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7 : 나라고 못할 거 없잖아 >
정우와의 재산분할 재판이 끝나고 안예슬은 그야말로 세간의 웃음거리가 되었다.
-(싱글벙글) 스스로 복을 걷어 차버린 여자 근황.jpg
└와 어떻게 이정우 대표를 버리고 바람을 피냐 ㄷㄷ
└ㅇㅈ 이정우 대표 얼굴도 잘 생겼던데
└꼬추 작을 듯… 제발 작아라
└ㄹㅇ 안 그러면 너무 불공평함
-이정우 대표 전 와이프 안 모씨, 재산분할 소송 패소
└ㅁㅊ ㅋㅋㅋㅋㅋㅋ 이혼하고 대박난 건데 저걸 소송 거네
└진짜 역겹다ㅋㅋㅋㅋㅋㅋ
└저러니 남편 버리고 아랫도리 함부로 놀리다 훅 간 거지 ㅉㅉ
└이왕 얼굴 팔린 거 이참에 화류계나 AV 데뷔해도 괜찮을 듯
└ㄹㅇ ㅋㅋㅋㅋ
재산분할 소송 패소 이후 그녀는 기자들에 의해 언론에 폭격을 받았다.
전세계에 한국을 국위선양 중인 이정우 대표의 전 와이프가 재산분할 소송을 건 것은 굉장한 이슈였던 것.
당연하게도 그녀의 패소는 언론과 여론에 의해 입에 오르내리며 회자되었다.
물론 안 좋은 방향으로 말이다.
그 과정에서 그녀의 지난날과 불륜에 대한 소식이 알려진 건 덤이었다.
심지어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기사가 번역되어 역으로 소개될 정도였으니 오죽할까.
하지만 현재 그녀는 그런 반응들을 신경 쓸 정신조차 없었는데, 그 이유는 바로 빚 때문이었다.
인지대 7천만원. 거기에 각종 카드론과 신용대출까지 합하면 빚은 억대에 달했다.
연봉 3천도 못받던 그녀로서는 감당하기 힘든 액수였고, 설상가상 지금은 일도 안 하는 백조 신세라 빚을 갚는 일은 요원해 보였다.
"… CS쪽에서 3년 일했어요. 네네. 경력직이에요. 네? 무슨 소리에요. CS는 경력으로 왜 안쳐준다는 거예요. 아, 됐어요! 그딴 회사 나도 안 가요!"
방금도 일을 구하려 했지만 CS쪽 경력을 안 쳐준다는 얘기에 홧김에 전화를 끊어버렸다.
업계에서는 CS는 그저 전화 받는 하찮은 직업이라는 인식이 강해서 그리 대우해주지 않는데, 그래서인지 새 일자리를 구하기가 만만치 않았던 것.
물론 눈을 조금 낮추면 구할 수야 있지만, 거의 최저시급에 가까운 일뿐이었다.
지금 당장 돈이 급한 상황에서 최저시급을 받자고 일을 구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기에 안예슬은 한숨만 푹푹 내쉬었다.
"하… 어쩌다 내 신세가 이렇게 된 건지…."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던 그때였다.
그녀가 보는 스마트폰 화면에 하나의 창이 떠올랐다.
─────────
<불편한 UI는 가라!>
<최고의 코인거래소 엇비트!>
<사용자 친화적 거래화면으로 단 1분만에 거래 가능!>
<국내 최초 코코아톡 연동 지원까지!>
<신규회원 수수료 50% 파격 할인 이벤트 진행 중!>
<지금 가입하세요!>
─────────
그건 어떤 코인 거래소를 홍보하는 팝업 광고였다.
'아 또 광고야!'
짜증이 나서 별 생각 없이 팝업 광고를 닫으려던 안예슬.
그녀의 손이 문득 멈칫했다.
"… 어? 가만."
코인?
코인이라면 자신의 전남편 이정우가 투자했던 그것이 아니던가.
도박이라고 무시했던, 하지만 전남편을 그야말로 뱁새에서 황새, 아니 거의 불사조로 탈바꿈시킨 바로 그 코인이 보이자 안예슬은 솔깃했다.
'… 일단 구경만 해봐야겠다.'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링크를 누른 그녀는 거래소 사이트를 확인했다.
화면 한가득 떠오른 종목들.
익숙지 않았지만, 빨간 불 가득한 코인들의 모습이 심상치 않았다.
그리고 거기 적힌 수익률들은 그녀의 두 눈을 의심케 했다.
"… 200%가 올랐다고?"
놀랍게도 아인스타이늄이란 코인이 무려 200%가 올랐던 것.
심지어 그녀가 보고 있는 지금도 수십퍼센트씩 쭉쭉 상승하더니 300%에 도달했다.
"이, 이게 얼마야?"
백만원을 넣었으면 3백만원이요, 천만원을 넣었으면 3천만원이다.
그것도 단 몇분만에 말이다.
'만약 내가 여기에 투자했더라면…?'
빚더미이긴 하지만 수중에 있는 명품가방과 옷을 처분하면 몇백 만드는 건 일도 아닐 터.
그걸 여기에 투자했다면 원금을 갚는 건 일도 아닐 것처럼 보였다.
심지어 안예슬이 본 아인스타이늄이란 코인만 저렇게 급상승 중인 게 아니었다.
마치 경쟁이라도 하듯 다른 코인들 역시 덩달아 상승하고 있었다.
돈을 벌 기회가 수없이 생겨나고 사라지고 반복 중인 곳.
기회가 저곳, 코인 시장에 존재했다.
"… 진짜 나도 한 번 해봐?"
처음 구경하려던 마음과 달리 안예슬의 마음속에 꿈틀꿈틀 차오르는 투자에 대한 욕구.
그녀는 어느덧 자기 자신을 합리화 하기 시작했다.
"… 생각해보니 나라고 못할 거 없잖아?"
그 곰탱이 같던 전남편도 코인 투자로 대박이 났다.
그렇다면 조금 더 깐깐한 자신이라면 더 잘할 수 있지 않을까?
정말 전남편처럼 초대박이 나는 것도 꿈은 아닐지도 모른다.
"물론 처음이니까 좀 조심해서 한다면…!"
그녀도 바보는 아니기에 코인 투자로 돈을 잃을 수 있다는 걸 알았다.
그렇기에 공부를 하면서 투자하기로 결심하고 일단 시드머니를 만들어보기로 했다.
쓰레기장처럼 덮여 있는 방안 한쪽에 켜켜이 쌓여 있는 명품 상자들.
"… 미안해 아가들아. 엄마가 금방 다시 데려올게."
안예슬은 자식처럼 애지중지하던 명품 상자들을 팔기 위해 집어 들었다.
* * *
"… 네뷸라 코인거래소 알파 테스트 버전 완성되었습니다. 확인해보셔야 할 것 같아요."
"뭐? 벌써?"
거래소 테스트 버전이 개발되었다는 지서현의 보고에 정우는 당황했다.
그도 그럴 게 거래소 프로젝트는 최소 1년은 보고 진행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거래소 개발에는 굉장히 복잡한 단계를 거쳐야 한다.
먼저 거래소 법인을 어디에 세울지부터 정해야 한다. 왜냐하면 규제의 존재에 따라 거래소 개발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미국 뉴욕의 경우 BitLicense를 준수하여야 하는데 이를 위해 뉴욕에서 거래소 사업을 하려면 회원 가입시 반드시 뉴욕 주민인지 신원확인이 필요했다.
즉, 규제로 인해 거래소 시스템 자체에 추가적인 기능 개발이 강제되는 것이다.
때문에 최대한 규제가 없는 구역을 선택해야 개발에 제약이 적어지기에, 정우는 신중히 고민한 끝에 싱가포르와 국내 중 국내를 선택하였다.
그 이유는 국내는 현재 규제가 없기에 거래소 사업을 하기에 적합한 환경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추후 국내거래소 역시 각종 규제와 안전장치가 생겨나지만, 그때가 되면 법적 제도권 아래로 들어가는 게 세계적인 트렌드가 될 테니 문제가 없다.
지역을 정했으면 이후 본격적인 개발 영역에 돌입하게 되는데, 우선 거래소 형식을 정해야 한다.
거래소의 방식은 대표적으로 중앙화, 탈중앙화, P2P 형태가 있는데, 네뷸라 거래소는 중앙화 거래소였다. 그 이유는 전송 및 처리속도가 가장 빠르기 때문이다.
탈중앙화 거래소는 가장 이상적인 형태지만, 블록체인 특성상 매매 처리 속도가 매우 느리기 때문에 세계의 메이저 거래소는 대부분 중앙화 형태를 띠고 있었고, 정우 역시 중앙화 거래소를 선택한 것이다.
거래소의 컨셉을 정한 이후에는 회원가입 및 고객 신원확인 서비스, 그리고 피아트 통화(FIAT Money: 명목화폐. 정부에 의해 발행되고 규제되고 통제되는 법정통화로 달러나 원화 등을 일컬음) 및 암호화폐 입출금 기능을 개발해야 한다.
이는 거래소를 이용하기 위한 기초 중의 기초 단계인데, 그 다음으로는 코인거래 및 지불 시스템을 구축한다. 이 과정에서 암호화폐 거래시 구매자와 판매자의 모든 매수 및 매도 주문을 기록하는 오더북(Order book: 호가창)을 만들고, 시장가 및 지정가 등 각종 거래유형별 체결 시스템을 구축하고, 모든 거래를 그래프로 기록하는 차트 기능 및 실시간 마켓뎁스차트Market Depth Chart(매수와 매도 물량을 실시간으로 나타내는 차트. 보통 누워있는 반쪽짜리 모래시계 모양이다) 정보를 넣어야 한다.
이 모든 걸 직관적인 UI(User Interface: 사용자 인터페이스)를 구현해야 하는데, 이때부터 진짜 코인 거래가 가능해진다.
하지만 이건 기능적인 측면일 뿐, 처리해야 할 일은 산더미다.
거래소를 만들었다고 거래가 일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당연하게도 거래소에 상장할 최신 코인 리스트를 제공하기 위해 업체를 선정하고 미팅하여 상장 계약을 체결하는 일이 우선되며.
거래소를 이용할 유저들에 대한 모집 및 홍보가 필요하다.
게다가 각종 해킹에 대비한 보안책도 개발해야 하며, 돈과 직결된 만큼 여러 돌발 이슈에 대응하기 위하여 강력한 관리자 패널 서비스도 제공해야 한다.
즉, 처리해야 할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닌 것이다.
그런데 이 모든 과정을 벌써 끝내고 알파 테스트 버전을 개발했다고?
정우가 놀라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예. 그래봤자 겨우 알파 테스트 버전일 뿐입니다. 베타 및 마켓 버전까지 가려면 멀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개발한 지 얼마나 되었다고 그래. 좀 당황스러울 정도로 빠른걸?"
"직접 개발하기보다는 MTS 같이 노하우가 필요한 기능은 대부분 구매하여 처리해서 작업량과 기간을 대폭 줄였습니다."
"아… 그럼 전에 그 결재 건이?"
지서현이 전자결재로 몇 가지 프로그램 및 스크립트 구매를 요청한 적이 있었다. 당연히 거래소 개발에 필요하겠거니 하고 승인했었는데 역시 허투루 구매하지 않았던 모양이다.
"네. 그리고 지난번 IOHK와 미팅 후에 노하우를 좀 많이 얻었습니다."
"아, 그때 찰스 호스킨슨 만난다고 했지? 그거 잘 얘기했어?"
지서현이 미국에 남은 이유 중 하나가 당시 샌프란시스코 블록 체인 위크 때문이었다. 그곳에 카르다노 재단을 이끌고 있는 찰스 호스킨슨과 IOHK 관계자들이 참석했는데 그들과 미팅하기 위해 남았던 것.
"얘기를 많이 나누지는 못했습니다. 아무래도 저에 비하면 워낙 유명하고 바쁘신 분이다 보니… 그래도 IOHK 관계자를 통해서 거래소 개발과 관련해서 개발자 한 명을 추천받았는데, 그 친구가 굉장합니다."
"그래? 나도 아는 사람인가?"
"윌리엄 콜빌이라고 고용 관련해서 보고는 드렸는데 읽어보시지 않으셨나요? 승인도 직접 해주셨는데."
"음… 기억이 안 나네. 사실 자세하게 읽어보진 않았어. 서현 씨가 고른 사람이면 괜찮겠지 싶어서 그냥 승인한 거지 뭐."
"아…."
갑자기 말을 잇지 못하는 지서현을 보며 괜히 그녀에게 부담을 준 것 같아 서둘러 말을 덧붙였다.
"부담 주려는 건 아니고, 그냥 그렇다는 거야. 아무튼 서현 씨 때문에 거래소 쪽은 든든하구만."
정우의 말에 지서현의 입가가 실룩 움직이며 미소가 떠올랐다가 이내 사라졌다.
그녀가 애써 무덤덤한 얼굴로 물었다.
"… 대표님, 그럼 거래소 테스트 버전 확인 안 해보시게요?"
"아, 당연히 확인해야지. 어딨는데?"
"여기 가져왔습니다."
지서현이 가져온 노트북으로 거래소 알파 테스트 버전을 확인했다.
"대표님이 말씀하신 대로 직관적이고 심플한 UI에 중점을 두었습니다."
"오오! 좋은데?"
거래소 개발 초입 청사진단계에서 정우가 강조한 내용이 있었다.
바로 '간단함'이다.
"내가 비트매스 선물거래소도 그렇고 빗쌈 거래소도 그렇고 이용해 보니까 공통점을 알겠더라고. 전부 너무 복잡하고 불편해. 쓸데없는 기능도 왜 이렇게 많은지… 그에 반해 이 테스트 버전은 진짜 심플하게 잘 뽑혔는데? 구이GUI(Graphic User Interface)도 굉장히 직관적이고."
"마음에 드신다니 다행입니다. 저희도 내부에서 테스트해보고 대부분 깔끔하게 잘 나왔다는 의견이 많습니다."
"진짜 잘 나왔네. 탁 본부장님 생각은 어때요?"
"코인 거래 저는 초짜라 잘 모르는데, 그런 제가 봐도 매매 어떻게 해야 하는지 딱 보이네요. 쉬워서 좋은데요?"
"그쵸? 이야- 진짜 잘 빠졌다."
정우가 감탄했다.
그가 생각한 방향 그대로 결과물이 나와서 놀라울 지경이다.
"서현 씨 혹시 내 머릿속에 들어갔다가 나온 거 아니지?"
"네?"
"내가 생각한 그대로 나왔거든."
"아… 저도 거래를 좀 해봐서… 그 불편했던 경험을 개선하려고 하다보니…."
"거래를 해봤다고?"
"네 조금…."
하긴 정우가 그녀에게 비트코인을 빌렸던 이후로 그녀도 조금씩 코인 투자를 하는 걸로 보였다.
그때의 경험이 묻어나온 모양.
"잘했어. 100%, 아니 200% 만족스러운 결과물이야. 고생 많았어."
"아직 멀었습니다. 베타 테스트 버전이 나오려면 기능을 더 구현해야 합니다."
"아직 구현 안 된 기능이 뭐 있는데?"
"코인 입출금 기능 쪽에 몇 가지 에러가 있어서 잡고 있는 중이고, 거래소 어플에 들어가는 MTS 기능의 경우 구매한 그대로 사용할 수가 없어서 스크립트 암호화 중이라 시간이 좀 걸리고 있습니다."
"아하, 혹시 추가로 자금 필요하거나 개발자 영입 필요하면 얘기해. 내가 적극적으로 지원해줄게."
"지금도 충분합니다만, 알겠습니다."
뿌듯한 듯 슬며시 미소를 띠고 있는 지서현을 보며 정우도 피식 웃음이 나왔다.
'올해는 어렵겠지만 조만간 내가 만든 거래소에서 거래를 할 수도 있겠네.'
지금 당장 코인 열풍 때 사용하면 좋겠지만, 거래소 개발이라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지금도 국내 네뷸라 코퍼레이션 본사 사무실에 20여 명의 개발자가 밤낮없이 거래소 개발에 매달리고 있고, 미국에서도 지서현이 영입한 실리콘밸리 실력자들이 거래소 개발에 열중 중이라 단기간에 이 정도 결과물이 나온 것이지, 보통 같으면 최소 1년은 잡아야 결과물을 확인할 수 있었을 것이다.
즉, 지금 알파 테스트 버전이 나온 것만 해도 정우는 만족스러웠다.
"서현 씨, 조금만 더 힘써줘. 그리고 탁 본부장님, 슬슬 거래소 홍보 및 마케팅 관련하여 인력을 보충해야겠습니다. 한번 알아봐주세요."
"그쪽은 제 전문이네요. 맡겨주세요."
"그럼 거래소 확인은 끝났으니 본행사에 돌입해볼까요?"
"보시면 깜짝 놀라실 겁니다."
본행사, 기가테네시 공장 가동식을 위해 세 사람은 이동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