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코인 후 인생 대박-75화 (75/120)

< 75 : 우리는 끝까지 간다 >

'이 양반. 지금 장난하나.'

겨우 100억 달러에 다짜고짜 회사를 넘기라는 말에 정우는 황당한 눈초리로 그를 바라보았다.

조금 화가 날 정도로 무례한 제안.

하지만 이제는 초보 경영자 딱지를 떼어낸 지 오래였기에 티를 내지 않았다. 그저 미소 지을 뿐이었다.

"하하… 재밌는 농담 잘 들었습니다. 이거 살짝 놀랐는데요?"

"농담이 아닙니다."

"농담이 아니라고요? 이런… 그렇다면 어쩌죠? 저희는 회사를 매각할 생각이 없습니다만."

슬쩍 웃으며 거절하는 정우의 반응에 마틴 뮐러 CEO가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하하, 제가 놀라게 해드린 것 같습니다. 정확히 말씀드리자면 네뷸라 케미컬의 경영권 확보를 위한 과반지분 51%를 100억 달러에 인수하겠다는 것입니다."

100억 달러에 과반지분 51%를 인수한다라.

지분 전체로 따지자면 네뷸라의 가치를 200억불 정도로 매긴 셈. 한화로 20조원이니 금액만 봐서는 굉장히 합리적이고 많이 쳐주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네뷸라 케미컬의 진정한 가치를 아는 업계 종사자라면 절대 제안할 수 없는 금액이었다. 앞으로 한동안 전고체배터리 시장을 독점하게 될 네뷸라 케미컬의 가치는 적어도 수백조는 될 테니까.

0이 하나 더 붙었어도 고민조차 하지 않았을 텐데 겨우 100억 불이라니.

마틴 뮐러의 제안은 턱없이 모자란 금액이자, 말도 안 되는 후려치기였다.

"100억 달러라… 안타깝지만 제 마음을 움직이기엔 너무 적은 금액인 것 같네요. 제안은 거절하겠습니다."

"지금은 적어 보일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글쎄요…. 제 제안을 기억하게 될 날이 올 겁니다."

"… 예? 그게 무슨 얘기죠?"

"곧 알게 될 겁니다. 미스터 리, 그저 저희 폭스바겐 그룹이 100억 달러라는 거액을 제안했다는 점 기억해주세요. 이번 미팅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일방적으로 제안을 던진 폭스바겐 그룹 미팅단은 그렇게 떠나갔다.

남겨진 정우는 생각에 잠겼다.

'… 무언가 있다.'

그가 모르는 무언가가 업계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과연 그 은밀한 노림수가 무엇일까.

다행인지 불행인지 폭스바겐 그룹 측의 제안 이유는 이내 밝혀졌다.

김 비서가 후다닥 대표실로 뛰어 들어왔다.

"대표님! 큰일 났습니다!"

"무슨 일이죠?"

"대한화학에서 전고체배터리 상용화를 발표하였습니다."

"… 네?"

벌써 우리 기술을 따라잡았다고?

* * *

매년 하반기, 대한그룹에서는 복합연구센터인 대한사이언스파크에서 신제품 발표회인 대한 이노페스트를 주최한다.

올해 역대급 악수와 부진을 겪고 있던 터라 전문가들은 대한그룹 신제품 발표회를 주목하지 않았는데, 의외로 대한 이노페스트 당일에 구름 같은 기자들이 모여 있었다.

바로 곧 있을 발표를 염두하여 대한그룹에서 임의로 끌어모은 기자들이었다.

그 기자들 앞에서 대한화학 CEO를 맡고 있는 박민수 부회장은 호흡을 가다듬었다.

'… 아무리 생각해도 위험한 것 같은데.'

대한디스플레이 사장인 한동준으로부터 이번 계획에 대해 듣고 얼마나 놀라고 반대했던가.

하지만 이미 모든 건 한광표 회장의 허락이 떨어진 상태였고, 일은 척척 진행 중이었기에 이제 와서 돌이킬 수는 없었다.

피고용자 입장에서 시키는 대로 할 수밖에.

결국 박민수 부회장은 모든 부담을 떠안은 채 기자들 앞에 섰다.

"먼저 실적 부진과 일렉트론 화재 사고에 대하여 깊은 유감의 말씀을 드립니다. 더불어 대한화학을 믿고 투자해주신 모든 투자자분들께도 실망을 끼쳐서 죄송합니다."

정중하게 구십도 인사를 하자 플래시 세례가 빗발쳤다.

허리를 편 그가 다시 대본을 읽어내렸다.

이제부터가 본론이다.

"전세계는 지금 네뷸라 케미컬의 솔리드스타 열풍입니다. 말로만 전해지던 꿈의 배터리, 전고체배터리의 상용화는 그만큼 센세이셔널했으니까요. 덕분에 우리 대한화학은 하한가를 맞았습니다."

농담조로 던진 말이지만 발표회장은 플래시만 빗발칠 뿐, 반응은 무미건조했다.

뻘쭘함을 애써 감추며 박민수 회장이 발표를 이어나갔다.

"… 하한가를 맞고, 고객들과 투자자들의 질타를 한 몸에 받은 후에야 우리 대한화학은 깨달았습니다. 고객들의 니즈Needs가 무엇인지, 앞으로 우리가 추구해야 할 방향이 무엇인지를요. 고리타분한 구시대의 산물인 리튬이온배터리가 아닌 전고체배터리를 개발해야 함을 말입니다. 다행히 대한화학은 전고체배터리 개발을 진행한 지 오래되었고, 절치부심한 끝에 이번에야말로 제대로 된 결과물을 선보일 수 있게 되었습니다."

박민수 회장이 뒤를 돌아보며 스크린을 향해 팔을 뻗었다.

"소개합니다. 대한화학의 20년을 이끌어줄 미래, <에너맥스1000>입니다!"

대한화학의 전고체배터리 에너맥스1000의 디자인 이미지가 스크린에 떠오르고.

각종 스펙 수치들이 나타났다.

마치 비교하려는 듯 솔리드스타의 이미지가 에너맥스1000 옆에 띄워져 있었는데, 에너맥스1000의 각종 수치들은 솔리드스타와 비슷하거나 오히려 몇몇 부분은 더 뛰어난 것으로 표기되고 있었다.

"에너맥스1000은 현재 시장에 풀려 있는 타사의 배터리와 비교했을 때 배터리 용량은 5% 증가되었으며, 수명 역시 10% 이상의 증진을 이루어냈습니다."

"믿기십니까? 놀라운 건 에너맥스1000의 개발 완료뿐만 아니라 직접 생산을 위한 계획에도 돌입했다는 것입니다."

"앞으로 대한화학은 에너맥스1000의 생산을 위해 2020년까지 100GWh 규모의 공장을 건립할 예정이며 이에 대한 예산으로 총 20조원의 예산을 투입할 예정입니다."

"소문만 무성했을 뿐, 실체를 만질 수도 없었던 타사의 전고체배터리. 이제 그 답답함을 저희 대한화학이 깨끗이 씻겨드리겠습니다."

"에너맥스1000, 세계 배터리 시장을 뒤흔들 이름을 기억해주십시오."

혼신의 열연을 펼친 박민수 부회장의 발표가 끝나고.

발표회장은 기자들의 플래시 세례로 뒤덮였다.

* * *

대한화학의 전고체배터리 상용화 발표 소식에 업계에 지각변동이 일어났다.

-봤냐? 대한화학에서 에너맥스1000 발표 ㄷㄷㄷ

└에너맥스1000이 뭐임?

└└대한화학에서 전고체배터리 개발함

└└└헐! 진짜임? 주식 사야 되는 각?

└└└└이미 상한가 갔음

-상용화 전고체배터리가 전부 우리나라에서 개발되다니, 국뽕이 차오른다!

……

사람들은 올해 들어 죽만 쑤던 대한화학이 드디어 한 건 했다는 소식에 놀라워했고, 하한가 이후 바닥을 다지던 대한화학의 주가는 바로 반등하여 상한가를 쳤다.

저점 대비 거의 60%나 오른 셈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올랐음에도 개미들은 주식을 하나라도 더 사기 위해 안달이었다. 그들도 아는 것이다. 그만큼 전고체배터리 상용화 기술에 가치는 뛰어나다는 것을.

-형이 팁 하나 준다. 지금 대한화학 사라. 최소 2배 먹는다

└ㅇㅈ

└네뷸라 케미컬은 상장이 안 되어 있어서 아쉬웠는데 이참에 대한화학이라도 살라고

└└굳굳

-근데 기존에 솔리드스타 개발했던 네뷸라 케미컬은 어떻게 되는 거임?

└어떻게 되긴 ㅋ ㅈ된 거지 ㅋ

└네뷸라 상장되어 있었으면 주가 최소 –10% 각임

└전고체배터리 거의 독점상태였는데 그 상징성이 깨졌으니 별 수 있나

-그래도 후발주자인 대한화학이 전고체배터리 시장 뛰어들었으니 이제 전고체배터리 보급 속도 좀 빨라지려나? 빨리 나도 전고체배터리 단 전기차 사고 싶다 ㅜ

└ㅇㅈ

└222222222

└3333333333

……

떡상하는 대한화학.

하지만 그에 반해 네뷸라 케미컬의 가치는 급전직하 중이었다. 유일무이한 상용화 전고체배터리 생산 기업이라는 상징성에 타격을 입었기 때문이다.

그 탓에 시장에서는 다들 네뷸라는 거품이자 이제 끝만 남았다고 보는 우려의 목소리가 가득했다.

그 타격 때문인지 네뷸라 케미컬은 현재 상장 상태는 아니지만 국제신용평가사인 무디스는 네뷸라의 기업 예상 가치를 A2(투자적격등급 중 안전성 보통 등급)에서 Baa3(투자적격등급 중 안전성 평균 이하)로 대폭 하향 평가하였고, 로이터, 블룸버그 통신 등은 이를 대대적으로 보도하였다.

갑자기 찾아온 위기에 전세계가 네뷸라 케미컬의 일거수일투족을 주목했다.

과연 첫 번째로 들이닥친 위기를 네뷸라는 어떻게 헤쳐 나갈 것인가.

하지만 네뷸라 케미컬의 반응은 무대응 그 자체였다.

아무런 반응이 없었던 것이다.

"너희들은 이번 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

대한화학의 에너맥스1000 발표 사태와 여파를 지켜본 유일그룹 유종범 회장이 아들들에게 물었다.

유일자동차 사장 유영곤 사장이 나섰다.

"시장에서는 다들 네뷸라 케미컬이 한계에 직면했다고, 끝물이 왔다고 생각하는 여론이 거셉니다."

"시장 반응 말고, 유 사장 니 생각을 말해보라고."

"… 저 역시 여론과 같은 생각입니다. 네뷸라 케미컬은 얼마 가지 못할 거예요."

유영곤 사장의 우려 섞인 목소리에 유종범 회장이 한심하다는 듯 그를 바라봤다.

"부자는 망해도 삼대는 가."

"압니다."

"안다는 녀석이 그렇게 생각해야 되겠어? 네뷸라 케미컬이 최초로 상용화 전고체배터리를 개발했다는 건 벌써 잊어버린 거냐?"

"그래도 10여 년간 한국에서 배터리 사업 분야 1위를 차지해왔던 대한화학의 저력을 무시할 수 없습니다. 그에 반해 네뷸라 케미컬은 아직 동네 구멍가게 수준이구요. 제 생각엔 네뷸라의 솔리드스타는 대한화학의 에너맥스1000에 도태될 거예요. 이미 스펙부터가 에너맥스1000이 낫던데요?"

유영곤 사장의 말은 일견 일리가 있었다.

유종범 회장이 둘째 유영진 전무에게 물었다.

"유 전무, 너는 어떻게 생각해?"

"저는 솔직히 의문이 듭니다."

"의문이 든다?"

"예. 대한화학이 이렇게 빨리 상용화 전고체배터리를 개발했다는 게 신기해서요."

"네뷸라도 개발하지 않았어? 대한화학이라고 못할 건 없지."

"회장님 말씀대로 대한화학이라고 못할 건 없어요. 하지만 이렇게 빨리…? 저는 좀 신중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음…."

유종범 회장이 턱을 손으로 긁으며 생각에 잠겼다.

유영진 전무가 말을 이어갔다.

"특히 이번 발표의 배후에 한동준 사장의 적극적인 개입이 있었다고 들었습니다. 형님도 알죠? 한동준 걔 엄청 무서운 거."

"… 알지. 걔 승부욕 엄청나잖아."

"기억하시네요. 맞아요. 걔는 이기려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편이거든요. 그래서 미심쩍다는 겁니다."

"… 허장성세일 거라는 거야?"

"그냥 제 감이 그렇게 말하네요."

"기업 경영에서 감이라니… 영진이 너 그거 경영자로서 실격 발언이야. 알아?"

한심하다는 듯 지적하는 유영곤 사장의 말에 유종범 회장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 이번 건은 영진이 말대로 신중할 필요가 있다. 아니, 이미 우린 신중할 수밖에 없는 입장이야. 이미 대한그룹과 갈라선 마당이니까."

"하지만 회장님, 그렇다고 대한화학과 커넥션을 완전히 놓는 것도 위험하지 않겠습니까? 경영은 항상 다각화를 염두에 두어야 한다고 하셨잖아요."

"그건 맞지. 하지만 이미 솔리드스타 공장 설립을 위해 정부 지원 사업을 받네 마네 협상 중인데 여기서 대한화학이 잘 나간다고 다시 네뷸라를 배신하고 대한화학 쪽에 붙는다? 유일그룹은 기회주의자이자 박쥐라고 어딜 가든 욕을 먹을 거다. 결국 우리 브랜드 이미지를 위해서라도 굳건하게 버텨야 하는 거야."

"회장님 말씀이 맞습니다."

유영진 전무가 맞장구쳤다.

그런 둘째를 지긋이 바라보던 유종범 회장이 두 사람에게 말을 이어나갔다.

"유 사장, 유 전무. 내가 기업 경영에 있어서 뭐가 제일 중요하다고 했지?"

"… 신의입니다."

"맞아. 신의야. 신의야말로 기업의 본질이자 정수지. 내가 계속 신의를 강조하고 또 강조하는 이유는, 아무리 주가가 바닥을 치고 위기에 흔들려도 신의를 지킨 기업은 버틸 수 있기 때문이야. 고객들이 믿어주니까. 하지만 신의를 저버린 기업은 무너지게 되어 있다. 그러니 이번 사태에 대해 일희일비하거나 흔들리면 안 돼. 알겠어?"

"… 예."

"네, 회장님."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이는 유영곤 사장.

그에 반해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는 유영진 전무.

두 아들을 보며 유 회장은 아쉬움이 들었다.

'영진이가 첫째였다면….'

후계자로 유영곤 대신 유영진을 사장으로 앉혔을 텐데.

하지만 욕심 많은 첫째에게 그룹을 물려주지 않으면 분명히 자신이 가고 난 이후 유일그룹은 후계자 싸움으로 흔들릴 게 뻔했기에 어쩔 수 없었다.

반대로 둘째 유영진 전무는 온순한 편이었기에 후계자가 되지 않아도 형을 도와서 잘 보필해줄 것이고.

그래서 후계 구도를 보수적으로 잡고 진행해 왔는데, 시간이 가면 갈수록 두 사람이 보여주는 경영자로서의 극과 극의 판단과 태도에서 유 회장은 조금씩 흔들리고 있었다.

물론 그런 내심을 전혀 드러내지 않은 채 그는 이번 사태에 대해 말을 이어나갔다.

"… 그나저나 의문이 든단 말이야. 전고체배터리라는 게 그렇게 개발하기 어렵다며?"

"예. 맞습니다. 회장님."

"솔리드스타가 나왔을 때 기억이 나. 세간에서 네뷸라 케미컬에 외계인이 있는 게 아닌지 조사해봐야 한다고 우스갯소리로 떠들어댔지. 기술력이 최소 5년은 앞섰다고 하던가?"

"5년 이상일 겁니다."

"그런데 그 기술력을 아무리 대한화학이라 해도 단 몇 달만에 따라잡는다?""솔리드스타를 분해해서 기술력을 흡수한 게 아닐까요?"

"넌 솔리드스타 뜯어보고 어떻게 개발할지 그 기술이 보여?"

"… 아닙니다."

"그게 가능했으면 이미 제이, 제삼의 네뷸라 케미컬이 우후죽순 나타났을 거다."

유 회장이 한 말의 의미는 간단했다.

무언가 대한화학 쪽에서 야료를 부렸을 가능성이 높다는 의미였다.

"… 그러니 한심한 소리 그만하고, 직원들 입단속 단단히 시켜."

유종범 회장이 의자 손잡이를 탁 쳤다.

"우리는 네뷸라와 끝까지 간다."

혼란스러운 시국에서 늙은 호랑이의 혜안이 빛을 발했다.

* * *

경쟁상품인 에너맥스1000의 등장에도 네뷸라 측의 대응은 전혀 없었다.

그래서일까.

이 모든 사태를 주도 중인 한동준은 미간을 찌푸렸다.

소파에 다리를 꼬고 앉은 그의 발이 불안한 듯 흔들거렸다.

"… 슬슬 반응이 올 때가 됐는데."

"저희가 헛다리 짚은 게 아닐까요?"

박민수 부회장이 슬쩍 의문을 제기했다.

하지만 한동준 사장은 고개를 저을 뿐이다.

"그럴 리가 없어요. 지금까지 네뷸라측의 모든 행보는 사업 확장으로 연결되었으니까요. 공장 부지 확보와 설비 제조, 원자재 수입 등 공격적으로 투자를 해온 만큼 네뷸라는 자금이 바닥났을 게 분명해요. 어떻게 해서든 새로운 총알을 마련하기 위해 상장이든 회사채 발행이든 행동으로 보여줘야 할 때입니다."

"하지만 한 사장님. 그 모든 가정은 네뷸라 측에 사내 유보금이 없을 때를 가정한 게 아닙니까? 만약 자금이 충분하다면 이 모든 계획은 수포로 돌아갈 겁니다."

박민수 부회장이 우려를 표했다.

그의 말마따나 이 모든 계획은 네뷸라가 자금이 바닥났다는 것을 가정하고 진행되었기에, 만약 이 가정이 무너지는 순간 계획은 실패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의 우려와 달리 한동준 사장은 자신만만했다.

"이미 네뷸라 케미컬의 자금이 대부분 이정우 대표의 지갑에서 나오고 있다는 정보를 입수했어요. 그런데 생각해보세요. 일개인이 수천억, 조 단위로 들어가는 공장 설립 비용을 투자할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 아니요."

"제 계획은 문제없습니다."

이를 위해 대표적인 독일 3사인 다임러 벤츠 그룹, BMW 그룹, 폭스바겐 그룹과 만나서 네뷸라 케미컬 인수 컨소시엄을 구성하려 했다.

컨소시엄Consortium이란 인수업자가 단독으로 인수하기 어려울 때 이를 매수하기 위해 다수의 업자들이 공동으로 창설하는 일종의 '인수조합'이었다. 즉, 대한화학은 독일 3사와 함께 인수 컨소시엄을 구성하여 네뷸라 케미컬을 인수하려고 했던 것.

하지만 그 미팅 과정에서 대한화학이 전고체배터리 개발 발표를 이용한 네뷸라의 가치 하락 플랜을 전했는데, 여기서 사단이 났다.

바로 폭스바겐 그룹이 독단적으로 행동에 나선 것이었다.

"… 다만 그 빌어먹을 게르만 놈들이 뒤통수를 칠 줄은 몰랐네요."

한동준 사장도 예상치 못한 부분은 폭스바겐 그룹의 욕심이 대단하다는 것이다.

그들은 독자적으로 네뷸라 케미컬을 먹어 치우기 위해 이정우 대표와 미팅을 해버렸고, 먼저 인수 제안을 넣어버린 것이다.

뒤늦게 해당 소식을 알게 된 독일의 남은 두 기업, 벤츠와 BMW, 그리고 대한화학은 벙찔 수밖에 없었고, 결국 비밀스러운 인수 컨소시엄은 두 기업과 대한화학만 참여하게 되었다.

"한 사장님, 그래도 이정우 대표가 폭스바겐 그룹의 인수 제안을 거절했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예상 가치가 최소 2,000억 달러로 추정되는 게 네뷸라 케미컬입니다. 컨소시엄을 구성하고 애너맥스1000 공개 플랜을 짠 것도 이 가치를 최대 500억 달러 밑으로 떨어트리기 위해서죠. 근데 그걸 계획이 실행되기도 전에 100억 달러로 후려쳤으니, 단기간에 일확천금을 노리는 바보가 아닌 이상 누가 그 제안을 받아들이겠습니까?"

"폭스바겐 그룹은 이정우 대표를 맥도날드 형제로 오판했던 모양입니다."

현존하는 최고의 패스트푸드 프랜차이즈 맥도날드.

이 맥도날드를 처음 개업한 건 그 유명한 레이 크록이 아닌 맥도날드 형제다.

하지만 그들은 1961년 당시에 레이 크록에게 매출의 0.5%에 달하는 로열티와 상표권 및 맥도날드 사업의 모든 권리를 현금 270만 달러에 팔아넘겼다.

그들은 지긋지긋한 사업 대신 막대한 현금을 챙겨서 은퇴할 생각이었던 것.

하지만 현재 맥도날드의 위상은 어떤가.

전 세계 약 37,000개 매장에서 하루에 약 6,000만 명의 고객들에게 햄버거, 감자튀김, 콜라, 아침 메뉴, 커피, 간식 등을 제공하는 맥도날드는 매출의 0.5%만 해도 수백만 달러를 아득히 상회했다.

즉, 맥도날드 형제는 눈앞의 이득에 눈이 멀어 황금알을 낳는 거위를 날린 셈이었고, 오만한 폭스바겐 그룹은 애석하게도 네뷸라 케미컬의 이정우 대표를 맥도날드 형제로 취급한 것이다.

"… 멍청한 인수 제안 때문에 토끼가 놀라서 굴에 숨어버렸으니…."

"네뷸라 측이 폭스바겐 그룹의 제안 때문에 우리의 계획을 눈치챈 게 아닐까요?"

"사실 이제는 상관없습니다. 그에게 주어진 선택지는 두 가지예요. 원탑이라는 상징성을 잃은 네뷸라의 가치가 더 떨어지기 전에 어깨에서라도 털고 나가느냐, 아니면 이대로 버틸 것인지. 솔리드스타라는 희대의 발명품을 개발하고 런칭에 성공한 똑똑한 사람이라면 무엇을 선택할지는 불을 보듯 뻔하죠."

"… 최대한 가치가 높을 때 팔겠네요."

"우리는 이 대표가 떠날 차비만 챙겨주면 되는 겁니다. 문제는 우리 쪽 블러핑이 드러나기 전에 네뷸라가 인수 제안을 받아들여야 할 텐데요. 최소한 상장이라도 해주면 흑기사(적대적 인수 합병)라도 하면 되고요."

"만약 네뷸라가 끝까지 상장하지 않는다면 위험하지 않겠습니까?"

"흠… 지금 반응을 보니 그럴 가능성도 없진 않겠어요."

잠시 고민에 잠겼던 한동준 사장이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무래도 너무 시간을 끌면 안 될 것 같습니다. 움직이죠."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일단 우리도 경쟁자를 압살할 총알을 갖춰야 하지 않겠습니까."

"경쟁자라면 폭스바겐 그룹 말씀이십니까?"

"예. 우리 쪽 컨소시엄에 연락하세요. 원래 각 기업당 150억 달러 이내로 인수를 끝내려 했는데, 그 총알로 두 배 정도는 생각해두라고요. 컨소시엄 자금 확보만 끝나면 네뷸라에 바로 인수 제안 들어가도록 하죠."

한동준 사장의 눈이 빛났다.

"폭스바겐 그룹, 그놈들과 이제 전쟁입니다."

* * *

대한화학을 진두지휘 중인 한동준 사장이 폭스바겐과 박 터지는 인수전 경쟁을 준비하던 그 시각.

폭풍의 눈에 있는 네뷸라 케미컬의 분위기는 고요하기 이를 데 없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이번 에너맥스1000 사태에 대해 아예 신경을 쓰고 있지 않았다.

왜냐하면 애초에 한동준 사장의 계획은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워져 있었기 때문이다.

네뷸라 케미컬에 자금이 바닥났을 거라는 가정.

이정우 대표의 지갑이 텅텅 비었을 거라는 가정.

제3자 입장에서 보면 합리적인 판단이자 가정이었다.

한국의 조그만 기업이 공장에 수조 원을 퍼붓는데 오죽하랴.

하지만 그들은 몰랐다.

정우의 자금의 원천인 코인의 잠재력을.

그가 코인으로 어마어마한 부를 거머쥐고 있고, 지금도 돈을 복사하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2017년 12월.

겨울의 추위를 날려버릴 코인의 뜨거운 광기가 다가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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