌새에 운전하던 진호경은 무언가 눈치챈 듯했다.

"이거이거, 좀 수상한데?"

"뭐가."

"아니 코텍 독고다이나 코텍 마이웨이로 불렸던 지서현이 대표님이 말씀만 하시면 완전 충성모드니까 신기해서."

"그게 뭐가 신기한데. 그리고 독고다이라니. 헛소리 그만…."

지서현이 핀잔을 줄 때 진호경이 불쑥 내뱉었다.

"너 혹시 대표님 좋아하냐?"

"… 뭐, 뭐?! 그, 그게 무슨 소리야…!"

"아니면 아닌 거지 뭘 그렇게 당황해."

"니, 니가 허, 헛소리하니까 그렇지!"

말까지 더듬고 눈에 띄게 당황한 모습의 지서현. 그녀의 얼굴이 빨개졌다.

진호경이 어깨를 으쓱했다.

"아니면 말고."

"… 오해할까 봐 덧붙이는 건데 진짜 바빠서 안 되는 거야. 여기 미국에 놀러 온 게 아니라 출장 온 거라서 대표님 도와드려야 하니까. 그리고 팀장이라 거래소 개발 때문에 온라인으로 프로젝트 진행 상황도 확인해야 하고. 난 아직 많이 부족한데 대표님이 맡기신 거라서… 그 기대에 부응하려면 계속 노력해야 해. 그래서 바쁘다고 한 거야."

지서현이 허겁지겁 변명했다.

그런 그녀의 변명에 진호경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 맞다. 아까 들었어. 너 팀장 달았다며? 늦었지만 축하한다."

"… 고마워. 아무튼 바빠서 술 약속은 안 될 것 같아."

"그럼 어쩔 수 없지."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두 사람의 대화를 뒤에서 듣고 있던 정우는 미안해졌다.

"이런, 내가 괜히 서현 씨한테 부담을 준 것 같아서 미안한데."

"… 아닙니다, 대표님. 제가 원해서 하는 건데요. 신경 쓰실 필요 없습니다."

"그럼 다행이지만. 아무튼 너무 무리하지는 마. 회사가 전부는 아니니까. 서현 씨 인생이 중요하지."

"… 명심하겠습니다. 대표님."

왠지 자기 때문에 연애도 못 하게 만든 것 같다.

악덕사장이 된 기분이라 듣고 있던 정우가 한마디 덧붙였다.

"그럼 서현 씨, 일은 신경 쓰지 말고 오늘은 호경 씨랑 술 한잔 하… 읍읍!"

술 한잔 하고 오라고 얘기하려던 그 순간이었다.

옆에서 듣고 있던 탁세훈이 부리나케 정우의 입을 틀어막았다.

뭐야, 탁 본부장. 갑자기 입은 왜 막아요?

"하하, 우리 대표님이 다른 건 다 좋은데 자꾸 눈치 없이 헛소리를 하시는 경향이 있어서요. 호경 씨, 양해 좀 부탁드립니다."

"아, 예예."

"읍! 읍읍!"

헛소리라니! 그저 배려하려던 것뿐이라고요!

정우가 항변하려 했지만 입은 탁세훈의 굳센 손에 단단히 틀어막힌 상태라 말이 나오지 않았다.

그렇게 아웅다웅하는 대표와 본부장, 그리고 살짝 상기된 얼굴의 지서현을 보면서 진호경은 운전에 집중했다.

하지만 왜일까.

전방을 바라보는 그의 얼굴은 어딘가 모르게 씁쓸해 보였다.

* * *

진호경의 덕분에 무사히 호텔에 도착할 수 있었다. 아까 두 사람 사이를 맞추지 못했던 내기의 결과로 정우는 진호경에게 식사를 대접하기로 했다.

그들이 찾은 곳은 진호경이 가장 좋아한다는 햄버거집이었다.

땅콩기름으로 튀겨 땅콩향이 인상적인 햄버거를 먹으며 정우 일행은 진호경과 얘기를 나누었다.

"벌써 자리 잡았다니 적응이 굉장히 빠르시네요."

"코텍은 2년 정도 있었고 그 뒤로 미국으로 유학 왔거든요. 사실 미국에서 지낸 지 5년도 넘었습니다. 그래서 서현이 보는 것도 되게 오랜만이죠."

"그렇군요. 그럼 군대는…?"

"하하, 미국시민권자입니다. 갈 필요가 없죠. 그래서 남는 시간에 회사를 세워봤는데… 이거 영 어렵습니다."

"회사요? 이제 보니 호경 씨도 대표님이셨구나."

"에이, 대표는요. 여기 이정우 대표님처럼 진짜 대표라 하기엔 뭐하고, 미국에서 개발 공부하면서 마음 맞는 친구들이랑 차고에다가 구멍가게 하나 차린 거죠."

"개러지 스타트업Garage Startup요?"

미국에서는 차고에서 창업하는 일명 '차고창업' 문화가 있는데, 대학 내에서 커리큘럼으로 지원할 정도로 굉장히 유명하다.

정우의 말에 진호경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시는군요. 예. 그래도 시작된 지 얼마 되지는 않았는데 그래도 상당히 유망합니다. 앱 개발을 주로 하는데 제 생각엔 몇 년 이내에 잘 되지 않을까 싶어요."

자신감 있게 말하는 그의 말에 정우는 회사가 하는 일이 궁금해졌다.

"오, 어떤 사업을 합니까?"

"제가 일하는 기업은 앱을 만드는 회사예요. 모든 사회망을 하나로 집약하는 플랫폼을 구축하고 있는데 쉽지는 않네요."

"사회망을 집약한다는 게 구체적으로 어떤 거죠? SNS 같은 걸 통합하는 건가?"

"맞습니다. 예를 들어 페이스북의 인스타그램 DM이나 트위터, 디스코드 등 다양한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들이 있잖아요? 그리고 구글의 유튜브나 아마존의 트위치 같은 방송 플랫폼도 있고, 스포티파이 같은 음악 스트리밍 사이트도 있으며, 온라인 쇼핑이나 뱅킹, 투자 플랫폼도 있죠. 그런데 이 기업들은 전부 다르기 때문에 다른 서비스를 이용하려면 이 아이디를 쓰다가 저 아이디를 써야 하는 불편함이 있구요. 이를 하나로 통합하여 관리하고 쓸 수 있게 하는 플랫폼입니다."

"오, 듣고 보니 그럴싸한데요?"

정우는 진호경의 말에 공감했다.

세상엔 수많은 기업과 거기서 파생된 서비스들이 존재한다. 당연하게도 각 기업마다 계정이 따로 존재하여 그때마다 새로 로그인해야 하고, 비밀번호를 잊어버리면 더욱 불편해진다.

만약 이를 하나로 통합하여 이용할 수 있게 된다면?

"엄청 편하겠네요."

"그렇죠? 다만 문제점이 많아요. 크래킹Cracking 당했을 때 한 사람의 인생이 송두리째 빼앗길 수 있거든요. 그래서 보안이 핵심인데 이게 여의찮습니다. 그리고 기존 기업들과 협약을 맺어서 기존에 만들어져 있는 계정들을 저희 쪽 아이디로 하나로 통폐합해야 하는데 이것도 만만치 않구요. 애초에 협조를 구하기가 어렵달까요."

"그거야 기존 계정은 그대로 두고 귀사에서 개발하는 앱의 계정과 연동시키는 형태로 해결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오 아시네요. 예, 저희도 그쪽 방향으로 프로젝트를 진행 중입니다. 그런데 혹시 개발자셨나요?"

티가 났는지 진호경이 뭔가 눈치챘다는 듯 물었다.

정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예, 맞습니다. 제가 서현 씨, 아니, 지 팀장 사수였죠."

"어쩐지… 개발자 특유의 느낌이 있네요."

"이제 개발에서 손 뗀 퇴물일 뿐입니다."

"에이, 대표이신 분이 겸손하시기까지 하시네요. 이거 우리 서현이 사장님이 좋은 분 같아서 마음이 놓입니다. 하하하."

유쾌하게 웃는 진호경 때문에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숙소에 도착할 수 있었다.

정우는 점점 진호경이라는 친구가 마음에 들었다.

"호경 씨, 일한다는 스타트업에서 만드는 앱 이름이 뭐라고 했죠?"

"라이프Life. 우리의 인생을 관리해줄 앱입니다."

라이프라.

정우는 왠지 끌리는 그 이름을 뇌리에 새겼다.

* * *

호텔에 짐을 풀고 나서 테슬라 미팅 건에 대해 탁세훈으로부터 보고를 받았다.

"테슬라 담당자와 통화했습니다. 대표님께 보고 올려서 일정 확인하고 연락준다고 하네요."

"드디어 일론머스크를 만나는 건가요."

"머스크보다는 배터리사업부 담당자를 만나지 않을까요. 아무래도 일론 머스크가 워낙 거물이니까요."

"하긴 저희는 아직 증명된 게 없으니 머스크가 직접 만나줄 것 같지는 않네요. 직접 만날 방법이 뭐 없으려나."

두 사람이 머리를 맞대고 어떻게 협상을 유리하게 이끌어갈지 고민하던 그때였다.

"대표님, 이거 한번 보시겠습니까?"

지서현이 무언가를 찾은 듯 태블릿을 내밀었다.

<테슬라 CEO 일론 머스크, 하루 앞으로 다가온 국제우주회의IAC 참석한다>

<일론 머스크, 스페이스X의 BFR 프로젝트 발표 예정>

<궁지에 몰린 일론 머스크, 이번 발표로 위기를 극복하는가?>

그것은 하루 앞으로 다가온 일론 머스크의 공개행사 참석에 대한 기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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