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코인 후 인생 대박-69화 (69/120)

< 69 : 새로운 연못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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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우]: 자, 이제 너희가 해야 할 선택지가 나뉜다

[정우]: 여기서 익절을 하거나

[정우]: 존버해서 에이다가 1,000원 이상 간 이후에 파느냐

[KKD]: 에이다가 1,000원을 간다고?

[KKD]: 말도 안 돼

[KKD]: 이미 시총 5조원을 넘었는데 여기서 더 오를 수가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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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나름 차트를 볼 줄 안다고 김경도가 의문을 제기했다.

일견 타당하다.

이때의 누가 에이다가 1달러를 넘을 거라고 예상이나 했겠는가?

정우도 미래에 언뜻 들어서 알고 있는 거지, 만약 정보가 없었다면 여기서 다 팔라고 얘기했을 것이다.

하지만 에이다가 1달러를 가는 건 정해진 미래다.

그렇기에 친구를 설득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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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우]: 나 못 믿냐?

[정우]: 이제 시작일 뿐이야

[정우]: 상승장이 시작되면 신규 투자자들의 어마어마한 자금이 유입될 거고

[정우]: 에이다는 반드시 1,000원 이상 갈 거야

[정우]: 문제는 그 전에 다른 코인들 역시 엄청나게 오를 거라는 거지

[봉수]: 오…

[정우]: 그래서 여기서 선택지가 생기는 거야

[정우]: 에이다만 존버할 건지

[정우]: 아니면 일부 익절하고 다른 코인들도 맛볼 건지

[정우]: 선택해야 하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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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어느쪽을 고를 거냐.

정우가 제시한 선택지에 대한 대답은 금세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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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KD]: 바보가 아닌 이상 선택지는 하나지

[KKD]: 에이다 일부 익절하고, 다른 코인들도 먹어보자

[봉수]: ㅇㅇ 우린 욕심쟁이라고

[동현]: 찬성

[정우]: 굳굳

[정우]: 그럼 익절 얼마만큼 할 거냐?

[KKD]: 절반?

[동현]: 절반 좋은 듯

[봉수]: 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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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반을 팔겠다는 친구들.

적절한 선택이다.

하지만 정우는 바로 익절하지 못하게 했다.

왜냐하면 '역프리미엄'을 이용해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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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우]: 절반 파는 건 좋아

[정우]: 근데 잠깐 팔지 말고 있어봐

[봉수]: 왜?

[봉수]: 가격 좀 빠질랑 말랑 하는 거 같은데 빨리 팔아야 하는 거 아니야?

[정우]: 다시 여기서 선택지가 나뉘거든

[정우]: 국내 거래소에서 익절할 건지

[정우]: 해외 거래소에서 익절해서 '역프'를 먹을 건지

[봉수]: 역프? 그게 뭐야?

[정우]: 역프가 뭐냐면 역프리미엄의 축약어인데

[정우]: 간단히 말해서 우리나라 코인의 가격 시세가 해외보다 낮다는 의미야

[KKD]: 아!

[KKD]: 그럼 해외에서 팔면 더 비싸게 팔 수 있겠네?

[정우]: 빙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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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에이다에 대한 해외 투자자들의 수요가 급증한 걸까.

국내 거래소에서 127원 수준인 에이다를 달러로 환산하면 0.114원 정도인데, 5% 정도의 역프리미엄이 껴서 해외 시세는 0.12달러 수준을 형성하고 있었다.

즉, 해외 거래소로 에이다를 송금해서 익절하면 바로 5%의 수익을 추가로 더 낼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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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수]: 와… 이런 게 있다고?

[봉수]: 전혀 몰랐어 ㄷㄷ 개 신기하다

[동현]: 나도 첨 들어봄

[정우]: 사실 이건 시장경제의 기초 중의 기초에 근간하고 있어

[정우]: 싼 곳에서 물건을 사서 비싼 곳에다가 파는 것

[정우]: 장사의 기본 중의 기본이니까

[정우]: 역사에서 보자면 실크로드 같은 거지

[동현]: 현대판 실크로드네

[봉수]: 그보다는 보따리상 아니냐? ㅋㅋㅋㅋㅋ

[동현]: ㅇㅈ

[KKD]: 근데 넌 이거 어떻게 알았냐?

[정우]: 나?

[정우]: 그냥 코인 공부하다 보니 알게 되더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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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우가 김프, 역프에 대해 알게 된 건 간단했다.

그가 주로 이용하는 거래소가 해외거래소였기 때문에 국내거래소로 코인을 송금해서 환전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레 거래소간 시세차이인 김프, 역프에 대해 익히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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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KD]: 아무튼 5% 이익을 챙길 수 있으면 역프라는 거 무조건 해야겠는데?

[정우]: ㅇㅇ 해외 보따리상들한테 복수하기 위해서라도 하는 게 맞지

[봉수]: 해외 보따리상?

[정우]: ㅇㅇ 보통 중국에서 많이 하는데

[정우]: 중국에서 코인을 사서 국내 거래소로 보내고

[정우]: 이걸 익절해서 김프를 먹는 거지

[정우]: 그러고 나서 익절한 수익금을 현금화해서 중국은행으로 송금하고

[정우]: 다시 중국거래소에서 중국 돈으로 코인을 사서 국내 거래소로 옮겨 파는 거야

[KKD]: ㅁㅊ… 그거 거의 돈 복사 아니냐?

[KKD]: 문제 될 것 같은데

[정우]: 맞아

[정우]: 근데 암호화폐에 관한 규제방안이나 법률이 없어서 못 막는다고 하더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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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이 일련의 돈 복사 과정으로 인해 국내 투자자들이 얼마나 피해를 많이 봤던가.

회귀하기 전 코인에 관심이 없던 정우도 종종 뉴스로 보았을 정도로 국내거래소가 떠안은 피해는 막대하다고 들었다.

그렇다면 이번 기회에 한번쯤 역공을 해봐도 좋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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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우]: 우리도 반격을 해보자고

[정우]: 어차피 전체 시장으로 따지면 별 티는 안 나겠지만 ㅋ

[봉수]: ㅁㅊ 이렇게 들으니 뭔가 전쟁하러 가는 것 같네

[봉수]: 국위선양 ㅇㅈ?

[KKD]: ㅈㄹ ㅋㅋㅋㅋㅋㅋ

[KKD]: 암튼 드가보자고

[동현]: ㄱㄱㄱㄱㄱㄱㄱ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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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정우는 친구들에게 해외코인선물거래소가 아닌 일반 거래소를 추천했다.

"마진 기능은 위험하니까."

특히 인생 한방을 노리는 봉수 같은 애가 덜컥 100배라도 쳤다가 청산당하면 얼마나 마음이 아프겠는가.

그래서 현물거래소로 유도하여 애초에 청산당할 건덕지 자체를 차단해버렸다.

이후 친구들은 해외거래소를 이용해 5%의 추가 이득을 챙겨서 익절했는데, 송금 과정에서 딜레이가 있어서 에이다 최고점인 140원에 팔지는 못했지만 125원 부근에 익절에 성공했다.

현재 친구들의 자산 상태는 다음과 같았다.

-봉수: 15억 7천만원 + 141만 불

-경도: 19억 5천만원 + 175만 불

-동현: 21억 + 189만 불

원화는 국내거래소 에이다의 가치였고, 달러는 해외거래소에서 익절하고 남은 시드머니였다.

정우는 이중 달러 자산만 활용해서 새로운 코인을 매집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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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우]: 너희가 새로 사야 할 코인은 동전주야

[봉수]: 동전주? 동전주가 먼데?

[KKD]: 동전주면 십원짜리, 백원짜리 이런 코인들 말하는 거냐?

[정우]: ㅇㅇ 맞음

[KKD]: 시총 너무 작지 않아?

[KKD]: 스캠 위험이 높아 보이는데

[정우]: 이욜 스캠도 알아?

[KKD]: 니 돈 빌려서 수십억을 투자하는데 공부해야지 ㅋ

[봉수]: 난 몰랐음 ㄷㄷ 그게 뭔데?

[KKD]: 스캠이 영어로 신용 사기야

[KKD]: 말 그대로 코인 자체가 사기, 즉 위험하다는 거지

[KKD]: 나는 정우가 말한 동전주가 먹튀 가능성이 있다고 보는 거고

[봉수]: ㅇㅎ 이해함

[KKD]: 암튼 정우야

[KKD]: 동전주는 왜 투자하라는 건데?

[KKD]: 설명 좀 해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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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도의 말마따나 정우가 동전주에 투자를 유도하는 이유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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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우]: 너희도 보면 알 거야

[정우]: 에이다 급등 이후 순환펌핑이 이루어졌다는 걸

[봉수]: 순환펌핑?

[봉수]: 아!

[봉수]: 다른 코인들도 덩달아 오르는 거 말하는 거지?

[정우]: 맞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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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다 400% 급등 이후, 다른 코인들 역시 빨간불이 들어오며 전반적으로 10%, 20%씩 상승했다.

정우는 이 점에 주목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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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우]: 그거 보면서 무슨 생각 안 들어?

[봉수]: 그냥 별 생각 없는디

[봉수]: 오르면 오른 거 아닌가

[동현]: 시장에 자금이 유입되었다?

[정우]: 비슷해

[KKD]: 사촌이 땅을 사서 배가 아픈 그런 심리… 맞나?

[정우]: 오? 맞아

[정우]: 그그드가 정확히 짚었어

[정우]: 지금 시장은 둘 중 하나야

[정우]: 에이다 400% 급등의 맛을 본 투자자와, 그렇지 않은 투자자

[정우]: 이들의 심리가 어떨까?

[정우]: 맛을 본 애들은 또 그런 짜릿한 투자성공의 쾌감을 느껴보고 싶을 테고

[정우]: 맛을 보지 못한 애들은 제2의 에이다를 찾고 있을 거야

[정우]: 그런 투자 심리가 모여서 코인 시장 전체에 순환펌핑이 이루어진 거고

[봉수]: 아!

[동현]: 오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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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개월 가량 코인을 투자하면서 정우도 놀고 있지만은 않았다.

나름 시장을 보는 안목이 생겼달까.

그래서 에이다 투자 이후에 시장 흐름이 눈에 조금씩 들어오기 시작했다.

나도 부자가 되고 싶다는 투자자들의 심리.

그런 꿈틀거리는 욕망들이 모여 전체 시장을 부양시키고 있는 게 보인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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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우]: 특히 이번에 오른 코인들 종목을 보면 뭔가 유사한 점이 보일 거야

[KKD]: 뭔지 알 것 같아

[KKD]: 많이 오른 코인들 대부분 하나 같이 코인 가격이 1,000원이 안 되네

[봉수]: 오 진짜네?

[봉수]: 슨트, 스텔라루멘 전부 몇십원짜리네

[정우]: ㅇㅇ

[정우]: 이 공통점이 뭔지 알아?

[KKD]: 동전주

[정우]: 맞아 동전주라는 거야

[정우]: 사람들은 지금 제2의 에이다를 찾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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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말에 친구들 중에 가장 투자감각이 뛰어난 경도가 감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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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KD]: 아!

[KKD]: 이래서 동전주 투자하라고 한 거구나?

[정우]: ㅇㅇ

[KKD]: ㅇㅋ 바로 납득되네

[봉수]: 나도 이해함

[동현]: 나도

[KKD]: 그래서 동전주에 나눠서 사라고?

[정우]: ㅇㅇ 맞아

[정우]: 난 이 시장에 앞으로 동전주 메타가 온다고 보거든

[KKD]: 공감이 된다

[KKD]: 근데 다 나눠서 사기엔 너무 많은데

[KKD]: 몇 개 추려줄 수는 없냐?

[정우]: 당연히 있지

[정우]: 내가 추천하는 건 버지XVG / 아인스타이늄EMC2

[정우]: 이 두 가지야

[봉수]: 둘 다 처음 들어 보네

[봉수]: 듣보잡 아니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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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수 입에서 듣보잡이라는 얘기가 나오니 웃음이 나왔다.

왜냐하면 회귀하기 전 술자리에서 버지와 아인스타이늄을 추천한 게 다름 아닌 봉수였으니까.

물론 버지는 스캠이라고 위험하다고 언급하긴 했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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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우]: 넌 진짜 돈 벌 운명이 아닌가 보다

[봉수]: 이 새끼가?

[정우]: 어쭈? 아버지한테 대들어?

[봉수]: ㅈㅅ ㅎㅎ

[정우]: 귀욥 ㅋ

[정우]: 아무튼 버지, 아인, 메인으로 이 두 가지랑

[정우]: 스테이터스네트워크, 스텔라루멘, 도지, 시아, 레드코인

[정우]: 그리고 앞으로 상장할 트론도 있네

[정우]: 얘네들 주목해봐

[정우]: 물론 주종목은 버지랑 아인인 거 잊지 말고

[봉수]: 라저 댓

[KKD]: 접수

[동현]: ㅇ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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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총이 낮은 이 동전주들이야 말로 정우가 친구들에게 추천하는 '새로운 연못'이었다.

다만 미래에서 봉수가 알려준 버지와 아인스타이늄을 제외하고는 나머지 동전주들은 순전히 정우의 픽Pick이었는데, 최근 물오른 그의 감각이 자신이 고른 이 동전주들도 반드시 오를 거라고 확신을 주고 있었다.

'어차피 수익률의 차이만 있을 뿐 미래에 이 모든 코인들이 펌핑이 되는 건 기정사실이야.'

관건은 상승장 때 돌아가면서 찾아올 순환펌핑을 이용해 얼마나 많은 수익을 낼 수 있느냐다.

산 코인이 존버하는 시간 동안 아무것도 못하고 손만 빨면 억울하기 때문이다.

즉, 순환펌핑 때 먼저 오른 코인을 익절해서 다른 코인을 추가로 더 매집하는 형태로 가야 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다.

'과연 내 생각대로 될까.'

계획대로 된다면 친구들을 건물주로 만들어주는 건 일도 아닐 터.

정우는 이 모든 시장의 흐름을 잠자코 지켜보기로 했다.

10원은커녕 1원도 채 안 되는 저런 신규 코인들은 고래가 놀기에는 너무 작은 판, 물장구 한 번만 쳐도 난리가 날 터였다.

하지만 이제 막 새우를 넘어서 금붕어 정도 된 친구들에게는 연못도 괜찮은 판이겠지.

'자, 내가 판은 깔아줬다.'

새로운 연못에서 마음껏 뛰어놀아 보라고.

* * *

대한E&M 회의실.

거기서 한민준 전무와 김민찬 대표, 그리고 엄준욱 감독이 미팅 중이었다.

오늘 <모기> 투자 계약에 대한 협의가 있던 것이다.

한민준이 엄 감독에게 환한 미소를 날렸다.

"이야- 대한민국 영화계를 이끌어가는 신성 엄준욱 감독님! 만나 뵙게 되어 정말 영광입니다."

"아닙니다. 하하하."

"감독님 영화 정말 재밌게 봤습니다. 그 뭐더라? <악마의 요람>이었나요? 거기 주인공으로 나온 최강식 배우가 진짜 대단했는데."

한민준의 말에 갑자기 분위기가 싸해졌다.

왜냐하면 그가 애드립으로 언급한 영화는 엄준욱 감독의 작품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김민찬 대표가 서둘러 수습했다.

"아, 저희 전무님이 잠시 헷갈리셨나봅니다. 그 <화성의 악마> 말씀하신 거죠?"

"예? 아아, 맞아요 맞아요. 제가 착각했습니다. 미안합니다, 엄 감독님."

눈치 빠른 한민준도 그의 수습을 받아들였지만, 엄준욱의 얼굴은 살짝 굳은 뒤였다.

물론 엄준욱 역시 크게 티내지는 않았다.

"괜찮습니다. 뭐 그럴수도 있지요."

"그나저나 원하시는 투자금이 100억원이라구요?"

"예, 맞습니다만."

"김 대표, 보고서 좀 갖고 와볼래요?"

한민준의 갑작스러운 요청에 김민찬 대표가 잠시 당황했다. 하지만 별 수 없다는 듯 서류철에 있던 보고서를 그에게 내밀었다.

한민준 전무는 엄준욱 감독이 보는 눈앞에서 <모기> 보고서를 펄럭펄럭 넘겨 대충 확인하더니 입맛을 다셨다.

"음… 영화 준비 기간이 좀 기네요?"

"세트장을 직접 지을 거거든요."

"세트장을요?"

"예. 작중 공간 배경이 저택인데, 이를 직접 지어서 제작공간으로 활용하려고 합니다."

"그래요? 근데 저택이면 그냥 괜찮은 곳 빌려서 하면 되지 않나?"

"지하실이 핵심이고, 특히 작중 미장센을 극대화하려면 제작은 필수입니다."

"미장센이 뭐더라… 아무튼 알겠습니다. 대감독님이 하시는 건데 이유가 있겠지요. 저는 영화 알못이라."

보고서를 덮은 한 전무가 씨익 웃었다.

그런 그를 보며 엄준욱 감독은 살짝 어이가 없었다. 영화 감독과 미팅을 하면서 영화를 잘 모른다고 하는 게 자랑인가?

하지만 그의 불쾌함을 아는지 모르는지 한민준은 자신감이 넘쳤다.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죠. 원하시는 제작비의 2배 드리겠습니다. 저희와 함께 하시죠."

"2배요?"

"예. 200억이면 제작비로 충분하실 겁니다."

자신만만한 한민준 전무.

옆에 김민찬 대표가 있지만 미팅은 그가 주도한다.

그도 그럴 게 그가 바로 대한그룹의 혈통이기 때문이다.

엄준욱 감독도 알고는 있었지만, '너는 무조건 나한테 올 수밖에 없다'라는 저 자신만만한 태도가 왠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분명 200억원이면 굉장히 넉넉한 투자금인데도 말이다.

"좋은 제안입니다만, 원래 계약은 심사숙고를 여러 번 해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조금만 더 생각해보겠습니다."

"아, 충분히 이해합니다. 그럼 고민하고 연락주시죠."

미팅을 마친 엄준욱 감독은 대한E&M 본사를 빠져나왔다.

분명 원하는 제작비 투자를 이끌어냈지만, 그의 안색은 어둡기만 했다.

"마음에 안 들어."

감독은 언제나 냉철해야 하는 법. 그래야 촬영장을 이끌고 통솔해나갈 수 있다.

엄준욱 감독 역시 마찬가지다.

그는 꽤나 냉철한 인물이었다. 그렇기에 이번 200억 투자를 받아들여야 맞았다.

하지만 그는 그러지 못했다.

한민준 전무의 태도가 마음에 안 들어서일까.

'… 그것도 맞지만.'

그보다는 자꾸 그의 뇌리에 상기되는 이정우 대표의 제안 때문이었다.

무려 1,000억원을 투자해주겠다는 제안.

아무리 예술과 명예를 쫓는 감독일지라도 1,000억원 투자는 솔깃할 수밖에 없었다.

그 정도 제작비용을 투자 받는다면 그야말로 그가 상상한 모든 것을 영화로 구현할 수 있을 테니까. 제작비에 쪼들리지 않아도 되고, 투자사의 개입이나 압박을 고려하지 않아도 될 테니까.

물론 지금도 엄준욱 감독의 이름값이면 투자자가 압박하지 않는 위치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투자사의 눈치를 아예 안 볼 수는 없었다.

그에 반해 영화를 좋아하고 말이 잘 통하는 이정우 대표라면 영화제작에 진정한 자유를 보장해줄지도 모른다.

'… 고민이 될 때는 물어보는 게 맞겠지.'

엄준욱 감독은 한번 찔러나 보자는 생각으로 이정우 대표에게 전화를 걸었다.

신호가 몇 번 가기도 전에 그가 전화를 받았다.

-네, 감독님! 오랜만입니다.

"오랜만이에요. 이 대표, 바쁜가요? 바쁘지 않으면 물어보고 싶은 게 있는데."

-아뇨, 바쁘긴요. 어떤 게 궁금하세요?

"전에 1,000억원 투자해주겠다는 말, 진짭니까?"

엄준욱은 긴가민가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물었다.

이내 수화기 너머로 대답이 돌아왔다.

-물론이죠!

대답은 YES였다.

* * *

두 사람은 실제로 만나 영화 제작과 투자에 대해 논의했다.

엄준욱 감독이 말했다.

"이 대표, 1,000억원을 전부 투자해달라는 건 아니에요. 그냥 넉넉히 지원해줬으면 좋겠다는 의미입니다."

"이해합니다. 근데 진짜 1,000억원 필요하시면 말씀하세요. 지원해드릴게요."

"… 이거 SF영화라도 찍어야 할까 봅니다."

"하하하, 얘기가 그렇게 되나요? 아무튼 저희는 투자만 하겠습니다. 배급사 결정은 자유롭게 진행해주세요."

정우는 <모기>에 투자만 해서 투자지분만 확보하기로 결정했다.

즉, 앞으로 <모기>의 흥행성적에 따른 매출을 분배받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황금종려상을 수상하고 아카데미상 4관왕에 오른 작품의 지분을 인수할 기회나 마찬가지였기에 정우로선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대신 배급사 유통 문제는 손을 떼기로 했는데, 이유는 아직 정우가 제대로 된 배급사를 운영한 경험이 없다는 데 있었다.

특히 대한E&M과 JK엔터테인먼트와 같은 국내 4대 메이저 배급사의 힘이 강력해서 섣불리 배급사를 자처했다가 유통이 폭망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사실 배급사 차리는 건 일도 아닌데.'

정우라고 해서 배급사 설립에 대해 알아보지 않은 게 아니다.

실제로 영화 배급사는 사무실도 필요 없고, 개인 컴퓨터만 있으면 1인 배급사를 차릴 수 있을 정도로 진입장벽이 낮다.

이 때문에 현재 영화시장에서는 소형 배급사가 압도적으로 많이 존재했는데, 이들은 얼마 가지 못해 파산하고 만다. 국내 대형 배급사에 밀려 자멸하는 것이다.

그만큼 국내 메이저 4대 배급사의 힘이 막강했는데, 정우는 굳이 큰돈이 되지 않을 시장에 뛰어들어 스트레스를 받고 싶지 않았다.

영화 사업의 흥행으로 얻을 수익 정도는 어차피 그의 솔리드스타 사업, 무엇보다 그래핀 사업의 미래를 생각하면 먼지 정도에 불과할 테니까.

'그냥 이름만 올려놓자.'

엄청난 이득을 챙기기보다는 <모기> 투자에 참여했다는 명예 정도만 챙기겠다는 게 정우의 목표였기에 그는 엄준욱 감독과 <모기> 투자 계약만 체결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이 대표."

"저야말로 잘 부탁드립니다, 엄 감독님."

계약서를 주고 받은 그들이 굳게 악수를 나누었다.

영화에 간섭하지 않는, 전폭적인 지원을 해주는 강력한 투자자를 등에 업은 엄준욱 감독.

드디어 그의 미친 재능에 날개가 달렸다.

네뷸라라는 날개가.

* * *

<모기> 제작사와 투자 계약 체결도 진행하고, 친구들의 코인 투자도 순조로웠다.

이렇게 잘 되어도 되나 싶을 정도로 모든 게 술술 풀려만 갔는데, 희소식은 이게 끝이 아니었다.

성태규 전무가 보고했다.

"대표님, 솔리드스타 기흥 공장 생산라인 완료되었습니다."

"… 드디어!"

본격적인 솔리드스타의 생산이 시작된 것이다.

"연간 기대생산량은 1GWh입니다."

"아직 태부족이군요."

기흥에 위치한 네뷸라 케미컬의 첫 번째 솔리드스타 생산 공장의 연간 기대 생산량은 1GWh.

현재 미국 자동차시장과 관련하여 테슬라와 독점계약한 상태였기에 이 물량은 일단 전부 테슬라로 공급해야 했다.

하지만 테슬라의 모델S-SP 모델의 예약 대기수는 무려 30만 대.

기존 25만대에서 5만대가 더 늘어나 있었는데, 1년에 1GWh씩 쳐내도 무려 30년이나 소모될 정도로 예약이 한참 밀려 있었다.

"일단 전부 미국으로 보내주세요."

"알겠습니다."

"그리고 기가테네시쪽에 솔리드스타 생산라인은 얼마나 진행됐죠?"

"저희쪽 생산설비를 옮기는 건 끝나서, 이제 설치만 하면 됩니다.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을 겁니다."

"생산라인 만들어지면 거기 생산물량도 전부 테슬라로 납품해주세요."

"예, 알겠습니다."

정우는 모든 솔리드스타 생산물량은 일단 테슬라로 납품하여 밀린 물량을 쳐내기로 했다.

덕분에 테슬라 모델S-SP의 출고에 탄력이 붙었다.

배터리가 없어서 지지부진하던 테슬라 기가네바다 공장이 본격적으로 가동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

모델S 슈퍼퍼포먼스가 첫 번째 고객에게 출고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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