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9 : 어떤 멍청이들이? >
"오, 국제우주회의? 이건 뭐지?"
"IAC는 우주사업과 관련하여 학술 토론을 진행하고 새로운 신기술과 제품들을 발표하고 알아보는 컨퍼런스입니다."
"처음 들어보는데. 어쨌든 여기 일론 머스크가 온다는 거지?"
정우의 물음에 대한 대답은 지서현 대신 탁세훈이 했다.
"예. 머스크는 올 수밖에 없습니다. 최근 흔들리는 테슬라 경영 때문에 주주들이 불안해하고 있거든요. 이 불안감을 종식시키려면 그가 직접 주주총회에 나서서 성난 민심을 잠재워야만 하죠."
"예를 들면 스페이스X를 통해 다른 비전을 제시한다든지요?"
"아마 그런 이유일 겁니다. 아무튼 여기 가면 운이 좋으면 머스크와 직접 얘기해볼 수도 있겠는데요?"
"그러게요."
일론 머스크를 만날 방법을 찾아낸 것 같다.
* * *
국제우주회의(IAC: International Astronautical Congress) 컨퍼런스 홀.
그곳엔 구름 같은 인파가 모여 있었다. 바로 이곳에서 천재라 불리는 일론 머스크의 발표가 있기 때문이었다.
마치 우주공간에 온 것처럼 어두컴컴한 공간에서 밤하늘의 별과 같은 조명이 켜지더니 일론 머스크가 박수와 함께 등장했다.
그는 마치 슈퍼스타인 것처럼 한 손을 하늘로 치켜세우며 자신을 향한 환성을 즐겼다.
"아아, 안녕하십니까. 스페이스 X의 CEO, CTO 겸 수석 디자이너 일론 머스크입니다."
와아아아아-!!!
"우선 우주사업을 꿈꾸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영광으로 여길 IAC라는 큰 무대에서 발표의 기회를 주신 국제우주연맹 관계자 여러분께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저는 어려서부터 우주사업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저 광활한 우주에 무엇이 있을까 꿈꾸면서 말이죠. 페이팔을 팔고 막대한 돈을 거머쥔 제가 우주사업에 눈길을 돌린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수순이었습니다. 스페이스X는 이런 저의 꿈을 실현시키기 위한 강력한 도구지요.
…… (중략)……
작년에 스페이스X에서 커다란 프로젝트 하나를 발표할 거라고 말씀드린 지 어느덧 1년이 지났군요. 발표가 너무 늦었습니다. 저희 스페이스X의 BFR 프로젝트를 소개합니다."
말이 끝나기 무섭게 머스크의 뒤쪽에 있던 스크린에 하나의 영상이 재생되었다.
여행객처럼 보이는 간편한 옷차림의 사람들이 발사대를 통해 우주선에 하나둘 탑승한다.
이내 발사대에서 발사되는 우주선. 그 우주선은 높이 치솟더니 대기권을 지나서 아래로 내리꽂혔다.
무시무시한 속도로 움직인 우주선은 이내 추진장치를 이용해 속도를 줄이더니 정해진 착륙지점에 무사히 내려섰다.
그 화면 이후에 초점이 멀어지더니 출발지점과 도착지점을 하나의 선으로 잇는 화면이 떠올랐다.
거리 2,000km, 도달시간 59분.
말도 안 되는 주파시간을 보여주며 뒤이어 하나의 문구가 떠올랐다.
[Big Fucking Rocket-Earth to Earth]
이름을 보는 순간 사방에서 웃음이 터져나왔다.
일론 머스크 특유의 위트가 담긴 이름이었다.
그는 자신이 보유한 회사의 제품명을 유머스럽게 짓기로 유명했는데, 가장 유명한 건 역시 테슬라의 4대 모델이었다.
모델 S, 모델 E, 모델 X, 모델 Y.
연달아 부르면 SEXY가 되는데, 모델 E는 포드와의 상표권 분쟁으로 인해서 모델 3라는 비슷한 형태의 이름으로 바뀌었다.
Big Fucking Rocket─졸라게 큰 로켓─이라는 이름의 이 로켓 역시 고전 명작 게임, 둠DOOM의 Big Fucking Gun─졸라게 큰 총─에서 따온 이름이었다.
이름만으로 분위기를 환기한 일론 머스크.
그 문구가 줄어들며 [BFR:E2E] 라는 키워드를 마지막으로 영상 재생이 멈추자, 그가 연설을 이어나갔다.
"BFR:E2E 프로젝트. 일명 빅퍼킹로켓BFR이라는 거대로켓을 이용하여 어스 투 어스Earth to Earth, 승객을 지구상 어느 도시건 1시간 이내에 이동시키는 걸 목표로 합니다."
"뉴욕에서 런던까지 29분, 시드니에서 도쿄까지 35분, 시드니에서 취리히까지 50분만에 승객을 실어 나를 수 있습니다."
"구름 위에서 비행하는 고고도 비행이기에 날씨에 영향을 받지 않고 운항이 가능합니다."
"앞으로 항공운항사업의 역사는 저희 BFR 프로젝트 이전과 이후로 나뉘게 될 것입니다."
일론 머스크는 잠시 말을 멈추고 환호성을 유도했다.
소소한 박수 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그가 기대한 것만큼의 반응은 아니었다.
오히려 한 관객이 손을 들어 발언을 요구했다.
"저분이 하실 말씀이 있으신 것 같군요. 진행요원? 저분한테 마이크 좀 갖다주세요."
진행요원에게 마이크를 받은 관객이 입을 열었다.
"아아, 감사합니다. 미스터 머스크, 당신에게 질문이 있습니다. BFR 프로젝트는 일전의 음속을 돌파한 초음속 여객기인 콩코드기 프로젝트와 비슷한 것 같습니다. 하지만 콩코드기는 현재 폐기되었죠. 기름을 보통 비행기에 비해 4배나 더 잡아먹고, 공기역학 때문에 객실은 비좁아서 불편하기 이를 데 없었으며, 소닉붐으로 인한 소음 문제도 심했죠. 무엇보다 음속 돌파시 생기는 충격 때문에 내구도 손상도 심해서 안전상에 결함이 생길 확률이 높습니다. 실제로 콩코드기는 폭발하기도 했죠. 이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합니까?"
"콩코드는 덜떨어진 여객기일 뿐, 우주항공에 대한 이해가 없는 졸작입니다. 저희 BFR과 비교하지 마십시오."
일론 머스크는 대답할 가치조차 없다는 듯 질문을 넘겨버렸다.
그러자 다른 관객이 바통을 이어받았다.
"스페이스X는 그렇다 칩시다. 그런데 테슬라는 어쩔 겁니까?"
"여기는 스페이스X에 대한 발표 자리입니다. 스페이스X에 대해서만 질문해주십시오. 다음."
"테슬라가 망하면 스페이스X도 부도야! 퍼킹 이디엇!"
발언 기회를 잃은 마이크가 이내 꺼졌지만 관객이 흥분한 듯 소리쳤다.
조용하던 컨퍼런스 홀에 그의 항의가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그러자 발표회는 이내 술렁이기 시작했다.
"그러고 보니 머스크 지금 배임 혐의로 고소당하지 않았어?"
"지금 스페이스X에 대해 얘기할 때가 아닐 텐데."
"기가팩토리도 제대로 돌아가지 않아서 모델3를 수작업으로 생산 중이라는 얘기도 들려오더만."
"아무리 생각해도 일론 머스크가 지금 이럴 때가 아니라고 본다."
"일해라 머스크!"
우우우우우-!!!
야유소리가 컨퍼런스 홀을 메우기 시작했다.
최악이다.
머스크는 씁쓸했지만 티 내지 않고 마이크를 들었다.
"소란스럽군요. 국제우주회의인 만큼 스페이스X를 제외한 테슬라에 대한 질문은 받지 않겠습니다. 질문 있으신가요? 더 이상 없으시다면 여기서 마치도록…."
발표회를 마무리하려던 그때, 관객석 한쪽에서 열심히 손을 흔드는 한 사람이 보였다.
깔끔한 슈트 차림의 동양인 남자.
왠지 열성적으로 보이는 그가 테슬라의 팬이길 바라며 머스크는 마지막으로 그에게 발언 기회를 주었다.
마이크를 받아든 동양인 남자는 담담히 입을 열었다.
"아아, 감사합니다. 저는 멀리 한국에서 날아온 테슬라의 팬입니다. 지금 테슬라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이 큰 것 같은데, 한마디만 하겠습니다. 테슬라는 혁신입니다. 자동차 부품의 제조부터 조립 및 완성까지 하나의 공장에서 마무리할 수 있는 기업이 전세계에 몇이나 될까요? 전무합니다. 이런 생산성 차이는 시간이 지날수록 다른 자동차 기업들과 테슬라의 격차를 벌이게 하는 요소가 될 것입니다."
그의 발언에 컨퍼런스 홀에 야유가 울려 퍼졌다.
"기술 같은 소리 하고 있네!"
"테슬라 주가가 얼마나 떨어진 줄 알아!"
"혁신이고 자시고, 이대로 망하면 무슨 의미야!"
그들의 야유를 정면으로 받으면서, 동양인 남자는 목소리에 힘을 실어 더욱 크게 외쳤다.
"그건 월가의 공매도 세력들 탓입니다! 테슬라에 굉장히 큰 문제가 있는 것처럼 호도하고, 그를 바탕으로 떨어지는 주가를 이용하여 이득을 보는 이들이 있기에 테슬라의 혁신이 제대로 날개를 펼 수 없는 겁니다!"
"저 씹다 뱉은 부랄 같이 생긴 놈 혹시 일론 머스크가 심어둔 스파이 아니야?"
"퍼킹 차이니즈! 니네 나라로 돌아가!"
엄청난 야유 세례에 동양인 남자가 뻘쭘해 하며 마이크를 내려놓았다.
하지만, 일론 머스크에 부정적인 사람들만 있는 건 아니었다.
몇몇 머스크의 팬보이들과 테슬라를 향한 공매도 폭격을 못마땅해 하던 이들이 천천히 박수를 보냈다.
머스크는 그 덕택에 좀 더 차분하게 발표회를 마무리 지을 수 있었다.
무대에서 내려온 머스크는 얼굴이 일그러졌다.
"Fuck! 바보들 같으니라고. 망하긴 누가 망한다는 거야!"
반드시, 테슬라는 반드시 성공한다.
하지만 그들의 말마따나 한 걸음만 잘못 내딛어도 테슬라는 고꾸라지기 일보직전이었다.
특히 공매도 세력.
일론 머스크는 '난쟁이(Dwarf)'라고 부르곤 하는, 테슬라에 숏 포지션을 유지하고 있는 이들이 문제였다.
월가의 거물들은 물론이거니와, 심지어는 같은 IT 업계의 선구자이자 거물, 마이크로소프트의 빌 게이츠조차도 테슬라를 향해 숏 포지션을 취했다.
존경하는 선배조차도 자신의 패망에 베팅했다는 사실에 그가 얼마나 절망했던가.
머스크 자신도 이 사실을 인정하기는 싫었지만 알고 있었기에 애플에 매각 제안을 한 것이었다.
"미스터 머스크, 사인회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후… 알겠어요. 갑시다."
이후 가면을 쓴 채 행사에 참석한 인파들과 함께 사진도 찍고 사인도 해주던 머스크.
정신없이 팬 서비스를 해주던 그때, 낯익은 얼굴이 그의 앞에 섰다.
"… 당신은?"
바로 아까 발표회에서 마지막에 그를 도와준 동양인 청년이었다.
머스크 앞에선 사내가 씨익 웃었다.
"반갑습니다, 머스크 씨. 저는 네뷸라 코퍼레이션의 대표 이정우라고 합니다."
정우가 머스크에게 악수를 내밀었다.
* * *
확실히 눈도장을 찍은 덕분일까.
머스크는 흔쾌히 미팅하고 싶다는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들은 일론 머스크를 따라 캘리포니아 주 팔로알토에 있는 테슬라 본사로 향했다.
정우와 일행들은 미국 특유의 압도적인 규모에 어깨가 짓눌리는 듯한 압박감을 느끼며 회의실에 도착했다.
"자, 미스터 리Lee. 한 회사의 대표라고 들었습니다. 저에게 하고 싶은 얘기가 뭡니까?"
"저희 회사가 생산한 배터리를 귀사에 납품하고 싶습니다."
"배터리를요?"
전혀 예상치도 못한 말이었는지, 머스크가 크게 당황한 눈치를 보였다.
그저 한 명의 사업가로서 조언 정도나 구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는데, 그를 한참 벗어난 말이었던 것이다.
"예. 일단 이것부터 보시죠. 탁 본부장님?"
정우의 부름에 따라온 탁세훈이 가방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얇은 필름 형태의 네모반듯하고 납작한 셀이 투명한 케이스에 층층이 겹쳐 있다.
네뷸라의 전고체 배터리 솔리드스타였다.
솔리드스타의 외형을 본 일론 머스크는 그게 무엇인지 바로 알아보았다.
"파우치형 배터리 셀이군요. 모여 있는 걸 보니 이건 모듈입니까?"
"예."
"모듈이 이 정도 크기라니… 굉장히 가볍고 작네요."
"한번 살펴보시겠습니까?"
정우가 머스크에게 솔리드스타를 건넸다.
이리저리 살펴보던 그가 물었다.
"정말 이게 전고체배터리란 말입니까?"
"그렇습니다. 그것도 기존 전고체배터리의 단점이었던 느린 충전속도를 개선한 제품입니다."
"느린 충전속도를 개선했다구요?"
머스크는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이었다.
"솔직히 믿기지 않네요. 테스트 좀 진행해봐도 되겠습니까?"
"물론입니다."
그들은 곧장 랩실로 향하여 테스트를 진행했다.
테스트 결과를 통해 솔리드스타의 스펙을 확인한 일론 머스크가 입을 떡 벌렸다.
"말도 안 돼! 이 조그만 모듈 하나가 14.5KWh의 충전용량을 지녔다고요?"
"결과로 나오지 않았습니까. 저희가 개발한 솔리드스타의 성능은 진짜입니다."
"Holy Shit…!"
충전용량뿐만 아니라 전체적인 성능 역시 그가 알고 있는 리튬이온배터리에 비해 2.8배가량 뛰어났다. 거기에 유일한 약점이었던 느린 충전속도마저 개선되었다니.
잠시 말을 잇지 못하던 머스크. 하지만 이내 표정이 원래대로 돌아왔다.
"… 얼마를 원하십니까?"
"KWh당 700달러를 원합니다."
현재 전고체배터리의 가격은 KWh당 600달러 수준이었으니 언뜻 들으면 합리적인 가격으로 보였다.
하지만 테슬라에 들어가는 리튬이온배터리의 평균 가격은 KWh당 140달러 수준이었으니 말도 안 되는 수준이었다.
"KWh당 700달러요? 말도 안 되는 가격입니다. 모델3에 50KWh짜리 배터리팩을 넣으려면 배터리 가격만 35,000달러인 건 계산해보시고 말하는 겁니까?"
"규모의 경제만 실행되면 가격은 떨어질 겁니다. 제 생각에는 3년 이내에 통상적인 리튬이온배터리의 수준까지 가격을 떨어트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규모의 경제가 실행되기 전까지 그쪽을 위해서 그런 말도 안 되는 가격에 납품을 받으라는 겁니까?"
살짝 핏대까지 세우며 낮게 말하는 머스크에게, 정우가 빙그레 웃으면서 답했다.
"모델 3나 Y에는 못 넣어도, 모델 S의 최상위 라인업 그 이상. 혹은 로드스터 같은 준 슈퍼카급의 차량에는 이 가격에 납품을 받아도 타산이 맞겠지요?"
"그건 그렇지만…."
"최상위 라인업이 이런 성능을 낸다면, 시장은 어떻게 반응하겠습니까?"
일론 머스크도 이 분야의 전문가 중 전문가.
정우의 말을 잠시 곱씹다가 바로 그 뜻을 알아차렸다.
"규모의 경제가 실행된 이후에는 곧 하위 라인업의 모델로 해당 기술이 내려올 거라고 추측하겠지요."
그리고 그 기술이 하위 라인업까지 내려오면.
전기차 시장은 테슬라의 손에 완벽하게 떨어진다.
"테슬라 주가는 달나라로 향할 것이고To the Moon, 공매도 포지션을 잔뜩 걸어놓은 월가에서는 곡소리가 나올 테고요."
일론 머스크는 눈앞의 사내가 말한 이야기에 순간 가슴이 뛰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그는 프로답게 냉철하게 나왔다.
"좋습니다! 일단 그쪽으로 가닥을 잡고 진행하죠. 다만 확인하고 싶은 게 있습니다."
"얼마든지요."
"네뷸라 코퍼레이션이라고 했죠? 저는 귀사의 이름을 시장에서 단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심지어 당신이 왔다는 한국에서조차요."
"아아."
"조금이라도 저렴하고 질 좋은 배터리를 찾아 동북아를 하이에나처럼 돌아다니던 접니다. 이름이라도 들어보았다면 잊을 리가 없지요."
잠시 말을 멈추고 날카로운 시선으로 정우를 훑던 일론 머스크가 천천히 입을 뗐다.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지요. 우리는 귀신Ghost과는 일하지 않을 겁니다."
실체가 없는 이들과는 사업도 하지 않는다.
이 얘기가 나올 줄 알았다는 듯 정우는 웃으며 막힘 없이 대답했다.
"귀신이라니요. 작지만 한국에 공장이 있고, 양산 준비에 들어갔습니다. 최상위 모델의 수요 정도는 충당 가능한 케파가 있습니다."
그러면서 공장의 설비와 생산 가능량을 담은 사진과 자료를 스마트폰으로 보여주자, 머스크는 안도하면서도 동시에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정우는 그의 복잡한 표정이 어떤 의미인지 알았다.
"규모 때문이라면 너무 실망하실 필요 없습니다. 곧 덩치를 불릴 생각이니까요."
"그게 말처럼 쉬웠다면 우리가 이 꼴은 아니었겠지요."
"AESC를 인수할 예정입니다."
"잠깐, 어디요?"
"닛산의 자회사 말입니다. 이름이 Automotive…."
"배터리 찾아 동북아 삼국을 돌아다녔다고 했잖습니까. 거기가 어딘지는 압니다. 다만 분명 AESC는 중국에 거의 인수되기 직전 막바지 분위기일 텐데요."
"저는 머스크 씨와는 다르게, 아웃사이더 기질이 있어서요."
무슨 말인지 몰라 눈을 휘둥그레 뜨는 머스크에게, 정우가 덧붙였다.
"아웃사이더들은 남의 파티 망치는 데 천부적인 자질이 있죠."
"하하하… 중국 자본과 정면으로 붙어보겠다는 겁니까? 어디서 돈줄을 제대로 움켜쥐신 모양이군요."
만일 AESC를 인수할 수만 있다면, 규모의 경제가 발동하는 것도 훨씬 빨라질 수밖에 없다.
같은 돈을 가지고도 회사를 직접 만드는 대신에 인수하는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모든 면에서 진행 속도를 빠르게 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테슬라처럼 모래투성이 네바다 사막 맨땅에서 일어날 필요가 없는 셈이다.
"AESC를 인수하기까지 한다면 이거 더욱 거절할 이유가 없는 제안이 되겠군요. 아니, 거절해서는 안 되는 제안이에요."
이걸 거절했을 때, 그리고 이 배터리가 다른 전기차 제조사로 갔을 때의 상황을 떠올린 일론 머스크는 온몸에 소름이 돋아날 지경이었다.
그리고 정우의 말을 들었을 때.
"사실 이미 거절당한 제안입니다만."
그는 소름이 돋다 못해 머릿속이 하얗게 될 지경이었다.
테슬라가 처음이 아니었다고?
"예? 아니, 어떤 병신… 미안합니다. 어떤 멍청이들이 거절했답니까?"
"유일자동차에서 거절하더군요."
"푸하하! 이거 유일자동차 계약 담당자에게 가서 절이라도 하고 와야겠는데요?"
아시아인에 대한 고정관념 가득한 어설픈 불교 스타일로 합장까지 하는 머스크의 행동에, 정우는 기어이 웃음을 터트릴 수밖에 없었다.
* * *
테슬라와의 미팅은 성공적으로 끝났다.
네뷸라 케미컬과 전고체배터리 독점 납품 계약을 체결했다.
"그런데 미스터 머스크, 파나소닉과의 배터리 독점 공급 계약이 있지 않습니까?"
"리튬이온배터리에 한해서입니다. 전고체배터리는 문제없어요. 그보다 솔리드스타를 탑재한 모델S 시제품 생산을 위해 솔리드스타팩 샘플을 서둘러 보내주십쇼."
"한국 네뷸라 케미컬 공장에 연락해서 바로 요청하겠습니다."
납품 수량은 정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현재 테슬라의 유동자산이 말라서 대금을 치를 여력이 없었기 때문이다. 대신 대량 계약보다는 모델S 공개행사 이후에 주문수량과 들어오는 계약금을 보고 납품수량을 정하기로 결정했다.
"기가팩토리 생산라인을 솔리드스타에 맞춰 통째로 변경하는 게 아니라 모델S 하나만 수작업으로 제작하는 거라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 겁니다."
"멋진 결과물이 나오길 기대하겠습니다."
모든 계약이 마무리되고.
그제야 탁세훈 본부장은 한숨 돌렸다.
"저희가 진짜 테슬라와 계약을 따내다니… 믿기지가 않네요."
"그래도 어느정도 예상하지 않으셨습니까? 저희 기술력이면 테슬라가 발 벗고 나서는 게 당연한 결과였습니다. 전 될 거라고 믿었어요."
"그건 그렇지만 쫄리는 건 어쩔 수 없네요. 다른 회사도 아니고 무려 테슬라니까요."
"겨우 이 정도로 쫄아서 되겠습니까. 우리 회사는 앞으로 테슬라만큼, 아니 그 이상으로 커질 겁니다."
"하하, 대표님의 그 포부, 본받겠습니다. 그나저나 테슬라 건은 마무리되었는데 다음 행보는 어디입니까?"
궁금한듯 묻는 탁세훈의 말에 정우가 웃었다.
"법인. 미국에 법인을 세울 거예요."
솔리드스타가 탑재된 모델S가 공개되면 테슬라는 반드시 떡상하게 될 터.
그 전에 주식을 매집해야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