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6 : 이거 그린라이트? >
2017년 12월 1일 금요일.
한주의 마침표를 찍기 위해 회사로 출근한 김경도는 고객 자산관리 프로그램을 띄워놓고는, 습관처럼 스마트폰으로 자신의 코인 자산을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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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인명: 에이다ADA]
[매수평균가: 30KRW]
[매수금액: 649,726,168KRW]
[평가금액: 3,486,863,768KRW]
[수익률: 436.4%]
[EMC2USD]
[Quantity: 3,645,833.33EMC2]
[Entry Price: 0.06]
[Mark Price: 0.43]
[Value: 1,567,708.33USD(+616.4%)]
[XVGUSD]
[Quantity: 2,533,783.78XVG]
[Entry Price: 0.005]
[Mark Price: 0.006]
[Value: 182,432.43USD(+19.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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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이 다가오기 시작하자 비트코인은 10,000불에 도달했다.
그 비트코인 상승세에 힘입어 코인시장 전체가 빨간불로 도배되기 시작했는데, 며칠 전부터 상승하기 시작한 에이다는 전고점 140원을 뚫고 200원을 찍었다.
지금은 내려와서 161원인데, 그 덕분에 국내거래소에 보유한 김경도의 에이다 자산가치는 무려 34억원에 달했다.
게다가 그가 매집해둔 건 에이다뿐만이 아니었다.
친구 정우의 조언을 받아들여 김경도는 해외거래소에 동전주들을 분산 매집했던 것.
그가 매집한 코인은 정우가 조언한 아인스타이늄EMC2, 버지XVG, 스테이터스네트워크SNT, 스텔라루멘XLM, 도지DOGE, 시아SC, 레드RDD, 트론TRX 등 총 8가지로 각각 약 22만 불씩 매집하였다.
이 동전주들의 상승률은 대부분 미미했는데, 다행히 아인스타이늄이 며칠 전부터 급등하더니 600%라는 경이로운 수익률을 보여주고 있었다.
"아인스타이늄에 몰빵할 걸 그랬나."
우스갯소리로 중얼거렸지만, 투자 개념을 갖춘 김경도는 분산투자가 매우 중요함을 알았기에 후회는 없었다.
오히려 이런 황금 같은 정보를 준 절친한 친구 정우에게 고맙고 감사할 뿐이었다.
그때 스마트폰이 진동하더니 메시지가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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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수]: 아버지 오늘도 저 부자로 만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봉수]: 충성충성!
[봉수]: (하트 날리는 이모티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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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김봉수였다.
그를 비롯한 김봉수, 김동현 모두 정우 덕분에 막대한 돈을 벌게 되었던 것.
그래서인지 김봉수는 아침마다 정우에게 감사 톡을 보내는 게 일상이자 하루의 시작이었다.
김경도가 피식 웃으며 단톡방에 답장을 날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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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KD]: 야, 정우 바빠서 잘 보지도 않는데 여기다가 충성해서 뭐하냐 ㅋ
[봉수]: 그런가?
[봉수]: 하 일하기 ㅈ같다
[봉수]: 잔고가 수십억 되니까 일하는 게 겁나 허무하고 하찮게 느껴지네
[동현]: 나도
[동현]: 근데 나 요새 사장님이 예뻐하셔서 퇴사하기 애매함;;
[동현]: 어제도 갑자기 점심 따로 먹자고 부르셔서 코인도 못봄...
[KKD]: 아 한성준 사장님?
[KKD]: 백타 정우 때문에 너 잡아두려는 듯 ㅋ
[봉수]: ㅇㅈ
[봉수]: 근데 그 갈군다던 팀장은 어케 됨?
[동현]: 그냥 잘 해주시던데?
[동현]: 요새 일하는 거 가지고 터치도 안 해서
[동현]: ㅈㄴ 살맛 남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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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전자에 다니는 친구 김동현은 정우 덕분에 회사에서 입지가 굉장히 올라갔다고 들었다.
상사, 후임 할 것 없이 팀원들 전부가 김동현을 인정해준다나.
게다가 갈구던 팀장의 태도가 180도 바뀌어서 잘 대해주니 직장생활을 할 맛이 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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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수]: 그래봤자 월급 노예일 뿐
[봉수]: 난 떠날라고
[KKD]: 음? 퇴사하려고?
[봉수]: ㅇㅇ 지금 사직서 내러 간다
[봉수]: 떨린다 ㅎ
[KKD]: 부럽
[봉수]: 뭐가 부러워
[봉수]: 부러우면 너도 때려치든가 ㅋ
[봉수]: 빨리 퇴사하고 오전에 분위기 좋은 카페나 가서 매매나 해야겠다
[봉수]: 맛있는 것두 머거야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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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직서를 낸다니.
이전 같았으면 뜯어 말렸겠지만, 친구의 과감한 선택이 김경도는 부러웠다.
'… 나도 때려칠까?'
고객들 자산 관리해주고 받는 소소한 인센티브.
365일 내내 열심히 일해야 가까스로 연봉 1억을 찍을까 말까 한 게 이 자산관리 업계다.
게다가 매일 다른 직원들과 경쟁까지 해야 하고 실적이 딸리면 눈치가 너무 보여서 하루하루 피가 말려서 머리가 한 움큼씩 빠지는 실정이었다.
'전에는 노력한 만큼 벌어간다고 좋다고 생각했는데.'
원래 그는 직장을 그만둘 생각이 한달 전까지만 해도 없었다.
번듯한 직장을 다니면서 따박따박 월급을 받으며 안정적으로 생활하는 삶.
그것이 김경도가 살아온 삶이자 가치관이었으니까.
그래서 이번에 친구인 정우가 코인 투자를 권유하고 도와줄 때만 해도 직장을 그만둔다는 생각을 1도 하지 않았다.
펀드매니저로서 리스크 관리가 생활화 되어 있는 김경도의 입장에선 당연히 직장이 메인이었고, 코인 투자는 부수입이자 곁다리일 뿐이었으니까.
하지만 수십 년을 일해야 할 돈을 손에 쥐고 나니 생각이 달라졌다.
직장이 있다는 건 미래를 생각하면 안정적이지만, 다르게 말하면 평생 누군가의 밑에서 톱니바퀴가 되어 일한다는 것.
십년 뒤에도 펀드매니저로서 누군가의 밑에서 부품이 되어 일하고 있는 자신을 생각하니 갑자기 숨이 턱 막혔다.
이것이 정녕 자신이 원하던 삶인가?
만약 정우의 도움이 아니었다면 그의 앞으로의 인생이 영원히 그렇게 될지도 모를 일이었다.
"… 아무래도 아닌 것 같은데."
"자꾸 뭐라고 중얼거리는 거야 경도 씨."
그때 옆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들어보니 김 부장이 와 있었다.
꼬장꼬장한 인상의 부장이 김경도를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아니 일 시작한 지가 언젠데 폰이나 만지작거리고 있는 거야?"
"아, 죄송합니다, 부장님."
김 부장은 자기 할 일 대신 꼭 틈만 나면 돌아다니면서 직원들의 컴퓨터 화면을 감시하곤 했다.
빈틈을 늙은 하이에나 같달까.
평소 같으면 일에 집중해서 걸리지 않았을 텐데, 코인에 정신이 팔려서 느슨해진 게 패착이었다.
"경도 씨 요새 너무 나사가 빠진 것 같아. 집중 좀 하자고."
"… 예, 주의하겠습니다."
꼬투리 하나 잡은 부장이 김경도를 나무라고는 흐뭇한 얼굴로 자리를 떠났다.
김경도가 털리는 걸 본 다른 직원들이 바짝 긴장하여 여기저기 바쁘게 일하는 시늉을 할 때, 김 부장이 한 여직원의 뒤로 다가갔다.
"한나 씨, 아침부터 일 열심히네."
"앗 넵. 장 시작했으니 열심히 해야죠…!"
"잘하고 있어. 내가 요새 한나 씨 눈여겨 보고 있는 거 알지? 이번 달 실적 기대할게."
"… 분발하겠습니다!"
격려하는 것처럼 하면서 한나라는 여직원의 승모근쪽을 주무른다.
그 손길에 불쾌한 듯 얼굴이 잔뜩 굳은 한나를 보며 김경도는 순간 욱했다.
왜냐하면 평소 사무실을 오고 가며 그녀와 많이 친하게 지냈는데, 그래서 어느정도 호감이 있었기 때문이다.
"저기요, 부장님."
"음? 경도 씨 왜."
"그거 성희롱 아닙니까? 왜 직장에서 다른 직원 몸에 터치하세요."
"뭐?"
갑작스러운 지적에 부장이 당황해서 말을 더듬었다.
"그, 그게 무슨 소리야. 내가 언제!"
"방금 했잖아요. 그리고 지금뿐만 아니라 평소에도 그렇고 회식 때도 그렇고 딸뻘 되는 직원들한테 그러고 싶으세요?"
"… 아니 경도 씨, 직장 오늘만 다닐 거야? 갑자기 왜 지랄이야! 당신 미쳤어!"
"미친 건 부장님이죠. 그리고, 네. 저 오늘만 다닐 겁니다."
김경도의 폭탄선언에 사무실에 정적이 흘렀다.
모두가 놀란 것이다.
부장 역시 당황해서 소리쳤다.
"그, 그만둔다고?"
"예. 노동청에 신고하면 부장님 목 온전치 못한 거 아시죠?"
"… 이 사람이 진짜, 퇴사한다고 눈에 뭐가 안 뵈나 본데, 정신 차려! 김경도 씨, 아니 김경도 너도 무사하지 못해! 내가 너 이 업계에 발 못 붙이고 다니게 만들어 줄 수도 있어!"
"안 무서워요. 어차피 저 이 업계 떠날 건데요 뭐."
"뭐?"
당황한 김 부장이 도움을 청하려는 듯 주변을 보았다.
그러다 당사자인 한나에게 눈이 돌아갔다.
"가만, 당사자한테 물어봐야지. 당사자가 불쾌하지 않았으면 성희롱 아니잖아. 안 그래?"
"… 그렇죠."
김 부장의 역공에 김경도는 살짝 당황했다.
하지만 그의 말이 맞았다.
당사자인 여직원이 불쾌하지 않았다면 성희롱이 아니고 쓸데없는 오지랖일 뿐이니까.
"그럼 물어보자고. 한나 씨, 내가 방금 성희롱한 거야? 불쾌했냐고."
김 부장이 한나에게 거의 윽박지르다시피 물었다.
그 위압감이 서린 눈빛에는 많은 의미가 담겨 있었다.
앞으로 직장생활 안 할 거냐는, 나 안 보고 일할 수 있겠냐는 무언의 협박.
김경도는 그 순간 패배를 직감했다.
저런 상황에서 대부분 위기를 회피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자신의 직장생활이 걸렸는데 용기를 낼 사람은 드무니까.
'… 역시 괜히 오지랖 부렸….'
김경도가 여직원의 입에서 나올 부정을 예상하며 미리 실망하던 그때.
"… 불쾌했어요."
한나의 입에서 예상치 못한 뜻밖의 대답이 나왔다.
그녀는 단호한 목소리로 김 부장에게 얘기했다.
"방금 저한테 성희롱하신 거 맞아요."
"아니, 한나 씨 그게 무슨…!"
"사과해주세요. 그리고 회식 때도 그렇고 평소에도 그렇고 저한테 터치 안 해주셨으면 좋겠어요."
"… 내가 뭘 잘못했다고…!"
똑 부러지는 그녀의 요구에 김 부장은 당황해서 주변을 살폈다.
끝까지 책임을 회피하려 했지만, 이미 사무실의 모두가 그를 주목 중이었다.
아무리 부장이어도 이런 상황에서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뿐이었다.
"… 미안합니다. 불쾌했다면 내가 사과할게요."
결국 그는 한나의 앞에서 사과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었다.
"저뿐만 아니라 김 대리님한테 폭언한 것도 사과해주세요."
"뭐?"
"이 업계에 발 못 붙이게 하겠다고 협박하셨잖아요. 그것도 사과해주세요."
"아니 그걸 왜 한나 씨가 요구해?"
"얘기 안 하시면 저 인사팀에 가서 오늘 있었던 일 뿐만 아니라 전에 저한테 성희롱하신 거 전부 항의 넣을 거예요. 노동청에도 민원 넣을 거구요. 그래도 괜찮으세요?"
한나의 단호한 요구에 결국 김 부장은 사과할 수밖에 없었다.
"미안해요, 경도 씨. 내가 흥분했네."
"아셨다면 다행이네요."
"그럼 우리 일은 잘 마무리된 거지?"
"네, 뭐. 그런 것 같네요. 어차피 이게 마지막인데요."
진정성이 별로 느껴지지 않는 사과였지만 김경도는 이쯤에서 마무리하기로 했다.
어차피 이 회사에 오래 있을 생각이 없었으니까.
하지만 김 부장은 아까의 발언도 흥분해서 나온 걸로 오인한듯했다.
"마지막이라니? 아까 퇴사한다는 얘기 때문에 그런 거야? 그거라면 신경 쓰지 마. 사람이 욱하면 말이 헛나올 수도 있지. 이해해."
"아니요. 저 퇴사할 건데요?"
"… 진짜 퇴사한다고? 고작 이까짓 일로?"
"이까짓 일이 아니라 생각 많이 했습니다. 서로 얼굴도 붉힌 마당에 부장님이 있는 회사에서 불편하게 다닐 생각 없네요. 퇴사하겠습니다."
"아니 갑자기 그렇게 통보하면 어떡해! 우리도 TO는 구해야 할 거 아니야. 경도 씨가 관리하는 고객들은 어쩌고."
"인수인계는 할게요. 그러니 퇴사 처리 부탁드립니다."
"하… 진짜 씨…!"
"욕하지는 마시구요. 아, 오늘은 연차 쓸게요."
"연차는 협의하고 써야지!"
"저는 부장님 배려해드린 건데요? 제가 사무실에 있으면 불편하지 않겠습니까."
"… 끙."
"가지 말라면 일할게요."
"아냐. 가, 가. 가서 푹 쉬어."
"네. 수고하세요."
어차피 퇴사할 마당. 눈치 보지 않고 연차를 썼다.
간단하게 짐을 챙겨 사무실을 나서며 스마트폰으로 단톡방에 메시지를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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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KD]: 스봉, 어디냐
[봉수]: 방금 사직서 내고 연차 쓰고 나옴 ㅋ
[봉수]: 왜?
[KKD]: 사실 나도 퇴사함 ㅎㅎ
[봉수]: ㄹㅇ?
[봉수]: 구라치네
[KKD]: ㄴㄴ 진짜임
[동현]: ㄷㄷㄷ 뭐임? 오늘 둘다 퇴사한 거?
[봉수]: 그런 듯 ㅇㅇ 이 새끼 말도 없이 퇴사하냐
[KKD]: 남자는 실행력이지
[KKD]: 어디냐
[KKD]: 오전에 카페 간다며
[KKD]: 같이 가자
[봉수]: ㅇㅋ 퇴사자들끼리 노가리나 깝세
[봉수]: 울 회사 앞으로 와
[KKD]: ㅇㅇ
[동현]: 하 나도 퇴사마렵다
[동현]: 부러운 ㅅㄲ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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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흥적으로 당일 퇴사자들끼리 만나기로 약속을 잡았다.
모든 걸 계획과 룰을 지켜가며 살아왔던 김경도의 입장에서는 신선한 경험.
하지만 그 기분이 나쁘지만은 않았다.
앞으로의 인생이 더욱 재밌어질 것 같다는 기대감이 마음 속에서 피어오를 때, 뒤에서 도도도도 누군가 달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슬쩍 돌아보니 방금 도움을 줬던 여직원 한나가 뛰어오고 있었다.
"김 대리님! 잠깐만요!"
"어, 한나 씨. 뛰지 마세요. 그러다 넘어질라. 안 뛰어도 저 어디 도망 안 가는데 왜 뛰어요."
"헉헉… 넵!"
살짝 숨을 가다듬은 한나가 김경도에게 고개를 푹 숙였다.
"아까 도와주셔서 고마워요."
"뭘요. 저야말로 한나 씨가 용기내줘서 고마웠어요. 만약 한나 씨가 거기서 성희롱 아니라고 했으면 어떻게 되었을지… 어우 끔찍해."
"아니요. 사실 그동안 용기가 없어서 김 부장한테 터치하지 말라고 얘기 못했는데, 경도 씨가 대신 나서줘서 저도 용기가 생겼어요."
"그래요? 제가 용기가 되었다니 다행입니다."
"그런데 퇴사하신다니… 너무 갑작스럽고 당황스럽네요. 혹시 저 때문은 아니시죠?"
"아니에요. 그냥 이제 회사에 미련이 없어져서요. 하고 싶은 일도 생겼구요."
살짝 욱하여 즉흥적으로 퇴사한 감이 없잖아 있지만, 지금 그는 해보고 싶은 게 생겼다.
바로 남의 자산을 관리하는 게 아닌, 진짜 나만의 투자를 시작하고 싶어진 것이다.
"… 그래서 퇴사하는 겁니다. 그러니 신경 쓰지 마세요."
"그래도 이렇게 보내기엔 좀 아쉬워서요. 혹시 다음에 식사라도 어떠세요?"
"식사요?"
갑작스러운 식사 약속에 살짝 당황했다.
혹시 이거 그린라이트?
가슴이 뛰었지만 내색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무조건 좋죠."
"정말요? 그럼 제가 아는 맛집 있는데 거기로 가요!"
"좋습니다."
"날짜랑 장소는 코코아톡으로 정해요! 그럼 연락드릴게요!"
사내메신저가 아닌 굳이 코코아톡으로 얘기하자는 그녀.
이거 왠지 이번 크리스마스는 홀로 보내지 않을 것 같다는 기분 좋은 예감이 들었다.
하지만 김경도는 아직 모르고 있었다.
크리스마스에 집중할 수 없을 거라는 것을.
그라고 해서 코인의 광기에서 자유로운 건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 * *
12월이 되자 어딜 가든 코인 이야기뿐이었다.
회사원들은 물론이요, 시장 상인들도 코인 얘기를 들먹였다.
군인 부사관들은 업무 짬짬이 스마트폰으로 코인 시세 확인에 여념이 없었고, 심지어 미성년자인 중고등학생들도 쉬는 시간만 되면 코인 얘기를 떠들어댔다.
"하, 어제 스팀 ㅈㄴ 올랐네. 스팀 살걸."
"너 안 탔냐? 나 스팀 단타 쳐서 50% 먹었는데."
"진짜? 시드 얼만데?"
"10만원. 지금 15만원 됨."
"존나 하찮네."
"야 50%가 뭐가 하찮아. 수익률 개쩌는데."
"너 옆반에 혁진이 못 들었어? 걔 코인으로 3천만원 만들었대."
"뭐?"
고등학생이 수천만원을 벌었다는 믿기 어려운 소문이 심심찮게 퍼져 나올 정도로 코인의 상승률은 대단했다.
그래서일까.
대한민국, 아니 전세계가 코인의 광기 속으로 뛰어들기 시작했다.
당연하게도 대한화학의 에너맥스1000 발표로 인한 이슈 역시 코인에 관한 관심에 묻혀버렸다.
덕분에 네뷸라 케미컬의 타격은 미미했는데, 아니 애초에 타격이랄 것도 없었다.
에너맥스1000 발표 소식이 네뷸라 케미컬의 정상영업에 지장을 초래할 이슈는 아니었으니까.
무엇보다 주요 고객사인 테슬라가 에너맥스1000에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고 솔리드스타 수입을 유지하자 시장은 네뷸라 케미컬 이슈가 문제 없다고 판단하여 이내 논란은 잠잠해졌다.
게다가 네뷸라 케미컬이 상장된 것도 아니었기에 주가에 직접 영향을 받은 것도 아닌 상황.
결국 이정우 대표가 당황해서 어떤 액션을 취할 줄 알았던 대한화학과 인수 컨소시엄단, 그리고 폭스바겐 모두 벙찔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특히 모든 상황을 주도해왔던 대한화학의 한동준 사장은 마음이 급해졌다.
이번 이슈를 통해 얻은 이득이 아무것도 없었을뿐더러, 애너맥스1000의 상용화가 불가능하다는 게 밝혀지면 오히려 그 후폭풍을 온전히 감당해야 하는 건 대한화학 자신들이었으니까.
결국 그들은 급히 이정우 대표를 만나러 본사로 찾아갈 수밖에 없었다.
"이정우 대표를 만나러 왔습니다."
"죄송합니다. 현재 대표님은 자리에 안 계십니다."
"예?"
김 비서의 대답에 당연히 본사에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막무가내로 찾아왔던 한동준 사장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미리 약속을 안 잡은 건 자신의 잘못.
침착하게 그의 위치를 물었다.
"이 대표 그럼 어디에 있습니까?"
"대표님은 현재 미국에 계십니다."
"… 미국이요?"
"네. 기가테네시 공장 임시 가동식에 참여하기 위해서 출장가셨습니다."
네뷸라 케미컬의 최근 설립 공장은 전부 솔리드스타 생산용 공장.
즉, 기가테네시 공장 역시 솔리드스타 생산용이니, 앞으로 시장에 솔리드스타가 훨씬 더 많이 풀린다는 소리였다.
생산량이 늘어나니 네뷸라 케미컬이 벌어들이는 매출 역시 대폭 늘어날 터.
'… 이런.'
네뷸라 케미컬을 인수할 기회가 멀어지는 소리에 한동준 사장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갔다.
* * *
한달도 안 되는 짧은 시간이지만 체감상 굉장히 오래된 것만 같은 기분과 함께 정우는 오랜만에 미국으로 향했다.
바로 기가테네시 가동 기념식에 참석하기 위해서, 그리고 기가테네시의 추가 부지확보를 위해서 대표인 그가 직접 협상할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미국행 비행기에 오른 정우는 습관처럼 코인을 확인했다.
─────────
[ETHUSDT-Long(Cross 0.15x)]
[Quantity: 8,000,000ETH]
[Entry Price: 69.69]
[Mark Price: 503]
[Liq. Price: 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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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q. Price: 0.5]
[Value: 5,183,723,482.38USD(+5,083.7%)]
……
─────────
12월에 접어들어 그의 계좌 가치는 급격히 불어난 상태였다.
이더리움은 크게 상승하지 않았지만, 비트코인이 거의 2배 이상 올랐기 때문이다.
때문에 그의 이더리움과 비트코인 선물 포지션의 합산 가치는 무려 86억 달러, 한화로 9조원에 달했다.
'익절할 날도 얼마 남지 않았네.'
이제 한달 정도 지나면 포지션을 익절하여 현금화할 수 있을 터.
정우는 그 현금으로 공장을 추가로 지을 생각이었다.
물론 지금도 출금할 현금은 넉넉했다.
단타용 계정으로 열심히 단타를 치고 있었는데, 여기저기 빼서 쓰느라 고작 천만 불(?)만 남았던 단타용 계좌는 다시 1억 달러에 가깝게 늘어난 상태였기 때문이다.
'다시 열심히 벌어서 10억 달러 찍어야지.'
새로운 목표에 불타오르며 열심히 단타 삼매경에 빠졌다가 정신을 차리니 어느새 테네시 멤피스 국제 공항에 도착한 뒤였다.
오랜만에 밟는 미국땅.
굉장히 오랜만에 보는 탁세훈 본부장이 그를 맞았다.
"대표님!"
기가테네시 생산라인 설치와 허가를 위해 어찌나 열심히 돌아다닌 건지 탁세훈의 피부는 못 본 사이에 까맣게 그을려 있었다.
"오랜만입니다, 탁 본부장님. 잘 지내셨죠?"
"아이고 죽겠습니다 그냥."
"하하하, 엄살은요. 저 안 보고 싶으셨나봐요. 연락도 잘 안 하시던데."
"에이, 남자끼리 보고 싶어하고 그러는 거 아닙니다. 그보다는 서현 씨가 많이 보고 싶어 했죠. 그렇죠 서현 씨?"
그 말에 탁세훈 본부장의 옆에 있던 그녀, 지서현을 바라보았다.
오랜만에 본 지서현은 어색한지 눈도 제대로 마주치지 못하고 쭈뼛거리고 있었다.
정우가 그녀를 보며 피식 웃었다.
"오랜만이야, 서현 씨. 아니, 지 팀장."
"… 오랜만입니다. 대표님."
"그런데 여긴 무슨 일이야? 실리콘밸리에 있어야 하는 거 아니었어?"
실리콘밸리에 있어야 할 그녀가 왜 테네시 주에 있는 걸까?
의문이 가득한 정우를 보며 지서현이 입을 열었다.
"그게… 보고 싶어서…."
"뭐? 보고 싶다고?"
"… 아, 아닙니다. 그… 보고라는 게… 아! 보고드릴 게 있어서 왔습니다."
"보고? 무슨 보고?"
"예. 네뷸라 코인거래소 알파 테스트 버전 완성되었습니다. 확인해보셔야 할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