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9화 세상에 돈으로 안 될 건 없습니다
김봉수는 가격을 듣고 벙쪄 버렸다.
“아니, 뭔 놈의 집이 300억이야……?”
-나도 몰랐는데, 그런 집이 있더라고.
“뭘 얼마나 돈을 처발랐길래…….”
-궁금하면 나 부동산 보러 갈 때 같이 갈래?
“……콜! 무조건 따라간다. 언제 갈 거?”
-평일은 내가 일이 있어서 좀 힘들고, 주말에 보자고.
“오케이. 시간이랑 약속장소 정해지면 단톡에 올려 줘.”
-오냐.
통화를 마치자 김동현이 물었다.
“무슨 약속 잡은 거야?”
“아니, 정우 이 새끼가 집을 산다는데 뭔 300억짜리를 산다더라.”
“……300억?”
“미쳤지? 그래서 부동산 보러 가는 거 따라간다고 했어. 너도 갈 거지?”
“무조건 가야지. 이 기회 아니면 언제 보겠냐.”
“존나 기대되네. 도대체 무슨 집이길래.”
김봉수는 궁금해졌다.
300억짜리 집은 과연 어떻게 생겼을지.
그리고 정우의 재산도.
자신의 전 재산에 해당하는 집을 아무렇지도 사는 그의 재력은 과연 어느 정도 수준에 도달한 걸까.
“……확실히 어나더 레벨이긴 하네.”
“뭐가?”
“뭐긴, 정우 얘기지. 크크큭, 흐 수영이나 해야겄다!”
“난 쉴란다. 어어어? 아니 쉰다니ㄲ…… 으아아악!”
기어코 김동현을 끌어다가 수영장에 내동댕이치는 김봉수였다.
호텔 실내 풀장이 두 남정네의 뜨거운 우정(?)으로 후끈해졌다.
* * *
친구들이 다가올 주말 부동산 구경을 기대하는 사이.
정우는 정신없는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지서현이 보고했다.
“네뷸라 코인거래소 회원 수가 계속 늘어나고 있습니다. 어제 가입한 회원 숫자는 1,200명 정도 됩니다.”
“나쁘지 않은데? 다 내국인이지?”
“예. 대부분 내국인이지만, 해외 가입자도 조금씩 늘어나고 있습니다.”
“음? 우리 지금 UA 마케팅 국내에만 집중하고 있는 거 아니었어?”
“예. 아직 해외 마케팅은 시작하지 않았는데, 아무래도 입소문이 조금씩 나고 있는 듯합니다. 덕분에 거래량도 이전보다 꽤 활발해진 상태구요.”
“매출은 얼마나 나왔는데?”
“보고서에도 적혀 있지만, 어제 매출은 620만 원 나왔습니다.”
“하루에 600이면…… 한 달이면 1억 8천 정도네. 대박인데?”
“코인거래소 개발에 투입된 투자금에 비하면 조족지혈일 뿐입니다. 그리고 직원들 인건비 생각하면 적자죠. 매출이 더 많이 나와야 합니다.”
“그러려면 회원 수가 지금보다 최소 10배는 많아져야겠지. 그건 시간이 해결해 줄 문제 같고, 알겠어. 지 팀장, 지금처럼만 해 줘.”
“예. 맡겨만 주십시오.”
네뷸라 코인거래소가 성과를 보이기 시작하자 흐뭇한지 지서현의 입가에도 다시 미소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지서현이 네뷸라 코인거래소와 라이프코인 개발에 상당히 힘을 썼기 때문에 애착이 가는 듯 싶었다.
그렇게 지서현이 보고를 마치고 대표실을 나설 때, 문이 열리자 밖에는 익숙한 얼굴이 기다리고 있었다.
바로 한성준 사장이었다.
딸의 얼굴을 확인한 그가 어색하게 웃었다.
“……하하, 오랜만이네. 서현아.”
“회사에서는 직함으로 불러 주십시오, 한 사장님.”
“아? 미안미안. 지서현 개발팀장, 용무 끝났으면 들어가 봐도 되겠습니까.”
“……예. 그렇게 하십시오. 그럼 이만.”
지서현은 쌩하니 그를 지나쳐 멀어져 갔다.
착잡한 얼굴로 그 뒷모습을 보던 한성준 사장이 대표실로 들어섰다.
정우가 안타깝다는 듯 위로했다.
“아직 어색해서 그럴 거예요. 차차 나아질 겁니다.”
“예. 계속 부딪쳐 봐야죠.”
“그나저나 무슨 일이십니까?”
“AP칩 개발과 관련하여 대표님께 보고드릴 게 있어서요.”
한성준 사장이 보고했다.
“대표님이 일전에 말씀하신 대로 그래핀 소재를 활용한 AP칩 설계를 확인 중인데…… 기존 AP칩 설계도로는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왜죠? 대한전자에도 자체 AP칩 있지 않아요? 뉴웨이브였나.”
“있긴 합니다만…… 아시다시피 그리 좋은 AP칩은 아닙니다. 2세대 개발도 지지부진하구요.”
확실히 정우도 모바일 반도체 개발 쪽에 미진함을 느끼고 있었다.
스마트폰 사업부를 가져오면서 모바일용 반도체 사업부도 함께 딸려 오긴 했지만, 그 규모가 크진 않았거니와, 무엇보다 작년에 대한전자에서 자체 모바일 AP칩 생산을 중단했었기 때문이다.
“저희가 자체 개발한 AP칩이었던 뉴웨이브 1세대가 실패해서 2세대 개발을 진행 중이었는데, 아시다시피 스마트폰 사업 성적이 저조해서 개발이 축소되었고, 작년에 인텔과 맺었던 파운드리 계약 역시 파기된 상태입니다.”
“그래도 1년밖에 안 지났네요.”
“계약만 파기되었지, 개발이 아예 중단된 것은 아닙니다. AP칩설계개발팀은 아직 유지 중이에요. 다만 대한전자 시절에 예산이 대폭 축소되었기 때문에 성과는 거의 없었습니다.”
한성준 사장의 말을 들으며 정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반도체 기술력은 뛰어나진 않겠네요.”
“아무래도 최근에 생산된 저희 스마트폰 기종들 대부분은 퀄컴의 AP칩인 스냅드래곤 시리즈를 채택하여 공급받았으니까요.”
“흠…… 개발팀장 한번 만나 볼 수 있을까요? 보고서로는 파악하는 데 한계가 있는 것 같고, 개발 과정에서 어려움이 있다면 무엇인지 확인이 필요할 것 같네요.”
“제가 불러오겠습니다.”
곧장 AP칩설계총괄개발팀장을 호출했다.
대표실로 불려온 오준규 AP개발팀장은 안경을 쓴 깡마른 체구를 지닌 굉장히 깐깐한 인상의 중년인이었다.
“부르셨습니까, 대표님. 안 그래도 그래핀 소재로 AP칩을 개발하는 부분에 있어서 어려움이 있어서 보고를 드리려고 했습니다.”
“네. 어떤 부분이 막힌 건가요?”
“총체적 난국입니다만, 가장 큰 문제는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 AP칩에 들어가는 자체 모뎀칩셋을 개발하는 부분에 대한 어려움이 그것이고, 두 번째는 그래핀 소재가 워낙 전도성이 뛰어나서 부도체 상태일 때도 전력이 흐르는 문제를 제어하는 게 어렵다는 점입니다.”
두 가지 다 이해가 되는 문제였다.
“첫 번째 문제는 간단하네요. 일단 통신부분 모뎀칩셋은 어차피 4세대 이동통신 규격을 따라야 하니까 대표적인 퀄컴사 모뎀칩셋을 사서 쓰는 걸로 하죠. 어차피 그 모뎀칩셋 사서 조합하는 건 퀄컴에서도 문제 삼지 않으니까요.”
“다만, 그렇게 되면 풀Full 플렉서블 스마트폰 개발은 어려울 텐데요?”
“처음부터 완벽할 수는 없지요. 유연한 형태로 구현할 수 없는 AP칩셋과 같은 일부분은 기존처럼 딱딱한 틀 그대로 두면 되지 않을까요? 예를 들어 평소에는 스마트워치처럼 팔찌 형태로 있다가 조작하면 플렉서블 디스플레이만 튀어나오는 방식이라든지.”
정우의 의견에 오준규 AP개발팀장이 감탄한 듯 손바닥을 쳤다.
“멋진 의견이네요.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럼 모뎀칩셋 개발은 중단하는 겁니까?”
“아니요. 계속 로열티를 지불할 수는 없고, 무엇보다 풀 플렉서블 스마트폰이 우리의 목표 아닙니까? 그러니 차세대 플렉서블 모뎀칩셋 개발도 힘써 주세요. 인력 필요하면 재량껏 마음껏 뽑으시구요.”
“예, 알겠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 그래핀 반도체 특성 문제에 대해서는…… 확실히 그래핀 소재로 반도체를 만들 때 모두가 어려움으로 꼽던 부분이긴 했죠. 근데 그래핀을 산화시켜서 산화그래핀 형태로 만들어 부도체화 해도 정말로 전류가 흐르나요?”
“예. 어찌나 전도성이 뛰어난지…… 쉽지 않습니다.”
반도체란 평소에는 부도체처럼 전기가 통하지 않다가, 스위치를 키면 전류가 흐르는 물체를 말한다.
즉, 계속 전류가 통하는 물체는 반도체가 아니라 그냥 ‘도체’일 뿐, 반도체로서의 역할을 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전류가 통하냐 안 통하냐로 0과 1이라는 이진법식 신호를 구분하여 데이터를 처리하고 연산하는 CPU나 AP의 특성상, 계속 전류가 흐르는 그래핀으로 반도체를 만드는 건 쉬운 문제가 아니었다.
“그 부분은 확인이 필요할 것 같긴 하네요. 해당 문제를 해결하려면 얼마나 걸릴까요?”
“그래핀을 부도체화 시키는 부분은 소재 쪽 문제라 저희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려면 몇 년이 소요될지 알 수 없습니다.”
“그렇게나 오래요? 네뷸라 케미컬 소재팀과 연결시켜 줘도요? 솔리드스타 개발하면서 그쪽에 쌓인 데이터가 상당하거든요.”
“……일단 얘기는 해 봐야 알겠지만 미지수입니다.”
부정적인 오준규 AP개발팀장의 대답을 들으며 정우는 생각에 잠겼다.
“……확실히 맨땅에 헤딩하려고 하니 빡세긴 하네요.”
“……죄송합니다.”
“아니요, 개발팀장님이 죄송할 건 아니죠. 오히려 이런 부분은 대표가 나서서 해결해 줘야 할 문제라고 봅니다.”
“대표님이요?”
정우의 말에 오준규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아니, 개발 쪽 이슈인데 대표님이 어떻게……?”
“그야 돈을 쓰면 해결될 문제 아니겠습니까?”
“……예? 돈이요?”
이해 못하는 오준규 팀장을 보며 정우가 씨익 웃었다.
“세상에 돈으로 안 될 건 없습니다. 이미 그래핀 반도체를 개발 성공한 사람, 섭외해 보죠.”
* * *
정우의 예상은 정확했다.
갑작스레 그래핀 소재를 다루게 된 대한전자의 그래핀 이해도와 기술력은 떨어지는 편이다. 하지만 일전부터 그래핀 소재를 조금씩 다뤄 온 기업과 연구소는 세계에 널려 있었고, 당연하게도 이미 그래핀 소재로 반도체 개발에 성공한 곳도 여러 곳이었다.
-MIT 재료공학과에 폴 클레버리 교수라고, 그래핀 반도체 분야에서는 이 사람이 그냥 탑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진짜 빨리 알아내셨네요. 수고하셨습니다, 탁 본부장님.”
정우는 탁세훈 본부장을 통해 해당 분야의 권위자가 누구인지 쉽게 알아낼 수 있었다.
다만, 탁 본부장은 좀 의아한 눈치였다.
-하하, 뭘요. 그나저나 그래핀 반도체 개발자는 왜 알아보라고 하신 겁니까? 혹시 최근에 대한전자 스마트폰 사업부 인수했다더니, 거기와 관련된 일인가요?
“하하하, 역시 탁 본부장님 아니랄까 봐 예리하시네요. 맞습니다. 이번에 자체 스마트폰 개발과 그래핀 반도체를 개발하려고 하는데, 그 부분에 문제가 있어서요. 아무래도 맨땅에서 시작하는 것보다는 기존 기술력을 흡수하는 게 빠를 것 같아서 이 분야의 권위자를 한번 만나 볼까 합니다.”
-오호, 그런 거였군요. 그럼…… 미국 오시는 겁니까?
“그럴 것 같은데요?”
-이거 기대되는군요. 하하하, 조만간 오시면 코 삐뚤어지게 한번 마셔 보자구요. 제가 이번에 뚫은 곳이 있는데, 아주 그냥 죽여 줍니다.
“하하하, 좋죠. 기대하겠습니다.”
-그럼 대표님, 조만간 뵙겠습니다!
“예, 본부장님도 일 쉬엄쉬엄 건강 챙기십쇼!”
-워커홀릭한테 그 얘기 들으니 기분이 이상한데요……? 그 말은 저한테 하실 게 아니라 대표님 본인한테 하심이……?
“……뭐라구요? 신호가 왜 이러지? 어어… 안 들리네……. 다음에 연락할게요!”
또다시 탁세훈의 잔소리가 시작될까 봐 정우가 능청을 떨며 전화를 끊었다.
그러면서 강철준 팀장을 호출했다.
이제는 경호팀장인지, 정보팀장인지 헷갈리는 그가 또 시작이냐는 듯 물었다.
“……이번엔 뭘 알아 오면 됩니까?”
“하하하, 이제는 척 하면 척이시네요. 다른 건 아니고, 폴 클레버리 교수에 대해 좀 조사해 주세요. 뭘 좋아하는지, 취향이나 그런 것들이요.”
“미팅을 하시는 겁니까?”
“예, 맞아요. 아무래도 그쪽이 가진 원천기술의 저작권 부분에 있어서 협상을 해야 할 것 같은데, 취향 같은 걸 알면 도움이 될 것 같거든요.”
“흠, 어려운 부탁은 아니네요. 알겠습니다. 알아보겠습니다.”
그렇게 업무 하나를 처리한 정우.
하지만 아직도 산더미처럼 결재 확인해야 할 프로젝트들이 넘쳐났다.
프로젝트 이슈 트래킹 프로그램에 대표의 결재를 요청하는 알람 숫자 ‘+99’가 애처롭다.
“……오늘 퇴근은 가능하려나?”
몸이 두 개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정우였다.
* * *
정신없는 일주일이 지나고.
드디어 꿀맛 같은 주말이 찾아왔다.
정우는 친구들과 함께 청담에 위치한 한 모델하우스를 찾았다.
<엔젤로청담>
정우가 사려는 300억짜리 집이 바로 이곳이었다.
추후 진주희가 계약해서 유명해지는 최고급빌라였는데, 정우는 이곳을 눈독 들이고 있었다.
“여기야? 모델하우스인데?”
“완공이 2019년이라고 하더라고. 미리 계약해 둬야 그때 입주가 가능하거든.”
“그럼, 그때까지 호텔 살려고?”
“아니. 여긴 2019년용이고 그전에 살 곳도 또 알아봐야지.”
“……집을 몇 개를 사냐 도대체.”
“인정. 돈이 얼마나 많은 거냐.”
“글쎄. 그나저나 니들 옷을 왜 그따구로 입고 왔냐?”
정우가 김봉수와 김동현의 위아래를 훑어보며 핀잔을 줬다.
무릎 나온 추리닝에 두꺼운 패딩을 걸친 모습은 그야말로 동네 마실 나가는 백수 그 자체였다.
정우의 패션 지적에 김봉수가 발끈했다.
“남이사. 그런 지는 얼마나 깔끔하게 입었다고.”
“크크큭, 그런가?”
친구의 투덜거림에 정우도 피식 웃었다.
사실 정우의 패션도 친구들과 크게 다를 바는 없었으니까.
“그래도 이거 나름 비싼 건데.”
“동묘시장에서 사 온 줄.”
“그건 그래. 니나 나나 도긴개긴이다.”
“와, 나 도찐개찐을 도긴개긴이라고 말하는 사람 첨 봤다.”
“좀 이상하냐? 랩 하느라 단어 공부 좀 했는데.”
“졸라 이상해. 그리고 그 열정으로 공부했으면 서울대 갔을 듯. 크크큭.”
정우와 친구들이 농담을 주고받으며 실실 웃고 있을 때, 그들을 알아본 직원이 다가왔다.
“어서 오세요. 엔젤로청담 홍보관 가이드 김지혜입니다. 매물 보러 오셨나요?”
“예. 여기 시세가 어느 정도죠?”
“일반층은 시세 150억에 형성되어 있는데요, 아시다시피 펜트하우스는 더 좋고 비싸잖아요? 펜트하우스층의 시세가 300억입니다.”
“구경 좀 할 수 있을까요?”
“모델하우스 목적이 그건데 당연하지요. 바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후줄근한 패션임에도 외모에 대해 편견이 없는 친절한 안내 직원을 따라 모델하우스를 구경하였다.
“저희 엔젤로청담은 건축계의 노벨상인 프리츠커상을 수상한 스페인의 라파엘 모네의 아시아 최초 건축물입니다. 자체 주차공간을 가지고 있어서 세대별로 최대 5대의 차량을 주차 가능한데요. 국내 최초로 빌라 내에 차량 엘리베이터를 도입하여 집안에서 차를 타고 곧바로 출퇴근을 하실 수 있습니다.”
“집에서 차를 탈 수 있다고요?”
“예. 여기 보시면 세대에 차량 주차공간이 있는데, 이걸 타고 엘레베이터를 이용해서 지상 1층으로 내려가는 방식입니다.”
“와…… 미쳤다.”
차에 환장하는 김봉수가 감탄하였다.
하지만 이 특별한 집에 대한 설명은 그게 끝이 아니었다.
“게다가 이뿐만이 아니라 펜트하우스만의 특전은 전용 루프탑 수영장이 있다는 겁니다. 모델하우스 특성상 구현은 되지 않았구요. 이 부분은 여기 안내 책자를 통해서 확인 가능하십니다.”
거기에 건축 과정에서 자체 소형 극장과 볼링장을 커스텀 가능하다는 옵션까지.
하나부터 열까지 친구들도 그렇고 정우의 마음에도 쏙 드는 집이었다.
“좋네요. 바로 계약할게요.”
“……예?”
정우가 지나가는 투로 계약한다고 이야기하자 안내직원이 잘못 들었다는 듯 눈을 끔벅였다.
“지금 계약하신다고…?”
“예. 펜트하우스 제가 계약할게요. 서류 작성 어디서 하면 되죠?”
“자, 잠시만요!”
여자 안내직원이 허겁지겁 어디론가 사라졌다.
잠시 후, 멀끔한 슈트 차림의 남자가 안내직원과 함께 돌아왔다.
“안녕하십니까. 엔젤로청담 분양을 맡은 유일건설 최재민이라고 합니다. 펜트하우스 계약을 하신다고 들었습니다.”
“예.”
“일단 이쪽으로 가시죠.”
극진한 대접을 받으며 사무실 안쪽으로 향했다.
이후 친절한 그들의 안내를 따라 서류를 작성했다.
몇 가지 청약 서류 작성을 마치고 분양팀 최재민 팀장이 그의 서류를 확인했다.
“어디 보자…… 성함이 이정우 씨군요…… 엥? 이정우 씨?”
“예. 제가 이정우입니다만?”
“그…… 네뷸라 이정우 대표이신가요?”
“예. 맞아요.”
“아… 어쩐지…….”
최재민 팀장이 감탄했다.
“보통 여기 오신 분들은 다 정장 입고 오시고 그러시거든요. 그런데 너무 편하게 오셔서 300억짜리 펜트하우스를 사신다고 하니까…….”
“아, 저희 차림이 좀 그렇긴 하죠? 의심될 만합니다.”
“아유- 전혀 아닙니다. 원래 부자들이 더 소탈하게 입고 다니세요. 하하하. 아무튼 옵션은 다 선택하셨고…… 계약금은 아래 계좌로 입금해 주시면 되세요.”
“바로 입금할게요.”
“어우- 그래 주시면 감사하죠.”
“잠시만요…… 이거 이체한도가 있네요? 나눠서 보내긴 애매하니까, 은행 가서 보내겠습니다.”
“넵넵, 천천히 입금해 주세요.”
“알겠습니다. 그럼 수고하십시오.”
그렇게 정우는 펜트하우스 계약을 마쳤다.
마치 동네 마트 쇼핑을 나오듯이 집 하나를 계약하고 나오는 그의 모습에 친구들은 혀를 내둘렀다.
“진짜 니 존나 부자 됐구나.”
“뉴스 못 봤냐? 얘 솔리드스타 매출이 조 단위라던데.”
“그래도 그게 다 정우 쟤 돈은 아니잖아?”
“아니긴. 네뷸라 지분 전부 정우가 갖고 있다던데.”
“그래?”
김동현의 설명에 김봉수가 은근한 얼굴로 정우의 옆구리를 쿡 찔렀다.
“야. 나중에 집들이하면 나 꼭 초대해라?”
“선물이나 준비하셔. 그럼 불러 드림.”
“돈도 많은 놈이 뭔 선물이야. 맨몸이면 충분하지.”
“응 안 돼. 꺼져~”
“와, 정우 이 치사한 새끼. 전 세계가 얘가 이렇게 자린고비인 걸 알아야 하는데.”
“세상에 300억씩 쓰는 자린고비 봤냐?”
“그럼 뭐해, 나한테는 쓰지도 않는데.”
“내가 너한테 10억 빌려줬던 건 기억도 안 나냐?”
“이미 갚았잖아. 그리고 이 새끼, 지금 보니까 한 100억 빌려줬어도 티도 안 났을 것 같은데?”
“그건 인정.”
“야, 나 한 100억만 또 빌려줘 봐라.”
“응 안 돼~”
“치사한 새끼. 동현아, 얘 이제 우리 모임에서 제외시켜!”
김봉수가 씩씩거렸지만, 김동현은 요지부동 정우 옆에 딱 붙어 있을 뿐이었다.
“응, 너나 가~ 나는 정우 옆에 딱 붙어서 단물까지 쪽쪽 빨아먹을 거다.”
“와, 김동현 이 배신자 새끼.”
“정우야, 모쏠 새끼 버리고 밥이나 먹으러 가자.”
“크크큭, 그러자.”
두 사람은 김봉수를 버려 두고 차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그런 두 사람의 뒤를 김봉수가 다급한 얼굴로 뒤쫓았다.
“어디 가! 같이 가 이 배신자들아!”
봄 햇살에 겨울의 눈이 녹듯이, 세 사람의 우정이 오후 햇살 속에 녹아들고 있었다.
* * *
펜트하우스 계약 이후 내친김에 집을 하나 더 구했다.
정우는 내년에 엔젤로청담에 입주할 예정이었기에 1년짜리 단기임대를 원했는데, 다행히 매물이 있었다.
“시그니케이 레지던스가 미분양인 줄은 상상도 못 했네.”
“그러게.”
바로 JK호텔의 시그니케이 타워가 그것이었다.
잠실에 위치한 이 국내 최고층 호텔은 거주자를 위한 분양매물도 있었는데, 이 매물이 미분양 상태여서 입주가 가능했던 것.
“워낙 고가라서 매물이 다 안 빠졌나 본데?”
“덕분에 나야 살았지.”
“근데 월세 15억은 좀…….”
“뭐 어때. 단기간만 살 건데.”
“1년이면 180억인데? 그냥 사는 게 어떻냐.”
“맞아. 아니면 슈퍼펜트하우스 층 말고 다른 층 매물로 하든가. 중저층 매물은 월세 비싸 봤자 1억 수준이던데, 월세 15억은 좀 너무했다.”
“그런가.”
월세 계약을 앞두고 친구들이 만류했다.
정우도 처음에는 슈퍼펜트하우스 층에서 단기로 살려다가 너무 비싸다는 친구들의 의견에 고심했다.
‘시그니케이 슈퍼펜트하우스 매물의 시세가 어떻게 되더라?’
과거 기억을 떠올려 보니 시그니케이 슈퍼펜트하우스 매물은 계속 공실이었던 걸로 기억이 났다. 가격 역시 분양가 그대로였고.
즉, 투자가치가 적은 것이다.
결국, 정우는 타협할 수밖에 없었다.
“그냥 좀 저층으로 가야겠다.”
“잘 생각했다.”
정우는 친구들의 의견을 받아들여 시그니케이 레지던스 중층 매물로 2개 호실의 단기임대 계약을 맺었다.
정우 본인이 살 집과 경호원들의 숙소용으로 각각 1개씩이었는데, 월세 3,000만 원짜리였음에도 초호화 브랜드 아파트답게 생각했던 것보다 집이 넓어서 혼자 쓰기엔 안성맞춤이었다.
게다가 레지던스여도 기본적으로 호텔 베이스인지라 정우가 호텔 장기숙박을 하면서 애용했던 청소서비스나 룸서비스 역시 가능한 점 역시 마음에 들었고, 최상층에 위치한 미슐랭에서도 인정한 최고급 퀄리티의 스카이라운지바를 이용 가능하다는 점 역시 마음에 들었다.
무엇보다 전용 와인셀러가 구비되어 있어서 요새 자주 선물 받는 와인이나 위스키 같은 술들의 보관이 용이하다는 점 역시 좋았다.
“……드디어 선물들 정리할 수 있겠구만!”
“야, 넌 짐 정리하려고 월세 3,000짜리를 계약하냐…….”
“어. 아깝게 버릴 수도 없잖아.”
“그깟 술이 뭐라고.”
“얘가 뭘 모르네. 선물한 사람들의 정성도 있고, 무엇보다 이 술들 겁나 비싼 거야.”
“얼마나 비싼데?”
“어디 보자…… 이게 맥켈란 파인앤레어 뭐시기였는데, 한 병에 1,000만 원이었나?”
“흐엑? 레알?”
“진짜지 그럼 구라겠냐.”
술 한 병에 천만 원이라는 말에 김봉수와 김동현의 눈빛이 변했다.
“정우야, 우리 그거 맛만 좀 보자.”
“안 돼. 이거 진성그룹 진용재 부회장님이 주신 거야.”
“진용재 부회장님이? 대박!”
“야야, 진용재 부회장님은 사람 아니냐? 그리고 진 부회장님도 즐거운 술자리 보내라고 이런 귀한 술을 보내 주신 거 아니겠어?”
김봉수의 교묘한 언변에 정우가 흔들렸다.
“……그럼 맛만 볼까.”
“마시자! 마시자!”
“에라이, 모르겠다. 그래, 기분이다!”
결국, 유혹에 넘어간 정우는 술병을 개봉했고.
그날 세 사람은 술이 떡이 되도록 취하고 말았다.
* * *
다음날.
숙취에 고통받으며 정우는 도로를 달리고 있었다.
“……아이고 죽겠네.”
“대표님, 괜찮으세요?”
“말도 마세요. 비싼 고급 양주는 숙취 없다고 누가 그랬어…….”
“너무 많이 마시면 그렇죠. 이따 비행기에서 푹 주무십쇼.”
“그래야겠어요.”
뒷일은 강철준 팀장에게 맡긴 채 잠을 청했다.
그렇게 비몽사몽으로 국제공항으로 이동하고, 비행기에 탑승하여 곯아떨어진 지 몇 시간이 지났을까.
그가 숙취에서 풀려났을 즈음에 미국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렇다.
정우는 그래핀 반도체 기술을 확보하기 위해 폴 클레버리 교수를 만나려 직접 미국까지 날아온 것이다.
“어우- 이제 좀 살겠다. 여러분, 배고픈데 식사나 하실래요?”
“저희는 비행기에서 많이 먹어서…… 하하하. 대표님 배고프시면 식사 간단히 하시죠.”
“배신자들. 됐어요. 도착해서 먹죠 뭐.”
정우는 탁세훈 본부장을 만날 겨를도 없이 배부른 경호팀과 함께 MIT공대가 위치한 미국 매사추세츠주로 향했다.
그곳에 그의 목적인 그래핀 반도체의 권위자, 폴 클레버리 교수가 있다.