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코인 후 인생 대박-93화 (93/120)

93화 솔리드스타RC

“예. 트럼프 대통령 방한 건 때문에 일정 조율이 필요하다고 해서 보고드렸습니다.”

“트럼프 대통령 방한 건이요?”

“아무래도 청와대 측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그룹총수 및 경제인들과의 회동을 주선하려는 것 같습니다.”

“아하.”

듣고 보니 때마침 트럼프 대통령이 방한할 때가 되긴 했다.

뉴스에서도 곧 일본을 시작으로 아시아 순방을 한다고 했던가.

‘원래대로라면 2017년 말에 방한했던 것 같은데.’

현재는 2018년 2월을 앞둔 시점.

아무래도 정우가 과거로 회귀하면서 미래가 조금씩 바뀌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이제 그의 행동 하나하나가 미래에 큰 영향을 끼친다는 의미겠지.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반드시 그가 알던 미래 그대로 흘러가도록 하기 위해 소심하게 행동할 생각은 전혀 없었다.

“……바뀌면 바뀌는 거지.”

“네? 대표님 뭐라고 말씀하셨나요?”

“아니에요. 그보다 말씀하신 건은 알겠어요. 방한 날짜 맞춰서 스케줄 비워 주세요.”

“예, 그렇게 조치하겠습니다.”

“그리고 오늘 저녁 따로 스케줄 없죠?”

“예. 없습니다.”

“그럼, 전 이만 먼저 퇴근해볼게요. 약속이 있어서.”

“아, 그렇습니까? 가까운 곳이면 제가 대신 픽업해 드리겠습니다.”

“아니에요. 강 팀장님 계시는데요. 뭘. 김 비서님도 주말인데 일찍 퇴근해 보세요.”

“알겠습니다. 그럼, 좋은 주말 되십시오.”

정우는 간단하게 짐을 챙겨 회사를 나섰다.

그 뒤를 그림자처럼 강철준 팀장이 따라붙었다.

거대한 벽이 어깨 뒤로 다가오자 그늘이 졌다.

“대표님, 저녁 스케줄은 어디로 이동하시는 겁니까?”

“지금 확인해 보려구요. 잠시만요.”

일에 열중했던 만큼 조금은 쉬고 싶어졌다.

그래서 그가 찾은 휴식처는 다름 아닌 친구들이었다. 이미 오늘 모이기로 했다는 걸 단톡방을 보고 알았기에 곧장 스마트폰을 들어 김봉수에게 전화를 걸었다.

“……야, 나 퇴근했다. 어디냐?”

-오, 바쁘다더니 웬일이셔. 우리? 지금 청담이지.

“코앞이네. 바로 갈게. 주소나 찍어 줘.”

-알겠다. 주소 보내 줄게.

문자로 날아온 주소를 확인한 정우는 강 팀장에게 부탁했다.

“모임 장소가 여기라고 하네요.”

“알겠습니다. 바로 이동하겠습니다. 피터, 미리 추월해서 특이 사항 있는지 확인해서 보고해 줘.”

-예, 캡틴.

몇백만 달러짜리 용병을 운전기사로 쓰니 좀 기분이 묘하지만 뭐 어떤가.

신나게 술 먹고 뻗어도 안심하고 귀가할 수 있겠다 여기며 정우는 조금 있을 친구들과의 만남을 기대하였다.

* * *

청담동에 위치한 한 일식 오마카세.

인당 가격이 무려 100만 원에 육박하는 초고가 오마카세였는데, 룸으로 된 프라이빗한 공간에서 담당 셰프가 테이블 앞에서 직접 요리해 주는 컨셉의 식당이었다.

가격 때문인지 아니면 프라이빗한 식당의 컨셉 때문인지 식당을 이용 중인 사람들과 마주칠 일이 없었는데, 그런 분위기가 마음에 들었다.

정우가 도착하자 그곳은 이미 왁자지껄하게 술판이 벌어져 있었다.

“오, 아빠! 왜 이제 왔어.”

“어, 주인공 왔네.”

“여- 왔어?”

장난스럽게 아빠라고 부르는 김봉수를 필두로 김경도, 김동현 두 사람 모두 반갑게 그를 맞이했다.

이미 쌓여 있는 사케 병들과 시뻘건 얼굴로 미루어 볼 때, 정우가 오기 전부터 신나게 달린 모양이다.

마련된 자리에 착석하며 정우가 핀잔을 날렸다.

“야, 지금이 몇 시인데 벌써부터 그렇게 퍼마시고 있냐. 그리고 꼴이 그게 뭐야. 누가 보면 백수인 줄 알겠네.”

다들 수백억을 번 친구들인데, 차림새는 후줄근한 맨투맨 일색이라 한 마디 했지만 친구들은 타격도 없어 보였다.

김봉수가 실실 웃어 댔다.

“흐흐, 뭐 어때. 니 말대로 직장 없는 백순데.”

“봉수 말이 맞다. 여기서 너 말고 일하는 사람이 어디 있어.”

김동현이 맞장구치자 김경도가 손사래를 쳤다.

“야야, 난 빼 줘. 난 트레이더거든?”

“미친 새끼. 코인 그만하라고. 아직도 개미들 등골 다 빼먹고 있네.”

“인정. 정우야, 그그드 저 새끼 아직도 코인한단다.”

“그래?”

펀드매니저 출신답게 김경도는 투자에 좀 밝은 편이었다.

그래서일까.

얼마 전 빅쇼트 때 다른 친구들이 모두 익절하고 코인에서 손을 뗀 것과 달리, 그는 아직도 코인 트레이딩을 진행 중인 것으로 보였다.

“얼마나 하고 있는데?”

“많이는 안 하고. 한 50억 정도?”

“50억? 너무 큰 거 아니야?”

“크기는. 내가 이번에 얼마나 벌었는데. 번 거에 비하면 진짜 소소하게 굴리는 거야.”

김경도가 우쭐거렸다.

“내가 정우 너 정도는 아니지만, 여기 세 명 중에서 제일 많이 벌었을걸?”

“야, 펀드매니저 출신을 어떻게 이겨. 그리고 김경도 이 새끼 진짜 웃긴 거 뭔지 알아? 지 혼자만 좋은 거 좋은 타이밍에 매수 들어가고 나중에 알려 줬다?”

김봉수가 기다렸다는 듯 고자질했다.

티격태격하는 친구들의 반응이 재밌어서 정우가 웃으며 물었다.

“그래서 경도 너 이번에 총 얼마나 벌었는데.”

“나? 천 억.”

“천 억이라고?”

천 억이라는 말에 앞에서 요리해 주던 셰프의 손이 순간 움찔했다.

요리하면서도 그들의 대화를 다 듣고 있었던 건지 놀란 모양이다.

그런 셰프의 반응에 김봉수가 너스레를 떨었다.

“하하, 셰프님 놀라셨죠? 죄송합니다.”

“아, 아닙니다. 근데 천억이라니…… 와, 대단한 분들이셨군요? 어디 기업 운영이라도 하시는 건지……?”

“에이, 아니에요. 얘네들 지금 부르마블 얘기 중이에요.”

“부르마블이요? 아, 어쩐지…….”

김봉수의 농담을 곧이곧대로 믿는 셰프.

진실을 아는 친구들만이 서로를 쳐다보더니 웃었다.

김동현이 김경도에게 재촉했다.

“아무튼, 아까 얘기 계속해 봐.”

“어? 어. 사실 빅쇼트 오기 전까지는 한 650억 정도? 모았는데, 빅쇼트 직전에 정우 니가 선물 숏 얘기했었잖아. 그때 승부수 한번 걸었지. 숏 2배 레버리지 풀매수 들어가서 딱 2배로 불렸다.”

“와…… 난 숏 청산당한다길래 무서워서 진짜 쪼금밖에 못 먹었는데.”

“나도. 경도 저 새끼 옛날부터 간뎅이가 부었다고 생각하긴 했는데 미쳤네.”

경도의 무용담에 봉수와 동현이가 샘이 난다는 듯 투덜거렸다.

정우가 그들을 보며 물었다.

“그럼 니들은 얼마 벌었는데?”

“나? 350억.”

“나도 봉수랑 비슷해. 400억.”

“와, 여기서 내가 제일 못 벌었네? 개빡친다…… 하!”

“하하하하, 봉수 이 새끼는 진짜 밥상을 차려 줘도 못 떠먹어요. 하하하하!”

한참 깔깔 웃던 동현이가 정우를 응시했다.

“아무튼, 그래서 정우 니는 얼마 벌었냐?”

“나?”

“어. 코인하라고 니가 알려 준 거잖아. 당사자는 얼마나 벌었는지 궁금해서.”

“맞아. 초기 시드도 빵빵했을 텐데 엄청 벌었을 것 같은데. 도대체 얼마나 번 거냐? 2천 억? 3천 억?”

“글쎄.”

조 단위로, 그것도 수십 조 단위로 벌었다고 하면 믿을까.

궁금해하는 친구들의 초롱초롱한 눈초리를 받으며 정우는 미소 지을 뿐이었다.

“상상에 맡길게.”

“하, 치사하다. 지 혼자 다 듣고 안 알려 주는 거 보소.”

“에라이- 정우 이 새끼 앞으로 모임에 부르지 마. 치사한 새끼.”

“인정.”

봉수의 투덜거림을 필두로 반란을 일으키는 친구들.

하지만 정우의 한마디에 그들은 곧 꼼짝도 못 했다.

“아들, 자꾸 반항할래? 앞으로 더 좋은 투자 건 수두룩한데, 너만 안 알려 준다?”

“……아빠. 제가 잠시 미쳤나 봅니다. 고정하세요.”

“아이고, 내가 잠시 은인을 몰라뵙고…… 흠흠. 정우님, 드시고 싶으신 거 없으신가요? 아이고 술잔이 비었네. 제가 한잔 올리겠습니다.”

“이런 목이 많이 뭉쳤네. 정우야, 돈 벌어서 어따 쓰냐. 관리도 받고 좀 그래라.”

무릎 꿇는 봉수와 공손하게 술을 따르는 경도, 갑자기 정우 뒤로 가 어깨 마사지를 시작하는 동현이까지.

세 친구의 재롱 잔치(?)에 정우가 박장대소했다.

“푸하하하, 농담이야 농담. 징그럽게 이러지 마셔.”

“그럼, 얼마 벌었는지 알려 주려고?”

“그건 비밀이고.”

“진짜 궁금한데.”

“그보다는 우리가 번 이 자본으로 뭘 할지가 중요한 게 아니겠냐? 돈은 벌었고, 니들 이제 그 돈으로 뭐 할 거냐?”

“우리?”

세 친구가 서로를 쳐다봤다.

“그러고 보니 딱히 생각 안 해 봤네. 평생 소원이 돈 많은 백수가 되는 거였는데. 아, 그러고 보니 나 차는 뽑았구나.”

“차?”

“어. 람보르기니 질렀다.”

람보르기니 얘기에 친구들이 질렸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말도 마. 저 새끼 아까 람보르기니 타고 와서 여기 식당 들어오기 전에 얼마나 자랑하던지.”

“부러우면 니들도 사. 하하하하.”

“안 그래도 하나 지를까 고민 중이야.”

“근데 람보르기니가 그렇게 빨리 출고되냐?”

정우의 물음에 김봉수가 그것도 모르냐는 듯 핀잔을 줬다.

“당연히 2년은 기다려야지. 근데 그걸 언제 기다리냐고. 그냥 새 차 주문 넣고 바로 중고로 계약했다. 새 차 출고될 때까지 끌고 다니다가 새차 출고되면 갈아 치우는 거지. 이게 요새 트렌드인데 몰랐냐?”

“어. 난 그냥 벤츠만 타고 다녀서 몰랐지.”

“벤츠? 그때 샀다는 S클래스?”

“어.”

벤츠를 타고 다닌다는 말에 친구들이 놀랐다.

“야, 너는 돈이 그렇게 많은데, 겨우 벤츠 타고 다녀? 당장 벤틀리나 롤스로이스 같은 거 질러.”

“맞아. 대표인데 간지나게 회장님 타고 다니는 차 정도는 몰아 줘야지.”

“하하하, 난 지금도 충분해. 차에 대해 그리 욕심이 없어서.”

“그러면 나 사 주던가.”

“하나 사 줘?”

“뭐?”

농담을 던진 건데, 진짜 사 준다는 말에 봉수가 당황했다.

“아냐아냐, 됐어. 차는 무슨. 니가 도와준 은혜만 해도 평생 갚아도 모자랄 판에 더 받을 순 없다.”

“은혜는 무슨. 친구끼리 돕고 사는 거지. 아무튼 차라도 플렉스했다니 다행이네. 그럼 그걸로 끝?”

“나는 끝. 아직 무계획 상태임.”

“오키. 동현이 넌?”

“나? 음…… 생각 안 해 봤는데. 아, 아니다. 나 할 거 있어.”

앞으로 뭐 할 거냐는 질문의 다음 타자가 된 김동현이 모두를 쳐다봤다.

“난 건물 살 거야.”

“건물?”

“어. 평생 소원이 건물주 되는 거였거든. 그것도 놀고먹는 건물주. 딱 건물 사서 지하 1층에는 내 녹음실, 지하 2층에는 헬스장 만들 거고, 지상 1층에 카페랑 식당 세우고, 2층에는 피시방, 3층에는 당구장, 4층에는 노래방, 5층에는 영화관, 옥상에는 수영장 만들 거야. 아, 클럽도 만들까?”

“뭐? 미친 새끼. 크크크크큭!”

마치 전용 놀이터를 만든다는 것 같은 신박한 아이디어에 친구들이 웃어 댔다.

하지만 정우는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은데?”

“음? 진짜로?”

“어. 하나의 공간에서 모든 걸 해결할 수 있게 하겠다는 거잖아. 수요가 있을 것 같은데?”

“그치? 나쁘지 않지?”

“어. 요새 내가 해외 좀 다녀봐서 아는데, 이미 큰 리조트 같은 곳에 가면 하나의 거대한 문화 공간이 조성되어 있어서 리조트 안에서 모든 걸 해결할 수 있게끔 되어 있거든. 그래서 관광하러 갔다가도 도시 구경은커녕 리조트 안에서 놀다가 시간이 다 가는 경우가 많아. 수요가 있다는 거지. 이거 잘만 구상하면 대박도 노려 볼 만하겠는데?”

정우의 칭찬에 김동현의 안색이 밝아졌다.

“그냥 생각해 본 거였는데, 듣고 보니 나쁘지 않네. 진짜 추진해 봐야겠다.”

“도움 필요하면 얘기해. 나도 도와줄게.”

“알겠어.”

“동현아, 내 도움은 필요 없냐? 나도 같이 투자하고 싶은데?”

“뭐?”

은근슬쩍 봉수가 숟가락 하나 얹으려고 하자 김동현이 도끼눈을 떴다.

“어허, 남의 밥상에 숟가락 얹는 거 아니야.”

“야, 그래봤자 너 4백억 있다며. 그걸로 건물 쪼그만 거 하나 사면 쫑인데, 누구 코에 갖다 붙여. 걍 나랑 돈 합쳐서 같이 투자하자.”

“그런가?”

“어. 딱 한 600억짜리 사서, 나머지 100억으로 가게 같은 건 우리가 직접 차리자고. 인테리어도 직접 하고. 그럼 되지 않을까? 아니다. 생각해 보니 대출 끼면 훨씬 큰 건물도 가능하겠네!”

“오호…… 나쁘지 않을 듯? 생각 좀 해 볼게.”

긍정적으로 고개를 끄덕이는 김동현.

이제 김경도의 차례다.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 향했다.

“넌 뭐 할 거냐?”

“나? 나는 이미 정해 뒀지. 코인 투자 계속할 거야. 결혼도 하고.”

“코인? 결혼?”

결혼한다는 얘기도 놀라웠지만, 특히 코인을 투자한다는 말에 모두가 눈을 크게 떴다.

“야, 코인 이제 끝물인데 계속한다고?”

“50억이 소액은 아니지만 니가 조금만 투자한다고 해서 뭐라 안 했는데, 계속하는 거는 애매하지 않냐? 코인 완전히 끝났는데.”

“글쎄. 난 지금이 큰 조정구간이고, 다시 한번 또 상승할 거 같거든. 코인 자체가 희소성도 있고, 음지이기는 하지만 코인에 대한 수요도 있고. 그리고 국가 간의 환전이 굉장히 복잡하고 제약도 많아서 불편한데, 코인은 이 틈새시장을 노려 볼 수도 있어. 이런 수요가 있는 이상 코인은 절대 망할 수가 없다고 봐. 조정이 몇 번 오기는 하겠지만.”

정우는 김경도의 판단을 들으며 솔직히 감탄했다.

회귀 전에는 그도 몰랐던, 하지만 회귀한 이후 코인에 대해 알면 알수록 깨닫게 되었던 사실들을 김경도가 그대로 얘기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의 말을 거들었다.

“경도 말이 맞아. 코인 시장은 한 번 더 상승의 기회가 남았다고 봐.”

“정말로?”

“어. 다만, 지금 진행 중인 조정구간이 얼마나 길어질지는 모르겠어. 최소 1년에서 2년 정도 보고 있기는 한데, 아마 그 이후에 물량 소화가 마무리되면 코인은 다시 한번 큰 상승을 맞이할 거야. 지금까지 맞이했던 상승분보다 훨씬 큰 상승을 말이야.”

“음…….”

잠시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이던 봉수와 동현이가 입을 열었다.

“정우 말이라면 그게 맞겠지.”

“그럼, 코인 다시 매집해야 하나? 아니면 1년까지 빠진다고 보고 숏을 잡아야 하나?”

“하락분이 너무 커서 더 빠질지는 모르겠다. 그냥 천천히 한 2년 정도 장투하면서 물량 모은다고 생각하고 진입하는 거 추천할게. 숏은 좀 위험해.”

정우도 최근에는 매매의 방향성을 살짝 잃은 상태였다.

그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컸던 급격한 하락세에 코인이 더 내려가지 않을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달까.

때문에 숏을 이용한 절대 지지 않는 단타를 치던 WooJung3 계정의 활동도 잠시 멈춘 상태였다.

대신 극히 적은 물량으로 롱 포지션을 활용해 반등 단타를 치면서 조금씩 수익을 내고 있는 실정이었다.

물론, 그 적은 물량마저도 워낙 시드가 커서 수익이 꽤 짭짤했지만 말이다.

그의 말에 김경도가 고개를 끄덕였다.

“듣고 보니 그렇네. 안 그래도 숏 물량 아직 완전히 안 털고 들고 있었는데, 슬슬 털어야겠다. 대신 롱포지션 위주로 매집해야겠고.”

“그래라. 레버리지 안 높아지게 조심해. 욕심부리지 말고.”

“오키.”

그저 방향만 제시해 줬을 뿐인데, 김경도가 이렇게 성장할 줄이야.

무엇보다 코인에 대해 이렇게 크게 관심을 가질 줄 몰랐다.

……그렇다면?

정우가 하나의 제안을 던졌다.

“경도야, 너 코인 제대로 투자해 본다고 했지?”

“어. 방금 한 얘기가 그거잖아. 왜?”

“혹시 우리 회사에서 일해 볼 생각은 없냐?”

“너희 회사?”

경도가 눈을 끔뻑였다.

정우가 말을 이어 갔다.

“네뷸라에서 코인거래소 열거거든. 그거 관련해서 한번 같이 일해 보면 어떨까 싶어서.”

“코인거래소를 만든다고?”

“어. 사실 이미 어느 정도 결과물이 나온 시점이라 이제 운영과 관리 쪽에 공을 들이고 있거든. 근데 너 정도라면 맡아도 되지 않을까 싶어서.”

“맡아도 된다고? 설마 나한테 코인거래소 경영을 맡기겠다는 거 아니겠지?”

“그럴 수도 있고. 친구인데 뭐 어때.”

정우의 말에 김경도가 고개를 저었다.

“야야야, 그건 좀 아니다. 너랑 사업하면 분명 잘 되긴 하겠지만, 네 밑에 들어가면 친구가 아니라 직장 상사랑 부하 관계가 돼. 그리고 내가 펀드매니저 출신이라 투자에 좀 밝긴 하지만, 진짜 전문경영인과 비교나 되겠냐?”

“그런가.”

“그런가가 아니라 무조건이지. 그러니까 괜히 친구라고 챙겨주려고 하지 말고, 그냥 저어어어기 MIT니 하버드니 스펙 좋은 놈으로다가 경영 맡겨. 알겠냐?”

“하하하, 알겠다. 쓴소리 고맙다.”

구구절절 그의 말이 맞았다.

김경도의 말에 정우는 자신이 너무 즉흥적으로 제안했음을 깨달았다.

“짜식. 대신 나중에 나 코인 하나 만들면 상장 좀 부탁할게.”

“코인을 만든다고?”

“내가 코인 투자만 할 줄 알았냐? 코인 하나 만들 거야. 딱 내 이름 따서 KKD코인. 어때?”

“미친 새끼. 크크크큭. 상장 제안서 잘 써 와 봐. 그럼 고려해 줄게.”

“그래. 알겠어. 일단 한잔 받아라.”

김경도가 따라준 사케를 받아서 건배 후 마셨다.

사케 특유의 향이 달다.

그걸 보며 김경도가 사악하게 웃었다.

“오케이. 이걸로 로비 완료. 나중에 꼭 받아 줘라?”

“뭐? 푸하하하하-! 알겠어알겠어. 근데 너 아까 결혼 얘기는 뭐야? 너 만나는 사람 있었냐?”

“음? 몰랐냐. 나 연애 시작했다.”

김경도의 선언에 모두가 야유를 날렸다.

“와, 이 새끼 맨날 솔로천국 타령하더니 커플지옥으로 지가 먼저 꺼졌네.”

“이 배신자 새끼야. 그래서 제수씨는 누군데? 어디서 만났는데?”

“직장에서. 한나라고 원래 직장 동료였어.”

“아, 그 니가 술 마실 때 얘기했던 예쁜 여직원?”

“맞아.”

그녀를 생각하는지 실실 쪼개는 경도를 보며 봉수가 물었다.

“어떻게 꼬셨냐? 돈이라도 뿌렸어?”

“무슨 개소리야. 당연히 이 형님의 매력으로다가 확-! 사로잡았지.”

“미친, 지랄하네. 누가 니 산적 같은 면상 보고 좋아하냐?”

“아니 진짜라니까. 그걸 어떻게 만났냐면 우리 회사에 꼰대부장 있거든? 근데 그 부장 새끼가 우리 한나한테 성희롱을…….”

김경도가 신나게 여자 친구를 만난 사연을 풀어놓기 시작했다.

그렇게 바보 김씨 삼 형제, 아니 이제 부자가 되어 버린 부자 김씨 삼 형제와의 유쾌한 술자리가 저물어 갔다.

* * *

친구들과 즐거운 시간도 지나가고.

다시 눈코 뜰 새 없이 바빠졌다.

솔리드스타, 이클립스, 코인거래소, 그리고 새롭게 진행 중인 그래핀 사업의 발판이 될 섬유 사업까지.

몸이 두 개라도 모자랄 정도로 바쁜 일상에서 정우는 다시 지서현과 얼굴을 마주하게 되었다.

“……여기 <코인거래소 사용자 인터페이스 개선안> 보고서입니다.”

“오케이, 수고했어요. 지 팀장.”

“예. 그럼 이만 나가 보겠습니다.”

보고서만 딱 올리고 돌아서는 지서현에게서 왠지 묘한 거리감이 느껴진다.

정우는 그녀를 불러세웠다.

“저기 지 팀장. 아니, 서현 씨.”

“……예. 부르셨습니까, 대표님.”

“그…… 혹시 무슨 일 있어?”

정우의 조심스러운 물음에 그녀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아무 일도 없습니다.”

“음, 아무리 봐도 무슨 일 있는 것 같은데.”

정우가 의심의 눈초리를 날려 보지만, 그녀는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정말로 아무 일도 없습니다. 어딘가 불편하십니까?”

“흠, 묘하게 거리감이 느껴진단 말이지. 내가 뭐 잘못한 거라도 있어?”

“전혀요. 대표님이 잘못하실 일이 뭐가 있겠습니까.”

“이상한데…… 아무튼 알겠고, 이따 저녁에 약속 있어? 없으면 저녁이나 같이 먹자.”

“죄송합니다. 선약이 있어서요.”

“아…… 그러면 어쩔 수 없지. 오케이. 다음에 식사하는 거로 하자고.”

“……예. 그럼 이만.”

무표정하게 돌아서는 지서현.

평소와 같은 반응이지만, 오늘따라 왠지 그녀의 얼굴이 좀 더 어두워 보이는 건 기분 탓일까.

하지만 그녀가 아무렇지 않다고 하며 피하니, 정우 역시 더 이상 다가갈 수 없었다.

‘……무슨 일 있는 것 같은데.’

캐묻기보다는 기다리기로 했다.

언젠가 그녀가 내킬 때 입을 열어 주리라 믿으며.

그 사이 정우는 일에 집중했다.

수없이 쌓여 있는 대표의 확인과 결재를 기다리는 보고서들과 프로젝트 이슈들.

그중 그의 눈길을 끄는 하나의 프로젝트가 있었다.

<솔리드스타 급속 충전 개량 건>

그건 성태규 CTO가 전두 지휘 중인 네뷸라 케미컬 배터리셀 연구팀에서 진행 중인 프로젝트였는데, 기존에 개발된 솔리드스타의 충전속도를 단축시키는 프로젝트였다.

그런데 해당 프로젝트에 어떤 성과가 있는 듯 프로젝트 페이지 아래에 성 전무로부터 직접 ‘대표님 확인 요망’ 댓글이 달려 있었다.

“한번 확인해 봐야겠는데?”

어떤 성과가 있을지 기대하며 정우는 연구실로 향했다.

현재 네뷸라 케미컬의 연구실은 본사의 한 층을 전부 사용 중이었는데, 소재와 셀 연구를 동시에 하다 보니 공간이 비좁았다.

“……이거 좀 늘려야겠구만.”

연구실 예산을 늘리고, 새로이 연구소 이전까지 고려하던 그때.

“대표님!”

성태규 전무가 그를 발견하고 반가운 얼굴로 다가왔다.

“마침 잘 와 주셨습니다. 그 보고 드린 건은 읽어 보셨습니까?”

“네, 전무님. 안 그래도 솔리드스타 급속충전에 대해 성과가 있다고 해서요. 어떤 성과입니까?”

“그게 말보다는 직접 보여 드리는 게 빠를 것 같군요. 따라오시죠.”

성 전무를 따라 연구소 안으로 들어섰다.

거기엔 오랜만에 보는 유현석의 얼굴이 비쳤다.

그때 연구에 몰두하다가 인기척을 느끼고는 유현석이 그를 쳐다보았다.

“……대표다.”

그 목소리를 듣고 정우는 살짝 놀랐다.

중증의 자폐증이라 한 번 집중하면 거의 반응하지 않았던 유현석이었기 때문이다. 특히 처음으로 자신을 대표라고 불러 주었기에 더더욱 놀랐다.

“현석아, 형 알아보겠어?”

“이정우 대표. 나이 31세. 네뷸라 코퍼레이션 및 네뷸라 케미컬 대표. 성운이노베이션 소프트웨어개발팀 개발자 출신에서 대표에 오른 인물로, 현재 그의 추정 자산은 2조 원에 달한다.”

“……어디서 나무위키 같은 걸 읽었나 보네. 아무튼, 드디어 아는 척해 주네. 고맙다, 야.”

정우가 피식 웃을 때 성태규 전무가 옆에서 껄껄 웃었다.

“하하하, 요새 현석이가 반응이 많아졌습니다. 주변과 소통도 많이 하고요.”

“그래요?”

“예. 아무래도 스트레스를 덜 받는 환경에서 본인이 하고 싶어 하는 연구를 마음껏 할 수 있어서 자폐에 도움이 된 것 같습니다. 아, 이건 현석이 어머님께서 현석이랑 상담 진료 받고 얘기한 내용입니다.”

“다행이네요.”

세상과 단절되어 있던 친구가 이제는 조금씩 성장하는 모습에 정우는 왠지 뿌듯해지는 기분이었다.

“그러고 보니 현석이 작년에 인센티브를 많이 못 챙겨 줬네요.”

“인센티브요? 작년 순이익이 거의 없는데 인센티브라뇨.”

“그래도 열심히 했는데 챙겨 줘야죠. 무엇보다 솔리드스타는 현석이의 공이 크지 않습니까?”

“그건 올해 매출과 앞으로 회사가 흑자로 전환되었을 때 챙겨 줘도 늦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흠…… 그런가요.”

어느새 다시 연구에 몰두 중인 유현석을 보며 정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언젠가는 이 은혜를 갚긴 갚아야겠네요.”

회귀 후 코인만으로도 정우의 인생은 충분히 달라졌다.

하지만 그래핀 사업, 그리고 솔리드스타라는 걸출한 발명품을 만들어 낼 수 있던 발판은 유현석의 공이 지대했다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

그렇기에 정우는 언젠가는 유현석 역시 억만장자로 만들어 줄 생각이었고, 만약 유현석의 재산을 노리는 하이에나들이 있다면 전부 쳐 내고 관리까지 도와줄 생각이었다.

그런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성 전무 역시 흐뭇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예. 대표님께서 잘 이끌어 주시고 계시니, 분명 현석이도 고마워할 겁니다. 아무튼, 연구 성과 확인해보실까요?”

“네, 그러시죠. 어디 있습니까?”

“여기입니다.”

성태규 전무가 한쪽으로 그를 안내했다.

거기엔 기존 솔리드스타와 똑같이 생긴 셀이 준비되어 있었고, 한쪽에는 측정 중인 듯한 장비 액정에 여러 수치가 표시되어 있었다.

“저게 개선된 버전입니까?”

“예. 급속충전, 래피드차지Rapid Charge라고 해서 솔리드스타RC라고 이름을 붙였는데요. 기존 리튬이온전지의 충전속도가 보통 얼마나 걸리는지 아십니까?”

“글쎄요? 핸드폰 충전 생각하면 완충까지 보통 1시간에서 1시간 반? 그 정도 걸리는 것 같던데.”

“예. 그 조그만 핸드폰도 그렇게 오래 걸리는데, 엄청난 크기의 배터리가 탑재되는 전기차는 오죽 오래 걸릴까요? 충전속도를 빠르게 하기 위해서 테슬라의 충전소 수퍼차저의 전압은 최대 480V의 직류 전력을 사용할 수 있게 설계되어 있습니다.”

“480V면 장난 아니네요.”

“네. 근데 그건 480V산업전압이 표준인 미국에서나 가능한 거고, 한국에서는 불가능한 이야기죠. 결국, 지금 솔리드스타가 탑재된 테슬라 전기차를 충전하려면 최소 1시간, 길게는 몇 시간씩 걸리는 실정입니다.”

“네. 요새 그래서 말이 좀 나오더라구요.”

안 그래도 솔리드스타의 유일한 단점, 아니 테슬라 모델S-SP의 유일한 단점이 바로 완충까지 너무 오랜 시간이 걸려서 그 시간 동안 다른 걸 못한다는 단점이 있었다.

이는 솔직히 솔리드스타만의 단점이라기보다는 현 전기차 충전 시스템 자체의 한계도 포함된 문제였는데, 성태규 CTO는 이런 문제점에 대한 지적이 튀어나오기도 전부터 급속충전에 대한 연구를 진행 중이었던 것.

“그래서 저희는 솔리드스타의 충전속도를 개량하기 위해 연구를 진행했고, 성과를 볼 수 있었습니다.”

“어떻게요?”

“솔리드스타가 음극재를 그래핀으로 대체하여 기존 전고체배터리의 단점인 상온에서 느린 충전속도를 개선하기는 했지만, 전고체배터리 전해액 자체가 충전속도가 느린 편입니다. 이는 리튬이온을 활용한 전해액 자체의 성질 때문인데 대표님, 리튬이온2차전지의 원리를 아십니까?”

“당연히 알죠. 충전상태에서 리튬원자는 음극에 있고, 방전시 그 리튬원자가 리튬양이온과 전자로 분리되어 양극으로 이동하잖아요? 이때 생긴 전자 흐름 때문에 전류가 발생하여 전기를 공급하는 원리 아닙니까? 충전은 분리된 리튬양이온과 전자를 다시 음극으로 이동시켜 주고 다시 리튬원자로 합쳐 주는 거구요.”

“예, 맞습니다. 잘 알고 계시네요.”

“하하하, 배터리 회사 대표인데, 이 정도는 알아야죠. 근데 이게 급속충전에 대한 개선점과 관련이 있습니까?”

정우의 물음에 성태규 전무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리튬양이온과 전자가 이동하는 통로인 전해액, 저희가 급속충전을 개량하면서 주목한 점은 바로 이 전해액이었습니다. 이미 그래핀으로 음극재는 대체하여서 개선점이 그리 크지 않았기 때문이죠.”

“오호, 전해액을 개선한다?”

“예. 기존 전해액이 마치 물속을 걸어서 건너간다는 느낌이라고 비유해 봅시다. 만약 물속이 아니라 공기 중을, 땅을 짚고 뛰어갈 수 있다면 얼마나 빠를까요?”

“그럼……?”

“예. 저희는 기존에 물과 같이 밀도 있던 전고체 전해액을 덜어내어 밀도를 줄이고, 대신 그 빈자리에 그래핀을 집어넣었습니다. 그리고 구리보다 200배는 전도성이 높은, 네뷸라에서 생산한 고품질 그래핀은 전자들이 밟고 뛰어다닐 수 있는 튼튼한 땅바닥이 되어 주었죠.”

성태규 전무의 설명에 머릿속에 이미지가 그려진다.

엄청난 밀도 속을 헤집고 다니던 전자들과 양이온들이 수월하게 이동할 수 있게 개선된 전해액 환경을.

그리고 그가 이해를 마쳤을 때 성태규 전무가 웃으면서 성과를 소개하였다.

“지금 보여 드리겠습니다. 이것이 저희가 업그레이드한 솔리드스타RC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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