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코인 후 인생 대박-103화 (103/120)

103화 거래를 하러 왔습니다

대한전자 사장실.

그곳에 한동준 사장이 들어섰다.

“오랜만이야, 형.”

한동준이 큰형을 보며 미소 지었지만, 한성준은 떨떠름한 얼굴이었다.

“뭐야, 연락도 없이.”

“형제가 꼭 연락해야만 볼 수 있는 건 아니잖아. 그냥 보고 싶어서 왔지.”

“……일단 거기 앉아.”

업무를 보고 있던 한성준 사장이 미소와 함께 일어나 테이블을 마주하고 앉았다.

두 사람의 눈빛이 마주쳤다.

한성준 사장이 먼저 물었다.

“무슨 일이야. 이렇게 불쑥 찾아온 거 보면 용건이 있을 것 같은데.”

“왜 모르는 척이야, 형. 내가 왜 찾아왔는지는 형도 잘 알 텐데?”

여유로운 동생의 되물음에 한성준 사장이 이내 피식 웃었다.

“후…… 이미 다 알고 왔나 보네.”

“어.”

“하긴 이제 와서 모르는 척하는 것도 우습지. 그래, 아마 니가 생각하는 게 맞을 거다.”

“계열분리 시도하는 거 인정하는 거야?”

“어.”

순순히 수긍하는 형을 보며 한동준 사장의 입가에 미소가 사라졌다.

“역시…… 형이 그럴 줄은 몰랐다. 언제나 착한 척은 다 하던 게 형 아니었어? 갑자기 이러는 이유가 뭐야? 나이가 드니까 욕심이라도 생긴 거야?”

그 말에 한성준이 웃었다.

“맞아. 욕심 생겼지.”

“변한 이유가 뭔데? 누가 바람이라도 넣은 거야?”

“아니. 순전히 내 판단이야. 생각해 보니 너무 X신 같더라고. 아버지 말에 휘둘려서 내 인생 하나 감당하지 못하고, 마치 체스판의 말처럼 시키는 대로 살아왔어. 그러다 생각이 들었지. ‘아, 이러다가는 내 인생을 바친 대한그룹에서 내 몫 하나 못 챙기겠다’라는 그런 생각. 내 인생도, 내 사랑도 다 포기하고 선택한 대한그룹인데, 바보처럼 동생들한테 다 뺏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지.”

한성준 사장의 자조 어린 고백에 한동준이 눈살을 찌푸렸다.

“뺏기긴 뭘 뺏긴다는 거야. 형, 생각해 봐. 내가 회장이 되면 형 하나 못 챙겨 주겠어? 대한전자 부회장 자리, 그거 형 거나 마찬가지야. 그런데 왜 나를 못 믿고 척을 지려고 하는 거야……!”

“부회장 자리…… 그래 그 자리 정도는 보전할 수 있겠지. 하지만 바지사장일 뿐이잖아. 내 회사가 아니라 니 회사겠지. 니 회사를 위해서 쥐꼬리만 한 월급만 받아먹으면서 살라고? 그동안 너무 많은 걸 포기해 온 내 인생이 불쌍해서라도 절대 그렇게는 못 하겠다.”

단호한 한성준의 거절에 한동준의 얼굴이 굳어 갔다.

“……아버지가 가만두지 않을 거야.”

“그걸 지금 협박이라고 하냐.”

“…….”

“너도 알잖아. 이번 일은 아버지의 묵인이 없었다면 진행되지 않았을 거란 걸. 아버지는 이미 다 알고 계셔. 다만 그저 지켜보고 계실 뿐인 거지. 차기 회장감인 니가 계열분리를 시도하는 나를 막을 수 있는지, 그 역량을 테스트 중이신 거라고. 난 그걸 이용 중인 거고.”

한성준 사장의 말이 정확했다.

일이 이 지경이 될 때까지, 대한그룹의 작은 거인은 아직까지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그저 두 아들의 싸움을 지켜만 보겠다는 한 회장의 무언의 약속이 지금의 판에 깔려 있는 것이다.

한동준이 혀를 끌끌 찼다.

“쯧…… 영감쟁이 끝까지 도움이 안 되네.”

“동준아, 내가 많은 걸 바라는 게 아니다. 대한전자만 나한테 넘겨라. 그러면 지금처럼 대한그룹과 돈독한 관계 유지할게.”

“…….”

한성준 사장이 간절함을 담아 부탁했다.

그리고 그 바람이 통한 걸까.

잠시 고민하는 듯하던 한동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내가 가진 지분 형한테 넘길게.”

“정말로?”

“대신 가격은 좀 높게 받아야겠어.”

“얼만데.”

“100조 원.”

“뭐? 100조 원?”

100조 원이라는 거액을 제시하는 동생을 보며 한성준 사장이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지금 농담이지? 대한전자 전체 시총이 15조가 채 안 되는데, 니가 가진 그 쥐꼬리만 한 지분에 100조 원을 달라고?”

“글쎄. 이게 농담 같아 보여?”

한동준이 웃어 보였다.

그 미소를 보고 나서야 한성준은 동생이 자신을 놀렸음을 깨달았다.

“……동준이 너, 나한테 지분 넘길 생각이 하나도 없구나.”

“어. 그걸 이제 알았어?”

한동준 사장이 으르렁거렸다.

“착각 중인 것 같은데, 형. 아니 한성준 씨. 대한그룹은 내 거야. 당연히 대한그룹에 속한 대한전자도 내 거고. 그런데 감히 누구 앞에서 대한전자를 넘봐. 어이가 없네 진짜.”

“뭐?”

“난 대한그룹이 쪼개지는 걸 난 절대 두고 보지 않을 거야.”

“너 이 자식이……!”

“오히려 내가 제안 하나 할게. 사실 오늘 내가 이 자리에 온 이유도 이거였으니까.”

한동준이 한성준을 지긋이 노려보았다.

“대한전자 경영권, 나한테 넘겨. 그러면 콩고물은 건져갈 수 있을 거야.”

“……뭐? 그걸 말이라고……! 너 지금 경영권도, 과반지분도 다 나한테 있는 거 알고 그딴 헛소리야?”

“아직 상황 파악이 안 되나 본데, 형. 아니 한성준 씨. 당신 지금 과반 지분 확보했다고 안심하는 것 같은데 두고 보세요. 그렇게 안심하다가 훅 가는 거 한순간입니다?”

한동준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무튼, 내 제안 거절한 거지?”

“……당연한 거 아니냐?”

“그럴 거라 예상했는데 역시나였네. 알겠어. 그럼 잘 지내고, 다음에 봤을 때는 형 대접 없으니까 그렇게 알고.”

정장 상의 단추를 잠그며 한동준 사장이 대한전자 사장실을 나섰다.

뒤통수로 느껴지는 한성준 사장의 뚫어질 듯한 눈빛을 뒤로하고 그가 스마트폰을 꺼내 들었다.

“……어, 나야. 대한전자 이사들 명단 있지. 한번 만나자고 스케줄 잡아 봐.”

이제부터 진짜 전쟁이야.

* * *

한편 그랜드하얏트호텔 라운지.

조용한 그곳에 박학기 팀장이 초조한 얼굴로 기다리고 있었다.

‘……왜 보자고 한 거지?’

평소라면 휴가 때를 제외하고, 아니 휴가 때라도 절대 올 일이 없는 곳이 이 비싼 호텔 라운지다.

그런데도 그가 이곳에 나온 이유는 한 사람과 약속이 잡혀 있었기 때문이다.

바로 네뷸라 코퍼레이션의 대표, 이정우였다.

한때는 자신의 직원이었던, 하지만 이제는 국내 탑을 넘어 세계적인 기업의 대표가 되어 버린 그가 왜 자신을 보자고 한 것일까.

다시 스카웃 제의를 하기 위해서? 네뷸라 케미컬로 돌아오라고?

별의별 생각이 다 들던 그때, 마침내 주인공이 등장했다.

“……여깁니다!”

박학기 팀장이 어색하게 손을 들어 정우를 불렀다.

그를 발견한 정우가 환한 미소와 함께 다가왔다.

“와, 팀장님 진짜 오랜만입니다. 잘 지내셨어요?”

“네 뭐…….”

“하하하, 편하게 말씀하세요 팀장님.”

“……어, 그래.”

박학기가 어색하게 말을 놓자 정우가 물었다.

“별일 없으시죠?”

“그치. 그냥저냥 잘 지내.”

“회사 그만두셨을 때 정말 아쉬웠습니다. 팀장님 실력 좋으시고 성격도 좋으셨잖아요. 저 실수도 잦았는데 자주 혼내지도 않으시고.”

“하하, 기억해 주니 고맙다. 근데 그 얘기 하려고 날 부른 건 아닌 것 같은데?”

“네, 맞아요. 단도직입적으로 여쭤볼게요.”

정우의 눈빛이 진지해졌다.

“……‘에너맥스1000’ 팀장님이 작업했다고 들었습니다.”

“……그, 그걸 어떻게……?!”

전혀 예상치 못했던 정우의 말에 박학기 팀장의 목소리가 떨려 나왔다.

“사실 이미 에너맥스1000 케이스갈이 정황을 알고 있어요.”

“……헙.”

“팀장님을 탓하려는 게 아닙니다. 그저 궁금할 뿐입니다.”

“…….”

“누가 지시한 겁니까?”

정우가 은근한 목소리로 물었다.

박학기 팀장이 갈등했다.

대답해야 할까?

도대체 어디까지 알고 있는 걸까?

“……미안…….”

“당장 대답해 달라는 건 아니에요. 시간이 필요하시겠죠. 하지만 만약 무언가 얘기할 준비가 되신다면, 저한테 연락주세요. 팀장님한테 피해가 가지 않게, 안전과 미래 제가 보장해 드리겠습니다.”

그 말을 끝으로 정우가 일어서려 하던 그때였다.

박학기 팀장은 본능적으로 물었다.

“……내 미래를 보장해 준다고 들었는데, 그 조건이 뭔데?”

그 말을 들은 정우는 쓴웃음을 지었다.

팀장님…… 참 변했구나.

씁쓸함을 안고서 그가 준비해 온 조건을 말했다.

“저에게 정보를 알려 주셔서 내부고발자가 되신다면, 아마도 대한화학에서 계속 일하기 어려우시겠죠.”

“그렇지.”

“팀장님 다시 네뷸라로 복직시켜 드리고, 자리도 만들어 드릴게요. 그리고 성과금 명목으로 인센도 두둑이 챙겨 드리죠. 이 정도면 충분하지 않습니까?”

안정적인 일자리와 인센티브라.

나쁘지 않은 조건이다.

박학기 팀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고민 좀 해 볼게.”

“긍정적인 연락 기다리겠습니다.”

정우가 자리를 뜨고.

박학기 팀장은 생각에 잠겼다.

처음에는 심장이 벌렁벌렁거렸지만, 생각하면 할수록 상황이 그리 나쁘지만은 않았다.

‘……생각해 보니 이제 쫄 이유가 없나?’

대한화학 하나에 목메어 있었지만, 이제 네뷸라라는 안전빵이 생긴 이상 지금처럼 전전긍긍할 이유가 없었다.

에너맥스1000의 진짜 비밀을 알고 있다는 이 강력한 무기.

나름 노회한 박 팀장은 이 무기를 어떻게 휘둘러야 할지 본능적으로 직감했다.

‘……대한화학.’

* * *

-부회장님, 박학기입니다. 한번 뵙고 싶습니다.

박민수 부회장은 갑작스러운 면담 요청에 당황했다.

“……이놈이 무슨 생각이지.”

아무래도 박학기 팀장은 에너맥스1000 케이스갈이와 관련된 직접적인 관계자이기 때문에 그의 면담 요청이 껄끄러웠다.

하지만 그렇다고 무시할 수도 없는 노릇.

결국 그의 면담 요청을 받아들였고, 박학기 팀장이 그의 앞에 섰다.

“그래. 박 팀장, 무슨 일입니까?”

박 부회장의 물음에 잠시 우물쭈물하던 박학기 팀장이 결심했다는 듯 입을 열었다.

“……거래를 하러 왔습니다.”

“… 거래? 무슨 거래요.”

“저 바보 아닙니다. 에너맥스1000, 솔리드스타 바꿔치기한 정황 전부 알고 있습니다.”

박학기 팀장의 선언에 박민수 부회장은 올 게 왔음을 깨달았다.

당황스럽고, 놀랍기도 하고, 짜증도 났지만 그는 아무렇지 않은 척 입을 열었다.

“그래서요? 원하는 게 뭡니까.”

“10억 준비해 주십쇼.”

“10억?”

“예. 그것만 약속해 주시면 입 싹 닫겠습니다.”

박 팀장의 당당한 요구에 박민수 부회장이 눈살을 찌푸렸다.

“……참나. 지금 당신 크게 실수하는 거야.”

“아뇨. 전 제가 뭘 해야 할지 드디어 분명해진 느낌입니다.”

“…….”

“전 틀리지 않았어요. 그러니 10억 준비해 주세요. 만약 준비하지 않는다면…….”

박 팀장의 눈빛이 살벌해졌다.

“에너맥스1000의 실체에 대해 전 세계가 알게 될 겁니다.”

그런 협박에 가까운 통보와 함께 박학기 팀장이 부회장실을 나섰다.

박민수 부회장이 답답한 듯 한숨을 내쉬었다.

“후…… 결국, 지 무덤을 지가 파네.”

잠시 골치가 아픈 듯 관자놀이를 꾹꾹 누르던 그가 스마트폰을 들어 한동준 사장한테 연락을 취했다.

-박 부회장님, 무슨 일이시죠?

“……우려했던 사태가 터졌습니다. 박학기가 배신하려고 합니다.”

-박학기라면…… 그 모듈개발팀장이요?

“예. 10억을 요구하는데, 어떻게 하죠?”

박민수 부회장이 묻자 수화기 너머로 아무렇지 않은 듯한 한동준 사장의 담담한 음성이 들려왔다.

-얼마나 어디까지 아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주지 마세요. 어차피 영원히 숨길 수도 없고, 슬슬 타이밍이 된 것 같으니까.

“설마…… 다른 계획이 있다는 겁니까?”

-어차피 우리만 안 잡히면 되는 거 아닙니까.

“그 말씀은……?”

-박학기한테 덮어씌웁시다.

한동준 사장에게서 놀라운 계획이 흘러나왔다.

박학기한테 뒤집어씌우자니.

일견 그럴듯해 보이지만 문제점이 많았다.

“……박학기 혼자 이 거대한 일을 다 꾸몄다고요? 사람들은 바보가 아닙니다. 이건 무조건 무리입니다.”

-아니요. 눈치채도 상관없어요. 어차피 물증은 없을 테니까.

“물증이라면……?”

-서류 다 조작하고 검찰에 돈 좀 찔러 주면 우리한테까지 불똥 튈 일 없습니다.

일리가 있다.

존재하는 모든 서류 등의 물증이 박학기를 가리키고 있다면, 그 윗선인 한동준 사장까지 엮기란 불가능에 가까울 테니까.

하지만 박민수 부회장은 무언가 찜찜했다.

“그래도…….”

-박 부회장님 이미 아버지 만났다고 들었습니다. 안전 약속까지 보장받았을 거면서 우리 박 부회장님 소심하게 왜 이러실까.

이미 그걸 알고 있다고?

한동준 사장의 정보력이 비상한 줄 알았으나 이 정도일 줄이야.

‘내부에 누군가 조력자가 있는 건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아무렴 어떤가.

어차피 박민수 부회장은 곧 은퇴할 예정이기에 그의 정보력이 어느 정도인지, 내부에 조력자를 어떻게 심어 놨는지는 궁금하지 않았다.

피곤해진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그렇게 하시죠.”

-에너맥스1000 관련 서류 전부 확인해서, 박학기 팀장이랑 몇 명 엮어서 보낼 준비하세요.

“……예.”

통화를 마친 박민수 부회장이 스마트폰을 책상에 내려놓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얼마 안 남았다.”

창밖을 내려다보는 그의 눈은 매우 피곤해 보였다.

* * *

박학기 팀장과 만난 며칠 후.

정우는 인천국제공항으로 향했다.

머스크가 직접 한국을 방문했기 때문이다.

“미스터 리! 이게 얼마 만입니까! 이러다 얼굴 까먹겠어요.”

“하하하, 얼마 안 됐잖아요. 자, 이럴 게 아니라 이동하시죠.”

정우는 한국에 오랜만에 왔다는 머스크를 위하여 하루 스케줄을 비워 오전부터 서울 강남 곳곳을 구경시켜 주며 관광을 하였다. 물론 멋진 한식 레스토랑에서 식사와 사업 얘기는 필수였다.

“슈퍼차저 V3 개발 중이라고 들었습니다.”

“예. 아무래도 배터리 충전속도가 느린 문제 때문에 솔리드스타 나오기 훨씬 전부터 충전소의 전압과 출력을 높이려고 준비 중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솔리드스타RC가 나와서 어느 정도 해소되었네요.”

“그래도 충전소 출력은 중요하긴 하죠. 아무리 양동이의 입구가 크고 넓어도, 나오는 물의 양이 시냇물 수준이면 양동이를 채우는 데 한세월은 걸릴 테니까.”

정우의 말은 정확했다.

솔리드스타RC는 일종의 입구가 큰 양동이었다. 그래서 한 번에 빠르게 많은 양의 물, 즉 에너지를 받아들여 충전할 수 있는 셈이었다.

하지만 양동이로 흐르는 물의 양, 즉 충전소의 출력이 낮으면 결국 충전속도는 느려지기 마련.

머스크가 정우의 비유에 웃었다.

“그렇죠. 비유가 적절합니다. 하하하. 그래서 슈퍼차저 V3를 착착 준비 중인데, 여기에 미스터 리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제 도움이요?”

“예. 슈퍼차저에 있는 슈퍼캐비넷에 솔리드스타RC를 탑재할까 하거든요.”

“……슈퍼캐비넷에요?”

당연히 정우는 슈퍼캐비넷이 무엇인지 알았다.

“슈퍼캐비넷이면 차량이 없을 때 미리 배터리에 전력을 충전해 놓았다가 전기차가 충전할 때 슈퍼캐비넷에 모아 두었던 전력을 방출하여 빠르게 충전시키는 그거죠?”

“맞습니다. 지금 120KWh 출력인 슈퍼차저V2로도 충전속도가 2시간씩 걸리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죠. 현재 슈퍼캐비넷까지 합친 슈퍼차저의 출력은 500KWh 정도 되니까요.”

슈퍼캐비넷은 일종의 전기 저장소였다.

슈퍼차저를 이용해 전기차에 일반적으로 공급되는 전력은 보통 120KWh 정도로 균일하고, 이 출력은 통일되어 있기에 슈퍼차저 자체만으로 임의로 높일 수가 없다.

결국 출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다른 장치가 필요한데, 그 장치가 바로 슈퍼캐비넷이었다. 충전하려는 전기차가 없을 때는 120KWh로 슈퍼캐비넷에 전기를 계속 충전하다가, 전기차가 충전을 시작하면 슈퍼캐비넷에 담겨 있던 전력을 120KWh가 아닌 500KWh 정도 되는 압도적인 출력으로 빠르게 충전하는 것이다.

일종의 댐 같은 역할로, 미리 가두어 둔 물을 가뭄 등 필요할 때마다 수문을 열어 공급하는 역할과 흡사했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슈퍼캐비넷은 저장소였기에 ‘배터리’가 반드시 필요한 장치였고, 현존하는 배터리 중 가장 뛰어난 제품은 다름 아닌 솔리드스타RC.

정우는 그제야 머스크가 자신을 보러 한국까지 날아온 이유를 직감했다.

“이야- 이거 저 보려고 놀러 온 게 아니라 사업 때문에 온 거군요? 이거 실망인데요.”

“하하하, 오해입니다. 미스터 리 얼굴도 보고, 겸사겸사 사업도 하고. 하하하. 좋지 않나요?”

능글맞은 머스크의 대답을 들으며 결국 정우도 웃을 수밖에 없었다.

“하하하. 이건 뭐, 어쩔 수 없네요. 알겠습니다.”

“그럼 슈퍼차저V3에 솔리드스타RC 도입하는 부분에 대해 동의하신 거죠?”

“네네. 물량 챙겨 드릴게요.”

“하하, 역시 미스터 리밖에 없습니다. 자, 한잔하시죠.”

그렇게 두 사람은 술 한잔 기울이며 슈퍼차저V3에 솔리드스타RC를 탑재 건에 대해 구두 계약을 완료했다.

술이 한 잔 두 잔 들어가자 머스크의 말이 많아졌다.

“지금 슈퍼캐비넷을 이용한 슈퍼차저의 최대출력이 500KWh잖습니까? 하지만 슈퍼차저V3 슈퍼캐비넷에 솔리드스타RC가 탑재되면 지금 최대출력의 2배는 훌쩍 넘을 겁니다. 1,000KWh, 아니 2,000KWh도 가능할 거라 예상하고 있어요.”

“와…… 그 정도가 되면 진짜 기름 주유보다 훨씬 빠르겠네요.”

“말해 뭐하겠습니까. 아마도 미스터 리와 제가 이 세상에 새로운 산업혁명을 가져오게 될 겁니다. 후…… 말하다 보니 가슴이 두근거리네요.”

“하하하, 너무 많이 마신 거 아니에요?”

“오우- 절대 아니에요. 이제 시작일 뿐입니다. 자, 한잔하시죠. 쏘주라는 거 참 괜찮네요.”

“그거 생각보다 도수 세요. 천천히 드세요.”

정우가 경고했지만, 결국 페이스 조절에 실패한 머스크는 금세 해롱해롱해졌다.

어느새 꾸벅꾸벅 졸기 시작한 머스크를 보며 정우가 쓴웃음을 지었다.

“……그러게 이 양반아, 천천히 마시라니까……. 저기 강 팀장님? 머스크 경호팀 좀 불러 주세요. 옮겨야 할 것 같아요.”

“네, 대표님.”

결국, 머스크가 취한 바람에 술자리는 생각보다 일찍 끝났다.

물론 일찍 끝났지만, 어느새 시간은 저녁 시간.

머스크를 차에 태워 보내고, 정우도 차에 올랐다.

강철준 팀장이 운전하는 차를 타고 가며 어두워진 창밖을 바라보다가 문득 생각나는 게 있었다.

정우는 취한 얼굴로 강철준 팀장에게 물었다.

“강 팀장님, 혹시 박학기 팀장한테서 연락 온 거 있나요?”

“아니요. 박학기에게서 연락이 온 건 따로 없습니다.”

“흠…….”

연락이 와도 진즉에 왔어야 할 시간인데 너무 늦어진다.

“이거 왠지 딴 주머니 찬 것 같은데…….”

정우의 중얼거림을 들은 건지 강철준 팀장이 답했다.

“아마 딴생각을 품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박학기를 통해서 에너맥스1000을 파헤치는 건 쉽지 않아 보이네요.”

“결국, 다른 방법이 필요하겠네요.”

박학기 팀장을 통해 문제를 풀어 보려 했는데 쉽지 않다.

무슨 새로운 돌파구가 없을까.

그가 깊이 생각에 잠겨 있던 그때.

“대표님, 전화 오신 것 같은데요?”

“네? 아…… 그렇네요. 이 시간에 누구지?”

스마트폰 진동 소리를 먼저 캐치한 강철준 팀장의 말에 스마트폰을 들어 확인해 보니 모르는 국제 전화 번호가 찍혀 있었다.

스팸인가 싶어서 안 받고 끊어 버렸는데, 재차 같은 번호로 전화가 걸려 왔다.

혹시 탁재훈 본부장이나 아는 사람인가 싶어서 일단 전화를 받자, 약간 딱딱 끊어지는 듯한 독특한 억양의 영어가 들려왔다.

-네뷸라 케미컬 대표, 미스터 리 전화 맞습니까?

“예? 이정우라면 제가 맞습니다만. 실례지만 누구시죠?”

정우가 경계를 담아 묻자, 수화기 너머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하하하, 반갑습니다. 전 다임러 벤츠 대표, 올라 칼레니우스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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