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화 Nothing is Impossible
오랫동안 정명섬유를 운영해 왔던 정명훈 대표는 약간 성태규 대표와 비슷한 과였다.
이상주의자랄까.
그래서 더 좋은 섬유 소재를 개발하기 위해 투자에 힘썼지만, 그 결과는 신통치 않았다.
그가 개발한 섬유 소재가 다른 소재보다 뛰어난 건 분명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시장을 뒤흔들 정도로 뛰어난 건 아니었기 때문이다.
결국, 기업 고객과 소비자들의 선택은 기존의 값싼 섬유 소재들이었고, 이는 투자 대비 상대적으로 적은 매출로 이어졌다.
간신히 적자를 면하는 상태로 기업이 유지되다 보니, 결국 정명훈 대표 역시 섬유 사업을 정리하기 원했던 것.
그리고 그의 바람은 섬유 사업을 시작하려는 정우의 니즈와 맞물렸다.
“좋은 기업 매각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못난 대표 때문에 우리 직원들이 고생 많았죠. 앞으로 우리 정명섬유 직원들, 잘 부탁드립니다.”
두 사람은 전격적으로 사업 매각과 인수에 합의하였다.
가격은 1,000억 원. 이중 부채가 거의 300억 원 수준이었으니, 실제 기업 가치는 700억 원 정도라는 의미였다.
연 매출 40억 정도 나오는 회사를 700억 원에 인수한다니.
누가 들으면 미쳤다고 할지도 모르지만, 정우는 굉장히 만족스러웠다.
“이제 첫 단추를 끼웠네요. 김 비서님, 정명섬유 직원들 전부 회의실로 모아 주십쇼.”
“네, 알겠습니다.”
정명섬유의 오래된 사옥 대회의실에 속속들이 직원들이 도착했다.
소재 연구팀부터 시작해서 단순한 공장 생산라인 직원들까지, 모두가 일을 멈추고 정우의 말을 듣기 위해 모여들었다.
그들의 안색엔 도대체 이 새로운 대표가 무슨 말을 할까 라는 의문과 기대감이 서려 있었다.
그런 직원들 앞에서 정우가 미소지었다.
“오랜 기간 정명섬유를 위해 일해 주신 여러분께 먼저 감사의 말씀 드립니다.”
“…….”
“아, 멘트가 좀 이상했네요. 말하고 보니 마치 해고하는 자리에서 하는 멘트 같네. 하하하.”
“하하하하.”
“물론 제가 여러분을 해고하는 일은 절대 없을 겁니다. 저는 정명섬유를 인수하면서 여러분들도 함께 책임지기로 약속했거든요.”
“와-!!!”
“호우-!!!”
일말의 불안을 안고 있던 직원들이 정우의 말에 그제야 긴장을 풀고 박수와 환호를 보냈다.
그들의 박수갈채가 끝나길 기다린 정우가 말을 이어 나갔다.
“제가 여러분을 이렇게 이 자리에 모신 이유는 하나입니다. 앞으로 정명섬유, 아니 네뷸라 파이버Fibre는 첨단산업의 선두주자로 거듭날 것입니다. 아니, 업계 최고가 될 거예요. 전 세계 사람들 모두가 저희 네뷸라 파이버가 생산한 섬유로 된 옷을 입게 만드는 것이 제 꿈이자 목표입니다.”
“…….”
“못 미더우시죠? 하하하, 아직은 진행된 게 아닌 그저 꿈이니까요. 하지만 제가 솔리드스타를 만들 때 모두가 말했습니다. 불가능하다고. 하지만 결과적으로 어땠나요? 제가, 아니 네뷸라 케미컬이 만든 솔리드스타는 전 세계에 혁신과 선풍적인 인기를 가져오고 있습니다.”
그 말에 직원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네뷸라 케미컬이 만든 솔리드스타의 위상은 대단한 것이었으니까.
즉, 그런 솔리드스타를 개발한 사업가가 하는 말에 못 미더워 하던 그들도 조금씩 마음을 열고 있었다.
“그리고 그 꿈의 길의 주인공은 바로 여러분입니다. 저와 함께 달려 보시지 않겠습니까?”
“…….”
물론 아직까지 완벽하게 그를 믿는 게 아니었기에 직원들의 반응은 미적지근했다.
정우가 멋쩍게 웃었다.
“제 멘트가 오그라들었나 보네요. 하하하. 뭐, 괜찮습니다. 저는 말보다는 행동으로 보여 주는 사람이니까요. 제가 꿈꾸는 이상, 여러분께 보여 드리겠습니다.”
직원들에게 자신의 꿈을 이야기하는 정우의 눈빛은 그 누구보다 확고해 보였다.
* * *
정명섬유, 아니 이제는 네뷸라 파이버의 직원이 된 그들은 처음에는 정우의 말을 허무맹랑한 헛소리 정도로 치부했다.
“꼭 말하는 게 사기꾼 같지 않아? 너무 허황된 얘기나 하고 말이야.”
“맞아. 이 섬유 쪼가리로 무슨 세계 지배를 할 것처럼 얘기하고 있어.”
섬유 소재 연구팀 직원들이 뒷담을 하며 새로운 대표를 깎아내렸다.
아니, 믿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그들의 오판이었다.
새로운 대표는 직원들이 아는 사짜가 아닌 진짜였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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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 내 공 문>
문서번호: NB-F1-180215-01
발신: 대표 이정우
수신: 전 직원
제목: (구) 정명섬유 사옥 이전 건
내용:
안녕하십니까, 네뷸라 파이버의 새로운 대표를 맡게 된 이정우입니다.
친애하는 네뷸라 파이버 전 직원들께 한 가지 알려 드릴 사항이 있습니다.
낙후된 시설과 열악한 환경에서 연구 및 업무 활동을 하고 계신 직원들의 복지를 위해 사옥을 새로 짓기로 결정하였습니다.
기존 사옥을 대대적으로 리모델링할 예정이며, 그전까지는 새로운 사옥을 임대하여 사용할 예정이니 전 직원 여러분은 다음 주부터 새로운 사옥으로 출근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마찬가지로 섬유 생산공장 쪽 역시 리모델링을 진행할 예정이며, 부득이하게 새로운 공장을 대여할 수 없는 이상 리모델링과 업무를 병행해야 하는 점 양해 바랍니다.
이에 생산라인 직원 모두에게 위로금을 전달할 예정이니 참고 바랍니다.
앞으로 네뷸라 파이버는 직원들의 복지에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이며, 이를 계기로 직원과 회사 모두 함께 발전하고 성장할 수 있도록 모두 힘내 주시기 바랍니다.
현 대표이사 이정우 (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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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옥과 공장을 리모델링한다는 사내공문을 시작으로 모든 게 뒤바뀌기 시작했다.
어차피 매출이 크게 나오지 않는 상황이었기에 공장 생산라인 쪽 인력의 불필요한 야근을 확 줄였고, 소재 연구팀에 막대한 지원이 들어갔다.
새로운 사옥에 마련된 연구를 위한 첨단 기기들과 쾌적한 환경.
카페를 방불케 하는 탕비실부터 시작해서 기존의 코딱지 같았던 식대 역시 정상화되었다.
“……장난 아닌데요?”
“와…… 여기 투과전자현미경도 있어요. 이거 엄청 비싼 거 아니에요?”
“몇십억은 될걸요? 네뷸라 대표라고는 듣긴 했는데, 돈 진짜 많나 봐요. 대박.”
맨날 낡아빠진 사옥과 연구실에서 출퇴근하던 직원들은 거의 궁전처럼 변한 업무 환경에 입이 함지박만 해졌다.
하지만 이는 끝이 아니었다.
“네뷸라 케미컬의 최고기술경영자를 맡고 있는 성태규라고 합니다.”
“아, 이사님이시군요……! 반갑습니다! 정명섬유…… 아니, 네뷸라 파이버 섬유소재연구팀장을 맡고 있는 김수찬이라고 합니다.”
네뷸라 케미컬 연구팀과의 교류를 추진하여 그들이 갖고 있는 노하우가 서로 공유될 수 있게끔 미팅을 주선했던 것.
성태규 전무가 웃었다.
“반갑습니다. 대표님 통해서 얘기 들으셨을 겁니다. 앞으로 저희는 네뷸라 파이버와 협업을 통해 새로운 섬유 소재를 개발할 예정입니다.”
“새로운 소재라하면……?”
“그래핀 섬유 프로젝트지요. 기존 섬유보다 훨씬 튼튼하고, 가볍고, 좋은 섬유를 개발하는 게 우리의 목표입니다.”
“……그래핀 섬유 프로젝트요? 아니 그래핀이 한두 푼 하는 것도 아닌데…….”
김수찬 팀장이 그래핀 섬유라는 말에 떨떠름해 하자 성태규 전무가 고개를 저었다.
“아직 네뷸라에 대해 잘 모르시는 것 같군요. 뭐, 이해합니다. 하지만 그래핀이 부족하다거나, 비싸다거나, 저희는 그 부분에 대해 고민하지 않아도 됩니다. 우리는 그냥 그래핀을 가지고 연구만 하면 되니까요.”
“네? 그게 무슨…….”
“보면 알 겁니다.”
성태규 전무는 못 미더워 하는 김수찬 팀장과 함께 업무 교류를 시작했다.
그리고 그 과정은 놀라웠다.
네뷸라에서는 도대체 어디서 가져오는 건지 무한히 솟아나는 그래핀 원자재를 제공해 주었던 것.
“……진짜 그래핀이야!”
“이게 다 얼마야……?”
“세상에…….”
거의 금값이나 마찬가지인 그래핀을 마음대로 연구할 수 있다는 사실에 새로 합류한 연구팀이 놀라는 것을 기존 네뷸라 케미컬 연구팀이 웃으며 바라보았다.
이후 진행된 연구는 더더욱 굉장했다.
꿈의 소재라는 별명처럼 그래핀은 활용 가능성이 무궁무진했고, 파면 팔수록 알지 못했던 새로운 정보들이 나와서 연구를 즐겁게 했으니까.
“……드디어 진짜 제대로 된 연구를 하는 기분이야.”
“저도요.”
“이게 연구지!”
그렇게 새롭게 합류한 네뷸라 파이버 연구팀 연구원들은 다시 처음 입사할 때 신입사원일 때의 초심, 연구에 대한 재미를 느끼기 시작했고, 그 열의는 당연하게도 연구에 대한 매진으로 이어졌다.
그 덕분에 네뷸라 케미컬이 갖고 있는 각종 화학 관련 지식과 노하우와 정명섬유 시절부터 갖고 있던 소재연구팀의 노하우가 서로 섞이기 시작했는데, 비슷하면서도 다른 분야였기에 서로의 노하우에 영향을 받아 각 직원의 실력이 기하급수적으로 성장하기 시작했다.
“……이거 마치 대기업 다니는 기분인데.”
“상장만 안 되었지, 네뷸라면 이제 대기업이죠 뭐.”
“인생 한 방이라더니, X소기업 다니다가 이렇게 인생 역전하네.”
어느덧 직원들의 마음 한 켠에 자리 잡아 있던 대표에 대한 불신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대신 삶에 찌들어 있던 기존 정명섬유 직원들의 눈빛에 슬슬 꿈이란 것이 깃들기 시작했다.
* * *
섬유사업 인수와 함께 그래핀 섬유 개발이 시작되고.
그 사이 강철준 팀장에게 맡긴 조사가 마무리되었다.
정우는 강 팀장이 가져온 보고서를 천천히 읽어 보았다.
“……확실히 대한전자 쪽 움직임이 수상하네요? 지분이 벌써 상당수 한성준 사장 쪽으로 넘어갔네요. 이미 과반지분이었는데, 이렇게 많이 모을 이유가 있나?”
“……글쎄요. 저는 사업에 문외한이라.”
정우의 중얼거림에 강철준 팀장이 잘 모른다는 투로 대답했다.
그를 보며 정우가 웃었다.
“괜찮아요. 이 정도만 해도 엄청난 도움이 될 것 같거든요. 수고하셨습니다, 강 팀장님.”
“예. 또 필요하신 거 있으시면 말씀하십시오.”
강철준 팀장이 나가고, 정우는 곧장 탁세훈 본부장에게 연락했다.
아무래도 기업 경영 쪽은 그가 밝은 편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의 예상대로 정우에게 대한그룹과 대한전자의 지분구조 및 상황을 전해 들은 탁세훈은 무언가 깨달은 듯 보였다.
-답 딱 나오는데요? 계열 분리 아닙니까?
“계열 분리요?”
-예. 이대로는 대한그룹 못 물려받을 것 같으니까 한성준 사장이 칼을 뽑아 든 것 같아요.
“흠…… 일리가 있네요.”
확실히 탁세훈의 분석대로 생각하니 한성준 사장의 최근 동향이 이해가 간다.
그때 탁 본부장이 물었다.
-그런데 대표님, 갑자기 대한전자 건은 왜 조사합니까?
“아, 이거요? 사실 대한전자 인수를 염두에 두고 있었거든요.”
-대한전자를요? 오호…… 괜찮은데요?
괜찮다는 탁세훈 본부장의 말에 정우는 놀랐다.
여태 그의 말을 들은 주변인들은 하나같이 다 애매하다는 반응이었기 때문이다.
“탁 본부장님 반응은 다른 사람들과 좀 다르네요? 다른 사람들은 무모하다는 반응이 주였는데.”
-저는 가능성 있다고 봅니다. 특히 지금처럼 두 진영이 싸우고 있을 때는 파고들 여지가 있는 법이죠.
“파고든다고요?”
-예. 우리가 예상한 대로 한성준 사장이 계열분리를 한다고 생각해 봅시다. 그런데 계열 분리를 하려면 결국 지분을 다 가져와야 하는데, 한동준 사장 역시 대한전자 지분을 들고 있습니다.
“오호? 결국 한성준 사장은 한동준 사장과 협상을 해야 한다?”
-그렇죠. 아마도 과반 지분을 확보한 상태에서 협상하려 들 겁니다. 어떤 달콤한 당근을 내미는 대신 대한전자 지분을 모두 달라고 말이죠.
“흠, 근데 어떤 당근인지는 모르겠지만 한동준 사장이 겨우 그런 거로 넘어갈까요? 대한전자가 그룹에서 떨어져 나가는데?”
-그건 저도 잘…….
정우의 예리한 질문에 탁세훈 본부장도 막혔는지 대답하지 못했다.
“알겠어요. 그건 천천히 생각해 보자구요. 오늘 대화 도움 많이 되었습니다.”
-하하, 뭘요. 궁금한 거 있으면 언제든 연락 주세요. 아, 그렇다고 필요할 때만 연락하시지 마시고 가끔 전화 주세요.
“하하하, 알겠어요. 그럼 쉬세요.”
웃으며 통화를 마쳤지만, 정우의 얼굴은 굳어 있었다.
‘어렵다. 어려워.’
과연 한성준 사장의 목적은 무엇일까.
그리고 한동준 사장은 지금 어떻게 대응하고 있는가.
‘……과거에 한성준 사장이 어떻게 되었지?’
거기에 답이 있을 터.
미래를 아는 정우는 과거의 기억을 떠올리기 위해 애썼다.
한동준 사장이 회장이 되는 미래의 기억에서 한성준 사장의 말로는 어떻게 되었던가.
그리고 마침내.
보일 듯 보이지 않던 그 답이 보였다.
* * *
간질간질하던 머릿속에서 스쳐 가듯 보았던 그때의 기억이 떠오른다.
전기차 시장이 커지면서 대한화학의 떡상으로 인해 승승장구하던 대한그룹의 셋째 한민준 사장.
뉴스는 주로 한민준과 한동준 사장의 양강 체제에 대해 다룰 뿐, 한성준 사장은 존재감이 적었다.
‘그러다 한광표 회장이 건강 악화로 물러나게 되지.’
그리고, 건강 악화 때문에 물러난 한광표 회장이 지목한 후계자는 다름 아닌 한동준 사장이었다.
길고 긴 양강구도가 한광표 회장의 한마디에 정리되어 버린 것이다.
마침내 대한그룹을 물려받게 된 한동준 사장은 경영권 인수 및 내부 질서 확립에 신경을 쓴다.
그리고 거기에 대한전자도 포함되어 있었다.
<대한전자 한성준 사장, 전격 은퇴 발표>
정우의 뇌리에 떠오른 과거의 기사.
그렇다.
그가 기억하는 한성준 사장의 미래는 결국 은퇴로 마무리되는 것이다.
‘……한동준 사장이 결국 대한전자를 공격해서 대한전자 경영권도 확보하던가?’
기억하는 해당 기사에 따르면 경영권을 잃게 된 한성준 사장이 결국 은퇴하는 것으로 추측한다고 나와 있었다.
만약 이 미래가 사실이라면?
물론 한성준 사장의 사퇴가 계열분리를 시도하다가 실패한 결과였는지, 아니면 미래가 바뀌어 지금 처음으로 계열분리를 시도한 건지 알 수는 없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한성준 사장의 패배하는 미래를 엿볼 수 있었다는 것.
그 과정을 볼 수 있었다는 점이 중요했다.
‘……한동준 사장이 이긴다라.’
한동준 사장이 대한그룹 지분을 일부 매각하여 자금을 마련한 뒤, 대한전자 지분 인수 및 경영권 확보에 뛰어든다는 미래.
……그렇다면?
‘내가 노려야 할 건 대한전자가 아니야.’
대한그룹.
그 자체를 노려야 한다.
* * *
정우는 지서현을 호출했다.
“서현 씨, 주식 HTS 프로그램 API 좀 만들어 줄 수 있어?”
“HTS요? 그건 어렵지 않습니다. 그런데 무슨 일 때문인지 알 수 있겠습니까?”
의아해하는 지서현에게 정우는 자신의 계획을 설명했다.
“대한그룹 지분을 티 나지 않게 계속 인수하려고.”
“티 나지 않게 인수한다고요?”
“어. 대한그룹 지분을 대량으로 매집할 생각이야. 나중에 대주주가 되면 공시되긴 하겠지만, 공시되기 전까지는 아무도 모를 테니 그때까지 계속.”
“음……. 이유는 알겠습니다만, 그런데 대한그룹을 갑자기 인수한다니 이해가 잘 가지 않습니다.”
“그야 간단해. 대한그룹 지분을 무기로 대한전자 인수 쪽으로 협상할 거거든.”
“……아!”
정우의 계획은 이랬다.
미래대로라면 한동준 사장은 큰형이자 대한전자 대표인 한성준 사장의 멱을 치기 위해 그룹 지분을 일부 내놓게 된다. 자금을 확보하여 대한전자 지분을 인수하기 위해서인데, 정우는 이 순간을 노려 대한그룹 지분을 확보, 이를 빌미로 대한전자 인수에 뛰어들 생각인 것이다.
“전부 확보는 어려워도, 스마트폰 사업부만 인수하는 쪽으로 생각한다면 가능할지도 몰라.”
“……괜찮은 생각인 것 같습니다.”
대한전자 지분 100% 확보는 솔직히 불가능하다.
흩어져 있는 여러 대주주의 인심을 돌려 지분을 확보하는 것도 어려울뿐더러, 이미 경영권을 쥐고 있는 한씨일가의 힘이 너무 막강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한그룹 지분을 손에 쥔 상태에서 이를 무기로 대한전자의 스마트폰 사업부만 협상한다면?
확실히 가능성이 있는 계획이었다.
“다만, 그룹 지분은 시장에 많이 풀리지 않을 텐데요? 매물이 있을지…….”
“그 부분도 염두에 두고 있고, 어떻게 될지는 조만간 알게 될 거야. 우리는 그때까지 총알과 사전 매수 작업만 철저히 해 놓으면 돼. 그래서 대량 매집을 위한 API가 필요한 거고.”
“흠…… 알겠습니다. 준비해 보겠습니다.”
새로운 임무를 받게 된 지서현이 퇴장하고.
정우는 곧장 강철준 팀장을 호출했다.
“강 팀장님, 대한그룹 동향과 지분 구조에 대해 빠짐없이 조사 부탁드립니다. 대주주 명단을 얻고 싶어요.”
“……저희는 경호팀입니다만?”
“알아요. 그런데 그 정보력을 썩힐 순 없지 않습니까?”
“……흠.”
“인센티브 두둑이 드릴게요. 협조 좀 해 주세요.”
“알겠습니다. 바로 알아보죠.”
강철준 팀장의 팀을 통해서 혹시 모를 확보 가능성이 있는 대주주 지분이 있는지 파악도 지시했다.
남은 건 그물을 쳐 놓고 물고기가 그물에 걸리기까지 기다리기만 하면 될 뿐.
과연 한동준 사장이 그의 생각대로 움직일까?
확신할 수는 없지만, 절대 손해 보지 않을 장사였기에 정우는 느긋하게 그물을 끌어 올릴 날을 기다렸다.
* * *
정우가 대한그룹의 빈틈을 노리기 위한 칼날을 갈고 있는 사이.
드디어 솔리드스타RC 자동화 설비 기술이 개발되어 생산라인에 설치되기 시작했고, 테스트 공정이 마무리되었다.
T/P(Test Production: 시험생산) 단계와, P/P(Pre-Production: 사전생산) 단계까지 마무리되고, 이제 M/P(Mass-Production: 대량생산) 단계를 앞둔 상태에서 정우는 공장 시찰에 나섰다.
그가 향한 공장은 성운이노베이션 시절부터 갖고 있던 네뷸라 케미컬의 국내 공장이었다.
아직 유일자동차가 전적으로 투자하여 지어지고 있는 청주 공장은 완공까지 시간이 더 필요했기에 솔리드스타RC 공정 적용은 국내 네뷸라 케미컬 공장과 미국에 있는 기가테네시 공장에만 적용되었던 것.
도착한 국내 공장의 직원은 적었다.
자동화설비 전문기업이었던 성운이노베이션 때부터 쌓인 노하우를 적용했기 때문일까. 처음 의도했던 대로 공장 대부분의 설비는 자동화된 상태였기에 공장 내부는 몇몇 관리직원과 원자재를 옮기는 용역 직원을 제외하면 굉장히 적은 편이었다.
마치 미래 SF 도시의 공장에라도 온 것처럼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는 공장설비들과 설비들이 생산해 낸 배터리들을 보며 정우는 감탄했다.
이게 정말 자신이 만든 공장이란 말인가.
물론 규모와 웅장함은 기가테네시 공장에 비할 바는 아니었지만.
“……멋지네요. 모두 고생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같이 시찰에 따라온 성태규 전무가 웃었다.
그런 그에게 물었다.
“그런데 불량률이 좀 있다고 들었는데요?”
“……불량률은 17% 정도입니다. 아직 좀 불안하지요.”
17%라.
반도체 수율에 비하면 굉장히 준수한 수율이지만, 그렇다고 낮은 불량률은 아니었다.
정우가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좀 높긴 하네요.”
“일정을 앞당기다 보니 몇몇 공정에서 문제가 생기고 있는 것 같아, 지금 오류를 최대한 잡아내고 있습니다. 아마도 공정 최적화를 이루면 수율은 더욱 올라갈 겁니다.”
“기간이 부족하긴 했죠. 그래도 신경 좀 써 주세요. 자칫 불량품을 못 잡아내서 컴플레인이라도 들어오면 곤란하니까.”
“예. 최대한 수율 끌어올려 보겠습니다.”
“부탁드릴게요.”
“그런데 대표님, 공정 최적화를 진행하려면 시간이 좀 필요한데, 그럼 솔리드스타RC 출시일은 미뤄지는 겁니까?”
성태규 전무의 물음에 정우는 살짝 고민했다.
최고로 완벽한 상태로 가느냐.
아니면 약간 아쉽지만, 이대로 가느냐.
그의 선택은 후자였다.
“바로 갑시다.”
세상에 빨리 솔리드스타RC를 보여 주고 싶은 마음이 컸다.
무엇보다 정우가 사업을 하면서 깨달은 것은 사업이란 게 항상 100% 완벽한 상태로 진행할 수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적당히 융통성을 발휘해야 하는 법.
‘어차피 탁세훈 본부장이 알아봐 준 솔리드스타RC 발표 일자가 코앞이라 무를 수도 없지.’
모든 상황이 공개 쪽으로 마음을 기울게 했다.
그렇게 솔리드스타 RC가 세상에 선을 보일 날이 다가왔다.
* * *
미국 캘리포니아 롱비치.
그곳에 국제 IT 박람회가 열리고 있었다.
각종 전자 제품들을 선보이는 이 박람회 한쪽에 마련된 컨퍼런스 홀은 지금 사람들로 인산인해였다.
바로 정우의 첫 발표 소식에 수많은 관중이 구름처럼 몰려들었기 때문이다.
1만 명을 수용 가능한 컨퍼런스 홀은 발 디딜 틈 없이 매진되었고, 심지어 지나다니는 통로에도 사람들이 모여 발표를 기다렸다.
과연 네뷸라에서 이번에는 어떤 혁신을 발표하려고 저러는 것일까.
사람들이 궁금해하던 그때 마침내 주인공이 등장했다.
네뷸라 케미컬 대표, 정우였다.
“아아- 반갑습니다. 이정우입니다. 굉장히 많은 분이 와 주셨군요. 하하.”
확실히 좋은 영어 발음은 아니었다.
V나 B 발음이 제대로 구분되지도 않는 흔히 한국인들이 콩글리시라 부르는 영어 발음.
하지만 그의 영어는 어렵지 않은 쉬운 단어 사용으로 확실히 간단하고 명료했다.
전달력이 뛰어난 것이다.
그렇기에 모여든 관객들 역시 아무런 어려움 없이 그의 말을 쉽게 경청할 수 있었다.
“컴퓨터 및 전자제품 박람회에서 배터리 소개를 하려니 참 어색하지만, 제가 이 자리에서 선 이유는 간단합니다. 대놓고 자랑하기 위해서입니다.”
자랑하러 왔다는 말에 관객석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잠시 웃음이 잦아들길 기다린 정우의 말이 이어졌다.
“저는 한국인입니다. 다들 아시다시피 한국인의 특성은 ‘빨리빨리’죠.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자, 길게 설명하지 않겠습니다. 바로 화면으로 만나 보시죠.”
그가 뒤돌아서며 무대 뒤 마련된 대형 스크린을 가리켰다.
거기에 기존 솔리드스타 배터리셀이 떠오르더니 충전기에 연결되었다.
그러더니 충전되는 동영상과 함께 충전율과 시간이 표시되었다.
[29:47:73 - 100%]
기존 배터리셀의 충전시간은 29분대. 초 단위까지 고려하면 거의 30분에 가까운 시간이었다.
충분히 빠른 속도지만, 단일 배터리셀이 아닌 모듈, 팩 단위로 배터리가 커지면 충전시간이 늘어날 것은 자명한 상황.
그때 기존에 나와 있던 솔리드스타를 비추고 있던 화면이 움직였다.
마치 솔리드스타 내부로 빨려들어가듯 초점이 줌인Zoom-In되더니 솔리드스타 내부의 전해질 부분이 3D 영상으로 나타났다.
전자와 이온들이 이동하기에는 마치 벽처럼 빽빽하기 그지없는 전고체배터리의 전해액을 비추는 화면.
그 순간 주인공이 등장했다.
그래핀 파이프라는 글자와 함께 일종의 철사 같은 막대기들이 나타나더니, 벽과도 같았던 전해액에 그래핀 파이프들이 꽂혔다.
마치 터널 도로처럼 전해액을 관통한 그래핀 파이프를 통해 느리게 움직이던 전자와 이온들이 초고속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어?”
“……설마?”
그걸 본 관객석에서 탄성이 나왔다.
그제야 그들도 정우가 말하는 게 뭔지 조금씩 이해하고 있던 그때.
화면의 초점이 줌아웃Zoom-Out 되어 다시 배터리 바깥을 보여 주었다.
겉면에 기존 솔리드스타 배터리셀과 차별화하기라도 하듯 투명한 배터리셀은 더더욱 투명해진 상태였는데, 그 배터리셀과 충전기가 연결되었다.
그리고 그 결과는 놀라웠다.
[04:47:12 - 100%]
무려 2분 만에 모든 충전이 마무리되었던 것이다.
“저게 뭐야? 4시간?”
“설마 4분은 아니겠지?”
충격에 관객들이 순간 이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어버버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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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thing is Impossible(불가능은 없습니다)
-7times Rapid Charging Speed Battery(기존보다 최고 7배 빠른 충전속도의 배터리)
-NOW, U CAN SEE(지금 당신은 보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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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진 문구가 이를 설명했다.
그리고 그 이내 그 문장들에서 ‘Rapid Charging’이라는 단어에서 ‘R’과 ‘C’라는 글자와 같이 몇몇 글자들이 추출되어 클로즈업되어 하나의 단어를 만들어 냈다.
마침내 솔리드스타RC가 세상에 공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