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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인 후 인생 대박-94화 (94/120)

94화 도울 생각 하덜덜 마슈!

솔리드스타RC의 성능은 놀라웠다.

[00:00:00 - 0%]

[00:01:01 - 0.8%]

[00:02:13 - 1.7%]

……

[01:58:07 - 99.2%]

[01:59:43 - 100%]

배터리셀 충전량 0%에서 100% 완충까지 불과 1분 59초, 약 2분밖에 걸리지 않았던 것.

적어도 30분 정도는 예상했던 정우는 얼이 빠지고 말았다.

“……2분이라고요? 이거 몰카 같은 거 아니죠?”

“하하하, 놀라셨나 보군요. 하지만 저기 테스트 결과가 말해 주지 않습니까? 솔리드스타RC의 급속충전 효율은 보시다시피 진짜입니다.”

“와…… 미쳤네요. 전 빨라 봤자 기존에서 5~10% 정도 단축될 거로 예상했지, 이 정도로 엄청난 효율이 나올 줄은 상상도 못 했습니다.”

감탄하는 정우를 보며 성 전무가 설명을 덧붙였다.

“충분히 이해합니다. 일견 이해가 되지 않으시겠죠. 하지만 생각보다 원리는 간단합니다. 전해액에 그래핀이라는 고속 도로를 깔아 준 거죠.”

“도로요?”

“예. 쉽게 말해서 전해액은 통로입니다. 이온과 전자라는 차가 지나다니는 길이죠. 하지만 전고체배터리의 전해액은 고체이거나 고체에 가까울 정도로 저항이 강하기 때문에 이온이 지나다니기 쉽지 않죠. 한마디로 전고체배터리 전해액이라는 통로는 갯벌을 상상해 보시면 되겠습니다.”

“갯벌이요?”

“예. 뻘밭 들어가 보셨나요? 엄청 질척거리고 한 발자국을 옮기기도 쉽지 않습니다. 그걸 전고체배터리의 저항이라고 가정할 때, 우리는 전해액이라는 뻘밭에 그래핀이라는 고속 도로, 그것도 그냥 고속 도로가 아닌 구리에 비해 전도성이 200배나 뛰어난 아우토반 고속 도로를 깔아 준 겁니다.”

“……아!”

성 전무의 찰진 비유가 곁들어진 설명에 정우는 그제야 어느 정도 납득하였다.

진흙 범벅 갯벌을 지나다니다가 뻥 뚫린 고속 도로를 질주한다면, 뻘밭과 비교도 안 되는 엄청난 속도 상승을 경험할 수 있을 테니까.

“……그래서 효율이 단순히 10% 정도 상승하는 수준이 아닌, 이렇게 비약적인 성장이 가능했던 거군요.”

“맞습니다.”

“그럼, 앞으로 전기차를 몇 분 만에 충전할 수 있다는 겁니까?”

정우의 물음에 성태규 전무가 고개를 저었다.

“그 정도는 아닐 겁니다. 지금 여기는 테스트 환경이라 높은 전압과 전류를 흘려보내 강제로 최대충전효율을 이끌어 낸 것이라서요. 특히 과전류가 흐를수록 배터리 내부의 온도가 높아지면서 이온의 움직임이 빨라지고, 이게 충전속도가 빨라지는 선순환이 일어나게 되는데…….”

무언가 결점이 있다는 듯 부정적으로 말꼬리를 흐리는 성 전무를 보며 정우는 그 이유를 짐작했다.

“배터리 내부 온도가 너무 높아지면 위험하지 않습니까?”

“역시 대표님이시군요. 예, 정확합니다. 배터리의 발열이 어느 정도 상승하는 건 좋지만, 너무 기하급수적으로 상승하게 되면 배터리 화재 위험이 있습니다. 아, 물론 전고체배터리의 특성상 리튬이온전지처럼 폭발할 위험은 적지만요.”

그냥 배터리도 아닌 전고체배터리다. 액체 전해질이 아닌 고체 전해질이기 때문에 굉장히 안정적이라 애초에 폭발이나 화재 위험성은 매우 낮았다.

그러나 정우는 약간의 우려를 표했다.

“하지만 전무님, 그 안정적인 고체전해질이라 해도 수백, 수천 도로 발열이 되어 버리면 화재 위험성이 있기 때문에 발열을 제어하는 건 필수잖아요.”

“그렇습니다. 아무래도 그래핀 특성상 열전도율이 매우 뛰어난 터라 상승한 열이 다른 배터리셀에도 쉽게 전달될 거고…… 그래서 이를 위해 여러 배터리셀을 제어하는 모듈 시스템과, 이런 모듈 여러 개를 제어하는 팩 시스템이 중요한 것이죠. 물론 이런 시스템들이 일종의 제약이 되어 지금 테스트 환경 같은 효율을 기대하긴 어려울 것입니다.”

“아쉽네요. 그럼 기존에 비해 어느 정도 효율이 나올까요?”

기대에 찬 정우의 질문에 성태규 전무가 기다렸다는 듯 자신만만하게 대답했다.

“아마 기존에 비해 최소 3배 이상의 충전속도는 나오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습니다.”

“3배라면……?”

“휴게소에서 화장실 갔다 오고, 소시지 한 개 사 먹으면 완충이 가능한 정도랄까요. 하하하, 물론 기대치일 뿐이지, 결과는 두고 봐야 알겠지만 말입니다.”

“3배가 아니라 2배, 아니 50%만 되어도 혁신 중 혁신이죠. 전무님, 그리고 연구팀 여러분 진짜 고생하셨습니다. 여러분들이 앞으로 세상을 뒤바꿀 거예요.”

정우의 감탄에 성태규가 고개를 저었다.

“전부 대표님 덕분이죠.”

“저 덕분이라구요?”

“예. 대표님께서 개발하고 생산하시는 고품질 그래핀. 그게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겁니다.”

성 전무의 칭찬에 정우는 고개를 저었다.

“제가 생산 중인 그래핀 때문이라는 말은 감사합니다. 하지만 이건 온전히 전무님과 연구팀의 성과죠. 좋은 식재료를 가지고 어떤 요리를 만들어 낼지는 셰프의 몫이니까요.”

“하하하,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어깨가 으쓱한대요? 하지만 애초에 고품질 그래핀이 없었다면, 그것도 이렇게 충분히 많지 않았다면 시도조차 못 해 볼 기술이긴 합니다. 저희가 한 건 스시 장인처럼, 싱싱한 횟감의 자연의 맛을 그대로 살린 것에 불과하죠.”

“스시 장인이요? 하하하하.”

성태규 전무의 비유에 정우가 깔깔 웃었다.

“이거 스시가 너무 맛있어서 다른 코스가 나오기도 전에 배가 부르겠는데요?”

“벌써 배부르시면 곤란합니다. 앞으로 그래핀이라는 좋은 식재료를 활용한 많은 요리가 남아 있으니까요. 그리고 여기, 저 친구가 선보일 요리도 기대하셔야죠.”

성 전무가 연구실 유리창 너머로 연구에 몰두 중인 유현석을 턱짓했다.

정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기대되네요. 과연 어떤 요리가 나올지.”

“저도 기대 중입니다.”

“하하하, 그런데 성 전무님, 자꾸 요리 얘기하니까 배고프지 않으세요?”

“음, 조금 출출한 것 같기도 하네요. 그런데 그건 갑자기 왜……?”

의아해하는 성태규를 보며 정우가 씨익 웃었다.

“왜겠습니까. 배도 고픈데 연구팀 분들 전부 모시고 회식이나 하시죠. 제가 고생한 여러분께 진짜 제대로 된 맛집으로 모시겠습니다.”

“아, 그런 거라면 언제든 환영입니다.”

두 사람이 서로를 마주 보며 웃었다.

* * *

정우는 연구팀을 전부 데리고 마장동 한우 오마카세집을 방문했다.

마음 같아서는 얼마 전 친구들과 방문한 인당 100만 원짜리 오마카세로 가고 싶었지만, 식당 규모가 작아서 모든 인원이 들어갈 수 없었던 것.

그래도 일반인은 쉽게 접하기 어려운 생소한 한우 오마카세에 모두가 만족해했고, 즐겁게 회식을 마쳤다.

그리고 그 회식에 대한 내용을 누군가 SNS에 올렸다.

─────────

[오늘 대표님이 사주신 마장동 B***** 한우 오마카세 ㅎㅎ 대존맛]

└대표님? 이정우 대표?

└└(작성자): 웅! ㅎㅎ

└└└대박이네 ㅁㅊ

└저기 인당 30만 원 넘지 않나? 직원 몇 명을 델고 간 거여 ㄷㄷ

└└(작성자): 100명 넘었던듯요…….

└역시 네뷸라인가;; 회식 클라스;;

└개부럽다 ㅜㅜ

……

─────────

100명이 넘는 연구팀 직원들을 오마카세에 데려갔다는 소식에 인터넷 반응은 부럽다는 의견이 다수였다.

물론 아닌 의견도 존재했다.

─────────

└ㅋㅋㅋㅋㅋㅋㅋ 고작 오마카세 가지고 자랑은ㅋㅋㅋㅋㅋ

└ㅇㅈ 대기업만 해도 오마카세 회식은 별거 아님

└└어떤 대기업이 오마카세 회식함? 인증 좀

└근데 저 회식할 돈으로 걍 인센으로 줬으면 좋겠다는 생각하는 사람 나뿐임?

└└ㄹㅇ ㅋㅋㅋㅋㅋㅋ

└└2222222

└└3333333333

……

─────────

그들은 네뷸라의 회식을 비웃거나 조롱하며 악플을 남겼다.

이에 발끈했는지 작성자는 또 하나의 발언을 날렸다.

─────────

[어쩌라구요 ㅎㅎ 어차피 우리 이번 연말에 인센티브 오~지게 받을 꼰데~^^]

└인센? 왜?

└└(작성자): 저희 이번에 어마어마한 거 개발 성공함요 ㅎㅎ

└└└뭔데?

└└└└(작성자): 안 말해줄거지롱~

└└└솔리드스타랑 이클립스 나왔는데 또 개발했다고?

└구라 ㄴㄴ

└└(작성자): 구라 아님요 ㅡㅡ

└└└그럼 인증 ㄱㄱ

─────────

인증해 보라는 요구까지 나왔지만, 작성자도 기밀 유지의 필요성은 느낀 건지 더 이상 글이 올라오진 않았다.

하지만 이 반응은 SNS상, 특히 직장인들 유저만 있기로 유명한 커뮤니티에서 화제가 되었다.

─────────

-네뷸라에서 또 뭐 개발했다던데?

-ㅁㅊ ㅋㅋㅋㅋㅋ 저 새끼들 진짜 외계인 고문 중인가

-또뷸라네… 이젠 놀랍지도 않다

-엄마, 저기 좀 이상해…

-네뷸라 올해 흑자 전환 예상된다며? 인센 오지겠네

└그래서 다들 인센 노리고 퇴사 안 하고 버티는 중… 작년 4/4분기 퇴사자 0명임

└└ㄹㅇ? ㅁㅊ ㅋㅋㅋㅋㅋㅋㅋ

……

─────────

역시 네뷸라라며 이제는 크게 놀라지도 않는 반응이었는데, 그들의 반응은 이슈를 놓치지 않는 기자들의 먹잇감이 되었다.

“…….네뷸라가 또 뭔가 개발한 것 같다고?”

“……뜬금없이 단체 회식이라…… 이클립스 성과에 대한 회식을 좀 늦게 한 건가?”

“일단 뭐가 됐든 이슈는 될 것 같고. 가 보자.”

기자들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네뷸라의 회식에 대한 기사를 마구 올려 대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 소식은 돌고 돌아 정우에게까지 전해졌다.

“……거참, 이게 기사까지 날 뉴스인가 싶네.”

그저 회사에서 회식 한 번 한 것 가지고 유난히 호들갑을 떠는 것 같지만, 그만큼 네뷸라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는 의미겠지.

나쁘지 않은 반응이라 여겼다.

그리고 만에 하나 기자들이 솔리드스타RC에 대해 알아낸다?

“그래도 상관없고.”

어차피 곧 알려질 일이라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정우는 자신의 할 일을 진행했다.

긴급히 팀장급 회의를 소집한 그는 솔리드스타RC 개발을 프로젝트 최우선 순위로 지시했다.

“솔리드스타RC 최적화 마치는 대로 모듈/팩 제어시스템 업데이트 개발 진행해 주세요. 제어시스템 마무리되면 ES(Engineer Sample: 제품 개발을 위한 초기 샘플) 생산해 주시고, ES 나오는 대로 PP(Pre-Production: 예비시험생산), MP(Mass Production: 대량생산) 단계 들어갈 거니까 다른 팀과 긴밀한 협조 유지 바랍니다.”

“예, 알겠습니다.”

“특히 설비/공정팀은 기존 솔리드스타 생산라인 설비에서 조립 공정 쪽 업그레이드해야 하는 부분이 있으니까 특히 신경 좀 써 주세요. 아시겠죠?”

“예. 근데 대표님, 기존 솔리드스타 생산라인을 아예 전부 솔리드스타RC로 업그레이드하실 생각이십니까? 이미 만들어진 생산라인을 1년도 못 썼는데, 전부 바꾸는 건 아까워서 여쭤보는 겁니다.”

공정팀 팀장이 물었다.

확실히 그의 말대로 솔리드스타 생산라인이 만들어진 지 1년도 채 지나지 않았기에 아깝다는 그의 반응은 충분히 이해되는 발언이었다.

하지만 정우는 고개를 저었다.

“혁신이 있는데, 왜 구형을 팝니까? 저는 기존 설비들 전부 될 수 있으면 솔리드스타RC 생산용으로 전부 업그레이드할 생각입니다.”

“그래도 대표님, 설비 투자금이 한두 푼이 드는 게 아닐 텐데요…….”

“하하하, 걱정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하지만 그건 대표인 제가 알아서 할 문제이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리고 저 돈 많아요.”

생산라인 설비를 전부 바꾸는 것도 아니고, 고작 조립공정 쪽 설비만 약간 손을 보는 수준이다.

따라서 투자비용이 그리 크지도 않을뿐더러, 정우에게는 이미 수십조 원이 있는 상황이었기에 부담은 1도 되지 않았다.

일견 장난스러운 듯, 하지만 자신만만한 그의 미소에서 무언가 느낀 듯 팀장들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어느새 그들의 얼굴에 떠올랐던 우려의 기색은 씻은 듯 사라져 있었다.

그런 팀장들을 보며 정우가 한마디 덧붙였다.

“아무튼 솔리드스타RC로 전부 업그레이드된다는 점만 알아주세요. 혹여 변동 사항 있으면 다시 하달할 테니 일단은 솔리드스타RC 체제로 변환된다는 점만 기억해 주시고 움직이시면 되겠습니다. 자, 해산!”

그렇게 팀장 회의가 끝나고.

정우는 곧장 일론 머스크에게 전화를 걸었다.

직원들에게 덧붙였던 것처럼 기존 솔리드스타를 전부 솔리드스타RC로 업그레이드하는 것에 대해서 일방적으로 진행할 수 없었기에 협의가 필요했다.

하지만 정우의 협의는 사실상 통보에 가까웠다.

정우에게서 솔리드스타RC라는, 기존 솔리드스타에서 충전속도가 거의 3배 가까이 빨라진 괴물 같은 스펙을 들은 일론 머스크는 이를 거부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머스크는 솔리드스타RC를 듣고 혼이라도 나간 기색이었다.

-……미스터 리Mr.Lee, 당신은 정말 미스테리Mystery하군요… 정말이지…… 미쳤어요!

“하하하, 그럴지도요.”

-바꿉시다, 아니 무조건 바꿔 주세요!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일론 머스크의 다급한 목소리를 들으며 정우는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머스크는 오케이했고.’

자, 다음은 유일자동차에 이 소식을 전하러 갈 시간인가.

솔리드스타RC에 대한 유종범 회장의 반응이 기대가 된다.

* * *

「……일본을 방문했던 트럼프 대통령은 오늘 오전 10시경, 오산공군기지를 통해 한국으로 입국하였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청와대로 바로 출발하여 대통령과의 만남 이후 대한민국 대기업 그룹총수 및 경제인들과의 회동을 가질 예정입니다. 이번에 방한한 트럼프 대통령은 앞서 방문한 일본에서 재팬 패싱 논란으로 구설수에 올랐지만, 발표한 아시아 순방 일정과 달리 일본을 방문하면서…….」

2월 중순을 맞아 트럼프 대통령의 방한 뉴스와 함께 대한민국 민족의 명절인 설날이 시작되었다.

지난주까지 이어졌던 한파도 명절을 축복하는 듯 설 첫날은 햇살이 쨍쨍하기 그지없었다.

그런 화창한 날씨 속에서 정우의 부모님이 사는 아파트에도 삼삼오오 손님들이 몰려들고 있었다.

“형님! 저희 왔어요!”

정우 집안의 셋째, 이춘곤이 형님의 집 앞에서 소리치자 정우의 아버지가 버선발로 그를 맞았다.

“아이고, 춘곤이 왔냐! 고생했다!”

“하하, 고생은요. 자, 이거 받으십쇼.”

“아니 뭘 또 가져왔어.”

“또는요. 1년 만에 오는데, 빈손으로 올 수 있습니까, 하하. 그냥 별거는 아니고, 아는 사람한테서 구한 영지버섯인데 고아 드시면 좋다고 해서 가져왔구만요.”

“영지버섯? 이 자식이, 내가 보양식 좋아하는 거 어떻게 알고! 으하하하! 아 참, 여기서 이럴 게 아니라 일단 드루와 드루와.”

“네, 형님. 오메…… 집 엄청 좋구만요! 이게 대체 몇 평이야? 형님 이거 얼마 주셨당가요?”

“얼마 안 돼. 하하하. 자자, 여기 보세요! 우리 셋째 춘곤이가 왔어!”

“오, 춘곤아!”

“형님! 오랜만입니다.”

“잘 지냈냐. 하하, 이리 앉아. 형님, 형님도 그만하고 앉아서 한잔하세요.”

“하하하, 알겠어.”

정우의 아버지가 이미 벌어진 술판에 끼어들었다.

평소라면 두 명밖에 없어서 한산했을 커다란 거실은 이미 30명은 훌쩍 넘는 친척들이 모여서 왁자지껄했고, 친척들의 대방문에 정우의 아버지는 유난히 신난 얼굴이었다.

그런 아버지를 보며 어머니가 눈을 흘겼다.

“아이고, 저 양반 신났네, 신났어.”

“호호, 형님. 명절인데 뭐 어때요. 아주버님 보기 좋구만 뭘.”

어머니의 셋째 동서가 호호 웃었다.

“난 왜 저 양반 저렇게 어깨에 힘이 들어간 거 보면 꼴 보기 싫은지 몰라. 괜히 얄미워.”

“저도 그래요. 호호호. 근데 형님, 이거 진짜 맛있네요?”

셋째 동서가 부침을 오물거리며 감탄하자 어머니도 맞장구를 쳤다.

“전문가들이라더니 진짜 잘하긴 하네. 어쩜 이리 간이 딱 맞을까.”

“그쵸? 너무 삼삼하니 맛있어요. 호호호. 근데 이 사람들은 정우가 부른 거예요?”

“이분들?”

어머니가 쌓여 있는 전 옆쪽을 쳐다봤다.

거기엔 조리복을 차려입은 전문 셰프로 보이는 이들이 분주히 요리하고 있었다.

산적부터 시작해서 민족 전통 명절 설날의 대표 음식들이 그들의 손에서 완성되고 있었는데, 이들은 다름 아닌 정우가 부른 호텔출장요리서비스의 소속 셰프들이었다.

“맞아. 내가 제사는 정성이라고 직접 요리한다니까 그게 무슨 생고생이냐면서 우리 아들이 뜯어말리면서 불러 버리더라고. 그렇게 부르지 말라고 했는데, 막상 서비스받아 보니 이게 훨씬 낫네.”

“며느리들이 명절이 싫은 이유가 뭐 별거겠어요? 요리하고 음식 준비하는 게 중노동이라서 명절 쇠기 싫은 거지. 어휴, 저라면 이런 명절이면 매일 쇨 수 있겠어요.”

“호호호, 나도.”

매번 명절마다 음식 장만한다고 고생하였던 어머니는 그제야 명절을 즐기며 웃음꽃을 피웠다.

한창 신나게 셋째 동서와 이야기를 나누던 그녀는 지나가는 투로 둘째 동서에 대해 물었다.

“근데 둘째 동서는 안 왔어?”

“전화해 보니 몸이 안 좋다더라구요.”

“그래? 어디가 얼마나 안 좋은데?”

“좀 쉬면 나을 거라고, 괜찮아지면 올라온다는데 모르겠네요.”

“……흠, 그래? 오랜만에 얼굴 좀 보고 싶었는데 아쉽네. 아프다니 어쩔 수 없지.”

둘째 동서의 근황에 대해 들은 어머니는 살짝 아쉬운 듯한 얼굴이었다.

사실 두 사람은 그리 사이가 안 좋았기 때문이다.

이유는 예전 정우의 친할머니 재산분할 과정에서 형제들 간의 다툼이 있었기 때문인데, 이 과정에서 집안의 첫째인 정우의 아버지와 둘째인 작은아버지 이정곤의 사이가 틀어졌고, 어머니와 둘째 동서의 사이 역시 나빠졌던 것.

이 과정에서 친척들 사이에서도 분열이 일어나서 명절 때 원래는 첫째인 정우의 아버지 집에서 모였었지만, 최근 10년간은 거의 둘째인 이정곤의 집에서 모이는 추세였다.

때문에 정우의 집에서 벌어지는 명절은 항상 조촐하고 초라하기 이를 데 없었다.

그런데 정우가 너무 잘되어 버려서일까.

상황은 역전되어 이번 설날 정우 부모님 집은 그야말로 문전성시였다.

평소 연락하던 친척은 물론, 얼굴은커녕 이름도 가물가물한 먼 친척까지 한달음에 달려와 모였던 것.

심지어 불화의 원인이었던 둘째 작은아버지인 이정곤 역시 참석한 상태였다.

덕분에 조용하던 정우네 설날도 시끌벅적해졌지만, 정작 이 사건의 원흉인 당사자의 불참에 정우의 어머니는 못내 아쉬운 기색을 감출 수 없었다.

그래도 오랜만에 보는 동서들과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며 명절을 만끽하고 있던 그때.

그런 여자들 모임 옆에서는 대낮부터 남자들의 술판이 벌어지고 있었다.

“아이고, 형님! 이거 제가 시골에서 직접 가져온 복분자주인데 한 잔 받으십쇼!”

“하하하, 이 나이에 무슨 복분자주야, 쓸 데가 어딨다고!”

“그래도 남자 하면 정력 아니겠습니까? 일단 쭈욱 들이켜 보세요. 맛이 아주 기가 막힌다 아닙니까.”

“그래그래. 이야, 이거 목구멍이 뜨끈~한 게 아주 좋구만! 자, 너도 한 잔 받아!”

“감사합니다, 형님! 이거 오랜만에 형님이랑 한잔하니 술맛이 꿀맛입니다!”

“뭐? 춘곤이 이 자식 안 본 사이 아부만 늘었어! 으하하하하!”

한창 화기애애하게 술이 오고 간다.

술이 들어갔으면 안주가 필요한 법.

그들의 안주는 주로 정우에 대한 이야기였다.

현재 모인 친척 중 가장 연장자이자 최연장자인 작은할아버지가 껄껄 웃었다.

“우리 이 씨 집안에서 그렇게 걸출한 인재가 나올 줄이야. 하하하.”

“아이고, 삼촌. 저는 우리 정우가 그렇게 잘될 줄 진즉에 알았다니까요.”

작은할아버지의 말에 셋째 이춘곤이 거들었다.

“그래?”

“예. 정우 걔가 어릴 때부터 얼마나 똘똘했어요. 대학도 척척 잘 가고. 취업도 척척 하고. 딱, 성공할 줄 알았다니까.”

“하긴 고놈이 어려서부터 영리하긴 했지.”

다들 정우에 대한 칭찬일색을 하고, 둘째 작은아버지 이정곤만이 어색하게 웃던 그때였다.

집안의 어르신, 정우 아버지의 삼촌인 작은할아버지가 인자한 얼굴로 이정곤을 쳐다보았다.

“그래, 정곤아. 종근이는 안 왔어?”

이종근은 이정곤의 큰아들로 정우 또래의 사촌이었다.

갑자기 나온 자기 아들 얘기에 이정곤의 얼굴이 떨떠름해졌다.

“……종근이요?”

“어. 우리 집안 유일한 한의사인데, 언제 오나 싶어서.”

작은할아버지가 이정곤의 아들 이종근을 칭찬하며 띄워 줬다.

하지만 이정곤의 안색은 어두워질 뿐이었다.

“그게…… 설날인데도 한의원을 운영해야 하나 봅니다. 끝나고 시간 되면 온다는데, 올 수 있을지는 모르겠네요.”

“그래? 지역도 가까운데 한번 오라 그래. 우리 집안 유일한 한의사인데, 그래도 얼굴 좀 봐야지.”

작은할아버지의 말에 옆에서 듣던 셋째 작은아버지 이춘곤이 문득 생각이 났다는 듯 끼어들었다.

“맞다, 둘째 형님. 근데 종근이 걔 한의원 개원한 건 잘된답니까?”

그 말에 이정곤의 안색이 순간 움찔했다.

“……그냥 뭐, 입에 풀칠은 하는 것 같더라고.”

그 시원찮은 반응에 그제야 셋째가 말을 잘못 꺼냈음을 깨달은 정우의 아버지가 수습하려 애썼다.

“……하하, 요즘 시대에 밥 벌어 먹고살면 그만이지. 안 그렇습니까, 삼촌?”

“그렇지?”

그 말을 하며 셋째에게 그들이 눈치를 줬다.

하지만 눈치 없는 셋째 이춘곤은 그들의 눈치를 아랑곳하지도 않고 신나서 떠들어 댔다.

“아이고…… 생각보다 잘 안되나 보네. 근데 진짜 그 말이 맞는가 봐. 옛날에야 한의대가 그렇게 셌었는데, 요새 한의대도 그렇고 한의사나 한의원도 그렇고 영 멕아리가 없어, 멕아리가.”

“……야, 그게 무슨 소리냐.”

대놓고 먹이는 말에 정우 아버지가 말을 끊었지만, 이춘곤의 입을 막을 순 없었다.

“형님, 그거 모르셨어요. 요새 한의사 인기가 그렇게 꽝이래요. 젊은 애들 사이에서 유사의학이다 뭐다 불신이 가득해서 환자가 그렇게 없다던데.”

“이 자식아, 종근이 아빠도 있는데, 말 좀 가려서 해.”

속이 부글부글 끓는 듯 얼굴이 뻘게지는 이정곤을 보며 정우 아버지가 한마디 했다.

그제야 자신이 말실수했음을 깨달은 이춘곤이 당황해서 손사래를 쳤다.

“아이고, 내 정신 좀 봐. 형님, 미안해요. 제가 생각이 없어서.”

“……아니다. 확실히 세상이 변하긴 했지.”

“아쉽긴 하죠. 그래도 종근이 고놈이 얼마나 똘똘합니까. 분명 잘될 겁니다.”

“……고맙다.”

“자, 형님! 벌주로 제가 한잔 마시겠습니다. 술 한잔 주십쇼.”

“그래.”

마지 못한다는 듯 술을 따라 주는 이정곤.

그때 술을 받던 이춘곤이 입이 근질거린다는 듯 입술을 씰룩이다가 결국 못 참겠다는 듯 입을 열었다.

“근데 인생 진짜 새옹지마긴 합니다. 10년 전만 해도 종근이 한의대 가고 정우 공대 갔을 때 다들 종근이 잘됐다고 그렇게 칭찬을 했었는데…….”

“야!”

결국 ,화가 폭발한 이정곤이 술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이 새끼가 진짜 보자보자 하니까! 야 너 지금 말 다 했어!”

대놓고 삿대질하며 버럭 소리를 지르는 그의 반응에 왁자지껄하던 모두 분위기가 순간 깨지고, 모두가 그들을 쳐다보던 그때였다.

이제껏 어리바리하고 눈치 없는 것처럼 굴던 이춘곤의 눈빛이 돌변했다.

“아따, 형님. 제가 못할 말 했습니까? 그냥 있는 사실만 말했을 뿐인데?”

“뭐야?”

“맞잖아요? 종근이 한의대 갔을 때도 그렇게 자랑하고, 정우 지방 공대 간 거 가지고 꼽 주더니만, 막상 정우 잘되니까 왜 정우 칭찬은 한마디도 안 해요? 그렇게 아니꼬워요?”

“뭐 이 새끼야?”

“그렇게 꼬우신 양반이 뭔 볼일 있다고 여기까지 기어 왔나 몰라. 아, 혹시 종근이 한의원 안되는 거 때문에 뭐 콩고물 떨어지는 거 있을까 봐 온 거 아니에요?”

이춘곤이 대놓고 날린 돌직구에 이정곤이 어버버 말문이 막혔다.

그 반응에 이춘곤이 실실 쪼갰다.

“아이고, 반응 보니 맞나 보네. 형님, 엄마 집이랑 땅 다 처먹었으면 염치 좀 아쇼. 이게 뭐요? 꼴사납게.”

“이 새끼야, 니가 정우 아빠야? 니가 왜 지랄이야?”

“정우 삼촌이죠. 그리고 형님과 다르게 난 꼬박꼬박 태곤이 형님네 와서 명절도 보내고 계속 친하게 지냈수. 그쵸 형님?”

“어? 어…….”

훅 들어온 질문에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인 정우 아버지를 보며 이춘곤이 기고만장해서 소리쳤다.

“그니까 이제 와서 친한 척하면서 뭐 얻어먹을 생각일랑 꿈도 꾸지 마쇼. 아, 이건 정곤이 형님뿐만 아니라 여기 온 다른 분들한테도 해당하는 말씀이니까 잘 새겨 두쇼잉?”

으름장을 놓는 이춘곤의 눈빛을 다들 회피했다.

그 덕분에(?) 화기애애하던 술자리 분위기가 어색해지고.

“……담배 한 대 피우고 옵시다.”

“저도요.”

“흠흠…….”

뻘쭘한 듯 이정곤을 비롯한 친척들 몇몇이 우르르 빠져나갔다.

“야, 인마. 누가 나서랬어.”

“아, 형님이 사람 좋게 다 받아 주는 거 보고 열이 뻗쳐서 가만히 있을 수 없잖아요.”

“아니, 그래도 형제인데…….”

“형제고 나발이고, 나 둘째 형님이 울 엄마 재산 지가 독차지하려고 독하게 굴 때부터 정 다 뗐쇼. 형님도 그러니 괜히 불쌍하다고 도울 생각 하덜덜 마슈.”

“흠…….”

“아, 알았어! 몰랐어!”

“……알았어. 왜 소리를 지르고 그랴!”

자신을 대신해서 나서 준 셋째가 고맙기도 하고 어색하기도 해서 정우의 아버지는 괜스레 화제를 돌렸다.

“……그나저나 정우는 오늘 안 온다냐?”

“그러게요? 우리 대표님 얼굴 좀 봐야 하는디. 온다고는 했어요?”

“글쎄. 요놈이 어찌나 바쁜지 전화를 안 받아. 아까도 전화했었는데…… 다시 해 보지 뭐.”

아버지가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정우에게 무슨 일이라도 있는 걸까.

계속 전화는 수신음만 가고 연결되지 않았다.

“아따, 요놈 자슥 뭘 하길래 이렇게 안 받아?”

“그러게요…… 어? 형님! 저기 정우 나오는데요?”

“뭐?”

이춘곤이 가리킨 방향을 아버지가 쳐다봤다.

거기에는 정우가 사 준 티비가 벽면을 가득 채운 채 걸려 있었는데, 그 화면 속 뉴스에서 멀끔한 정장 차림의 정우가 연예인처럼 나오고 있었다.

“쟤, 쟤가 왜 저기서 나온당가?”

두 사람이 당황할 때.

“……저기 청와대라는디요?”

이춘곤의 말처럼 아래쪽에 <[속보] 트럼프 대통령 청와대 방문!>이라는 뉴스 자막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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