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7화 이분이 네뷸라 대표님인가요?
그룹총수 회담이 끝난 직후 트럼프 대통령과 정우의 대화 장면은 일파만파 퍼져 나갔다.
솔리드스타RC가 굉장한 혁신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한 국가의 대표가 그렇게 소스라치게 놀랄 줄은 상상도 못 했던 정우는 살짝 당황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겨우 그거 가지고 놀랄 줄이야……. 이거 일을 서둘러야겠는걸.”
때문에 여유를 가지고 진행 중이던 계획을 정우는 서두를 계획이었다.
바로 솔리드스타RC의 발표 이후 들이닥칠 시장의 변화에 앞서 좋은 포지션을 선점하는 작업이 그것이었다.
그는 곧장 TD아메리트레이드 증권거래소 담당자에게 연락을 취했다.
“미스터 브랜든, 숏 매집 작업은 얼마나 진행되었습니까?”
-지금 30% 정도 완료되었습니다.
“아직 30%밖에 안 되었어요? 너무 느린데요.”
-그게 100억 달러라, 워낙 금액이 커서 물량을 소화하는 데 시간이 좀 걸립니다.
TD아메리트레이드 증권거래소에서 정우를 담당하고 있는 제이콥 브랜든 스탁 디렉터는 정우의 전화에 쩔쩔맸다.
그도 그럴 게 일개 증권중개인이자 주니어 스탁 매니저였던 그를 단숨에 디렉터(Director. 팀장)급으로 격상시킨 큰손이 다름 아닌 정우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번에 그가 지시한 숏 매집 오더Order는 이전에 진행했던 모델S-SP 발표 때보다 규모가 10배 가까이 커졌기에 엄청난 인센티브가 약속된 상황이라 더더욱 조심히 정우를 대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브랜든의 저자세에 정우도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면 어쩔 수 없죠. 최대한 빠르게 매집해 주시고, 보안 유지도 부탁드립니다.”
-현재 저희 팀이 EVP(Executive Vice President: 전무급 인사)님 지휘하에 사무실에서 딜리버리만 시켜 먹고 숙식을 함께 하며 철통 보안을 유지 중입니다. 정보가 샐 염려는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EVP라면 CEO 바로 아래에서 직접 보고하는 위치로 굉장히 높은 직급이었다. 그런 인물이 케어해 준다고 하니 정우는 고마우면서도, 고생하는 브랜든과 그의 동료들에게 조금 미안해졌다.
“든든하네요. 믿겠습니다. 근데 이렇게 고생하시는데, 호텔 서비스라도 시켜드려야 할 것 같은데요?”
-하하하하, 괜찮습니다. 저희 거래소를 이용해 주시는 데 당연한 서비스인데요. 그리고 미스터 리, 일전에 인버스 ETF도 매집하라고 하셨는데요. 내연기관차 관련된 ETF 중에 레버리지 상품도 있습니다. 이것도 매집할까요?
상장 지수 펀드Exchange Traded Fund, 일명 ETF는 주가나 채권 등의 특정 지수를 추종하게 만들어진 펀드다.
보통 S&P 500이나 나스닥과 같은 시장의 지수를 따라갈 수 있도록, 모든 종목을 아주 골고루 조금씩 분산하여 매집하는 형태로 이루어져 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이 지수라는 기준을 어떻게 잡느냐에 따라 ETF를 구성하는 종목들이 달라지게 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전기차 관련 ETF라 하면 전기차 기업인 테슬라와 니콜라, 유일자동차와 같은 형태로 종목이 구성되는 형태다.
즉, 테마에 따라 각각의 ETF들은 다양한 종목들로 구성이 되고, ETF를 발행하는 자산운용사마다 각각 종목과 비중이 다르기에 굉장히 많은 각양각색의 ETF들이 존재한다.
당연하게도 이 ETF 중에는 레버리지를 활용한 상품도 있었고, 상승이 아닌 하방에 베팅한 인버스 상품도 있었다.
정우는 이 인버스 ETF에도 투자를 진행했는데, 마침 브랜든의 보고에 의하면 인버스 레버리지 상품이 있다는 것.
“레버리지면 몇 배죠?”
-3배짜리 상품입니다.
“나쁘지 않네요. 테슬라가 포함되지 않은 상품이면 그렇게 해 주세요. 비중은 10억 달러 정도로 잡아 주시고요.”
-10억 달러나요……?
정우의 과감한 베팅에 잠시 놀랐던 브랜든.
하지만 자신의 고객이 누구인지 이내 깨닫고 수긍했다.
-……바로 진행하겠습니다.
“예. 그리고 테슬라 매집 작업은 얼마나 진행되었습니까?”
-지금 50억 달러 정도 매집 완료했습니다.
정우는 공매도 물량 매집 외에도 테슬라 주식 매집에 추가로 100억 달러의 시드를 사용하였다.
현재 테슬라의 주가는 1,200달러 수준. 모델S-SP를 발표하고 약 4배 가까이 올랐다. 덕분에 시총은 약 2,400억 달러를 돌파한 상태였는데, 여기서 100억 달러어치의 테슬라 주식 매집이 마무리되면 정우가 보유한 테슬라 지분은 기존에 가지고 있던 1%의 지분과 합쳐 총 5.16%에 달하게 된다.
‘하지만 이건 현재 시점일 뿐이지.’
정우는 자신이 보유한 테슬라 지분이 얼마나 작은지 똑똑히 알고 있었다. 왜냐하면 2018년에 테슬라는 각종 재무·시가총액 기준이 충족되면 CEO인 일론 머스크에게 12회에 걸쳐 1억 100만 주 분량의 스톡옵션을 균등 제공하는 보상체계를 마련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보상체계 기준을 충족하여 스톡옵션을 행사하게 되면 머스크의 지분은 어마어마하게 커질 터.
반대로 정우의 지분비율은 훨씬 줄어들게 된다.
‘다행히 아직 보상체계 안건은 이사회를 통과하지 못했지.’
아직 머스크의 스톡옵션 보상체계가 통과된 것은 아니었기에, 테슬라의 주가가 4배나 상승하고 매출 역시 예약 대기만 1년이 넘어가는 등 대성공했음에도 머스크는 크게 보상을 받지 못한 상태였다.
뭐, 따지고 보면 정우 덕분에 이룬 성과기는 했지만 말이다.
어쨌든 정우로서는 아직 머스크가 스톡옵션 행사로 어마어마한 거부가 되기 전에 승부를 봐야 했다.
단순한 대주주가 아니라 머스크와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로, 공동 대표 자격으로 경영에도 직접 참여가 가능할 정도의 지분을 얻는 게 정우의 목표였다.
“……안 되면 그냥 돈이나 먹는 거고…….”
-예?
“아니에요. 아무튼 테슬라 매집은 절반 정도 진행되었다는 거군요. 좋습니다. 나머지 50억 달러도 최대한 빨리 매집 진행해 주세요.”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군기가 바짝 들어간 듯 제이콥 브랜든이 씩씩하게 대답했다.
이미 그는 TD아메리트레이드 증권거래소의 주식 브로커가 아닌, 정우의 부하 직원이나 다름없어 보였다.
* * *
하지만 충성스러운 브랜든의 호언장담과 달리 정보는 새어 나가고 있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월가의 늑대들이 돈 냄새를 맡았다.
“요새 TD아메리트레이드에서 엄청난 걸 준비하나 보던데?”
“맞아. 들어 보니까 알베르토 EVP가 팀 하나를 사무실에 가둬 두고 나오지도 못하게 잡고 있대. 밥 먹는 것도 그렇고 똥오줌도 거기서 해결한다더라.”
“도대체 무슨 일이길래 저러는 거지.”
“가만, 거기 팀장이 제이콥 브랜든이라는 신참 브로커인데…… 이거 네뷸라랑 관련된 거 아니야?”
“네뷸라?”
“그 사건 몰라? 브랜든이라는 신참 브로커가 네뷸라 이정우 대표 주식 중개 맡아서 초대박 터트렸다고.”
“아아…… 그거 알지. 그런데 그건 왜…… 아!”
월스트리트의 늑대들은 눈치 빠르게도 TD아메리트레이드 사무실 내부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추측해 냈다.
“……설마 네뷸라 CEO가 또 뭔가 터트리려는 건가?”
“그거 아니면 브랜든 같은 운만 좋은 초짜 브로커를 어디에 쓰겠어.”
“진짜 가능성 있겠는데?”
그렇게 월가에서 시작된 하나의 루머는 곧 알게 모르게 월스트리트 전체로 퍼져 나갔다.
“네뷸라 이정우 대표가 무언가 꾸미고 있다는데?”
“이거 또 주식시장에 핵폭탄 떨어트리려는 거 아니야?”
“……포트폴리오 정리 좀 해야겠는데.”
“나도 익절 좀 해야겠어.”
몇몇 투자자과 업계 종사자들이 불안에 떨며 보유한 주식들을 팔기 시작할 때.
이에 맞추기라도 한 듯 미국 기관들의 움직임 역시 심상치 않아졌다.
“CalPERS이 보유한 포트폴리오의 비중을 줄인다더라.”
“지금 CalPERS뿐만이 아니야. 지금 골드만삭스, JP모건 체이스, 모건 스탠리 3대 투자은행 역시 보유 주식 일제히 매도 중이래.”
“이게 도대체 뭔 일이래…….”
“블랙록, 뱅가드, 인베스코 3대 자산운용사도 포지션 줄인대!”
“뭐?”
정보에 밝은 소수의 투자자와 기관 관계자들을 중심으로 미국의 대표적인 연금인 캘리포니아 공무원연금기금CalPERS을 시작으로 거대 투자회사들의 보유 포트폴리오를 현금화하는 움직임을 포착했다.
그리고 그 정보의 시발점은 다름 아닌 미국 상무부와 SEC였다.
-트럼프 대통령이 곧 다가올 시장 충격에 대비하라고 지시했다!
구체적인 내용이 나온 바는 없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상무부와 SEC를 통해 시장 충격에 대비하라고 지시했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월가의 내로라하는 인물들은 상황이 심상치 않게 돌아가고 있음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들은 멍청이가 아니었다.
월가의 한 증권사 애널리스트가 상사에게 보고했다.
“……팀장님, 지금 기관들이 비중 줄인 종목들 비교해 보면 답이 나오는데요?”
“뭔데?”
“분야가 전부 자동차 종목과 배터리회사, 그리고 석유기업입니다. 그리고…….”
상사에게 보고하는 직원의 목울대가 꿈틀거렸다.
“……거기에 테슬라는 빠져 있습니다……!”
전기차 종목인 테슬라가 빠졌다는 것.
그것은 내연기관차 시장에 어떤 거대한 문제가 생긴다는 것을 짐작게 했고.
소수의 월스트리트의 천재들은 작금의 이 사태가 네뷸라와 연관이 있음을 직감했다.
그들의 얼굴이 하얗게 질려갔다.
* * *
미국, 아니 세계시장에 혼란이 찾아들고 있을 무렵.
포지션 매집과 동시에 정우는 다른 일들로 바삐 움직이고 있었다.
“탁 본부장님. 미국에서 이클립스와 솔리드스타RC의 공개행사를 진행하려 합니다.”
-공개행사 좋죠. 어디에서 진행하실 생각이십니까?
“실리콘밸리 쪽이 좋을 것 같아요. 전에 테슬라 모델S-SP 최초로 공개한 행사현장도 좋고요.”
-저도 거기 좋다고 생각했습니다. 그쪽으로 일정 잡아 보겠습니다. 언제쯤이 괜찮을까요?
“최대한 빠르게 잡았으면 좋겠습니다. 다른 행사가 겹쳐 있으면 게스트로 참여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네요.”
-비슷한 주제의 행사가 분명 있을 겁니다. 찾아보겠습니다.
“부탁드려요.”
먼저 솔리드스타RC의 발표를 위해 공개행사 준비를 지시하였다.
그리고 그래핀 사업의 첫 단추인 섬유산업에 대한 보고를 받았다.
-대표님, 일전에 지시하신 인수대상 섬유기업 리스트 추려서 메일로 보냈습니다.
“확인해 볼게요.”
-보고서 마지막 페이지에 인수 후보군을 추려 놨으니 보기 편하실 겁니다.
“역시 탁 본부장님입니다. 알겠습니다. 확인하고 연락드릴게요.”
탁세훈 본부장이 보내온 보고서를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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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체명 / 시장가치 / 작년 매출액]
1. TJX(미국) / 619억 9,000만 달러 / 197억 3,700만 달러
2. 도레이산업(일본) / 74억 9,000만 달러 / 122억 달러
3. VF(미국) / 154억 달러 / 82억 달러
4. 잘란도SE(독일) / 200억 달러 / 64억 달러
5. 언더아머(미국) / 64억 달러 / 33억 달러
6. 룰루레몬 아틀레티카(캐나다) / 123억 달러 / 23억 달러
……
─────────
보고서에는 대표적인 섬유 및 의류기업이 나열되어 있었는데, 언더아머나 룰루레몬, 랄프로렌, 프라다와 같은 정우도 들어 봤던 기업들은 생각보다 아래쪽에 있었다.
‘TJX는 처음 들어 보는데 엄청 크네.’
시장가치 600억 달러라니. 정우의 자산으로도 인수는 어림도 없는 금액이었다.
곧장 순위가 적힌 페이지를 넘겨 탁세훈이 추천한 인수 후보 기업을 확인했다.
「……추후 진행할 그래핀 섬유 산업과의 적합성을 고려했을 때 일반적인 섬유&의류기업보다는 탄소섬유 노하우를 보유한 도레이 산업이 가장 유력합니다. 하지만 해당 기업은 시총이 커서 인수는 어려울 것으로 판단, 다른 탄소섬유 기술을 보유한 기업으로 후보를 추렸습니다. 아래는 해당 후보군으로서, 첫째 인도의 Arvind Limited는 연간 9억 8,700만 달러 규모의 섬유를 생산 가능한 공장과 인력을 보유하고 있으며…….」
후보군에 오른 기업들은 일반적인 의류기업이 아닌 탄소섬유 기술을 보유한 기업들이거나 압도적으로 싼 가격이라든지 확실한 장점을 보유한 기업들로 선정된 것으로 보였다.
인도의 Arvind Limited는 규모에 비해 가격이 저렴(?)하다든지, 한국의 정명섬유의 경우엔 규모에 비해 뛰어난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다든지, 이런 식으로 하나씩의 장점이 있었다.
인도, 한국 기업을 지나 독일과 일본의 기업까지 확인을 마친 정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한국이 제일 나아 보이는데.”
정명섬유.
시총 1,000억 원이 채 안 되는 탄소섬유제조기업으로서, 규모는 작지만 굉장히 많은 첨단소재 관련 특허를 보유한 기업이었다.
‘가격이 싸고 규모가 큰 점을 따지면 인도기업이 나아 보이긴 한데…….’
해외 기업이라 통제하려면 꽤나 골치를 썩일 것 같아서 마음이 쉬이 내키지 않았다. 하물며 기업이 위치한 인도가 미국처럼 선진국이 아니고, 기업친화적이 아니라는 점도 감점요인이었다.
이에 반해 일본과 독일은 조건이 더 나은 편이었지만, 가격 면에서는 한국이 훨씬 나았다.
결국, 정우의 선택은 한국기업인 정명섬유였다.
“탁 본부장님, 정명섬유 어떻습니까?”
-역시 정명섬유군요. 저도 거기가 제일 낫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럼, 정명섬유 인수하는 쪽으로 진행할까요?
“예. 그게 좋겠네요. 근데 탁 본부장님이 번거롭게 오실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기업인수 건은 여기 한국 본사 통해서 처리할게요.”
-알겠습니다.
탁세훈과의 통화를 마치고 정우는 곧장 김 비서를 통해 기업인수제안서를 정명섬유에 넣으라고 지시했다.
“김 비서님 정명섬유 대표한테 인수하고 싶다고, 한번 보자고 전해 주세요.”
“바로 연락하겠습니다. 그리고 대표님, 아까 통화하실 때 엄준욱 감독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엄 감독님이요? 알겠어요. 확인해 볼게요.”
스마트폰을 확인해 보니 부재중 전화가 찍혀 있었다.
무슨 일로 연락을 준 건가 싶어 바로 전화를 걸었다.
“네, 형님! 전화 주셨더라구요.”
-아, 우리 대표님! 바쁘신데 괜히 전화한 거 아닌가 싶습니다. 하하하하.
“에이, 바빠도 형님 전화는 받아야죠. 그런데 왜 갑자기 존댓말이세요. 지난번에 말 놓기로 했잖아요.”
-아유, 그때는 취해서 그랬나, 괜히 어색하네. 하하하하.
정우는 엄준욱 감독과 몇 번의 술자리를 통해 친해져서 호형호제하기로 했다.
어색한 듯 넉살을 부리는 엄준욱 감독에 정우도 미소 지었다.
“하하하, 뭐 어때요. 편하게 부르세요.”
-알았어알았어. 그렇게 할게.
“그런데 무슨 일이세요? 촬영에 뭐 필요한 거 있으세요?”
-에이! 내가 뭐 꼭 필요할 때만 우리 대표님 부르나. 보고 싶으면 연락하고 그러는 거지.
“하하하, 그건 그렇죠.”
“뭐 일이 없는 건 아니고, 다른 게 아니라 오늘 배우들 첫 대본 리딩 끝나고 뒤풀이 자리가 있어서 말야. 우리 이정우 대표님도 투자자이시니까 겸사겸사 배우들 인사 좀 드리고 서로 소개하려는 자리 좀 마련하고자 연락했지.
“아아, 전 또 뭐 급한 일인 줄 알았네요.”
-어? 뭐야. 급한 일 아니면 참석 못 하는 거야?
“아뇨아뇨. 제가 배우들 얼마나 좋아하는데요. 당연히 가야죠. 언제까지 어디로 가면 되나요?”
-지금 이동 중인데, 장소는 문자로 찍어 줄게. 바로 오면 돼.
“알겠어요. 그럼 이따가 뵐게요.”
-넵! 우리 대표님! 조심히 오십쇼!
“하하하, 예예. 알겠어요, 형님도 운전 조심히 하십쇼!”
끝까지 장난스럽게 존댓말을 하는 엄준욱 감독을 보며 정우가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이거, 바로 출발해야겠는데?”
영화 <모기>의 배우들이라.
워낙 영화를 좋아하던 정우였고, 당연하게도 <모기>에 출연했던 배우 역시 좋아했다.
그 쟁쟁한 배우들을 바로 앞에서 볼 수 있는 기회를 놓칠 수야 없지.
“김 비서님! 저 먼저 퇴근해 볼게요!”
“넵, 대표님. 다음 주에 뵙겠습니다.”
“다음 주요? 아, 내일 토요일이지. 네, 김 비서님도 좋은 주말 보내세요!”
서둘러 퇴근하자 그림자처럼 강 팀장과 경호팀이 따라붙었다.
“어디로 이동하십니까?”
“음, 잠시만요. 어디 보자……` 아, 한남동이네요? 생각보다 가깝네.”
“한남동…… 알겠습니다. 저희가 모시겠습니다.”
“네, 부탁드립니다.”
정우는 경호팀이 운전하는 차를 타고 한남동에 위치한 모임 장소로 향했다.
* * *
정우가 도착한 뒤풀이 회식 장소의 식당 외관은 굉장히 허름했다.
“……냉동삼겹살?”
노포 분위기의 그곳은 냉동삼겹살집이었는데, 정우는 회귀하기 전에 몇 번 매체에서 봤을 정도로 유명한 식당이었다.
“대표님, 아는 식당입니까?”
“아, 좀 비싼 거로 유명하거든요.”
왜 유명한가 하면 맛보다는 비싼 가격 때문이었다.
“……내가 여기를 오게 될 줄이야.”
단 한 번도 가 본 적은 없지만, 냉동삼겹살을 100g에 1.5만 원이라는 비싼 돈을 주고 먹을 생각은 없었기에, 인생을 살아가면서 단 한 번도 안 가 볼 줄 알았던 식당을 오게 되자 기분이 싱숭생숭했다.
물론 지금은 비싸다고 생각되지 않았고, 오히려 이런 고즈넉하고 예스러운 분위기에서 좋은 사람들을 볼 수 있다고 생각하자 나쁘지 않아 보였다.
그런 생각을 모르는 강철준 팀장은 그 돈 많은 정우가 회의적인 표정을 짓자 놀란 얼굴이었다.
“얼마나 비싸길래…….”
“한번 들어가 보시면 압니다. 자, 들어가시죠.”
들어가니 안은 이미 만원이었다. 테이블 한가득 사람들이 빽빽이 자리 잡은 상태였는데, 정우와 한 떡대 자랑하는 경호팀들이 입장하자 자연스레 입구로 시선이 몰렸다.
“이 대표!”
그때 누군가 반갑게 정우를 불렀다. 고개를 돌리자 엄준욱 감독이 반가운 얼굴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 감독님. 오랜만입니다.”
“이게 얼마 만이야. 오는데 힘들진 않았고?”
“하하, 코앞인데 힘들긴요. 여기 경호원님들 덕분에 편하게 왔습니다.”
“경호원? 어쩐지…… 눈빛이랑 피지컬이 다들 장난 아닌데?”
역시 감독이라 그런가.
엄준욱 감독은 강철준 팀장을 비롯한 경호팀을 예리한 눈빛으로 훑었다.
다만, 견제의 시선이라기보다는 마치 상품을 고르고 감별하는 듯한 시선이었다.
“만나서 반가워요. 엄준욱이에요.”
“반갑습니다.”
“언제 스턴트나 배우 해 볼 생각 없어요?”
“……예?”
엄준욱 감독과 강철준 팀장이 악수하며 기이한 대화를 나누던 그때.
“감독님, 이분이 네뷸라 대표님인가요?”
옆에서 청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슬쩍 돌리니 거기엔 비현실적으로 예쁘게 생긴 한 여자가 정우를 쳐다보며 눈을 초롱초롱 빛내고 있었다.
낯이 익은 얼굴.
주변에 아는 예쁜 여사친이 전혀 없는 정우지만, 그는 저 여자가 누구인지 잘 알고 있었다.
“……진주희 씨?”
그녀는 바로 진성그룹 진용재 부회장의 딸이자, 아시아의 진주Pearl라 불리는 슈퍼스타 진주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