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2 : DOE 지원사업 심사 >
"저희는 공장과 인프라만 필요합니다."
"기술 이전 없이 테네시 공장만 인수하겠다는 말씀이십니까?"
"그렇습니다."
"하지만 저희는 온전히 매각을 원합니다. 반쪽만 넘겨드릴 수는 없습니다. GSR이 반쪽짜리 AESC를 원할지 미지수니까요."
히로토 대표의 말에 정우는 답답해졌지만 인내하며 차분히 설명을 이어나갔다.
"저희에게 테네시 공장만 넘겨도 GSR에 충분히 제값 받고 AESC를 매각할 수 있을 겁니다. 왜냐하면 GSR측도 미국 공장을 원하지 않을 테니까요?"
"미국 공장을 원하지 않는다구요? 그게 무슨 소리죠?"
"현재 트럼프 정부는 중국 자본을 혐오하고 탄압하니까요. 만약 AESC가 중국 자본에 매각된다면 정부 탄압 때문에 테네시 공장이 제대로 돌아가지 못할 겁니다."
"… 아!"
정우의 설명에 히로토 대표가 무언가 깨달았다는 듯 탄성을 질렀다.
"어차피 중국쪽 자본에게 있어서 미국 공장은 계륵이나 마찬가지라는 얘기군요?"
"맞습니다. 사실 GSR측에서도 이 점을 염두에 두고 AESC를 인수하자마자 테네시 공장은 다른 기업에 매각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미국 땅에서 사업하기는 어려울 테니까요."
"… 듣고 보니 그렇네요."
설명을 다 들은 히로토 대표는 조건을 저울질하는 눈치다.
아니 저울질할 필요도 없이 무조건 이득이다.
AESC가 800억 엔이라는 가치를 가진 건 공장도 그렇지만 보유한 배터리 관련 특허가 컸으니까.
즉, 미국 테네시 주에 위치한 AESC 공장만 따지면 3억 달러도 채 안 될 것이다.
'그런데 그걸 5천만 달러를 더 받고 넘긴다?'
남은 공장과 기업을 GSR에 제값에만 팔아도, 네뷸라와의 거래만으로 거의 60억 엔 넘게 이득을 볼 수 있으니 무조건 받아들여야만 하는 제안이었다.
히로토 대표는 정우의 제안을 덥썩 받아들이려다가 인내를 발휘했다.
"… 긍정적으로 검토해보겠습니다."
"지금 이 분할매각 제안을 GSR 측과 한번 얘기해보십시오. 아마도 긍정적인 답변이 올 거라 기대합니다."
"알겠습니다."
"그리고 GSR측과 협상 진행하실 때 우릴 이용해서 인수가를 올려보세요. 저희가 최대한 장단을 맞춰드리겠습니다."
"그래 주신다면 더 없이 감사할 따름입니다. 알겠습니다. 확인 후 연락드리도록 하지요."
"긍정적인 답변 기다리겠습니다."
* * *
곧 연락주겠다는 말과 달리 닛산 측에서는 회신이 없었다.
대신 AESC 매각 관련 기사만 하루가 다르게 쏟아져 나왔다.
<지지부진하는 AESC 매각 건, 하락하는 닛산의 주가>
<침묵하는 르노닛산 카를로스 곤 회장>
<혼란한 상황에 불안해하는 미 테네시 주 AESC 공장 노동자들>
……
이 소식은 당연하게도 업계에 밝은 머스크의 귀에도 들어갔다.
"AESC를 인수한다더니만, 박 터지게 싸우고 있군."
네뷸라 측에서 보내준 솔리드스타 팩이 막 도착하여 모델S에 장착하려고 설계도를 만지던 그는 기사를 보고 웃었다.
자신만만하게 AESC를 인수한다던 이정우 대표가 떠올랐다.
예상한 대로 상황이 잘 안 풀려서 답답할 터.
"… 지원사격 좀 해줘야겠어."
그가 정우를 지원하려는 이유는 간단하다. 현재 테슬라에 배터리 공급을 전담하고 있는 파나소닉이 마음에 들지 않았으니까.
결국 솔리드스타라는 퍼펙트한 배터리를 안정적으로 공급받으려면 정우의 네뷸라 케미컬을 키워야만 하는 입장인 것이다.
'내가 제일 잘하는 걸 하자고.'
머스크는 태블릿을 들어 곧장 트위터를 열었다.
눈을 감아도 타이핑이 가능할 정도의 경지에 오른 그의 손가락이 바쁘게 태블릿 위를 날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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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lon Musk @elonmusk]
-닛산은 네뷸라한테 파는 게 나을걸? 머리가 장식이 아니라면 말이야 hahah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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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lon Musk @elonmusk]
-테네시 AESC 공장이 중국기업이 되면 볼만하겠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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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lon Musk @elonmusk]
-트럼프의 반중 정책은 실패했어! 곧 미국땅 한복판에 중국 공장이 세워질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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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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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동이 트위터판을 어지럽히기 시작했다.
자극적인 워딩으로 도배되는 게시글들.
그 어그로의 화룡점정을 마지막 트윗이 장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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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lon Musk @elonmusk]
-트럼프, 너 지금 뭐하고 있어? 느긋하게 가발 정리할 때가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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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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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미국 대통령을 저격하는 트윗에 리트윗ReTwit이 폭발했다.
세계가 AESC 매각 건을 주목하기 시작했다.
* * *
한편 그 시각.
정우는 닛산 측의 연락을 기다리느라 시간을 허비하지 않았다.
대신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에 집중 중이었다.
바로 에너지부 배터리기업 지원사업에 접수하는 것이다.
"투자계획서를 넣었으니 조만간 연락이 올 겁니다. 저희는 그 전에 솔리드스타 샘플을 준비해야 해요."
"본사에 연락 넣었으니까 곧 올 겁니다."
당연하게도 네뷸라 케미컬의 지원사업 서류 심사는 단번에 통과되었다.
남은 건 배터리 실질 심사.
스케줄을 맞춰 배터리 시연과 성능 테스트를 진행하기 때문에 배터리 샘플을 본국에서 가져와야 했고, 다행히 일정에 맞추어 받을 수 있었다.
"테스트 진행은 에너지부 산하기관인 오크리지 국립연구소에서 합니다."
"일정 맞추려면 서둘러 이동해야겠네요."
"바로 비행기 티케팅하겠습니다."
정우는 탁세훈 본부장과 함께 오크리지 연구소로 향했다.
캘리포니아에서 정반대인 미국 동부 테네시 주의 오크리지 도시에 위치해 있는 오크리지 국립연구소(ORNL: Oak Ridge National Laboratory)는 미국 에너지부의 지원하에 에너지 및 기초과학을 연구하는 기관이었는데, 그 규모가 말도 못 하게 컸다. 거의 하나의 소형 마을 정도 크기였다.
"와 진짜 크네요. 미국은 진짜 다 큽니다."
"압도적이네요."
그들이 오크리지 국립연구소의 규모의 감탄할 때 방송 스피커 소리가 흘러나왔다.
-배터리지원사업 참가 업체 관계자분들께서는 신소재연구소-B2동으로 모여 주시기 바랍니다.
테스트 진행을 돕는 안내 방송에 따라 연구실로 모였다.
"너무 일찍 왔나 본데요? 저희밖에 없네요."
"그러게요. 어? 저거 배터리인가요?"
"맞는 것 같습니다. 아, 저희 솔리드스타도 저기 있네요."
배터리 성능을 측정하기 위한 각종 정밀 시설들이 갖춰져 있는 연구실. 거기엔 미리 운반되어 온 각종 배터리들이 한쪽에 모여 있었다.
배터리에 붙어 있는 로고 스티커들. 아마도 테스트에 참가한 기업들의 로고로 보였다.
슬쩍 참가한 기업들의 면면을 살폈다.
"LFP 점유율 업계 1위 파나소닉에서도 참가했나 보네요. 여기 로고 붙은 배터리가 있네. 업계 2위 CATL 배터리는 안 보이고요."
"아무래도 CATL은 중국 자본이니 미국 지원금 먹기 그랬을 것 같긴 하네요."
"그렇죠? 그래도 진성도 왔고, AESC도 참가했나 보네요. 어? 대한화학에서도 참가했네요?"
탁세훈의 말마따나 놀랍게도 DOE 지원 사업에는 대한화학측에서도 참가한 상태였다.
대한화학의 훼방 때문에 해외 판로를 찾던 와중이라 그리 달갑지만은 않았다.
그때였다.
그들만 있던 연구실에 지원사업에 참가한 기업관계자들로 보이는 인물들이 들어섰다.
대부분 서양인들로 보이는 무리들 사이에서 정우는 익숙한 동양인 얼굴을 발견했다.
"한국인?"
* * *
대한화학의 미국지사 대외협력사업팀을 맡고 있는 김명훈 팀장.
그는 대한화학에서 일하는 것에 대단한 자부심이 있었다. 진성에 밀려 대한그룹이 만년 국내 2위이긴 했지만 그래도 배터리사업쪽에선 국내 1위였고, 세계3위 규모라 해외에서도 인정받기 때문이다.
그런 자부심으로 똘똘 뭉친 김명훈은 오늘 오크리지 연구소를 업무차 방문했다. 이번 DOE 지원사업의 지원금을 받기 위해서였다.
일행 중 한 명이 앓는 소리를 냈다.
"팀장님, 이번 테스트 심사 잘 될까요?"
"걱정 마. 이번 지원 사업은 우리가 올킬 할 거야. 이번에 우리가 개발한 NMC800은 최고니까. 최소 5억 달러는 우리 거라고 본다."
현재 배터리 시장은 리튬인산철LFP배터리가 독주 중이었다. 배터리를 주로 쓰는 전기차시장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배터리 가격이었는데, LFP 배터리가 니켈망간코발트NMC배터리보다 가격이 쌌기 때문에 LFP배터리에 대한 수요가 훨씬 컸기 때문이다.
하지만 LFP배터리는 제조시 습도관리의 어려움과 겨울철 저온 환경에서 에너지 효율이 떨어지는 단점 때문에 점차 NMC나 NCA와 같은 삼원계 배터리로 관심이 쏠리고 있었고, 이에 맞춰 대한화학에서는 NMC800이라는 성능 좋은 배터리를 개발한 것이다.
"NMC800의 성능은 그만큼 뛰어나니 부담 가질 필요도 없어. 이번 테스트 진행 때 다른 업체들이 아주 깜짝 놀랄 거고, 우리는 그놈들이 부러워하는 시선을 즐기기만 하면 된다고."
불안을 해소시켜주며 자신만만하게 연구소에 도착한 김명훈 일행. 그들이 테스트 진행을 위해 연구실에 들어서던 그때였다.
"한국인?"
익숙한 외모의 동양인들을 발견했는데, 그들도 자신을 발견하고 놀란 얼굴이다.
김명훈이 물었다.
"어? 한국인이세요?"
"예. 네뷸라 케미컬의 이정우라고 합니다."
네뷸라 케미컬? 들어본 듯 들어본 적 없는 이름.
아무래도 무명기업인 것 같았다.
대한화학 출신인 김명훈은 자부심이 한껏 드러나는 얼굴로 자신을 소개했다.
"아, 저는 대한화학에서 대외협력사업 파트에서 일하고 있는 김명훈이라고 합니다. 반갑습니다."
"저도 반갑습니다. DOE 지원사업 때문에 오셨나 보네요."
"여기까지 온 걸 보면 그렇죠? 그런데 네뷸라라고 하셨나요? 무슨 사업을 하시나요?"
"당연히 배터리 사업을 하고 있습니다."
"배터리사업이라면… 아!"
배터리사업과 연관 지으니 방금 떠오르는 기사가 있었다.
"혹시 최근에 AESC 인수를 한다는 그곳입니까?"
"예. 맞습니다."
"아… 역시 그곳이었군요. 근데 인수사업이 한두 푼이 드는 게 아니라 어려우실 텐데."
저 젊은 청년이 무슨 직급인지는 모르겠지만, 네뷸라 케미컬이라는 신생회사가 AESC를 인수할 대금이 있겠냐는 김명훈의 무의식이 은연중에 담겨 나왔다.
그 뉘앙스를 눈치챈 건지 모르는 건지는 몰라도 눈앞의 이정우라는 사내의 반응은 담담했다.
"나름 잘 해보고 있습니다."
"그렇군요. 잘 되시길 바라겠습니다."
그 말을 끝으로 어색하게 대화가 끝났다. 딱히 이정우라는 무리와 친해지고 싶은 생각은 없었기 때문이다.
대한화학 미국지사에서 일하는 동안 네뷸라 케미컬이라는 이름은 처음 들어봤기 때문에 그저 스쳐 가는 인연 정도라 판단했기 때문이다. 저 신생아 같은 기업이 이 정글 같은 미국에서 살아남기 어렵다고 판단한 것.
대신 연구실에 들어선 파나소닉을 비롯한 다른 업계 관계자들과 정신없이 인사를 나누었다. 안면을 트기 위해서였다.
"반갑습니다. 대한화학의 대외협력사업에서 일하고 있는 김명훈입니다."
"파나소닉에서 온 프랭크 존슨입니다. 미스터 킴, 반갑습니다."
그가 관계자들과 인맥을 쌓던 그때, 누군가 연구실에 들어섰다.
"안녕하십니까. DOE 배터리지원사업 선정 및 심사를 맡게 된 오크리치 신소재연구소 소장, 토마스 자카리아입니다. 지금부터 참가 기업들이 제출한 배터리 성능 측정을 위한 1차 테스트 진행을 하겠습니다."
드디어 테스트 심사가 진행이 되는 건가.
김명훈은 드디어 NMC800의 우수성을 보여줄 수 있다는 생각에 기대감이 차올랐다.
이윽고 진행된 테스트.
"파나소닉 CR-1/3A22N LFP배터리 충전용량 테스트 진행하겠습니다."
파나소닉을 시작으로 각종 배터리의 성능 테스트가 진행되었다.
테스트는 굉장히 다양했는데 충전용량부터 시작해서 충전속도, 최대출력, 안전성 등을 테스트했고, 심지어 같은 항목이어도 온도와 습도를 최소단위로 수정해가면서 리테스트했다.
굉장히 꼼꼼한 검사가 이루어졌기 때문에 하나의 테스트만 해도 수십 시간씩 소모되었다.
당연히 하루만에 끝낼 수 없고 무려 이주일짜리 프로젝트였는데, 이게 겨우 '1차' 테스트였다.
2차 테스트는 단 하나의 항목인 배터리 수명 테스트하는데, 결과는 한 달 넘게 소모되었다. 왜냐하면 배터리를 충전했다가 방전하는 걸 수백 번 사이클을 돌려야 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3차 테스트로 제조환경까지 돌아보고 나서야 심사가 마무리되었다.
'1차 테스트에서 1등을 한다.'
김명훈의 목표는 배터리 성능 전반을 확인하는 1차 테스트에서 NMC800이 1등을 하는 것이다. 솔직히 다른 테스트는 기간만 많이 잡아먹을 뿐, 실질 심사 변별력은 1차 테스트에 있었으니까. 즉, 1차 테스트가 지원사업 통과의 핵심이었다.
몇 주에 걸친 스파르타식 테스트 일정. 그 강행군을 김명훈은 일행들과 함께 근처 호텔을 잡고 묵으면서 버텼다. 다른 기업들 역시 마찬가지로 눈에 불을 켜고 테스트 과정을 지켜봤다.
혹여나 테스트 과정에 부정행위가 개입되면 안 되니까. 그만큼 그들 모두가 지원금 수령이 간절하고 목을 메고 있었다.
"팀장님, 결과 나왔습니다!"
"정말로! 봐봐!"
그리고 마침내 결과가 나왔다.
김명훈의 바람대로 1차 테스트에서 NMC 800은 다른 배터리를 누르고 높은 점수를 받았다.
100점 만점에서 무려 86점이라는 압도적인 점수를 받았으니까.
하지만 대한화학은 1등이 아닌 2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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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nk] / [Name - Battery] / [Point]
1. Nebula.Chem. - SolidStar (99)
2. DAEHAN.Chem. - NMC800 (86)
3. PANASONIC - CR-1/3A22N (8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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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화학 위에는 네뷸라 케미컬의 솔리드스타가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